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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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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otoxin
작품등록일 :
2015.04.05 21:01
최근연재일 :
2015.05.09 21:33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5,350
추천수 :
60
글자수 :
99,831

작성
15.04.0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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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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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그림자

.




DUMMY

7. 그림자


“학교는 어떻게 할 거냐? 휴학해놓은 거냐? 다시 복학할 때까지 스펙도 좀 쌓고 그래야지. 계속 그렇게 살다가는 취직도 못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밥을 먹으러 거실로 나간 것이 실수였다. 식탁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작되는 아버지의 잔소리는 밥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멈출 줄 몰랐다. 오랜만에 먹는 따뜻한 어머니의 밥이 맛있을 만도 한데, 돌을 씹어먹는 것 마냥 목구멍에 막혀서 넘기기 힘들었다.


“그나저나, 대체 3일 동안 어딜 갔었던 거냐?”


어딜 갔었냐고요? 우연히 살인 현장을 목격해서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사람을 죽이고 옆에 있던 신원불명의 여자를 데리고 도망 다녔습니다. 3일 간 떠돌아다니며 불안감에 몸부림치고 잠을 설쳤습니다. 죄책감이라는 내면의 지옥 깊은 곳까지 갔다 왔습니다.


“그냥 혼자 생각 할 시간이 필요해서 여기저기 여행 다녔어요.”


“잘 하는 짓이다 임마. 넌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혼자 훌쩍 여행을 가지 않나, 말도 없이 외박하질 않나…… 너 대체 생각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언제 철들래?”


“아, 그만 좀 하세요. 제 인생 제가 알아서 살 테니까!”


“야, 지호야! 지호야!!”


소리지르는 아버지를 뒤로 한 채 외투만 걸치고 집 밖으로 나왔다. 더 이상 집에 있어봐야 좋을 일이 없기에 무작정 거리를 걸었다. 출근 시간대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 다녔고 버스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 수 많은 사람들이 갈 곳이 있는데, 나는 없다는 생각에 외로움이 사무쳐 왔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봤지만 연락할 만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10년이 넘은 친구인 태식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도 힘들 때 가장 의지할 만한 사람은 역시 오랜 친구밖에 없는 것 같다.


“여보세요? 뭐하냐?”


“야, 임마 최지호! 너 어디야!!”


“집 앞이지 뭐. 오늘 수업 없냐?”


“그래, 공강이다. 너 이 새끼 대체 그 동안 어디서 뭐 했던 거야? 폰도 꺼놓고. 아니, 이럴 게 아니라 만나서 얘기하자. 학교 앞으로 와.”


그래, 역시 나를 걱정해 줬던 사람은 있구나. 갑자기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티를 내고 싶지 않아 전화를 끊었다. 이 친구라면 분명 내가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앞 카페에 도착하여 2층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태식이를 발견했다. 내가 오기 한참 전부터 있었는지 재떨이에는 담배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야, 말 좀 해봐라.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냐?”


“아, 그런 일이 좀 있었어. 얘기하자면 길어. 넌 어떻게 지냈냐? 네 얘기부터 해봐라.”


“나야 취업 준비하느라 바쁘지. 4학년이잖냐. 여기저기 일자리 알아보고 자소서 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잘 되가냐?”


“별로. LJ 그룹이 1지망이었는데 그 놈의 사건이 터져서……”


“무슨 사건?”


“아, 너 모르냐? LJ 건설 이도형 사장이 죽은 거? 그거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잖아. 한참 동안 신문이며 뉴스며 떠들썩했는데. 잠수 탄 동안 TV도 안 봤나 보네.”


“어, 뭐 그렇게 됐다.”


“하튼 그래서 LJ그룹 주가 떨어지고 이런저런 말도 많고…… 그래서 이번 상반기에는 신입 채용 안 한다잖아. 좆 빠지게 준비했는데 망했어.”


“왜 죽었다는데?”


“지병이 악화됐다는데, 아니라는 주장이 많더라고. 사실 지병이랄 것도 없는 건강한 사람이었거든. 그래서 그 사람 죽음에 대해 말이 많은 거지 뭐. 일부러 사실을 숨긴다는 소리가 있어.”


