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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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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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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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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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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1쪽

45화

DUMMY

에밀리아는 고상한 귀족답게,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니까. 제가 잘못 들은것이 아니라면, 실비아와 장차······.”


“결혼할 생각입니다.”


에밀리아는 물로 입을 적신 다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귀족도 아니잖아요?”


“연금술사는, 예전에는 귀족 못지않게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건 콘월 가문도 마찬가지죠?”


에밀리아는 그 말을 듣더니, 조금 위험한 느낌이 드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대체 무슨 말이 듣고 싶은거죠?”


“티가 났나요?”


“그럼요.” 에밀리아는 다시 여유를 되찾고, 물잔에 손을 가져다 댔다. “저는 이제 척 보면 알아요. 누가 사실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는지.”


“역시, 저는 거짓말에는 영 소질이 없나보군요.” 다시 평소와 같은 말투와 목소리, 그리고 행동으로 돌아온 펠릭스가 넉살좋게 메추라기 고기를 자르며 말했다. “아니면, 이 저택안에 거짓말쟁이들이 많거나.”


“우리 저택에는 거짓말쟁이는 거의 없어요.”


“그렇군요. 거의 없군요.” 펠릭스는 웃으며 다시 고기를 크게 한 조각 썰어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티나는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물어볼 정도로, 저희 가족사가 그렇게 궁금하신가요?”


“실비아가 잘 지내나 어쩌나 궁금해서요. 어쨌든 잠시나마 동행했고, 그래서 친구와도 같은 사이가 됐으니까요.”


“그 아이는, 잘 지낸답니다.” 에밀리아가 안심하라는듯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잘 지내는데요?”


“하고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이 집안에서. 아무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아무것도 그녀를 옭아매지 않아요. 그 어떤 때보다도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걸요?”


“그래요? 그게 사실이라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군요. 그렇죠, 올리버?”


“뭐? 아, 그래. 그렇지. 그래, 뭐 잘 지낸다면 다행스러운 일이고.”


왜 갑자기 자기한테 화살을 돌리냐는듯, 펠릭스에게 짧게 시선을 보낸 다음 올리버는 어색하게 웃으며 에밀리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다행스럽게, 에밀리아는 올리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듯 보였다.


“그래서.” 펠릭스가 수저를 소리나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실비아와 사이가 좋은지 나쁜지는 말해주실 생각이 없으시군요?”


에밀리아는 펠릭스를 보고 가만히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신가요?”


펠릭스는 접시 위에 아직 반쯤 남은 메추라기 고기를 힐끗 내려보고는, 다시 에밀리아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네요. 영 속이 부대끼는군요.”


“솜씨좋은 요리사가 만든건데도요?”


“그러게요. 대체, 메추라기 속을 뭘로 채웠는지. 그야말로 수상쩍은 재료들로 꽉꽉 눌러담아놓고서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강렬한 향신료로 범벅을 만들어, 그저 먹음직 스럽게 보이도록 만든 요리네요.”


“꽤 미식가시군요. 그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펠릭스는 그 말을 듣고, 실쭉 웃었다.


“그러게요. 이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도 거의 없군요. 그런데, 마침 생각나서 말입니다만. 혹시 아까 거짓말을 한다는, 그 이 집 안에 거의없는 사람과, 이 음식을 트집잡는 그 사람이 동일 인물일까요?”


“왜 그런걸 물으시는 거죠?”


“그냥요. 혹시 이것도 가족사라서 대답해 주실 수 없으신가요?”


“같은 사람이에요.” 에밀리아가 말했다.


“그렇군요. 감사드립니다. 아니, 벌써 디저트가 나오는군요? 아니면, 떠들어 대느라 제가 시간가는 줄도 몰랐나봅니다.”


“그래요. 그러면, 이번에는 대화보다는 디저트에 집중해보세요. 바다 건너에서 온 요리사가 직접 만든 호박파이는, 제법 맛이 좋답니다. 독특한 향신료를 쓰거든요.”


더이상 떠들어대지 말라는 에밀리아의 애두른 표현을 펠릭스는 금새 알아들어, 그는 정말 입을 다물고 호박 파이를 집어든 다음 조용히 한입 베어물었다.


