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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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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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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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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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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50화

DUMMY

메를린의 집으로 떠날 채비를 한창 하던 와중에, 누군가가 행복의 연금술 가게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마침 거실에 있던 실비아가, 배낭을 싸다 말고 일어나 쪼르르 현관으로 다가가 말했다.


“펠릭스! 안에 없나?”


트로이의 목소리였다. 실비아는 문을 살짝 열고 문틈으로 그를 살펴보았다. 문이 움직이자, 막 다시 노크를 하려던 트로이는 손을 거두며, 실비아의 눈동자를 마주보고 말했다.


“아, 반갑군요. 그러니까···.”


“실비아에요. 펠릭스 불러 올까요?”


“바쁘지 않다면, 괜찮을까요?”


“귀찮게 뭘 부르고 말고 해요? 실비아. 그냥 문 열어줘요!” 계단 위쪽에서, 펠릭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가 밝네요.”


연금술 가게의 현관문을 열며 실비아가 말했다.


“그럼, 실례합니다.”


트로이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펠릭스. 어디 멀리 가게?”


위층에서 내려온 펠릭스와 트로이는 연금술가게 카운터 앞에 마주앉았다.


“어디 좀 가려고.”


“어디?”


“있어.” 펠릭스가 대강 얼버무리자, 트로이도 더는 묻지 않았다. “해서, 왜 온거야?”


“그냥. 인사나 좀 하려고.”


“하긴, 인사할 만도 하지. 내가 만든 약, 잘 들었지?”


트로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은 잘 다녀갔고?”


“결과적으로.” 트로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귀족, 우리 서커스를 보고나서 지방 소식지에 감상을 적었는데. 평생 두 번 다시 못 볼줄 알았던, 잊어버린 것을 되찾았다고 써 주더군.”


“대단한 칭찬이네.”


트로이는 저 구석에서 짐을 싸는척하며 이야기를 엿듣는 실비아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새로 소식지에 투고했다더라. 우리 서커스를 좋게 평가해줬어.”


“대단하군.”


“그래, 대단하지. 그리고 그동안 잠잠하던 평론가들도, 그걸 보고 왠 떡이냐 싶어 들개처럼 달려들어 신나게 물어뜯고있고.”


“그것도 대단하군.”


트로이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이야기 하러 왔어?”


“아니, 그냥 인사차. 아까도 말 했잖아. 네 약, 효과가 정말 좋더라고. 그래, 특히나······.”


트로이는 실비아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그러자, 펠릭스가 실비아를 불렀다.


“실비아.”


“왜요?”


“물 한잔만 떠다 줘요.”


“당신은, 발이 없나요?”


“네.”


“네?” 실비아는 짜증을 내려다가, 뒤늦게 조금 얼굴이 굳었다. “아,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부탁해요.”


실비아가 살짝 일어나 부엌 쪽으로 가자마자 트로이가 말했다.


“폴라가 약발을 잘 받더라. 아주, 날아다니던걸. 고마워 펠릭스.”


“글쎄. 내 약 덕인지, 저 아가씨 약 덕인지.”


“저 아가씨 약 덕이겠어, 설마? 사실, 초보자 치고는 제법이었지만, 네 약효가 컸겠지.”


“꼭 그렇지만도 않아.” 펠릭스가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 엘릭서 사건. 기억하잖아.”


엘릭서라는 말을 듣자, 트로이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그거 못 믿어. 세상에, 그런 속편한 이야기가 어딨어? 뭐?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어쩌고저쩌고······.”


“전에는 믿었잖아?”


그러자 트로이는 잠시 굳어있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서커스 단장이 되다보니, 조금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됐나봐.”


“하기야. 그럴만 하긴 해.”


그리고 실비아가 물을 가져오자 두 사람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자요. 필요할 때만 다리 없는 척 하는 펠릭스.”


“사실이긴 하니까요. 엄밀히 따지자면, 그렇죠. 안 그래, 트로이?”


트로이는 실비아와 펠릭스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며 웃기만 했다. 그러다가 실비아가 도로 자기 배낭 옆으로 돌아가자, 트로이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펠릭스. 고마웠다.”


“그래. 그래서, 언제 떠나는데?”


“내일이나, 모레쯤? 아마도. 사실, 귀족이 우리를 후원해 준다면야 이 근방에 아예 눌러앉아볼까도 생각했는데, 그 정도로 감명깊게본 것 같지는 않더라고.”