“그래, 그렇구나……”


“그보다 얼른 네 얘기나 해봐. 도대체 한동안 보이지도 않고 연락도 안 된 거냐?”


“나…… 사람을 죽였어.”


“뭐?”


그 동안 있었던 일을 태식이에게 자세히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눈치였으나 신 경위의 명함을 보여주자 그제서야 믿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태식이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괜한 짓 한 거 아니냐?”


“네가 무슨 말 하려는지 나도 알아. 근데 너 내 성격 알잖아. 잘못된 건 무조건 바로 잡아야 하는 거. 그 잘못된 것이 나 자신이라고 해도 용납 안되.”


“거 참 성격 하고는…… 감방이라도 갈 수 있다는 거냐?”


“이렇게 살 바에야 콩밥 먹는 게 낫다.”


“그래, 알았다. 내가 힘 닿는데 까지 도와줄게. 뭐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 마는……”


“됐어, 마음만으로도 고맙다.”


그 때였다. 신 경위에게 전화가 온 것은.


“여보세요?”


“오, 지호야. 너 잠깐 서로 올 수 있겠냐?”


“무슨 일인데요?”


“이 자식이 오라면 올 것이지 뭔 말이 많아. 빨리 와 봐.”


신 경위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버렸다. 알게 된지 고작 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말 짜증나는 사람이다. 무조건 자기 페이스대로만 밀어 붙이는 독불장군 같은 느낌이다.


서에 도착하자 신 경위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는 날 보자마자 왜 이렇게 늦었냐며 화부터 냈다. 전화 끊자마자 태식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로 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거리가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걸린 것뿐인데, 정말 남의 사정 따위 신경조차 안 쓰는 사람인 것 같다.


“너 그 여자 얼굴 기억 나지?”


“뭔 여자요.”


“누구겠냐. 사건 목격했다는 여자 말이야.”


“기억나요. 근데 왜요?”


“왜긴 왜야 임마. 그 분식집 CCTV에 여자랑 그 여자 데려갔다는 남자들 찍혔으니까 가서 확인해 봐라. 아파트 관리사무소 CCTV기록도 손 댄 놈들인데 그 조그만 가게는 미처 생각 못했나 보지.”


“꼭 고의로 기록이 파손된 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냥 사고라던가……”


“아 그 놈 참 말 많네. 내가 이런 사건 한두 번 수사해 보는 줄 알아? 형사로서의 감이란 게 있어 임마. 어서 가자.”


신 경위 함께 조그만 방에 들어가니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복잡한 기계를 만지고 있었다. 신 경위가 헛기침을 하니 이내 그 남자는 눈치를 채고 경례를 올렸다.


“충성!”


“어, 그래. CCTV 틀어봐라.”


“선배님, 은퇴도 하셨는데 자꾸 이러시면 제가 곤란합니다. 이거 직권남용이에요.”


“짜샤, 누가 뭐라 하면 나한테 데리고 와. 감히 어떤 놈이 내가 하는 일 방해하겠다는 건데?”


“아우, 선배님.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시끄럽고, 얼른 틀어보기나 해봐.”


CCTV는 나와 수진이가 가게에 들어갔던 장면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나간 지 20분 정도 되었을까, 검은 색 양복을 입은 사내 여럿이 가게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주위를 경계하며 수진이를 포위 하더니 가게 안의 사람들을 내쫓았다. 수진이의 표정은 누가 봐도 겁에 질린 듯 했다.


이윽고 리더 격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1~2분 정도 통화 하더니 전화를 끊고는 수진이에게 뭐라 말을 건넸다. 수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 치며 도망가려 했지만 검은 양복의 남자들에게 둘러 싸여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검은 양복들에게 붙잡혀 가게 밖으로 끌려 나갔다. 그러나 리더로 추정되는 남자는 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눈이 마주친 것은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다. 그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눈을 볼 수 없었으며 그가 쳐다본 것은 그저 CCTV였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의 행동에서 오한을 느꼈다. 그는 CCTV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지우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곧 시선을 거두고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위험하다. 그는 분명 누군가가 이 기록을 볼 것이고, 자신을 찾을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이건 함정이다. 이 남자를 추적해서는 안 된다.


