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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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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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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8. 무림으로 2

DUMMY

리버스의 원로가 무림 측에 스파이로 있다.

그 충격적인 사실보다 더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장자’라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종족.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하나라는 장자가 사실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상징한다는 ‘사티로스’라니...


사티로스, 상체는 인간 하반신은 염소인 반인반수.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시종.

때때로 숲의 신, 판과 동일시되기도 하며 장난과 색을 좋아하기에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정확히는 사티로스(Satyr)가 아닌 실레노스(Silenus)지만...’


그게 그거니까 상관없다.

실레노스는 늙은 사티로스를 뜻하는 말로 알브하임이 결국 엘프인 것처럼 사티로스의 상위종을 뜻하는 말이니까.


나는 장자가 여성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어도 사티로스라는 건 차마 인정할 수 없어 몇 번이고 상태창을 재확인했지만 그래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상태창에 나오는 무위자연(無爲自然), 조삼모사(朝三暮四), 호접지몽(胡蝶之夢) 따위가 눈앞의 존재야말로 내가 아는 장자가 맞다는 걸 증명했다.


위 세 단어 모두 장자의 일화에 등장하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한 분은~ 제가 누군지 이미 눈치채신 것 같네요~”


유피와 미나도 이 낯선 존재의 정체가 궁금한 건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답을 구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무림의 영역에서 그녀의 정체를 밝히는 건 그리 좋지 못하다고 판단.

나는 그저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미뤘다.


이런 내 모습에 장자가 짓궂게 웃는다.


“현명하시어요. 그건 그렇고 제 정체를 단번에 꿰뚫어 보다니... 정~말 좋은 눈이여요. 과연 현자의 눈이라는 걸까요~? 불의 신이시여, 혹시 저를 어여삐 여기시어 저와 항상 같은 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시나요~? 우후훗, 현자의 눈은 역시 현자에게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은 없으신지요~?”


원로는 역시 원로라는 걸까?

내가 만난 원로들은 모두 나와 눈을 마주치고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일신의 무력이 강력한 것도 있겠지만 저 바벨의 현자란 이름이 무언가 역할을 해주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을 마주할 때면 그들과 연결된 어떤 거대한 존재가 느껴지곤 했으니까.


어쨌든 답지 않게 애교를 떠는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러했다.


“이젠 염소도 개소리를 할 줄 아네?”

“아줌마, 술 냄새랑 염소냄새 나거든요? 좀 떨어지지 그래요?”


내 매도에 맞추어 미나도 한 소리를 했는데 아마 그 정체를 알고서 말했다기보다는 조향사로서 일할 만큼 후각이 뛰어나기에 미처 감추지 못한 장자의 냄새를 맡은 것 같다.


‘이게 미나의 개인 특성인 천부의 후각의 능력인가... 아니면 향기라는 기원 때문에.’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미나가 만든 향유를 받아봐야겠다.


“코르 구운~ 덴브리던 구운~ 흑흑, 정말 너무 하시어요... 저도 한 떨기 가녀린 여인에 불과한데...”


말은 농담조로 그렇게 했지만 장자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두 손을 펴 보이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브웨엑!”


몹쓸 애교에 옆에서 미나가 헛구역질하는 시늉을 했다.

미움을 사도 단단히 산 모양이다.


‘특성부터 기술까지 내가 만난 원로들 중에서 전투력만큼은 가장 높나?’


마코데모 원로도, 엘레나 쌤도 전투에서만큼은 그녀보다 약한 것 같았다.


‘구름에 올라 지상을 관조하는 신선(神仙)? 아니, 요선(妖仙)이겠지. 그나저나 아버지도 원로라면 기본적인 전투력은 있다는 건데...’


그날 아버지와 만났을 때 상태창을 확인하지 못한 게 새삼 아쉬웠다.


‘상대의 강함을 알아보기 위해선 단순히 기술의 랭크만을 보아서는 안 되지.’


특성과 각 기술들의 연계를 봐야 한다.

검술이 오직 전투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협상이 전투에서 사용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 것처럼 각 기술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장자는 기술의 조합이 매우 훌륭했다.


장자의 협상기술인 조삼모사(朝三暮四)는 그녀가 펼치는 환술에 대한 신빙성을 높여줄 것이며 그녀의 환술은 그녀의 도술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또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특성.

그녀의 일화가 특성으로 승화된 것으로 보이는 그것은...


[부정 특성: 무위자연(無爲自然)(Rank:A-)]


「자연적이지 않은 것을 무위로 돌려보낼 수 있습니다.

