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말 없는 아이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지만, 김준식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어디까지나 그는 외부인.
이곳에서 지낸 이력이 있다고 해도 지금은 이춘자 여사에게 입양 갔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성격상 그대로 밀고 가서 같이 들어 볼 순 있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길원오는 물론이고 보육원에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딱 좋았다.
“자, 얘들아. 원장님 말 들었지?”
그러니 지금 할 일은 하나.
침을 줄줄 흘리는 아이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치킨을 먹이는 일이었다.
“만들어 주신 요리사 삼촌께 인사하면서 맛있게 먹어요~!”
“네에~!”
식당에 있던 보육원 직원의 말에 아이들의 손이 움직인다.
물론, 김준식이나 최주원의 손도 움직였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먹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입을 닦아주는 역할이란 점이었다.
“마시따~!”
“우아아······.”
아이들의 감탄사가 터진다.
그 모습을 보니 요리한 김준식은 마냥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영웅을 먹이고, 학생들을 먹이는 것관 다른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걸 그대로 내뱉는 순수한 녀석들이니까.
그런 녀석들이 맛있다고 하니, 다른 일보다 더 기분 좋은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식당은 전쟁터였다.
“입이 이게 뭐니. 잘 먹어야지.”
“자자, 싸우지 말고! 치킨은 저기 많이 있어요. 여기······ 앗! 거기도 싸우지 마! 거기 치킨 크기 똑같다니까!”
“아이고 포크 두고 왜 손으로 집어 먹어? 응? 자 여기··· 아이고 그건 던지는 게 아니야!”
입가에 기름과 양념을 가득 묻히는 아이.
누구 치킨이 더 크다고 우는 아이.
다른 아이가 들고 있는 게 더 맛있어 보인다며 빼앗으려는 아이.
심지어 포크는 던지고 맨손으로 양념치킨을 집어 사방을 양념 범벅으로 만드는 아이까지.
총체적 난국이었다.
직원은 물론, 나이가 좀 있는 아이들도 옆에 있는 어린 녀석들의 손수발을 들어줄 정도였다.
그런데도 끝이 없었다.
하나의 전쟁을 끝내면 다른 전쟁이 터지고.
그걸 말리면 조금 전 말렸던 녀석들이 다시 전쟁을 일으켰다.
“이렇게 가다간 끝이 없겠어.”
김준식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있다간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게 많아질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라임아. 분열.”
“뀨이~!”
포보봉-!
김준식의 말에 라임이의 몸에서 슬라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준식이 선택한 조치.
그건 바로 라임이를 이용한 것이다.
아이들은 만지는 걸 좋아한다.
장난감은 물론이고 흙이나 나뭇가지 등.
경험해보지 못한 건 죄다 만져보는 성향이 있다.
그런 그들 앞에 슬라임이 나타났다면? 행동은 자연스레 하나로 이어지게 된다.
“우와아! 슬라임이다!”
“귀여어!”
“말랑말랑해···!”
분열된 라임이들이 움직였다.
그들이 향한 곳은 아이들.
한 명에 한 마리씩, 녀석들 앞에 다가가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슬라임이 한 마리씩 붙자,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싸움을 멈췄다.
아니, 오히려 먹던 치킨마저 내려놨다.
말랑말랑-
그리곤 앞에 있는 슬라임을 손에 쥐고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전쟁터가 사그라졌다.
그 모습에 직원들은 물론이고 최주원과 중학교 이상 되는 아이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기······.”
그때 한 직원이 김준식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왜 그러세요?”
“그, 혹시 아이들에게 해가 없을··· 아니, 괜찮다고 생각은 하는데 저······.”
뭔가 말하면서도 변명을 생각하는 그녀를 보며 김준식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애들이 다치는 일 없을 겁니다. 슬라임이 몬스터이긴 해도 원래 무해한 녀석이기도 하고, 저 녀석들 머리가 좋거든요.”
김준식은 그렇게 말하곤 라임이들을 바라봤다.
녀석들은 아이들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몸을 늘어뜨려 포크를 집고 치킨을 찍은 뒤 아이들의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잡혀주고 먹여주고 놀아주는, 어른조차 하기 힘든 일을 해내는 중이었다.
잘 보면 슬라임을 반죽마냥 쭉 늘리는 녀석도 있었다.
자칫 문제가 될 것 같은 모습.
하지만 라임이에겐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애초에 슬라임이란 건 반 액체니까.
사람 몸을 가둘 정도로 늘어나도 괜찮은 게 녀석들이다.
그러니 저런 아이들 장난 정도는 무시해도 될 정도로 타격이란 게 들어가지 않았다.
“아, 다행이네요······.”
김준식의 말에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에 아이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보다 어서 드시죠. 식어도 맛있는 게 치킨이긴 하지만, 그래도 막 조리할 때 먹는 게 최고잖아요? 너희들도 어서 먹어라. 애초에 너희도 여기 인원이잖아?”
“아, 네!”
“잘 먹을게요. 삼촌.”
“잘 먹겠습니다!”
김준식의 말에 그녀는 물론이고 아이들을 돌봐주던 녀석들도 드디어 식사를 시작했다.
“으음- 맛있어!”
“하아, 미쳤다. 여태 내가 먹어본 치킨 중에 최고야.”
“진짜······ 이런 게 근처에 있으면 매일 사 먹을 듯.”
하나둘 칭찬 릴레이가 이어졌다.
김준식은 그런 아이들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은 뒤 치킨 한 조각을 집었다.
하지만 치킨을 입에 넣진 않았다.
아니, 넣지 못하고 있다는 게 옳았다.
‘자꾸 신경 쓰이네.’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문밖으로 향했다.
지금 길원오가 만나고 있단 남성이 계속 신경이 쓰인 탓이었다.
