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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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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otoxin
작품등록일 :
2015.04.05 21:01
최근연재일 :
2015.05.09 21:33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5,337
추천수 :
60
글자수 :
99,831

작성
15.04.18 19:27
조회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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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8쪽

트라우마

.




DUMMY

17. 트라우마


나에겐 누나가 있었다. 어디에나 있을 평범한 남매였다. 다만 한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내 누나는 장애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기 힘들면서도, 누나는 언제나 나를 챙겨주려 했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그런 누나의 관심이 싫기만 했기에 짜증만 내기 일쑤였다. 누나는 가끔 상처를 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간섭 아닌 간섭을 했다. 때로는 그런 누나가 싫어 일부러 피해 다니기도 하였다.


그 당시의 내 주위에는 안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내가 혹시라도 비뚤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반에서 몇 번 사고를 치고, 그 일이 전교에 퍼져 나가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우리 반까지 찾아온 적도 많았다. 하지만 성격이 소심한 편이라 문을 열고 직접 들어오지는 못하고 지나가는 척 창문을 통해 내가 잘 있는지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때로는 체육수업 전 쉬는 시간에 창문을 기웃거리다 옷을 갈아입던 남자애들에게 욕을 먹은 적도 있었다.


딸을 특수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강한 일념 하에, 부모님은 누나를 나와 같은 일반 중학교에 보냈지만 한창 예민한 사춘기의 학생들이 그런 그녀를 포용해줄 리 없었다. 다행히 경도 정신지체 지적 장애였기 때문에 초등학생 정도의 학력과 상식이 있어 학교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교우관계가 원만할 수 없었고, 당연히 친구도 없어 항상 혼자 다녔지만 정작 본인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항상 주위에 친구들이 많고, 아는 선배들도 많았던 나였기에 그런 누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끔씩 누군가가 누나를 괴롭혔다는 소식이 내게 들려올 때도 있었지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일부러 도와주지 않았다. 누나와 나는 사는 세계가 다르고, 누나가 나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한 없이 부끄러운 일이었다. ‘저 모자란 사람이 너네 누나냐?’라는 말을 듣게 될 것만 같아서 어떻게든 누나를 피하려 애썼고, 어쩔 수 없이 마주칠 때에는 모른척했다. 누나의 슬픈 표정은 애써 외면했다. 그 잠깐의 죄책감만 극복하고 나면 창피한 누나와의 접점은 생기지 않게 되었고, 나의 학교 생활이 편해졌으니까.


하지만 누나는 그런 나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나를 챙겨주려 애썼다. 미처 챙기지 못하고 집에 두고 온 숙제나 준비물 따위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챙겨와서는 지나가는 반 친구에게 부탁하여 전해주거나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서 건네주고는 했다. 몇몇 친구들이 누나를 알아보고는 ‘너네 누나야?’ 라고 물어보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누나가 부끄러워 집에 가자마자 다시는 반에 찾아오지 말라고 히스테릭 하게 소리질러댔다.


그 날도 나는 체육수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육복을 집에 두고 와버렸다. 친구에게 빌리기도 귀찮아진 나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홀로 덩그러니 교실에 남아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반 여자아이 하나가 오늘 용돈을 받아 돈이 많다는 얘기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아무도 모를 거야, 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드르륵]


갑작스럽게 열린 문에 화들짝 놀라 뒤로 자빠졌다. 이미 돈을 꺼내 주머니에 넣은 뒤라 변명의 여지도 없는 현행범이었다. 그러나 문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자, 안도감과 함께 짜증이 몰려왔다. 누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곳에 서 있었다.


“지호 뭐해?”


“아 씨발… 놀랐잖아. 여긴 왜 왔어?”


“지호 체육복 집에 두고 갔었어. 그래서 내가 가져왔다? 이거 입구 빨리 운동장 나가.”


“내가 몇 번 말해! 이런 것 좀 하지 말라 그랬잖아!!”


“미안해… 근데 지호 체육복 없으면….”


“아 제발 좀 꺼져!”


나는 그녀가 건네준 체육복을 집어 던진 뒤 내 자리로 와서 앉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돈을 훔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멍청한 누나여서.


“어? 최지호 여기서 뭐하냐? 너네 체육 아니야?”


옆 반 친구가 누나 뒤에서 나타나 내게 물었다. 아마 화장실 가던 도중에 내가 소리지르는 것을 듣고 온 것 같았다.


“아파서 안 나갔어.”


