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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거북의 서재입니다.

귀환자의 아카데미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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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거북
작품등록일 :
2021.08.09 06:30
최근연재일 :
2021.10.14 23:24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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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8,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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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3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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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7화. 많이 컸구나

DUMMY

“뭐? 얘?”


김준식은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요리 교실에 가는데 자신이 아니라 라임이라니?

그것도 레몬까지 곁들여서?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다.


“아니, 할망구. 진짜 내가 아니라 얘가 필요하다고?”

“그래. 네 녀석의 그 성격으로 누굴 가르칠 수나 있겠느냐?”


이춘자 여사는 심드렁하게 마하자 김준식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 할망구.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이래 봬도 내가 요리 가르쳐준 녀석도 있다고! 어? 그리고 이 녀석도 애초에 나한테 배운 거거든?”

“흥, 그래서. 그 가르침에 ‘친절’이란 단어는 붙어 있었느냐?”

“하, 누가 들으면 할망구가 친절하게 가르친다고 알겠다. 응?”


김준식은 이춘자 여사를 가느스름한 눈으로 쳐다봤다.

사실 그의 성격이 이렇게 된 건 본래 성격도 있지만, 반쯤은 이춘자 여사의 영향이 컸다.


그의 입이 조금 거친 것도, 그러면서도 뭐라도 챙겨주는 것도 말이다.


애초에 그녀의 손에 자랐으니까.

원래 자식의 거울은 부모라는 말이 있잖은가?

비록 입양된 김준식이었으나, 항상 옆에서 보던 이춘자 여사의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유가 뭐냐니까? 왜 내가 아니라 얘······ 아, 설마?”


김준식은 이춘자 여사에게 따지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도 그제야 기억이 난 것이다.

영웅 아카데미에 가기 전.

그러니까 게이트 클리어 후 이곳에 들렀을 때의 일이 말이다.


‘내가 아카데미에 갔을 때 뭐가 있었구나?’


라임이의 분신.

정확히는 몸에서 빠져나온 한 마리의 슬라임이 이곳에 남았고.

그 일로 인해 요리 교실에 무언가 변화가 생겼다는 걸.


‘최주원 그 새끼가 한 말이 이건가?’


녀석도 라임이를 보며 놀랐다.

그리고 이춘자 여사는 그런 라임이가 필요하다고 했고.


아무리 여기서 지내지 않았더라도 눈칫밥 하난 오래 먹은 김준식이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떠오르는 건 딱 하나.


“얘가 남겼던 녀석이 요리 교실에서 교육이라도 하나 보네?”

“······.”


이춘자 여사는 아무 말 없이 젓가락을 움직였다.

긍정도, 부정도 없는 몸짓.

그 모습을 보며 김준식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뜻이었으니까.


“아~ 우리 이춘자 여사님이 라임이의 덕을 좀 보셨나 봐? 내가 이 녀석을 잘 키우긴 했지. 그래서 어땠어? 우리 라임이 요리 잘 가르쳐?”

“흥, 시답잖은 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먹거라.”


김준식의 놀림에도 이춘자 여사는 그저 조용하게 밥을 먹었다.

하지만, 김준식이 누구인가.

항상 그녀의 옆에서 있던, 서류상이라도 아들이 아니던가.


그는 알 수 있었다.

이춘자 여사의 귀가 조금 붉게 물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건 그녀가 부끄러워졌을 때 나오는 현상이라는 걸 말이다.


“크큭, 그래. 뭐 알았어.”


김준식은 혼자 킥킥대며 눈을 훔쳤다.

오랜만에 보는 이춘자 여사의 모습에 마냥 웃음이 나온 것이다.


“야, 라임아.”

“뀨우~?”


김준식의 부름에 라임이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으며 시선을 돌렸다.

물론, 그 과정에서 먹는 걸 멈추진 않았지만, 뭐 문제는 없었다.

침이 튀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넌 어쩔 거냐? 갈 거냐?”


김준식이 된다. 안 된다. 할 처지는 아니다.

애초에 라임이는 부하가 아니라 동료이자 친구니까.

녀석이 원하면 하는 거고, 원하지 않으면 안 할 뿐이다.

물론,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뀨이~!”

“그래, 그래라. 그럼.”


수락.

