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기습
평화 보육원 앞.
그곳에 검은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형님. 도착했습니다.”
“그래.”
부하의 말에 자연성이 차에서 내리며 평화 보육원을 바라봤다.
‘후우, 이번엔 좀 친해졌으면 좋겠는데.’
그의 목적은 서장미.
겉으로는 입양이라는 이름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가 몸담은 길드 천하.
4대 길드까진 아니지만, 나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 길드에 온 의뢰 때문이었다.
의뢰인은 중국.
거기서도 유명한 인물이 평화 보육원에 있는 서장미를 데려올 것을 요구했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서장미가 꽤 중요한 아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사자에게 직통으로 내가 연락할 일이 없을 테니까.’
원래 보고란 게 그렇다.
상부에게 연락하고, 상부는 의뢰자에게 보고한다.
이 의뢰에서 자연성은 어디까지나 말단에 불과한 장기말.
그런 그가 중간 보고를 건너뛰고 의뢰자에게 연락한다는 건, 사실상 의뢰자가 빠른 답을 원한단 뜻이었다.
‘제발 좀 쉽게 가자. 꼬마야.’
이미 말미가 오는 상태.
저번 연락으로 슬슬 한계점에 온다는 건 알 수 있었으니까.
그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인자한 가면을 쓰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원장 선생님.”
“자연성 씨?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하하,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장미랑 좀 친해지고 싶어서 이렇게 왔네요.”
“아······ 장미랑요.”
장미라는 단어에 길원오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자연성은 그걸 알아차렸으나, 곧장 묻진 않았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아, 예.”
그저 길원오의 뒤를 따라 원장실로 향했다.
“차는 평소대로 괜찮으시죠?”
“예, 선생님.”
탁-
길원오는 빠르게 믹스를 타선 자연성 앞에 내려놨다.
“자, 여기 드세요.”
“감사합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먼저 입을 연 건 자연성이었다.
“저, 원장님.”
“네?”
“아까 장미 이야기할 때 조금 안 좋은 표정을 지었던 거 같습니다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 티가 났나요?”
자연성의 말에 길원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솔직히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싶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혹시 장미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자연성.
그 모습에 길원오는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안 좋은 일이라뇨. 오히려 좋은 일이죠.”
“좋은 일인데 대체 왜 그런 표정을······.”
“하아,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싶긴 합니다만······.”
길원오는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곤 이내 한숨을 푹 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장미 입양처가 결정되어버려서요.”
“네, 네에?!”
자신이 데려가야 할 아이의 입양처가 결정되다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자연성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자연성 씨 마음은 이해합니다. 근데 뭐 어쩌겠습니까? 장미가 그렇게 그분을 좋아하는데 말이죠.”
“자, 장미가 좋아한다고요···?”
“예, 뭐. 길게 말해서 뭐 하겠습니까? 따라와 보시겠어요?”
길원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자연성 역시 곧장 소파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평화 보육원의 뒷마당.
평소 서장미가 자주 앉아 있던 그 장소였다.
“자, 저기 보이세요?”
“······.”
자연성은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눈에도 보인 것이다.
서장미가, 한 남성의 품에 안겨 즐겁게 웃는 모습을 말이다.
‘저 남자는······.’
그리고, 저 남성 역시 그의 기억에 어렴풋이 남은 인물이었다.
며칠 전, 이곳에 들렀을 때 잠깐 마주쳤던 사내였다.
“아마 자연성 씨도 저분을 뵌 적이 있을 수도 있어요. 저번에 들르셨을 때 오셨거든요. 근데 장미가 어찌나 저 사람을 따르는지······.”
길원오가 옆에서 무언가 이야기했으나, 그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젠장, 이러면 나가린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 사실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래서 죄송하지만, 자연성 씨에게 장미를 입양 보내기엔 어려울 거 같습니다.”
“하하, 어쩔 수 없죠. 아이가 원하는 건 제가 아니었으니까요.”
자연성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길원오에게 인사했다.
서장미의 입양처가 결정된 이상, 더는 그가 이곳에 올 이유가 없던 것이다.
‘방식을 바꿔야겠어.’
아니, 정확히는 딱 한 번 더 올 이유가 생긴 상태였다.
그는 잠시 서장미와 남성을 바라본 뒤 밖으로 나와 차에 올라탔다.
“오셨습니까?”
“야, 애들 좀 모아라.”
“애들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무래도 계획을 좀 수정해야겠거든.”
“몇 명이나 모을까요?”
“차량 네 대 돌려. 혹시 모르니 애들 꽉꽉 채워서.”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검은 세단이 출발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그 차 안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존재가 있었다는 걸.
**
평화 보육원 근처.
보육원이 보이는 조금 먼 곳에 대기 중인 차 안에서 한 남성이 투덜거렸다.
