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한투나가 님의 서재입니다.

삼재 든 왕자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한투나가
작품등록일 :
2018.04.10 05:19
최근연재일 :
2018.12.21 15:45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26,427
추천수 :
45
글자수 :
285,650

작성
18.10.16 15:33
조회
213
추천
0
글자
12쪽

폭풍우 속 도주

DUMMY

떠난다는 건 인생의 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건 항상 어디로 떠난다는 걸 의미한다. 돌아올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떠날 때 주변을 정리하는 건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다. 남기고 가는 게 또 내게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떠다는 건 앞으로 어떤 일을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피하면 꼭 우려하는 일은 벌어지고 만다.


우탄바른 남작은 바바아타와 바르푸넨에게 이곳을 떠나서 베르크 왕국을 떠나며 목적지로 정했던 마툼마키 공작령으로 가자고 강력하게 우겼다. 바바아타에게 남은 삼 년을 정리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주장하며, 그 동안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강력한 희망을 표출했다.


바르푸넨은 우탄바른 남작의 의견을 이해했다. 삼 년 남짓한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고 앞으로 수 백 년의 삶을 이 세상의 균형을 잡는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바바아타의 처지를 가엽게 여긴 것이다. 다만, 그 삼 년 동안 제국의 황태자의 손길이 어떤 모습으로 이 사람들에게 다가올지는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그냥 조용히 떠나기에는 황태자의 눈 바라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 일에 대해서 우탄바른 남작은 그들을 데리고 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었다. 분명 이곳의 영주 역시 황태자의 끄나풀일 것이니 이들이 탈출한 바바아타를 쫓아올 때 막아줄 이들이 필요했다. 일리있다고 생각한 바르푸넨은 바라케를 설득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바바아타가 쉽게 해결해 주었다.


바라케는 바르푸넨의 한 마디 말에 깜짝 놀랐다. 바르푸넨은 이제 곧 이곳에 거대한 폭풍이 몰아쳐 영지를 모두 쓸어버릴 것이라고 했다. 이른 바 바바아타에 의해 일어나는 재앙이 곧 닥친다는 것이다. 게다가 제도에도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건 아마도 하늘에서 거대한 불덩어리들이 떨어지는 상상하지도 못할 재앙이라고 했다.


제국과 이곳에서 일어나는 재앙으로 황태자는 바바아타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을 것이고 또한 바라케가 돌아갈 자리도 마땅치 않을 것이라고 하니 바라케는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그 다음 날 병사들과 함께 마툼마키 공작령으로 동행하기로 했다.


우탄바른 남작도 촌장을 찾아가 곧 이 영지 전체에 거대한 폭풍이 몰려올 것이니 당분간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촌장은 믿지 않았지만 바라케가 바바아타의 선례를 이야기하고 나니 갑자기 두려움에 휩싸여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매달렸다.


바바아타의 말에 의하면 대략 스무 날 정도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고 폭우가 쏟아질 것이며, 이 마을은 고지대에 있으니 바위 동굴 같은 곳에 가진 모든 식량을 가지고 피신해 몸을 잘 숨기고 있으면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올해 농사는 그대로 두었다가는 망칠 것이니 지금이라도 거둘 수 있는 건 거두는 게 나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모두들 궁금한 것은 대체 언제 그 재앙이 닥칠 것인가였다. 그 대답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곡식이 완전히 여물기 전이라고 했다. 이제 겨우 낱알이 패기 시작했으니 그것이라고 거둬야 할지, 좀더 기다려야 할지 그것이 촌장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대피할 곳은 공동 식량 창고로 쓰는 동굴이면 충분했다. 적당히 고지대에 있으며, 바깥과 완전히 차단할 문도 있었다. 다만 강한 바람에 견디도록 좀더 단단히 보수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병사로 보낸 아들은 이제 넓은 세상 구경을 떠날 것이다.


그날 저녁부터 촌장은 마을에 일손을 찾아 다녔는데, 폭풍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재앙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앞뒤 안 보고 도망갈 궁리부터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급작스럽고 또 이해할 수 없는 촌장의 부탁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간의 신망 때문인지 싫다며 반대하는 이들은 없었다.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밭의 밀을 비롯한 곡식들이 서서히 누런 빛을 띄는 것들부터 베어나갔고, 서둘러 식량 창고에 저장해 나갔다. 그러는 한편 촌장에게 시장에서 곡물을 사들여 주기를 부탁받은 바라케는 병사들을 이끌고 영주의 성에 몇 번 다녀오기도 했다.


그 후로 사십 여 일이 지난 어느 날부터 하늘에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바아타는 한투나가의 기별을 듣고 바르푸넨에게 때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우탄바른은 여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몇 가지만 챙겼고, 바르푸넨은 성직자라 그런지 그저 옷가지 몇 점과 살랍마타가 묵었던 곳에서 긴요하게 쓸 약초 몇 가지 챙겨 든 게 다였다. 아무래도 들키지 않고 빠르게 이 영지를 탈출해야 했으니 들고 갈 짐을 줄이는 게 가장 중요했다.


