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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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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otoxin
작품등록일 :
2015.04.05 21:01
최근연재일 :
2015.05.09 21:33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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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6
추천수 :
60
글자수 :
99,831

작성
15.05.05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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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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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7쪽

휴식

.




DUMMY

26. 휴식


신 경위는 무사히 퇴원을 했고 시체는 강진태의 손에 넘어갔다. 강진태는 어째서인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나 때문에 아끼는 부하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게 어떤 연락이나 위협조차 가하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의 보복이 두려워 집 밖에도 쉽게 나가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 조금씩 긴장이 풀려 이제는 마음 놓고 일상 생활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경찰들도 내게 몇 번 중요 참고인으로써 조사를 한 뒤에는, 별다른 의심 없이 내게 관심을 거두었다. 조사받는 도중 이도형의 살해를 자백할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 같아서 금방 포기했다.


이우혁은 강진태가 시체를 받고 난 뒤에 조용히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큰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목격자가 적다는 이유 때문인지 완벽한 언론통제가 이루어져 세간에서는 전혀 알 방법이 없을 정도였다. 그에 대해 내가 난색을 표하자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한국에서는 안 되는 것이란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는 뒤이어 아직은 정비를 하느라 쉽게 움직이지 못하지만 조만간 자신과 알력다툼을 하려 들 것이며 그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나에게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이다.


일이 일단락 되고 나자, 나는 수진이와 만나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걱정하고 함께 대책을 마련하는 이야기를 주로 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긴장감이 사라지고 평화에 길들여졌다. 우리의 만남은 점점 데이트의 형식으로 변해갔다. 이래도 되는 걸까?


“지호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해요?”


수진이와 함께 가로수 길을 걷고 있는 도중에 너무 나만의 생각에 빠졌나 보다. 그녀는 걱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이대로 살아도 되나 싶어서….”


“아직도 자백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에요?”


“글쎄요, 이제 잘 모르겠어요. 저는 분명 사람을 죽였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의 자수로 인해 강진태까지 법의 심판을 받게 한다면 더 바랄게 없죠. 그게 가장 옳은 길인 것 같아요. 하지만….”


“하지만?”


“지금 이렇게 수진씨랑 같이 있는 순간만큼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어느새 조심스럽게 겹쳐진 손가락 마디들은 전기가 흐르는 듯 짜릿했다. 가녀린 그녀의 손가락이 혹시라도 부서질까 손바닥을 마주 대고 힘을 주어 잡지도 못한 채,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보일 듯 말 듯 한 모나리자보다 신비한 그녀의 미소 속에서 투명한 갈색 눈은 빨려 들어갈 듯 매혹적이었다. 살짝 기운 그녀의 머리에서 아스라히 벚꽃 향기가 풍겨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피 냄새에 가려진 나의 마음이 이제서야 고개를 들고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 어쩌면 이것은 단지 고난과 역경을 함께 겪어온 사람간의 신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연애를 많이 해보지도 않은 내가 내 마음을 착각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아니, 어쩌면 목숨까지 위협받은 상황에서 내게 신경을 써주고 나를 위해주는 이성에게 마음이 간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녀에게 호감이 가는 것은 이상하지 않으나 이것이 일시적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는다. 하지만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미친 듯이 밖으로 나가려는 나의 심장은, 이 감정이 진짜라고 내게 말해주고 있다.


내 마음은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은 어떨까?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수진씨.”


“네, 지호씨.”


“혹시… 저 사랑해요?”


“네?”


“저 사랑하냐고요.”


“풉!”


엥?


“푸하하하!”


그녀가 갑자기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대체 왜지…?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진지하게 물어본 건데 어째서 그녀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웃는 것일까?


“저기, 수진씨.”


“지호씨, 연애 별로 안 해봤죠?”


“아니, 그게….”


“세상에 다짜고짜 자기 사랑하냐고 묻는 남자가 어디 있어요? 지호씨 진짜 고백 멋없게 한다.”


“아, 미안해요. 제가 너무 제 생각만 하느라….”


“사랑해요.”