“맛있죠?”


“그렇군요.”


펠릭스가 쓸데없는 말은 삼가고 웃으며 대답하자, 에밀리아도 만족스럽게 웃었다.




숨이 막힐것 같았던 식사도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그들은 따스한 차가 담긴 찻잔들을 앞에 놓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부인.”


이번에도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펠릭스였다.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안주인의 의무니까요.”


“그렇군요. 이렇게 극진한 대접을 받을 줄은 점심식사 시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거든요. 그렇죠, 올리버?”


올리버는 왜 자기를 걸고 넘어지냐고 펠릭스에게 힐난하는 눈길을 보내며 대답했다.


“아니, 나는, 뭐. 딱히 별 생각없어.”


“발뺌은.” 펠릭스는 잔을 들고 쭉 들이킨 다음,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벌써 가시게요?”


“식사는 끝났으니까요.”


“그래도. 아직 차가 남아있는데.”


“별로 저와 대화하는걸 즐기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에밀리아는 펠릭스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그러면, 작업실로 돌아가시나요?”


“글쎄요. 아, 마침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여쭈겠습니다만. 혹시, 밤에 몇 시 쯤에 주무시는지?”


“실비아에, 이 집의 거짓말쟁이 미식가를 넘어, 이제는 저한테까지 관심이 생기셨나요?”


에밀리아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펠릭스도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한 밤중에 약을 쑤느라 안주인의 잠을 방해하면, 그건 손님으로서 도리가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네요. 글쎄요. 한, 열시 정도면 잠자리에 들어요.”


“그렇군요. 혹시, 잠이 깊이 드시는 편인가요?”


“아니오. 저는, 예민해서 깜빡 잠이 들어도 금방 깨곤 한답니다.”


“그렇군요.” 펠릭스는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면제라도 처방해 드릴까요?”


“그럴것 까지는 없어요.”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올리버. 당신도 적당히 마시고 와요. 귀부인을 상대로 언제까지고 붙들어둘 수도 없으니까.”


“아, 알았어. 부인. 차 잘 마셨습니다.”


“별 말씀을. 그럼, 수고들 해 주세요.”


펠릭스와 올리버는 에밀리아에게 인사를 해 주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휴!”


식당에서 충분히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침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올리버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 새가슴이군요.”


“귀족 상대로 너무 뻗대는거 아냐, 펠릭스? 네 그 연금술사라는 직함이 언제까지고 널 지켜주진 않아.”


“어련히 알아서 해요. 그나저나, 올리버. 며칠 새에 겁쟁이가 다 됐군요.”


“귀족 상대로 네가 너무 겁이 없어진거야.” 펠릭스의 비아냥에, 올리버가 투정을 부리듯 대답했다. “모든 귀족들이 실비아처럼 너그럽지는 않다고.”


“에밀리아는 꽤 너그러운것 같던데요.”


가볍게 계단을 뛰어 올라가며 펠릭스가 말했다.


“그래. 그딴 소리를 하고도 멀쩡하다니. 뭐? 결혼을 해? 진짜,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줄 알았어, 펠릭스.” 아직까지도 그런 말을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는지, 올리버는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정작 그 말을 들은 당사자는 눈 하나 깜빡 안 하더군요.”


“그러게. 귀족들은 다들 그렇게 담이 센가?”


“그럴 리가요. 전에, 가게로 불쑥 찾아왔던 그 애송이 기억 안나요? 키우던 개가 죽었다고 갓난아기처럼 펑펑 울어댔잖아요.”


“그건, 그렇군.”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마 나름대로의 혹독한 훈련의 결과겠죠. 저렇게 낯짝두껍게 버티는 것도.”


“귀족들도 참 피곤하게들 사는군.” 올리버는 마침 계단을 다 올라, 연금술 작업실의 문 손잡이를 잡고 돌려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 너머에서 뾰루퉁한 표정의 실비아가 이쪽을 쳐다보았다.




“나만 쏙 빼놓고, 무슨 이야기를 그리 재미나게 하실까?”


