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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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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otoxin
작품등록일 :
2015.04.05 21:01
최근연재일 :
2015.05.09 21:33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5,353
추천수 :
60
글자수 :
99,831

작성
15.04.09 17:54
조회
518
추천
7
글자
9쪽

검은 양복

.




DUMMY

8. 검은 양복


“어휴 선배님, 왜 또 나오셨어요?”


“너 내가 오는 게 어지간히도 싫은가 보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은퇴도 하셨으면 좀 쉬셔야죠. 저번에 CCTV자료도 그렇고,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그 때 그 자수하러 온 남자랑 상관 있는 거에요?”


“그래. 뭔가 있어. 그것도 아주 큰 뭔가가.”


“”선배님이 워커홀릭인건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네요. 은퇴하고 가족들 좀 더 챙기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내 성격에 이런 냄새 나는 사건을 보고 그냥 넘어 갈 것 같더냐?”


“선배님 그렇게 일만 하시다가 이혼 하실 뻔 한적이 한두 번이 아니잖아요. 가족들 생각도 좀 하셔야죠.”


“시끄러워. 세상엔 가족보다 중요한 게 있는 법이야.”


“어이구, 가족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어요.”


“내 신념.”


그래, 가족은 날 이해해줄 것이다. 말 한마디 섞지 않으려는 나의 아내도, 출가한 뒤로 명절 때나 겨우 얼굴 한 번 볼까 하는 나의 자식들도, 나를 이해해 줄 것이다. 나는 뼛속부터 경찰이니까. 범죄자를 잡아야 한다. 세상의 정의를 위해.


“잡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그 검은 양복에 대해서 좀 알아낸 거 있어?”


“아뇨, 쉽지가 않네요. 얼굴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지금 그렇게 가용 인력이 나오질 않아요. 선배님도 우리 부서 상황 아시잖아요.”


“제기랄, 애들 몇 명 좀 풀어봐.”


“신고가 들어온 것도 아니고 그 영상 하나만으로 정식 수사 요청할 수야 없죠.”


“알았다, 알았어. 어쨌든 계속 신경 써줘. 난 이만 가볼게.”


“네, 들어가세요. 아 참, 선배님!”


“왜?”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언제 한 번 밥이나 먹자.”


답답하다. 내 삶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바로 이런 상황일 것이다. 범죄의 냄새를 맡고도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다는 것. 지금까지 많은 범죄자에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하였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안다. 진짜 나쁜 놈들은 오히려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다.


멍하니 하늘을 봤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갑자기 손녀가 보고 싶었다. 곧 있으면 생일인데, 생일 파티에는 꼭 가고 싶었는데…… 그 때까지 이 일을 끝마칠 수 없다면 가지 못하리란 걸 난 너무 잘 알고 있다.


전화가 왔다. 최지호다. 먼저 연락한 적은 없었는데, 무슨 일이지?


“어 뭐냐.”


“경위님. 제가 죽였던 사람…… 누군지 알아냈어요.”


“뭐? 그게 정말이야? 누구야 그게? 아니다, 만나서 얘기하자. 너 지금 어디냐?”


“중상대학교 앞이요.”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 바로 갈게.”


미친 듯이 차를 몰고 정문 앞으로 가자 그가 서 있었다. 어디에 들어가서 얘기 하자는 말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누구야?”


“경위님, 좀 진정하세요. 숨 넘어가겠어요.”


“누구냐니까?”


“LJ건설 이도형 사장이요.”


“뭐……?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사진 보고 알았어요. 그 사람이 맞아요.”


“하지만 그 사람은 지병이 악화 되어서 죽었다고……”


“아니에요, 제가 죽인 게 맞아요.”


“그래, 숨기고 있었던 건가. 기업 이미지 때문에? 아니면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나? 살해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신고조차 안 했다는 것은 뒤가 구리다는 건데……”


“이제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LJ 본사에 가봐야지.”


“괜찮을까요?”


“뭐가.”


“그 검은 양복 말이에요. 분명히 그 검은 양복은 자신들을 추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거에요. 그래서 CCTV를 삭제하지 않고 놔둔 거잖아요. 아마 누가 자신들을 뒤쫓고 있나 확인하려는 생각인 거 같아요. 그냥 이대로 정면으로 가면 그 놈의 의도대로 되는 거밖에 안 되요.”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어서 가자.”


역시 이 사건에 뭔가 흑막이 있다는 내 생각이 맞았다. 그러나 LJ그룹이라니, 생각보다 거대한 사건인 듯 하다. 어째서 LJ 그룹은 이도형 사장이 살해를 당했음에도 모든걸 묻어버리려 한 거지? 어째서, 어째서……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우리는 입구에서부터 진입이 막혔다. 나는 은퇴한 형사일 뿐, 영장도 없이 단신으로 이런 거대한 그룹을 수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바로 코앞에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여태껏 경찰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힘을 등에 업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었나. 지금 내 모습은 혼자서는 소매치기 하나 제대로 잡을 수 없는 늙은 남자일 뿐인 걸까.


“다 틀렸네요.”


