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조용한 날이 없네
8월 중순.
기말고사가 끝나고 며칠, 드디어 영웅 아카데미는 방학 시즌에 돌입했다.
여름 방학.
이름만 들어도 신나는 시간이지만, 사실 아카데미 학생에게는 그리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헌터라는 직업에는 방학이라는 게 없는 직업이다.
그러니 헌터를 지향하는 영웅 아카데미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겐 놀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수많은 과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단 뜻이었다.
수없이 없는 만큼. 더 빡빡하게 말이다.
‘뭐, 그건 내가 신경 쓸 건 아니지만 말이야.’
물론, 김준식은 그런 일에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식당 주인이니까.
오히려 그가 걱정할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지금도 수없이 들리는 알람.
정확히는, 한 명의 인물에게 날아오는 문자가 문제였다.
“아오, 진짜 귀찮게 하네.”
“뀨~”
“뀨-?”
김준식은 계속 울려 대는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그리고 보인 건.
-엄마! 나도 갈래! 응? 나도 데려가줘어~~~!!
이서아가 떼를 쓰는 내용이었다.
자신도 데려가 달라, 안 가면 자긴 죽을지도 모른다 등등.
되지도 않는 협박 같은 투정의 내용만 수백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오, 이 미친년이 진짜 가지가지 하네.’
이서아가 김준식에게 이러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밥이었다.
아카데미는 방학이다.
그러니 김준식 역시 식당 문을 열지 않게 된다.
그럼 자연적으로 이서아는 그런 김준식의 음식을 먹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있으니 이서아가 지금 반쯤 발작이 된 상태였다.
‘근데 식당을 완전히 닫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원래라면 닫을 식당.
하지만 한 가지 이유로 문을 완전히 닫진 못한 상태였다.
한송훈.
매일 한 번씩 치료제를 먹어야 하는 녀석을 위해, 문을 개방하고 슬라임을 상주시킨 상태였다.
애초에 요리 자체는 라임이와 동급인 녀석들이니 그 정도는 재료만 있다면 충분했다.
게이트도 있겠다, 재료 수급도 쉬울 테고 만드는 것도 금방이다.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이서아가 이렇게 투정을 부린단 점이었다.
‘아, 모르겠다. 일단 알람은 꺼버려야지.’
지금도 계속 올려 대는 통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김준식은 이서아의 연락만 무음 처리해버렸다.
드디어 조용해진 스마트폰.
김준식은 그걸 주머니에 넣기 전에 이춘자 여사에게 문자 한 통을 날렸다.
-대충 2시간 정도면 간다. 할망구.
답장은 없었다.
그저 옆에 조용히 1이란 숫자가 사라질 뿐.
물론, 김준식이 이춘자 여사의 답장을 기다린 건 아니다.
‘뭐, 읽었으면 됐지.’
게이트가 클리어됐단 사실만으로도 진수성찬을 차린 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게 미리 문자를 날렸으니, 기본적인 준비는 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뀨이?”
“뀨~”
“그래, 가자.”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은 김준식은 라임, 레몬과 함께 KTX에 몸을 실었다.
그의 목적지는 춘천.
그곳이 이춘자 여사가 있는 지역이었다.
사실 춘천은 김준식에게도 의미가 깊은 곳이었다.
그가 태어난 고향이자, 부모님을 잃은 곳이며, 그가 지내던 보육원이 있던 곳이었다.
누군가 들으면 안 좋은 기억만 생각할 수 있는 곳.
하지만 김준식은 나쁜 기억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춘자 여사.
그녀에게 입양 간 뒤 정말이지 뜻깊은 일이 많았다.
지금 김준식이 있는 이유는, 사실상 그녀 덕분이니까.
그런 생활 속에서 그가 가장 놀란 건 다름 아닌 이춘자 여사가 가진 땅이었다.
‘그땐 진짜 놀라긴 했지. 뭐, 지금도 생각하면 놀라긴 했지만.’
춘천이란 지역은 다사다난한 곳이었다.
게이트 사건 초기 시절.
춘천은 그야말로 폐허가 되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망가진 곳이었다.
모든 건물은 무너지고.
잔해 속에선 몬스터가 들끓었다.
그런 지역을 탈환하는 데에만 수십 년이 걸린 곳이었다.
이춘자 여사는 그런 땅을 탈환 전부터 하나둘 사들이고 있었다.
물론, 춘천 전 지역이 아니라 그녀가 원하는 일부 지역뿐이지만, 그래도 그녀는 상당히 넓은 부지를 사들일 수 있었다.
사실, 구매 자체도 쉬웠다.
이미 망해버리고 땅이 공중분해 돼버린 곳이니까.
1원도 못 받을 거 같던 땅 주인들은 이때다 싶어 너도나도 판 것이다.
그게 몇 푼 안 되더라도 분해되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동시에 이춘자 여사를 이상하게 봤다고도 했다.