“아 뭐······”


“귀족들 뒷담화요.” 펠릭스가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실비아도 이제 그런 반응은 지겨웠는지, 한숨을 쉬는 정도로 그쳤다.


“정말이지. 여긴 제 언니네 집이라고요. 예의는 좀 차려줘요.”


“노력은 해 보죠.”


“퍽이나.” 실비아는 잔뜩 힘준 발걸음으로, 아마 방금전까지 그 위에서 졸고 있었던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그래서, 어디갔다 온 거에요?”


“저녁 식사요.” 펠릭스도 솥 옆의 의자에 풀썩 주저앉으며 대답했다.


“저만 빼놓고요?”


“쿨쿨 자던걸요.”


“그래도, 저도 저녁은 먹어야죠.”


“하기야. 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테니, 귀족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려면 제 때 식사를 하는 편이 좋겠군요.”


“또, 또 놀려요! 아까 예의를 지키겠다고 노력은 해보겠다면서요?”


“아, 그렇네요. 죄송.” 펠릭스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띄었다.


“하여튼! 그래서, 식사는 둘이서만 한 거에요?”


“당신 언니랑 셋이서요.”


“그렇군요. 그러면, 혹시, 무슨 이야기라도 한건 아니죠?”


펠릭스는 그게 무슨 뜻이냐는듯, 실비아에게 되물었다.


“무슨 이야기요?”


“그러니까, 제 이야기라든가······”


“당신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했으니 걱정 말아요!” 펠릭스가 팔자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올리버가 뒤에서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한 마디는 했지.”


“뭔데요? 무슨 이야긴데요?”


“아, 뭐. 그렇기는 한데, 신경 꺼요.”


“무슨 이야기 했는데요?” 실비아가 집요하게 묻기 시작했다. “뭐에요. 또 저만 쏙 빼놓고 둘이, 아니, 셋이 무슨 작당이라도 벌였나요?”


“그럴리가요. 내가 당신 상대로 무슨 수작을 부리겠어요? 날 못믿나요?”


실비아는 잠시, 아니, 조금 오랫동안 생각하기 시작했다.


“널 못 믿나봐.” 올리버가 말했다.


“그러게요.”


“사실, 쌤통이긴 하지.”


실비아는 격한 동의의 표현으로, 올리버의 말에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끄덕였다.


“쌤통일 정도인가요? 난 그렇게 크게 잘못한것도 없는데.”


“뭐, 꼭 잘못을 해야 남의 미움을 사는건 아니니까. 살다보면, 자기 딴에는 잘 한다고 한 일이 남의 마음에 상처를 낼 때도 있는 법이잖아?”


펠릭스는 눈을 찌푸리고 올리버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시작했다.


“아니, 됐어. 방금 한 말은, 그냥 잊어.”


그리고 그 모습만 보고서도 펠릭스가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예상이 되었던 올리버는, 손을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그러고나서 작게 한숨을 쉬며 실비아를 슬쩍 보았는데, 아마 그녀도 올리버와 같은 생각을 한듯 작게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래서, 약을 만드실건가요?”


펠릭스는 솥을 흘끔 돌아보았다.


“아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그래요? 그나저나, 제초제를 만들었죠? 무슨, 이런 계절에 그런 약을 만들어요?”


“제초제인줄 알겠던가요?”


“그럼요!” 실비아는 가슴을 쭉 펴며 말했다. “저는 눈도 밝고, 기억력도 좋아요. 처음에는 조금 헷갈렸지만, 당신들이 저만 쏙 빼놓고 저녁 먹으러 간 사이에 다시 살펴 봤어요. 제초제 만든거 맞죠?”


펠릭스는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


“저는, 말 못한답니다.”


그러나 펠릭스의 옆에서 올리버가 실비아를 향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에, 실비아도 더이상 묻지 않고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 실비아. 그래요. 생각난김에, 하나 물어봅시다.”


“물어봐요.”


“당신, 혹시 언니랑 사이가 좋은가요?”


“네? 아마도요?” 실비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진짜로요?”


“글쎄요. 사실, 어릴 때는 친했지만, 언니가 결혼하고 나서는 잘 모르겠네요.”


“그렇군요. 그런데, 당신. 트로이네 천막에서 언니와 재회했을 때는, 엄청 반가운 눈치던데요?”


