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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 님의 서재입니다.

후회 안 하는 재벌가 배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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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
작품등록일 :
2024.08.2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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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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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3)

DUMMY

근래 백재열은 유독 부드러워진 바다액터스의 분위기를 느꼈다. 연기 수업을 받기 위해 회사에 드나들었던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닌데 말이다. 웃으며 인사하는 직원, 먼저 다가와 요즘 촬영은 어떠냐고 묻는 직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시라는 직원.

전에는 어려워하더니 자주 봤다고 익숙해졌나. 백재열이 고민할 일은 아니었으므로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실제로 그들에게 백재열이 익숙해진 까닭도 조금은 있긴 했다.


‘우리 회사를 먹여 살릴 배우!’

‘우리 회사에 떨어진 하늘의 은총!’

‘대표님이 더 잘해 주랬다. 회사에 정 붙이게!’

‘다른 회사로 절대 못 가게 해! 무조건 잘해 줘!’


이런 속셈이 굉장한 비중을 차지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백재열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와, 이게 다 뭐예요?”

“요즘 한창 덥다고 재열 씨가 보낸 거래요.”

“메뉴 미쳤다······ 뭐가 이렇게 많아요?”

“이거 트럭도 좀, 평소에 오는 간식차보다 더 커 보이지 않아요?”

“저 근데 저 아이스박스들은 뭔가요?”

“저거 다 물이래. 탈수 오면 음료 말고 물 마셔야 되잖아. 그니까 물도 많이 갖다 놓은 거지.”

“헐······.”

“세심함 미쳤다.”

“돈이 진짜 좋긴 좋구나······.”

“재벌들은 원래 이런 데 돈 잘 안 쓰지 않나? 있는 놈들이 더한다는 말도 있는데 이야······.”

“와, 나 무슨 간식차에 백제호텔 케이크 들어 있는 거 처음 봐.”


그에게는 촬영장이 중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연주와 함께하는 촬영장이 중요했다.

땡볕 더위에 야외 촬영하다 쓰러지는 스태프가 하나라도 생겨 봐라. 바로 촬영에 지장이 생긴다. 서연주가 들어간 드라마는 그래서는 안 됐다. 아무런 문제 없이, 모두가 의욕적으로 촬영에 임해야 했다.

서연주의 첫 주연 작품이 성황리에 막을 내릴 수 있도록.

그래서 준비했다. 엄청나게 호화스러운 간식차를.


“재열 씨 잘 먹을게요!”

“미쳤다! 저 백제호텔 케이크 처음 먹어 봐요!”

“진짜 감사해요!”

“누가 재열 씨한테 뭐라고 하면 바로 나한테 와! 어?! 내가 가만 안 둘라니까!”


그런 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백재열에게 한 번 더 반했다.

재벌이 낙하산으로 들어와서 드라마를 망친다고 흰 눈으로 보던 사람들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이건 백재열이 돈을 썼기 때문만은 아니다. 증명했기 때문이다. 낙하산이 아니라, 배우임을 증명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돈이 무진장 많은’ 배우임을 보여 준 거다.

돈이 무진장 많으면서 베풀 땐 확실히 베푸는 배우. 그런 배우와 함께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한마디씩 던지는 사람들에게 웃어 주었다. 오늘 촬영은 평소보다 더 순조롭겠군. 의도한 대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사람의 의욕을 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촬영장에서 힘날 때? 촬영 잘 풀릴 때지. 촬영 잘 풀려서 예정보다 빨리 퇴근할 때. 그리고 또······.’


“어? 저게 다 뭐예요?”


‘맛있는 거 먹을 때.’


서연주의 의욕을 사는 방법이라고 해도 좋겠다.

간식차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서연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연주 씨 이제 왔어?! 와서 하나라도 먹어 봐! 케이크 진짜 맛있어!”

“망고 케이크가 일품입니다.”


간식차와 함께 동원된 일꾼들이 간이 테이블을 잔뜩 설치해 둔 현장.

잽싸게 자리 잡고 디저트를 즐기는 사람들.

먹고 나면 든든한 얼굴로 다시 촬영 준비를 위해 떠난다. 테이블 회전율이 엄청난 야외 카페 같은 광경이었다.


