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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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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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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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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쪽

27화

DUMMY

올리버와 실비아는 어느 건물의 임시로 만든 지하감옥 비슷한 곳에 갇히게 되었다. 원래 마구간이었던 것을 개조해 만든 것 같았는데, 그래도 창살이 붙어 있으니 그럭저럭 감옥처럼 보이기는 했다.


“실비아. 많이 당황했어?”


“올리버. 왜 싸우지도 않고 그냥 잡혀온거에요? 진짜 큰일 났을지도 모르잖아요!”


올리버는 철창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바깥을 살피려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아 얼굴을 찌푸렸다.


“죽일 것 같지는 않았거든. 그리고, 난 그물은 못 이겨.”


“그래도...그래, 펠릭스가 준 약도 있었잖아요! 그 약이었으면, 그래도 이런 꼴 까지는 안 당했을지도 모르는데······”


“실비아. 그게 무슨 약인줄아나?”


“모르죠.” 실비아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주 위험한 약이야.”


“그렇겠죠. 위험한 사람이나 짐승을 쫓을 때 쓰는 거니까···”


“붉은 가루병에서 착안해 만든 무시무시한 약이야.”


올리버는 태연히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 실비아는 금새 굳어버렸다.


“뭐라고요?”


“그렇다고. 보통 약이 아니라는 뜻이야. 아주, 아주 위험한 약이지. 그런데, 당장 우리를 해칠 것처럼 보이지 않는 녀석들에게 그런 약을 끼얹었다가는, 그놈들이 순식간에 분노해서 우릴 해치려 들지도 몰라. 그래서 네 손에서 빼앗은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무서웠다고요···”


“그래. 뭐, 이해는 해. 설명할 시간이 없었으니.”


“그래서. 이제 우리 어쩌죠?”


두 손이 등 뒤로 묶인 실비아가 올리버에게 말하자, 올리버는 온 몸에 힘을 주어 보다가 금새 포기했다.


“글쎄. 아, 간지러, 잠시, 뭐지?”


올리버의 옷섶이 갑자기 불룩 솟아오르더니, 솟아오른 무언가가 그의 옷 속에서 재빨리 움직이다가, 목깃 너머에서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그것은 메를린의 집에서 올리버를 따라온 조그마한 갈색 다람쥐 코튼이었다.


“코튼! 아니, 지금껏 내 옷 사이에 숨어 있었던거야?”


올리버는 퍽 반갑다는듯 코튼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러자 코튼은 새까만 눈을 반짝이며 올리버의 목 위로 타고 올랐다.


“아니, 다람쥐잖아요.”


“그래! 좋은 생각이 났어. 코튼. 내 손이 지금 꽁꽁 묶여있거든?” 올리버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두 손에 힘을 주어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이 줄좀 풀어줄래?”


“아니, 올리버. 코튼이 반갑기는 하지만, 우리 말을 알아 듣겠어요?”


“뭐 어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시도라도 해 보는게 낫지. 그리고, 펠릭스도 그랬잖아. 마녀의 손을 탄 짐승들은···..”


“가끔 믿을 수 없을만큼 똑똑해진다고요? 하지만 코튼은 그렇게 보이진 않던데···?”


그러나 올리버의 말을 듣고 잠시 귀를 쫑긋거리던 코튼은, 금새 쪼르르 그의 팔을 타고 내려가더니 찍찍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의 손을 묶은 밧줄을 갉아대기 시작했다. 어찌나 빠르게 갉아 대는지, 채 일분도 되지 않아 올리버는 힘을 주어 헐거워진 밧줄을 풀어버렸고, 그러자 코튼은 다시 그의 얼굴 근처로 가 재롱을 떨었다.


“코튼! 잘 했다 잘 했어. 요 귀여운것.”


“올리버! 제것도요!”


올리버는 실비아의 손을 묶은 줄도 금새 풀어버렸다. 이제 묶여있어 피가 잘 통하지 않아 저릿한 손을 탈탈 털며 두 사람은 감옥의 철창을 바라보았다.




“줄을 푼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제 어쩌죠?”


“몸수색도 제대로 하지 않은 놈들이니, 사실 여기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지도 않을 걸.”


“어떻게 그래요! 저는 이런 곳에 단 일 초라도 더 있고 싶지 않거든요?”


“뭐, 하긴. 귀족 자제니까. 그럴만도 하기는 해.”


