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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거북의 서재입니다.

귀환자의 아카데미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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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거북
작품등록일 :
2021.08.09 06:30
최근연재일 :
2021.10.14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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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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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2화. 말을 안 하는 게 아니야

DUMMY

“오늘은 약속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셨네요? 자연성 씨.”


길원오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남성, 자연성을 바라봤다.


180은 가뿐히 넘는 키와 정장을 입고 있음에도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다부진 체격.

단정한 머리는 물론이고 잘생긴 외모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고위층 자제를 연상케 했다.


“하하, 죄송합니다. 원장님.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지나는 길에 생각이 나서 왔습니다.”


자연성은 머리를 긁적이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원래 이곳에 올 땐 미리 연락해두고 시간을 조율해야 했다.

심지어 점심시간에 무턱대고 찾아왔으니 뭐라고 해도 할 말이 없던 것이다.


“뭐, 그건 괜찮습니다. 갑자기 찾아오는 손님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도 죄송합니다. 약소하지만 이건 선물······ 이라고 하고 싶은데······.”


자연성은 힐끗 원장실 한쪽 벽을 바라봤다.


“하하, 물건이 좀 많죠?”

“······예, 많네요. 제가 가져온 게 초라해질 정도로요.”


자연성의 반응에 길원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가져온 선물이란 건 길원오를 위한 게 아니었다.


이곳은 보육원.

그러니 자연히 선물 역시 아이들을 위한 것이 된다.


자연성이 가져온 것도 마찬가지다.

그가 가져온 것은 분홍빛이 많이 들어간 장난감이었으니까.


“선물이란 게 어디 초라한 게 있겠습니까? 하나를 가져오든 열 개를 가져오든 다 똑같은 선물이죠.”

“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보다 오늘 찾아오신 이유도 그 일 때문인가요?”


자연성은 자신이 가져온 선물을 옆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장미를 입양하고 싶어서요.”


자연성의 말에 길원오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길원오는 아이를 좋아한다.

그만큼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입양 역시 바라마지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운영하는 평화 보육원은 그 절차 자체가 좀 까다로웠다.


“후우, 자연성 씨. 제가 언제나 말씀드렸습니다만······.”

“하하, 알고 있습니다. 우선 장미와 친해지라는 거죠?”

“맞습니다. 전 어른들끼리 강제로 체결하는 걸 싫어합니다. 입양이란 무릇 아이 본인의 일이니까요. 아이가 싫어한다면 전 억지로 입양시킬 생각이 없습니다.”


평화 보육원.

이곳에서 입양하기 위해선 아이의 동의가 필요하다.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들이다.

그들의 선택 역시 마찬가지.

입양 가고 싶은 녀석도 있는 반면, 다른 아이들과 헤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존재했다.


길원오는 그런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모든 건 자신의 선택이고, 나중에 원한다면 다시 보내주면 되니까 말이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제가 항상 찾아오는 것보다 집에서 함께 지내는 게 더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예, 자연성 씨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압니다. 하지만.”


길원오는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고 자연성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데려간 아이들 중에서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이 있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길원오는 보육원 원장이다.

그만큼 보육원에 관련된 자료는 물론, 이야기 역시 많이 듣고 찾아보고 있었다.


그렇게 들려오는 소식 중에서, 가장 많은 건 바로 괴롭힘이었다.


“입양을 보내놨더니 학대하는 일이 있습니다. 심지어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아 건강하던 아이가 영양실조까지 걸린 사례도 있고요.”


그중에서 그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건 모든 걸 체념한 표정을 짓던 아이였다.


그러니 깐깐해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고아를 도와줄 순 없어도, 자신의 손안에 있는 아이들은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으니까.


“전, 절대 그러지 않습니다! 원장 선생님!”

“예, 저도 자연성 씨가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길원오는 그걸 제가 어떻게 믿겠습니까? 라는 뒷말을 삼켰다.


자연성이 이곳에 들른 건 이번이 딱 4번째였다.

어린 시절 친구가 배신하는 일이 부지기수인 세상이다.

그런데 고작 4번째 만남을 가진 그를 믿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겉은 선하고 착해 보여도, 까보면 그 누구보다 악마인 게 사람이란 존재였으니까.


“그러니, 우선 아이의 마음부터 잡으세요. 그게 첫 단계입니다.”

“하지만······.”

“하하, 장미하고 친해지는 게 좀 힘들죠?”


