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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 님의 서재입니다.

후회 안 하는 재벌가 배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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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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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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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8.27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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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3)

DUMMY


“아, 뭔가, 뭔가 부족한데······.”


끄으응. 앓는 소리가 울리는 여기는 한밤중에도 한낮처럼 밝은 작가의 작업실, 이자 집.

<너와 나의 파레트>의 작가 이나리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4부 대본을 두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심심하다. 긴장감이 부족하다. 없던 단역을 만드느라 심력을 소모했더니 머리가 아예 굳었다.

어쩌라고 정말. 나더러 어떡하라구. 그냥 잔잔하게 가면 안 되겠냔 말이야.


‘안 돼. 긴장감 MSG 팍팍 더 쳐!’


안 봐도 비디오다. 우진환 PD의 표정을 상상한 이나리가 노트북 앞에 엎어졌다.


“흐어어으어어.”


작업실에 앓는 소리가 공허하게 울린다.

이러면 안 되는데. 얼른 치고 나가서 완성된 대본을 보내야 하는데······.

마음 같아서는 1~3부도 새로 손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지.


- 우우웅


그런 이나리를 일으킨 건 핸드폰의 진동이었다.


[우진환 PD]


“하 씨, 곧 보내 준다니까 진짜······.”


우진환 PD가 이나리 작가에게 직접 연락하는 용건은 하나뿐이었다.


‘다음 부 대본 언제 나오냐.’


이번에도 그럴 게 뻔했다.

그렇다고 잠수를 타자니 작업실로 찾아올지도 모를 방송국 사람들이 무서워 그럴 수가 없다.

핸드폰 끄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지기에 이나리는 지금 간이 콩알만 했다.


우리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재벌 3세가 단역으로 투입되게 되었으니 뭐라도 만들어서 보내라.


그 명령에 화가 난 이나리는 1시간 만에 장면을 써내 던졌다.

그야말로 클리셰적인 캐릭터에 클리셰적인 장면.

단역을 맡은 재벌이 화가 나서 ‘너를 묻겠다’, 라고 선언했을 때,

이나리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 너무 늦게 깨달은 사실이었다.


“지, 진짜 묻겠다고, 그, 그러진 않겠지.”


너 묻힌다는 소식을 누가 PD를 통해 전하겠어.

그래. 차라리 본인이 직접 연락하거나, 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 가겠지.

······훌쩍. 엄마 보고 싶다.


망상을 펼치던 이나리는 아주아주아주 천천히, 전화가 끊기기 직전에야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 ······.”

[이 작가!!!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아악!!”


평소와는 다른 우렁찬 목소리가 이나리의 고막을 쾅쾅 두드렸다.


“뭐, 뭐예요······!”


나 위험한가? 도망가야 하나? 저 이제 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되나요? 하지만 걔가 먼저 낙하산으로······!!


[내가 지금 메일로 뭐 하나 보냈거든?! 얼른 봐. 당장 봐!! 10분 안에 보고 연락해!!!]


- 뚝


“······뭐, 뭐야. 여보세요? 저기요? 저기, 저기요? 야?”


끊긴 전화에 대고 말을 걸어 봤자 돌아오는 답은 없다.

그러기를 잠시, 잔뜩 쪼그라들었던 새가슴이 쫙 펴졌다.


“하! 어이가 없어서! 내가 무슨! 지가 뭐 보라면 보는 사람이고, 아무 때나 오라 가라 지 맘대로 해도 되는 사람인 줄 알아?!”


뒤늦게 분노가 밀려든 이나리는 핸드폰을 탁! (액정이 깨질까 봐 던지진 못했다) 내려놓고 구시렁거리며 메일을 열었다.

그렇다. 이나리는 우진환이 뭐 보라면 보는 사람이었다.


“개자식. 다음부터 내가 너랑 하나 봐라······!”


신인 작가의 설움이 이런 거랬지. ‘그래도 넌 내 보조작가였으니 어디 가서 무시는 안 당할 거’라던 선생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선생님, 저 독립하고 나서 이렇게 살아요. 선생님, 보고 싶어요.


이나리는 우진환의 메일을 열었다.


(제목없음)


제목도 내용도 없이 동영상만 달랑 하나 들어 있다.


“스팸 메일 아냐? 이씨, 이 새끼 진짜······!”


틀어 보니 하나는 가편집도 되지 않은 촬영본이었다.

이런 걸 작가에게 공유해 주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이게 대체 뭔데 이 밤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까지 보라고 강조를 했던 건가.


이나리는 안 그래도 뻑뻑한 눈을 부라리며 동영상을 응시했다.


“뭐야. 이거 그 장면이잖아.”


갈겨 쓴 단역 장면.

뭐야, 뭐냐고. 이거 보고 반성하라고?

비뚤어진 마음과 눈으로 노트북을 응시하던 것도 잠시,


- 눈치도 없는 게. 감은 무슨.


“응?”


이나리는 여기서 한 번 설렜다.


-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헷갈리게 안 해.