올리버가 그렇게 말하자 실비아는 그를 째릿 노려보았다. 그러자 올리버는 헛기침을 하며 그녀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침착하게 생각해 봐 실비아. 이놈들은 대로 한복판에서 우릴 습격했어. 여긴 골든포트야. 어디 한적한 시골 마을이 아니라고. 일 분이면 마을 어디로든 기마 경비대가 달려오지. 그런데도, 이놈들은 그 사람 많은 대로에서 우릴 습격했어. 이건 아주 상식에 반하는 행동이지. 뒷감당을 포기하고 우릴 죽이려 한 거면 또 모를까. 하지만, 봐. 우린 멀쩡히 살아있지?”


“그렇네요.”


“그래. 그러니 처음부터 우릴 죽일 작정은 아니었다는거야. 그물을 준비해 온 것도 그래. 애초에 생포가 목적이었던거지. 그렇게 무리해서까지 우리를 생포해 두려고 한 거야. 누군가가.”


“하지만, 감옥에 우릴 가뒀잖아요. 그리고 이대로 인신매매라든가...”


“그렇지. 그렇지만, 몸수색도 제대로 하지 않았어. 내 칼을 빼앗아간게 고작이지. 인신매매 따위를 고려했다면, 그렇게 요란한 방법을 쓰지도 않았을테고, 썼더라도 몸수색은 철저히 했을거야. 그런데, 실상은 어땠지? 우릴 납치한 놈들은 애초에 우릴 여기 오래 가둘 생각도 없는것 같아.”


“그럴까요?”


실비아는 그래도 영 개운치 못한 마음으로, 불안에 차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편 올리버는, 주머니를 뒤져 조그만 거울을 꺼내 창살 밖을 비춰보기 시작했다.


“뭐가 좀 보여요?”


“지키고 있는 사람도 없군. 그렇다면 어디, 한번 나가볼까?”


“나가다니요? 어떻게요? 열쇠라도 몰래 빼돌린거에요?”


“아니. 아쉽지만, 그것보단 조금 덜하지.” 올리버는 씩 웃으며 주머니에서 이상한 약병을 하나 꺼내들었다. 그는 약병의 뚜껑을 열고 주머니를 뒤져 천 조각을 꺼내 뭉치더니, 그 천 뭉치에 약을 발라 금속 위에 살살 묻히기 시작했다.”


“무슨 약이에요?”


“잠자코 보고 있어. 아주 놀라운 마술이니까.”


올리버는 창살 위아래에 그 약을 발랐다. 어느 순간 부터인가, 치익 하고 무언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나더니, 금속 창살이 거품을 내며 조금씩 녹고 있었다.


“세상에!”


올리버는 위아래가 녹은 창살을 힘을주어 슬쩍 밀었다. 그러자 땡그랑 소리를 내며 속이 텅 빈 금속 창살들이 힘없이 뽑혀나가버렸다.


“이제 나가볼까?”


씩 웃으며 자기를 돌아보는 올리버에게,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펠릭스는 첼시의 뒤를 따라 경매장에서 빠져나와 골든포트의 거리를 걸었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건데, 허튼짓 하지는 말아줘. 그러니까, 알지? 경비대에 신고를 한다든가······”


“됐어. 괜히 긴장하지마 첼시. 내가 그러겠어?”


“안 그러겠지. 펠릭스. 하여튼, 넌 우리들에대해 너무 잘 안다니까.”


첼시가 펠릭스를 데리고 간 곳은, 그녀가 이전에 보여주었던 그녀의 본거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이 흔히 호가는 조그만 식당에서, 그들은 메뉴판을 사이에 두고 무시무시한 시선을 교환했다.


“자, 본론을 말해, 첼시.”


“뭐, 별거없어. 사실, 내가 바라는건 하나야. 외뿔소의 뿔. 나한테 넘겨줘.”


“싫어.”


“네 동료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펠릭스는 마침 종업원이 가져온 물잔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말했다.


“첼시. 우리 같이 숲에서 연금술 공부 할 때, 기억해?”


“무슨?”


“그 때, 사냥꾼 무리 하나가 우리들 근처에 야영을 한 적이 있었지. 우리들한테 시비를 걸었고, 솥을 두 갠가 깨뜨렸어. 대스승님도 화를 냈지.”


“아, 맞아. 기억해. 하지만, 스승님이나 대스승님이나 괜히 싸움을 키우지 말랬잖아. 어쩌면 사람들에게 미움받는것도 우리 연금술사들의 업이라고. 그런데, 그 뒤로 재미난일이 일어났지, 아마?”


