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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2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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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9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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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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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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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20쪽

8. 무림으로 10

DUMMY

달을 삼킨 구름이 다만 그 윤곽을 따라 시리게 빛났다.


“여기는... 어디지?”


내 마지막 기억은 장자가 마련해준 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잠이 든 것이다.


“꿈인가?”


꿈이 아니라면 내 몸의 절반이 물에 잠겨있는 이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둔감하다지만 물이 이만큼 차오를 때까지 내가 자고만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꿈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까?


“저거 설마 엄마야?”


저 멀리 엄마가 보였다.

가족이 나오는 꿈이라니... 나쁘지 않았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 만날 수 있는 건가 싶어 나는 누나는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지마!”


그런데 어째 엄마의 표정이 심각하다.

눈으로는 입모양을 읽을 수 있는데 귀로는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뭐라고요? 시지마?”

“마시면 안 돼!”


엄마가 있는 곳까지 헤엄쳐가려하는데 엄마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져 난 다시 바닥에 발을 딛고 일어섰다.

그러자 발에 유리알 같은 것이 자박자박 밟혔다.


“뭐지? 감각이... 왜 이렇게 선명하지?”


무언가 이상했다.

몸에 물이 닿는 느낌, 수압, 물이 찰랑이는 소리, 손끝에서 방울진 물이 수면 위에 뚝뚝 떨어지는 감각까지 모든 것이 선연하다.


하지만 이게 꿈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란 말인가.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우주?”


지구에서 달과 태양을 제외하곤 보기 힘든 행성들이 머리 위에 수놓아져 있었다.


“여긴 대체...”


─첨벙! 첨벙!


그때 엄마가 저 멀리서 내게 달려왔다.

정말이지 다급한 몸짓이다.


“코르! 내 아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대체 무슨 일일까.

엄마가 안아주는 감각은 따스했다.


나는 지금 온도를 느꼈다.

수온을 느끼고 사람이 사람을 안을 때 전해져오는 온기에 취했다.


─부글 부글 부글 부글.


메에에에에──────!!!!!


세상이 비명으로 사위었다.

우리 주변의 물이 부글대며 끓기 시작하고 수면에 올라오는 공기방울들은 저마다 염소의 모습 같았으며 터지는 소리 또한 염소가 울부짖는 소리였다.


이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장자였다.

나는 내가 다시 그 심술쟁이 염소의 환술에 갇힌 것이라 판단, ‘한정개안’을 사용하여 환상을 깨트리려 했지만-


“안 돼! 우리 코르, 잠깐만 참자. 잠깐이면 되니까...”


엄마가 다급히 내 눈을 가리며 나를 달랬다.


<나의 작은 이해자야. 그 손을 거두어라.>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그저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왜인지 몸 전체가 떨렸다.

낱말 하나하나에 집중할수록 정신이 멀어져 간다.


이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이 모든 것에 가장 부합되는 존재를 입에 담았다.


“관리자?”


이 아득한 음성의 주인이 관리자라면 이 떨림도 엄마가 이곳에 있는 것도 설명이 됐으니까.


“관리자... 님?”


이 세계의 창조주라고 할 수 있는 존재를 평대하기엔 뭔가 죄를 짓는 것 같아 조심히 뒤에 존칭대명사를 붙였다.

내가 왜 이곳에 불려온 것인지 아직 알지 못하니 조심해서 나쁠 게 없었다.


─촤르르륵


풍경(風磬) 같은 소리와 함께 투명한 물결 같은 피부를 지닌 여인이 잔잔한 파도를 타고 내게 밀려온다.

이에 엄마는 황급히 손을 떼고 뒤로 가 허리를 숙였다.


<내 말을 알아듣는 것이냐? 아니다. 답할 필요가 없노라. 내 직접 확인할 터이니.>


그리고 무언가 나를 관통해지나갔다.