체념하는 듯한 최지호의 목소리가 내 귀를 잡아 찢었다.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그래, 생각해 보면 현역에 있을 때도 그랬지. 나는 언제나 내 감만 믿고 움직였다. 정작 중요한 수사 방침이나 계획은 후배들이 맡았었다.


‘어휴, 선배님. 이렇게 선배님 감만 믿고 수사 시작했다가 엄한 사람 피 본 게 한두 번입니까?’


그래, 준식이 말이 이제야 와 닿는다. 그 말을 할 때의 표정까지 생각난다. 그는 나를 믿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내 동료 중 그 누구도 나의 감을 믿지 않았다. 다만 내가 상관이어서 어쩔 수 없이 내 명령을 따랐던 것이었을 뿐.


“어? 경위님. 경위님!”


“뭐야.”


“저…… 저기 좀 보세요.”


“야 지호야. 내가 지금 좀 생각할 게 있거든? 잠시만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


“그 때 그 검은 양복이에요!”


틀림없다. CCTV속 검은 양복이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지 않았지만 체격과 짓뭉개진 양쪽 귀, 이마 왼쪽에 있는 상처까지 그대로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나의 형사로서의 감은 정확하며 내 인생은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테다. LJ그룹의 비리를 잡아내기만 한다면 난 인정받을 것이다. 동료에게도, 가족에게도, 그리고 세상에게도.


나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곧 나와 최지호를 알아차리더니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를 응시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침착하자 신용권.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파고드는 거야.


“남부경찰서 신용권 경위입니다. 잠깐 얘기 좀 하고 싶은데요.”


“뭡니까.”


“3일전 신림동 분식집에서 어떤 여자를 데리고 가셨죠?”


“무슨 얘긴지 모르겠습니다.”


“여자 이름은 최수진. 나이는 20대 초 중반 정도. 키는 165정도에 지적 장애가 있습니다. 저녁 8시경 여러 명의 남자들과 함께 차에 태우고 사라졌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무슨 얘긴지 모르겠습니다.”


“CCTV에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래도 발뺌하실 겁니까?”


“무슨 얘긴지 모르겠습니다.”


“LJ건설 이도형 사장의 죽음과 관련된 여자입니다. 중요 참고인으로서 조사 해야 하는데 현재 행방불명입니다. 같이 서로 가주셔야겠습니다.”


“영장 있습니까?”


“……”


“영장 가지고 오세요.”


“야 이 개새끼야! 최수진 어디 있어!!”


젠장, 또 흥분해 버렸다. 그는 무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보고만 있었다. 그 때 뒤에서 또 다른 검은 양복이 다가왔다.


“팀장님, 전무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래, 곧 가지.”


새로 온 검은 양복이 가버린 후에도 그는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의 꿰뚫는 듯한 눈빛은 형사인 나로서도 견디기 어려웠다.


“신권호 경위님이라고 하셨죠? 저한테 왜 이러시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영장 갖고 정식으로 출석요구서 제출하세요. 더 이상은 할 말 없습니다. 그럼 이만.”


그는 묵직한 발걸음으로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결국 그에게서 알아낸 것은 하나도 없다. 이대로는 다시 원점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생각하자.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LJ 그룹 전무, LJ그룹 전무……


“강진태가 시켰나?”


검은 양복의 걸음이 멈췄다. 제대로 관심조차 갖지 않고 봤던 신문에서의 LJ 그룹 전무의 이름이 생각 난 것은 기적에 가까웠으나 그 효과는 굉장했다. 그의 찰나의 심경변화로 인해 단서를 잡았다고 확신했다.


“강진태 전무가 이 모든 일의 배후였군. 그가 이수진을 납치하라고 지시했던 거야. 그래, 여자는 지금 어디 있지? 벌써 처리했나?”


그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걸어갔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유심히 관찰했지만 그 이후에 어떤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작은 흔들림으로 인해 가장 큰 수확을 얻었다.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최지호를 돌아보았으나 내게 돌아온 것은 그의 불안한 눈빛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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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지옥 15.05.03 152 4 13쪽
19 거래 15.05.02 149 3 16쪽
18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15.05.01 151 2 7쪽
17 갈등 15.04.29 131 4 9쪽
16 결투 15.04.28 169 1 10쪽
15 해결책 15.04.27 134 2 8쪽
14 이판사판 15.04.26 254 2 8쪽
13 시체 +4 15.04.22 215 3 8쪽
12 트라우마 15.04.18 188 2 8쪽
11 진실 15.04.17 206 3 8쪽
10 재회 15.04.16 283 2 9쪽
9 계략 15.04.15 229 2 8쪽
8 다시 전장으로 15.04.12 273 2 11쪽
7 만남 +1 15.04.11 334 1 13쪽
6 협박 15.04.10 282 2 16쪽
» 검은 양복 +2 15.04.09 519 7 9쪽
4 그림자 +1 15.04.08 267 3 11쪽
3 추적 15.04.07 292 3 12쪽
2 자백 +1 15.04.06 311 3 12쪽
1 기억 15.04.05 342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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