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co******* 님의 서재입니다.

유죄의 비망록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일반소설

conotoxin
작품등록일 :
2015.04.05 21:01
최근연재일 :
2015.05.09 21:33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5,346
추천수 :
60
글자수 :
99,831

작성
15.04.16 22:25
조회
282
추천
2
글자
9쪽

재회

.




DUMMY

15. 재회


“이우혁입니다. 통화 괜찮은지요.”


“네, 괜찮습니다.”


“지금 만납시다. 수진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쪽으로 제 사람들을 보내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집으로 오는 것은 좀 그래요. 부모님은 이 사건을 모르시거든요. 집 앞에 공원이 하나 있습니다. 공원 중앙 분수대에서 만나죠.”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곧바로 집을 나섰다. 드디어 수진이를 만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앞으로의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더 컸다. 수진이도 나를 걱정했을까? 그 동안 험한 꼴을 당한 건 아닐까?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지호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신 경위가 보였다. 그의 발 밑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별 일 없었냐.”


“네, 경위님. 며칠 전에 봐 놓고 어쩐 일이세요.”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다. 니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가 있어. 경찰본부에서도 이 단서로 인해 움직일 거다. 일단 어디 좀 들어가서 얘기하자.”


수상하다. 신 경위는 항상 마이페이스인 사람이다. 할 말이 있으면 주로 전화로 하거나 나에게 직접 오라고 했었는데, 이번엔 아무런 기별도 없이 집 앞까지 찾아왔다, 게다가 발 밑의 꽁초를 보면 여간 오래 기다린 게 아니다.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이 들자 자연스레 경계심이 생겼다.


“경위님, 제가 지금 약속이 있어서….”


“약속? 지금 네 상황에 이 사건보다 더 중요한 약속이 있다는거냐?”


그는 미소를 지우고 조금은 성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태도에 불신은 점점 더 강해졌지만 워낙 불 같은 사람이라 쉽게 내색을 낼 수 없었다.


“저한테도 사생활이란 게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좀 그래서… 다음에 얘기하면 안될까요?”


“급한 얘기야.”


“그럼 걸어가면서 얘기하죠.”


신 경위는 당황한 듯 보였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좀 전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니가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다음에 다시 연락하마. 몸조심하고.”


의외로 신 경위는 순순히 물러났다. 어쩌면 정말 중요한 얘기를 하려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지금 수진이를 만나는 게 먼저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경찰의 힘을 빌리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수진이의 얼굴을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원에는 사람이 많았다. 어느 새 나무에는 새파란 잎들이 돋아나고 꽃들도 각자의 색을 뽐내며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내가 있었던 어두운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풍경에 나는 잠시 취한 듯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었는데 그들의 웃음소리가 부러움과 질투심을 동시에 야기하고 있었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아무런 걱정 없이 따뜻한 봄 햇살을 느끼며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는데….


얼마나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평화로운 공원의 분위기를 잡아 찢듯이 검은 양복들이 나타났다. 새하얀 분수대와 극한 대조를 이루는 그 집단을 보자 사람들은 쭈뼛쭈뼛 자리를 피해, 마치 인간으로 이루어진 홍해가 갈라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들은 곧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느끼며 잠시 감상에 젖어있던 소소한 기쁨을 포기한 채, 그들을 맞이했다.


“이사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검은 양복들은 말을 마치자마자 뒤돌아 왔던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통수가 따가울 정도로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그들과 약간의 거리를 둔 채 따라갔다. 공원 입구의 차도에는 검은색 세단이 여러 대 세워져 있었다.


검은 양복들은 그 중 하나를 가리키며 나에게 탈 것을 지시했고, 그들의 말 대로 차에 타자 뒷좌석에 있는 이우혁을 발견했다.


“반갑습니다, 최지호씨. 건강한 모습을 보니 기쁘군요.”


“안전한 장소는 어디입니까?”


“바로 여기입니다.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을 뽑아 극비로 이 곳까지 이동하였습니다. 혹시라도 있을 강진태의 미행에 만전을 기했지만, 만약을 대비하여 여러 대의 차를 준비하여 각각 다른 목적지를 향해 갈 것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진이는 어디 있죠?”


그는 턱으로 조수석을 가리켰다. 수진이가 그 곳에 있었다. 백미러를 통해서 본 그녀의 얼굴은 꿈에서 봐왔던 어두운 모습과는 달리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잠든 그녀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조각처럼 그렇게 앉아 있었다. 다행이다, 별 일 없었구나. 그녀가 안전하다는 사실은 진작에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니 갑작스런 안도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웅…… 졸려……”


“더 자도 돼, 수진아.”