“CCTV에 너와 같이 있는 모습도 나왔으니 말할 것도 없겠지만, 저 여자 맞지?”


“네? 네, 맞아요.”


“좋아, 태영아, 저 남자 한 번 조사해봐.”


“저 남자가 누군데 그러세요?”


“임마, 그건 네가 이제부터 알아봐야 될 거 아냐.”


“아니, 뭔 짓을 했는지는 알아야 조사할 거 아닙니까?”


“이 새끼가 진짜…… 내가 은퇴했다고 물로 보이냐? 정 갖다 붙일 거 없으면 납치로 끼워 맞추던가.”


“어휴, 선배님. 이렇게 선배님 감만 믿고 수사 시작했다가 엄한 사람 피 본 게 한두 번입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 뭔가 알아내면 바로 연락해라.”


이번에도 역시나 신 경위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나가버렸다. 태영이라 불렸던 남자는 한숨을 쉬면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한참을 저런 사람 밑에서 일했다니, 뭔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경위님.”


“아, 깜짝아. 너 언제부터 따라왔냐.”


뭐야, 아예 내 존재를 잊고 있었던 건가……


“경위님, 은퇴하셨어요?”


“그래, 했다. 왜?”


“뭐야. 그럼 이제 경찰도 아니네요 뭐. 그냥 아저씨라고 부를게요.”


“뭐 이새꺄?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어디 한번 불러봐. 두 번 다시 내 눈도 못 마주치게 해줄 테니까.”


“알았어요, 알았어요…… 그보다, 만약 검은 양복 남자들을 찾으면 어쩌실 생각이세요?”


“어쩌긴 뭘 어째. 당장 달려가서 이단옆차기로 쓰러뜨리고 뭔 일이 있었는지 이실직고하게 만들어야지.”


“좀…… 위험하지 않아요?”


“뭐가?”


“경위님 말대로 다른 모든 흔적을 싹 지워버릴 정도로 치밀한 놈들인데 일부러 가게 안의 CCTV는 남겨뒀잖아요. 뭔가 노리는 게 있는 거 같은데……”


“헛소리 하고 있네. 우리가 그 놈들 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 거지. 아마 지금쯤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 거다 그 놈들.”


“글쎄요, 마지막으로 나간 남자가 CCTV 쳐다본 거 경위님도 보셨잖아요.”


“아, 저거 나중에 와서 처리해야겠다~ 이런 생각한 거야. 원래 그런 놈들은 게을러서 중요한 일을 꼭 나중에 미뤘다가 하는 습관이 있어요. 그러니까 나한테 덜미를 잡히는 거지.”


불안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 경위의 시나리오는 뭔가 부자연스럽다. 마치 언제나 빛의 반대편에서만 나타나는 그림자가, 빛의 정면에 서 있는 느낌이다. 그 이질감은 나의 본능에게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면 안 된다고 소리치고 있다.


이런 나의 두려움을 억눌러 준 것은 수진이의 겁먹은 듯한 표정이었다.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던 그녀였는데,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두렵게 만들었을까? 그녀의 얼굴이 그림자로 덮이는 것만은 보고 싶지 않다. 그녀를 지켜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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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갈등 15.04.29 131 4 9쪽
16 결투 15.04.28 169 1 10쪽
15 해결책 15.04.27 134 2 8쪽
14 이판사판 15.04.26 254 2 8쪽
13 시체 +4 15.04.22 215 3 8쪽
12 트라우마 15.04.18 188 2 8쪽
11 진실 15.04.17 206 3 8쪽
10 재회 15.04.16 283 2 9쪽
9 계략 15.04.15 228 2 8쪽
8 다시 전장으로 15.04.12 273 2 11쪽
7 만남 +1 15.04.11 334 1 13쪽
6 협박 15.04.10 282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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