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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 님의 서재입니다.

후회 안 하는 재벌가 배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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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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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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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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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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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제작발표회 (2)

DUMMY

다시 제작발표회 현장.

포토타임이 종료된 이후.

무대에 설치된 커다란 스크린에 하이라이트 영상 재생이 한창이다.

25년 뒤의 미래를 살았던 백재열의 눈으로 보기엔 살짝 촌스러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지금 방영 중인 드라마와 비교하면 손색이 없었다.


간단한 캐릭터 소개 후에 이어지는 건 발랄한 대학 캠퍼스의 정경.

드라마의 분위기에 맞춰 화창하게 보정된 화면이 이어진다.

하이라이트 영상의 지분을 가장 많이 차지한 건 역시나 이가은, 그러니까 서연주였다.

백재열은 자리에 앉아 영상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봤다.


다시 생각해도 서연주를 상큼발랄한 대학생으로 캐스팅할 생각을 하다니. 캐스팅 디렉터가 뭘 좀 아는 사람인 게 틀림없다.

그래. 아무래도 이거 블루레이 감독판 제작도 추진해야겠다.

시청률이 중요한가. 나한텐 돈이 있다. 이걸 가져야겠다. 가져서 서재에 꽂아 넣고, 아, 그러고 보니 집에 홈시어터가 없었던 것 같은데. 당장 설치하라고 해야겠군.


활기찬 이가은을 따라 진행되는 영상 속에서는 두 남자가 연달아 등장했다.

대놓고 들이대지만 진심인지 알 수가 없는 도준우와,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조금 다른 얼굴을 한 박현섭.


애정 공세를 벌이던 그들은 결국엔 이가은을 사이에 둔 기 싸움에 다다르고 만다.


- 그, 두 사람, ······.

- 어쩌나, 가은인 나랑 같이 가기로 했는데.

- 아뇨, 착각이시겠죠. 저랑 약속했거든요.

- 아니 두 사람 잠깐만, ······.

- 망상이 심하네. 10년 소꿉친구라더니, 속이 시꺼매서 어떡해.

- 속 시꺼먼 건 그쪽이죠. 그 손 놓으세요.

- 저기, 저기요?

- 너부터 놔.

- 아니, 너부터 놓으시라고요.

- 뭐? 너 지금 선배한테 너라고 했냐?

- 저기???

- 왜, 그럼 안 돼? 선배도 선배 자격이 있어야, ······.

- 저기요!!!!!!!


우렁차게 고함을 지르며 잡힌 두 손을 팍 빼내는 이가은.

씩씩거리며 두 사람을 노려보다가,


- 나 혼자 갈 거야!


홱, 몸을 돌린다.


- 뭐? 가은아?

- 아이씨, 미안, 미안해! 같이 가!


뒤를 졸졸 따라가는 두 남자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기껏해야 20대 초중반. 그 나이대라서 유치한 모습도 웃어넘길 수 있다. 사랑에 끙끙 앓는 모습도 풋풋하게만 포장된다.


- 이젠 그냥 연애가 싫다가도, 다시 또 마음이 가 버리고 만다.


이가은의 내레이션으로 하이라이트 영상은 끝에 다다랐다.

우진환은 이번 제작발표회로 재벌 3세의 압박이니 뭐니 하는 논란을 종식시키고 싶었다.


-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이 장면을 영상에 막바지에 넣은 건 그런 까닭이다.

백재열이 최근 최고의 연기를 보여 줬던 그 장면.

우진환을 우릴라로 만들어 버렸던 그 장면.


- 내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이가은의 내레이션이 다시 한번 홀을 울리고 영상이 끝이 났다.

그때까지도 주변은 고요했다.

백재열은 느긋하게 시선을 돌려 기자들의 얼굴을 보았다.


제작발표회며 하이라이트 영상을 몇십 개, 몇백 개는 봤을 그들.

처음엔 분명 심드렁한 표정들이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백재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들. 노트북을 정신없이 두드리는 타이핑 소리. 자기도 모르게 한 번씩 터지는 셔터음. 무어라 속닥거리는 입들.


“저거 백재열 맞아? 대역 쓴 거 아냐?”

“선배, 저게 액션도 아니고 대역은 무슨 대역이에요.”

“야, 요즘 기술의 발달이 아주 대단하다. 너 이거 또 모를 일이야.”