이미 이곳에 있는 슬라임과 연락 자체는 되고 있었을 테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자, 그럼 마저 밥이나 먹어볼까.”


김준식은 다시 수저를 들었다.

그리곤 수북하게 쌓인, 아니. 이제 절반밖에 안 남은 잡채를 양껏 집어 들었다.


후루룹-

라면을 먹듯 잡채를 면치기하며 입에 넣었다.


‘으음, 역시 맛있네.’


잡채는 원래 기름기가 좀 있어 물리기 쉬운 음식이다.

하지만 이춘자 여사의 손길이 닿은 건 그게 크게 줄어드는 게 특징이었다.


느끼함이 적고 탱탱한 당면.

거기에 더해진 고기와 채소의 조화는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울 정도로 맛있었다.


“아~ 진짜 맛있네. 할망구 나 일 끝나면 여기서 살게. 그래도 되지? 응?”

“흥, 다 큰 녀석 집에 들일 생각 없다.”

“에이, 나 잡으면 얘들도 딸려 오는데?”

“뀨-?”


김준식의 말에 라임이와 레몬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이내 다시 음식에 고개를 파묻고 먹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농담에 낄 생각은 없는 모습이었다.


“흐음, 그건 좀 끌리는구나.”


이춘자 여사는 두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치? 그러니까 볼일 다 끝나면 나 여기서···.”

“넌 빼고, 얘들만 보내거라. 그럼 반찬 정도는 보내주마.”

“아, 이 할망구가! 그래도 내가 아들이잖아? 너무한 거 아냐?!”

“흥, 밥상 앞에서 큰소리치는 아들 같은 건 둔 적 없다.”

“하, 진짜 너무하네!”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

멀리서 본다면 대판 싸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겐 아니었다.


일상.

언제나 있는 일이고 가장 익숙한 대화였기에 둘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


“하암······.”


다음 날.

이른 새벽에 깨어난 김준식은 적당히 씻은 뒤 밖으로 나왔다.


“뀨우······.”

“뀨이······.”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아직도 비몽사몽 꿈나라에 헤매는 두 녀석을 품에 안고 있었다.


‘자, 그럼 오랜만에 가볼까.’


그는 해가 뜨지 않은 새벽 거리를 걸으며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정말 좋네.’


옛날, 한옥 마을 하면 떠오르는 장소는 몇 군데가 있다.

지금이야 춘천 한옥 마을이라며 이곳을 가장 으뜸으로 치지만, 옛날은 아니었다.


서울에 있는 한옥 마을.

전주에 있는 한옥 마을.

여러 곳이 있지만, 그곳의 특징을 꼽자면 하나였다.


밀집.

땅을 놀릴 수 없기에 사실상 담 하나 너머에 집이 한 채씩 있는, 그런 한옥 마을이었다.


분명, 이쁘긴 이쁘다.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길도 좀 뚫려 있기도 하고 넓은 곳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여기와 비교할 순 없었다.


일정 거리를 떨어뜨려 지은 한옥.

한옥과 한옥 사이에 공원 하나가 끼어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넓은 여유 공간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뛰어놀기 좋고.

사진 찍기 좋은 마을.

그게 춘천 한옥 마을이었다.


‘옛날엔 집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 몰랐는데 말이지.’


단순히 옆집을 가더라도 몇 분을 걸어야 했고.

재료를 사라는 심부름에는 왕복 20분 이상이 소요됐으니까.

그게 너무 싫어 좀 근처에 붙여 지으면 안 되는 거냐고 투정마저 부렸던 김준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니, 이해할 수 있었다.

게이트 클리어 후 이곳에 도착한 그는 느낄 수 있었으니까.


진정한 힐링이란 게 무엇인지.

그리고 이 뻥 뚫린 넓은 공간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말이다.


물론, 이곳에서도 다닥다닥 붙은 곳이 존재했다.

여행을 온 이들이 묵을 수 있는 숙소, 펜션만큼은 밀집해서 지어둔 것이다.

물론, 그건 저 멀리 지역의 끝자락이라 눈에 띄지도 않지만, 거긴 또 거기 나름대로 정취가 있었다.


‘방학 끝나면 여기서 또 서울로 가야 하는 건데······.’


상상만 해도 벌써 답답했다.


