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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투나가 님의 서재입니다.

삼재 든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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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투나가
작품등록일 :
2018.04.10 05:19
최근연재일 :
2018.12.21 15:45
연재수 :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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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31
추천수 :
45
글자수 :
28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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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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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선택과 운명

DUMMY

식사는 언제나 기쁜 일이다. 특히 푸짐하게 차려진 식사는 더욱 기쁘다. 그러나, 한 그릇 맑은 죽을 나눠 먹으면서도 기쁨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 만큼 좋은 건 없다. 격식있게 잘 차려진 식사만 즐거운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식사 또한 삶의 즐거움일 테니. 그래도 사랑을 나누는 가족과 나누는 식사만 할까.


잠시 후 바바아타는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밥을 먹었지만, 마치 어제 먹은 밥을 오늘도 먹는다는 듯 쉽게 수저질을 하면서 음식을 입에 가져다 넣기 시작했다. 우탄바른 남작은 바바아타가 훌쩍 자랐다는 걸 깜빡했는지 예전에 바바아타가 쓰던 아동용 식기에 그대로 담아 주었지만, 바바아타 역시 익숙하게 작은 식기를 의식하지 않고 잘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우탄바른 남작은 큰 접시에 다시 음식을 더 담아 바바아타 앞에 가져다 놓았다.


서투른 듯한 칼질과 포크질은 아직 꼬마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했지만, 본인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그냥 잘 먹었다. 배 부를 때까지 먹고 허기가 가시자 바바아타는 다시 온몸에서 기운이 뻗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바르푸넨 부제 님, 저번에 수련하던 것, 계속 수련해야 할까요?"

"아니, 나와 잠깐 이야기를 해 보자꾸나. 지금 네 상태를 먼저 확인해 보아야 하니까. 우탄바른 남작 님께서도 궁금한 게 많으실 테니 같이 자리하시지요."


식탁에서 접시를 다 치우고 나서 향긋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선 바르푸넨은 이야기를 꺼냈다. 바바아타가 하늘로 사라진 이후 곧바로 사라진 방향으로 바르푸넨과 바라케, 그리고 우탄바른까지 병사들을 이끌고 찾아갔다. 그곳에서 그들이 발견한 것은 늑대들이었다. 이백 여 마리나 되는 늑대 떼들이 산꼭대기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사람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바라케와 병사들은 이틀 동안을 늑대들을 쫓아내며 산꼭대기에 올랐다.


신기하게도 올라올 때까지 아무런 인적이 없었던 산꼭대기에는 병사들의 허리춤에 오는 야트막한 돌기둥들이 사방 삼십 걸음 정도 되는 마당에 마흔아홉 개가 서 있었다. 분명 기둥 위에는 어떤 석상들이 세워져 있던 흔적만 남아있고 모두 다 깨져 기둥 아래에 깨진 돌조각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바르푸넨은 마흔아홉 개 기둥을 보고서 유추한 바, 태초 마흔아홉 봉우리가 있었고, 거기에서 각각의 신들이 생겨나 서로 싸워 최고의 신이 되었다는 프리오마 신이 떠올랐다. 프리오마 신의 상징은 산봉우리였다. 그래서 도시나 마을에서 프리오마 신당이나 신전은 그 지역 두 번째로 높은 언덕 위에 있는 게 다반사였다.


그렇다면 여기 이 신전은 프리오마 신의 신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프리오마 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드래곤과 공기가 있었다. 전능한 신으로부터 전달자의 임무를 부여 받은 드래곤, 그리고 드래곤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평생 볼 수도 없고 볼 일도 없어 그저 있는가 보다 하고 살아가는 것이 공기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주위가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점점 열기가 더해지고 상승기류가 생기면서 주위의 공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닥쳐오는 회오리. 신전에 발을 들인 모든 이가 강한 바람의 습격을 맞고서 나뒹굴었다. 뺨의 살갗을 도려내는 듯한 날카로운 바람에 모두들 납작 엎드려 고개를 땅에 처박고는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얼마나 바람이 몰아쳤을까, 한 순간 모두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돌아가라. 네가 찾는 것은 없다."


그 소리가 끝나자마자 회오리는 차츰 잦아들어 밥 한 끼 먹을 정도 시간이 지나자 바람은 완전히 사라져 산들바람 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더불어 바람이 새들과 벌레들도 모두 치워버렸는지 산꼭대기 신전은 극도의 적막에 둘러싸였다. 사람들도 모두 거센 바람에 정신을 잃고 꼼짝않고 있었다.


