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co******* 님의 서재입니다.

유죄의 비망록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일반소설

conotoxin
작품등록일 :
2015.04.05 21:01
최근연재일 :
2015.05.09 21:33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5,349
추천수 :
60
글자수 :
99,831

작성
15.04.11 20:00
조회
333
추천
1
글자
13쪽

만남

.




DUMMY

10. 만남


“자네가 지금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있나?”


“네,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당신 뜻대로 하기 싫다고 했습니다.”


“아냐, 아냐. 잘못 이해하고 있구만. 자네는 방금 저를 제발 죽여주십시오, 라고 말한 거야. 기껏 기회를 줬는데도 제 발로 차버리다니, 생각보다 멍청한 친구군.”


“글쎄요, 아마 절 죽이진 못할 겁니다.”


“여기서 자네를 죽이는 것은 나에겐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보다 쉬워. 내 장담하지. 손짓 한 번이면 자네는 죽은 그 형사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 있을 거야.”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


“이도형 사장과 그 사람이 죽인 남자, 그리고 수진이의 사진. 사건 현장도 여러 장 찍어 놨습니다. 혹시 어떻게 될 지 몰라서요.”


허세다. 죽기 싫어서 임기응변으로 떠올린 궁여지책일 뿐이다. 하지만 생각 외로 그의 반응은 심각했다.


“너 이 새끼…… 그 사진 어디 있어?”


성공이다. 그는 쉽게 날 죽이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난 죽지 않을 수 있다. 생각해라, 생각해.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제가 집 밖으로 나선 건 제가 아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신이 사람을 시켜 저를 사고사로 위장하여 죽이려 한 일 이후에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러 가는 도중이었죠. 만약을 대비해서 그 사람에게 복사본을 보내놨습니다.”


“그게 누구야!”


남자는 으르렁거리듯이 내뱉었다. 여기가 중요하다. 거의 다 왔어. 이 남자가 도저히 건드릴 수 없을 만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제 삼촌입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현직 검사로 근무하고 계세요.”


물론 거짓말이다. 검사는커녕 내겐 삼촌조차 없다. 하지만 만약 내게 그런 조력자가 있다면 아무리 이런 사람이라고 해도 쉽게 건드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은 적중했다.


“좋아… 어디 한번 네 맘대로 해봐라. 하지만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이 이상 파고들어봤자 좋을 건 없을 거다. 이 녀석 집으로 보내!”


검은 양복들은 나를 거칠게 일으켜 세우더니 차에 태우고 다시 눈을 가렸다. 나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금방이라도 다리가 풀리고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앞으로의 일이 더 중요하다.


“가서 그 늙은 짭새한테 전해. 약속 반드시 지키라고.”


“……?”


“신용권 경위 말이야!”


뭐지… 나를 만나기 전에 신 경위를 만났단 말인가? 나한테 했던 것처럼 협박을 했나? 전화했을 때 멀쩡했던 것을 보면 이 남자의 협박에 넘어 간 건가…? 도대체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차가 다시 정지하여 두 눈이 자유로워졌을 때는 벌써 노을이 지고 있었다. 검은 양복들은 나를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려주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지칠 대로 지친 나의 심신은 내 몸을 당장이라도 쓰러지게 할 것만 같았지만 어떻게든 참고서 집을 향했다.


납치 당했었던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집이다. 이제 더 이상 안전하다고는 볼 수 없는 곳이지만 적어도 나에게 휴식은 줄 것이다. 그렇게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주차장을 가로지르려는데 뒤에서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지호씨 되십니까?”


뒤를 돌아보니 검은 양복 여러 명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제기랄, 하루 종일 괴롭혀 놓고서 또 뭘 어쩌려는 거지?


“방금 풀어주고서는 또 무슨 일이에요? 다시 데리고 오랍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도대체 뭐 하자는 겁니까 이게.”


“저희는 최지호씨를 처음 뵙는데요… 누군가가 찾아왔었습니까?”


“뭐라구요…? 당신들 강진태 전무 쪽 사람들 아니에요?”


“강 전무… 강 전무가 지호씨한테 접근했었단 말입니까?”


검은 양복의 남자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더니 급하게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통화하더니 전화를 끊고 나를 보며 말했다.


“강 전무가 벌써 최지호씨에게 접촉을 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사님께서도 걱정 많이 하시고 계십니다. 앞으로의 대책을 함께 세우고 싶어하시는데, 혹시 시간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도대체 이사님이란 사람이 누구죠?”