[상태창]


1. 이름(Name) : 이코르(Loki)

2. 성별(Sex) : 남성

3. 종족(Species) : 신(애시르)

4. 기원(Origin) : 분실(紛失)

5. 권능(Warrant) : 로키의 불태움(Lokabrenna)(Rank:SS), 변신의 귀재(Trickster)(Rank:SS+), 진리의 눈(Eye of Aletheia)(Rank:EX)

6. 특성(Trait) : 대드루이드(Rank:S+), 바벨 이전의 언어(Rank:A+), 다중인격장애(Rank:E-)

7. 소유 :

8. 계약 : 신을 삼킨 늑대(가호), 꼬리를 무는 뱀(가호), 저승의 여왕(가호), 2위 아가레스(Agares)(가호), 시리우스(Baldr)(신물)

9. 기술 : 검술(황혼검)(B+), 제작(B+), 체술(수인족 기본무예)(C+), 매혹(어린 신을 향한 보호본능)(B+), 요리(C+), 주술(볼바)(E)... 등


상태창이 강제로 개방됐다.

오랜만에 확인해보는 내 상태창이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상태창은...


‘아, 검술 랭크가 올랐나?’


오직 그 기원만이 전과 달랐다.


‘소지품도 다 사라졌네.’


<아아, 아아!! 아아아아!!!>


갑자기 들려오는 소름끼치는 탄성에 나는 서둘러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귀를 막아도 소리는 들려왔다.

거기 담긴 감정까지도... 광포히 흘러들어왔다.


관리자의 그 거만한 어조는 어느새 누군가를 향한 자애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 간극에 숨이 막혀왔다.


“흐, 흐윽...!”


숨이 멎을 것 같다.


<그렇구나. 너는 내 이해자의 자식 됨이구나. 작은 이해자가 그보다 더 작은 이해자를 낳았구나.>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나의 상태창을 확인한 관리자가 무척 기뻐한다는 것 뿐이었다.


<있을 수 없는 로키의 환생. 그분의 그릇이 홀로 생을 얻었구나. 전에 없던 기원이야. 내가 지금껏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지금 여기 모여 있노라.>


관리자의 말에 맞춰 내 상태창의 특성과 이름, 권능, 기원 따위가 그 음절 하나하나로 분해되어 관리자의 주변을 떠다녔다.

정보의 집합체, 언어...


장자는 분명 마나는 전능하다고 우리가 전능하지 못한 까닭은 마나를 다루는 방법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저것은 전지의 언어다.

저 한 음절이라도 이해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인간은 초월의 경지에 발을 디딜 것이다.


<모든 남성인도자를 지웠거늘. 그래서 너마저 지우려했거늘... 장하다. 너무도 장하다!>


하지만 나는 그 단어 한 자락은커녕 관리자의 감정변화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관리자는 어째선지... 나의 존재를 느낀 것만으로도 구원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망각이 너의 어미이고 우연이 너의 아비 됨이니, 너야말로 망각이 낳은 분실. 잊음이 낳은 잃음이로다.>


‘뭐지, 이건...? 모성애?’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떤 것도...


그녀가 어째서 나에게 이런 호감을 보이는지, 어이하여 바라는 이를 눈앞에 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그리움이란 단어를 형상화할 수 있는지, 그 무엇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할 때마다 핀잔을 주던 ‘목소리’도 지금만큼은 침묵을 유지했다.


<고얀 것들... 참으로 몹쓸 것들이로다. 모두 다 포기했거늘. 그분을 모시지 못해 세상의 멸망을 사명으로 넣었거늘. 천녀가 미진하여 이조차 이룰 수 없게 된 아이가 마침내 ‘잃어버림’이 되었도다.>


‘내 바뀐 기원을 보고 이야기하는 건가?’


다만 그렇게 추측할 뿐이었다.


<나의 아이야, 아직은 부족한... 허나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나의 위로자야. 관리자 레테가 망각에 빌어 너를 축복하노니...>


레테가 그 말과 동시에 내 이마에 입을 맞출 때, 어느새 엄마는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 입술로 내게 세례를 내린 레테는 강물로 된 손으로 내 볼을 쓰다듬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대하듯이, 이보다 존귀한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듯이.


‘상태창.’


일방적으로 정보를 뺏긴 것 같은 기분에 나는 무심코 그녀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상ㅌ@ㅐ%&!]


1. 이*#^: 쉬ㅂ 구 스

..ημι■. 데미ㅇ

ργ르@! 고 스,

맥 ㅅ ■ό

■υ의

ς!마

.

.

.


지직─ 지지직─!


하지만 관리자가 한 번 손을 휘젓는 것만으로 그녀의 상태창은 이름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시, 실수했다.’


관리자는 분노했는지 강물로 된 몸을 크게 부풀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무례에 대한 심판을 기다렸다.