“그놈들. 온 몸이 마비돼서 반나절동안 굳어있었지.”


“맞아.” 첼시는 억지로 웃으며 조심스레 물잔을 집어들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네가 범인이었다는 소문이 돌았지, 펠릭스.”


“맞아. 그런 소문이 있었지. 나는 그 때 연금술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놈들을 미워했거든. 하물며, 대스승님을 욕보이고 솥을 깨뜨려?”


“어이쿠, 과거의 범죄를 자백하려는건가?”


펠릭스는 씩 웃다가, 순식간에 차가운 눈으로 첼시를 보았다.


“감당못할짓은 하지마 첼시. 너 그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잖아?”


첼시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굳은 채 침을 꼴깍 삼켰다.


“협박하는거야?”


“잘 생각해 두라고.”


“물론이지. 해서, 그 외뿔소의 뿔 말인데······”


첼시는 조용히 고개를 앞으로 숙여 무언가를 속삭였고, 펠릭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감옥에서 빠져나온 올리버는 복도 모퉁이 너머로 거울을 비춰가며 앞으로 움직였다.


“괜찮을까요?”


“아마도.” 올리버는 거울을 도로 넣고, 아마 밖으로 통하는 것 같은 문 앞에 서서 문에 가만히 귀를 가져다 대었다.


“이대로 무사히···”


“쉿! 누가 온다.”


“네? 어떡해요? 도로 감옥 안으로 들어가기라도···”


“아니, 실비아. 잠시, 조용해봐. 두 사람. 좋아. 어쩌면 될지도 모르겠군. 자.”


올리버는 그녀에게 조잡한 새총을 건네주었다.


“아니, 이건···”


“전에 쏴 본 기억나지? 자. 거기에.” 올리버는 이번에는 조그만 약병을 건네주었다.


“이건 뭐에요?”


“수면제. 그걸 새총에 매기고, 코를 노려 쏴 버려.”


“네? 제가요?”


“그래. 괜히 빗맞으면 그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동료들을 불러올지도 모르니까. 한 번에 맞혀야해. 침착해라 실비아. 긴장 풀어. 심호흡을 하고 시위를 당기는거야.”


올리버역시 고무줄을 집어들고, 손가락에 고무줄을 건 뒤 마침 바닥을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매기고 줄을 쭉 당겼다.


“괜찮을까요?”


“너 스스로를 믿어 실비아. 넌 할수 있다. 그 때도, 나무 한 가운데를 맞췄잖아.”


이제 실비아도 들을 수 있을 만큼 인기척이 가까워졌다. 귀찮다는투로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며 문이 달칵 열리자, 두 사람의 얼굴이 문 너머에서 보였다.


“쏴!”


놀란 눈의 얼굴을 향해, 실비아가 쏜 약병이 정확히 꽃혀들었다. 부딪힌 약병은 펑 소리를 내며 청록색 안개를 잠시 피우더니, 그는 금새 눈이 풀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바로 옆에 서 있던 불한당역시 머리가 돌멩이가 부딪히더니, 딱! 하는 뭉툭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풀썩 넘어져버렸다.


“맞혔어요!”


“잘했다, 실비아.”


바로 쓰러진 남자에게 달려든 올리버는, 그가 아직 살아는 있지만 의식은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그들의 겉옷을 벗겨 두 손을 꽁꽁 묶어둔 다음에야 손을 털며 일어났다.


“이제 나가볼까?”




음식점 안에 들어와, 음식도 시키지 않고 차 한잔만 내려놓은채 마주앉아있던 첼시는 마침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펠릭스. 그래서, 외뿔소의 뿔은 넘길 생각이 없는거야?”


“물론.”


“조금도?”


펠릭스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 어쩔수 없지. 승자의 권한이니까.”


“그래. 첼시. 네가 우리들한테 가르쳐 줬잖아. 그 조그만 내기에서······”


“하하. 그래. 도토리를 걸고 한 내기였지. 스승님에게 들켰을 때는 크게 혼났어.”


“그래. 그 때, 네가 우리 모두의 도토리를 가져가서 우리들한테 말했잖아. 승자의 당연한 권리라고. 승자가 독식하는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맞아. 그런 일도 있었구나.” 첼시는 먼 과거의 추억에 잠겨 중얼거렸다.


