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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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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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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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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 무림으로 15

DUMMY

‘누구지?’


그는 자신을 막아선 맹의 무인 여럿을 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그래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화왕 늙은이... 본좌가 묫자리라도 봐주기를 바라나?”

“원시천존, 원시천존. 구왕 중 하나인 나를 이리 모질게 대할 수 있는 건 자네밖에 없을 걸세.”

“서신도 없이 방문했으면 그만큼 급한 일이겠지. 아니라면 이 간장과 막야에 처음으로 묻힐 피는 네놈의 것이 될 것이다.”

“에잉~ 거 사람하고는, 남화노선께 하는 것의 반만이라도 내게 해주면 안 되나? 이 몸도 나름 한때 도교팔선의 후보까지 오른 인물인데 말이야.”


─스르릉~


천마가 더는 못 들어주겠다는 듯 검을 뽑았다.

그 소리에 놀라 불청객의 몸에 달라붙은 무인들은 부리나케 방을 빠져나갔다.


그제야 나는 이 초대받지 못한 객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세월이 그 표면에 온화하게 퇴적된 얼굴.

하지만 그 안에선 강맹한 기세가 느껴졌다.


‘마치 폭풍 같이...’


“크흠! 안 되나보군...”

“웃기지 마라. 태상노군은 뒈진 지 오래이며, 이제 별호에 선(仙)을 붙일 수 있는 분은 노사밖에 남지 않았다. 천둔검법조차 잇지 못한 네놈이 화룡진인의 후인이라며 스스로를 화왕진인이라 칭하는 것부터가 우스울 뿐.”

“거참 너무하는군 그래. 안 그래도 화룡진군께서 종남산에서 기거했는지 화산에서 기거했는지 논쟁으로 머리가 아픈데 말이야. 천둔검법(天遁劍法)을 이은 검선께서는 매월당 김시습에게 검을 넘기고....”


그때 아는 이름이 나왔다.


‘매월당 김시습이면... 생육신(生六臣)의 하나?’


*생육신(生六臣): 단종을 몰아낸 세조의 그릇된 처사에 분개하여 벼슬을 하지 않았다는 여섯 사람.


당대 최고의 재능을 지녔다는 인물로 그는 조선 도교의 맥에서 그 시작점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는 불교에 귀의하여 ‘설잠(雪岑)’이라는 법명까지 얻었다.


‘실제 그는 유교, 도교, 불교를 넘나드는 자주적 사상을... 윽! 엘레나 그만!!’


엘레나의 주입식 교육이 그 천둔검법인가 뭔가 보다 더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리라.


‘조선시대의 범죄조직 중 하나인 검계(劍契)의 초대 계주(契主)가 그일지도 모른다고 지나가듯 얘기했었지...’


자그마치 500년 전의 인물.

아마 시간이 흐르며 그 의미가 변질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한 300년 전쯤에 검선의 칭호를 받은 사람이 하나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름이 분명-’


검선(劍仙) 김광택, ‘인재(靭齋)는 혼자 다른 세상에서 노니는 듯했다’는 말로 유명한 야뇌(野餒) 백동수에게 검을 전수한 인물이다.


“화산파의 개파조사이신 화룡진군은 물론 검선까지 그 적(籍)을 종남파에 빼앗길 상황이며... 아니, 무슨 신선 열 가운데 여덟이 종남산에서 등선하느냔 말일세! 이건 문화침탈이야! 종남이 화산의 문화를 예속화하려 하고 있어!”


대충 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 흥미가 진진했다.


‘중국이 중국에게 중국을 당했어?!’


차를 그리 즐기는 것도 아니면서 지금 이 순간 마실 차가 없다는 것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힘든데 내 맘을 달래줄 화산의 매화는 이제 필 생각도 않고... 하아~”


대충 듣기만 해도 총체적 난국인건 알겠다.


“신세한탄을 하러 온 거라면 장소를 잘못 찾아왔다.”

“이래봬도 귀한 손님인데 차 한 잔 내어주지 않을 생각인가? 혹 아직도 우리를 원망하-”


─주르륵!


천마는 화왕이라 불리는 불청객의 머리 위에 자신이 마시다 남은 차를 냅다 들이부어 버렸다.

신세한탄을 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그의 얼굴에서 순간 표정이 사라졌다.


‘설마 K-막장 드라마가 중국에까지 수출된 건가?!’


그 모습에 나는 차는 없어도 좋으니 입에 넣을 달달한 것이라도 있으면 하고 바랐다.

잘 보니 책상 위에 너무 달아서 남긴 다과가 몇 개 보였다.