“하~암··· 진짜 지루하네.”
“야, 그래도 앞은 잘 봐라. 놓쳤다간 우리 진짜 나가리야.”
“에이, 나도 알거든? 근데 대체 왜 보육원 앞을 지키라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쯧쯧쯧.
그 말에 옆에 있던 남성이 혀를 찼다.
“야, 넌 뭔지도 모르면서 여기에 왔냐?”
“새끼가. 들은 게 없으니 당연히 모르지. 형님이 그냥 사진만 떡하니 주고 보이면 연락하라고 했으니까. 그럼 넌 뭘 아냐?”
그들의 목적은 감시였다.
정확히는 한 아이, 서장미를 데려가는 남성이 보이면 연락하라는.
자연성의 명령에 며칠째 이곳에서 대기 중이던 천하 소속 헌터들이었다.
“이래서 주변에 귀 좀 기울이라고 하는 거다. 새끼야.”
“아씨, 그래서 뭐냐니까?”
“너, 이번에 우리 길드에 들어온 의뢰가 뭔진 기억하냐?”
동료의 말에 남성은 곰곰이 생각을 정리했다.
“음, 그 중국인가 거기서 왔던 의뢰?”
“오, 알고 있네?”
“근데 딱 거기까지지. 말단인 우리한테 자세한 정보가 오지도 않잖아.”
“그치. 심지어 그 건은 자연성 형님이 온전히 담당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지.”
“그래. 근데 그게 왜?”
“하, 새끼. 이렇게 말해 줬는데도 이해를 못 하네.”
쯧쯧-
남성은 혀를 찼다.
아무리 멍청하다고 하더라도 모든 힌트가 다 들어가 있는데 그것조차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답답했던 것이다.
“아, 그래서 뭐냐고!”
“그러니까 우리가 지켜보는 그 서장미라는 꼬마애가 의뢰······ 아, 야! 저기 나왔다!”
“응? 어?! 진짜네?”
시답잖은 대화를 하는 사이.
그들의 목표였던 아이와 한 남성이 보육원 문을 나서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야, 당장 연락해!”
“이미 하고 있거든?!”
뚜루루루-
신호가 울리고.
뚝-
이내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냐?
“형님! 나왔습니다!”
-···그래?
“예! 형님께서 말씀하신 여자아이랑 남성. 지금 보육원 앞에서 차에 탑승하고 있습니다.”
-알았다. 너희는 몰래 그들 뒤를 쫓아. 수시로 위치 보고하고.
“예, 형님!”
뚝-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야, 형님이 뭐래?”
“뭐 사전에 말한 거랑 같아. 미행, 그리고 보고.”
“씁, 그래.”
부웅-
그들의 차량이 출발했다.
물론, 적당히 거리를 두고 목표물이 탄 차량의 뒤를 따라갔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적당히 따라가며 위치를 보고하는 사이, 어느새 그들의 상관인 자연성이 탄 차량이 곁에 붙은 것이다.
뚜루루-
전화가 울린다.
상관인 자연성이었다.
“예, 형님.”
-저기 앞 골목길에서 작업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앞질러 가겠습니다.”
남성이 손짓하자 운전하던 동료가 곧장 액셀을 밟았다.
빠르게 추월하는 차량.
그리고 목적지점인 골목길에 도착한 순간.
끼이익-! 콰앙-!
급정거와 함께 차량 충돌이 일어났다.
쾅-!
콰앙-!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다른 차량 몇 대가 양옆, 그리고 뒤를 동시에 박아 버린 것이다.
하지만 큰 사고는 아니었다.
애초에 목적은 납치였고, 목표가 죽으면 안 됐기에 범퍼가 찌그러지는 정도의 충돌로 끝낸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평범한 충돌 사고에 비해 약하다는 것뿐.
이미 차에선 연기가 풀풀 나고 있었고, 중간에 낀 차량의 운전자는 에어백이 터진 채 움직이질 않고 있었다.
부웅-
그런 그들 앞에 차 한 대가 다가와 멈췄다.
자연성이 탑승해 있던 차량이었다.
탁-
그는 곧장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사고난 차량으로 다가가자, 뒷문에서 한 남성이 내려왔다.
며칠 전, 보육원 복도에서 마주친 남성이었다.
“으윽··· 이, 이게 대체 무슨······?!”
퍼억-!
자연성은 곧장 주먹을 날려 남성의 턱을 날렸다.
휙 돌아가는 남성의 목.
그는 그대로 눈을 뒤집은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쯧, 진짜 귀찮게 만드는구만.”
자연성은 손을 탁탁 털고는 차량 뒷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안을 들여다보자 그의 목표였던 서장미가 눈을 감은 채 기절해 있었다.
그는 곧장 차로 기어들어 가 서장미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다친 곳은 별로 없나 보네.’
