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슬 선생님
쓱-
쓰윽-
요리 교실 건물 외부.
정확히는 한옥의 마당에서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쓰는 김준식은 입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진짜,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현재 시각은 8시 45분.
오전 5시에 이곳에 왔던 김준식은 이 시간까지 마당을 청소 중이었다.
“뀨이~”
“뀨~”
“이것들이? 얌마. 내가 좋아서 하는 줄 알아? 엉?”
김준식에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게이트 내부에서조차 영웅들을 자신이 손에 쥐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어디의 고위 간부든 대통령이든, 김준식은 그런 이들의 명령조차 들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예외도 있는 법.
“내가 진짜 할망구만 아니었으면. 어? 이렇게 마당이나 쓸고 있지 않았다고.”
이춘자.
사실상 그에게 있어 단 한 명의 부모인 그녀의 명령은 거부할 수 없던 것이다.
그 덕분일까?
장장 3시간 동안 김준식이 청소한 마당은 모래 한 올 없이 깨끗한 수준이었다.
“아니, 저번에 영민이 엄마가 글쎄······.”
“너, 저번에 배운 거 복습했어?”
“당연히 했지. 그보다 오늘은······.”
그때, 조용하던 마당에 여러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뀨이-”
“뀨-?”
“아, 교습생들 왔네.”
김준식은 그 말소리에 쓸던 걸 멈추고 문을 바라봤다.
거기엔 다양한 연령층의 교습생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있었다.
딱 봐도 중학교 정도로 보이는 아이부터, 40은 넘는 아주머니까지.
성별 역시 남, 여 구별이 없었고.
누군가는 수다를 떨면서, 누군가는 조용히 혼자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저 학생은 누구래?”
“학생이라니. 정이 엄마도 참. 딱 봐도 총각이잖아.”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네. 그보다 새로운 교습생인가?”
“글쎄, 정이 엄마가 가서 한번 물어봐봐.”
“어머, 내가 그걸 어떻게 물어? 호호호.”
김준식은 들려온 말에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휴, 여기 오는 아줌마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네.’
옛날에도 뭐만 하면 이야기를 걸던 게 아줌마들이었다.
근데 지금 또 그런 모습이 보이니 머리가 아파져 왔다.
하지만, 마냥 그런 일만 있던 건 아니었다.
“어머, 준식이 아니니?”
오랜만에 들어 보는 음성.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김준식은 정말 오랜만인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머머, 언제 온 거니? 저번에 게이트에서 돌아왔다고 듣긴 했는데 바로 서울로 가버리더만.”
그가 이 요리 교실을 다니던 시절.
그때 이런저런 수다를 떨던, 양미영이었다.
“어제 왔어. 그보다 아줌마는 아직도 여기 다니는 거야?”
“어머, 얘도 참. 다니긴 하지만, 그때랑 지금이랑 다르거든? 잘 봐. 여기.”
양미영은 어깨를 펴며 자신의 가슴에 달린 명찰을 가리켰다.
“허어, 이거 진짜야?”
김준식은 그녀의 명찰에 적힌 이름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실장, 양미영.
사실상 이춘자 여사 다음으로 높은 직급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꽝 손 아줌마가 실장이 됐다고? 진짜? 이거 가짜 아니지?”
양미영은 김준식이 잊기 힘든 인물이었다.
그가 요리 교실에 다니던 시절, 함께 다닌 교습생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압도적인 꽝 손.
숯을 창조한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손을 가진 여성이었다.
아니, 그냥 요리에 운 자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프라이팬을 집으면 손잡이가 떨어지고, 예리한 칼을 들고도 마치 톱으로 써는 듯한 단면을 만드는 등.
정말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모든 기이 현상을 보여준 일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지금은 실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다니.
‘설마, 할망구가 날 놀리려고 몰래카메라를?’
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얘도 참.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 소리니?”
양미영이 입을 가리며 호호 웃는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웃지 않았다.
거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하, 이 아줌마가 다시 서열 한번 가려 볼래?”
물론, 이춘자 여사가 아닌 사람이 하는 협박 따윈 김준식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어머, 옛날의 내가 아니란다. 꼬마야?”
