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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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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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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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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707

작성
20.06.1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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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2화

DUMMY

오호라.


그러니까 꿈속의 성모마리아는 이놈을 의미했구나. 동반자살 할 피해자를 찾고 있는 거였어. 그건 완전히 예지몽이었던 거야. 거침없이, 말릴 것도 없이 나는 놈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왕년에 내가 성질머리 때문에 싸움닭 정도는 되었단 말이지.


“아, 악! 저, 그, 그게 아니라···! 악!”


구두 뒷굽으로 머리며 등이며 사정없이 때릴 동안에 남자는 앓는 소리를 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반격을 가한다든가 일종의 위협적인 공격을 내게 하지 않았다.


그걸 놈의 뒤통수를 열심히 찍어버릴 때가 되어서야 그것을 깨닫고 곧 수상히 여겼는데, 어쨌든 빈틈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다시 놈을 열심히 패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놈의 얼굴이 보이는 바람에 구두 굽을 곧바로 눈에 찍으려 하자 남자는 식겁하며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내게 다급히 외쳤다.


“사, 살려주세요!”


- 살려주세요.


문득 꿈에서 성모마리아에게 똑같은 말을 외쳤던 것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짜증이 날 정도로 왜 자꾸 그 꿈이 현실에서 오버랩되는지 모를 일이다. 그 탓으로 내가 잠시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남자는 자신의 머리를 한 움큼 집고 있던 내 손을 풀고 구석으로 도망쳤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이상해 보이진 않지. 대신, 엄청나게 수상해 보이지.”

“그건..”

“당신 뭐야. 어떻게 엘리베이터를 멈춘 거야. 강도야? 이 건물 털러 왔어?”


내가 나머지 한쪽 구두마저 벗어 손에 들자, 쥐어 터진 흔적이 다분한 얼굴의 남자가 격하게 손사래를 쳤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남자는 슬금슬금 일어나더니 절대 아니라고 부정하는데, 그 표현으로 얼굴까지 흔드는 것이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안 거야? 아니면 암살자야? 장철용 그 인간이 보냈냐?”


장철용은 누구냐고 한다면, 어제 내가 쥐를 넣어둔 서랍 주인이다. 그 망할 놈의 인간. 그런데 그 인간이 암살자를 고용할 정도로 돈이 많았던가?


“그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저 수상한 사람 아니에요! 단지 백나나 씨를 데려가기 위해···.”

“그게 더 수상하다고! 나 납치하려는 거잖아!”

“납치라든가 그런 게 아니고··· 자, 잠시만요!”


이런 어불성설의 교과서를 보았나.


내가 다시 때리려는 시늉을 보이자 남자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의심쩍은 눈초리로 살펴보니 그건 작은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다. 암살자가 아니라면.. 설마 이 자식 스토커는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스치는 순간에 남자는 그 목걸이를 내게 건넸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이 세계 사람이 아니에요. 설명이 길어질 거 같은데, 이렇게 나나 씨가 폭력적인 상태에서는 나나 씨를 제대로 이해시키기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설명하는 대신에 먼저 보여줄게요.”

“이건 그냥 목걸이잖아.”

“참, 먼저 소개부터 할게요.”

“목걸이를?”


미친 놈인가. 반려 목걸이라도 되나?


“나 말이에요. 나는 나도진이에요. 이 세계가 아닌 월계(月界)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목걸이도 마찬가지로 이 세계의 목걸이가 아니라 월계의 목걸이고요. 아니, 사실은 거울이에요. 목걸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거울입니다.”


예전에 그런 영화를 본 적 있는 것 같다. 대충 웬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또라이 하나한테 잘못 걸려서 그 또라이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불쌍한 주인공의 이야기였던 거 같은데, 아무튼 그 영화를 보면서 저 또라이가 될지언정 저런 한심한 주인공은 되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애초에 저런 심각한 인간을 만날 확률이 몇이나 되겠냐는 생각이 마지막엔 나의 결론이 되었는데, 그 희박한 확률을 뚫고 나는 만나버린 것이다. 별명이 아니라 본명으로서의 또라이를. 나는 구두를 든 손에 힘을 실었다. 보통 놈이 아니군.


“거,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보여줄게요! 보고도 못 믿겠으면 그때 날 때려요.”


자신을 나도진이라고 설명하는 남자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가만히 지켜보자 목걸이의 동그란 펜던트를 열었는데, 그 안에는 정말 거울이 있었다. 나도진은 그 거울을 가지고 뒤돌았다. 승강기 안에 설치된 거울 앞에 그걸 두었는데, 그 순간 커다란 빛이 새어 나오는 바람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아야만 했다.


눈부심에 찌푸린 눈을 뜨자 커다랗고 새하얀 빛이 사라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 순간,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진을 노려보았지만, 그는 나를 보지도 않은 채 엘리베이터의 거울을 주시하고만 있을 뿐이다.


“이제 잘 봐요.”


내 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비장하게 말하더니 나도진은 팔을 쑥 뻗었다. 거울 속으로. 턱이 벌어질 정도로 놀란 내게 눈에 힘을 주며 그를 쳐다보자 도리어 당당하게 웃으며 거울 속에 반쯤 들어가 있는 팔을 다시 빼내는 것이다.


“봤죠? 거짓말이 아니에요.”

“뭐, 뭐야 이거?”

“월계로 가는 문을 열어주는 거울이에요.”

“마술일 수도 있잖아.”

“마술이 아니에요. 이제 이 거울을 통과하면 월계로 갈 수 있어요.”


나는 보고도 그리고 듣고도 믿을 수 없어서 벙찐 얼굴로 거울만을 응시했다. 꿈인가? 택시 안에서 꾼 꿈이 오히려 더 현실처럼 다가올 줄이야. 말도 안 돼. 초점을 잃은 내 두 눈 앞으로 나도진이 손을 흔들었다. 정신이 안 날아갔는지 확인하려는 거 같다. 그 손짓에 그를 노려보자 나도진은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랑 같이 여길 떠나서 월계로 가줘요. 지금 우리는 나나 씨가 필요해요.”

“뭐?”

“직접 그곳에 가게 되면 모든 게 이해될 거예요. 이 거울을 통과해서 가기만 하면 돼요.”

“정말 여길 통과할 수 있다고?”

“못 믿겠으면 내가 먼저 갈까요?”


정신이 아득하다. 거울을 통과한다니, 그건 앨리스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나? 앨리스 보면, 거울을 통해서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고 그러던데. 그런데 이렇게 남의 건물 거울을 통해서도 들어가고 그랬었나?


아니면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몽중몽(夢中夢)이라고들 하잖아. 어떻게 하면 깰 수 있지? 나 이런 액자식 구성의 꿈은 초면이란 말이야. 설마, 못 깨지는 않겠지? 계속 잠들어 있으면 누군가 깨워주지 않을까?


“난 안 가.”

“가야 해요. 미안해요.”

“야!”


내가 상황 판단을 하는 사이에 나도진은 내 손에 들린 구두를 자신이 들더니, 자리를 굳힌 나를 거울 속으로 무자비하게 밀어버렸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렇게, 부딪히는 것 하나 없이 거울이 나를 집어삼키도록 둘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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