얼마 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킨 자는 바라케였다. 광풍은 신전 주위 여기저기 쓰러진 나무들만 남겨놓고 사라졌다. 그가 일어나 둘러본 신전은 말짱했다. 쓰러진 나무와 사람들만이 광풍이 지나갔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가 정신을 잃기 전에 들렸던 소리, 찾는 것이 없다는 것, 그것은 이 신전의 주인 프리오마 신도 바바아타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 신전의 주인이 바바아타를 알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런 것 같군. 바바아타는 신들이 주시하고 있는 존재인 거야."


어느 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은 바르푸넨 역시 그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그 둘은 신이 바바아타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은 지금 바바아타가 있는 곳은 인간이 머무는 곳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분명 이곳을 통해 그리로 넘어갔을 것이란 것을 짐작했고, 그렇다면 만약 돌아온다면 이곳을 통해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아무래도 바르푸넨,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의는 없소. 신에 대해서는 난 아무것도 모르니까."


바라케도 동의한 후 병사들 열 명 정도를 남겨 당분간 이곳에서 숙영을 하면서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지켜보도록 했다. 그리고, 일행들을 추려서 내려왔다. 그리고, 베르크 왕국에 보낼 전령을 구하러 성내까지 갔다가 돌아온 것이 조금 전이었다. 그렇게 산꼭대기 신전을 다녀오는 데 거의 스무 날이 걸린 것이다. 쉽게 봤던 거리였지만, 산세가 험했고, 또 보기보다는 꽤 먼 산이었던 것이었다.


신이 데려간 것이라면 위험하진 않겠다는 안심, 그리고 신의 일에 관여할 수 없다는 절망, 한투나가가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짐작에 일어나는 불안감 등 복잡한 심경으로 돌아왔더니 혼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없는 바바아타가 눈앞에 떡하니 돌아와 있는 것이었다. 바바아타에게 일어난 변화는 대체 어떤 것일지 바르푸넨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바바아타를 데려갔던 늑대라는 것이 궁금했다.


"지금 네 곁에 늑대가 있느냐?"

"저 문간에 있습니다."

"대화가 가능하니? 나는 그를 볼 수가 없구나. 그의 정체를 알아야겠다."

"늑대는 자기가 한투나가라고 했습니다. 그게 뭔지 정확히는 뭔지 모르겠지만, 자기 말로는 지금 이 세상에 없는 드래곤을 대신한다고 했습니다."


늑대가 한투나가라는 말에 바르푸넨은 순간 온몸의 마나가 급격히 차갑게 식는 느낌을 받았다. 한투나가라는 실존하는 존재 중 가장 센 존재가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것이었으니까. 잠시 그의 몸이 꼼짝않는 것을 느낀 바바아타는 가만히 바르푸넨의 손을 잡았다. 그제서야 바르푸넨은 정신을 차렸고 다시 안색이 돌아왔다.


"그래, 한투나가라고, 드래곤을 대신한다고. 그런데, 너를 데려간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냐?"

"그냥 때가 되어서 이리 되었다고 했을 뿐입니다. 내가 몇 번이나 물어도 그 말 뿐이었습니다."

"바바아타 네가 이리 갑자기 자란 것도 그저 때가 되었을 뿐이라고 했겠구나."

"네, 세상을 알려고 하면 할수록 그저 미친 상태에서 똑같은 결과만 낼 뿐이니 제 정신으로 같은 결과를 내는 게 그나마 낫지 않겠냐고 하던데요?"

"하, 어떤 결과를 향해 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미쳐 버린 상태에서 일을 벌이는 것이 행복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한투나가는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아는 모양이구나. 제 정신으로 결과를 맞닥뜨리는 게 낫다고 하니. 아니, 인간이 아니니 또 모르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결과를 알고 싶었지만, 뭔가 뻔한 대답이 나올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그 결과를 알게될지도 몰랐다. 그 결과를 알았을 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래도 앞일은 알고 가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는 바바아타에게 물었다.


"그 결과에 대해 자세히 알려줄 수 있는지 늑대에게 물어 보렴."


바바아타는 바르푸넨의 부탁을 듣고 마나로 한투나가와 대화를 하는 동안 다시 침묵이 방안 가득했다. 그러나 바르푸넨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바바아타 주위에서 일어나는 마나의 미묘한 흐름, 그것이 꽤 수준 높은 마나 운용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나를 통한 대화, 바르푸넨은 그 모습이 살짝 부럽기도 했다.


"최후의 결과는 단순하다고 합니다. 드래곤이 나타나고, 한투나가는 드래곤에게 모든 걸 바치고 무로 돌아간다. 그리고 세상은 다시 평안해진다. 그 가운데 사람들의 욕망과 신들의 욕망이 뒤엉켜 세상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에는 수많은 재난과 재앙이 일어난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다시 드래곤이 나타날 때까지 대략 오백 년 정도 걸릴 거라고 하는군요. 세상 어딘가 드래곤의 알이 부화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시간이 그 정도라고 합니다. 그건 어디있는지 승천한 드래곤만 안다고 하네요."