“꼬마? 꼬오마아? 이 아줌마가 진짜. 이래 봬도 내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야. 알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란다. 그리고 넌 어떻게 변한 게 없니? 어른에게 또박또박 말대답이나 하고 말이야.”
“난 나보다 실력 좋은 요리사 아니면 존댓말 안 해. 알아들어?”
파지직-
둘의 눈이 마주치고, 이내 그사이에 번개가 일어나는 착각이 들었다.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진다.
동시에 하나둘 도착한 교습생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닿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래?
-몰라, 실장님하고 아는 사이 같은데······.
-조금 들어 보니까 실력이 어쩌고 하던데? 옛날에 실장님하고 같이 다니던 사람 아닐까?
숙덕거리는 교습생들.
하지만 둘의 시선은 서로에게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자존심 싸움.
김준식은 10년의 노하우를, 양미영의 피나는 10년의 노력을.
그사이에는 서로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 싸움도 곧 종지부를 찍게 됐다.
“거기서 뭣들 하는 거냐?”
이곳의 주인.
이춘자 여사의 등장이었다.
“어, 어머, 선생님 오셨어요?”
“뭘 하긴. 오랜만에 만나서 인사나 좀 하고 있었지.”
이곳의 절대 권력자가 등장하자 둘의 태세는 빠르게 전환됐다.
이춘자 여사는 그런 둘을 잠시 보다 이내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무슨 구경이라도 났느냐? 곧 수업 시작인데······ 여기서 이러는 거 보니 다들 준비는 끝낸 모양이지?”
“야, 야. 빨리 가자!”
“저, 저희 먼저 들어갈게요!”
이춘자 여사의 말에 주변에 있던 교습생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야, 역시 할망구야.”
이러나저러나 해도 역시 이곳의 주인다운 포스였다.
“흥, 너도 마찬가지다. 들어갈 거 아니면 마당이나 계속 쓸 거라.”
“뭐? 이 할망구가 진짜. 아침도 안 먹고 3시간이나 쓸었는데 또 쓸라고?”
“흥, 싸우는 거 보니 기운이 넘치는 거 같던데 더 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춘자 여사는 그렇게 말하곤 고개를 돌려 양미영을 바라봤다.
“호호호, 저도 준비할 게 있어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선생님. 바쁘다, 바빠.”
그런 이춘자 여사의 시선에 양미영은 빠르게 안으로 도망쳤다.
그녀도 아는 것이다.
이대로 붙잡히면 자신 역시 마당이나 쓸어야 하는 꼴이 될 거란 걸.
“그럼 넌 바닥이나 마저 쓸······.”
“에헤이, 할망구가 왜 이러는 걸까? 자 들어가자고.”
김준식은 다시 입을 열려는 이춘자 여사의 등을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그래도 다시 바닥을 쓰는 짓을 하고 싶진 않았던 김준식이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이미 학생들은 자신의 앞치마와 모자를 쓴 채 각자의 자리에서 대기 중이었다.
‘이야,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김준식은 옛 생각이 떠올랐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었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이었다.
짜증 나고, 힘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재미와 뿌듯함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자, 그럼 오늘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김준식이 기억에 잠긴 사이, 이춘자 여사의 목소리와 함께 드디어 수업이 시작됐다.
“오늘 배울 건 저번에 미리 공지해드린 대로 제빵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인 식빵을 만들어볼 겁니다.”
조용하게 말하는 이춘자 여사.
하지만, 이 안에 있는 교습생들의 귀엔 그녀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그럼 오늘 필요한 재료인데······.”
이춘자 여사는 그렇게 말하곤 김준식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아, 예. 예. 그럴 거 같더라니.”
이춘자 여사의 뜻을 이해한 김준식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발을 가볍게 굴렀다.
피잉-!
그리고 퍼지는 그의 능력.
갑자기 퍼진 파동에 교습생들이 당황하기도 잠시, 그들은 더 놀라운 일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교습생들 전원이 지금 눈앞에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덜컥-
냉장고 문이 열리고.
드르륵-
서랍장이 열리며.
스르르륵-
오늘 필요한 재료들이 하나둘 떠올라 각자의 자리에 세팅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 할망구. 됐지?”
어느새 세팅이 끝난 김준식은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손을 탁탁 털었다.