사실, 김준식이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 시절 이야기만 들어 보면 돈을 공중에 던지는 꼴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유가 있었다.
‘이춘자 여사도 거기가 고향이니까.’
그녀가 산 지역들.
거긴 이춘자 여사가 어린 시절, 뛰놀며 자랐던 땅이었다.
그저 고향을 지키고 싶단 이유로 사들인 땅.
가진 못해도 자신의 땅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산 그 지역은 이제 이춘자 여사의 보금자리이자, 사업장이 된 곳이었다.
춘천 한옥 마을.
이춘자 여사가 한옥을 모티브로 주거지를 세우고, 남아도는 땅에 펜션과 한식 식당으로 쓸 한옥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춘자 여사가 운영하는 요리 교실도 존재했다.
그렇게 폐허였던 춘천은.
여행 핫플레이스로 손꼽히는 한옥 마을이라는 명물이 된 것이다.
‘그보다 이번에 가면 거기도 좀 들려야지.’
춘천에 있는 평화 보육원.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곳을 이번에 한 번 들릴 생각이었다.
저번엔 급하게 서울로 올라가느라 못 갔으니까 말이다.
“뀨!”
“뀨이-!”
바르게 지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자, 라임과 레몬이 통통 튀며 김준식을 깨웠다.
“응? 왜?”
“뀨이!”
“아, 저거?”
김준식은 두 녀석이 가리킨 방향을 보며 피식 웃었다.
거기엔 각종 식품이 가득 담긴 수레를 끌고 오는 직원이 보였다.
“저거 먹자고?”
“뀨!”
“뀨이!”
두 녀석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아무래도 여행이란 느낌이 강하니, 무언가 먹고 싶은 거겠지.
“그래, 먹자. 저기요!”
김준식도 조금 출출하던 차였으니, 녀석들의 의견에 따랐다.
“어떤 걸 드릴까요? 고객님.”
김준식은 직원이 끌고 온 수레를 바라봤다.
거기엔 이게 기차에서 파는 게 맞나 싶은 것들이 많았다.
간단한 과자부터, 도시락에 초밥까지.
이게 편의점인지 기차인지 헷갈릴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도 기차하면 이거지.’
김준식은 과거에 기차하면 떠오르는 음식과 음료를 골랐다.
물론, 라임과 레몬이 원하는 주전부리도 함께 고른 뒤 결제했다.
“자, 먹어볼까?”
“뀨~!”
“뀨이!”
탁탁-
김준식은 막 구매한 음식, 삶은 달걀을 톡톡 두드린 뒤 껍질을 깠다.
그리고 소금에 살짝 찍은 뒤 곧장 한 입 베어 물었다.
‘음 맛있네.’
퍽퍽한 노른자와 탱탱한 흰자.
거기에 소금의 적절한 짠맛이 조화를 이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삶은 달걀이기에 점점 입 안이 텁텁해지기 시작했다.
치익-!
슬슬 목이 막힐 무렵, 김준식은 함께 구매한 음료. 사이다를 까서 목을 축였다.
꿀꺽-꿀꺽-
톡 쏘는 탄산이 텁텁했던 입을 적시며 목구멍을 뚫었다.
“크흐, 맛있네.”
“뀨~?”
“뀨이-?”
김준식이 너무 맛있는 표정으로 먹은 탓일까?
자신들의 몫은 제쳐두고 라임과 레몬은 김준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왜? 먹고 싶어?”
“뀨이!”
“뀨!”
피식, 웃음이 나왔다.
둘이 고른 건 사실상 김준식이 고른 것보다 더 맛있는 것들이다.
라임이는 도시락.
레몬은 초밥 세트였으니까.
그런데도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래, 조금 있어 봐.”
김준식은 삶은 달걀을 다시 톡톡 두드리며 껍질을 깠다.
까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바닥에 한 번 친 뒤 슥- 굴려주면 쉽게 껍질을 벗길 수 있다.
“자, 먹어봐.”
그렇게 두 개를 소금에 콕 찍어 두 녀석에게 건네주자, 두 녀석은 재빨리 삶은 달걀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뀨이~”
“뀨~”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텁텁한 삶은 달걀을 먹었으니 목을 축일 게 필요했다.
“구조도 달라서 텁텁함도 모르는 것들이······.”
슬라임은 사람과 다르다.
녀석들이 맛을 느낄지언정, 목이 막힌다는 개념이 없으니까.
몸에 음식을 넣고 녹여 먹는 것.
그게 사람과 다르기에 녀석들에겐 텁텁함이란 게 없었다.
그런데도 사이다를 원한다는 건 하나였다.
김준식이 맛있게 먹었으니, 자신들에게도 달라는 뜻이었다.
“자, 마셔라. 마셔.”
