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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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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otoxin
작품등록일 :
2015.04.05 21:01
최근연재일 :
2015.05.09 21:33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5,340
추천수 :
60
글자수 :
99,831

작성
15.04.12 20:39
조회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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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다시 전장으로

.




DUMMY

12. 소중한 것


나의 손녀 은진이는 내 삶의 보물이다. 은진이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조차 아깝지 않다.


수십 년을 강력계 형사로 근무하면서 내 감성은 점점 더 피폐해져만 갔다. 온갖 다양한 범죄와 살을 부대끼며 살아왔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나의 가족들은 그런 나를 이해해주려 하지 않았다.


형사로 일하면서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의심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직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정신병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두려워하고 나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혹시라도 이 사람이 나의 잘못을 찾아내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불안감에 나를 대할 때 언행에 주의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나를 피하게 된다.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기에 이러한 기피증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행동은 나로 하여금 의심을 더욱 키우게 만들었다.


그런 나의 가족 생활이 순탄할 리가 없었다. 아내는 물론, 아이들마저도 내게 등을 돌렸고 어쩌다 내가 집에 있기라도 하는 날에는 없는 약속까지 만들어서 집 밖으로 나가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과연 제대로 살고 있나, 라는 회한이 들고는 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의 고질병인 의심증은 이들이 내게 뭔가 숨기는 게 있을 거라 계속해서 속삭였고 인간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갔다.


그런 와중에 나의 큰 아들이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다. 분가한 이후로 거의 찾아 오지도 않던 못난 아들이건만 자식을 낳고 보니 그래도 아비 생각이 나는 지 종종 찾아오곤 했다. 처음에는 그저 갓난아이였던 나의 손녀가 해가 갈수록 몰라보게 커지더니 어느 새 내 무릎 위에 앉아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들려 줄 정도로 컸다.


은진이는 날 믿었다. 그리고 나 역시 은진이를 믿었다. 어리기 때문에 의심이란 감정을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그 맑은 눈동자에서 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느꼈고 이는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아이에게는 아름다운 것만 보게 하자. 은진이를 보고 있을 때면 항상 내 자신에게 다짐하고는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더욱 더 범죄 소탕에 필사적이었고 그런 내 모습에 동료와 가족들은 독하다며 혀를 내두르곤 했다.


그래도 좋았다. 한 명 한 명 범죄자들을 체포 하면서 세상은 조금이나마 더 평화로워 질 거라 생각했고 은진이가 보게 될 세상 또한 아름답게 변할 거라 예상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은진이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강진태 전무의 비서라는 사람이 찾아와 은진이의 사진을 슬며시 꺼내며 비열한 미소를 지을 때 하마터면 그 자의 목을 조를 뻔했다. 그가 내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이 사건을 더 이상 들추지 않을 것.


“후배 형사의 일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그 젊고 유망한 젊은이가 사고로 목숨을 잃다니,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더 이상 접근한다면 은진이도 같은 일을 겪게 될 것이다. 무언의 협박이었다. 이를 바드득 갈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평생 지켜온 신념이 뭐가 대수인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을 순 없다. 그저 방관하기만 하면 된다. 양심을 아주 조금만 버리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지호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오히려 잘 된 일 아닌가? 지호 또한 목숨을 위협받았는데, 잘 타이르면 지호 역시 이 사건을 잊고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강 전무의 비서는 내 삶을 그리 간단하게 놔두지 않았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처음엔 받지 않았다. 더 이상의 복잡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연속해서 울리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받게 되었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나를 협박하던 남자의 목소리와 일치했다. 그는 말하지도 않은 내 개인 번호를 이미 알고 있었다.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일단 최지호 군과 함께 행동하며 그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십시오. 하지만 당신은 그가 갖고 있는 증거를 회수해야 합니다.”


“무슨 소립니까 그게? 상황이 바뀌다니, 그건 당신 사정이고 내 알 바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증거라니?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사진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그 사진을 자신의 지인에게 보냈다고 하더군요. 당신은 이 증거들을 책임지고 없애야 합니다. 만약 못하겠다면……”


“합니다! 하면 될 거 아닙니까!!”


예의 그 비열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수십 마리의 벌레가 온 몸을 기어 다니는 느낌이었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사진을 없애야 한다.


신념을 위해서라면 가족을 버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평생을 살았고 숱한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나의 신념은 알량한 정의감 따위가 아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 그것은 바로 은진이다.


13. 다시 전장으로


“어떡하죠…? 숨어야 할까요?”


“아니, 어차피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이 별장의 위치를 안다는 것은 당신 뒤를 밟았다는 걸 테니까요.”


“역시 저를 죽이려….”


“걱정 마세요. 제가 그렇게 두지 않을 겁니다. 일단 만나보죠.”


곧 강진태가 서재로 들어왔다. 그가 데려온 수행원들은 모두 밖에서 대기한 상태로 그 혼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약간 마음이 놓였다.


“안녕하신가 친구들, 우리 서로 아주 각별한 사이인데 나만 쏙 빼놓고 이렇게 담화를 나누고 있으면 섭섭하지?”