자신 역시 그 대상에 포함되며 A랭크 이상의 무위자연은 성형을 한 사람에게 단순히 손을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 성형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릴 만큼 강력합니다.


-모든 인위적인 것을 무효화시킵니다. 단, 그 범위는 자신마저 포함시킵니다.」


강력했다.

상태창이 직접적으로 ‘강력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나조차 처음 보는 것이었다.


‘확실히 강력하다고 표현할만해. 장자의 일생 그 자체가 쓰여 있는 특성이니까.’


-저건... 부정 특성이자 고유 특성이군. 역사의 체현과 다름이 없다.


장자의 내편 7개 중, 마지막에는 ‘혼돈의 죽음’이라는 일화가 쓰여 있는데 이곳에 ‘무위자연’에 대한 글귀가 나온다.


「남해의 제왕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제왕을 흘이라 하며, 중앙의 제왕을 혼돈이라 한다.

숙과 흘이 어느 때, 혼돈의 땅에서 만나게 되었다.

혼돈이 이들을 매우 잘 대접하려 숙과 흘은 혼돈의 은덕을 갚을 방법을 의논하여 말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7개의 구멍을 가지고 보고, 듣고, 먹고, 숨쉬고 있는데 혼돈만은 이것을 가지고 있지 않소. 그에게도 구멍을 뚫어 봅시다.”


그리고는 혼돈의 몸에 하루에 한 구멍씩 뚫어 나갔는데, 7일 만에 혼돈은 죽고 말았다.」


여기까지가 바로 혼돈의 죽음이라는 일화이다.


사람을 억지로 어떠한 기준에 맞추지 말고 난 그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장자의 가치관을 나타낸 것이다.


‘자연에 인위를 가하는 순간 자연은 스러져버린다는 은유적인 내용. 그렇기에 무위자연. 그런데 내 눈앞에 있는 존재가 그 장자라고?’


상태창까지 확인해놓고 이제 와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마는 지금 내 눈앞의 존재는 아무리 봐도 무위자연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장자에 관한 이 설화까지 고려한다면 납득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장자가 가지는 또 다른 이름이 바로 남화노선(南華老仙)임을 생각한다면...


남화노선은 삼국지에서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장각에게 태평요술서를 전해주었다는 전설적인 인물로 이후 장각은 이를 익혀 도사가 되고 도교의 한 종파인 태평도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정치를 떠나 세속을 초탈한 삶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던 장자가 세상을 평안하게 하라면서 장각에게 태평요술서를 전해준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세상은 오히려 더 혼탁해졌으니까.


‘이 장자는 남화노선으로서의 장자겠지.’


나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리버스 제 4원로, 무림에서는 남화노선이라 불리는 장노가 다음세대의 신들께 뒤늦게나마 인사 올리어요.”


장자는 우리의 대화가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게 음막(音膜)을 펼치고는 예를 취했다.

분명 예법은 완벽했지만 그 말투 때문인지 이조차 장난스럽게 느껴졌다.


‘리버스의 제 4원로면 현재 리버스의 원로 중 4번째로 오래됐다는 이라는 뜻인가?’


모습을 몰라도 장자라는 이름의 원로에 대해서는 들어봤는지 미나와 유피가 경계를 풀었다.

그 모습에 나도 따라서 경계심을 낮췄다.


“회수임무를 도와줄 현장요원이 그대였는가. 하하, 원로들도 만나보기 어렵다는 장자를 이리 만나게 될 줄이야.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가 이래서였군.”


무림에서 첩자 일을 하느라 이렇게 대외활동이 적었던 거냐는 유피의 물음에 장자는 곤란한 듯 웃음을 흘렸다.


“그것도 있고~ 다른 것도...”


뭔가 뒤에 얼버무리는 말이 되게 신경 쓰였다.


“판테온에서 장자가 실존하는 원로인지 내기도 하고 그랬는데 진짜 있었구나. 엘레나가 있다고 말하긴 해서 믿긴 했지만서도.”

“후우~ 그럼 어서 이 위에 오르시어요. 걸음을 서둘러야겠으니.”


장자는 손을 둥글게 말아 거기에 입술을 대고 바람을 불어 구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만들어진 구름을 조형하여 사람 넷이 타기 충분한 모양을 만들고는 먼저 탄 다음 우리에게 어서 올라오라고 말했다.


‘구름 만들기! 유피랑 풍백도 만들던데 생각보다 만들기 쉬운 건가?’