해가 지고 얼마 있자 숙소 밖에서 바라케가 병사들과 함께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알려왔다. 병사들은 숙소에 있던 모든 것들을 쓸어 모은 듯 엄청난 짐들을 어깨에 매고 있었다. 병사들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모은 평생의 재산이라 미련이 많았는데, 그걸 이해 못하는 게 아니라 말릴 수가 없었다고 바라케는 씁쓸하게 웃었다. 가다 보면 어차피 하나씩 돈으로 바꾸든 버리든 하게 될 테니 일단은 출발하자고 바라케는 얼버무렸다.


어둠에 쌓인 숲, 길도 없는 곳을 한 떼의 인간들이 수풀을 헤치며 나간다. 의도치 않게 제국의 역도가 되어 버렸지만 그리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그저 나흘 째 장대 같은 비 화살처럼 쏘아대는 폭풍우를 맞으며 수풀에 싸여 젖은 곡물을 씹어대며 헤매는 이 공간을 탈출해버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러나 이미 폭풍의 재난은 시작되었고, 그나마 숲속에 있어 재앙이 마을이나 평지에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게 다행이었다.


영지는 어느 정도 벗어나 있겠지 싶었다. 계곡을 피하고 산기슭을 따라 세찬 바람도 피해가며 비록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지만 곧 숨어 있는 신전이 나올 것이며, 지금 산 아래는 물의 지옥이라고 위로하며 병사들의 마음을 달랬다. 병사들 역시 그들이 잡아둘 수 없는 바바아타가 도망쳐 버리고 나면 그 다음 되돌아 올 최악의 문책을 생각하면 그나마 앞으로 마툼마키 공작령에 도착한 후 받을 보다 나은 대우를 생각하며 참아내야 했다. 그 후로 이틀을 더 그렇게 나아가 도착한 곳은 이라카타의 신전이었다.


이라카타교는 현생 인류가 나타나기 전 고대 거대 생물체들이 이 세상을 지배했으며, 그 때 세상을 지배했던 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라카타를 믿는 유사 인류 족속들이 세운 신전이다. 그들은 몸집이 크고 포악한 성격을 지녀 다른 종족들로부터 현생 인류로 인정 받지 못하고 배척받았다. 그들은 스스로 고대 거인들의 후세라고 믿었으며 이라카타 신을 섬겨 고대에 존재했던 막강한 거대 생물체인 골렘을 다시 이 세상으로 불러 현생 인류들을 힘으로 지배하고자 했으며, 그를 위해 많은 현생 인류와 생물을 희생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배척받게 되었다. 현 제국이 들어서면서 이라카타교도들는 말살 당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일부 신전들만 유적으로 남아 있었다.


신전의 지붕은 무너지고, 벽과 기둥, 고대 거대 생물들을 새겨 놓은 조형물들은 부서지고 쓰러졌지만 바라케는 허물어진 제단 사이에 있는 입구를 발견하고는 병사 두 명과 함께 정찰을 하고는 모두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지하 예배실로 쓰던 공간인 듯 꽤 넓어 일행이 모두 들어와 편안히 눕고도 제단 근처에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공간도 낼 수 있었다.


바라케는 병사들에게 불을 피우고 편히 쉬게 한 후 바르푸넨을 부르더니 같이 지하 신전을 나갔다. 바바아타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들을 따라 나섰다.


"이곳에서 모두 지친 몸을 쉬게 하면서 폭풍이 멎을 때까지 지내는 게 좋겠습니다. 병사들이 많이 지쳤습니다."

"병사들이 많이 지치긴 했더군. 무슨 짐에 대한 집착들이 큰지 꾸역꾸역 짊어지고 악착같이 오는데 아주 질리네."

"모두 언젠가 돌아갈 가족들이나, 앞으로 생길 자식들을 위한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게 없으면 가족들에게 짐이 되거나, 아예 돌아갈 곳이 없거든요."

"이해는 한다만......"

"성직자들은 모르시겠지요. 허허. 어쨌거나 얼마 간이라도 머무르려면 이곳 지형과 지리를 좀 알아야 할텐데요."

"대략 짐작으로는 파카이 산맥은 벗어나 벨라이 산맥으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나무들과 바위들이 흰빛을 많이 뿜어내고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바르푸넨은 주위를 둘러 보며 언뜻언뜻 초록빛 사이로 보이는 흰 바위들과 나무 기둥들이 마치 회를 칠한 것처럼 환한 흰색을 띄는 것에 주목했다.


"당장 추적 당할 것 같진 않아요. 영지 병사들이 이런 날씨에 나서긴 쉽지 않지요. 괜히 내보냈다간 나중에 등에 칼 맞을 수도 있으니. 크크. 일단 주변에 뭐 산사태 위험이나 위험한 놈들이 있는지나 살펴보죠."