딱히 눈에 보이는 상처는 없었다.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바닥에 기절한 남성이 감싸줬다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형님, 나머진 어쩔까요?”
“어쩌긴 뭘 어째? 적당히 처리해.”
“알겠습니다.”
목적은 달성했다.
서장미를 데려가는 것.
하지만, 목격자가 있으면 안 됐기에 나머진 평소대로 처리하라 명령을 내린 뒤 차로 돌아갔다.
‘좋아. 그럼 보고는 해야지.’
자연성은 품에 넣어둔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뚝-
-누구냐?
“선생님. 저입니다.”
-아, 방쯔? 무슨 일이야?
“목표물. 포획했습니다.”
-아, 그래?!
자연성의 보고에 전화 너머의 남성이 기쁜 목소리를 내뱉었다.
-좋아, 좋아. 조금 늦긴 했지만······ 뭐, 나쁘진 않네. 그럼 당장 데려······.
퍽-!
순간, 자연성의 머리에 큰 충격이 일어났다.
-응? 뭐야? 방쯔! 방금 그 소린 뭐냐?!
순간적인 충격에 자연성은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저 천천히 꺼지는 시야로 대체 어떤 놈의 소행인지 파악하기 바빴다.
뽀용-
그리고 보인 건, 녹색의 작은 슬라임이었다.
‘스, 슬라임이 대체 어떻게······.’
하지만 그의 생각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끄악-!
-마, 막ㅇ······커헉?!
밖에 작업 중이던 부하들의 비명과 함께 그의 의식 역시 그대로 꺼져버렸다.
**
“후우, 이 짓도 못해 먹겠네.”
그 시각.
차 앞에서 쓰러진 남성이 옷을 탁탁 두드리며 일어났다.
“야, 끝났냐?”
“뀨이~!”
그의 말에 슬라임이 그의 어깨에 올라탔다.
지금까지 기절한 척 연기한, 김준식이었다.
김준식은 곧장 주변을 둘러봤다.
거기엔 차를 들이박고는 무장한 채 나온 덩치들이 모두 기절한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설마 싶었는데 진짜 이 짓거리를 벌이네. 이 새끼들.”
김준식은 쯧쯧 혀를 차며 멀쩡한 차에 다가갔다.
그러자 차 안에서 녹색 슬라임 한 마리가 뽀옹하고 튀어나왔다.
“고생했다.”
“뀨이~”
김준식은 차량에 잠복하고 있던 녀석을 쓰다듬은 뒤, 차 안을 들여다봤다.
“오, 제대로 기절했네.”
김준식은 쓰러진 자연성을 뒤로한 채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이봐, 방쯔! 무슨 일이냐니까?! 대답 안 해?!
거기선 중국어가 들려왔다.
물론, 김준식이 못 알아들을 내용은 아니었다.
그 역시 중국말은 할 줄 알았다.
10명의 영웅 중, 중국인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야.”
-······ 넌 누구지?
“그건 내가 물어볼 일이지. 너, 누구냐?”
-이 방쯔 새끼. 아까 나와 대화 중이던 그 새낀 어디 있지? 죽였냐?
“죽이긴 뭘 죽여요. 병신아. 그보다 너 누구냐니까?”
-이 새끼가, 내가 누군 줄 알고 지금······.
도돌이표 대화가 이어진다.
하지만, 그런 대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마마, 나 그 목소리 알아.”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김준식은 그 소리에 곧장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차에 기절한 듯 누워 있던 서장미.
아니, 서장미로 변신해 있던 녀석이 입을 열고 있었다.
“얘, 안다고?”
“응. 마마.”
김준식의 말에 서장미로 변했던 녀석이 차에서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 목소리는······?!
하지만 그런 말에 가장 놀란 건, 김준식이 아니었다.
바로 전화 너머에서 듣고 있던 중국인이었다.
뚝-
남성은 곧장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지만, 그걸 신경 쓸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마마, 저 사람. 잡아 오면 돼?”
“어, 가능하면 저 새끼가 소속된 곳도 다 끝내버리면 좋고.”
“알았어. 마마.”
서장미로 변신해 있던 이가 고개를 끄덕이곤 이내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작았던 키는 170cm까지 커지고.
어렸던 얼굴은 형태가 변하더니 이내 성숙한 동양 여성이 되었다.
“와라, 운(雲)”
이윽고 그녀가 중얼거리자, 그의 발 밑에 구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마, 그럼 갔다 올 테니까. 코리안 짜장 해줘. 알았지?”
“오냐, 오면 몇 번이고 해줄 테니까 제대로 처리하고 와. 알았냐? 린.”
“응! 마마!”
김준식의 말에 린이라 불린 여성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리곤 곧장 구름을 움직여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샤오 린.
열 명의 영웅 중 한 명이자.
제천대성, 손오공의 능력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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