“뻔뻔하게 한 사나흘 버텨봐, 트로이. 또 누가 알겠어?”


트로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시도는 해 볼게. 그럼.” 그리고 트로이는 물컵에 남은 물을 마저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펠릭스. 수고해. 다음에 또 보자.”


“그래.”


“실비아? 당신도 수고 해요. 당신의 공중그네, 정말 멋있었습니다.”


“아, 아녜요. 수고해요 트로이.” 줄곧 못 들은척 있던 실비아도 트로이에게 꾸벅 인사를 해 주었다.




트로이가 돌아가고, 세 사람이 가벼운 여행 채비를 끝마치고 나자, 연금술 가게 안의 조명들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문이 잠기고 커튼이 드리웠다. 마침내, 현관과 부엌 뒷문까지 모두 잠근 다음에야 세 사람은 잠시 연금술 가게를 돌아보고는, 오솔길 너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 잠깐 마을에 좀 들르죠.”


펠릭스의 요구에 따라, 그들은 다시 밤숲마을로 돌아왔다.


“왜요?”


“잠시, 편지를 좀.” 그리고 펠릭스는 두 사람을 버려두고 곧바로 우편국으로 들어갔다.


“줄곧 드는 생각인데.” 펠릭스가 우편국 안으로 사라지자, 실비아가 말했다. “펠릭스. 우편국에 꽤 자주 가는 편 아닌가요?”


“그러게. 어디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나보지.”


“아니면, 어딘가에 고용된 비밀 요원일지도요.”


올리버는 말없이 실비아를 내려다보았다.


“왜요?”


“아니,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지?”


“아니죠, 당연히. 농담이에요. 왜요? 별로 재미 없었나요?”


“아니, 아냐.” 올리버는 어색하게 웃으며 헛기침을 한 다음, 실비아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우편국에서, 자신에게 온 편지를 살피던 펠릭스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이상한 기운을 느끼며 자기도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정말 뜻밖에도, 에밀리아 콘월이 막 안으로 들어오려는 참이었다.


“어머, 연금술사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 에밀리아. 반가워요.” 자기 볼일을 끝마친 펠릭스는 자연스레 에밀리아에게 다가가, 가볍게 인사를 했다.


“우연이군요.”


“그러게요. 편지를 부치러 오셨나요?”


“제게 온 편지가 있나 확인하러 왔습니다. 부인은?”


“아, 저는 편지를 부치러 왔어요.”


“그래요?”


“네. 은행에 돈과 서류를 보내달라고 하려고요.”


“그래요? 돈이 꽤 많지 않으신가요?”


“제가 쓸 돈이 아니거든요.”


“그럼, 혹시, 남편분이?”


“아니오. 극단 하나를 후원하려고요.” 조금 수줍게 웃으며 에밀리아가 말했다.



“극단이요? 꽤 고상한 취미군요.”


“서커스 극단이에요. 별로 고상하지는 않죠?”


“그럴리가. 아주, 멋진 취미입니다.”


“보름달 서커스 극단이에요. 혹시,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펠릭스는 웃으면서, 트로이와 자신의 친분을 밝히는게 좋을지 어떨지 생각했다.


“처음 듣는군요.”


“어머, 의외네요. 당연히 아실 줄 알았는데. 그쪽 방면에서는 꽤 유명한 극단이래요. 특히나, 인형극으로 유명했다던데요. 단 한명이, 거대한 무대 전체를 가득 메울 만큼 수많은 인형들을 동시에 움직이는 인형극을 한 적도 있대요.”


펠릭스는 연금술사의 숲에서, 손가락에 투명한 실을 엮어 동시에 다섯 개의 인형을 움직이던 트로이의 재주를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대단하네요. 그 극단, 꼭 잘 되길 바랍니다.”


“저도 그러길 바래요. 아, 죄송해요. 혹시, 바쁘신데 제가 방해한건 아니죠?”


“물론,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에밀리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수고하세요 선생님.”


“당신도요.”


그러나, 펠릭스가 막 우편국을 벗어나려는 찰나, 에밀리아가 다시 그를 불러세웠다.


“연금술사 선생님!”


“뭐죠?”


“아, 방금 막 생각났는데, 사실 별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지만요. 어쩌면, 관심이 가실까 해서요.” 에밀리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펠릭스 근처로 다가왔다.


“말씀하시죠.”


“전에, 소문을 들은게 있거든요. 어느 호수 아래에, 굉장히 이상하게 얽힌 뿌리가 있다던데요.”