<아가! 부디 겁먹지 말아다오. 제발...! 부디 그 눈을 더 보여주렴. 그 눈, 나의 것과 같도다. 그 육체, 그 눈을 견딜 수가 있도다.>


관리자의 음성엔 분노보단 당황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설마 이 눈의 마력이 관리자에게까지 닿을 줄은 몰랐기에 나는 속으로 무척 놀랐다.


<아아! 나는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틀리지->


목소리가 멎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선물을, 새로 태어난 아이를 위한 선물을!>


관리자는 두 손을 모아 강물을 크게 떴다.

그리고 내게 두 번째 세례를 내렸다.


─딱. 따다다닥!


“악! 아야! 아파요!”


분명 강물이었을 그것은 방울이 되어 떨어짐과 동시에 무언가의 결정이 되어 마치 우박처럼 내 머리를 두들겼다.

나는 서둘러 손을 들어 이를 막았고...


<후훗, 4개로구나. 다음에는 전부 가져가렴.>


관리자는 그런 나를 기특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전부 가져가렴~ 가져가렴~


관리자의 음성에 에코가 섞이며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아니, 깨어났다.


“헉! 허억! 헉! 헉!”


나는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후두둑!


그때 작은 조약돌 서너 개가 떨어져 침대 위를 구르는 게 보였다.

꿈일까? 꿈이라면 꿈속의 물건이 현실로 나와서는 안 된다.

즉, 이건 꿈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나는 꿈속에서 마지막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관리자가 내 머리 위로 무수한 돌무더기를 쏟아냈다.

너무 많고 정신이 없어 얼떨결에 손에 쥐게 된 이 네 개만이, 한 손에 두 개식 쥐게 된 이 네 개만이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코르,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악몽 꿨어?”


소란을 듣고 옆에서 자고 있던 미나가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내가 악몽을 꿨다면 달래주겠다는 듯이.


“난 그보다 밤새 벗이 어디에 있었는지 듣고 싶군. 공간계통의 술법이라도 익힌 것인가?”


유피는 언제 깨어났는지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추궁하는 듯한 시선이다.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그 돌멩이는... 오색 구슬!!”


그리고 남자 셋이 모여 자는 방에 겁도 없이 들어온 장자는 바닥에 널브러진 조약돌을 보고 ‘오색구슬’을 외치며 뒤로 넘어갔다.


“대체 뭔 일이래...”


나는 오랜만에 마음 속 깊이 우러나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장황한 상황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


“그러니까... 코르 군이 관리자님을 만나고 온 것 같다는 거여요?”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마치 셋이서 에워싼 것 같은 형태가 되어 차례대로 마치 돌을 던지듯, 질문을 던졌다.


‘어째 심문받는 느낌이다...? 어째서?! 난 잘못한 거 없는데!’


분명 그럴 거다.

무심코 관리자의 상태창을 확인한 걸 갖고 신성모독이라며 화를 내는 것이 아닌 한.


“아, 아마도 관리자를 만난 게 맞을 걸. 엄마도 있었고.”

“하아~ 코르 군의 어머니가 분명 이번 대의 신녀시었죠.”


그제야 납득한 듯한 반응을 보이는 세 사람. 아니, 두 신과 한 사티로스?

사람이 뭉뚱그려 표현하기 편하니 그냥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아르케, 그것도 어떤 가공도 하지 않은 원석이라니... 이런 걸 봐버리면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물론 벗의 말이라면 이런 것 없이도 믿었겠지만... 최근 감추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 슬프군.”


유피의 말이 내 죄책감을 자극했다.


“코르! 이거 어디에 쓸 거야?”

“고민 중이야.”


내가 얻은 아르케 원석은 총 4개, 적어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많은 양이다.


“무, 무림을 유지시키고자 구왕이 모여 사용한 아르케 원석도 고작 1개였는데... 하아~ 각 신물까지 갈아 넣은 걸 생각하면 3개 쯤 되려나요...”


내 손에 쥐어진 아르케들을 바라보는 장자의 얼굴에 인생무상(人生無常)이 담겼다.

원래 그녀가 내게 주려고 했던 게 수백이고 손이 작아 겨우 4개를 쥐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으음~ 이걸로 시계도 만들 수 있을까?”

“하지 마!”

“그러지 마라! 벗이여!”


반쯤 농담으로 한 말인데 생각보다 반응이 격렬하다.

유피의 이런 다급한 모습은 자주 볼 수 없기에 아주 귀했다.


