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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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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otoxin
작품등록일 :
2015.04.05 21:01
최근연재일 :
2015.05.09 21:33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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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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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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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31

작성
15.05.0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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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지옥

.




DUMMY

25. 지옥


잠에서 깬 것은 이른 새벽이었다. 병원의 아침은 아직 시작하지 않은 시각, 아무리 겪어도 익숙하지 않은 통증에 잠을 설쳤다. 어느덧 입원한지도 5일이 지났다. 지호는 나를 구하기 위해 힘들게 얻은 이도형 사장의 시체를 강진태에게 넘겼고, 그 덕택에 나는 죽지 않고 이렇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면서 천천히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아직은 쌀쌀한 공기가 나의 뜨거운 몸을 식혀 주는듯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지호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히 증거를 수집하고 자신의 살인을 증명하겠다고 했다. 사실 나는 그러한 지호의 결심에 있어서 부정적이다. 사건 발생 이후로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고, 이도형 사장의 시체 외에는 그의 살인을 증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지호의 각오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아, 응원한다는 말을 건넸다.


나는 이제 지쳤다. 형사 생활을 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어느새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신념은 아지랑이가 사라지듯 그렇게 사그라져버렸다.


조용한 병원 생활이 마음에 든다. 6인실이지만 현재 입원해 있는 병석은 나를 포함해 3개밖에 없었고, 다들 노인네들이라 그런지 말이 없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노후를 즐길 것이다. 더 이상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새하얀 옷을 입은 간호사가 내게 다가와 체온을 잰다. 37도. 살짝 높긴 하지만 그리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나이도 있으니 무리한 운동은 삼가라며, 짓궂게 농을 던지는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조용한 병원 생활이 어느덧 내게도 여유를 찾아주었나 보다.


그 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신권호씨 되십니까?”


“네, 그런데요.”


“지금 혹시 들고 계신 물건이 있습니까? 아니면 주의를 요하는 환경에 있나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죠?”


“진정하고 들으세요…. 어젯밤 아드님 댁에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화…재요?”


“네. 자세한 원인은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안타깝게도 아드님 가족이 전부 사망했습니다.”


“전부… 사망…? 그럼 은진이도…?”


“은진이요?”


“손녀, 내 손녀는 어떻게 됐습니까! 손녀도 죽었단 말입니까?”


“네, 일가족 전부 사망입니다. 그리고……”


그 뒤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죽었다니. 은진이가? 내 사랑하는 손녀가? 죽었다고? 불에 타 죽어? 뜨거운 화마(火魔)가 그 가녀린 몸을 불태웠단 말인가? 도대체 왜? 사고? 사고인가? 난로도 없는 일반 주택에서 화재가? 가스를 켜놨었나? 어떻게 불이 나서, 피하지도 못했다고? 어떻게 은진이가 죽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

.

정신이 들었을 땐, 의사와 간호사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의사는 간호사에게 뭔가를 지시했고, 그 중 몇 명이 어디론가 바쁘게 뛰어갔다. 그러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세상의 종말이다.


“신권호씨, 얘기 들었습니다. 괜찮습니까?”


“….”


“신권호씨, 제 말 들리세요? 여긴 병원입니다. 저는 담당 의사구요. 절 알아보시겠어요?”


“….”


“충격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패닉 상태에 빠졌어. 혹시 모르니 진정제 투여를 준비하고….”


“퇴원하겠습니다.”


“네?”


“퇴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신권호씨, 심정은 이해하지만 아직 퇴원해도 될 상황이 아닙니다. 안정을 취해야 해요. 이대로 무리하게 밖으로 나가셨다가는….”


“이 씨발새끼야! 퇴원하겠다고!”


알 것 같다. 이건 사고가 아니다. 사고 일리가 없다. 나는 내 아들을 알고 있다. 그렇게 조심성이 많은 아들이, 딸을 그토록 아끼는 아들이 그깟 불이 난다고 은진이를 죽게 내버려 뒀을 리가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은진이만은 살렸을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방화다. 누군가가 명백히 의지를 갖고 불을 질렀으며, 은진이와 아들 부부가 살아남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그 누군가의 정체는 명백하다. 강진태다.


퇴원수속을 마치자마자 무기를 챙기러 갔다. 이건 같잖은 피스톨 몇 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출소한 뒤 호형호제 하던 밀매상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거처로 향했다. 무기 밀매가 불법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내게 중요하지 않다. 퇴직금을 전부 현금으로 찾아 가방에 쑤셔 넣고 거래 장소로 향했다.


"형님, 이게 어쩐 일이십니까? 평소에 연락도 잘 안 하시던 분이…. 별 일 없으시죠?"


"별 일 있다. 부탁한 무기는 다 준비됐어?"