미나는 이 탑승용 구름이 마음에 드는지 벌써 저 위로 올라가 방방 뛰어댔다.

하지만 유피는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고 장자에게 물었다.


“혹여 그대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정리할 생각인가? 그대가 여기서 얼마나 오래, 어떤 생활을 해왔든 이 일을 맡게 된 이상 의심을 피하긴 어려울 게야.”


놀랍게도! 유피는! 장자에게! 걱정을! 표했다!


‘해가 서쪽에서 뜬 건가?!’


나는 곧장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봤고 하늘에는 진짜로 해가 서쪽에 떠있었다.


“헉! 진짜 해가 서쪽에서 떴어!”

“코르, 지금 저 해는 서쪽에서 뜨는 게 아니라 서쪽으로 지고 있는 중이야. 즉, 정상이지.”

“아, 벌써 저녁이구나... 깜짝 놀랐네.”


미나와 내가 만담을 나누는 사이 유피는 추궁에 가까운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고 장자는 마땅한 대답 없이 곤란하다는 듯 웃음만을 흘렸다.


“곤란한가? 제대로 대답하는 것이 하나도 없군. 시간도 늦었으니 오늘은 이쯤 하겠다. 벗도 허기져 보이고...”


아무래도 유피는 아까 내가 말한 진수성찬 발언을 들은 모양이다.

조금 창피했다.


구름을 타고 장자의 거처를 향하는 동안 유피는 천마와의 일전에 대해 떠올리는 듯했고 미나는 구름을 쿡쿡 찌르며 놀았으며 나는 저 아래에 점처럼 보이는 도시를 보며 시간을 때웠다.


비행기를 타는 것과도 용으로 변해 허공을 유영하는 것과도 다른 맛이 구름을 타는 것엔 있었다.


“먼저 들어가 계세요~ 저는 잠시 볼 일이 있어서~ 아, 참! 코르 군이 바라는 진수성찬은 안에 차려두었답니다~”

“놀리지 마라!”


내가 창피함에 약간 볼이 붉어지자 장자는 짓궂게 이를 짚어왔다.

이후 장자는 우리를 자신의 집 앞에 내려준 뒤, 다시 구름을 타고 어딘가로 떠나갔다.

무언가 바쁜 일이 있는 듯했다.


미나는 아직 만족하지 못했는지 구름이 점점 멀어져가자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유피는 아무 말 없이 권능으로 구름을 만들어 미나에게 보내주었다.


그동안 나는 집을 구경했다.

장자의 집은 한국의 전통적인 양식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이게 사합원인가?”


사합원은 우리나라의 한옥과 비슷하지만 ㄷ자 형태로 짓는 한옥과 달리 이는 ㅁ자 모양으로 지어서 사합원이라고 부른다.


“정원은 예쁘네. 술 냄새는 엄청 심하지만.”


알코올엔 마취효과가 있다더니 코가 마비될 정도로 지독한 술 냄새에 견디는 것도 고역인지 미나는 유피가 만들어준 구름을 마스크 대신 쓰며 투덜댔다.


“벗이여, 누군가 있다.”


그때, 아무 생각 없이 더 깊이 들어가려는 나를 유피가 제지했다.


─부스럭


텅 빈 집인 줄 알았으나 안에서 돌연 인기척이 느껴졌다.

심지어 하나가 아닌 둘이다.


이 집의 특수성 때문일까?

상대가 문턱을 넘기까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나는 어쩌면 이 중국이란 땅 자체가 우리들과는 잘 맞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눈을 갖게 되며 모든 것이 내 시야 아래 놓였는데 벌써 타인의 기척을 놓친 게 몇 번째인지...


어쩌면 도술을 사용하는 장자이니만큼 집 안에 무슨 특별한 진법을 설치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함정? 아니면 이중첩자인가?’


-경계심이 많은 건 좋다만, 너는 그게 너무 심하구나. 스스로를 위축시킬 만큼 긴장하지는 말거라.


‘그게 말이 쉽지...’


하지만 이런 ‘목소리’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나의 이런 점 때문에 하마터면 막 내게 조직에 대해 소개하러 온 광원 씨를 실수로 베어버릴 뻔 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나름 변명을 하자면 나는 그때 누나가 조직에 강제로 억류되어있는 줄 알았다.


그렇게 내가 함정부터 시작하여 장자의 배신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할 무렵 안에서 두 사람(?)이 나왔다.