자연스럽게 의자에 다시 착석하여 이를 먹고 싶었지만 묘하게 눈치가 보여서 참았다.


“하, 하하하! 그래, 차 자알~ 마셨네.”


곧장 검을 뽑을 거라 생각했건만 저 경박해 보이는 불청객은 이를 참아냈다.

그는 그렇게 화산파가 무가임과 동시에 도가이며 그 정점에 선 자신은 무인으로서도 도인으로서도 결코 그 수양이 얕지 않음을 행동으로 증명했다.


“비루먹은 도망자가 고작 찻물 하나 피하지 못하는 군.”

“......그거 아는가? 그는 우리 모두의 진전제자와 다름없었다는 걸. 최초로 무림이 찾은 다음세대에 거는 기대가 무척이나 컸었다는 걸.”


또 다시 내가 모르는 인물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라니...? 대체 누굴 말하는 거지?’


그러고 보니 무림에 적을 둔 다음세대가 하나 있었다고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


‘분명 죽었었다고...’


“그럼 책임 역시 같이 지지 그랬나. 같이 지옥을 거닐어주지 그랬나.”

“맹주는 지금... 우리로 하여금 제자를 베었어야 했다고 말하고 있네.”


분위기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일로 점차 무거워졌다.

나는 이 이야기야말로 구왕, 천마, 장자 사이의 갈등의 시초가 되는 핵심사건임을 직감했다.


“하아~ 그래, 심마에 든 이에게 이성적인 대화는 통하지 않겠지. 그리고 사실 내가 용건이 있는 건 자네가 아니야. 용건이 있는 건 이쪽이지.”


화왕은 차에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대뜸 나를 가리키곤 말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에, 에?! 나?”

“생각보다 작군 그래.”


그렇게 말하는 그는 나보다 작았다.

아무래도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평균 신장이 작았나보다.


“이건 뇌물일세. 나중에 화산으로 한번 놀러와 달라는 뇌물... 가능하면 누이와 함께 꽃구경을 와줬으면 좋겠군. 물론 꽃은 현재 침묵을 선택한 계절의 여신께서 피워주셔야 하겠지만. 하하하!”


아무래도 진짜 목적은 내가 아니라 누나인 모양이다.

현재는 겨울을 제외한 모든 계절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으으로.


“매화차일세.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 들어 소화에 좋은 매실차가 더 당기지만 역시 화산파라면 매화차겠지! 나름 명물이라네!”

“이미 차가 많은데...”


내 손은 이미 천마에게 선물 받은 차들로 인해 한 가득이었다.

하물며 매화차라니...

이름부터가 너무 별로였다.


‘매화는 과거 임금의 대변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지...’


즉, 그가 선물한 차는 임금의 똥으로 끓인 차로도 해석 가능했다.


“표정이 그리 밝지 못하군. 우리 맹주님의 표정도 그리 좋지 못하니 난 이만 가봐야겠어. 다음에는 찻물이 아니라 검강이 날아올 것 같으니까 말이야. 그럼 꼭꼭 다시 뵙기를 바라지!”


뭐랄까... 정말이지 폭풍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 그럼...”

“어, 어... 돌아가 보게나.”


불청객의 등장에 돌아갈 타이밍을 놓친 나는 천마와 다시 한 번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문밖에서는 기맹성이 부동자세로 서있었고 그 옆에는 화왕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한 무인들이 원산폭격을 받고 있었다.

괜히 무인이 아닌지 머리를 박는 곳엔 자그마한 돌 하나가 놓여있었다.


‘으... 아프겠다.’


“대인, 담소는 즐거우셨습니까?”

“나쁘지는... 않았어요. 왜 부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천마의 제의는 무림에 올 생각이 있냐는 한 번의 질문으로 끝이 났다.

이후 어떤 제의나 도발도 하지 않았다.

질문을 무례함은 둘째 치고 그게 꼭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그럼 다시 모시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나는 다시 가마에 올라 눈을 감았다.


***


“정말 쓸데없는 것만을 물어오는 군. 성향의 문젠가?”


코르와의 만남이 혼란스러운 것은 천무극 또한 마찬가지였다.

설마 이런 걸 물어올 줄은 몰랐기에 미리 준비해둔 예상 답변이 다 쓸모없게 됐다.


“그래도 마지막 질문은...”


어딘가를 날카롭게 찔러왔다.

이젠 눈먼 돌에 맞은 개구리의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천마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바로 과거를 지우는 것이다.

누구나 과거에 추태부린 일들은 있을 수밖에 없다.

