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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2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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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93,659

작성
22.08.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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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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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8. 무림으로 18

DUMMY

“왜 그 맛이 안 날까...”


난생 처음 차를 끓여본 나는 맹주가 대접해주었던 그때 그 맛이 나지 않는 용정차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차는 그냥 잎에 뜨거울 물을 붓고 우려내면 되는 게 아닌가? 믹스 커피 비슷한 거지...”


물을 끓일 때 보통 포트를 사용하지, 불 위에 냄비나 주전자를 올려 끓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보니 불의 꿈으로도 커피나 차를 끓이는 법 따위를 배우지 못해 생긴 폐해였다.


“윽...! 이건 너무 오래 끓였나?”


아무래도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붓고 점점 색이 변해가는 모습이 재밌다보니 어디까지 진해지나 보자는 심정으로 계속 끓였더니 쓴맛이 배인 것 같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그런 내 모습을 데미안이 옆에서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그럼 네가 해볼래?”

“응.”


내 권유에 데미안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찻잎 통을 낚아채어 차를 끓였다.

의자 위에 일어서서 차를 높은 곳에서 떨구며 식힘과 동시에 풍미를 더하는데 대체 이런 묘기는 어디서 배운 건지 의문이다.


차가 만족스럽게 우러났는지 데미안은 이를 통째로 들고...


“응?!”


튀었다.


“야! 어디가!”


아니, 도망갔다는 표현은 맞지 않은 것 같다.

마치 그 차가 자신의 것이라도 되는 양 당당하게 가져갔으니까.

그리고 그걸 땀을 흘리고 마실 것을 찾고 있는 유피에게 건네줬다.


“너무하잖아...”

“차를 아주 잘 끓였군.”


유피의 칭찬을 받고 볼을 붉히는 데미안을 보니 화를 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래. 그 나이 대는 동경하는 사람이 생기면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지.”


나도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놓는 유피를 동경했던 시절도 있었기에 그런 데미안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었다.


“벗이여, 왔는가.”

“오늘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어?”


모두 수업으로 인해 지쳤는지 기맹철이 운전한 차를 타고 집에 왔을 때 나를 반겨준 이는 청명 밖에 없었다.

장자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미나는 피곤한지 먼저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으며 나는 천마에게 받은 차의 맛이 궁금해 곧장 부엌으로 들어갔다 지금 이렇게 나온 것이다.


“오빠! 그 차를 다 가져가면 어떡해! 나눠먹어야지!”


내가 끓여주는 차를 기다리던 청명은 내가 늦자 밖으로 나왔다가 찻주전자를 통째로 손에 들고 있는 데미안을 보고 한 소리했다.


‘데미안은 오빠고 우리는 오라버니인가...’


어쩐지 이긴 것 같은 기분이다.


“부우-”


실망이 큰지 청명은 볼을 부풀렸다.

데미안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스친다.

데미안은 어린 여동생에게 혼이 났다는 생각에서인지 잔뜩 풀이 죽었다.


그 모습에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청명에게 자신 있게 차를 대접한다고 해놓은 참인데 이상한 맛이 나는 차를 끓여줬다면 ‘오라버니’로서의 체면이 안 살았을 테니까.


20대, 한창 동생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나이다.

유피와 나는 둘의 일은 둘이 알아서 해결하게 두고 서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


모든 이야기를 들은 유피는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 안나? 천마가 널 무시한 거잖아.”

“패자는 말이 없는 법. 그리고 다음번엔 이길 것이니 상관없다.”


유피는 이상한 부분에서 마음이 넓었다.


‘유피는 과연 대인배인가, 소인배인가...’


연주 중 실수 몇 번했다고 벼락을 떨군 주제에 이런 곳에선 또 이상하게 관대했다.

나는 속으로 만일 신에게 혈액형이 있다면 그는 분명 B형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너희는? 오늘 수업은 어땠어?”

“아, 벗이여 큰일 났다.”


내 물음에 유피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과연 그가 큰일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면 과연 어느 정도의 일일까.

나 또한 덩달아 심각해져서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우린 아무래도 무공을 익힐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게까지 충격적이진 않았다.

다음세대의 신이 무공을 익히지 못한다는 건 일종의 상식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무위자연의 특성으로 무공을 익힐 수 없는 장자가 만들고 직접 익히기까지 한 것이기에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예상범위 내였다.


무공과 무림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배운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만족을...


“슬프다...”


할 수 없었다.

만족하지 못했다.

이건 잔뜩 기대만 품은 꼴이 아닌가.


어쩌면 우리가 무공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수도 있는 것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나는 좌절했다.


그런 나를 보며 유피는 말을 더했다.


“정확히는 우리가 태극양의신공을 익히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하는 게 맞겠군.”

“그게 그거 아니야?”

“그렇지 않다. 미나는 익혔으니까.”


이보다 최악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늘 위에도 하늘이 있듯이 저 밑바닥 밑에도 바닥은 있는 법이었다.


“이제 미나를 성으로 부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애칭으로 부르네... 알았으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자세히 설명해줘 봐. 내가 살면서 재능 없다는 소리는 또 못 들어봤거든?”


유피는 내가 천마의 초대를 받고 떠나있는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우리가 익히려는 무공이 기를 음과 양으로 나누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걸 벗도 알 것이라 생각한다.”“그래, 그게 첫 단계지. 그 원심분리기... 날 단숨에 기절시키고 우릴 다 함께 토쟁이로 만든 그 사악한...!”


