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담은™ 님의 서재입니다.

후회 안 하는 재벌가 배우님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새글

담은™
작품등록일 :
2024.08.22 14:38
최근연재일 :
2024.09.18 20:2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9,115
추천수 :
853
글자수 :
138,123

작성
24.08.31 20:20
조회
1,236
추천
30
글자
12쪽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1)

DUMMY

그날의 촬영은 캠퍼스 근처의 골목에서 진행됐다.

백재열이 회귀한 직후 맞닥뜨린 광경. 그 장면의 재촬영이었다.

본래 ‘여주가 만난 쓰레기’를 회상할 뿐이었던 장면에 박현섭이 끼어들게 된 것이다.

키스하기 직전에 둘을 갈라놓으려고.

초반부 박현섭의 컨셉, ‘여주를 사랑해서 지켜 주고 싶어 한다’를 살리면서 캐릭터에 임팩트를 주기 위함이었다.


사실 말은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어쩌고저쩌고’ 했지만 백재열이 그걸 연기에 적용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아직은 그랬다.

그래서 그는 평소처럼 연기했다. ‘진심’을 다해서.

내가 10년 동안 애지중지해 온 서연주, 아니 이가은에게 자꾸만 쓰레기가 꼬인다면 어떻겠는가. 열이 뻗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 않겠는가.

남녀가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백재열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가로등 불빛, 따스한 색감의 담벼락, 그 위로 흐드러진 능소화.

그런 아름다운 광경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당장, 이가은에게서 저놈을 떨어트려 놓고 싶었다.


백재열은 그런 마음으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남자의 어깨를 잡아 밀치고, “뭐야?!” 하고 화내는 소리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서연주, 아니 이가은을 바라본다.

시선이 얽히자 분노가 사그라든다. 또다시 슬퍼할 얼굴이 떠올라서. 마음이 미어진다.


“너 진짜, 남자 보는 눈 없다.”


이가은은 그 까만 눈을 마주해 굳었다가 간신히 말을 뱉었다.


“너, 너 어디서 튀어나온, 아, 야!”


그대로 이가은의 손목을 잡고 자리를 벗어나는 것까지가 한 장면.

스무 걸음쯤 걸었나, 그제야 멀리서 컷사인이 들려온다.

신난 목소리의 “오케이!!!”까지.


“혹시 제가 너무 세게 잡았습니까?”

“아, 아뇨. 괜찮아요.”

“비서 부를까요?”

“아하하, 정말 괜찮아요.”


태연하게 손목을 돌리는 서연주다. 백재열은 촬영을 거듭할수록 둘의 사이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설렘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아까만 해도 단둘이 마주 앉아 사이좋게 케이크를 나눠 먹지 않았는가.

요전날 이후 기가 죽은 정윤성은 서연주에게 집적거리길 포기했다. 그래서 둘이 시간을 보내기가 조금 더 쉬워졌다. 핑계는 언제나 대본, 연기, 작품 이야기.


맑게 웃는 낯이 좋았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표정이다.


“······다행입니다.”

“······그, 아, 이번 장면 어렵진 않으셨어요? 아까 말했던 대로 연기한 거예요?”


약간의 어색한 침묵을 털어 버리려는 듯 서연주가 일부러 더 밝게 물었다. 그러면서는 감독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쉽다. 조금만 더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마침 뒷모습을 찍는 거라 카메라도 좀 떨어진 곳에 있었단 말이다.

그러나 아직은 서연주를 붙잡을 명분이 없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저 박현섭의 감정에 공감했을 뿐이에요.”

“······전 사실 재열 씨가 그런 사람일 줄 몰랐어요.”

“음, 그렇습니까?”

“네. 아직 재열 씨를 잘 알진 못하지만, 그래도 연기가 하고 싶다고 소속사를 사고, 바로 작품에 들어오고······ 추진력이 대단해 보이셔서요. 근데 박현섭은 추진력이 좀 아쉬운 인물이잖아요? 10년 동안 한 여자를 짝사랑하면서 아무런 말도 못 했고. 그런 인물에게 공감을 하고, 거기다 겸손하기까지 할 줄은······.”

