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2021.05.01 23:55
연재수 :
333 회
조회수 :
14,211
추천수 :
244
글자수 :
1,286,707

작성
21.04.22 22:30
조회
38
추천
1
글자
9쪽

323화

DUMMY

“어때?”


아주 짧은 시간이 흐른 후에 태강은 손을 거두었다. 아마도 나나가 시선을 돌려서 도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도진이 민망한 감정을 실어 대답했다.


“과연 그럴까?”


태강이 그런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험난한 세파(世波)와도 같이 질문을 퍼부었다. 그 때문일까, 도진은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급기야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뒤를 보면 돼.”


태강이 말 그대로 뒤쪽으로 난 길을 가리키며 방황하는 도진을 인도했다. 그의 지시를 따라서 돌아보니 야담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의 발품새는 도진이 방금까지 보여주었던 불안과 대조될 정도로 과묵하면서도 확고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봐. 그럼 이렇게 나타나는 거야!”


무리 안으로 들어온 야담 옆에 자석처럼 철썩 붙어서는 태강이 박수갈채를 독려하듯이 웅변조로 말했다.


“사기는 그만 치는 게 좋을 것 같군.”


야담이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밀치며 한 말이었다.


“사기라니? 엄연히 해야 할 말이었는데.”

“하필 그게 네 입에서 나오게 되면 신뢰도가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았나 보군.”

“그럴 리가. 내가 해야만 하는 말이었어. 희망은 언제든 기댈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 언제라도 자기 자신을 시험하는 감정이라는 걸 알 수 있게끔 도와준 거였다니까.”

“어차피 지금 있었던 일은 모두 우연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리 놀란 표정은 짓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태강 녀석이 기세등등한 꼴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자기변호에 열중인 태강을 어느 때보다도 당연히 무시하며 태강이 얼이 빠진 듯한 얼굴의 도진에게 조언을 날렸다.


“하지만 우연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거야.”


달목의 부축을 받고 나무에서 내려온 초영이 이제는 그는 홀연히 남겨두고 먼저 야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가?”

“그래. 넌 아직도 그렇게 네 주장만 옳다고 하면서 지내고 싶니?”


초영이 곁눈질로 주화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야담에게 물었다. 야담은 그녀가 주화에게 대화를 떠넘기려고 한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지만, 그 괴롭거나 가엾거나 그 어떤 표정이 지금 순간에 자신의 얼굴에 떠올랐는지 자신할 수 없어서 급하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하필이면 대신에 마주친 사람은 나나였는데, 그의 다급한 표정은 처음 목격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나나가 입을 틀어막아가면서 웃음을 참는 듯이 보이자 야담은 아주 체념한 사람처럼 눈을 감아버려 이마저도 회피해버렸다.


“아무래도 조언은 도진이가 아니라 너한테 했어야 하는 거였는데.” 태강이 이 재미를 놓치지 않으려고 집요하게 그를 놀리는 말을 뱉었다. “저 표정 좀 보라니까. 그야말로 죄의 본성 그 자체야.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알잖아! 아무튼 죽은 사람 빼고 다 모인 것 같은데, 제대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야담이 도중에 내빼는 일이 없도록 제일 먼저 그의 등을 떠밀며 태강이 이곳에 이들을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아직 다시 태어낮 못한 이들을 제외한다고 해도, 12성인이 모두 모인 게 아니었다. 인간이라고 치면 두 사람이, 성인이라고 치면 한 사람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 모인 거 같지 않은데요?”


나나가 가장 마지막에 따르며 물었다.


“응. 두 사람이 부족하지. 그래도 괜찮아.”


태강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대답했다.


“아마 두 사람이 대신인가 봐요.”


주화가 도진 옆에 나란히 서는 나나를 향해 나긋하게 말을 걸었다.


“맞아. 백면은 오지 않을 거야. 그리고 영월도 그렇고.”


태강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도진과 나나 사이에 간격을 두고자 잠시 자신이 그 두 사람의 가운데를 비집고 들어섰다.


“왜요?”


백면을 제외한다면 가장 행방이 묘연한 이는 영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질문하고 말았다.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아마도 내일이 되려나?”


태강이 뭔가를 고민하는 눈치처럼 눈을 위로 뜨며 답했다.


“이제 미래까지 내다보려는 거니? 너야말로 완전 인간이 되어버린 거 아니니?”


초영이 그의 모습을 보며 비꼬는 말투와는 다르게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 아니지, 그럴지도 몰라.”


태강도 군소리를 내지 않은 채 싱긋이 미소를 얼굴에 걸치기만 했다. 그는 뒷걸음질로 서서히 물러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나나의 오른쪽에 섰다. 만족스러운 그의 눈길을 따라 주위를 둘러보니 천일나무를 중심으로 열 사람 모두 둥근 원을 그리는 대열로 서 있었다.


“우린 누구보다 인간다워야 할 테니까. 마치 이 천일나무처럼 말이야.”