유피는 그 때 자신은 토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려했지만 굳이 코르가 열심히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데 초를 치고 싶지 않아 침묵을 지켜줬다.


“그래, 우리는 그것이 자의적으로 불가능하다.”

“왜?”

“지금 한 번 마나를 모아보겠나?”


나는 순순히 유피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리고 그 마나를 저기 나무에 대보아라.”


이번에도 나는 유피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치이이이익!


그러자 나무에 불이 붙었다.


“역시... 벗은 그런 식으로 나타나는 군. 나는 불까지 붙지는 않았지만 나무가 까맣게 지져졌다.”

“설마...!”

“이제 좀 눈치챈 모양이군. 우리가 불러들이는 마나는 이미 그 자체로 양의 성질을 띤다. 아니, 띨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음의 마나에 대한 지분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권능은 말 그대로 신이 가진 이 세계에 대한 영향력이 형태를 지닌 것이다.

다른 말로는 지분(持分)... 이 세계의 자연에서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가졌느냐.

그 크기는 권능의 랭크로 표기된다.


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건 인간들의 신앙뿐... 그들의 무의식이, 그들이 가지는 티끌만한 지분이 우리에게 손을 더해주는 것뿐이지만 지금 상황과는 크게 관계없었다.


지금 문제는 이미 속성이 고정된 우리가 음의 마나를 독자적으로 운용할 방법이 없다는 거였으니까.


“하아~ 나는 불의 신이고 유피 너는...”

“천공의 신이면서도 번개의 신이지.”


양(陽)이 상징하는 것은 태양, 남자, 빛, 불, 하늘, 팽창 따위...

장자는 번개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벼락은 빛과 불, 그리고 하늘이 섞인 것이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 벽조목(霹棗木)을 양기가 가득했다고 믿는 것처럼 번개는 그 자체로 양기의 극한이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둘 다 남자고... 미나는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미나는 우리와 경우가 많이 다르지 않나. 전생에는 여신이었으며 아름다움이란 속성을 따지지 않는 법이니까. 더군다나 현생은 남자이니...”


난제도 이런 난제가 없다.

이미 순수한 양으로서 존재하는데 어떻게 그 안에서 또 음을 분리해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실의에 빠져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내가 맹에 가기 전 가장 우려했던 사태가 터진 것이었다.


“흠흠!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이 ‘애제자’ 미나 님에게 물어보도록 해!”


먼저 진도를 나간 친구가 으스대는 걸 지켜봐야만 하다니...


미나는 ‘애제자’라는 말을 특히나 강조했는데 그 사이 장자와 많이 친해진 모양이다.

미나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우리의 주위를 알짱거리며, 자신이 배운 내용을 우리 앞에서 선보이곤 한참동안 더 으스대다가 우리가 더 참지 못할쯤이 되어서야 잽싸게 도망갔다.


그 유피마저도 이때만큼은 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조금... 열 받는군.”

“동감이야.”


모든 면에서 뛰어난 그에게 있어 자신의 부족함을 직시하는 건 꽤나 힘든 일일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상황에 당황한 것은 장자 또한 마찬가지.


“하아~”

“후우~”


한 명은 계속 치고 나가는데 우리는 이렇게 멈춰 서게 된 듯한 상황이 익숙하지 않아 우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더 흘렀다.

여기까지 와서 얻은 것 없이 가기엔 너무 억울했던 우리는 계속 머리를 맞대며 방법을 강구했고 우리가 온 뒤로 항상 유피 곁에 붙어 다니던 데미안은 이로 인해 조금 심술이 난 듯 보였다.


“흠, 흐음~ 난 오늘 여기까지 배웠는데 말이야. 허접들을 위해 이 몸이 조금 도움을 줄 수도...”


미나는 혼자서만 수업을 하는 상황이 이제 좀 심심해졌는지 자꾸 우리 곁을 얼쩡거렸는데 차마 도와줄 테니 같이 고민해보자라는 말은 안 나오나 보다.


“방해다. 저리 가라. 덴브리던.”


유피는 화가 났는지 다시 미나를 성으로 불렀다.

“이, 이익! 여긴 제대로 수련하는 사람이 쓰는 곳이거든! 너는 이런 거 못하지!”

“......”


미나는 관심이 고픈지 이번에도 자신이 배운 것을 자랑해봤지만 더 이상 유피가 어떠한 반응도 관심도 주지 않자 볼을 부풀렸다.


“코르, 저거 버리고 나랑 가자. 쟨 못하지만 넌 할 수 있는 거 알아. 음에 대한 지분이 필요한 거면 권능으로 성별만 바꾸면 되잖아.”


미나는 이상한 부분에서 날카로웠다.


“미안...”


내 소중이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러고 싶진 않았다.

설마 나까지 거절할 줄은 몰랐는지 잔뜩 심통이 난 미나는 부러 발을 쿵쾅대며 장자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드디어 방해꾼이 사라졌군.”

“유피 너 혹시...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느 집엔 이런 거 없지.’ 라는 말 알아?”


유피와 미나의 모습이 꼭 동백꽃에 나오는 점순이와 주인공을 보는 것 같아 나는 결국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 문학 쪽인가? 미안하지만 잘 모르겠군. 그리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제 새로운 두뇌가 필요한 때인 듯하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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