“뿌리요? 물 밑에 뿌리가 있는 일 자체야······.”


“아니오! 그러니까, 굉장히 이상하게 생겼다던데요? 움직이는것 같기도 하고, 어느날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든가. 신기한 일이죠?”


“그렇군요. 그래서, 왜 그 이야기를 제게?”


“아, 흥미를 가지실까 해서요. 연금술사들은, 신비한 재료와 약을 찾잖아요?”


펠릭스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혹시, 그 뿌리 위에 잎사귀가 있었답니까?”


“글쎄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맑은 물에서 발견했겠죠?”


“수정처럼 투명한 호수였대요.”


“호수라.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에밀리아.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줘서.”


“별 말씀을요. 제게 주신 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걸요.”


“그래서, 그 호수 위치가 어떻게 된답니까?”


“아,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다음에 그 이야기를 해 준 하인한테 물어볼게요. 편지로 알려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부인.”


“별 말씀을요.”


펠릭스는 에밀리아와 인사를 주고받은 다음, 우편국을 벗어났다.




“뭘 그리 오래 있어?”


올리버가 물었다.


“아, 뜻밖의 손님을 만나서요.”


“누군데요?”


“당신 언니.”


“네?!” 실비아가 외쳤다. “그럼, 저도 불렀어야죠!”


“그럴 틈이 없었다고나 할까······.”


“제 언니인걸! 왜 못 봤지? 벌써 돌아가버렸나요?”


“옆문으로 들어와서 못 봤겠죠. 그리고, 아마 지금쯤 벌써 돌아가지 않았겠어요?”


“칫. 좀, 알려 주지······.”


“뭐, 다음에 또 보면 되잖아요?”


“그건, 그렇지만요.” 실비아도 어쨌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했어요?”


“에밀리아가 보름달 서커스를 후원하겠다고 나서는것 같더군요.”


“잘 됐어요!” 실비아가, 조금 귀족적이지 못하게도, 길거리에서 손뼉까지 쳐 가며 말했다. “폴라도 한시름 놓겠네요.”


“잠깐새에 아주 절친이 다 됐군요, 그 폴라와.”


“그럼요. 편지도 주고받을 생각이랍니다.” 실비아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쨌든, 당신 친구분 한테도 잘 된 일이네요.”


“그리고, 어쩌면. 당신 약에 쓸 재료의 정보도 말해주더군요.”


“네? 제 언니가요? 제 약에 쓸 재료를?”


“뭐, 그냥 어디서 희귀한 뭐가 있다더라-하는 소문 정도에요. 하지만, 찾아볼 가치는 충분하죠. 없는것 보다야 훨씬 나으니까.”


“언니······.”


실비아는 촉촉한 눈망울로 잠시 시선을 떨구었다가, 다시 기운찬 눈으로 시선을 들어올렸다.


“그래서, 이제 메를린네 집으로 갈 거죠?”


“그래야죠. 길바닥위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올리버는 벌써 퍼졌군요. 올리버! 일어나요!”


길 가에 주저앉아 있던 올리버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이제 가면 되나?”


“그래요. 출발하죠. 조금만 버텨요. 곧, 당신 세상이잖아요?”


“거긴, 아니라고. 그 숲의 주인은 우리 채집꾼도 아니고, 사냥꾼도 아니고, 짐승들도 아닌걸.”


“그래도 여기보다야 훨씬 낫죠. 안 그래요?”


“그건, 그래.” 올리버는 웃으며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올리버! 길도 모르면서 앞장서기는. 같이 가요!”


그리고 그 뒤를, 펠릭스와 실비아가 뒤따라갔다.




밤숲마을을 벗어나, 길고 긴 오솔길을 한 시간쯤 걸었을까, 펠릭스와 올리버, 실비아는 각자 길 가에 마음에 드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물을 마시고 있었다.


“마차 빌릴걸 그랬네요.”


실비아가 운을 떼었다.


“정취있고 좋지 않아요? 그리고, 어차피 숲 속으로 들어가야 해서 마차 빌려봤자에요.”


“그러고보니. 메를린네 집에는 왜 가는 거예요?”


“그럴 일이 있어요.” 펠릭스는 다시 얼버무렸다.


“안 알려줘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네요.”


“그렇다면야 뭐.” 실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과 바짓단을 툭툭 털었다.


“올리버. 그러고보니, 당신 그 다람쥐는 어떻게 됐어요?”