그 어지러운 현장 속에서 백재열이 서연주를 이끌었다. 비교적 한적한 자리로. 그 테이블 위에는 이미 먹음직스러운 망고 케이크와 아메리카노가 놓여 있었다.


“이거 재열 씨가 보낸 거예요?”

“예. 다들 먹고 힘냈으면 해서요. 다음엔 밥차도 생각 중입니다. 좋아하는 메뉴 있으십니까?”

“좋아하는, 좋아하는 거······ 아니, 이게 아니지.”


포크를 들었던 서연주가 그대로 백재열을 바라본다.

아직 상황이 다 이해가 되지 않은 얼굴이 퍽 귀엽다. 케이크를 먹으면서 오물거리면 더 귀여울 텐데. 왜 얼른 안 먹지?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죠. 아니, 그런데 간식차를 이렇게 호화스럽게 보내는 사람이 어딨, ······.”


‘그렇지.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백재열’이지.’ 하고 깨달은 눈치다.

하여간 얼른 케이크를 먹어 줬으면 좋겠는데. 전생에서도 서연주는 저걸 정말 좋아했다. 과일 중에는 망고, 케이크 중에는 망고 케이크. 망고의 계절이 오면 벌써부터 행복해하던 게 선연했다.


“······고마워요. 다들 좋아하는 것 봐. 조명 감독님 저렇게 신나신 거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선배님은 안 좋으세요? 케이크 별로 안 좋아하시나 봅니다.”

“아, 아뇨. 좋아해요.”


순간 서연주와 백재열의 눈이 마주쳤다.

둘 다 황급히 시선을 피한다.


“마, 망고 케이크 좋아한다구요.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맛있겠다.”


그러더니 포크를 들고 푹, 케이크를 찍는 서연주다.

음미하듯 천천히 움직이는 입술, 밝은 빛이 들어차는 눈동자, 행복으로 부푸는 뺨.

······그걸 보려고 한 건데, ‘좋아해요’ 소리에 심장이 정신없이 뛰어서 똑바로 못 보겠다.

백재열은 물을 들이켰다. 서연주가 자신의 표정을 보지 못했음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맛있다. 진짜 맛있다······.”


천천히 눈을 굴리면 케이크가 벌써 절반은 사라졌다. 백재열은 남몰래 조금 웃었다. 아주 보람찼다. 평생 망고 케이크만 먹여 주고 싶을 만큼.


“더 드시고 싶으시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럼 혹시, 촬영 끝나고······.”

“챙겨 드릴까요?”

“······부탁드려도 돼요?”


그럴 줄 알고 이미 한 상자 따로 빼놓으라고 했다. 눈 깜빡이는 서연주를 보며 백재열은 웃었다.

이러고 있으니 꼭 이 테이블만 따로 떨어진 세상 같다.

파라솔의 그늘 아래서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일하러 온 것 같지도 않고.

연애할 때는 기자들 조심한다고 늘 밤에, 실내에서만 만났었는데.

물론 지금도 조심해야 하는 건 맞다. 촬영장에 보는 눈이 얼마나 많은데, 스캔들 조심해야지.

그래도······ 지금은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다.


“재열 씨는 안 먹어요?”

“저는 아까 먹었습니다.”

“좀 더 먹지. 아, 몸 관리 중이에요?”

“그런 건 아니고요. 아니, 꾸준히 하는 중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아까 먹었습니다.”

“같이 먹으면 더 좋을 텐데, 어쩔 수 없, ······.”

“하나 더 가져올게요. 잠시만요.”

“······?”


잠시 뒤 돌아온 백재열은 한 손에는 케이크를, 다른 한 손에는 대본을 들고 있었다.

서연주는 대본을 힐끔하며 조금 안도했다.


