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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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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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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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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4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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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25화

DUMMY

“아니, 그건 상처야.”


미동도 하지 않고 있던 녹수가 반듯한 자세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마침내 말을 꺼냈다. 다들 그녀가 있는 쪽을 황급히 돌아보느라고 녹수의 입장은 그녀 자신의 위치보다도 더 뒤늦게 고려되고 말았다.


“과연 순진무결한 행복이란 존재할까? 그렇지 않을 거야. 그런 건 존재할 수 없지. 인간의 마음이란 불결을 논해야 할 만큼 복잡하니까. 깨끗한 사랑과 완전한 행복보다 더 존재하기 어려운 게 순결한 마음일 거야. 하지만 매 순간 악의의 위험이 도사리는 그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에는 사용하기 나름이야.”

“어떻게 사용하는 건데?”


태강이 코허리가 시큰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두어 번 긁으며 녹수의 이야기에 질문을 던졌다.


“그건 그 마음의 주인에 따라서 방법이 가지각색이야.”


천양무궁(天壤無窮)이라고, 그녀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이들은 저마다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땅을 내려다보며 녹수의 견해에 동의하고 있었다. 얼마 있다가 녹수는 그 사이, 하늘과 땅 가운데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해 보기 위해서라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다물었던 입을 다시 열었다.


“인간은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해. 하지만 단지 화를 낸다고 해서 잘못을 했다고 볼 수는 없지. 그랬다가는 모든 감정이 죄가 되어야만 할 거야. 감정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날 때부터 죄인이 되고야 마는 것이지. 그런 식으로라면 그들에게 참회의 기회는 도대체 언제, 어떻게 찾아오는 것인지 알려줘야 할 만큼 우리 존재의 이유는 크게 달라지고 말 거야.”

“그럼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데?”


흑석이 걸리적거리던 돌멩이 하나를 안쪽으로 차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한쪽 눈두덩이를 지그시 누른 채로 물었다.


“그들의 양심을 위해서야. 인간은 자신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 존재는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을 모르면서, 때로는 알면서도 자신의 양심을 의탁하기 위해서 완전무결한 존재를 찾곤 하지. 그들이 지닌 하나의 습성이라고 보면 돼. 그래서 우리 중 몇몇은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몇몇은 숭상의 대상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 우리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야 했던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야.”

“그럼 우리가 없어진다면?”


흑석이 이번에는 반대쪽 눈을 문지르며 물었다. 그가 얼굴에서 손을 뗐을 때가 되어서야 녹수는 대답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럴 일은 없어. 다시 태어날 테니까.”

“열한 명은 가능하겠지. 그런데 다른 한 명도 가능할까?”

“가능할 거야.”

“불가능해. 이미 그 애의 영혼의 일부는 영영 사라져버리고 말았잖아. 돌아오지 않을 거야.”

“너무 많은 죄를 지을 바에는 없어지는 게 더 낫다는 걸 그 애는 이미 우리보다 먼저 알고 있었어.”


언급되지 않은 이름을 두고 나나는 문득 제 손목을 바라보았다. 팔찌는 마치 여러 이름을 가진 자의 명패라도 되는 양, 아무 이름도 적히지 않았으나 그 자체만으로 그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오묘한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애는 더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거잖아.”


더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지 초영이 날카롭게 내지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돌아오게 되어 있어.”


녹수는 조금도 동요되지 않은 채 꿋꿋하게 서서 말했다.


“어떻게?”


애써 귀를 감쌌던 손을 떼며 초영이 이번에는 힘겹게 물었다.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으니까.”

“차라리 허무가 있다고 하지 그러니?”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허무야말로 곧 그들의 양심일 테니까. 인간은 화를 내고 나서야 알게 돼. 분노가 허무보다 견디기 훨씬 더 쉽다는 걸 말이야. 분노는 인간을 끊임없이 달리게 하지. 그래서 인간들은 너무 쉽게 분노에 넘어가고 말아. 이건 내가 장담할게. 나는 너희 중 그 어느 누구보다 인간의 분노를 직면해야만 했던 존재니까. 너희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을 거야. 때로 그 분노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은밀히 혹은 서서히 진행된다는 걸 너희도 이번에는 배웠을 테니까.”


녹수는 오히려 제 목소리를 더 키우기만 할 뿐이며, 지금까지 오랜 세월 자신을 억눌러 왔을 분심과 울화를 한꺼번에 표출하듯이 조금도 쉼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야말로 분노는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 발이 묶였다고, 도저히 한 걸음도 마음대로 내디딜 수 없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분노만 한 것이 없지. 왜냐면 자신을 망설이게 하거나 멈추게 만드는 장애물을 단번에 해치울 수 있도록 도와주니까. 분노란 거친 만큼 얼마나 간편한 가정인지 몰라. 그렇지만 분노는 여전히 무서운 감정이거든. 분노를 내비치는 사람에게도, 그 화를 입는 사람에게도.”