“그야, 가족이잖아요. 영영 못볼 줄 알았던 가족과 다시 만나면 반갑지 않아요?”


펠릭스는 잠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자 실비아는 별걸 다 묻는다는 투로 펠릭스에게 말했다.


“내 참. 하여튼, 당신이란 사람은. 그래서, 그게 왜 궁금한데요?”


“아무리 반갑다고 해도, 그렇잖아요. 결혼한 언니네 집까지 따라갈정도로, 그렇게 반갑던가요?”


“아, 뭐, 그건, 글쎄요. 사실, 언니가 조금 강제로 데려온 느낌도 있긴 했고······.”


실비아가 조금 주춤거리며 대답했다.


“아까 이렇게 말했죠. 영영 못 볼줄 알았던 가족과 다시 만나서 반가웠다고.”


“그랬어요.”


“언니분과 영영 다시 못 볼줄 알았나요?”


“저기, 그러니까, 그래요. 사실대로 말하자면요.”


“왜요?” 펠릭스가 물었다. “그냥, 결혼한 것 뿐이잖아요. 어디 왕국 밖으로 나가버린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데······”


“함부로 말하지 마요!” 갑자기 실비아가 소리를 꽥 질러, 펠릭스와 올리버는 깜짝 놀랐다.


“아, 저기. 그러니까, 음. 방금은, 제가 미안해요.”


펠릭스는 바로 저자세로 나왔다. 그러자 실비아도 조금 미안하다는듯 주저하며 말했다.


“오늘, 약을 더 만들 생각이 없다면, 저는 이제 방으로 돌아가 볼게요.”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실비아?”


“네. 물어봐요. 하나정도는 대답해 줄게요.”


문쪽으로 걸어가던 실비아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당신 언니네 집에, 쥐약이나 제초제가 필요해 보이던가요?”


“네? 음. 글쎄요. 저는 사실, 가사에는 별 재능이 없거든요.”


“그냥 개인적인 느낌을 말 해 봐요.” 펠릭스는 슬쩍 웃으며 실비아를 부추겼다.


“뭐, 딱히 필요 없어보이던데요? 부엌이나 식당도 깨끗하고. 하인들이 입고 있는 옷들도 깨끗하고. 방도 깨끗하고. 그리고, 마당에도 막 잡초가 그렇게 자란 것 같지는 않았어요. 애초에, 이제 가을 중순이잖아요. 금방 겨울인데, 지금 제초제를 구하는 것도 이상하고요.”


“그래요? 그럼, 알겠습니다. 실비아. 부디, 좋은 밤 보내시길.”


“아무렴요. 수고해요, 펠릭스. 그리고, 올리버 당신도.”


“그래. 그래도 나 챙겨주는건, 실비아 너 뿐이군.”


실비아는 올리버의 말을 듣고, 그에게 웃음을 지어준 다음 연금술 작업실에서 먼저 나갔다.




펠릭스는 작업실 의자에 앉아,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어나서 약을 만드는 것도 아닌 채로, 그렇게 가만히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뭐 하게?”


크게 하품을 하며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올리버가 묻자, 펠릭스는 그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무슨 꿍꿍이야?”


“에밀리아 콘월의 속을 슬쩍 엿보려고요.”


“뭐?” 깜짝 놀라, 올리버가 자세를 고치며 벌떡 일어났다. “설마, 방에 몰래 숨어들려고?”


“상상력이 빈약하군요!” 펠릭스가 일갈했다. “올리버. 소식지와 술집이 당신의 빈약한 상상력을 좀먹고 있어요.”


“부정할 수는 없군. 일리있는 말이기는 해. 그래서, 뭘 어쩌려고?”


“가끔은.” 펠릭스가 악동처럼 웃었다. “당사자 보다도, 당사자 근처의 사람들이 더 잘 알곤 하는 것도 있죠.”


“그래?”


“그래요. 그러니, 나는 하인들에게 주인에 대해 캐물을 겁니다.”


“뭣하러?”