“코튼? 어느 주머니에 잘 숨어있지 않을까?”


“자기 다람쥐가 어딨는지도 몰라요? 제대로 된 주인이라고 볼 수 있나요?”


“주인이라니.” 올리버가 웃으며 말했다. “나와 코튼은 주종관계가 아니야. 친구에 가깝지.”


“돌아버리겠군. 오, 대스승님. 저를 좀 도와줘요. 세상에, 어쩌다가 제 주변에는 이런 사람밖에 남지 않게 된 거죠?”


“펠릭스! 대단한 실례에요!”




다시 길을 떠난 세 사람은, 메를린의 오두막으로 향하는 희미한 갈림길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전과 달리, 오늘 그들을 안내해 주는 것은, 메를린의 오두막 어느 틈새에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던, 뱀이었다.


“그리 기분좋은 호위는 아니네요.”


실비아가 올리버의 등 뒤에 숨다시피 걸으며 말했다.


“뱀이 왜요?”


“좀 그렇잖아요?”


“좀 그렇긴 하지.”


“뭐가 그래요?”


펠릭스가 실비아와 올리버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쩌다보니, 결국 앞장서는 것은 펠릭스가 되어 있었다.


“뱀은, 좀······.”


“그래. 사실, 좀 그렇기는 해.”


“거 참 이상한 말들이네. 얘는 물지도 않을 텐데요. 올리버, 당신도 서커스 극단에서는 뱀이고 곰이고 뭐고랑 잘만 지내더만.”


“얘는, 그러니까. 마녀의 손길을 탔잖아?”


“코튼도 탔잖아요?”


“걔는, 다람쥐일 뿐이잖아.”


펠릭스는 더이상 묻지않고 조용히 뱀을 따라, 메를린의 오두막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나무와 이끼의 그림자에 가려진 메를린의 오두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숲 한 가운데 위치하여, 습기를 머금었음에도, 메를린의 오두막은 그렇게 축축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적당할 만큼의 촉촉한 습기는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의 기분을 풀어지게 만들었다.


“으, 습해.”


펠릭스만 빼고 그랬다.


“메를린. 나 왔어!” 펠릭스가 갑자기 외치자, 앞에서 슬금슬금 기어가던 뱀이 깜짝 놀라 오두막의 어느 틈새로 쏙 기어들어가버렸다.


“펠릭스! 무례하게, 뭐하는 거예요?”


그리고 한 다섯 발자국쯤 떨어진 곳에서, 실비아가 말했다.


“당신만 하겠어요?”


“제가 왜요?”


펠릭스는 실비아와 올리버를 번갈아 보았다.


“안 와요?”


“마녀의 집은, 좀 그래.”


“저도 뱀은 좀······.”


“거 참. 겁쟁이들 같으니라고. 메를린! 나 왔다니까?”


“어머, 펠릭스. 진짜 금방 왔네?”


숲의 나무 사이에서, 짚을 엮어 만든 바구니에 이런저런 풀과 열매를 담은 메를린이 걸어나왔다. 로브를 입지 않아 그녀의 단풍같은 긴 머리칼이, 바람에 살짝 날려 예쁘게 흩날렸다.


“어디갔다왔어?”


“귀한 손님이 온다는데, 빈 손으로 기다릴 수는 없잖아?”


“그냥, 빈손으로 기다리지. 우선, 자!”


펠릭스는 그자리에서 배낭을 풀더니, 대뜸 땅콩 자루를 꺼내 메를린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땅콩.” 펠릭스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호두랑 아마 비슷한 맛일거야. 누가, 호두를 모조리 사갔다더라고.”


“그래? 이상한 사람이네.”


“그러게. 어쩌면, 하루정도 앞날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신비한 마력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르지.”


“그러게. 누군지는 몰라도, 호두를 참 좋아하나봐.”


메를린은 펠릭스를 빤히 쳐다보다가, 방긋 웃으며 저만치 떨어져 있는 실비아와 올리버에게도 웃으며 말했다.


“들어와요. 환영합니다.”


“저, 그럼. 실례합니다.”




메를린의 오두막 안은, 전에 왔을 때와 거의 비슷해 보였다. 단 하나, 조금 더 따뜻한 것이 달랐다.


“블을 세게 때나봐?”


“아니, 틈새를 조금 메꿨거든. 겨울에는 찬 바람이 들어오니까.”


“하기야.” 안으로 들어오며, 땅콩 자루를 아무 바닥에 내려놓으며 펠릭스가 말했다.