“네?”


“저도 지호씨 사랑해요.”


수진이는 장난끼 가득하지만 포근한 미소로 내게 사랑을 말했다. 처음엔 내가 잘 못 들은 줄만 알았다. 내가 그녀에게 다시 되물으려 할 때, 그녀의 입술이 내 입을 막았다. 진한 벚꽃 향이 내 몸을 감싸고 눈 앞이 흐릿해졌지만 의식만은 분명하게 그녀의 입술의 촉감을 느끼고 있었다.


너무나 짧았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과일을 몰래 한 입 베어먹은 듯한 아쉬움에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는 그런 나를 달래는 듯이 내 뺨을 쓰다듬었다.


“지호씨, 사랑해요. 하지만 지호씨도 알다시피, 우리에게는 끝내야 할 일이 있어요. 아직은 강진태가 수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다시 전면에 나서서 LJ그룹을 차지하려 한다면 우린 언젠가 그에게 제거당할 거에요.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약점이 될 테니까요. 나는요 지호씨, 지호씨랑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어요. 마치 지호씨는 그 동안 제가 겪은 고통을 모두 보상해주러 온 것만 같아요. 처음부터 그랬어요. 그 지옥 같은 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고, 이대로 모든 것을 지호씨에게 고백해서 날 데리고 도망쳐달라고도 하고 싶었어요.”


“지호씨한테 폐만 끼치는 것 같아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요. 근데 이제 그런 생각 안 할래요. 지호씨가 나를 위해 희생했던 것만큼, 나도 지호씨를 위해 노력할거에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 옆에 있을 거라고 약속해줘요.”


“약속해요 수진씨. 수진 씨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게요.”


가슴이 행복으로 벅차 올랐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것이 헛수고가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수진이의 행복을 위해 종잇장만큼이나마 도움이 됐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분명한 목표가 생겼다. 나의 유죄를 입증함과 동시에 수진이를 모든 위협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이다. 그녀를 지킬 것이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역시 시체를 다시 찾아오는 게 먼저겠죠?”


“네, 하지만 섣불리 움직이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일단 지금은 기다리는 게 좋아요. 오빠도 나름대로 시체의 행방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아마 조만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을 거에요. 다만, 제가 짐작 가는 곳이 있기는 해요.”


“그게 어디죠?”


“한남동에 있는 강진태의 자택 지하실이에요. 제가 말했던 콜렉션이 다 그 곳에 있거든요. 만약 강진태가 아직 절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 콜렉션들은 그 곳에 있을 거에요. 그 곳에 잠입할 수 만 있다면 시체를 확인할 수 있겠죠.”


강진태의 집이라…. 굉장히 위험 부담이 큰 일이다. 하지만 이번 일만 성공한다면, 강진태의 날개를 꺾을 수 있다. 그녀는 더 이상 위협을 받지 않아도 된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강진태의 지하실을 확인하리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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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발악 +2 15.05.09 259 2 11쪽
» 휴식 15.05.05 211 3 7쪽
20 지옥 15.05.03 151 4 13쪽
19 거래 15.05.02 149 3 16쪽
18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15.05.01 150 2 7쪽
17 갈등 15.04.29 130 4 9쪽
16 결투 15.04.28 169 1 10쪽
15 해결책 15.04.27 134 2 8쪽
14 이판사판 15.04.26 254 2 8쪽
13 시체 +4 15.04.22 214 3 8쪽
12 트라우마 15.04.18 187 2 8쪽
11 진실 15.04.17 205 3 8쪽
10 재회 15.04.16 282 2 9쪽
9 계략 15.04.15 228 2 8쪽
8 다시 전장으로 15.04.12 272 2 11쪽
7 만남 +1 15.04.11 333 1 13쪽
6 협박 15.04.10 281 2 16쪽
5 검은 양복 +2 15.04.09 518 7 9쪽
4 그림자 +1 15.04.08 266 3 11쪽
3 추적 15.04.07 291 3 12쪽
2 자백 +1 15.04.06 310 3 12쪽
1 기억 15.04.05 341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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