“그래. 첼시. 그만 포기해. 넌 어차피 선을 넘지는 못하잖아.”


첼시는 잠자코 펠릭스를 쳐다보다가, 그를 노려보기위해 인상을 쓰다가, 몇 초도 되지않아 금새 평소와 같은 웃음을 띄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펠릭스. 이번에는 네가 이겼어.”


“그래.”


“하지만, 나도 지진 않았어.”


“뭐?”


갑자기, 경비병들의 고함소리와 함께 가게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무장 경비병들이 창과 방패를 앞세우며 가게 안으로 쳐들어왔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했고, 그 사이에 첼시는 어느새 자취를 감춘 뒤였다. 그 흔한 연막조차 터트리지 않고, 그녀는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조지!”


경비대원들 뒤에서 조지가 성큼성큼 걸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조지는 가게 주인에게 영장을 보여주고 가게 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조지!”


“아, 또 만나는군.”


“그래요. 아, 조지. 갑자기 부탁해서 미안한데, 내 친구들이 납치를 당한것 같거든요. 혹시 좀 도와주겠어요?”


“이미 납치 신고를 받았는데.”


“어디서죠?”


“대경매장 근처 골목.”


“아. 그러면 그거겠군요. 고마워요 조지. 해서,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뭐라도 좀 도와드릴까요?”


병사들은 가게 여기저기를 뒤졌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보고를 올렸다. 그러자 조지는 영 못마땅한 소리를 내며 펠릭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죠?”


“블랙스와인 상회의 조직도, 근거지, 범죄 증거가 첩보로 들어와서 그들을 모조리 체포하고 있는 중인데, 그 간부와 우두머리가 보이질 않는군.”


“그렇군요. 혹시, 무슨 일로···?”


“원칙적으로는 말 하면 안 되지만.” 조지는 엄숙하게 덧붙였다. “어차피, 공공연한 비밀이나 다름없으니, 알려주지. 블랙스와인 상회는 꿈버섯을 밀수한 혐의가 있다.”


“아. 그렇군요. 그래서?”


“꿈버섯은 극도로 위험한 물건으로, 허가없이 취급하는 것은 중죄에 해당한다. 혹시, 펠릭스. 블랙스와인 상회에 대해 아는것이 있나?”


“글쎄요···”


“아는것이 있는데도 경비대에 신고하지 않는것 역시 중죄다.”


“아, 물론이죠. 저는 아주 성실한 왕국의 시민으로서,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다만?”


“쓸만한 정보가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펠릭스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일단 말이나 들어보도록 하지. 의외의 단서를 찾을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야. 그럼 어디······”


막 펠릭스가 입을 열려는 찰나, 경비대의 한 곳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펠릭스는 귀를 쫑긋 세우고 소란에 귀를 기울였다. 익숙한 목소리. 그는 당장 웃으며 벌떡 일어나 조지도 내버려두고 소란이 난 곳으로 갔다. 거기에는 호위인지 체포인지 뭔지를 당한 올리버와 실비아가 경비병들에게 뭔가를 주장하고 있었다.


“올리버!”


“펠릭스! 아, 동료야. 내 신원을 보증해줄 사람이라고.”


“이 사람들 신원은 내가 보증해요! 실비아. 올리버. 둘 다 멀쩡하군요?”


“그래. 우릴 뭘로보고? 안 그래, 실비아?”


“맞아요.”


“감격의 재회중에 미안하지만.” 어느새 혼자 남겨진 조지가 펠릭스를 뒤따라 와서 말했다. “우리도 일의 순서라는것이 있어서 말이야.”


“아. 그럼요. 이해합니다.”


조지는 병사를 불러 몇 마디 귀에 속삭여주었다. 그러자 올리버와 실비아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아주 유해졌다.


“그럼 우리도 가서 하던 일을 마저 끝낼까요? 뭐, 별 도움은 안 될것 같지만.”


“일단 그러지.”


“좋아요. 그러니까······”


그리고 펠릭스는 골든포트에서 첼시를 만난 일에 대해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조사는 오랜시간 지속되어, 펠릭스는 거의 밤이 되어서야 경비대에서 나올 수 있었다. 줄곧 경비대 한 옆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던 올리버와 실비아는 막 걸어나오는 펠릭스를 보고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가 이리 오래걸려?”


“아, 뭐, 옛날이야기좀 하느라.”


펠릭스는 별 것 아니라는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둘 다 멀쩡해요?”