“왜 왔어.”


“어이구, 냉랭하기도 하셔라.”


“아니, 그보다 여긴 어떻게 찾은 거지? 최지호의 뒤를 밟았나?”


“이봐, 이봐. 우린 혈육 아닌가? 내 핏줄이 어디에 있는지는 감으로 알 수 있지. 우하하하!”


미친놈… 정말 미친놈이 분명하다. 도대체 이 자의 생각은 뭘까? 날 어쩌려는 거지?


“그나저나… 우리 예쁜 수진이는 안 보이는데?”


“수진이는 여기 없다. 넌 찾을 수 없을 거야.”


“뭐, 그건 그렇고. 최지호군은 우리 우혁이랑 무슨 얘기 중이었을까?”


그는 능청스럽게 말을 건네면서도 눈은 예리하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아마도 조금 전까지 수진이가 우리와 함께 얘기 했던 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서재를 천천히 둘러보면서 책을 이것저것 만지기 시작했다. 책상을 쓸어보기도 하고 옷장을 열어보기도 했다.


“뭐, 어쨌든 다들 잘 지내는 것 같구먼. 몸조심들 하라고. 요새 세상이 하도 흉흉해서 말이지.”


그는 히죽히죽 웃으며 방을 나갔다. 이우혁의 별장까지 힘들게 와 놓고선 이렇게 쉽게 가버리다니, 정말로 나나 이우혁에게는 관심이 없는 건가?


“제길… 새로운 장소를 다시 찾아봐야겠군.”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아닙니다. 어차피 슬슬 은신처를 바꿀 때도 됐어요. 한 곳을 오래 쓰는 것은 아마추어나 하는 일이죠. 그보다, 이렇게 당신을 부른 것은 부탁할 게 있기 때문입니다.”


“뭐죠?”


“사실, 시체를 처리한 것은 강진태겠죠. 외삼촌의 시체와 외삼촌이 죽인 신원불명의 사내의 시체 모두 사라졌어요. 강진태 말고는 이렇게 감쪽같이 사건을 은폐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는 그 의문의 사내는 강진태가 보낸 사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사건이 드러나면 자신에게도 수사의 화살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사건을 은닉하려 했던 거겠죠.”


“이도형 사장의 사인은 병사로 공표되지 않았나요? 부검을 한 부검의가 시체를 보지도 않고 사인을 판명했단 말입니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그 시체들을 찾으면 강진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건 일도 아니지요.”


“뭔가 방법이 있습니까?”


“수진이가 강진태의 사람들에게 잡혀있을 때,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놈들은 수진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들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운이 좋게도 수진이가 그 얘기를 기억하고 있어요.”


“그게 뭡니까?”


“아쉽게도… 저에게는 말을 하지 않더군요. 아무리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만은 얘기하겠다고 했습니다.”


“저…한테만요?”


“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래서 저희 남매에게 당신이 필요한 겁니다. 물론 이 일을 도와주신다면 사례는 섭섭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당신은 이 사건에서 영원히 드러나는 일이 없을 겁니다. 모든 것은 강진태의 책임으로 만들 수 있어요.”


“잠깐만요.”


“왜 그러시죠?”


“전 무죄가 된다거나 다른 사람에게 죄를 덮어 씌우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에요.”


“그게 무슨….”


“전 살인자입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러는 거라구요.”


“아니, 이봐요….”


“사례는 됐습니다. 애초에 그런 것 바란 적도 없어요. 다만 제 죄값을 치르고 싶을 뿐입니다. 수진이의 안전까지 확보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네요.”


“거 참…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말씀해 주세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뭐, 어쨌든 빠른 시간 안에 수진이와 만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이 곳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 장소에서는 안되겠군요. 조만간 새로운 장소를 물색해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는 내 연락처를 받은 뒤 나를 집에 보내주었다. 그래, 결국은 형제 다툼이었구나. 시체가 사라진 것도, 내가 죽을 뻔한 것도, 수진이가 위험했던 것도….


그를 용서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에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


집에 도착해서 쉬려는데 신 경위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이다 지호야. 잘 지냈냐?”


“네, 그럭저럭… 경위님은요?”


“나도 그렇지 뭐. 준식이 장례 치르느라 정신 없었어.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그 녀석이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릴 줄이야……”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정말 유감입니다.”


“강진태 그 녀석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반드시 준식이의 원수를 갚고 말 테다.”


“그래요….”


“혹시 시간 괜찮으면 만나서 얘기하자.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의논해 봐야지.”


그와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강진태가 했던 말이 자꾸 걸린다. 그는 신 경위와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눴던 것일까? 이제 더 이상 신 경위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수진이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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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갈등 15.04.29 131 4 9쪽
16 결투 15.04.28 169 1 10쪽
15 해결책 15.04.27 134 2 8쪽
14 이판사판 15.04.26 254 2 8쪽
13 시체 +4 15.04.22 215 3 8쪽
12 트라우마 15.04.18 188 2 8쪽
11 진실 15.04.17 205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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