“뀨~”
“뀨이~”
김준식은 한숨을 쉬며 제 몫으로 샀던 사이다를 건네줬다.
사이다는 속절없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사이다를 마신 뒤, 두 녀석의 행복한 표정을 보니 마냥 웃음이 나왔다.
“맛있냐?”
“뀨~”
“뀨이~”
“그래, 많이 먹어라.”
사이다야 다시 사면 된다.
판매원은 수시로 돌아다니니까.
탁- 탁-
김준식은 다시 삶은 달걀 하나를 꺼내 껍질을 벗겼다.
사이다야 두 녀석이 다 마셔 없어도 달걀만큼은 많았다.
“우와, 슬라임이다!”
김준식이 달걀 껍질을 막 벗겨낸 찰나,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김준식의 고개가 돌아갔다.
거기엔 이제 막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맹이가 눈을 빛내며 서 있었다.
“저기, 저 슬라임 만져봐도 돼요?!”
상당히 버릇없는 모습.
누군가는 짜증낼 수 있는 모양이었으나, 김준식은 아니었다.
“쟤들이 허락하면.”
“와! 진짜죠!?”
김준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라임과 레몬은 자신이 테이밍한 몬스터는 아니니까.
강제로 하는 게 아닌 자의.
스스로가 김준식을 따라온 녀석들이니 본인의 의견이 더 중요했다.
“끙차!”
꼬맹이는 김준식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맞은 편에 자리마저 잡고 앉았다.
“나랑 놀자!”
“뀨? 뀨이!”
“뀨이-!”
이게 친화력이라는 걸까?
꼬맹이는 빠르게 라임, 레몬과 친해지며 장난치기 시작했다.
“근데 꼬맹이 넌 이름이 뭐냐?”
“저 꼬맹이 아니거든요! 김경수라고요!”
“그래, 그래. 경수야. 근데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
“엄마는 저~기 앞에 있어요!”
김준식은 김경수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기차 앞칸 쪽인 모양이었다.
“부모님한테 여기 온 건 말 했고?”
“음, 아뇨? 엄마가 자고 있길래 심심해서 나왔는데요?”
아이고야.
김준식은 이마를 탁 쳤다.
아무래도 녀석은 몰래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뭐, 당연한 이야긴가?’
그렇지 않고서야 꼬맹이가 기차 칸을 돌아다닐 일이 없겠지.
그게 아니라면 그저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란 소리니까.
“얜 대체 어디로 간 거야?!”
그때, 한 여성이 기차 문 칸을 열면서 다급하게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경수야! 어딨니?!”
애 엄마였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 탓일까? 슬라임과 놀던 김경수가 고개를 획 돌렸다.
“어? 엄마다! 엄마!”
“어? 경수야!”
이어지는 모자 상봉.
물론, 눈물겨운 감동 같은 건 없었다.
몰래 나온 아이의 최후는 언제나 하나였으니까.
짜악-!
“욘석아! 어디 갈 거면 말이라도 해야지!”
“아, 아파아!”
그렇게 부모의 사랑이 가득 담긴 궁둥이 팡팡이 1분간 이어졌다.
“어휴, 몹쓸 꼴을 보였네요. 죄송합니다.”
그제야 김준식이 앞에 있단 걸 떠오른 모양인지, 여성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혹시 저희 애가 뭔가 잘못이라도 한 건 아닌지······.”
“괜찮습니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고 얘들도 재밌어했으니까요.”
“뀨~”
“뀨이~!”
김준식의 말에 라임과 레몬이 몸을 흔들었다.
그 말에 그제야 안심이 들었는지 여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맞아! 엄마! 나 슬라임이랑 친구 됐어!”
“얘가 진짜! 어휴······ 죄송합니다. 그럼 저흰 이만··· 자, 너도 인사해야지.”
“에~ 더 놀고 싶은데!”
“얘가 진짜? 더 혼나고 싶어?”
“으··· 알았어, 슬라임아. 빠이빠이~!”
“뀨~!”
“뀨이-!”
엄마의 호통에 김경수는 아쉬운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순간.
덜컹-!
끼이이익-!!
“꺄악!”
“으, 으아아!”
갑자기 기차가 급정거를 하며 서 있던 두 모자가 앞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뀨-!”
“뀨이-!”
하지만 그들이 다치는 일은 없었다.
앞에 있던 라임과 레몬이 어느새 두 사람에게 달려가 몸을 부풀려 지탱한 것이다.
‘갑자기 왜 멈춘 거지?’
김준식 역시 갑자기 멈춘 기차에 몸을 버티며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승객 여러분들께 알립니다. 현재 기찻길에 게이트가 발생했습니다. 안전을 위해 직원들의 지시에 따라 신속히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현재 기찻길에 게이트가······.
바로 게이트가 발생했단 방송이 들려온 것이다.
‘어휴, 어째 조용한 날이 없냐.’
김준식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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