“그래. 다행히. 아주 신사적으로 우리를 대해주던데.”


“신사적이라고요?”


실비아가 항의하자 올리버는 웃으며 말을 조금 바꾸었다.


“불한당 치고는, 그리 나쁘지 않은 대접을 해 주더군.”


“어쨌든 둘다 멀쩡하니 다행이에요. 진심으로.”


“그래서, 펠릭스. 뿔은 무사한가요?”


“뿔요?”


“제 뿔이요!”


“당신 뿔이요? 아, 아! 당연하죠. 선약이 있는데 약재를 다른데다가 웃돈받고 팔아치울리가 없잖아요?”


“그렇다니, 정말 다행이긴 한데······”


“왜요?”


“돈. 당신, 돈도 없는데 낙찰받은 거잖아요. 진짜 괜찮은거에요?”


“아, 뭐. 실비아. 걱정해줘서 고맙긴 한데, 사실, 우리끼리 있으니 하는 말이지만······”


펠릭스는 실비아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저 돈좀 있거든요.”


“아니, 장난칠 때가 아니잖아요!”


“진짜에요. 봐요!”


펠릭스는 은행에서 만든 대출 증서를 보여주었다. 진짜 은행에서 발급된 진짜 공문서에는, 펠릭스에게 금화 30닢을 무기한, 무이자로 대출해 준다는 은행장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이게······”


“제 도장이에요. 멋있죠?”


실비아는 은행장의 도장 옆에 찍혀있는 도장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아,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아무튼, 그러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요.”


펠릭스가 증서를 도로 둘둘말아 품 속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아, 조금만 더 보면 생각날 것 같았는데.”


“뭐가요?”


실비아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녜요.”


“그렇겠죠. 하여튼, 비밀스러운 아가씨 같으니. 올리버. 그래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무용담을 말해주지 않겠어요?”


“아, 그래.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올리버는 골든포트 곳곳에 세워진 가로등을 따라 그들이 묵던 여관으로 가는 길에,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나긴 하루를 끝마치고 각자의 방에 들어온 세 사람은 인사를 나누고 잠이 들었다. 아니, 잠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밤이 깊자, 펠릭스는 갑자기 조심스럽게 소리내지않고 여관 방문을 슬며시 열고 나와, 살금살금 여관을 빠져나왔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거침없이 골든포트를 빠져나가는 오솔길로 걸어갔다. 오솔길의 덤불 사이에 몸을 숨기고, 그는 숨죽여 기다렸다. 달이 넘어가고, 풀 벌레들이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다가 올빼미의 흉포한 발톱에 낚아채일 때까지.


어두운 길 위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불안한듯 계속 멈칫거리고 뒤를 돌아보면서도 끝까지 멈추지 않고 길을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첼시.”


펠릭스가 덤불 사이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그 실루엣은 깜작 놀라며 이쪽을 향해 전등의 갓을 휙 젖혔다.


“펠릭스!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그나저나, 어떻게 안 거야?”


“숨바꼭질 할 때면, 넌 꼭 가까이에 숨어있다가 술래가 한눈파는 사이에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곤 했지.”


“맞아. 내 참. 그 때 그 버릇을 가지고 나를 찾았다고?”


“그랬어. 너나 나나, 아니, 우리 모두 그때랑 별로 달라진게 없으니까. 그래서, 첼시. 어딜 그리 바쁘게 가는거야?”


“넌 알거 없어 펠릭스.”


“그래, 그렇다면야 뭐. 하지만, 하던 이야기는 마저 해야지.”


“무슨?”


“네가 부탁했잖아. 외뿔소의 뿔을 조금만이라도 나눠줄 수 없냐고.”


“아! 맞아. 그랬지. 그런데, 영 상황이 안좋게 흘러가서······. 혹시, 세상에. 펠릭스. 약속 지키려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던거야?”


“그래.”


“펠릭스! 넌 내 최고의 친구야! 그래서, 뿔은?”


펠릭스는 첼시의 앞길을 조용히 가로막고 섰다.


“첼시. 난 약값은 받는 연금술사야.”


“아, 물론. 돈이야······”


“아니, 돈 말고. 이야기를 들려줘.”


“뭐?”


“네가 소속된 상회. 네가 거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고,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그걸 말해줘.”