“당신이, 실비아를 자꾸 신경쓰니까 그렇죠 올리버.” 펠릭스가 툴툴거렸다. “제 유능한 채집꾼이, 쓸데없는데 정신팔려 있는 모습. 저는 더이상 못 봐줘요.”


“거 참. 알았어 펠릭스.” 그러나 올리버는, 어쩌면 펠릭스가 지금 약간의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실비아 때문은 아니고?”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겠군요.”


“그래. 그정도면 뭐, 충분하지.” 궁금증을 해결한 올리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하인들. 네가 가서 물어본다고 대답이나 해 주겠어? 입단속이 철저한 것 같던데.”


“약의 힘을 빌려야죠.”


“무슨 약? 자백약이라도 만들려고?”


“아니오. 훨씬 좋은 약이 있어요.”


“어디?”


펠릭스는 씩 웃었다. “어디겠어요?”


“아니, 진짜 잘 모르겠는데.”


“그럼, 이따가 따라와요 올리버. 말로 설명 하는 것 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는게 훨씬 재미난 일이니까요.”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펠릭스는 다시 시곗바늘이 찰칵이며 움직이는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올리버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걱정과 기대가 섞인 눈으로 그런 펠릭스를 지켜보았다.




마침내, 시계의 짧은 바늘이 둥근 숫자판의 숫자 10을 가리켰다. 그와 함께, 펠릭스는 스프링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됐군요!”


펠릭스가 들뜬 목소리로, 작게 탄성을 질렀다.


“그렇기는 한데, 에밀리아 콘월이 무슨 태엽인형도 아니고. 열시가 됐다고 바로 잠자리에 들어서, 그대로 잠들까?”


“요란법석을 떨지만 않으면 괜찮으니까요. 그보다는, 제가 찾는 사람이 있을지가 걱정이네요.”


“누굴 찾는데?”


펠릭스는 곧장 식당으로 걸어가, 문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식당 문은 잠겨 열리지 않았다.


“식당? 이시간에, 거기 누가 있을까?”


“어쩌면요.”


펠릭스는 에밀리아가 주었던 열쇠 꾸러미를 꺼내, 식당 문의 자물쇠를 열고 문을 벌컥 열었다. 서늘한 밤의 텁텁한 공기가 가득 찬 불꺼진 식당은, 유령들의 연회에 알맞을 정도로 음침해 보였다.


“아무도 없잖아.”


“그럼, 저 불빛은 뭐죠?”


식당과 이어진 부엌 쪽에서, 희미하게 노란 불빛이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것을 펠릭스가 가리켰다.


“누가 있네.”


“가 보죠.”


“누군줄알고?”


“누구든지. 우리한테 도움 되는 사람일걸요?”


펠릭스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유령들이 머물기에 좋은 황량한 식당을 순식간에 지나쳐, 펠릭스는 부엌 문 앞에 서서 헛기침을 했다.




그가 인기척을 내자, 문 너머에서 달그락거리던 소리가 멈췄다. 펠릭스가 다시 헛기침을 하며 가볍게 주먹을 쥐어 부엌문을 노크하자, 안에서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리더니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누구시죠?”


이국적인 억양과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아! 저는, 에밀리아 부인에게 고용된 연금술사 입니다. 혹시, 당신이 그 바다 건너에서 왔다는 요리사인가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는 여전히 수상하다는 눈으로 바깥을 살피며 문을 완전히 열어주지는 않았다. “부엌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그러니, 그만 문좀 열어주시길.”


요리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부엌에는 별달리 특이한 것은 없었다. 굳이 낮과 달라진 모습이라면, 구석에 하인들이 물을 받아 설거지를 할 때 쓰는 나무 대야가 거꾸로 엎어져 있는것, 그정도가 다였다.


“무슨 볼일이시죠?”


“우선, 서로 소개부터 할까요? 저는 펠릭스. 연금술사입니다. 이쪽은 올리버. 제 조수죠.”


올리버는 슬쩍 웃으며 요리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딜런입니다.”


“반가워요 딜런. 해서, 후작 부인이 부엌에 쥐가 들끓는다고 하길레 어떤가 보러 왔습니다. 쥐는 밤에 돌아다니지 않습니까?”