그리고 장자는... 이걸 이용하면 시간에 관여할 수 있는 법구도 만들 수 있을 거라며 내게 잔뜩 잔소리를 해왔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오색으로 빛나는 돌 같은데...”


유피가 아르케라 칭한 이 돌을 장자는 오색구슬이라 불렀는데 과연 그 명칭이 딱 알맞은 것 같다.


느껴지는 힘의 파장은 분명 굉장했지만 이를 다룰 수 있는 장인이 현세에 남아있기나 할지부터가 의문이다.


“내가 세이드가 가능했으면 좋았을 텐데...”


발드르의 시체를 가지고 시리우스를 만든 로키라면 분명 이걸 제련하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올라온다.

보물을 가져도 사용할 수가 없다는 건 퍽 슬픈 일이었다.


“하아~ 신녀의 가문인 아가레스 가(家)가 어째서 실권을 쥐지 않았음에도 가장 부유했었는지 조금 알 것 같은 거여요. 그들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도... 분명 이런 모습에 질투를 느낀 원로들이 그들을 공격한 것이겠죠. 마치 관리자의 사랑을 독점한 ‘아벨’을 죽인 ‘카인’처럼...”


나는 고작 이런 것 때문에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싫어 갖고 싶으면 하나씩 주겠다고 이야기했지만 둘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친구사이라지만 이런 걸 그냥 받기에는 조금...”

“벗의 호의는 고맙지만, 이런 걸 받아버린다면 동등한 위치로 남아있지 못할 것 같군.”


이게 그 정도로 엄청난 물건인 걸까?

그들은 각자의 이유를 들며 거절을 표했다.


“저기요~ 저에게는 안 물어보시어요? 저는 엄~청! 잘 쓸 자신이 있는데~!”


되도 않는 애교를 부리는 장자를 무시하며 나는 이 애물단지와 같은 보물을 어디에 보관해야할지 고민했다.


“흠. 장자가 훔쳐가지는 않겠지?”

“제 취급 너무하지 않나요?!”


나는 고심 끝에 시리우스의 모습을 금고의 형태로 변형시켜 그 안에 아르케를 넣었다.


“이러면 아무도 못 훔쳐가겠지.”


그렇게 소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아침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오늘의 수업 장소로 이동했다.


***


─드르륵!


“흐읍...! 뭐, 뭐야?!”


문이 엶과 동심에 자욱한 술 냄새가 느껴졌다.

어느 정도냐면 순간 눈이 따갑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설마 우리를 술을 빚는 곳으로 안내한 건가 싶어 주위를 살펴보지만 술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천장에 술병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하다하다 이젠 술로 콜드 브루라도 만드는 거야?”


─또옥! 또옥!


한 방울, 한 방울 대야로 떨어지는 술을 보며 나는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장자의 성격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악취미였다.


하지만 술사인 미나에겐 다른 것이 보이나 보다.

미나는 대야에 모여진 술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본 뒤 말했다.


“이건... 위스키잖아? 집의 배치와 이 방의 위치를 고려해보면 이곳이 진법의 핵이 있는 곳인가? 그렇다면 이건 진법을 유지하기 위한 제물일 거고 사용료는 자연히 증발되어 날아가는 술이 되겠네. 재밌는 방법이야.”


분명 미나는 나와 같은 것을 배웠을 텐데 왜 더 많이 아는 걸까.


“그뿐만이 아니다. 도술에만 조예가 있는 줄 알았으나 이건 성법에 가깝군. 신에게 갈구하는 성법과 스스로 신이 되어 가꾸는 도술. 아니, 이 경우엔 둘이 합쳐 선술이 되려나? 완전히 다른 두 학문을 이리 접목시키다니... 마코데모가 하는 방식과는 다르지만 훌륭하다.”


유피 또한 이어서 제 지식을 뽐냈다.

아무래도 여기서 이해 못한 건 나뿐인 모양이다.


“잘 아시네요~ 제물로 사용하는 것은 천사의 몫.”


드디어 아는 표현이 나왔다.


‘천사의 몫이라면... 그거지?’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는 술은 매년 원액의 2%가 날아간다고 한다.

이를 천사의 몫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술의 알코올 성분이 날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증발된 만큼 술의 향에는 깊이가 더하여진다.

그렇기에 오래 숙성된 술이 비쌀 수밖에 없다.

