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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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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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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3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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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화

DUMMY

한동안 멍이 든 부위로 몰리는 듯한 편협적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구라고 언급할 필요도 없이 모두가 그러했기에 침묵은 새까맣게 맺힌 피나 다름없었다. 낫기 위해서는 역시나 시간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그래, 시간은 얼마든지 채가도 좋은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고통스러운 건 그 멍은 시간의 몸이 아니라 사람의 몸에, 때로는 그 마음에 남는다는 사실이었다.


“두 사람에게는 미안합니다.”


진심을 매번 처음처럼 대하는 자가 또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우현은 정중하게 사과했다. 도진과 나나가 대문을 나설 적이었다. 남발한 사과에도 진실은 유일무이했기에, 결코 질리지는 않았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배웅을 위해 대문 밖으로 넘어온 우현을 향해 도진이 뒤돌아 물었다. 이에 나나 역시 자동으로 돌아가는 고개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실은 침묵이 가장 소란스러운 만큼, 그녀도 이곳에 남아 우현에게 물어보고픈 일이 한두 가지 아니었다. 그러니 도진의 궁금한 ‘한 가지’가 얼마나 신중하면서도 겸손한 선택을 바탕으로 살아남은 질문인지를 알 수 있었다.

우현은 묵묵부답이었다. 그에게는 훨씬 복잡한 사연으로 얽힌 침묵이 응어리로 남아 있으리라. 그러니 상심할 이유를 찾을 수도 없었다. 그건 거절이 아니었으니까.


“왜 시집의 제목은 『파경(破鏡)』이라고 지으신 겁니까?”

“그런 걸 물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저돌적인 태세와 다르게 질문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간 듯이 보였다. 우현은 풀어지는 긴장감에 그만 어수선하게 웃고 말았다.


“시집 어디에도 ‘파경’이 들어간 시는 없었습니다. 연구 자료가 많지도 않은 데다가 몇 마디 주변과의 대화로 파악하기에는 모르는 게 더 많았거든요.”


그에 비하면 도진은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하나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을 해준다면 나 역시 대답할 테니까, 나쁜 조건은 아닌 것 같군요.”


우현이 뒷짐을 지며 말했다. 이에 도진은 별다른 투정 없이 “알겠습니다.”라고 답하며 응해야 했다. 어느새 집에서 멀어져 길가 한가운데에 서 있게 되었지만, 그 누구도 그 전으로 돌아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그걸 이제 와서 묻는 것입니까?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물어볼 기회가 많았을 텐데.”


나나는 놀랐다. 자신이야 그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고 하지만, 도진은 우현을 직접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은연중에 하던 생각을 우현이 바로 자신의 머릿속에서 끄집어낸 듯해서 소름이 끼쳤다.


“기다리고 싶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알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또한 재밌거든요.”

“모르는 게 재밌다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고, 단지 알고자 하는 게 있다면 바로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걸 모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재밌다는 겁니다. 그래서 최대한 오래 기다리고 싶었습니다.”

“그럼 오늘이 바로 기다려 왔던 날이라는 건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알고 싶군요.”


이어서 우현도 감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지(無智)든 무지(無知)든,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빈곤과 결핍 아니던가. 그래서 그도 그 어떤 표정으로도 오해될 수 없을 만큼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엄밀하게 종류를 따지자면 나나의 것은 경악(驚愕)이었을 테고, 우현의 감정은 대경(大驚)이었다. 그래도 두 사람의 표정은 같은 대상을 향하고 있었기에 상당히 비슷했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도진이 몰래 나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니?”


우현이 그의 말을 되뇌면서 핵심이 되는 자신의 의문을 전달했다.


“연속적인 모든 것이 언젠가는 그대로 멈춰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어떤 때보다 강하게 자신을 덮칠 때가 있는데, 오늘 바로 그 순간이 있었습니다.”

“나를 만나면서 말입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숨기는 것 하나 없는 사이가 때로는 더 부끄러운 법이다. 도진은 마주치지 못한 눈을 억지로라도 하늘에 얹혀 두었다. 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나나에게도 하늘을 거부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어둑해지는 하늘에 걸터앉은 달이 호젓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가을은 노을의 계절인 듯, 모든 것을 더 붉게 보이도록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가을에서 고독을 찾는다, 결실이란 결말의 오명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지며.