“미친.”


그리고 여기서 두 번 설렜다.

이나리 작가는 그리하여 그 장면을 장장 다섯 번을 돌려 보게 된다.

머릿속에서 박현섭의 서사가 부풀어 올랐다.


남주와 여주 원앤온리 서사에 긴장감을 한 스푼 더해 줄 수 있는 소꿉친구.

10년을 여주를 사랑했지만 고백 한번 해 보지 못했다는 그 설정.


영상 속 박현섭이 딱 그랬다.

그는 이가은을 절절하게 사랑하고 있었다.

질투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보면서 이나리 작가는 단숨에 궁금해졌다.


‘쟨 왜 저렇게 여주를 사랑하면서 고백하지 않았던 걸까?’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당연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겁이 나니까. 박현섭은 언제까지고 이가은 옆에 남아 있고 싶으니까. 친구라는 이름으로라도.’


여기까진 아주 간단하다. 대단히 클리셰적이라 잘만 쓰면 쉽게 갈 수 있다.

문제는 박현섭이 단역이었다는 거다. 그래서 그는 퇴장한다.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이나리는 깨달았다.

박현섭이 떠나면 안 된다. 그건 기껏 드라마에 불어넣은 활력을 모조리 죽이는 일이 될 테다.

저 재벌 3세가, 저 배우가 박현섭을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고작 세 컷 나오고 말 박현섭을 드라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배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 우우웅


[10분 안에 전화하라니까 왜 여태, ······.]

“이, 이분 뭐예요?”

[이 작가. 우리 일 하나 하자.]

“이미 같이하고 있잖아요. 아니, 이분 뭐냐니까요??”

[뭐긴 뭐야 이 작가가 그렇게 싫어했던 재벌놈이지!]

“제가 언제 싫어했다고! 하여튼 이분 진짜 뭐예요? 뭐 성화그룹에서 비밀리에 키워 내던 배우 병기 이런 거래요??”

[또 뭔 소릴 하는 거야 대체? 하여튼 일 하나 하자고!]

“비중 늘려 주세요!”

[내 말이 그거야!!]

“대본 써서 보낼게요!!!”

[좋아!!!! 방향은 어?! 말 안 해도 알겠지? 나 이 작가 믿어도 되지?!]

“네!!!!! 저만 믿으세요!!!!!!”


모처럼 우진환 PD와 이나리 작가의 마음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운이 좋았던 걸 수도 있으니까, 일단 조금씩만 늘려 보자.’


둘의 속셈은 그랬다. 초심자의 운 같은 게 연기력을 좌지우지하진 않을 테지만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고 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상대는 ‘그 백재열’이다. 함부로 서브남주 같은 걸 권했다가 어느 순간부터 망가지기 시작하면 답도 없다.

우진환은 신중하게 가기로 했다.


“또 찍습니까?”

“아, 아하하, 예. 추가 촬영입니다. 혹시······ 어려우세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건 바로바로 ‘백재열 모르게 박현섭을 서브남주로 만들어 버리기!’였다.

정신 나간 프로젝트명이었지만 원래 드라마판에 오래 있다 보면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는 법.


‘이야 좋다! 좋아! 재열 님 진짜 연기 천재 맞는 것 같은데요? 와, 이 장면에서 감정선을 이렇게 끌고 나갈 줄은, 감동했습니다! 아주 좋아요!’


‘오케이~! 와, 이번 장면도 아주 좋았어요 재열 씨! 빨리빨리 다음 장면 갑시다! 빨리빨리 다음 장면 갑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어? 이 기세로 쭉! 첫방까지 밀고 나가자고요!’


‘하핫! 저희 작가가 재열 님 연기 보고 아주 신이 나서 이렇게 또! 대본을! 아휴, 첫 현장 힘드실 텐데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예. 뭐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 주시고요!’


어쨌거나 그리하여 오늘도 백재열은 대본을 받았다.

왜 자꾸 대본이 들어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마저도 매일 다른 내용이다.

뭔가 캐릭터들의 서사가 진행이 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백재열은 그즈음부터 오해를 시작했다.


‘이게 쪽대본인가? 연주가 그렇게 우는소리를 할 만했군. 이렇게 나눠서 대본을 주면 분석은 어떻게 하고 대사는 또 언제 외우며······ 하아.’


그는 정신이 없었다. 배우들이 조각난 장면을 연기하면, 편집이 그걸 이어붙인다.

편집 과정에서 어색해지지 않기 위해선 감정선이 제대로 이어져 있어야 했다.

그런데 쪽대본은 당장 찍을 장면 하나만 달랑 날아오기에 깊이 분석하기가 어렵다.

배우들이 쪽대본을 싫어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 현장의 대본은 쪽대본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도 시간순으로 이어져 있어서 좀 낫군.’


보통의 쪽대본보다 분량도 많고 날아오는 장면들도 어쩐지 정돈이 되어 있었다.

과거 회상으로 처리될 장면조차도 시간순이었다.