“사실, 쥐는 하루종일 돌아다닙니다. 아주 지긋지긋한 놈들이죠.” 딜런이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부엌에 쥐가 들끓는가요?”


“아니오. 사실, 이 저택의 주방은 아주 깨끗한 편입니다.” 딜런은 조금 만족스러운 눈으로 부엌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는 여러 주방들을 다녀봤는데, 이 정도면 아주 깨끗한 편입니다.”


“쥐는요?”


“저는 아직 주방에서는 본 적 없습니다. 언젠가, 새벽에 부엌에 나올 일이 있어 마당을 가로질러 오다가, 마당을 잽싸게 지나가는 쥐인지, 너구리인지는 한번 봤지만요.”


“그렇군요. 그러면, 당신은 쥐약을 굳이 부엌이든 식당이든, 또는 집 어디든 간에, 딱히 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시겠군요?”


“집안 사정까지는 제가 관여할 부분이 아닙니다.”


“그럼, 부엌과 식당에 한정한다면?”


딜런은 손가락을 하나 뻗어 턱을 슬슬 긁으며 생각했다.


“저라면, 굳이 놓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쥐약을 놓아두면 요리하는 입장에서 영 신경쓰이니까요. 바닥에서 튄 물에 쥐약이 섞이지나 않을지, 뭐 그런 것 때문에 말입니다.”


“아주 좋군요. 말씀 감사 드립니다. 해서······” 펠릭스는 부엌 식탁 위에 차려진 조촐한 술상을 향해 시선을 슬쩍 돌렸다. 와인잔에 반쯤 남은 탁한 루비 빛깔의 포도주와, 포도주와 같이 먹으려고 꺼내 뒀다가 낯선 손님 때문에 아직 한 입도 베어물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치즈.


“혼자 술이라도 드시고 계셨나요?”


“제 조그마한 취미입니다.” 딜런은 조금 켕기는게 있는 사람처럼, 시선을 피했다.


“물론, 이해합니다. 부인께 알릴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걱정 마시길. 다만,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인데, 혹시 제가 술상에 끼어도 되겠습니까?”


“당신이요?”


“네. 혹시, 싫으신가요?”


딜런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펠릭스를 쳐다보았다.


“흠. 이렇게 말씀드려도 될까 싶긴 합니다만, 아직 술을 즐기기에는, 그, 나이가 조금······”


“올리버!” 펠릭스가 웃는 얼굴로, 그러나 조금 짜증스런 목소리로, 여전히 딜런을 쳐다보며 외쳤다. “당신, 술 마시고 싶지 않나요?”


“나? 나야, 뭐. 가능하다면 마시고 싶기야 한데.”


“올리버. 그럼, 술친구는 필요 없나요?”


“있으면 좋지.”


“딜런. 당신은요? 술친구 필요 없나요?”


“저는, 글쎄요······” 갑작스런 펠릭스의 공세에, 그는 분명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하기야, 누구든지 이런 상황에서는 당황할 것이었다.


“올리버는 입담이 꽤 뛰어나답니다. 그리고, 당신도 혼자 이 저택에서 그동안 적적하지 않았나요? 우리끼리 있으니 하는 말이지만, 이 저택은 사실 귀족의 저택이라기 보다는, 수도원에 가깝더군요.”


“아, 맞아요!” 딜런이 손뼉을 치며 반갑게 말했다. “저 혼자만 그렇게 생각한게 아니군요?”


“이 저택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겁니다.”


“하지만, 저랑 같이 일하는 하인들은, 제가 이런 기색을 내비치기라도 하면 다들 웃으며 슬그머니 어디론가 가버리더군요.”


“하인들은, 당신과는 조금 입장이 다르니까요. 당신은 모셔온 사람이고, 하인들은 되는대로 뽑아온 사람들이잖아요?”


“뭐,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요. 앉으시죠. 사실, 그렇잖아도 저도 워낙에 적적해서, 밤에 혼자 술로 외로움을 달래던 참입니다.”


“그래요. 올리버! 앉아요 앉아. 같이, 술잔이라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도 해 보자고요.”


그리하여 반쯤 강제로, 펠릭스는 기어이 콘월 후작의 저택에 고용된 요리사 딜런과의 술자리를, 어거지로라도 성립시키고야 말았다.