이우혁은 여동생이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다시 재우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눈을 몇 번 비비더니 정신을 차렸다. 뒤를 돌아보았다.


“오빠, 나 꿈을 꿨…… 응? 지호?”


그녀와 내가 눈이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눈으로 수백 마디의 말을 했다. 지하실에서 너를 멋대로 데리고 도망쳐서 미안했다고, 도피생활 동안 더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해 항상 후회했다고, 강진태에게 잡혀갔을 때 너무나 걱정했다고, 지금 너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고, 보고 싶었다고, 좋아한다고…….


하지만 내 입에서는 그 어떤 단어도 나오지 못했다.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이 순간이 깨질 것만 같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렇게 있었으면. 너의 얼굴을 이대로 더 볼 수 있다면 내가 살인자라는 것도, 진실을 밝히고 싶다는 내 의지도, 모두 사라져 마음이 편해질 것만 같았다.


침묵을 깬 것은 수진이었다.


“지호, 울어?”


그녀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눈물은 생각보다 뜨거워 마치 눈 밑에 뜨거운 물을 부은 것 같았다. 수진이는 그렇게 하염없이 우는 나를 보고는 내 눈물을 닦아주려 안전벨트를 풀고 뒤를 돌아보았다.


[끼이익~ 쾅!!]


잠시 시간이 멈췄다. 그녀의 눈은 걱정스런 눈빛 그대로 나를 보고 있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차가 조금씩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운전석 쪽의 문이 찌그러졌다. 나 또한 수진이를 보고 있었지만 주변의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차가 반쯤 넘어갔을 때 그녀의 표정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찡그리고 있던 눈썹이 풀어지고 입 꼬리가 올라갔다. 걱정에 차 있던 눈은 평화롭게 변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녀가 완벽한 미소를 내게 보냈다고 느낀 순간,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콰쾅!]


차는 전복되었다. 상당히 큰 충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잃지 않은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눈앞이 흐려져 앞을 볼 수 없어 손등으로 눈을 닦으니 피가 묻어 나왔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라 신경이 쓰였지만 그보다 수진이가 더 걱정됐다.


“수……수진……아……”


목에 가시라도 박힌 듯 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창문 밖으로 튕겨져 나가 도로에 쓰러져 있었다. 한적한 외곽 도로인지 내가 타고 있던 차를 들이받은 SUV외에는 어떤 차도 보이지 않았다. 깨진 창문 밖으로 힘겹게 기어 나가자 그녀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보였다. 제발, 제발 많이 다친 것이 아니어야 할 텐데……


내 것이 아닌 듯 말을 듣지 않는 손을 억지로 들어올려 그녀의 코에 갖다 대보았다. 약하지만 규칙적인 숨결이 느껴졌다. 다행히 죽지는 않은 것 같다.


“최…… 최지호씨……”


뒤집어진 차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우혁이 나를 향해 뭔가 말을 하고 있었다.


“도…… 도망…… 수진……이를……부……탁……”


그의 시선은 수진이나 내가 아닌 뒤쪽을 향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SUV에서 검은 양복들이 내리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분명히 내가 기억하는 얼굴이었다. 짓뭉개진 양쪽 귀, 다부진 체격, 이마 왼쪽 위에 있는 상처…… 강진태 측근 검은 양복들의 리더인 남자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유죄의 비망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공지 15.05.18 152 0 -
22 발악 +2 15.05.09 259 2 11쪽
21 휴식 15.05.05 211 3 7쪽
20 지옥 15.05.03 151 4 13쪽
19 거래 15.05.02 149 3 16쪽
18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15.05.01 150 2 7쪽
17 갈등 15.04.29 131 4 9쪽
16 결투 15.04.28 169 1 10쪽
15 해결책 15.04.27 134 2 8쪽
14 이판사판 15.04.26 254 2 8쪽
13 시체 +4 15.04.22 215 3 8쪽
12 트라우마 15.04.18 188 2 8쪽
11 진실 15.04.17 206 3 8쪽
» 재회 15.04.16 283 2 9쪽
9 계략 15.04.15 228 2 8쪽
8 다시 전장으로 15.04.12 273 2 11쪽
7 만남 +1 15.04.11 333 1 13쪽
6 협박 15.04.10 282 2 16쪽
5 검은 양복 +2 15.04.09 518 7 9쪽
4 그림자 +1 15.04.08 266 3 11쪽
3 추적 15.04.07 292 3 12쪽
2 자백 +1 15.04.06 311 3 12쪽
1 기억 15.04.05 342 4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