길원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하아··· 예. 말을 걸어도 대답도 안 해주고 조금만 가까이 가면 도망치니까요.”


자연성이 매번 길원오를 찾아오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장미를 입양하고 싶은데, 아이는 자신을 거부하듯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러니 친해지려고 해도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었고, 차라리 가까이 지내자는 마음으로 매번 이렇게 설득하는 중이었다.


“솔직히 전 자연성 씨가 왜 굳이 그렇게 거절당하면서까지 장미를 입양하고 싶어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러고 보니 제가 말씀드린 적이 없었나요?”


자연성은 뒷통수를 긁적거렸다.

그리고 뭔가 말할까 말까 우물거리다 이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저도 어렸을 때 그랬거든요.”

“······.”

“말수도 적고, 주변 눈치만 보고······ 쉽게 말하면 주변에 어울리질 못했죠.”

“흐음,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하하하, 지금하곤 많이 다르죠? 전 그때 선생님을 잘 만나 고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장미라는 아이에게 눈이 가는 모양입니다.”


자신도 겪었으니까.

자연성이 보육원 내에서 홀로 떨어져 있는 서장미에게 이끌린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유였다.


“그래서 제가 원장 선생님께 더 매달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성은 그렇게 말하곤 멋쩍었는지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장미를 보고 가진 않으시고요?”

“하하······ 지금 이 상태로 보고 가기엔 좀 힘들 거 같습니다. 뭐, 일하다 잠시 들른 거라 빨리 가보기도 해야 하고요.”


자연성은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며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땐 제가 아니라 장미와 대화하시길 바랍니다.”

“하하, 노력해 보겠습니다.”


자연성은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복도를 걷던 중, 한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저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둘은 한동안 시선을 마주치다 이내 상대가 먼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 역시 손님일 테지.

그렇게 생각하며 자연성 역시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없군.’


어딘가 익숙한 달짝지근한 냄새가 났으니 아직 식사 중인 것 같았다.


‘후우······.’


그는 건물을 나와 이내 깊은 숨을 토해냈다.

물론, 그 모습이 조금 전과는 많이 달랐다.


어딘가 씁쓸했던 표정은 사라지고, 마치 아무 감정이 없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쯧, 뭐라고 보고하지?’


그는 보육원을 빠져나오며 품에서 구식 핸드폰 하나를 꺼내 번호를 눌렀다.


띡- 띡- 띡-

뚜루루루-

구식 핸드폰에서 신호가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뚝-

-방쯔?


뿌드득-

자연성은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단어에 이를 갈았다.


-왜 말을 안 하지? 방쯔. 전화를 걸었으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냐? 그것조차 내가 알려줘야 하나?

“아닙니다. 선생님.”

-쯧, 이래서 방쯔들은······ 그래서? 전화했다는 건 그 건 때문인가? 잘 됐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릴 거 같습니다.”

-뭐? 지금 몇 개월이나 지났는지 알아?


전화 너머로도 상대의 분노가 느껴졌다.

자연성은 최대한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침을 꼴깍 삼키며 입을 열었다.


“원장이란 작자가 너무 주의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단 아이와 친해지는 게 먼저일 거 같습니다.”

-하아, 답답하기는. 그냥 밤에 납치라도 하라니까? 대체 편한 길을 놔두고 왜 이렇게 어렵게 가냐고.


뿌드득-

자연성은 상대의 말에 이를 갈았다.


‘그게 됐으면 진작에 했지.’


그게 안 되니까 이러는 거다.

하지만 상대는 그걸 설명해봐야 듣는 척도 안 할 존재였다.


“죄송합니다.”

-후우, 뭐 좋아. 방쯔에게 맡기는 게 영 마음에 안 들지만, 우리가 거기에 갈 순 없는 노릇이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쯧, 아무튼 중요한 자원이니까 최대한 빨리 데려와. 알았어?

“알겠습······.”


뚝-

그가 대답하려는 찰나,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후우······.”


그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매번 하는 전화지만, 언제나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돌아갈까.’


그는 잠시 보육원을 힐끗거린 뒤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


“여, 아저씨.”


자연성이 떠난 뒤, 김준식은 원장실을 찾았다.


“응? 뭐냐. 벌써 식사가 끝난 거야?”

“끝나기는 무슨. 아이들은 아직 먹는 중이야.”


물론 곧 끝날 분위기이긴 하지만, 아직 먹는 건 변함이 없었다.


