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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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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otoxin
작품등록일 :
2015.04.05 21:01
최근연재일 :
2015.05.09 21:33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5,344
추천수 :
60
글자수 :
99,831

작성
15.04.06 14:27
조회
310
추천
3
글자
12쪽

자백

.




DUMMY

3. 복귀


매일 밤 꿈을 꾼다. 꿈 속에서 나는 그 지하실에 있다.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두 시체를 밟고 서 있는 그녀는 언제나와 같은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지하실은 내 기억보다 더 어두워서 그녀의 얼굴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도망치고 싶어 출구를 찾아 두리번거리지만 항상 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네가 죽였어. ‘


‘아냐, 내가 죽인 게 아니야.’


‘그럼 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뭐지?’


나도 모르게 내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은, 두 명의 목숨을 가져간 얼음 같은 칼날.


‘거 봐. 네가 죽인 거야!’


[깔깔깔깔깔깔깔깔]


그녀의 미친듯한 웃음소리에 괴로워하며 나는 꿈을 깨곤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죄책감과 불안감에 짓눌려 잠에서 깨야 하는 걸까. 이대로 가면 나에게 상쾌한 아침이라는 단어는 영원히 남의 일일 것만 같다. 차라리 자수를 하자. 어쩌면 정상참작이 되어 무죄판결은 무리라고 해도 감형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평생을 이렇게 살 수는 없다.


고민은 길었지만 결단이 내려진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오늘도 역시나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수진이를 깨워 음침한 모텔을 나섰다.


"수진아, 밤새 춥지는 않았어?"


"응, 괜찮아! 오늘 우리 어디 가?"


"글쎄... 수진이 이제 집에 가고 싶지는 않아?"


"집?"


순간 그녀는 흠칫하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뭔가 집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그 날 지하실에서의 일이 생각나기 때문일까? 수진이는 한 동안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는 이전까지 내가 봐왔던 그녀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진지한 얼굴이었다. 항상 어린아이 같은 미소만을 유지하던 그녀의 낮은 정신 연령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그녀의 옆모습은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진아...?"


"응?"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새삼 나는 아직 그녀의 이름 말고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괜찮아?"


"응! 나 괜찮아!"


그녀는 다시 예의 미소를 되찾으며 대답했다. 내가 느꼈던 그녀의 심각한 표정이 잘못 보았다는 듯이 너무나 완벽한 미소였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다시 원래의 계획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엔 근처 파출소에 가서 자수하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기는 서울과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다. 이렇게 후미진 동네 파출소에서 자백해봤자 현장 검증조차 못할 것이다. 사건 지역의 관할 경찰서에서 얘기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래, 서울로 가자.


기차역으로 향하면서 오랜만에 밝은 대로를 걷게 되었다. 아직 매서웠던 지난 겨울의 칼 바람이 늦장을 부리며 거리를 지배하려 애쓰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밝은 햇빛이 봄이 오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부담을 느꼈을 햇빛이지만 이제 곧 마음의 짐을 내려 놓을 거라는 생각에 반갑기만 하다.

.

.

“지호 화났어?”


서울행 기차를 탄 직후에 수진이가 나에게 물어봤다. 내 표정이 심각해 보였나 보다. 그녀는 혼나기 직전의 두려움에 떠는 아이와 같은 눈으로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아냐, 수진아. 우리 다시 서울로 가자.”


“이제 여행 끝난 거야?”


“응, 끝난 거야. 다시 돌아가야지. 수진아, 여행 끝나면 어디 갈 거야?”


“음…… 집에 가서 아빠한테 여행 얘기 해줄래!”


“집이 어딘지 알아?”


“응! 수진이 집 잘 찾아!”


집에 갈 수 있으면 됐다. 이대로 자수를 한 뒤 그녀의 신변은 경찰에게 맡기면 되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머물자 갑자기 긴장이 풀렸는지 졸음이 쏟아져왔다.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뒤, 잠을 청했다.

.

.

서울역에 도착 했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수진이에게 역 근처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주고, 여기에 꼼짝 말고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한 뒤에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샀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내가 사람을 죽였소, 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저 멀리 차갑게만 보이는 경찰서의 콘크리트 벽을 보며, 소주 반 병을 비운 다음에서야 발걸음을 뗐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 부신 빛이 나를 맞아주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내 정신을 어지럽혔다. 어디로 가야 할 지 알 수 없어 갈팡질팡 하던 도중, 관서 안내 표지판을 발견하고 2층에 명시되어 있는 강력 팀을 보게 되었다. 살인 사건에 대한 자백이라면 분명히 저곳에서 할 것이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 뒤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4. 유종의 미


“선배님, 은퇴 하시면 뭐 할 생각이십니까?”