“자, 다들 정신 차리고. 빠진 재료 없는지 확인하고 이상이 있으면 말하세요.”
하지만 이춘자 여사는 칭찬은커녕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다시 수업을 진행할 뿐이었다.
‘쯧, 어째 잘했다고 칭찬을 한 번 안 해요.’
그게 뭐가 힘든 거라고.
이춘자 여사의 무심한 모습에 김준식은 퍽 기분이 상했다.
물론,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음에도 한마디도 안 해주는 건 역시 너무하다고 생각한 김준식이었다.
“저기 선생님! 질문이 있는데요!”
그때,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무슨 일이죠?”
“다른 건 아니고~ 오늘은 슬쌤이 안 해주나요?”
그녀의 말에 이춘자 여사는 짧게 한숨을 쉬곤 입을 열었다.
“슬 선생님은 잠시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곧 돌아올 테니 우선 수업에 집중하세요.”
“네? 하지만 저기에 슬쌤이 있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김준식에게 시선을 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어깨에 있던 라임이를 향해서였다.
그 행동에 김준식도 대충 슬쌤이 누구를 부른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녀석을 슬쌤이라고 부르나 보네?’
이곳에 왔을 때 라임이의 몸에서 나온 슬라임.
녀석을 자칭하는 거라는 걸 말이다.
“미안한데 아직 얘는 네가 말하는 슬쌤하곤 다른 녀석이야.”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직이라뇨?”
김준식의 말에 질문했던 학생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김준식은 끝까지 설명해줄 생각은 없었다.
‘뭐, 이걸 설명해봐야 내 입만 아프니까 말이지.’
분명 여기에 남긴 녀석은 라임이의 몸에서 나온 녀석이다.
그러니 저 학생이 한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어쨌든, 녀석도 라임은 라임이니까.
하지만, 슬라임의 입장에선 같은 녀석이라고 할 순 없었다.
녀석과 라임이는 장장 몇 개월이나 만나지 못했으니까.
슬라임의 특성은 공유다.
서로 결합해서 정보를 얻고 기억과 능력을 공유한다.
그런데 녀석과 라임이는 4개월이 넘도록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여기서 지낸 정보를 얻지 못한 라임이는 녀석과는 다른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소리였다.
“저기, 대답 좀······.”
여학생은 김준식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질문은 이내 이춘자 여사의 목소리에 막히고 말았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요? 이곳에 온 목적을 잊지 마세요.”
“아, 넵!”
다시금 교실이 조용해진다.
그제야 이춘자 여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수업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다시 한번 막히고 말았다.
드르륵-
“뀨이~!”
“아! 진짜 슬쌤이다!”
교실 문이 열리며, 학생이 그토록 바라던, 슬쌤이 등장한 것이다.
“하아······ 정말이지 오늘은 수업하기 참 힘들구나.”
다시 상황이 반전되자 이춘자 여사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크큭, 할망구. 너무 그러지 말라고. 그만큼 이 녀석이 도움이 되고 있단 소리잖아?”
김준식은 킥킥 웃으며 막 들어온 슬라임을 바라봤다.
“뀨이~”
“뀨~”
언제 내려갔는지.
김준식 어깨 위에 있던 라임이가 바닥에 내려와 녀석과 서로 이야기마저 하고 있었다.
“뀨~”
“뀨이~”
직후, 둘은 서로 몸이 엉키기 시작했다.
슬라임의 특성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어?! 슬쌤이···!”
슬쌤을 찾던 학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교습생들 모두가 합쳐지는 슬라임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뭐, 이걸 처음 보면 당연히 놀라긴 하겠지.’
하지만 차마 뭔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슬라임은 미지의 생명체니까.
고작 몇 개월 여기서 본 거로 슬라임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기다리길 잠시.
드디어 결합이 끝난 라임이는 다시 한번 몸을 떨기 시작했다.
몸에서 다른 슬라임이 분열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 할망구가 원한 게 저거지?”
김준식의 물음에 이춘자 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춘자 여사가 라임이를 찾았던 이유.
“어···? 슬쌤이······ 많아졌어?!”
슬쌤이라 불린 녀석의 기억을 가진, 수십 마리의 라임이가 요리 교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 작가의말
이번 주말은 휴재입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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