“청명이라고 하옵니다.”

“데미안.”


그 둘은 어떻게 봐도 살수(殺手)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둑 같지고 않았다.


“시종? 아니, 그보다... 어린아이?”


한명은 예의바르게 자신을 소개하고 한명은 귀찮다는 듯 대충 제 이름만을 툭 하고 던졌다.

그래도 그 손님을 맞이하려는 자세만큼은 사용인으로서의 그것이었다.


“뭐야? 얘네? 장자 취향인가? 귀여운 애들로만 모아놨네!”


미나는 아무래도 이 어린 시동들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어느새 코와 입을 가린 구름 마스크를 저 멀리 던져버리고(자신이 준 걸 함부로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지 순간 유피의 눈썹이 좁혀졌다.) 아이들과 시선을 맞추려는 건지 쪼그려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확실히 귀엽기는 하군.”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기어이 냉혹한 유피의 마음마저 함락시킨 모양이다.

유피의 입에서 ‘귀엽다.’라는 말이 나올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나는 순간 내 귀가 멀었는지를 의심했다.


‘어린애한테 친절한 건가? 아니면 역시 해가 서쪽에서!’


-그 서쪽 타령 좀 제발 그만하면 안 되겠나...


결국 ‘목소리’에게 한 소리를 더 듣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내 친구들에게 인간적인 면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 둘... 반응이 평상시와 달라. 이렇게 쉽게 경계심을 풀 만한 애들이 아닌데?’


경계심은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나는 내가 놓친 것이 있나 싶어 한 번 더 주변을 살펴봤다.


‘우선 집안에 최면향 같은 걸 풀어둔 건 아닌 것 같아. 만약 있다고 해도 미나가 먼저 알아 차렸겠지.’


특별히 의심되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화기(火氣)를 일으켜 기관지 주변의 것을 태워도 봤으니 확실하다.


<한정개안(限定開眼)>


나는 만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이번엔 진리의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무언가... 감춰져 있어. 대체 무얼 감추고 있는 거지? 이 집 자체? 안쪽에 무언가 다른 공간이 연결된 것 같은데... 다른 공간이라기보다는 다른 세계인가? 어렵네. 하지만 지금 거랑 관련이 있어보이진 않아.’


마지막으로 나는 두 아이를 확인했다.

광원 씨의 특성처럼 상대방의 적의나 경계심을 낮추는 특성이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좀 더 큰 아이는 남자애고 좀 더 작은 아이가 여자애였다.


어렸을 때는 보통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성장이 빠르다는 것을 생각하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못해도 두세 살 정도 더 나이가 많음을 추론할 수 있었다.


‘남자애한테서 술 냄새가 엄청 심해. 설마 장자가 이런 어린애한테까지 술을 먹인 건 아닐 테고...’


장자에 대해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짧은 만남에서 보여준 모습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든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옆트임이 끝내- 아니, 허벅지를 다 드러낸 치파오와 빗질 한 번 하지 않은 것 같은 더벅머리, 온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와 끝을 늘이는 말투까지 애들이 보고 배워서 좋을 게 하나 없는 글러먹은 어른의 표본과도 같았다.


그래도 코를 찌르는, 맥주 따위를 오래 방치해서 나는 지린내에 가까운 악취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는 좀 더 고급스러운, 초콜릿 내지는 바닐라에 가까운 향.


‘달다...’


갓난아이의 여린 살결에서나 날 법한 향이 이럴까.

실제로는 전혀 다른 향일 텐데도, 지독한 술 냄새는 분명 어른에게서나 맡을 수 있는 향임에도, 마치 우리에게 ‘당장 이 아이를 보호해!’라고 외치듯 충동적이고 신경 쓰이는 향이었다.


“남자애한테서 코르랑 비슷한 향이 난다. 혹시 코르의 숨겨진...!”


미나는 내가 맡지 못한 무언가를 맡았는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왔다.


“생긴 게 전혀 다르잖아. 나보다는 유피를 더 많이 닮았다고.”


유피와 같은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소년은 혼혈인지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적인 미 또한 품고 있었는데 나는 이 아이 위로 처음 만났을 때의 어린 유피의 모습이 자꾸 겹쳐보였다.


“나랑 닮은 건 오히려 여자애... 쪽?”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스스로가 한 말에 의문을 느꼈다.


‘왜지? 왜 닮았다는 생각이 든 거지?’


분명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어찌 이리도 친숙한 느낌이 드는가.


‘어, 어라?’


그때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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