“글쎄, 모아둔 돈으로 떡볶이 집이나 차릴까 하는데…… 손녀가 떡볶이를 워낙 좋아해서 말이지.”


“하하, 헐크 반장님께서 떡볶이 집이라니, 선배님한테 검거됐던 애들이 다 웃겠습니다.”


“임마, 내가 얼마나 손재주가 좋은데 그래? 앞으로 잠복근무 할 일 있으면 와서 포장이나 좀 해가라.”


길었던 형사 생활도 이제 끝이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키웠던 꿈을 이루고, 세상의 정의를 위해 젊음을 다 바쳤기에 후회 없이 은퇴할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바쁜 업무 속에서 소홀히 할 수 밖에 없었던 가족관계도, 최근 취미로 시작했지만 장비만 사놓고 손도 대지 못했던 하이킹도 이젠 문제 없다. 내일이면 나는 편안히 노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손녀에게 줄 선물을 사가야겠다.


[아니, 글쎄 제가 사람을 죽였다니까요!]


[당신 술 마셨지? 취했으면 곱게 집에 들어가서 잠이나 잘 것이지 왜 신성한 경찰서에 와서 이 지랄이야? 공무집행방해로 잡혀 들어가고 싶어?]


[제가 상황까지 다 설명 드렸잖아요. 신고 들어온 게 있을 거 아니에요?]


[없어, 없다고! 그쪽 동네는 살인 사건은커녕 소매치기 신고도 들어온 게 없다니까 그러네?]


[아 진짜 미치겠네……]


“박 형사, 저거 뭐야? 왜이리 시끄러워?”


“아 저거요? 선배님 화장실 갔던 사이에 왔던 사람인데요. 자기가 사람을 죽여서 자백하러 왔다는데요, 근데 뭐 그 동네 사건 접수된 것도 없는데 계속 붙잡고 저러고 있으니 준식이가 짜증낼 만도 하죠.”


“아니 그래도 그렇지 선량한 시민에게 저렇게 신경질을 부리면 되나? 내가 잘 달래 보낼 테니까 준식이는 어서 퇴근하라고 그래. 은퇴하기 전에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겠구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퇴근준비를 하는 동안 준식이라는 친구는 씩씩거리며 담배를 피우러 갔다. 어지간히도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인가보다.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자꾸 동료의 사소한 일까지 도와주고 싶은 것은 선배로써의 배려일까, 아니면 중년의 괜한 오지랖일까?


“이봐요, 살인자 씨, 사람을 죽였다고요?”


“아, 네. 살인 사건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살인자가 저한테 달려들어서 엎치락뒤치락 하다 보니 그만 제가 그 사람을 찌르게 되었습니다.”


“어이구, 그러십니까…… 그래, 그게 언제죠?”


“3일…… 아니, 4일 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 하죠? 내가 사람을 죽였나 안 죽였나~ 사실 잘 기억이 안 나죠? 저도 가끔 그래요. 술 마시면 내가 카드를 긁었나 안 긁었나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단 말이죠. 다음 날 전표를 봐도 못 믿겠어요.”


“술을 마시긴 했지만 취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네네 그러시겠죠. 그래, 그 장소가 어디라고요?”


“도마 아파트 101동 지하요.”


“아파트라면 관리인이 있을 거 아니에요. 만약 살인 사건이 일어났으면 관리인이 신고를 하지 않았을까요?”


“저도 그게 이해가 안 된다 이겁니다.”


“아 좋아요, 어차피 저도 방향이 그 쪽이니까 한번 가보기나 하죠.”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눈 앞에 확실한 것을 보여줘야 납득하는 법이다. 가는 길에 우리 손녀 선물이나 사가야겠다. 인형이 좋을까? 아니면 옷이 좋을까? 손녀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며 차에 타려는데 이 남자가 갑자기 주저하기 시작했다.


“뭐해요, 안 탑니까?”


“제가 일행이 있는데 데리고 가야 할 거 같아서요.”


“그냥 전화해서 집으로 가시라 그래요. 뭐 재미있는 거라고 친구까지 데리고 왔습니까?”