이건 그러니까, 완성된 대본이 있다는 뜻이다.

진짜 쪽대본을 본 적 없는 백재열은 그것도 모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더랬다.


아마 백재열이 조각난 대본 탓에 대사를 틀리거나 감정선을 오독하는 등 자꾸 NG를 냈다면 우진환도 계속 이렇게까지는 안 했을 거다.


‘진짜 천잰가?’


그랬는데 백재열은 박현섭 그 자체였다.

동선 실수는 있어도 대사 실수나 만족스럽지 못한 연기는 없다.

우진환과 키스태프들은 이따금 모여 혀를 내둘렀다.

우진환은 그 정신 나간 프로젝트를 CP와 촬영감독을 비롯한 키스태프, 작가 등 반드시 알아야 하는,

달리 말해 입단속을 철저히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만 공유했었다.

고로 여기 모인 사람은 모두 한패라는 뜻.


“세상 불공평하다는 걸 여기서 또 느낀다.”

“이 바닥이 재능 중요한 거 알고는 있었는데······ 저러면 다 가진 거잖아. 얼굴, 재력, 재능까지. 어휴.”

“연기 이제 막 시작했다는 것도 거짓말 아냐? 성화 회장 손자가 남몰래 연기 배웠다고 하면 쪽팔려서 구라 친 거 아니냐고.”

“누가 그런 구라를 쳐요. 배우 하고 싶었다면서. 진작 그거 어필했으면 이럴 필요도 없었을 텐데.”

“뭐, 재벌가 사정은 또 모르지. 무려 ‘그 성화그룹’인데. 피치 못 할 사정 같은 게 있었을지도 몰라.”


그들은 여태 숱하게 보아 왔던 드라마를 토대로 성화그룹을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연기가 하고 싶다는 백재열,

그런 백재열을 ‘너는 가업을 물려받아야 한다!’ 하고 다그치는 아버지,

가업이 탐이 났던 형은 아버지 몰래 그에게 연기 선생을 소개시켜 주고,

백재열은 드디어 꿈을 펼치게 되는데······.


“야이씨, 이거 완전 드라만데? 드라마 안 나와도 인생이 드라만데?”


그렇겠지. 드라마를 토대로 상상했으니까.


그들은 흥미로운 눈빛을 보내다 삽시간에 흩어졌다.

백재열이 시선을 느끼고 돌아본 까닭이다.


“뭐지?”


그가 의문을 가질 시간은 많지 않았다.


“다음 장면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우진환이 조연출을 재촉해 공지를 때렸으니까.

백재열은 쥐고 있던 대본을 내려놓고 앵글 앞에 섰다.


머리 좋은 건 타고나서 대사는 빠르게 외우고, 박현섭에 자신을 듬뿍 담아내고 있는데 다들 그걸 좋아한다.

연기 선생은 ‘개인적인 경험 속의 감정을 살리는 건 늘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에요.’라고 했다. 다만 그게 필요한 순간이 있고, 가능하다면 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고 덧붙였지.


백재열은 그게 가능한 인간이었다.

수많은 사람과 카메라 앞에서 과거를 생생하게 불러일으킬 줄 알았다.

회귀하며 생긴 무언가인지, 전생에도 있었던 능력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전생의 그도 사업하며 만난 인간들 앞에서 꾸준히 연기를 해 왔으니 어쩌면 후자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계속 서연주 옆에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박현섭으로 분할 준비를 마쳤다.

이가은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박현섭으로.

서연주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백재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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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너 누구랑 사귈 거야 (2) +1 24.09.14 685 33 12쪽
21 너 누구랑 사귈 거야 (1) +1 24.09.13 789 3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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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착각은 재벌 3세도 괴물 배우로 만든다 (2) 24.09.11 842 28 13쪽
18 착각은 재벌 3세도 괴물 배우로 만든다 (1) +1 24.09.10 918 29 11쪽
17 싫은데요 (2) +1 24.09.09 954 33 11쪽
16 싫은데요 (1) 24.09.08 950 31 15쪽
15 고대하던 첫 방송 (2) 24.09.07 971 29 12쪽
14 고대하던 첫 방송 (1) +1 24.09.06 985 33 12쪽
13 한여름의 제작발표회 (2) 24.09.05 987 32 12쪽
12 한여름의 제작발표회 (1) 24.09.04 1,032 30 11쪽
11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4) +1 24.09.03 1,094 28 12쪽
10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3) 24.09.02 1,104 35 11쪽
9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2) 24.09.01 1,139 26 11쪽
8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1) +2 24.08.31 1,236 30 12쪽
7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3) 24.08.30 1,262 36 11쪽
6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2) 24.08.29 1,382 39 13쪽
5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1) 24.08.28 1,501 47 11쪽
»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3) 24.08.27 1,602 43 12쪽
3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2) +1 24.08.26 1,887 46 14쪽
2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1) +2 24.08.26 2,636 52 12쪽
1 이혼 후 전여친을 만났다 +2 24.08.26 3,045 5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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