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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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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2021.05.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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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86,707

작성
21.04.1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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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19화(수정)

DUMMY

“너를 죽이려고 했다고? 아니, 그건 말이 안 되니까 넌 또 슬픔을 말하는 거겠지? 너는 슬픔이 곧 너이고, 네가 곧 슬픔이라고 생각하잖아.”


당황한 태강이 공중에 방황하는 손가락질을 하며 뒤죽박죽이 된 이야기를 정리하는 시도를 보였다.


“그 인간에 관한 이야기는 별 소용이 없어. 어차피 죽었으니까.”


반면에 황호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무의미했다는 듯이 굴었다.


“뭐가 됐든 좋아. 네 말대로 그 인간이 죽은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네가 왜 백나나한테서 팔찌를 뺏으려고 했는지는 알아야 하겠는데? 넌 전부터 목걸이도 찾아다녔던 것 같아서 여간 수상한 게 아니거든.”


태강은 무대 위에서 자연스레 물러나기 위한 것처럼 뒷걸음질로 나나 곁에 섰다. 머릿속을 설핏 스치는 생각에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저 아이 앞에서는 말하고 싶지 않군.”


나나가 듣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황호가 목소리를 죽였다.


“그러면서 왜 얘를 붙잡고 있던 거야?”


나나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태강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야 팔찌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게 왜? 얜 월계의 사람도 아니니까 가지고 있어도 되잖아.”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저 여자애가 월계든 세계든 어디에서 머물고 또 언제 어디를 떠날 건지도.”

“정말로 그래? 내가 보기엔 네가 지금 백나나한테 엄청 신경을 쓰는 것 같거든.”


이어서 가을의 헛바람이 따귀를 훑고 지나간 것인 양 황호가 야유에 가까운 비웃음을 날렸다. 어찌나 매정했는지 나나는 자신이 직접 무시라도 당한 것처럼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너야말로 그런 것 같은데? 이 애가 여기에 있는 줄 알고 바로 달려오고 말이야.”

“달려온 건 아니야. 날아온 거지.”


오로지 태강만이 이 상황에서 초연하게 검지로 하늘을 가리켰다. 우연히도 그가 가리킨 곳은 달이 뜬 지점에 맞닿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네가 저 여자애한테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던 건 사실일 테니까.”


그 하늘을 두고 황호는 나나가 마치 천혜의 조건을 모두 갖춘 행운아라도 되는 듯이 사납고 매섭게 쳐다보았다.


“맞는 말이야. 그런데 정말로 알려주지 않을 거야?”


나나의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가닥을 손가락으로 돌돌 말아가며 태강이 물었다. 이윽고 황호는 자신의 결정을 바꿀 의사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 고개를 끄덕거린다.


“뭐, 상관없어. 어차피 알고 있으니까.” 이에 태강은 자신의 여유만만했던 태도의 근간이 되었던 이유를 슬쩍 흘렸다. “네가 이렇게 나올까 봐 미리 백나나를 감시하고 있던 것뿐이야. 언젠라도 반드시 네가 돌아올 줄 알았거든. 우리한테 돌아오는 게 아니라면, 적어도 이 애한테 접근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잠시 멍한 얼굴을 하던 황호가 다시금 배신감을 느낀 듯한 눈빛으로 태강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생각을 바꾼 것 같은데, 맞지? 그것도 나쁜 쪽으로 말이야.”


그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되는 듯이 눈을 부릅뜬 태강이 물었다.


“너희들의 생각대로라면 나는 원래 나쁜 쪽이어야 할 텐데.”

“왜 그렇게 생각해? 차라리 야담이랑 주화처럼 싸우기라도 하든가,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놓고 이제 와서 우리가 너를 적으로 여기도록 하잖아. 좀 너무하지 않아?”


황호는 대답 대신에 느닷없이 호수로 뛰어드는 길을 택했다. 순식간의 일이어서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청각을 자극하는 소리가 목숨줄을 끊으려는 것처럼 신경을 날카롭게 때릴 때, 단말마와 같은 고통에 허우적거리는 숨소리가 더 질기게 들려왔다. 삶과 죽음 중에 무엇이 더 질긴지 알아보기 위한 시험인 듯했다.


“야!”


태강이 비명과도 같이 황호를 부르며 그 안에 같이 뛰어들었다. 이때 나나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짓이야!”


황호를 물 밖으로 건져내며 태강이 물을 뱉는 것과 말을 하는 것 사이에서 힘겹게 말을 뱉었다.