“아저씨, 밖에 온 사람이 신경 쓰여요?”
“응?”
그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김준식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한 남자아이가 빤히 김준식의 손을 쳐다보고 있었다.
‘응? 라임이가 없네?’
거기에 아이 곁엔 라임이가 없었다.
“조금 전 슬라임이라면 제가 필요 없다고 했어요. 저 원래 얌전하거든요?”
“허, 내가 그 생각한 걸 어떻게 알았니? 꼬마야.”
“꼬마 아니거든요? 이주원이라구요. 그리고 아저씨 얼굴에 딱 쓰여 있었어요.”
김준식은 꼬마, 이주원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여기에 이렇게 똑 부러지는 녀석이 있었다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넌 조금 전에 왔던 사람이 누군지 알아?”
“네, 알고 있어요. 근데······ 그거 안 먹을 거면 저 주면 안 돼요? 저기까지 손이 안 닿는데······.”
이주원은 말하는 내내 김준식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정확히는 그 손에 들린 치킨을 말이다.
그 모습을 본 김준식은 피식 웃었다.
“왜 웃어요?”
“아니, 그럴 거면 조금 전 슬라임은 왜 보낸 거야? 치킨 가져다 달라고 하면 됐잖아?”
“아······!”
이주원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는지 눈을 크게 떴다.
똑 부러지는 모습처럼 보여도 역시 애는 애였다.
그 모습에 김준식은 쿡쿡 웃으면서 손에 쥔 치킨을 녀석에게 건네줬다.
“자, 먹어라.”
“앗, 감사합니다!”
치킨을 건네주자 이주원은 작은 입으로 잘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얌전하다는 말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먹는 내내 입에 묻히지도 않고 작은 입으로 잘도 뜯어 먹었다.
하지만 먹는 속도는 빨랐다.
조금 전 건네줬는데 치킨 한 조각을 후딱 처리한 것이다.
“자, 이것도 먹어라.”
“와아, 감사합니다. 아저씨 센스 좋네요?”
“뭐?”
크큭, 김준식은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과 웃음.
하지만 왠지 이 녀석 앞에선 그조차도 말려드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밖에 온 사람이 누군지 안다고?”
“움··· 네, 그 사람. 장미 입양하고 싶어서 오는 사람이거든요.”
“장미?”
“네, 쟤요.”
이주원은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치킨을 씹으며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거기엔 슬라임을 손에 쥔 채 건네주는 치킨을 오물오물 조용하게 먹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쟤가 장미야?”
김준식은 치킨 하나를 다시 건네주며 물어보자 이주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치킨을 한입 물어뜯으면서 이주원은 김준식이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서장미라고 2년 전에 여기에 온 애예요.”
서장미.
2년 전 부모를 사고로 여읜, 보육원에선 흔하디흔한 일로 오게 된 아이였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근데, 쟤 말을 안 해요.”
“말을 안 한다고?”
“네, 한마디도 안 해요. 처음에는 귀도 안 들리는 줄 알았는데, 부르면 보긴 하거든요? 근데 말을 걸어도 그냥 쳐다만 보는 게 끝이에요.”
아앙-
우물우물-
이주원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하며 치킨을 물어뜯었다.
김준식은 그런 녀석의 그릇에 치킨 한 조각을 더 건네주며 서장미라는 아이를 바라봤다.
서장미는 조용했다.
손에 쥔 슬라임을 꽉 쥐지도, 그렇다고 조물조물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손을 살포시 얹은 게 전부였다.
얌전하다 못해 차분해 보였다.
과연 저게 나이에 맞는 아이일까? 싶을 정도였다.
‘말을 안 한다라······ 사고의 충격 때문인가?’
그러면 이해가 간다.
사실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그런 충격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준식도 그런 아이들을 많이 봤다.
그도 이곳 출신이었으니까.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온 아이들은 수없이 많았고.
그 충격에 말을 못 하게 된 아이들 역시 많았다.
‘근데 2년 동안 말을 안 한다는 건 이상한데.’
하지만, 2년 이상 가는 건 이상했다.
물론, 저 아이가 이상하단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 이상으로 말을 못하는 아이들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곳에는 길원오가 있었다.
평화 보육원 원장, 길원오.
그는 아이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에 있는 돈 없는 돈 모아다 보육원을 차린 것도 그렇고.
아이들의 실수조차 웃으며 빠르게 처리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는 특별한 힘이 있었는데, 바로 아이들의 치유하는 힘이었다.
각성한 힘은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의 분위기라고나 할까? 그런 것으로 이어진 힘이었다.
이곳에 온 아이들 중 사연이 없는 녀석은 없다.
그런 아이들의 사연을, 마음의 상처를 빠르게 풀어주는 것.
그게 길원오가 가진 힘이었다.
아이마다 특징을 파악하고, 그런 아이들을 케어한다.
그렇게 케어한 아이들은 짧으면 6개월, 길어도 1년 정도면 다시 해맑게 웃으며 뛰어놀기 시작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치킨을 먹고 있다지만,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
이미 녀석들은 상처를 딛고 일어섰단 뜻이었다.
‘그런데 2년이나 말을 못 하고 있다라······.’
그러니 의문이 들었다.
길원오가 있음에도 아직도 입을 열지 못한다는 건 이상했으니까.
물론 길원오가 만능이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2년 이상 우울해진 아이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뀨이-”
“응? 뭐?”
하지만, 그 의문은 곧 풀렸다.
그의 어깨에 있던, 라임이에 의해서 말이다.
“뀨이- 뀨-”
“······설마?”
김준식은 다시 서장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서장미의 작고 초롱초롱한 눈과 마주쳤다.
‘하.’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서장미가 왜 말을 못 하는지.
아니, 왜 안 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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