“그거야, ······겸손, 겸손이요?”


그거 아니라니까 연주야.

해명을 하려던 찰나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 아주! 합이 어? 척척 맞아! 너무 잘 맞는 거 아냐?!”


싱글벙글한 우진환 감독이었다.

그는 요즘 백재열만 촬영장에 나오면 이런 얼굴이 됐다. 그뿐인가, 백재열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서연주의 연기력도 리딩 때보다 더 끌어 올려진 게 보였다. 정윤성이야 영 상태가 이상하지만, 그래도 다그치면 쓸 만한 결과물이 나온다.


“재열 씨 연기가 정말 대단해서 그래요.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따라가게 된다니까요.”

“하핫! 연주 씨가 보기에도 그래? 아니, 내가 보기에도 재열 씨 박력이 아주! 어! 그 연기에서 나오는 박력이 아주 대단하다니까! 연기 처음인 사람 같지가 않아요!”

“아뇨, 연기 처음인 사람 맞습니다.”

“그래, 뭐 본인이 그렇다니 그렇겠지! 하여튼 진짜 대단하다니까!”


백재열은 기분이 썩, 괜찮았다.


슬슬 멀고 멀었던 ‘연기’에 흥미를 붙여 나가고 있던 참이었다.

소속사의 연기 선생과 함께하는 수업도 꽤나 재미있었다.

대본을 분석하고 캐릭터에게 해석이라는 살을 붙인 뒤 표현하는 것. 그 일련의 과정을 익히며 서연주가 어떤 것 때문에 연기에 애정을 가졌을지를 상상했다.

단순히 다른 삶을 살 수 있어서 그랬을까? 캐릭터에 담긴 사회상을 관객들에게 누구보다도 잘 보여 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걸까? 모두에게 주목받는 기분, 그것만은 아니었겠지.


그랬던 와중에 작품의 감독이 모두의 앞에서 대놓고 자신을 칭찬할 지경이 되었다.

스태프들도 인정하는 눈치다. 애초에 연기력이 되지도 않았다면 슬슬 비중이 늘어나고 있진 않았을 거다.

분명 단역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뭐, 그건 중요하지 않다.


연기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서연주처럼 말이다.


백재열의 생각이 너무 길어지기 전, 우진환 감독은 헤벌쭉 웃으며 손에 들린 종이 뭉치를 건넸다.


“하핫······ 이거 작가님이 참, 대본을 너무 빨리 쓰셔서 제본할 시간이 따로 없네. 촬영도 너무 술술 풀리고 있어서 말입니다. 하여튼 오늘 남은 촬영도 잘 부탁드려요~”


우진환은 약삭빠르게 움직여 둘에게서 멀어졌다. 덩치는 곰 같은 인간이 이럴 때만 빨랐다.

5부 대본 일부를 토스하고 나온 그는 또다시 거대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촬영본 잘 나오고 있고, 대본 쭉쭉 뽑히고, 직전 드라마 조기 종영할 분위기에, 9월로 가면 KBC 기획작이 시작한다. 장르가 다르다 해도, 최대한 안 겹치는 게 장땡인데······.’


그 이름하야,

‘우리 드라마 잘 좀 되게 팍팍 밀어줘!’ 프로젝트.


“어, 어. 준비됐어? 나 오늘 촬영 끝나고 올라간다?”


안동에서 서울. 귀중한 휴차날 그 먼 여정을 감행할 정도로 우진환은 진심이었다.

아무리 봐도 잘될 것 같았단 말이다!

나도 입봉 5년 차인데, 이제 좀 대표작 하나 찍고 스타 피디 소리도 들어 봐야지!


그렇게 다음 날 아침, 우진환은 퀭한 얼굴로 아주 오랜만에 SBC 방송국에 출근했다.


“쟤 얼굴이 왜 저래?”

“어우, 깜짝아. 왜 저렇게 웃고 다녀?”

“야, 우 감독! 너 뭔 일 있냐?”