“아니, 펠릭스.” 첼시는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별 거 없어. 그리고, 상회라니. 내가 상회 소속인지 아닌지······”


“경비대에 아는 사람이 있어, 이미 확인했어. 네 얼굴과 이름이 적힌 지명수배서가 있더라. 그사람들은 너를 블랙스와인 상회의 간부라고 알고 있던데.”


첼시의 얼굴이 한 순간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잠시 딴데를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며 등불에 갓을 도로 씌웠다.


“조용한데서 이야기할까?”


“봐 놓은 자리가 있어.”


두 사람은 달밤을 조명삼아 길에서 벗어나, 조그만 언덕을 향해 걸어갔다.




언덕위에 덩그러니 놓인 바위에 나란히 앉자, 첼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부터 말해줘야 할까?”


“네가 하던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뭐, 좋아. 대신, 펠릭스. 뿔은 조금 나눠 줄 거지?”


“네 친구에게 도움이 될 약을 줄게.”


“애매하게 말하기는. 어쨌든, 뭐, 좋아. 그정도면 괜찮겠지. 그럼 말 한다.”


첼시는 그렇게 선언해놓고도 뭔가 영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인지, 두어번 정도 한숨을 쉰 뒤에야 마침내 입을 열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뭐, 사실 별 일은 아니야. 그 때, 붉은가루 병이 겨우 끝났을 즈음인가? 나도 다른 연금술사들처럼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크게 회의감을 느끼고, 연금술사들이 모인 숲에서 나가버렸지. 어쨌든, 내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 다르더라고.”


“그래. 그럴 만 했지. 그래서?”


“그 뒤로 돈 될만한 일을 여기저기 찾아 다녔어. 가급적이면 연금술 지식을 쓸 수 있으면 더 좋았고. 그러다가 블랙스와인 상회와 어떻게 연이 닿았지. 처음에는 별 일 안했어. 회계장부를 정리하고, 경매장에서 바람잡이 일로 용돈도 좀 벌고. 그게전부였어. 그랬는데······”


“꿈버섯.”


“그래. 잘 아네.” 첼시가 히죽 웃었다. “내 사업 파트너가 좀 더 큰 돈을 벌어보자고 나한테 제안했지. 뭐, 나도 돈이 갖고 싶었으니까 거기 응했고. 그래서 돈 될만한 것들을 찾아보다가, 꿈버섯이 눈에 들어왔어. 왕국에서 엄격히 관리하는 탓에 값이 비싼 재료인데도, 드물게 야생에서 자연 발생하기도 하거든. 그걸 어떻게 구해다가 우리가 양식해서 팔자고, 그렇게 의기투합했지.”


“그래서?”


“나쁘지 않은 성과였어. 그런데, 우리가 첫 생산품을 채 팔기도 전에, 갑자기 법의 철퇴가 우리 상회로 내리쳐졌어. 패닉에 빠진 조합원들은 어떻게든 자기 몫을 챙겨 떠나겠다고 되는대로 돈 되는 건 다 집어들고 도망치더군. 내 참. 그래서 뭐 지금 상회에는 남은것도 별로 없어.”


첼시는 씁쓸하다는듯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딥우드에서 그런 사람을 하나 봤지.”


“그래? 어땠어?”


“죽었어. 마을 사람들이 그놈을 죽여서, 그놈 손에 들린 보물을 나눠 가졌거든.”


“꼴 좋다. 욕심쟁이 같으니. 아무튼, 그래. 그런 상황이야. 어때, 펠릭스. 이제 충분히 들었어?”


펠릭스는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첼시. 화이트플레인 마을에 날아든 익명의 투서. 그거 네가 쓴 거지?”


첼시는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펠릭스를 쳐다보았다.


“그래?”


“그래. 네가 왼손으로 쓴 글씨. 기억해. 가끔 장난으로 우리들끼리 있었을 때 네가 무슨 대단한 아이디어라도 된다는 양 한 말도 기억하고. 불리한 계약을 할 때는, 왼손잡이인척 하면서 왼손으로 서명을 남기겠다고 그랬잖아? 그래놓고 나중에 자긴 오른손잡이라고 잡아 떼겠다고 그랬지.”


“그 필체를 기억한다고? 내 참. 징그럽다 펠릭스. 별걸 다 기억하네.”


첼시는 길게 한숨을 쉬고나서 계속 말했다.