“후우, 다행이네. 그래도 내가 먹을 건 남았지?”

“걱정하지 마. 안 남았어도 다시 해줄 테니까. 그보다, 조금 전 복도에 지나간 남자가 그 손님?”

“뭐야? 만나고 오는 길이냐?”

“만났다고 할까, 오는 길에 잠깐 스치면서 봤다는 게 맞겠지?”


김준식은 조금 전 본 남성을 떠올렸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

그런 몸에 정장을 입으니 회사원의 이미지보단 어딘가의 경호원을 연상케 하는 남성이었다.


“그러냐? 그래서, 네가 볼 땐 어떻든?”

“뭐가?”

“다 알고 온 거 아니냐? 아이들이야 거짓말은 잘 안 하는 녀석들이니까. 이것저것 이야기했을 거 아니냐.”

“이거야 원, 아저씨 눈은 못 속이겠다니까.”


김준식은 킥킥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일단, 분위기 자체는 거짓투성이야.”

“거짓투성이?”

“그래, 뭐라고 할까······ 가면을 쓴 사람? 딱 그런 느낌이네. 아, 물론 확실한 건 아니다?”


김준식이 눈썰미가 좋다고 해도, 만능은 아니었다.

하지만, 특유의 거짓을 포장하는 얼굴은 잘 알고 있었다.

무언가 가식적인 느낌은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흐음, 네가 그렇게 말하니 더 조심해야겠구나.”

“장미 말이지?”

“그래, 그 남성······ 장미가 항상 피하는데도 어떻게든 입양하고 시다고 했거든.”

“흐음, 장미가 피했다고?”

“그래,”


그가 다가가면 장미는 도망치고.

그가 말을 걸면 장미는 건물 안으로 도망쳤다.


마치 가까이 가기 싫은 것처럼.

그래서 길원오는 그를 식당에 초대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랬다간 장미가 밥조차 먹지 않고 도망칠 게 뻔했으니까.


그에게 중요한 건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굶는다는 건, 그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뭐, 도망칠 만하지.”

“응? 그게 무슨 소리냐?”


김준식의 중얼거림에 길원오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저씨, 서장미가 왜 말 안 하는지 알아?”

“내가 알면 이러고 있겠냐? 그보다 뭐야. 넌 뭔가 아는 게 있는 거냐?”


김준식의 말에 길원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동시에 궁금했다.

김준식이 무언가를 알고 있던 것만 같은 뉘앙스를 풍겼으니까.


“아저씨, 장미는 말을 못 하는 게 아니야.”

“······뭐?”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고. 오히려 걔는 매일 말을 하고 있어.”

“그,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장미가 말을 하고 있다니?”

“서장미는 언제나 이걸로 말하고 있는 거야. 그냥, 아저씨나 아이들이 듣지 못할 뿐이지.”

“그게 무슨······.”


김준식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아저씨, 장미는 언제나 이걸로 말하고 있었어.”

“머리···?”

“그래, 머리. 정확히는······ 아니지, 쉽게 말하자면 텔레파시야. 일반인은 들을 수 없는, 하지만 세상 모든 것과 대화할 수 있는, 그런 텔레파시.”


그리고 그 말은.

서장미는 세상에 몇 안 되는.

모두가 상위권 인물이 된 선천적 각성자란 뜻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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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3화. 누구보다 아름다운 목소리 +1 21.10.09 675 26 14쪽
» 42화. 말을 안 하는 게 아니야 +2 21.10.07 702 25 12쪽
42 41화. 말 없는 아이 +4 21.10.06 706 24 11쪽
41 40화. 방문객 +1 21.10.05 751 21 14쪽
40 39화. 적은 것보단 많은 게 좋지 +4 21.10.04 780 20 12쪽
39 38화. 슬 선생님 +2 21.10.01 807 28 13쪽
38 37화. 많이 컸구나 +1 21.09.30 853 22 12쪽
37 36화. 너한테 한 말 아니다. +1 21.09.29 848 18 14쪽
36 35화. 내가 좀 급해서 +1 21.09.28 852 1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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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3화. 파티 +2 21.09.26 867 1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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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0화. 지금 수업이 중요해? +1 21.09.22 915 1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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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화. 이것만 들어주면 돼 21.09.19 978 21 12쪽
27 26화. 정력에 좋은 재료 +2 21.09.18 985 18 12쪽
26 25화. 대체 누가 닫았어?! +1 21.09.16 989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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