“우 감독, 너 괜찮아? 안색이 말이 아닌데?”

“왜? 나 지금 좋아. 행복해!”


이틀 내리 밤을 새느라 엉망인 꼴에 활짝 웃는 얼굴의 조화는, 드라마 제작국 사무실의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뭐, 뭐야.”


그리고 드라마 제작국 부장 곽동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


우진환은 달랑 노트북 하나 들고 부장실에 쳐들어갔다.


“부장님!”


목소리가 아주 우렁찼다.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던 곽동기가 덜컥 놀라 고개를 들었다.


“뭐, 뭐야.”


그의 꼴도 우진환과 비슷했다. 피로와 번뇌에 찌든 얼굴. 그럴 수밖에 없었다. SBC 드라마 제작국의 위상, 땅에 떨어지다 못해 지구 내핵까지 처박힐 지경이었으니까.

본래 SBC 드라마가 어땠던가. 정기적으로 웰메이드 작품을 내놓아 드라마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특히 황금시간대라고 할 만한 수목 드라마 흥행작에서는 SBC의 드라마가 빠지질 않았다.

50회짜리 장편 사극을 성공시켜 ‘이제 KBC의 사극 시대는 끝났고, 사극은 SBC다’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게 벌써 몇 해 전의 일.

그 대성공이 무색하게 SBC는 최근 괜찮다 싶은 드라마를 내지 못했다.


그나마 잘된 것도 최고 시청률 7% 안팎.

5%도 못 넘기고 종영한 것들이 수두룩하다.


‘이야, 드라마 제작국은 일 참 편하게 하더라~ 예능 애들은 성적 그러면 싹 다 모가지인데~’


그런데 하필 SBC 예능은 연달아 축포를 터트리고 있다.

꼴도 보기 싫은 예능 제작국 부장이 곽동기 앞에서 거들먹대도 곽동기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 참 편하게 하는 건 절대 아니었지만, 이 바닥은 결과로 말하는 법이니까.


“야, 나 머리 아프다. 또 별것도 아닌 걸로 난리 치지 말고 나가 인마.”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 하는 시기가 왔다. 계속 이렇게 제대로 된 매출도 못 내고 돈을 땅바닥에 처박기만 하면 드라마 제작국의 인원 감축도 고려해 봐야 한다는 거다.

국장 부국장, 그리고 부장 곽동기는 합심해서 결론을 내렸다.

돈을 더 쓰자.


그렇게 준비하고 있던 작품이 장르물의 명장, 스타 작가 마혜진의 신작이었다.


“뭐 잘 안 풀리시나 봅니다!”

“안 그래도 대가리 아픈데 너까지 그럴래?! 어?!”


우진환의 말이 맞았다. 기대작이라고 잔뜩 푸쉬할 생각으로 데려왔더니, 작가가 글을 안 쓴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물었더니 영감이 안 온단다. 아니, 대본만 내놓으면 원하는 대로 편성해 주겠다고 했는데 저러는 법이 어딨나!


“이거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걸요?”

“아 뭐, 뭐, 뭐!”


게다가 경쟁사인 KBC는 당장 가을에 기획작을 내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지······.

우진환은 곽동기가 그러거나 말거나 무작정 책상 앞으로 노트북을 들이밀었다.


‘이놈이 원래 이런 놈이 아닌데 뭐야 대체.’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나오니 오히려 궁금해진다. 대체 뭘 가져왔길래 이러는 건지. 평소에는 이런 또라이가 아니었는데.

노트북 속에는 깔끔하게 편집이 끝난 1부의 어느 장면이 담겨 있었다.

키스하려는 남녀 사이에 끼어드는 한 남자. 충혈된 눈으로 화면을 들여다보던 곽동기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 탁탁!


그는 장면이 끝나기 무섭게 키보드를 눌러 앞으로 돌렸다.

다시 똑같은 화면이다. 그 이후로 이어지는 이야기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우진환이 작정하고 찍었는지 영상미도 끝내줬다. ‘청춘’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딱 그런 청량한 분위기. 이따금 튀어나오는 은밀한 감정들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간질간질하게 만들었다.


