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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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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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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93,659

작성
22.08.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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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 무림으로 17

DUMMY

“그때 혈마전의 터를 갈아엎었더라면 지금의 기회도 없었겠죠.”

“......”


혹여 구왕을 옹호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는 발언이었지만 무극은 그 말을 구태여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혈마전의 잔재를 지우려고 했던 자신의 행동이 그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무림은 분명 DMZ가 생기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용혈이었으나 그 많은 무림인들을 감당하기에는 역시 비좁았으니까.


불과 2,0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끊임없이 새로운 문파가 창시되고 사라졌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고착화되어 새로운 중소문파가 생겨나는 걸 보기 어려웠다.


이미 구파일방을 비롯한 대형 문파들은 적폐세력이 되어 무림의 땅을 모조리 독점했으며 새로이 생겨난 신진고수가 문파를 일으켜 생사결을 통해 땅을 빼앗는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후 그 땅을 지키는 것이 문제였다.


천무극은 분명 개인의 무력으론 무림에서 가장 강했지만 그마저도 이런 힘의 역학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교의 땅에서 이젠 유명무실해진 혈마전이 있는 위치를 치워버리고 괜찮은 중소문파에게 넘기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은을 입히고 기존 문파들을 견제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키우려고 했다.


결국에는 구왕들의 만류로 인해 실패했지만 말이다.

당시에는 그저 짜증을 불러일으켰을 뿐인 사건이 이제와 호재로 다가왔다.

이 일을 가지고 잔뜩 뻗대고 으스댈 구왕을 생각하니 머리가 다 아파왔다.


“하아... 태양신과 함께 혈강시들을 포섭한다면 저 하늘을 거스르는 역행자들은 몰라도 성지에 적을 둔 기사단은 확실히 제치겠지.”


이는 각각 리버스와 아발론을 무림에서 표현하는 다른 이름들이었다.


앞으로 이루어질 동맹을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최근 아카데미로 인해 급격히 그 수가 불어난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불어날 아발론은 무림의 입장에서도 위협적인 경쟁자였다.


“천마시여, 좋은 기회임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저는 아무래도 염려가 됩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이 일을 가장 열렬히 추진한 건 자네였을 텐데.”

“그건 맞지만 그냥...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녕 옳은 것인가 하고 걱정이 들어서 말입니다.”

“자세히 설명해라. 갑자기 심정이 바뀐 이유가 무엇이냐.”


새로운 다음세대의 태양신이자 아폴론의 환생, 헬리오스 세르반은 그 권능으로 태양을 볼 수 없는 혈강시들의 저주를 풀어주어 그들을 낮에도 움직일 수 있는 데이 워커(Day Walker)로 만들어 휘하에 두었다.

이들을 끌어들이면 구왕 휘하의 세력들을 견제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은... 혈교는 한때 무림공적으로까지 몰린 단체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힘과는 별개로 이들은 동맹 삼기엔 하자가 있었다.

그들의 의식수준은 고대의 그것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으니까.


지하에서 머물다 이따금 지상으로 올라와 인간들을 납치하여 가축으로 삼는 일을 제외하고는 문명의 흐름을 알지 못했다.


굳이 사람을 잡아먹지 않아도 혈액 팩을 구매하는 것으로 공존할 수 있게 된 지금 그들이 공존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돌연변이에 이은 또 다른 인류의 위험이 될 것인지 또한 또 하나의 논쟁거리였다.


그들에겐 마치 자신들이 중세에서 갑자기 현대로 시간을 건너뛴 듯한 느낌일 것이다.

특히 최근 200년은 인류의 긴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격동의 시기였기에, 그들이 현대에 단기간에 적응하는 것은 요원해보였다.


현대에 적응하지 못한 혈강시는 당연하게도 돌연변이와 마찬가지의 토벌 대상.

이들을 받아들인다면 무림의 이미지가 깎여나가는 것은 필연이었다.


“후우, 본좌의 무림도 많이 나약해졌군. 고작 이런 선택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여러 고민을 해야 한다니.”

“‘궁기’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단 이유로 이미지가 이미 많이 실추된 상황입니다. 이런 선택조차 조심 또 조심해야합니다.”

“세르반 공이 그들을 잘 통제하기를 바랄 수밖에.”