“깨진 거울로는 얼굴을 비춰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결말이 결실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전제되는지 아는 것처럼 때마침 우현이 대답했다.


“얼굴이라고요?”


무의식이 반응한 탓에 나나가 도진보다 앞서 물었다.


“하나의 거울에는 하나의 모습만 담기지만, 그 하나의 거울이 깨져버리면 너무 많은 물상이 보여서 사람의 의식을 어지럽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두 사람에게 하늘을 양보하기라도 했던 것인 양 우현이 마지막으로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달을 바라보는 듯싶었다.


“분명히 하나의 거울이었는데도, 깨졌다는 것만으로 거울을 바라보지 말아야 하는 건 좀 매정한 것 같은데요.”


바닥에 눈길을 던지며 도진이 씁쓸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깨진 거울을 탓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탓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에 더욱 활기로 가득찬 목소리로 우현이 반박했다.


“어째서요?”


나나가 한 번 더 끼어들었다.


“하나의 영혼에 하나의 몸밖에 가지지 못하면서도 마음은 너무 많은 면모를 간직하고 있으니, 도저히 나 자신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국(鏡國)』에서 영감을 받았으면서도 거울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던 겁니다.”


우현은 누구라도 좋으니 이제는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므로 짐은 젊은이들의 몫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터벅거리는 걸음의 소리는 더욱 날카롭게 감정을 건드렸고, 가끔 발길에 치이는 낙엽은 한때의 편견과 기만이었던 듯이 바싹 말라서 짓궂게 들러붙었다. 걷어차도 자꾸만 바람에 힘입어 자신보다 앞선 그 몇 장의 낙엽이 얄미워져 나나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열심히 바닥을 치우기 바빴다.


“있잖아.”


마침내 마지막으로 제게 굴러온 낙엽을 치우며 나나가 도진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경호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줄곧 부동자세였다.


“전시회 일은 어떻게 될까?”

“문제가 또 있는 건가요? 설마 나나 씨의 그림인 게 들켰다거나.”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도진은 즉각 반응했다.


“아냐. 언젠가 들키기는 하겠지만, 아직도 들키지 않았어. 신기하다니까. 그런데 말이지, 이걸 말하려던 건 아냐.”

“그럼요?”


나나는 언어로 표현하는 대신에 왔던 길을 뒤돌아보기만 했다. 그러면 도진은 그녀의 저의를 단번에 알아차리게 된다.


“괜찮을 거예요.”


도진이 그 고독해 보이는 길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정말로 그럴까?”

“그렇게 될 거라고 바라기라도 해야죠.”


아니, 길은 하나였다. 기나긴 세월 동안에 많은 이들의 묵직한 발걸음을 견뎌야 했던 길은 사람의 마음보다 더 견고할 것이다. 단지 그 길을 걸으며 사람만이 고독을 느꼈을 뿐이다. 지난 길이 써늘해 보이는 것 역시, 그 길 위에서 내가 외로웠기 때문인 것을.


“그래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아.”


길의 끝에서 미심증을 갖게 된 나나가 확신에 차지 못했는지 얼굴을 구겼다.


“뭐를요?”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어떤 방법인데요?”

“모르겠어. 그런데 뭔가 해야 할 같은 기분이 든 건 사실이야.”


책임을 지지도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에 나나는 곧 입을 닫았지만, 한 번 열린 의문의 주머니는 그녀의 머릿속을 금세 어지럽혔다.


“그 따님의 행방이라도 찾을 수 있다는 건가요?”


무심코 도진이 건넨 말에 나낙 눈을 희번덕거렸다.


“맞아, 아마도 그럴 거야. 아니, 확실히 그렇지 않을까?”


집요하게 들러붙어 오는 낙엽 한 장을 그냥 둔 나나의 중얼거림이었다.


작가의말

예정했던 때보다는 조금 늦게 완결이 나겠지만,

그래도 서서히 다가오는 결말을 짐작하게 되면서

마음이 참 어수선합니다.

심정이 글에 그대로 드러나

이야기 전개가 더 나빠질까 염려스럽기도 하네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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