“이거 뭐냐?”

“저희 드라맙니다.”

“우리한테 이런 게 있었다고??”


곽동기가 노트북에 빨려 들어갈 것 같던 몸을 일으켰다.


“KBC에서 9월에 기획작 낸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거 아시죠?”

“알지! 알아!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내가 아까도 국장님한테 한 소리 들어서 머리가 깨질 뻔, ······!”

“이거 방영 시간대 바꿔 주시죠.”

“뭐?!”

“원래 수목 밤 10시로.”


수목 밤 10시. 부정할 수 없는 드라마의 황금시간대.

KBC 기획작도 그 시간으로 들어갈 게 분명했다. <너와 나의 파레트>는 8월 중순부터 시작하는 12부작 드라마이니 9월 초에 론칭 예정인 KBC 기획작과 겹치지 않을 수 없다.


“너······!”


그런데 우진환은 당당히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 기획작과 붙어 이기고 오겠노라고.


그 자신감의 근거는 콕 짚어 보여 준 장면에 있었다.

정확히는, 그 장면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연기를 선보인 배우, 백재열에게.


“저희 드라마 스케일 별로 안 큽니다. 근데 방금 보셔서 아시겠지만, 시청자의 눈을 끄는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그걸로 뭘 어쩌겠다고. 그 매력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뭘 해 볼 생각인데?”

“이슈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우진환의 PD 인생 중 지금처럼 확신에 차 있던 순간은 없었다.

곽동기는 단단하게 빛나는 눈을 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자신 있냐?”

“저만 믿으십쇼!!”


우진환은 가슴을 탕탕 쳤다.

그 모습이 아주 믿음직스러운 고릴라였다.


작가의말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후회 안 하는 재벌가 배우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작품 제작 후원 명단(24.09.04) 24.09.04 75 0 -
공지 작품명 변경 공지(24.09.11) 24.09.02 73 0 -
공지 연재 주기 및 시간 공지(24.08.30) 24.08.26 627 0 -
26 재벌 3세의 망나니 재벌 연기 (1) NEW 11분 전 25 3 13쪽
25 그 사람은 안 됩니다 (3) 24.09.17 301 18 11쪽
24 그 사람은 안 됩니다 (2) 24.09.16 395 25 11쪽
23 그 사람은 안 됩니다 (1) +1 24.09.15 535 28 12쪽
22 너 누구랑 사귈 거야 (2) +1 24.09.14 685 33 12쪽
21 너 누구랑 사귈 거야 (1) +1 24.09.13 789 30 13쪽
20 착각은 재벌 3세도 괴물 배우로 만든다 (3) 24.09.12 831 30 12쪽
19 착각은 재벌 3세도 괴물 배우로 만든다 (2) 24.09.11 843 28 13쪽
18 착각은 재벌 3세도 괴물 배우로 만든다 (1) +1 24.09.10 918 29 11쪽
17 싫은데요 (2) +1 24.09.09 955 33 11쪽
16 싫은데요 (1) 24.09.08 951 31 15쪽
15 고대하던 첫 방송 (2) 24.09.07 971 29 12쪽
14 고대하던 첫 방송 (1) +1 24.09.06 986 33 12쪽
13 한여름의 제작발표회 (2) 24.09.05 987 32 12쪽
12 한여름의 제작발표회 (1) 24.09.04 1,032 30 11쪽
11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4) +1 24.09.03 1,094 28 12쪽
10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3) 24.09.02 1,105 35 11쪽
9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2) 24.09.01 1,139 26 11쪽
»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1) +2 24.08.31 1,237 30 12쪽
7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3) 24.08.30 1,263 36 11쪽
6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2) 24.08.29 1,383 39 13쪽
5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1) 24.08.28 1,502 47 11쪽
4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3) 24.08.27 1,602 43 12쪽
3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2) +1 24.08.26 1,888 46 14쪽
2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1) +2 24.08.26 2,638 52 12쪽
1 이혼 후 전여친을 만났다 +2 24.08.26 3,048 59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