“LJ 그룹 이우혁 이사. 당신이 알고 있는 이수진의 이복오빠입니다.”


11. 이야기


“최지호씨, 집 앞에 차를 대놨습니다. 가시죠.”


이우혁 이사의 사람들이 내게 찾아 왔을 때, 곧바로 함께 가길 원했지만 그러기엔 내 심신이 너무 지쳐있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좀 쉬고 싶다고 돌려 보내자 다음 날 아침에 바로 집 앞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들이 타고 온 차 역시 어제의 검은 양복들과 비슷한 검은색 세단이었다. 강진태 전무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게 칼을 들이댄다거나 위압적인 말투를 구사한 것은 아니지만 한 번 그런 일을 겪고 나자 이런 상황이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저기…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이사님의 개인 별장입니다. 그 곳이 가장 안전하거든요. 이사님에게든, 최지호씨에게든.”


안전하다고? 무엇으로부터? 강진태 전무로부터인가. 그렇다면 이우혁이라는 사람도 강 전무와 그리 사이가 좋진 않은 걸까.


그보다 이우혁이라는 사람, 이수진의 오빠라고 했다. 그것도 친 오빠가 아닌 이복오빠.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나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수진이가 말해주었나?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강 전무 진영에 잡혀 갔을 텐데….


“수진이는… 어디 있습니까?”


“아, 걱정 마시지요. 이수진님은 안전한 곳에 잘 있습니다.”


“어제 이우혁이라는 사람이 수진이의 이복오빠라고 했는데, 그 말은….”


“어머니가 다르다는 얘기지요.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이상은 이사님과 만나서 얘기를 나누세요.”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부딪쳐서 알아내는 수 밖에 없다. 이우혁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자.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자세를 편하게 고쳐 잡고 잠을 청했다.


눈을 뜨자 깊은 산 속에 있는 세련된 별장이 보였다. 크기는 웅장하였으나 사치를 부리지 않은 특징 없는 별장이었다. 나는 검은 양복들을 따라 별장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갔다. 검은 양복들은 수많은 방을 지나쳐 복도 가장 끝 쪽에 있는 방 앞에 멈춰 서서 노크를 했다.


“들어와.”


방에 들어가자 내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었다. 이우혁의 서재로 보이는 듯한 방이었다. 앤틱한 유럽풍 디자인의 가구들은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상당히 값나가는 원목으로 만든 것 같았다. 은은한 나무 향기가 내 마음을 조금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우혁은 서재 한 가운데의 책상에 앉아 있었다. 온화해 보이는 뿔테 안경 속으로 날카로운 그의 눈이 빛났다. 그의 꿰뚫는 듯한 눈빛에 조금 움츠러들었으나 그는 곧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반갑습니다 최지호씨. 이우혁이라고 합니다.”


그는 내게 악수를 청해왔다. 얼떨결에 손을 내밀자 그는 내 손을 두 손으로 덥석 잡았다.


“저에겐, 아니 저희 남매에겐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 당신에겐 조금 무리한 요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앉으시죠. 할 얘기가 많습니다. 자네들은 나가 있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은 양복들은 서재 밖으로 우르르 나갔다. 위압감을 주던 그들이 없어지니 방의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진듯한 느낌이었다. 서재 한 가운데에 있는 소파에 앉자 그가 차를 따라주며 말을 꺼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일단 제가 수진이의 오빠라는 것부터 말해야겠군요.”


“네,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LJ그룹의 회장, 즉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슬하의 2남 1녀를 두셨습니다. 장남이 저희 아버지, 차남이 저희 삼촌, 즉 이도형 사장입니다.”


“아….”


“네, 맞습니다. 당신이 죽인 그 사람이죠.”


“뭐라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아닙니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얘기를 계속하죠. 저희 아버지의 자식은 저 하나뿐입니다. 대외적으로는요. 하지만 저희 아버지의 애첩과 낳으신 딸이 하나 있습니다. 그녀가 바로 제 동생, 이수진이지요. 현재 할아버지께서 건강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으시기에 곧 차기 회장의 자리를 두고 권력 다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께서는 저희 아버지를 후계자로 키워 오셨고 이사진들도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모르는 아버지의 약점이 하나 있죠. 그것이 바로….”