천마는 신을 표명하나 신이 아니었으며 하물며 저 현존하는 신들조차 완벽을 논하지 못하는데 한낱 인간인 그가 어찌 완벽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오점들은 만인지상의 위정자로서 군림할 때 걸림돌이 된다.

하여 과거를 지운다.


그의 과거를 아는 것은 기맹철을 비롯한 최측근의 몇몇 뿐.


“우습구나.”


저들이 바라는 ‘위정자’는 괴로운 현실을 낫게 하는 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현실을 마주하고 이를 바꾸어가는 영웅이 아니라는 점이... 82대 천마이자 117대 맹주 천무극은 못내 우스웠다.


저 천민들은 그저 괴로운 현실로부터 눈 돌리게 해주는 이를 바란다.

낫게 하는 자가 아닌 잊게 하는 자.


“초대 천마께서는 우리가 결코 천(賤)하지 않고 결국 천(天)에 이를 것이라며 교도들을 천민(天民)이라 칭했다는데 이는 본좌의 부덕함인가...”


염제신농과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천민.

신은 인간과 함께 있을 수 없어 버려두고 간 사생아.

초대 천마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 앞에서 이렇게 선언했다고 한다.


-너희가 그리도 우리가 다르다고, 결코 동등해질 수 없다 외친다면 그래, 그리 되어주마. 기꺼이 천해지겠다. 그리고 그걸 정한 게 너희의 하늘이라면... 천한 것과 귀한 것을 나눈 게 너희 하늘이라면! 나 또한 하늘이 되겠다. 그저 천민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내가 천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내가... 마의 하늘이 되리라! 그리고 모든 천민(賤民)을 본좌의 천민(天民)으로 삼으리라.


이것이 천마신교가 세워진 기원.

그렇게 신교가 탄생했다.


그에 비해 그는 어떻던가.


하나뿐인 친우는 이 손으로 목을 벴다.

존경하는 스승은 무림에서 쫓겨났으며 광마전에서 함께 한 식솔들은 모두 감정을 거세당했다.


“크큭! 그야말로 그린 듯한 천마감이 아닌가.”


-무아야. 너는 크게 될 거란다. 천하를 오시할 재능이 네게 담겼으니 너 자신을 부정치 말거라.


‘가끔은 노사의 그 한 마디가 나를 미치게 하오.’


그가 그 무엇도 놓지 못하는 까닭은 그 스승으로부터 놓아버림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인가.

장자는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마저 가르칠 수 있는 위인이 아니었기에...


“천세! 천세! 천천세! 일영이 신교의 지존을 뵈옵니다.”


코르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의 피부도 드러나지 않게 하겠다는 듯, 온 몸을 검게 휘감은 그림자와 같은 남성이 그 앞에 부복했다.


“바라는 것은 취하셨는지요.”

“전혀. 하지만 상관없다.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았으니까.”


코르를 쉽게 보내주긴 했지만 그들도 불의 존재가 간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체할만한 존재가 있다면?


가치란 기본적으로 희소성에 비례한다.


처음에는 감금과 섭혼술, 마약 등 가지각색의 방법들을 고려했으나 위험도가 너무 높아서 기각.

불의 신을 회유하기 위해 온 무림의 지자(智者)들이 머리를 맞대었으나 해결책은, 제 3의 길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그곳은 바로 혈마전(血魔殿), 과거 혈교(血敎)라 불리던 단체의 잔재였다.


“루마니아에서 온 연락은 아직 없는가?”

“여기 있습니다.”


한때 마교와 같은 성세를 이루었던 혈교에서, 오래 전 연락이 끊겨 교류도 함께 끊긴 그곳에서 기대조차 않은 연락이 왔다.


“지금 혈강시들을 포섭하며 세력을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혈교의 주요 세력이었던 혈강시.

그들은 살아있는 시체이지만 강시와는 달랐다.


현대에 이르러선 뱀파이어, 드라큘라, 밤의 귀족, 흡혈종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된 저주받은 이들.

그것이 바로 무림에서 혈강시라고 불리는 이들의 정체였다.


“쯧, 세력을 원한다면 그저 몸만 오면 될 것을... 대등한 관계를 원하는 것인가?”


천마는 목 끝까지 올라온 ‘주제도 모른다.’는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태양신을 찾았다.」


원하는 것을 찾았으니까.


수요는 많지만 공급이 하나라면 그것은 가치를 감히 매길 수조차 없겠지만 비슷한 것을 더 좋은 조건으로 취할 수 있다면 굳이 터무니없는 대가를 지불하여 다음세대의 불의 신을 곁에 둘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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