“어, 그러냐…? 얜 뭐야. 너네 누나 맞지? 왜 온 거야?”


“내 체육복 갖다 주러 왔나 보지 뭐. 난 계속 자야겠다. 일 봐라.”


친구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사라졌고, 누나는 내가 집어 던졌던 체육복을 주워 내 가방 옆에 곱게 개어놓은 뒤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그녀가 나간 것을 확인한 뒤에,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두툼한 지폐다발의 감촉에 만족하며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깼을 땐, 어느덧 체육수업이 끝나 아이들이 교실에 하나 둘씩 들어오고 있을 때였다.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의 수다에 더 이상 잘 수 없게 된 나는 하품을 하며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돈이 없어졌어!”


교실 안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찢는 듯한 여자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그녀의 주위에 몰려들어 사라진 돈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언제 없어진 거야?”


“몰라….”


“잘 기억해봐. 마지막으로 확인 했었던 때가 언젠데?”


“아침에 학교 도착했을 땐 분명히 있었는데….”


“그 전 수업까지는 계속 교실에 있었잖아. 화장실 간 사이에 누가 가져갔나?”


“다른 애들은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가져가냐?”


“그럼 체육시간에 누가 가져갔다는 거네?”


아이들이 나를 쳐다봤다. 제기랄, 멍청해도 너무 멍청했다. 당연히 내가 의심받을 거란 생각조차 안 했다니.


“야, 지호야. 너 교실에 있을 때 누가 왔다 갔냐? 본 사람 있어?”


“글쎄…. 난 자고 있어서 잘….”


“뭐야, 누가 가져간 거지?”


“3반 애들 중 하나 아니야? 음악이었잖아. 음악실 갔을 텐데. 수업 도중 빠져 나온 놈이 있나?”


“3반 김태호 아냐? 그 새낀 그러고도 남을 놈인데.”


“아냐 아냐. 걔 오늘 학교 안 왔어.”


“뭐야, 대체 그럼 누구지?”


아이들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렇게 가다간 내가 범인으로 몰릴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주머니에 있는 돈들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야, 뭐야, 무슨 일인데?”


“수영이 돈이 없어졌대. 누가 수영이 한 달 용돈 싹 다 가져갔나 봐. 너 바로 옆 반이잖아. 혹시 누가 우리 반에 들어온 거 본 적 있어?”


“음…. 아! 지호 누나가 왔다 갔어. 지호 체육복 갖다 주러 왔었나 봐.”


“아, 설마 그 병신년이 가져갔나?”


“야, 지호야. 너네 누나 왔을 때 수영이 가방 뒤지는 거 봤어?”


심장이 두근거리고 입에 침이 마르기 시작했다.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애써 침착한 척 하품을 한 뒤에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 난 체육복만 받고 바로 잤거든. 그런데….”


“그런데?”


“자려고 다시 엎드렸는데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하더라고. 한참 있다 나가는 것 같더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아이들은 누나를 찾아갔고, 누나는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함께 심한 구타를 당했다. 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소중한 학교 생활은 지켜냈으니까.


그 때부터 누나는 심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다. 그저 수많은 비난의 화살들과 질책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안도했다. 누나의 고통에서 고개를 돌렸다.


외면했다.


무시했다.


그녀를 버렸다.


그녀는 결국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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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발악 +2 15.05.09 259 2 11쪽
21 휴식 15.05.05 211 3 7쪽
20 지옥 15.05.03 151 4 13쪽
19 거래 15.05.02 149 3 16쪽
18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15.05.01 150 2 7쪽
17 갈등 15.04.29 130 4 9쪽
16 결투 15.04.28 169 1 10쪽
15 해결책 15.04.27 134 2 8쪽
14 이판사판 15.04.26 254 2 8쪽
13 시체 +4 15.04.22 214 3 8쪽
» 트라우마 15.04.18 188 2 8쪽
11 진실 15.04.17 205 3 8쪽
10 재회 15.04.16 282 2 9쪽
9 계략 15.04.15 228 2 8쪽
8 다시 전장으로 15.04.12 272 2 11쪽
7 만남 +1 15.04.11 333 1 13쪽
6 협박 15.04.10 281 2 16쪽
5 검은 양복 +2 15.04.09 518 7 9쪽
4 그림자 +1 15.04.08 266 3 11쪽
3 추적 15.04.07 291 3 12쪽
2 자백 +1 15.04.06 310 3 12쪽
1 기억 15.04.05 341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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