‘오늘 잘해 준 것도 뭐 물어보려는 거였구나. 그래, 선배한테 잘 보이고 싶은 건 신인이면 다 똑같으니까. 착각하지 말고, 정신 차리자 서연주!’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졌다. 언제나처럼 백재열의 질문은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와 맞닿아 있었다. 서연주가 보기에 그의 분석 능력은 처음부터 특출났다. 그러나 분석과 표현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연습하면 얼굴의 미세 근육까지 마음대로 움직여 표정에 차이를 둘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런 걸 조언이랍시고 해 줄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서연주는 오늘도 기본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오늘 촬영하는 장면에서는 특히 박현섭의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해요. 사실 대사만 봐도, 박현섭이 이가은의 전남자친구들을 꿰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렇죠. 잘 알고 있는 게 아닌 이상 할 수 없는 말이니까요.”

“음, 그러니까 감정선은 재열 씨가 분석해 온 대로 가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안타깝고, 밉고, 화가 나지만 그게 이가은을 향한 분노는 아니고, 그보다 자기가 더 마음이 아픈······. 정말 복합적인 감정이네요.”

“선배님은 그런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실 때 어떻게 하십니까?”

“음······.”


서연주는 잠시 말을 골랐다. 인간의 감정은 언제나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 몸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표현해 내는가. 그건 배우들의 평생 숙제나 다름이 없었다.


“중요한 건 감정이잖아요? 자기만 잔뜩 느끼는 게 아니라, 상대도 느끼게 해 줘야 하는 거죠. 아마 진실성이 귀중한 가치라는 건 선생님께서 이미 말해 주셨을 거예요. 그럴 수 있도록, 저는 무엇보다 그 배역을 진실하게 대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결국엔······ 표현 그 자체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이군요. 맡은 배역뿐만이 아니라, 상대역의 감정까지 느끼면서요.”

“그렇죠, 표현에 집착하지 말고······ 어, 네?”

“네?”

“아니, 방금 뭐라고······.”


‘상대역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해야 돼.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상호작용하면서 감정을 주고받는 거.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걸 우리는 의식적으로 하는 거야.’


“······ 이런 뜻이었습니다만.”

“그렇, 그렇네요. 맞아. 그걸 의식적으로 할 수 있다면······.”


서연주는 감명받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백재열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 이야기는 전생의 서연주가 해 줬던 이야기기 때문이다. 문득 떠올라서 공감받을 줄 알고 내뱉었는데, 반응이 왜 저렇지?

······설마.


“재열 씨.”

“······예?”

“연기, 정말······ 처음인 거죠?”

“예, 그렇습니다.”


백재열은 직감했다. 내 말을 안 믿고 있다, 서연주가.

마주친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서연주가 대충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저런 생각까지 하고, 실제로 상대 배우의 감정까지 살피려고 했어. 그래, 그런 연기를 보여 줬던 사람이, 연기가 처음일 리가.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거야. 말 뒤에는 항상 숨겨진 감정이나 서사가 있는데.’


“정말 처음입니다.”


그거 아니야 연주야.


“네, 알겠어요.”

“정말, 정말입니다.”


아니라니까 연주야.


“믿어요. 아, 시간 다 됐다.”


서연주는 그새 케이크 하나를 다 먹고 몸을 일으켰다.


“먼저 들어가서 대본 좀 보고 있을게요. 재열 씨는 천천히 와요.”

“아니, 선배님, 저 정말 처음입니다.”

“믿는다니까요.”


하나도 믿지 않는 눈으로 웃고 있으면서.

백재열은 허망한 기분으로 테이블에 남겨졌다.

전생의 서연주가 했던 이야기를 서연주 본인에게 돌려주었을 뿐인데.


“재열 씨 슬슬 분장해 드릴게요~”

“······예. 갑니다.”


아무래도 이상한 오해를 사게 된 것 같다.



작가의말

익일 연재분부터는 당분간 20시 20분에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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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3) 24.09.02 1,103 35 11쪽
9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2) 24.09.01 1,138 26 11쪽
8 니네 드라마엔 백재열 없지? 우린 있음 (1) +2 24.08.31 1,236 30 12쪽
»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3) 24.08.30 1,262 36 11쪽
6 재벌 3세 낙하산? 혹은 천재 배우 (2) 24.08.29 1,381 3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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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2) +1 24.08.26 1,883 46 14쪽
2 재벌이 사랑하면 답도 없다 (1) +2 24.08.26 2,632 5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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