"네, 그게 준비 되긴 했는데… 형님 이거 대체 어디에 쓰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혼자 전쟁이라도 나가십니까?"


"그건 네가 알 거 없다. 빨리 내놔."


"알 거 있습니다 형님. 이 정도 무기가 풀리면 사고가 나도 크게 날 거 아니에요? 그럼 저희 다 죽습니다."


"너한테 피해 안 가게 하마. 걱정 마라."


"아니, 형님. 그걸 제가 어떻게 믿습니까? 막말로 형님이 함정수사 파는 건지도 모르고, 저야 형님을 최대한 믿으려고 하지만…."


[푹!]


"혀, 형님…?"


밀매상은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 기 전에 절명해버렸다. 피가 튈 것을 염려해 칼을 뽑지는 않았다. 시체를 숨길 필요도 없다. 어차피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나는 이런 부류를 잘 알고 있다. 처음 불렀던 금액보다 더 높은 금액을 부르려는 수작이다. 애초에 지금 갖고 있는 돈 이외에 현금을 마련할 방법도 없고, 있다고 해도 시간을 끌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를 죽이고 무기를 가져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자동권총 두 정과 SMG한 정, 수류탄 2발, 탄환 200여 개. 내가 가진 전부다. 강진태를 용서할 수 없다. 그를 죽여야 한다. 그의 수하들도 죽여야 한다. 그들의 목숨을 다 합쳐도 은진이의 목숨의 100분의 1정도의 값어치도 없지만 그들을 살려둘 수는 없다. 기필코 죽여야 한다.


이도형의 시체 내부에 발신기를 넣어두었다. 그들의 아지트를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시체가 있는 곳에 강진태가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시체가 있었던 곳이지. 최신 GPS 장치로 발신기가 지나온 모든 행적을 알 수 있다. 하나하나 짚어 가보면 그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들을 죽일 것이다.


죽인 후에는? 당연히 나도 죽을 것이다. 이젠 살아갈 이유가 없어졌다. 은진이의 복수를 한 뒤에는 나도 은진이를 따라갈 것이다.


무기들을 다시 한번 점검한 뒤, 엑셀을 밟았다. 이 지옥에서는 1분 1초도 숨을 쉴 수가 없다. 악마가 있는 곳이 지옥이 아니다. 천사가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언제부터인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때에는 이미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운전을 하면서 자꾸 눈물이 흘렀다. 이를 악물어봐도 핸들을 부서지도록 꽉 잡아도 눈물은 쉴 새 없이 내 늙고 거친 피부를 적셨다. 시야가 흐릿해서 GPS에 표시된 지도는커녕, 신호조차 보이지 않아 사고가 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소매로 눈을 수십, 수백 번 비벼대며 운전을 했다.


GPS에서 알려주는 시체가 있는 장소는, 한남동의 한 주택이었다. 잠복근무할 때 쓰던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초인종을 눌러보았다. 누군가 대답을 하면 적당히 둘러대어 나오게 한 뒤, 바로 총을 쏴서 죽인 뒤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누가 나오던 간에.


하지만 장전을 하고 소음기를 부착한 후에도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아무도 없나 싶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만약 강진태가 안에 없다고 하더라도 시체를 훔치면 강진태는 나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강진태를 불러내서 죽이자.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천둥소리에 맞춰 잠금 장치를 총으로 쏴 부셔버린 뒤 안으로 들어갔다. 발소리를 죽이기 위해 구두를 벗은 후 천천히 집안을 살폈다. 2층 복도 맨 끝 방까지 살핀 후에야 이 집에는 아무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시체는 어디에 있는 걸까.


1층으로 내려와 서재에 들어갔다. 이 곳에 혹시라도 강진태의 행방에 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지만 딱히 수확은 없었다. 허탈해하며 시체를 찾으려 하는데, 책장 뒤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이 뒤에 뭔가 있다. 아마도 비밀 문일 것이다. 마약 사범들을 잡을 때 그들이 설치해 놓은 비밀 공간을 찾은 경험을 바탕으로 서재를 샅샅이 조사했다. 결국, 책들 사이에 꽂혀 있는 책 모양의 나무 모형을 찾아냈고, 그것을 잡아 당기자 책장이 스르르 열리기 시작했다.