“수진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제 삼촌과 고모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지요. 처음엔 그들이 제 동생에게 접근하여 온갖 달콤한 말로 유혹했습니다. 우리 아버지, 이도진 사장의 친딸이라는 것만 밝혀 준다면 평생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돈을 주겠다고…. 하지만 제 동생은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아버지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행동을 할 수는 없다고 못박아 버렸죠.”


그는 목이 타는 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야기를 다시 계속했다.


“앙심을 품은 두 사람은 그 때부터 수진이를 계속 괴롭혔습니다. 아니, 한 사람 더 있군요. 제 고모의 외아들, 강진태입니다.”


“….”


“그가 가장 악독하게 괴롭혔죠. 아버지는 방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회적 위치가 있으니까요. 섣불리 도움을 주려 했다가는 자신이 쌓아 올린, 나아가서 LJ그룹이 쌓아 올린 명성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수진이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는커녕 연락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고작 고등학생에 불과했었던 어린 아이가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려 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 당시 수진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을 뿐, 어떤 아이인지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가끔 술에 취해 저를 붙잡고 우시며 얘기하실 때나 이름을 들어보았을 뿐, 그 아이의 외모가 어떤지, 성격이 어떤지 전혀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강진태가 저에게 자랑하듯 말했습니다. 너의 여동생은 나의 재미있는 장난감이라고. 그러면서 그녀를 괴롭히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저에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별 신경조차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가 술에 취해 수진이의 이름을 부르는 날들이 잦아졌고, 강진태가 저에게 말해 주는 그의 무용담은 점점 더 거칠어져만 갔습니다. 결국 전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그녀에게 저의 존재를 알리자, 그녀는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자신에게도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항상 했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오히려 저에게 자신 때문에 피해간 일이 있지 않냐고, 저를 걱정 했습니다. 그래요, 너무나 착한 아이였습니다. 마치 천사와도 같았죠. 하루하루 그녀를 만날수록 제 속에서 그녀의 존재감은 커져만 갔습니다. 저는 그녀를 동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 소소한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녀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끔찍한 일이라니, 무슨…?”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무참하게…. 여러 명의 남자들에게 둘러 쌓여 깨끗하던 그녀의 몸과 마음은 무참히 더럽혀졌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게 되었군요.”


“네, 누가 범인인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누구 짓인지 뻔한 일이죠. 하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기에 질책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빠인 저로서는 원통해 미칠 노릇이었지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일 이후로 뭔가 결심을 하신 듯 보였습니다. 무슨 생각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의 모든 비자금과 검은 돈을 수진이 앞으로 모으신 것이지요. 수진이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겠지만 그 액수는 어마어마합니다. 또한 그 돈은 반드시 수진이 본인에 의해서만 운용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해두셨습니다.”


“어떻게 정보가 새나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삼촌과 고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수진이를 차지하기 위한 물밑 다툼이 심해졌죠. 다행히도 아버지께서 손을 써두어서 수진이는 한 동안 안전해 보였습니다만….”


[똑똑]


“들어와.”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급한 일입니다.”


“뭐지?”


“강진태 전무가 찾아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와 이우혁 이사는 벌떡 일어났다. 나는 그와 함께 창문으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강진태는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별장을 향해 걸어오다 고개를 들어 우리가 있는 창문을 올려다 보았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유죄의 비망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공지 15.05.18 153 0 -
22 발악 +2 15.05.09 260 2 11쪽
21 휴식 15.05.05 211 3 7쪽
20 지옥 15.05.03 152 4 13쪽
19 거래 15.05.02 149 3 16쪽
18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15.05.01 150 2 7쪽
17 갈등 15.04.29 131 4 9쪽
16 결투 15.04.28 169 1 10쪽
15 해결책 15.04.27 134 2 8쪽
14 이판사판 15.04.26 254 2 8쪽
13 시체 +4 15.04.22 215 3 8쪽
12 트라우마 15.04.18 188 2 8쪽
11 진실 15.04.17 206 3 8쪽
10 재회 15.04.16 283 2 9쪽
9 계략 15.04.15 228 2 8쪽
8 다시 전장으로 15.04.12 273 2 11쪽
» 만남 +1 15.04.11 334 1 13쪽
6 협박 15.04.10 282 2 16쪽
5 검은 양복 +2 15.04.09 518 7 9쪽
4 그림자 +1 15.04.08 266 3 11쪽
3 추적 15.04.07 292 3 12쪽
2 자백 +1 15.04.06 311 3 12쪽
1 기억 15.04.05 342 4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