첫인상과 달리, 바다 건너에서 왔다고 하는 딜런은, 아주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이, 물결치는 파도와 같은 거친 매력을 뿜어내며 금새 펠릭스와 올리버의 친구가 되었다.


“이야. 정말 멋진 일이군요?”


그는 벌써 펠릭스와 올리버가 말 해주는, 연금술사와 채집꾼의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들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래서, 버섯은 절대 함부로 캐 먹으면 안 돼요. 그 때도, 마침 제가 근처를 지나가고 있어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 사람들, 전부 지금쯤 무덤아래 파묻혀 있었을걸요?”


“대단하네요. 당신은, 정말 친절한 연금술사군요?”


“칭찬 감사드립니다.” 뻔뻔스럽게 딜런의 말을 조금도 부정하지 않고, 펠릭스가 말했다. “그러면, 이제 당신 사정도 좀 말해주지 않겠어요?”


딜런은, 전혀 귀족적이지 않게 와인잔을 물잔 물듯 입에 물고, 한 모금 입 안에 머금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꿀꺽 삼키고 나서야 대답했다.


“저는, 원래 해군이었습니다.”


“군인이라! 올리버도 예전에 군인이었죠.”


“어쩐지! 당신과는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았습니다.”


“나또한,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숨길 수 없는 우리들만의 무언가가 느껴졌지.”


올리버와 딜런은 여기서 뜬금없이 악수를 나누었다. 둘 다, 술기운에 슬슬 제정신이 아닌 것이 분명해보였다.


“그래서, 배를 타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겨우 자립할 만한 돈을 모아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손재주도 좋은 편이었고, 군에 있으면서 조리장과 친하게 지내기도 했기 때문에, 요리솜씨는 금새 늘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바다를 건너왔군요?”


“아! 그건,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아다시피, 바닷가 마을에는 외국인들이 심심찮게 오는 편입니다."


딜런은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먼 과거의 아득한 추억에 잠겼다.


"그런데, 그 날. 어느 외국에서 온 애송이가 술집에서 술을 먹다가 우리 고향의 요리를 욕하는게 아닙니까? 그 말을 들은 저는 당장 화가나서, 그놈과 멱살잡이를 하다가 경비대에 끌려가기까지 했는데, 막상 정신이 들고보니 아차 싶은겁니다. 우리 고향의 요리가 이렇게 대단한데, 바다건너 사람들은 조금도 모르고 있다니.

그래서, 저는 제 고향 요리를 여기저기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바다를 건너 왔습니다.”


“대단한 이유로군요.” 느릿하게 박수를 치며 펠릭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이곳저곳 떠돌다가 지금은 이곳 콘월 후작의 저택에 고용되어, 여기서 일하고 있습니다.”


“후작이 당신을 고용했나요?”


“아니오. 후작 부인이 저를 고용했습니다.”


“혼자서요?”


“네. 저는, 저택에 오기 전까지는, 후작님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습니다.” 치즈를 조금 베어물며 딜런이 대답했다.


“오묘하군요. 후작은 당신을 어떻게 대해주던가요?”


“아! 후작님은, 그야말로 신사입니다. 조용조용한 말투에, 화를 내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짜증조차 내지 않으시고, 저나 다른 하인들이 실수해도 웃으며 너그러이 봐 주십니다.”


“대단한 귀족이군요. 그러면, 콘월 부인은?”


딜런의 표정이 조금 복잡해졌다. 그는 잔에 남아있던 와인을 모조리 입에 털어넣고 꿀꺽 삼킨다음, 치즈를 크게 베어물어 우물거렸다.


“부인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


“그러니까, 음. 물론! 콘월 후작 부인도 아주 좋으신 분입니다. 후작님처럼, 그분도 절대 화를 내지 않으시고, 하인들에게 너그러운데다가, 온 몸에 우아한 자태가 아주 깊이 베어있습니다. 마치, 향료를 듬뿍 넣고 열 시간 넒게 삶아낸 어린 양의 양고기처럼 말입니다.”