바라케는 바르푸넨이 고개를 끄덕이자 병사 여덟을 불러내더니 사방으로 주변을 탐색하도록 했다. 남은 이들은 불을 피워 따뜻해진 지하 신전 안에 누워 잠이 들었고, 몇몇은 따뜻한 국물을 마련한다며 불 위에 솥을 걸고 물을 끓였다.


바바아타는 지치지도 않는지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비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온 우탄바른 남작은 그의 안색을 살피더니 물었다.


"뭔가 불안한 게 있는 거니?"


바바아타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말했다.


"지금 당장은 우리에게 불안한 건 없어요. 다만 이 폭풍우에 고통받을 수많은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게 마음이 아파요. 우리 베르크도 내가 태어날 때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면서 많은 이들이 죽고 또 나라 전체가 휘청거렸고, 또 형제들은 제국에 잡혀 가고 그랬지요. 나의 운명이 사람들의 고통과 함께 한다니 그게 괴롭네요."


우탄바른 남작은 바바아타에게 다가가 가만히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위로했다.


"운명이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운명이라고 하는 거란다. 나는 그저 네가 평안히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고난의 길을 가는 게 가슴이 아프도록 괴롭단다. 하지만 그런 네가 하루만이라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게 내 행복이란다. 너에겐 앞으로 긴 삶이 기다리잖니. 행복한 하루하루를 쌓아간다면 그리고 그것을 하나하나 기억한다면 언제든 그 기억을 되새길 수 있다면 또 행복할 거야. 마툼마키에 가서 우선 너의 인간적인 삶을 시작해 보자꾸나."


바바아타는 이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꼭 마툼마키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꼭 뵙고 싶어요. 그리고 베르크로 가서 아버지도 꼭 만나야지요."


바바아타는 자신의 삶을 모두 버린 듯이 조카의 행복만 바라는 이모가 측은해 보였는지 그녀를 꼭 안았다.


"꼭 마툼마키에 갈게요. 그분들은 아직 절 한 번도 못 보셨잖아요."


우탄바른 남작은 자신의 품에 안긴 바바아타를 토닥였다. 둘은 한동안 신전 입구에서 폭풍우치는 하늘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안에서 음식이 다 되었으니 먹으러 오라는 병사들의 소리가 들리기까지.


도망치는 자의 음식에서 맛있기를 바라는 건 무리겠지만, 병사들이 급하게 만든 스튜에는 그저 멀을거리가 아닌 향긋한 맛이 나는 아주 훌륭한 음식이었다.


"어이, 이런 도망치는 와중에도 입맛 당기는 음식을 만들 수 있게 해 주신 살랍마타 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네그려.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해 죽겠네."


기사 바라케의 말에 우탄바른, 바르푸넨, 바바아타는 일순간 멈칫했다. 병사들은 웃으며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며 안녕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며 그가 준 향신료들에 대한 찬사를 한 마디씩 돌아가며 했지만 그들은 그의 부재가 아쉬움이 아니라 걱정을 낳았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삼재 든 왕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부정기 연재로 전환합니다. 18.04.19 396 0 -
60 왕세자의 진노 18.12.21 119 0 15쪽
59 마투 자작의 모의 18.11.09 154 0 11쪽
58 베르크 왕국의 갈등 18.10.31 175 0 14쪽
» 폭풍우 속 도주 18.10.16 214 0 12쪽
56 선택과 운명 18.10.12 223 0 12쪽
55 성장한 바바아타 18.09.18 272 0 13쪽
54 바바아타의 실종 18.08.31 277 0 12쪽
53 바바아타의 주체 수련 18.08.22 317 0 11쪽
52 마나의 각인 18.08.02 319 0 10쪽
51 기분 좋은 식사 18.07.26 378 0 7쪽
50 종자의 조건 18.07.25 356 0 13쪽
49 상인과 첩자 18.07.23 348 0 12쪽
48 기사 바라케의 밀당 18.07.18 405 0 12쪽
47 뜻밖의 만남 18.07.17 365 0 15쪽
46 부제 바르푸넨의 고민 18.07.16 407 0 13쪽
45 배신과 두려움 18.06.22 389 0 8쪽
44 차우라 길드의 마스터 18.06.21 379 0 8쪽
43 드래곤의 예언서의 행방 18.06.11 403 0 8쪽
42 납치된 마법사 18.06.08 390 0 7쪽
41 씁쓸한 마나의 맛 18.06.06 403 0 7쪽
40 마법사의 위기 18.06.05 401 0 7쪽
39 연성술의 금기 18.06.04 396 0 8쪽
38 교감의 두려움 18.05.31 443 0 7쪽
37 빙의 술법 18.05.29 440 0 11쪽
36 덫에 걸린 기사 18.05.28 401 0 7쪽
35 깨어난 달달한 마나 18.05.25 456 0 7쪽
34 희망의 씨앗 18.05.24 408 0 9쪽
33 마나의 소용돌이 18.05.23 460 0 9쪽
32 경비대의 심술 18.05.22 442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