“그 사람이 전화가 없어서 지금 혼자 기다리고 있거든요. 요 바로 앞에 있으니 같이 데리고 가면 안될까요?”


“허, 그럽시다.”


우리는 경찰서 근처에 있는 분식집으로 갔다. 늦은 시간대라 손님은 한 테이블밖에 없었고 가게도 슬슬 폐점하려는 분위기였다.


“일행이라는 게 저 사람들입니까?”


“아뇨, 분명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어디 간 거지?”


“이봐요, 지금 장난합니까? 바쁜 사람 이렇게 시간 낭비하게 하면 제가 도와드리기 어려워요.”


“미치겠네 정말…… 어디 간 거야……”


“같이 갈 거에요, 말 거에요? 빨리 정하세요.”


“일단 가요…… 가야죠……”


결국 우리는 도마 아파트로 향했다. 횡설수설하는 이 남자의 태도에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체되어서 선물을 사 갈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이러다 손녀가 자버리면 내 하루 일과의 마무리가 엉망이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 은진이가 아직 자지 말고 기다려 줘야 할 텐데.

.

.


“103동…… 102동…… 여기가 101동이구먼. 이 지하실이 맞습니까?”


“네, 맞아요.”


“문이 잠겨 있군요. 경비 아저씨를 불러 오셔야 하겠는데요?”


“이상하다…… 항상 열려 있었는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경비실에 갔다 올게요.”


그 남자를 기다리며 담배를 꺼내 피웠다. 이 문을 열면 당연히 시체 따위는 없을 테고, 그럼 나는 훈계 몇 마디 한 뒤에 선물을 사러 가면 되는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서울 남부경찰서 신용권 경위입니다. 이 지하실에서 살인 사건이 있었다는 제보가 들어와서 조사하려 합니다.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살인 사건이요? 어이구 이렇게 치안 좋은 동네에서 살인 사건은 무슨…… 뭐 일단 열어 드리긴 하지요.”


녹슨 철문은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경비가 스위치를 누르자 금방이라도 꺼질듯한 희미한 백열전구가 깜박이며 지하실을 밝혔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에서는 약간의 피 냄새 조차 섞여 있지 않았다. 어느 아파트에서나 있을 법한 평범하고 더러운 지하실이었다.


당연한 결과에 나는 자칭 살인자라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훈계라도 몇 마디 해주려 입을 열었지만 남자의 표정을 보고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공포로 죽은 사람이 있다면 시체가 이런 표정을 하고 있을까? 아무것도 없는 지하실을 보고 있는 그 남자의 표정은 나조차도 불안하게 만들 정도로 두려움에 가득 차있었다


“그럴 리가…… 말도 안돼……”


“이봐요, 괜찮아요?”


“분명…… 내가…… 그 남자는…… 시체가……”


“정신차려요! 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여긴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무것도 없으니 이러는 거죠!! 이런 씨발…… 이게 대체 무슨……”


남자는 거의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훈계고 뭐고 이 남자는 정신적으로 이상한 것 같다. 더 이상 여기 있어봐야 시간 낭비일 것이다.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뭔가 놓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뭔가 어색한 것이 있다. 그런데 그게 뭐지?


“저기, 다 보셨으면 이제 문을 다시 닫아도 될까요?”


“네, 그러시죠. 실례했습니다.”


경비는 나와 그 남자를 이상한 듯이 쳐다보며 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잠깐, 자물쇠? 철문은 낡았는데 자물쇠는 어째서 새 것처럼 보이는 거지?


“아저씨, 자물쇠는 최근에 산 건가요?”


“글쎄요, 이 자물쇠는 제가 여기 올 때부터 있었던 거라……”


“여기에서 근무하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3일전에 왔습니다.”


“이봐요, 이봐요! 당신 그 사건 있던 게 언제라고 했죠?”


“3일 정도 전에……”


은진이의 선물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형사로서의 감이 따가울 정도로 내게 경고를 하고 있다. 이 지하실은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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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갈등 15.04.29 131 4 9쪽
16 결투 15.04.28 169 1 10쪽
15 해결책 15.04.27 134 2 8쪽
14 이판사판 15.04.26 254 2 8쪽
13 시체 +4 15.04.22 215 3 8쪽
12 트라우마 15.04.18 188 2 8쪽
11 진실 15.04.17 206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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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계략 15.04.15 228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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