‘에이, 그건 나중이고. 지금은 일단 즐겨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덧 그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얘들아. 일어나.”

“뀨우···?”

“뀨이···.”


김준식의 부름에 두 녀석이 비비적거리며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여기가 오늘 너희가 일할 곳이다.”

“뀨이~”

“뀨~”


춘천 한옥 요리 교실.

이춘자 여사가 운영하는, 김준식이 어린 시절에 매일 다니던 장소였다.


김준식은 둘을 데리고 곧장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봤다.


‘역시 변한 건 없네.’


달라진 거라고 하면 조금 낡아졌다는 것 정도다.

10년이나 지났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정취가 느껴지는 장소였다.


“여, 할망구. 우리 왔다.”

“흥, 많이 늦었구나. 내 언제나 말하지만······.”

“예, 예.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근데 할망구. 지금 새벽 5시거든?”


일찍 일어나 준비한다.

셰프라는 존재에겐 필수로 붙는 단어다.

특히 아침 재료를 공수해 온다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지금 시간은 새벽 5시였으니까.


“자, 빨리 들어갑시다. 새벽이긴 해도 날이 덥네.”


물론, 이건 변명이다.

10년간 게이트에서 단련된 그의 피부로는 한국의 더위 정도는 가뿐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

그저 그가 이러는 이유는, 이춘자 여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잔소리를 들어줄 순 없지.’


잔소리는 어제 전부 들었다.

티격태격 싸움 수준으로 하는 게 재밌긴 하지만, 아침부터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자, 그럼 얼마나 기억하는지 지켜보마.”

“얼씨구. 아주 그냥 대 놓고 부려 먹겠다. 이거지?”

“부려 먹기는. 밥을 먹었으면 밥값은 해야지.”


이춘자 여사의 말에 김준식은 피식 웃었다.


“그래, 오랜만에 온 아들내미가 얼마나 잘하는지 거기서 보라고.”


김준식은 씨익 웃으며 가볍게 발을 굴렀다.

이곳은 그에게 있어 전장. 그 자체인 곳이니까.


피잉-!

그의 능력이 발휘되고.

밝은 빛이 주변에 퍼지며 요리 교실 전체를 감쌌다.


덜그럭-

그리고 시작된, 도구들의 현란한 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우선 기본적인 도구들은 전부 세팅.’


도마, 식칼, 스테인리스 볼 등.

요리에서 필수적인 도구들이 하나둘 각각 자리에 세팅됐다.


물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 요리 교실에서 만들려는 게 무엇인지 들었으니까.


드르륵-

여러 서랍이 열리면서 거기에 있던 물건들이 떠오른다.

밀가루, 설탕, 주걱, 휘핑기, 저울, 체 등, 제빵에 필요한 도구와 재료들이 하나둘 자리에 세팅되기 시작했다.


재료는 지금 꺼내지 않는다.

어차피 시작은 9시였기에 냉장고에 있는 걸 지금 꺼내면 상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그건 그때 가서 하나씩 꺼내면 된다.


“자, 준비 끝.”


단 1분.

30명의 인원분에게 필요한 모든 준비가 1분 만에 끝난 순간이었다.


“어때? 할망구. 쩔지?”

“허, 확실히 네가 자신할 만하구나.”


이춘자 여사도 내심 놀랐다.

설마 이 정도로 능력이 발전됐을 줄이야.

예전에는 도구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정도로 그쳤던 아이였는데······.


‘많이 컸구나.’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김준식은 자식이자, 제자였으니까.


적어도, 아직까진 녀석에게 약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다 했으면 그만 놀고 나가서 마당이라도 쓸 거라.”


이춘자 여사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뭐? 아니, 이 할망구가 진짜···!”


뒤에서 김준식의 불만이 들려온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아니, 돌릴 수가 없었다.


사실, 칭찬해주고 싶었다.

대견하다. 장하구나. 그런 말을 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 스스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이춘자 여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겐 김준식은 아직 어린아이였으며, 아직 칠칠치 못하고 덤벙거리는 아이였으니까.


‘그래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김준식이 잘 컸다는 것.

그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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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화. 많이 컸구나 +1 21.09.30 854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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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5화. 내가 좀 급해서 +1 21.09.28 852 1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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