“그땐 우리를 모두 물에 빠뜨리려고 했던 자가 이제는 우리를 물에서 건져내려고 하는군.”


얼굴을 적신 물기를 닦지도 않으며 눈을 감은 채로 황호가 말했다. 그는 바닥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그가 호수에서 가져온 물기는 바닥을 점차 더 어둡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해요?”


그제야 나나가 슬쩍 다가오며 두 사람의 상태를 살폈다.


“너는 먼저 가.”


무릎을 꿇고 황호 앞에 앉아 있던 태강이 그녀를 올려다보며 답했다.


“아깐 가지 말라면서요?”

“난들 얘가 이럴 줄 알았겠어? 나중에 다시 찾아갈 테니까 그냥 돌아가.”

“그냥 가라고요?”

“그래. 그리고 그 팔찌 간수나 잘해. 그건 네가 세계로 돌아가고, 백면이 월계로 돌아오는 유일한 길이나 다름없으니까.”


나나는 괜한 화를 입었다고 생각하면서도 투정하지 않고서 물러섰다.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려고 유모차를 다시 붙잡았을 때까지 태강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나 또한 이들에게서 눈길을 거둘 수 없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이 순순히 떠나야만 했다. 특히 마지막에 태강이 한 말이 심히 거슬렸다. 그 사람이 돌아오는 유일한 길이라고?


“백나나는 이제 갔어. 그러니까 이야기해 봐.”


꼭 죽은 사람처럼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는 황호의 가슴팍을 무자비하게 치며 태강이 말했다. 앓는 소리가 가을을 쫓는 겨울처럼 바로 뒤따랐다.


“너희는 왜 그 애가 죽게 놔두는 거지?”


그런데 황호가 예상과는 다르게 새로운 질문을 꺼냈다.


“그 애라니?”


이에 태강은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체했다.


“백면 말이야. 아니, 천우라고 해야 하나. 누구라고 해도 좋아. 아무 이름을 불러도 그 애의 얼굴이 떠오르니까.”

“죽게 놔두는 게 아니야. 그 애가 죽으려고 하는 거지.”

“그러니까 그걸 왜 두냐는 말이야.”


황호가 성가시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백면이 원하니까.”

“원한다고 하면 다 죽을 수 있는 건가? 그 논리라면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 죽여도 문제가 없겠군.”

“그렇진 않아. 우리도 많이 반대했으니까. 정말 많이 반대했어. 아주 많이 반대했다니까. 네가 곁에 있었다면 너도 우리 심정을 잘 알 수 있을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 열두 명은 누구도 누구의 곁에 있을 수 없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우리의 보는 인간의 감정은 너무 다르니까.”


고루한 대답에 짜증이 난 태강이 젖은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털었다.


“또 그 소리야? 있잖아. 네가 없는 동안에 많은 일이 일어났어. 흑석은 백면의 눈물에 대한 비밀을 알아냈거든. 그러니까 이제 천일나무는 그 녀석의 눈물이 없어도 살 수 있게 되었어.”

“과연, 그렇군.”


그에 반해 황호는 모든 발견의 신비가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반응이 왜 그래?”

“바닷물이었겠지.”

“어떻게 안 거야?”

“이제 백면은 언제든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아직도 명심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

“아! 전혀. 그 반대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내가 명심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어. 그래, 그렇다면 이것도 알고 있어? 백면이 나한테만 들려준 거거든.”

“그게 뭐지?”


황호와 태강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아, 너무 다른 얼굴과 너무 다른 시절이었다. 그들은 같은 계절을 사는 것을 제외하면 그 어떤 공통점도 없어 보였다. 한데, 그 계절이라는 것이 모든 걸 결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은 영원한 것이며 시절은 잠깐인 것을 알고 있기에 계절은 둘의 차이를 모두 용납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날이 지나고 달이 흐르네.”


태강이 호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시를 읊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이든 간에 네 머릿속에서 나온 것 같지는 않은데.”


황호가 태강의 웃는 얼굴을 아주 불길하게, 혹은 불결하게 여기며 말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글을 복사해서 옮기는 과정에서 중간에 실수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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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321화 21.04.20 4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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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9화(수정) 21.04.18 48 1 9쪽
319 318화 21.04.17 37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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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314화 21.04.13 37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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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312화 21.04.11 35 1 9쪽
312 311화 21.04.10 32 1 9쪽
311 310화 21.04.09 85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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