“맞아. 가만히 손 놓고 있다가는 상회에 당장에라도 경비대가 들이닥쳐 싸그리 털어갈 것 같았거든. 잠깐이라도 그놈들 시선을 돌릴만한 구석이 필요해서. 그래서 사람 하나를 고용해서 곡창에다가 조그맣게 불을 피우랬는데···”


“화약이 폭발했어.”


“그건 유감이야. 하지만, 내 탓만도 아니니까. 난 분명히 곡창에다가 조그만 불을 피우라고 했어. 마을 사람들이 생각없이 화약 상자들을 곡창 옆에 보관한 것까지는 내 탓 아냐. 펠릭스. 너도 내 말 이해하지?”


펠릭스는 길게 한숨을 쉰 다음, 조금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앞으로 어쩔거야?”


“앞으로 어쩔거냐고? 당연히, 새 돈 벌이를 찾아야지. 난 자수 안해.”


그러나 첼시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왜?”


“왜냐면, 난 잘못한게 없으니까. 화이트플레인에서 일어난 화재도 내 탓은 아니지. 그리고 밀수 건도 그래. 펠릭스. 너도 알잖아. 꿈버섯의 위험은 과대평가되어있어.”


“환각버섯이야.”


“중독성은 별로 없어. 너도 알잖아? 우리들중 가장 뛰어난 연금술사인 네가, 그걸 모를리가 없어.”


펠릭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들킨거야?”


“아, 그거. 펠릭스. 이건 정말 우리끼리니까 하는 이야기인데······” 첼시는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 대귀족이 우리들을 짓밟았어.”


“뭐야?!”


“사실이 그래. 대귀족이 상회 내부에 스파이를 심어뒀던거야. 나는 몰랐는데, 경비대가 들이닥칠 때 가장먼저 내뺀놈들이 있어. 그놈들은 심지어 체포당하지도 않았지.”


“대귀족이 했다는건 어떻게 알아?”


“스파이 한 놈을 찾아 족친적이 있거든. 아, 내가 그런건 아니고 내 사업 파트너가.”


“그래서?”


“그래. 그 스파이는 좀 멍청한 편이어서, 대귀족의 지령서를 아직 갖고 있었더라. 뭐, 서명이든 뭐든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대귀족인줄 알았냐고?” 첼시는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종이와 잉크. 그 조합을 쓰는건 단 한 군데 뿐이더라. 여기저기 찾아봤는데도.”


“그게 어딘데?”


“웨일 가문.” 첼시는 그렇게 말하고서, 방금 자기가 한 말의 무게를 펠릭스가 충분히 체감할 수 있도록 잠시 조용히 있어주었다.


“웨일 가문이면······”


“공작가지. 온갖 곳에 손을 벌리는 수전노중의 수전노야. 하필 우리들과 시기가 겹친거지. 아마 약재 사업에 슬슬 뛰어들 생각이었나 보더라고. 그런데, 우리가 괜히 꿈버섯으로 약재 시장을 뒤숭숭하게 만들면 그쪽에서도 신경쓰이잖아? 그래서 우리들을 휙 하고 밟아버린거지.”


“다른 증거는 없어?”


“없어. 애초에, 있을리가. 진짜 공작가가 언제 음모를 벌이면서 흔적을 남기는 것 봤어? 그래. 이것도 순 추측일 뿐이야. 하지만, 어쨌든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들은 웨일 가의 눈 밖에 난 죄로 쓸려나간거지. 나쁘지 않은 상회였는데, 뭐 아쉽게 됐어.”


펠릭스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첼시에게 쪽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뭔데?”


“레시피. 혈관이 자주 막힌다는 네 사업 동료한테 그대로 만들어 줘.”


“뭐야, 내가 아는 재료들이랑 다른데?”


“내가 가급적이면 값싸고 구하기 쉬운 것들로 대체한 레시피야.”


첼시는 그 쪽지를 가만히 보다가, 고이 접어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으며 웃었다.


“펠릭스. 결국 뿔은 못 준다는거구나.”


“나 혼자 쓸 게 아니거든. 내 손님이, 그 약재를 필요로 해. 그래서, 나도 양보 못해.”


“아, 하긴. 손님은 어쩔수 없지. 너는 그런 부분에선 칼같으니까. 그나저나, 조금 아깝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네가 열었다는 그 숲 속에 자리잡은 웃긴 가게에 손님으로나 찾아가볼걸. 내가 손님으로 찾아갔어도, 너는 최선을 다해 주었을 것 아냐?”