“차라리 AI 아니냐고 묻지 그래요 왜.”

“그래, AI. AI 아냐? 저걸 백재열이 했다고? 연기 처음이라는 사람이? 기자 인생 10년이 넘었는데 나 저런 건 본 적이 없어. 저게 말이 돼?”


거기 담긴 건 경악에 가까운 감탄이었다.

편집과 보정으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그들은 아니까.

드라마를 가볍게 보는 사람들이야 얕은 수로 속여 넘길 수 있어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하이라이트 영상에서의 백재열은 그런 연기를 보여 줬다.


‘이번 영상으로 싸그리 정리될 겁니다. 저만 믿으세요!!’


우진환의 큰소리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영상의 완성도도 훌륭했고 무엇보다 백재열의 다양한 연기가 담겨 있었다.

백재열을 연기 천재처럼 만들어 놨다는 소리다.


그는 그게 싫지 않았다.

솔직히 정윤성 그놈이 영상에 아예 안 나왔다면, 서연주랑 둘이 데이트하는 영상 같고 좋았긴 했겠지만······ 자중하자. 이건 정윤성이 남자주인공인 드라마니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서연주랑 다시 로맨스 찍어야지. 그리고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블루레이 확장판을 만들어 소장하는 거다. 굿즈도 좋겠지. 협찬은 내가 직접 맡아서 진행하면 된다. 서연주에게 어울릴 만한 최상의 명품들로.

······서연주만 괜찮다면.


“자, 그럼 질문 하나씩 받겠습니다. 네, 저쪽 앉아 계신 기자님.”

“백재열 배우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캐스팅 당시에는 백재열 씨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요. 캐스팅에 얽힌 비화 있으면 들려주시겠습니까?”

“백재열 배우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박현섭이라는 캐릭터에 관해 이야기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백재열 배우님께 질문 ······.”

“백재열 배우님 ······.”

“백재열 ······.”


백재열이 서연주를 오래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질문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기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만 질문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이런 류의 기자회견은 처음이지 않나. 진행 순서도 구성 인원도 모든 것이 새로웠다.


‘기자가 굉장히 많긴 할 텐데,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보통은 질문이 다 정해져 있어요.’


그런 안내를 듣긴 했다. 그래도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일이 언제나 ‘합의된’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그래서 백재열은 자신을 자극할 만한 질문이 나오길 바랐다.

재벌 3세의 재력과 위치를 이용한 외압이 있었느냐, 연기를 제대로 할 줄은 아느냐, 저것도 다 CG 아니냐,

그러니까 ‘너 낙하산 아니냐’ 뭐 그런 질문.


“그건 저도 감독님께 여쭈고 싶었습니다. 어째서 ······.”

“케미는 정말 좋다고 자부합니다. 촬영 중에도 ······ 서연주 선배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겠죠?”

“<너와 나의 파레트>는 ······.”


그랬는데 영 심심했다.

슬쩍 기자들 분위기 살펴보니, 다들 뭔가 건덕지는 잡고 싶은데 후환이 두려운 모양이었다.

자꾸만 서로를 힐끔거리고 백재열이 무난한 대답을 내놓거나 센스 있게 다른 사람에게로 답변을 넘길 때 아쉬워하는 얼굴들이 딱 그런 모양새였다.

누가 안 나서 주나, 분위기나 살피고 있는 거겠지.

이해한다. 누가 감히 성화그룹 회장 손자를 상대로 그럴 수 있겠는가.


“캐릭터 해석에는 서연주 선배님이 정말 많은 도움 주셨습니다.”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만 좋은 선후배 사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촬영장에 나가 있을 땐 다른 선배님들께서 어떻게 연기하시는지 꼭 봤는데요. 특히 저와 가장 많은 촬영을 진행했던 서연주 선배님의 연기는 정말이지······ 말로 다 할 수가 없네요. 드라마에서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네, 서연주 선배님 덕입니다.”


그게 좀 아쉽긴 해도 백재열은 슬슬 서연주 찬양에 여념이 없었다.

몇몇 질문은 자연스럽게 넘겼지만, 몇몇 질문에는 마이크를 제대로 잡고 서연주 찬양을 늘어놓았다.