양이 줄어도 더 맛있어지니까.


“공기 중에 이렇게 떨어트리는 방식을 사용해서 증발하는 양을 늘린 것이어요.”

“목적은 이 공간의 은폐인가? 하긴, 무림이 다스리는 땅에서 다음세대를 몰래 키우려면 이 수밖에 없었겠지.”


성법에 대해서는 엘레나에게 배워 나도 조금 알고 있었다.


‘그 원리는 신에게 기도하여 기적을 일으키는 것.’


그러한 점에서 이는 신에게 직접 힘을 받아 사용하는 ‘아스트라(Astra)’와도 닮았다.

하지만 어렵긴 해도 여러 신의 힘을 다양하게 다룰 수 있는 아스트라와 달리 성법은 힘을 빌려올 주체가 오직 하나로 국한되어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이런 형태는 신에게 직접 권능을 나눠받은 사도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특징인데...’


특화된 분야는 수호(守護), 불제(祓除), 정화(淨化)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힘을 내려주는 주체가 되는 신이 누구인지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성법은 정말 수수께끼가 많았다.

신이 사도를 두는 건 그 신에게도 부담이 큰 일이다.

이렇게 많은 사도를 두다보면 자연히 권능의 출력 한계치가 낮아진다.

종국에는 스스로 권능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다.


내가 불을 나눠주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바로 사도를 두는 것이다.

그러니 성법은 아예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으리라.


‘만약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신이 있다면 그 존재는 아마 관리자 레테를 제외하곤 없겠지.’


실제로 많은 이들이 성법에서 힘을 내려주는 주체를 관리자일 것이라 추측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모순이 존재한다.

기도문 형태의 성법을 통해 묘사되는 그들의 신은 그야말로 인간을 위한 신인데 관리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성법이 가장 성행한 것은 신화시대가 끝나고 관리자가 잠이 든 서력기원 이후이다.


교단은 정말 공격적으로 세를 늘려갔고 마나가 사라진 세계에서 신앙을 대가로 유의미한 힘을 주는 건 기계공학과 성법밖에 없었다.


‘딱히 제물을 바치지 않아도 간절히 바라면 들어준다니...’


나는 만약 그런 신이 있다면 바라는 바가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온전한 선의로 했다고 보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컸으니까.


‘목적은 신앙 그 자체일지도 몰라. 하지만 신앙은 신의 격 그 자체를 올려주는 것 외엔 큰 가치가 없는데?’


상태창에 표기되는 권능의 랭크 이외에 그 힘의 격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거의 유일한 요소가 바로 신앙이지만 성전에서 한 번이라도 패배하기라도 했다간 그 신앙을 죄 빼앗길 위험도 존재하기에 신은 신앙과 제물을 동시에 바란다.


‘아무리 공격적으로 세를 넓혀도 교단의 힘이 해가 지날수록 강해지는 건... 해당 신의 격이 올랐다는 것 외엔 설명할 수 없긴 한데...’


교단의 주인이라는 마코데모는 알고 있을까?

아니, 그에게 주인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다.

그는 교단이라는 결사대의 수장은 될지언정 결코 주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록 삼대세력은 아니지만 이를 제외하고 가장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다고 봐도 좋을 교단.


‘어렵네. 앞뒤가 안 맞는 게 너무 많아.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의 한계치가 올라간 건 분명한데...’


신에게 빌릴 수 있는 힘의 크기는 그 신이 가지고 있는 격과 그 신에게 바치는 제물, 그리고 제물을 바친 자에 대한 관심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제물을 바치는 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제물을 불로 태워 연기를 하늘로 올려보내는 것.

즉, 번제(燔祭)인데 교단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헌금은 받더라도 이를 태우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장자도 술을 가열하는 방법 대신 높은 곳에서 떨어트리는 것으로 증발하는 양을 늘려 자연히 바치는 제물의 양을 증가시켰다.


‘나중에 심심하면 성법도 배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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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8. 무림으로 5 22.08.15 82 4 10쪽
141 8. 무림으로 4 22.08.14 91 3 12쪽
140 8. 무림으로 3 22.08.13 89 4 17쪽
139 8. 무림으로 2 +1 22.08.12 98 4 17쪽
138 8. 무림으로 1 22.08.11 102 3 17쪽
137 7. 유피터 사무엘 외전-끝없이 자라는 아이 +1 22.08.10 94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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