펠릭스는 그것이 적절한 비유인지 잠시 의심이 들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런데, 뭐랄까. 후작 부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이상한 사람입니다.”


“어떤 부분이요?”


“저는, 이렇게 말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후작 부인은 가끔 얼굴 위에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솔직하지 않다는 뜻인가요?”


“비슷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어쩌다 한번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분이 한없이 쓸쓸한 표정으로 창문을 통해 다 쓰러져 가는 마당의 고목을 보고 있던 적도 있습니다.”


“그것 참, 미묘한 일이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 모습을 보았을 때는, 부인이 바람이라도 난 줄 알았습니다만. 하지만, 이곳에서 일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데, 부인에게 바람이 난 낌새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어느 하루의 착각이었을 뿐이었겠죠.”


“그렇군요. 마침, 바람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후작 부부는 사이가 좋은가요?”


“그건 저야 모릅니다. 부부 속사정을 제가 어떻게 압니까?”


딜런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개인적인 소감 같은것은 있지 않습니까?”


“사이는 좋아 보입니다. 두 분은, 사랑이 담긴 눈으로 서로를 보고, 서로에게 말을 할때도 아직까지 존대하니까요. 그렇지만, 아까 말했듯이, 저는 가끔 부인이 진실되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군요. 아,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딜런. 당신은 여기서 일한지 일 년이 되었다고요?”


“그렇습니다.” 빈 잔에, 다시 와인을 따르며 딜런이 대답했다.


“혹시, 후작 부인의 가족사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요?”


“그건, 사실 잘 모르겠군요.” 딜런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후작 부인의 과거에 대해서는 더욱 모르겠네요?”


“그 또한 모릅니다. 다만, 예전에. 어느 하인 하나가 집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듣자 하니, 부인은 남몰래 동화를 모으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하인이 실수로 동화책을 버렸던가? 아니면 그냥 발견하기만 했던가? 아무튼, 동화책을 무더기로 불태운 일과, 하인이 쫓겨난 일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조금 놀랍군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죠. 딜런. 혹시, 후작 부인이 연금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게 언제인지 아십니까?”


“연금술이요?”


“저택 삼 층에, 커다란 작업실이 있던데요.”


딜런은 잠시 입맛을 다시며 눈을 위로 치켜뜨고 생각하다가, 탄성을 뱉었다.


“아! 작년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직후였죠. 사실, 꽤 갑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부인이 원하셔서, 후작님이 직접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여 최고의 건축가들을 불러모아 저택 삼 층을 완전히 뜯어고쳤습니다.”


“대단하군요, 후작님도. 사람 살고있는 집을 고치는건, 보통 큰 일이 아닐텐데.”


“그만큼 아내를 사랑하니 그런것 아니겠습니까.”


“부인은 작업실을 쓰시던가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작업실에서 부인이 뭔가 한다는 소문은 있었는데, 요새는 그런 소문도 안 도는걸 보면, 아마 쓰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펠릭스가 씩 웃으며 물었다. “몇 달 전에는, 무슨 일로 작업실을 쓰신다던가요?”


“모릅니다. 뭐, 쥐약을 직접 만들어 본다던가? 그랬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위험하고,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라 그런지 금방 관두신것 같습니다.”


“대단한 이야기로군요. 정말,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펠릭스는 올리버가 딜런과 마저 회포를 풀도록 내버려두고, 먼저 방으로 올라가려다가, 문득 무언가가 생각이 난듯 등불을 집어들고 저택 현관문 밖으로 나왔다.

어둠의 베일에 가려진 저택의 윤곽을 가늠하며 펠릭스는 작업실 창문 아래쪽으로 갔다. 작업실에서 보았던, 조그마한 소각로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는 실수로라도 에밀리아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등불에 갓을 씌우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밤눈이 밝은 펠릭스는, 금새 연금술 작업실의 소각로와 연결된 관을 찾았다. 그리고 그 관 끝에는, 작업실에서 본 소각로에서처럼 조그마한 철제 뚜껑이 붙어 있었다. 뚜껑을 열자, 타다 만 새하얀 뼛조각 몇 개가 그 안에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펠릭스는 뼛조각을 집어들고 자세히 살펴보다가, 무언가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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