지금 온 시선이 백재열에게 쏠려 있을 때다. 백재열은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보단 서연주가 유명해지는 일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인기와 유명세는 작품의 선택지를 늘려 주니까. 서연주가 좀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더 좋은 작품에 들어갔으면 해서. 오로지 그 이유 때문에.

기자들이 백재열이라는 재벌 3세 배우를 보러 왔다면, 나갈 땐 서연주의 이름이 머릿속에 박혀 있길 바랐다.


“왜 저래?”

“뻔하지. 같은 소속사잖아. 밀어주는 거 아냐?”

“아니, 그렇다기엔 너무 진심인데?”

“야, 저것마저도 연기면 천재 인정한다.”

“근데 하이라이트 보니까 서연주도 연기 잘하긴 하던만.”

“아, 솔직히 로코에서 여주가 연기 못 하면 남주들도 다 죽지. 백재열, 정윤성 다 살아 있었잖아.”

“그건 또 그렇긴 해. 서연주가 주연을 못 해 봤지 연기를 못하는 건 아니지.”

“그래, 그거 알지. 근데 왜 지 얘길 안 하냐고.”

“내 말이.”


백재열의 의도는 훌륭하게 먹혀들어 갔다.

가끔은 돌려 말하는 것도 필요한 법이나 이런 때에는 확실히, 직설적으로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바로 옆에 앉은 서연주는 겸손한 배우의 표본 그 자체를 보여 주고 있어 백재열의 말은 꼭 농담처럼도 들렸다. 친한 사이에 칠 수 있는 농담. 딱딱한 제작발표회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풀어 주는 농담.

그러면서도, 기자들이 서연주의 연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농담.


질문 타임은 시종일관 그런 분위기를 유지하며 마무리될 듯했다.

더 큰 이슈를 바라고 온 기자들은 별 소득 없이 돌아가게 되리라.

여태껏, 감히 총대를 메고 자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자 그럼 이제 슬슬 마지막 질문 받아 보겠습니다. 네, 기자분 말씀해 주세요.”


그쯤 되니 기자들도 슬슬 포기한 분위기였다. 여느 때와 같은 식의 기사나 내고 말아야지. 싶었던 그 참에.

한 기자가 마이크를 쥐고 일어났다.


“데일리엔터 홍규식 기자입니다. 백재열 배우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백재열 배우님은, 왜 배우가 되고 싶으셨나요?”


백재열은 그 기자의 눈을 보고 그게 비아냥이 아님을 알았다.

왜 배우가 되고 싶었느냐고.


곁에 앉은 서연주가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백재열은 이 순간만큼은 재지 않고 솔직해지기로 했다.


“배우라는 직업의 의미는 모든 배우들에게 다 다를 겁니다. 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본 속 배역을 분석하고 연기할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 천편일률적일 수 없겠죠. 저는 그걸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배우분들이 어떤 심정으로 연기를 하시는지요. 연기가 어째서 그들에게 그토록 아름다운 예술일 수 있는지요.”


그리고, 어째서 그게 너를 죽이고 살렸는지.


“아마 앞으로 저의 연기는, 이해의 과정일 겁니다.”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 나가는 이해의 과정.

백재열은 옆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 순간 서연주를 본다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스캔들은 여배우에게 치명적이다. 서연주가 이제 막 높은 곳으로 발돋움하고 있을 때, 발목 잡아 끌어내리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 짝······ 짝······ 짝짝······ 짝짝짝짝······


뭐야?


고개 돌렸더니 이나리 작가와 우진환 감독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물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서연주는 기꺼이, 정윤성은 마지못해 거기 동참했다.

고요했던 회장이 곧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몇몇 기자들은 꼭 꿈이라도 꾼 것 같은 기분으로 노트북을 두드렸다.


[‘너와 나의 파레트’ 제작발표회, 백재열 “연기는 이해의 과정”... 참배우의 모습 보았다]


모두가 기다렸던 제작발표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작가의말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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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너 누구랑 사귈 거야 (1) +1 24.09.13 789 3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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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착각은 재벌 3세도 괴물 배우로 만든다 (2) 24.09.11 843 2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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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의 제작발표회 (2) 24.09.05 988 3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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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2) 24.09.01 1,139 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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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2) +1 24.08.26 1,888 46 14쪽
2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1) +2 24.08.26 2,638 5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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