태강이 앙상한 나뭇가지로 그물을 놓은 듯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왜요?”


그의 옆모습을 올려다보던 나나가 넌지시 물었다.


“인간은 소금이 없으면 살 수가 없잖아. 그런데 이 천일나무도 그렇거든. 그러니까 우리는 인간답지 않는 인간, 초인적인 인간이 아니라 인간다운 인간인 성인(聖人)이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인간들이 우리를 본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인간다운 인간이 뭔데요?”

“네가 말해 봐.”


태강의 권유에 한껏 소심해진 나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를 몇 자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달목이 입을 열었다.


“그건 저마다 다를 겁니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것을 믿기 때문이지요.”

“그럼 인간다운 인간은 한 모습의 인간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의 대답은 나나가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비록 가르침의 방식과 그 뜻은 수없이 변천해 왔지만, 언제나 진리는 하나라고 가르쳤던 이들의 이야기처럼 인간의 진정한 면모 또한 하나일 줄 알았다. 그리고 또 그것만이 이치에 맞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굳이 제각각의 모습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다면, 인생이라는 질문에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은 도리어 더한 방황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한 모습이야. 다만 그걸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차이일 뿐이지.”


어디선가 초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그녀는 나무 기둥을 사이로 바로 맞은편에 있는 듯했다.


“마치 나나 씨가 그린 그림처럼 말이에요.”


주화의 목소리는 그쪽에 비해 가까웠다. 고개를 살짝 틀어서 보니 역시나 주화의 모습도 드러났다.


“제 그림이라고요? 전 여기에 있는 성인 누구에게도 그림을 직접 보여준 적이 없잖아요.”

“맞아요. 하지만 그림은 결국에 마음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통로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나나 씨의 마음을 들을 수 있고요.”

“그럼 제 마음이 어떤지 아는 것만으로도 제 그림이 어떨지 안다는 거예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에 주화가 이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므로 나나는 결국에 대답보다 더 희귀한 정답을 얻은 셈이었다.


“제일 중요한 이야기가 빠진 것 같은데.”


때마침 찾아온 정적을 이용해서 흑석이 대화의 주제를 바꾸어버렸다. 그는 도진 바로 옆에 서 있었기에, 나나의 눈에는 그의 표정이나 몸짓이 제대로 담기지는 않았으나 어쨌거나 그의 목소리에는 너무나도 굳센 의지가 묻어나서 굳이 그의 진심을 궁금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반응을 살피기도 전에 가장 눈에 들어온 건, 그가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서 고개를 푹 수그리는 황호의 모습이었다.


“아, 그러네.”


태강이 퍽 싱겁게 동조했다. 과연 누가 자극의 역할을 하게 될지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는 바람에 도진이 모르고 바닥에 떨어진 잎을 밟았을 때 났던 바스락 소리가 아주 크게 울려퍼질 정도였다.


“그럼 내가 먼저 말하도록 하지.”


의외로 야담이 나설 줄은 몰랐기에 그가 말을 뱉었을 때는 모두의 눈동자가 동시에 그에게로 쏠렸다. 그가 안 보이는 쪽에서는 몇 걸음 움직이면서 그의 발언에 주목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정말로?”


옆을 쳐다보며 흑석이 물었다. 야담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헛기침하면서 천천히 목을 가다듬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달이 만든 세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후원금 감사드립니다. +2 21.04.28 46 0 -
공지 후원금 감사드립니다. 21.03.05 175 0 -
공지 후원금 감사드립니다. 20.10.20 157 0 -
공지 후원금 감사드립니다! +2 20.09.29 278 0 -
333 332화 (완) +1 21.05.01 32 2 11쪽
332 331화 21.04.30 25 1 10쪽
331 330화 21.04.29 30 1 10쪽
330 329화 21.04.28 32 1 11쪽
329 328화 21.04.27 30 1 9쪽
328 327화 21.04.26 35 1 9쪽
327 326화 21.04.25 46 1 9쪽
326 325화 21.04.24 38 1 9쪽
325 324화 21.04.23 46 1 9쪽
» 323화 21.04.22 39 1 9쪽
323 322화 21.04.21 41 1 9쪽
322 321화 21.04.20 42 1 9쪽
321 320화 21.04.19 56 1 13쪽
320 319화(수정) 21.04.18 48 1 9쪽
319 318화 21.04.17 38 1 9쪽
318 317화 21.04.16 33 1 9쪽
317 316화 21.04.15 37 1 8쪽
316 315화 21.04.14 33 1 9쪽
315 314화 21.04.13 38 1 9쪽
314 313화 21.04.12 72 1 9쪽
313 312화 21.04.11 37 1 9쪽
312 311화 21.04.10 33 1 9쪽
311 310화 21.04.09 85 1 9쪽
310 309화 21.04.08 37 1 9쪽
309 308화 21.04.07 35 1 9쪽
308 307화 21.04.06 40 1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