"바바아타, 너는 어떻게 되는 거지?"


다시 흐르는 침묵. 그리고 잠시 후 바바아타는 씁쓸한 얼굴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내 맘이라는군요."

"그게 무슨 말이냐? 네 맘이라니?"

"한투나가가 되든지, 인간으로 생을 마치든지 내 맘에 따라 뭐든 선택할 수 있다는군요."

"너는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의미로구나. 네가 한투나가가 된다는 건 무슨 뜻이냐?"

"그건, 제가 한투나가에 인간의 눈이 된다는 거래요. 모든 피조물들의 입장을 한투나가가 이루려는 이 세상의 균형을 잡는 데 방향을 잡아준다고 합니다. 자연은 피조물에게 무자비하다고 하네요. 피조물은 하늘이 내려준 수명을 다하려고 하니, 그 사이에 균형을 잡아주는 균형추 같은 거라고 하네요. 아직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한투나가의 일부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드래곤에게 역할을 인도할 때까지 같이 살아간다고 하네요."

"그걸 거부할 수도 있고?"

"네, 평범한 인간이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고 해요. 그러면 한투나가의 가호를 받을 수 없어서 언제든 죽을 수도 있다고 해요."

"너는 한투나가의 길을 선택하려는 것이냐?"

"아직 모르겠어요. 한투나가의 길을 선택하면, 사랑하는 남작 님과 부제 님, 마법사 님을 떠나야 하니까요. 바바아타라는 인간의 길은 더 갈 수 없다고 하니, 아버지나 형제들, 베르크 왕국도 더 이상 저와 상관 없는 일이 되니까요."

"언제 결정해야 한다니?"

"앞으로 삼 년이라고 하네요. 나이 열여덟이 되면 더 이상 한투나가와 융합할 수 없다고 해요. 만약 그 전까지는 한투나가가 저를 키우려 가호한다고 하네요."

"알았다. 그럼, 삼 년 동안 같이 방법을 마련해 보자꾸나. 내 삶에서 가장 바쁜 삼 년이 되겠구나."


여태 방에서 몰래 둘이 대화에 귀기울이던 우탄바른 남작은 바바아타와 같이 할 시간이 삼 년밖엔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 삼 년 내 바바아타를 결혼시켜 후사를 남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려면 베르크 왕국으로 돌아가거나, 친정인 마툼마키 공작령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황태자의 눈을 피하려면 지금 여기 머물고 있는 관계된 모든 이들을 데리고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굳이 감시 인원들을 남길 필요가 없었다. 그들 누구도 믿을 수 없으니 눈앞에서 다른 짓은 못하게 감시해야 하니까.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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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왕세자의 진노 18.12.21 120 0 15쪽
59 마투 자작의 모의 18.11.09 155 0 11쪽
58 베르크 왕국의 갈등 18.10.31 175 0 14쪽
57 폭풍우 속 도주 18.10.16 214 0 12쪽
» 선택과 운명 18.10.12 224 0 12쪽
55 성장한 바바아타 18.09.18 272 0 13쪽
54 바바아타의 실종 18.08.31 277 0 12쪽
53 바바아타의 주체 수련 18.08.22 317 0 11쪽
52 마나의 각인 18.08.02 319 0 10쪽
51 기분 좋은 식사 18.07.26 378 0 7쪽
50 종자의 조건 18.07.25 356 0 13쪽
49 상인과 첩자 18.07.23 348 0 12쪽
48 기사 바라케의 밀당 18.07.18 405 0 12쪽
47 뜻밖의 만남 18.07.17 366 0 15쪽
46 부제 바르푸넨의 고민 18.07.16 407 0 13쪽
45 배신과 두려움 18.06.22 389 0 8쪽
44 차우라 길드의 마스터 18.06.21 379 0 8쪽
43 드래곤의 예언서의 행방 18.06.11 403 0 8쪽
42 납치된 마법사 18.06.08 390 0 7쪽
41 씁쓸한 마나의 맛 18.06.06 403 0 7쪽
40 마법사의 위기 18.06.05 401 0 7쪽
39 연성술의 금기 18.06.04 396 0 8쪽
38 교감의 두려움 18.05.31 443 0 7쪽
37 빙의 술법 18.05.29 440 0 11쪽
36 덫에 걸린 기사 18.05.28 401 0 7쪽
35 깨어난 달달한 마나 18.05.25 456 0 7쪽
34 희망의 씨앗 18.05.24 408 0 9쪽
33 마나의 소용돌이 18.05.23 460 0 9쪽
32 경비대의 심술 18.05.22 44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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