“하지만...!”


말을 이렇게 하긴 했지만 무극 자신조차도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한낱 피주머니로 가축처럼 길러졌을 신이 힘을 얻었다한들 기원전부터 살아온 괴물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가지리라 보긴 어려웠으므로.


저기 역천의 원로들조차 아래로 볼 정도로 긴 역사를 지닌 게 바로 진조들이 아닌가.

아마 지금쯤 잘 세뇌되어 말 잘 듣는 강아지와 다를 바 없으리라.

한낱 인간의 피가 아닌 신혈을 제공하는 고급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 안 된다면 태양신만을 빼내오면 되는 문제다. 무림은... 아니, 본좌는 그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은 그쪽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르반 공 쪽이 더...”


천무극이 혈강시에 대해 걱정할 때 일영은 다음세대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걱정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다음세대의 폭주.


여태 리버스에서 교육을 받은 다음세대를 제외한 신들은 모두 폭주 후 사망했다.

예외가 있다면 오늘 만난 다음세대의 불의 신인 이코르 뿐, 그가 여태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알고자 초대까지 했으나 결국 찾아내지 못했지...’


그저 리버스에서 무언가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격장지계(激將之計)인가... 어쩌면 처음부터 끝까지 역천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는 걸지도.’


천마는 역시 수뇌부들로만 이루어진 정보부가 무능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도 언제 한 번 갈아엎어야겠어. 일영을 제외하고 말이야.’


천마의 생각을 느낀 건지 일영은 왠지 모를 오한에 몸을 떨었다.

나름 무림에선 난다 긴다 하는 고수들이지만 머리 쓰는 재주는 없는지 그들이 내놓은 추측은 언제나 빗나갔다.

당장 이번에 초대한 불의 신과의 대화를 위해 준비한 예상 답변들도 다 틀리지 않았던가.

해온다는 조언도 도움이 되는 일이 오히려 드물었다.


‘정상에 선 이는 굳이 발버둥치지 않아도 모든 것이 내려다보이기에 흐름을 읽는 것에 능숙해진다고 하던데... 이젠 그게 맞는 말인지부터가 의심되는군.’


그래도 그들과 무극의 판단이 일치하는 것이 단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은 공격적으로 세를 불릴 때라는 것.


“지금은 난세다.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겠지.”


그렇기에 리버스의 적의를 사면서까지 그들의 세력 일부를 훔쳐온 것이 아니던가.

별 것 아닌 회사가 대부분이었지만 리버스의 것을 뺏어왔다는 것에 그들은 중점을 두었다.


“아발론과의 2위 싸움은 본좌가 용납하지 못한다.”


2위를 노리며 다투다간 삼대세력이란 위명조차 지키지 못할 수 있다.

지금도 저 밑바닥에서 ‘교단’, ‘개미’, ‘재단’, ‘귀도’, ‘공방’ 등 수많은 세력들이 물밀듯 치고 올라오고 있었으니까.


궁기로 인해 입은 피해는 비단 물질적인 것에만 머물러있지 않았다.

절대강자로 보여야하는 무림의 이미지에 지대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리버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궁기가 무림을 반파시키고 나서야 겨우 사냥 당했다는 등의 헛소문을 퍼뜨렸다.


말 그대로 헛소문이다,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또한 궁기는 설령 리버스라 하여도 피해를 감수해야할 만큼의 강한 적이었다.

그런 대단한 공적이 한낱 미물에게 심장부를 공격당한 칠칠치 못한 행동으로 변모한 상황에 무극은 기가 찼다.


하물며 리버스는 보내오는 종자들은 하나같이 열매는 맺더라도 씨는 맺을 수 없게 조치가 취해져있었다.

먹을 것으로 장난을 치다니 그 치사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영원히 그들에게 식량의 주도권을 넘긴 채 을로 남으란 뜻이다.


“후우... 현재 무림의 식량 사정은 어떻지?”

“예. 진법으로 인해 자체적인 식량 수급량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앞으로 3년 안에 자급자족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입니다.”


그래도 그들 역시 반격을 준비했다.


“만약 태양신을 영입하고 자체적으로 불을 얻는 것까지 성공한다면?”

“1년, 어쩌면 그보다 이하.”