“그나저나, 메를린. 호두를 싹 털어간건 너무하지 않아?”


“왜? 내가 좋아서 산 건데.”


“내 참. 나를 옭아매려고 장난쳐 본거지?”


“들켰다.” 살짝 혓바닥을 내밀며 펠릭스를 향해 웃은 다음, 메를린은 요정처럼 가볍게 자기 방으로 걸어들어갔다.


“왜 당신을 옭아매요, 메를린이?”


“그런게 있어요.” 펠릭스가 조금 툴툴거리듯 말하며 오두막 안을 둘러보았다.


“메를린과 사이가 좋지 않아요?”


“좋죠.”


“그런것 치고는.” 실비아도 오두막 안을 돌아보며 말했다. “올 때마다, 긴장한 기색이네요.”


“상대는 어쨌든 마녀니까요.”


“마녀가 나쁜가요?”


“전혀!” 펠릭스가 단 일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건 마녀가 좋다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그럼, 뭔데요?”


“좀. 미묘한 문제긴 한데······.”


“어머, 펠릭스. 그냥 솔직하게 말 해 줘도 돼.”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온 메를린이 말했다.


“뭐. 그렇다면야. 그러니까, 메를린은 저를 낚아채려 하거든요.”


“낚아채다뇨?”


“제가 값을 치르지 못하면, 저랑 강제로 결혼할 생각이에요.”


“네? 그게, 대체 뭐에요? 처음 들어요 그런 이야기.”


“마녀의 셈법이에요.” 뒤에서 메를린이 웃으며 말했다. “마녀들이 사는 숲 속에는, 남자가 잘 없거든요. 신비로운 마력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뭣때문인지. 그래서, 숲에 괜찮은 남자가 오면, 마녀들은 그와 결혼을 하려고 들죠. 우선은 이런저런 대접을 해 줘요. 그리고 나서 그 값을 요구하죠. 만약 값을 지불하지 못 하면, 남자는 마녀와 결혼해야 해요.”


“그게 돼요? 법과 도덕의 문제가······.”


“숲의 주인은 마녀니까요. 메를린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는거죠.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낡고 강력한 주술이라고나 할까요?”


“꽤 무시무시한 이야기로군.”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로부터, 그런 이야기가 많잖아요. 숲 속에서 행방불명된 사람. 그런 이야기의 원형이 아마 이 마녀들 때문이라는 설도 있죠.” 펠릭스는 친절하게 설명하며, 여전히 조금 복잡한 눈으로 메를린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펠릭스. 땅콩이라. 조금 예상 밖이지만, 그래. 그정도면 괜찮겠지. 자, 다들 편히 앉아요. 저는 당신들을 숲에 가둬놓고 협박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건 그렇군. 사실, 펠릭스가 위험하지, 우린 안전하잖아?”


실비아와 올리버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같은 결론을 내린듯 아주 편안하게 걸어 전에 앉았던 기다란 통나무 의자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럼 나는요?”


“당신은 알아서 해요 펠릭스. 재주좋은 연금술사인 만큼, 값을 치를 방법이야 무궁무진하지 않나요?”


“아니, 메를린 상대로 써먹을 건 별로 없는데······.”


“그럼, 그 황금의 약이라도 팔든가요.” 실비아가 이죽이며 말했다.


“황금의 약?” 막 차를 내어오던 메를린이, 때마침 그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보였다.


“아, 그러니까. 장난이야. 장난일 뿐이라고.”


“당신이 그랬잖아요? 대스승님과 같이 약을 만들어서 농기구를 넣었니 뭐니.”


“아, 그러니까! 메를린. 장난이었어.”


“나도 끼워주지.” 조금 뾰루퉁한 목소리로 메를린이 말했다. “대스승님은, 너만 편애하지?’


“아니, 넌 자고있었잖아? 그 때, 넌 한창 밤잠 많을 때였어.”


펠릭스가 답지않게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며, 실비아와 올리버는 가만히 웃으면서 찻잔을 집어들어 한 모금 마셨다. 따스하고 향기로운 차 기운이 몸에 돌자, 그들의 얼굴 위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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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21.10.22 28 1 27쪽
28 28화 21.10.21 28 1 16쪽
27 27화 21.10.21 29 1 30쪽
26 26화 21.10.20 30 1 19쪽
25 25화 21.10.20 27 1 28쪽
24 24화 21.10.19 31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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