“물론. 난 손님은 가려받지만, 받은 손님은 차별안해.”


“그래. 진작 그럴껄. 좀 아쉽네······”


첼시는 멀리 하늘위에 떠있는 달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녀는 일 분 정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몸에 기운을 되찾은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럼, 펠릭스. 나는 이만 도망가볼게. 지명수배가 끝날 때까지 말야.”


“첼시. 그래. 잡히지 마라. 숨바꼭질은 네 전공이잖아.”


첼시는 웃으며 펠릭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다시 어두운 길 너머로 천천히 사라졌다. 더이상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펠릭스는 쓸쓸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터벅터벅. 평소보다 그의 의족이 조금 더 말을 듣지 않는 듯 했다. 터벅터벅. 힘겹게 발을 딛어 여관으로 돌아온 그는, 침대에 누워 쓰러지듯 잠이 들어버렸다.




소란이 가시고 새 아침이 밝아왔다. 펠릭스와 올리버, 실비아는 여관 일층 식당에 모여 조용히 식사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은 아침 손님도 없었고, 여관 주인은 시도때도없이 여관 밖을 기웃거리다 지나치는 무장 경비병들을 조금 걱정스런 눈으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경비병이 많네요.”


“이제 곧 없어질거야.” 올리버는 벌써 그 몫의 접시를 깨끗이 비운 뒤였다. “일찍 눈이 뜨여서, 심심한김에 산책을 갔다가 조지를 만났거든. 열심이던데, 블랙스와인 상회의 잔당들도 거의 다 잡았고, 놈들이 숨겨둔 재산도 거의 파악이 끝났다더라고.”


“그렇군요. 하여튼,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하다니. 그러니 벌을 받는거라고요.”


실비아는 그렇게 말하며 구운 토마토 조각을 포크로 꾹 찍어들었다.


“그런데, 펠릭스.”


올리버가 접시에 남은 음식 찌꺼기를 먹으려는 코튼을 손으로 가볍게 쥐며 말했다.


“왜요, 올리버.”


펠릭스는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접시를 깨작거렸다.


“어제 말이야. 너 경비대에 그렇게 오래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지 않았어?”


“네?”


“그러니까, 금방 나올 수도 있었잖아. 혹시, 너 일부러 그렇게 오랫동안 시간 끈것 아냐?”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모함이군요, 올리버.” 그러나 펠릭스는 그리 기분나쁜 기색없이 접시 위에 담긴 소시지를 포크로 쿡 찍어 들어올리며 말했다. “증거는 있나요?”


“뭐, 그냥. 혹시나 어쩌면, 이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네 옛 동료가 지명수배 당한것을 우연히 안 네가, 경비병들을 지휘해서 지명수배범을 체포했어야 할 조지를 묶어두고 있었다고. 밤이 늦을 때까지, 네가 머무를 수 있는 한 오랫동안 말야.”


“꽤 재미난 발상이로군요. 어디, 낭만 소설을 읽는 실비아. 어떤가요?”


“낭만소설 낭만소설 그러지 말죠, 펠릭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행이거든요?”


“알았어요. 그래서, 어떠냐니까요?”


“음. 글쎄요.” 실비아는 잠시 눈을 위로 뜨고 몇 번 깜빡이며 생각하다 말했다. “사실, 잘 모르겠네요 저는.”


“그렇군요. 올리버. 당신의 가설은 낭만소녀 실비아조차 설득하지 못 했어요.”


“뭐, 그냥 해 본 소리니까 말이야. 그냥, 뭐, 그래, 누가 알겠어?”


“그렇죠 뭐.”


펠릭스는 포크에 매달린 소시지를 입으로 가져가려다가, 문득 여관의 창문 밖 저 멀리로 보이는 골든포트의 열린 성문으로 쭉 이어진 대로를 살펴보았다. 그는 길 끝에서 누군가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찾아보는 사람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가, 조금 쓸쓸하게 웃으며 소시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요? 안 먹어요?”


“배불러요. 골든포트식 아침식사는 너무 거하다고요.”


“하긴, 좀 그렇긴 하지. 기름진 고기 위주의 식단은 조촐한 아침을 즐기던 우리들에게는······”


실비아는 혼자 떠드는 올리버의 말을 제대로 듣지않고, 방으로 먼저 올라가버리려 하는 펠릭스의 등을 보았다. 의족이 잘 맞지 않는지, 오늘따라 그는 평소보다 조금 더 휘청이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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