진법의 연구가 끝난 그들은 이제 곧 스스로 식량의 자급화가 가능해진다.

태양신을 영입하면 그 시간은 획기적으로 단축될 것이다.


“리버스로부터의 독립이 머지않았군.”


그때만큼은 그도 기꺼이 축배를 들리라.

설령 독이 든 성배라 한들 한껏 들이키리라.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는 독을 마시려면 접시까지라는 이국의 속담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광마 사태와 같은 일이 또 일어난다면... 어찌될 줄 모릅니다.”


일영은 제 주인이 광마에 관한 일에 무척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말이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보이는 그를 다시 진창에 처박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입을 열고 이야기를 꺼냈다.

이것이 그의 역할이었기에...

그는 무극의 곁에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말하는 ‘다윗의 반지’였다.


“하아... 그래, 아직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한숨이 잦아진다.

천마는 가만히 눈을 감고서 분노를 삭혔다.


과거의 인연은 언제나 그의 족쇄로 작용했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감히 부술 수 없는 족쇄로...


그의 측근들이 장자를 무림에서 내보낸 것이 사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닌지 조심히 추측할 정도로.


“하지만 세르반 공이 이미 20살이 넘긴 것 또한 사실.”


다음세대가 교육을 받지 않을 시 결코 넘지 못한다는 마의 스무 살.

천명이라고까지 일컬어진다는 스무 살이다.

세르반은 코르처럼 이를 넘겼다.


“더군다나 광마 이후로 무림이 완전히 ‘교육’에 대한 연구에서 손을 땐 것도 아니지 않은가. 괜찮을 거다.”


준비가 됐다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달려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명령을 내리는 것이 본좌의 역할.’


여러 의견을 받아도 결국 선택하고 실행하는 것은 언제나 절대자인 그였다.

그렇기에 그 책임을 지는 것도 그였다.


“......저흰 그저 따를 뿐입니다.”


그의 대답만을 기다리는 신민이 보였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거라.”

“그럼...”


일영이 예를 갖추고 물러나자 천무극은 홀로 그가 받은 정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태양신의 환생, 헬리오스 세르반이 진보의 밑에서 자랐다는 것.

단순히 피를 제공하는 가축, 피주머니일 것이라 여겼던 그가 명목상으로나마 진조들의 왕이라고 불린다는 것.


“그들은... 한때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영생에 가까운 시간이 허락된 장생종이지. 주변인의 죽음이란 폭주 조건을 제외해도 되겠어.”


더욱이 정상에 선 이가 그토록 염원한다는 동등한 위치에 선 존재.

한때 자신의 친우였던 광마는 주변인의 죽음에서는 안전했지만 자신과 같은 존재, 동등한 존재를 찾지 못하고 미쳐버렸다.


‘나로는 부족했던 것인가. 치우(蚩尤)여...’


천무극은 잠시 홀로 추억에 잠겨 이제 모두에게 그저 광마로만 기억될 벗의 이름을 되뇌어 보았다.

허나, 지금을 달랐다. 아니, 달라야 했다.


지금 세상에는 신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많은 다음세대의 신들이 존재했다.

친선교류라는 핑계로 리버스에서 다음세대의 신 셋을 한 번에 보내올 만큼 말이다.


어쩌면... 앞으로는 교육이 필요 없게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무극은 조심스레 추측했다.


“존재는 누구나 동등한 위치의 상대방을 필요로 한다지. 자신이 자신으로 남아있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댄 사람 인(人)자가 이야기하듯 그들은 결코 홀로 완전해지지 못했다.


또한 이는 개인이 아닌 조직이라 해도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동등한 위치의 경쟁자를 필요로 한다.

어쩌면 리버스가 무림을 무리해서 지우지 않는 까닭은, 돌연변이가 모이는 호주를 곧장 소탕하지 않고 이리 남겨둔 까닭은 이곳을 경계했기 때문이 아닐까?


“절대 권력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세상을 가르쳐주었던 스승이 틈만 나면 했던 말버릇이 있었다.


“절대 부패하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여요.


그 말이 유독 생생하게 떠오르는 밤이었다.


“아니, 벌써 아침인가...? 달이 지고 해가 떴구나.”


오늘 하루도 그는 격무에 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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