계단이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으로 보아 지하실과 연결 되어 있는 듯 했다. 조명이 그리 밝지 않아 선글라스를 벗은 뒤 총을 겨누고 천천히 내려갔다. 유리 같은 것이 깨지는 듯한 소음이 간간히 들렸기에 방향은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계단 끝에 있는 문을 열자마자 내가 본 것은 수많은 시체들이었다. 뭔지 모를 액체 속에 담겨 있는 시체들은 거대한 유리관 속에서 그렇게 안식을 취하지도 못한 채 서있었다. 지하실은 큰 사각형의 모양으로 되어 있고 유리관 또한 벽을 따라 사각형으로 정렬되어 있었다. 시체들의 방향은 모두 지하실 가운데를 향해 있었다. 남자, 여자,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다양한 시체들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이 빌어먹을 지하실의 주인이 한 가운데에 있었다. 등을 보인 채 안락의자에 앉아 시체들을 감상하고 있는 그의 발 밑에는 여러 개의 술병이 산산조각 난 상태로 뒹굴고 있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웃다가, 소리지르며 화내다가, 다시 웃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강진태.”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손에 든 술병을 다시 입에 가져가려 하는 그의 모습에 미칠 듯한 분노가 솟아 올랐다.


“강진태!!”


그제서야 나를 돌아보는 그의 눈빛은 상당히 풀려 있었다. 단순히 술에 취한 것이라 보기엔 너무도 분위기가 이상했다. 짐작하건대 그는 마약을 복용한 상태인 것 같았다.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는 의외로 내가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흐흐…. 이게 누구야. 신 경위님 아니신가? 이런 누추한 곳엔 어떻게 납시었나 모르겠군. 와서 한잔 하시지 그래. 좋은 술과 좋은 경치. 여기가 천국 아니겠나?”


“이 미친 새끼…. 경호원들은 없나?”


“우리 애들? 다들 바빠서 말이지. 빌어먹을 짭새 들이 숨통을 조여 오는데 내 옆에서 노닥거릴 시간이 있겠어? 회사로 가보시게나. 보고 싶은 얼굴들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여기 왜 왔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응? 그러고 보니, 여긴 왜 왔나?”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나를 기만하려는 것인가?


“어째서…. 난 더 이상 네놈을 성가시게 굴 사소한 이유조차 없었지 않았나. 어째서 은진이를 죽인 거야!!”


“뭔 소리야?”


“네놈이 불을 지른 것 다 알고 있다. 이 개 같은 새끼.”


“불을 질러? 내가? 왜? 쓸모도 없는 너와 강도형의 시체를 바꾼 다음엔 너한테 신경조차 안 썼어.”


“거짓말하지 마라. 네놈이 아니면 누가 그런 짓을 했다는 거냐.”


“내가 알게 뭐야? 킬킬킬.”


“이 씨발새끼!”


총을 들어 그의 이마를 겨냥했다. 이대로 방아쇠를 당겨 버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 하지만 나는 아직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다. 혹시, 만에 하나라도 은진이를 죽인 것이 강진태가 아니면?


강진태가 천천히 일어섰다. 총상이 아직 다 낫지 않았는지 붕대를 두르고 있는 상태였다. 마약조차도 그의 고통은 완전히 지우지 못했는지 살짝 신음했지만 이내 곧 자세를 가다듬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비열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누군지 알 것 같아. 네 손녀를 죽인 놈.”


“뭐?”


“너도 알다시피 내겐 네놈의 손녀를 죽일 이유가 없어. 가만 내버려둬도 알아서 찌그러져 살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수많은 사람에게 고문과 협박을 했었지. 그리고 그 후에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알고 있어. 너는 특별하지 않아. 아마도 최대한 몸을 숨긴 채 쥐새끼처럼 굴속에서 웅크려 살아갔겠지. 그런데 내가 굳이 네 소중한 것을 없애서 자극시킨다? 말이 안되지 않나?”


“그럼….”


“잘 생각해봐. 네 손녀가 죽는다면 네가 누굴 의심할까? 그리고 너는 어떻게 행동할까? 불 보듯 뻔한 일이지. 네놈 성격에 앞뒤 가리지 않고 복수하리란 건 누구라도 짐작 가능할거야. 그럼 여기서, 만약 네가 잘못된 복수에 성공한다면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은 누구일까?”


“이우혁….”


악마의 미친듯한 웃음소리가 내 고막을 찢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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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15.05.01 150 2 7쪽
17 갈등 15.04.29 131 4 9쪽
16 결투 15.04.28 169 1 10쪽
15 해결책 15.04.27 134 2 8쪽
14 이판사판 15.04.26 254 2 8쪽
13 시체 +4 15.04.22 215 3 8쪽
12 트라우마 15.04.18 188 2 8쪽
11 진실 15.04.17 206 3 8쪽
10 재회 15.04.16 283 2 9쪽
9 계략 15.04.15 228 2 8쪽
8 다시 전장으로 15.04.12 273 2 11쪽
7 만남 +1 15.04.11 333 1 13쪽
6 협박 15.04.10 282 2 16쪽
5 검은 양복 +2 15.04.09 518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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