가장 먼저 대형을 흐트러뜨린 자도 바로 녹수, 그녀였다. 그녀는 이야기를 도중에 멈출 의사가 전혀 없다는 듯이 말하는 중간에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는 황호 앞에 비로소 멈추면서 잠시 침묵을 지키게 되었다.


“······왜 내게 오지?”


주춤거린 황호가 그녀만이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웅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뚜렷하지는 못했지만, 구슬픈 빗소리만큼 귓가를 아프게 때리는 무언가가 내포되어 있었다.


“네가 가장 잘 알게 되었을 거야.”

“······분노라면 너의 것일 텐데.”

“가진 자라고 해서 아는 자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거든.”

“그렇다면 내가 그 ‘아는 자’라는 거군. 난 무얼 아는 자길래 이토록 슬픈 것이지?”

“슬픔을 아는 자겠지. 그리고 분노를 아는 자기도 할 테고, 너는 허무까지도 아는 자거든. 그것뿐이겠어? 너는 행복도, 사랑도, 꿈에 대한 열망도, 죄책감도, 기적을 바라는 희망도, 새로운 것을 향한 갈망도, 비밀도, 믿음도, 용기도 잘 알고 있어.”


황호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녹수가 자신을 비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호, 널 놀리려고 한 말이 아니야. 네가 이 자리에 끝까지 없었더라면 나는 너를 실컷 비웃었을 것이고, 너를 최대한 깊이 원망했겠지. 그런데 네가 오늘 이 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에 나는 너를 격려하고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내가 슬픔을 아는 자라는 건 동의하도록 하지. 어쩌면 우리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분노까지도 그럴지도 모르겠다만, 나머지 감정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잘 알고 있다고 너는 자신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알 수밖에 없지. 분노는 너를 멈추게 하지 않지만, 오직 너만이 분노를 멈출 수 있으니까.”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세월과 함께 자신을 함께 잃어야만 했던 구부정한 황호의 어깨에 녹수는 천천히 손을 올렸다.


“너에게는 우리에게 없는 것이 하나 더 있거든.”

“······눈물이라는 건가?”

“아, 눈물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해. 비록 우리에게도 다시 젊은 날이 돌아온다고는 해도 현재 늙은이가 되어버린 우리가 그걸 논하는 일은 너무 추한 일이야. 그러니까 눈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야. 하지만 아주 비슷했어.”

“그럼 뭔지 모르겠군. 미련? 고집?”

“아니. 미련과 고집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 만감이 교차하는 인간의 마음에도 미련과 고집은 항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을 테고.”

“그럼 도대체 뭐란 말인지!”


황호가 윽박지르듯이 대꾸하자, 녹수는 폭소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행동은 누구에게나 뜬금없는 전개였기 때문에 누구도 쉬이 녹수를 따라서 웃을 수는 없었다.


“아마 그 애도 너를 그래서 용서하려고 했을 거야. 그 애가 너를 멀리해야만 했던 걸 용서하기를 빌어. 내가 그 애 대신에 말할게.”

“뭘 용서해야 한다고?”

“그 애 말이야. 결국에 백면도 너를 걱정했던 거야. 그 애는 모두를 위한 결정을 한 거라고. 그렇지? 자, 이제 네가 이야기를 해 봐.”


녹수가 순서를 넘기듯이 팔을 곧게 뻗어 황호를 모두에게 소개하는 시늉을 하며 물러나려고 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글을 옮기는 과정에서 자꾸 실수를 하게 되네요.

죄송합니다.

이것을 제외하면 수정된 부분은 없기에 따로 소제목에 표기하지는 않았지만,

일부분을 그만 빠뜨리고 글을 올리고 말았습니다.

업로드 이후 확인을 바로 했기에 지금은 수정한 상태이니,

부디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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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326화 21.04.25 45 1 9쪽
» 325화 21.04.24 38 1 9쪽
325 324화 21.04.23 46 1 9쪽
324 323화 21.04.22 38 1 9쪽
323 322화 21.04.21 41 1 9쪽
322 321화 21.04.20 4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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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319화(수정) 21.04.18 48 1 9쪽
319 318화 21.04.17 38 1 9쪽
318 317화 21.04.16 33 1 9쪽
317 316화 21.04.15 37 1 8쪽
316 315화 21.04.14 32 1 9쪽
315 314화 21.04.13 38 1 9쪽
314 313화 21.04.12 72 1 9쪽
313 312화 21.04.11 37 1 9쪽
312 311화 21.04.10 32 1 9쪽
311 310화 21.04.09 85 1 9쪽
310 309화 21.04.08 37 1 9쪽
309 308화 21.04.07 35 1 9쪽
308 307화 21.04.06 3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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