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조회수 :
6,044
추천수 :
188
글자수 :
1,774,925

작성
21.10.26 18:10
조회
22
추천
1
글자
19쪽

37화

DUMMY

실비아와 그 여인은 서로 부둥켜 안은 채 조용히 몇 분 정도 가만히 있었다. 온 얼굴이 반가움과 그리움으로 범벅이 된 채, 실비아는 어머니의 손을 실수로 놓쳤던 어린 아이처럼, 그녀의 언니를 다시 놓쳐버릴까봐 무서운지 있는 힘껏 두 팔로 언니를 꼭 껴안았다.


“실비아. 숨이 답답해.”


“아, 미안해 언니.”


그녀는 뒤늦게 팔에 준 힘을 조금 풀었지만, 여전히 언니를 껴안은 채였다.


“많이 큰줄 알았는데. 아직 여전하구나.”


여인은 실비아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냐. 나, 많이 달라졌어. 예전하고는!”


“내가 보기엔 여전히 똑같이, 사랑스러운 동생이야.”


“언니!”


실비아는 다시 힘껏 언니를 부둥켜 안았다.




한편, 대기실에서 쫓겨나다시피 빠져나온 세 사람은 멀뚱거리며 서로의 눈치를 보며 서 있었다.


“저게 대체 누구지?”


펠릭스가 묻자, 트로이가 작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오늘 온다고 했던 그 귀족.”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정체가 뭐냐는 뜻으로 물었어, 트로이.”


“에밀리아 콘월. 콘월 후작부인이야. 콘월 가문은 알지?”


“몰라.”


트로이는 다시 작게 한숨을 쉬고 대답해주었다.


“유서깊은 가문이야. 거의 이백년 정도 역사가 깊은 가문인데, 요즘에는 무역업을 한다나봐. 하지만, 예전에 온 왕국이 한창 전쟁중일 때, 사람도 돈도 너무 많이 써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위세가 크게 줄어든 귀족이야.”


“대단한데. 그래서, 뭐 어쨌든 귀족 가문이라 이거군? 그래서 그 가문의 후작부인이 왜 실비아를 찾아온거지?”


“언니래잖아.”


펠릭스는 그래도 뭔가 영 못마땅한듯 표정을 조금 찌푸린채,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입으로 소리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저, 단장님. 저기, 저는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어쩌다가 난데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 폴라는, 계속 눈치를 보다가 드디어 용기를 내어 말했다. 트로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황급히 이 이상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달아나 그녀에게 익숙한 서커스 단원들 사이로 사라졌다.




에밀리아와 실비아는 다시 한참이나 서로 부둥켜 안은 채,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놀라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다가, 이제서야 서로 떨어져 조금은 고상하게 의자에 앉았다.


“그동안 어디있었어?”


먼저 물어본 것은 에밀리아였다. 그 질문을 들은 실비아의 얼굴은, 당혹과 부끄러움 때문인지 조금 차게 굳어버렸다.


“말 안해줄거야?”


“비밀이야.”


실비아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에밀리아의 무릎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에밀리아는 웃으며 실비아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


“유서를 쓰고 가출했다면서?”


이제는 실비아의 몸까지 조금 차게 굳었다.


“걱정 많이 했어.”


“거짓말!” 실비아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엄마아빠는, 나한테 전혀 관심없잖아!”


“아니, 실비아. 내가 걱정 많이 했어. 어디서 뭘 하며 지내는지, 밤에 이슬을 맞지는 않는지, 잘 먹고 다니는지, 무슨 나쁜일을 당하는건 아닌지······”


실비아의 머리를 계속 천천히 쓰다듬어주며 에밀리아가 말했다.


“미안해, 언니. 그러니까, 난 잘 지내고 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서커스 단원이 되기로 한거야?”


“아냐!” 실비아가 그녀의 언니를 휙 돌아보며 재빨리 변명했다. “그러니까, 이건, 조금 사정이 있어서 그래.”


“어떤 사정?” 여전히 자애로운 웃음을 지으며 에밀리아가 물었다.


“그러니까, 저기······”


“실례합니다.” 대답하기를 주저하던 실비아는, 대기실 밖에서 들려온 트로이의 목소리를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재빨리 에밀리아의 무릎 위에서 일어났다.


“네!”


트로이가 조심조심 대기실 안으로 들어와 말했다.


“대기실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만 나가주시겠습니까?”


“아, 미안해요. 트로이.” 에밀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트로이를 향해 우아하게 인사를 해 주었다. 트로이는 겸연쩍게 인사를 받고, 어색하게 웃으며 나름대로 신사적인 인사를 그녀에게 되돌려주었다.


“그래, 언니. 너무 오래 있었어. 그만 가자.”


“어디로 갈 거야, 실비아?”


“난 그러니까······”


실비아는 웃으면서 에밀리아의 손을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목을 잡은 에밀리아의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물론 그것은 강제나 위압, 위협이라기 보다는, 아마 여동생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일터였다.


“난, 머무는 곳이 있어.”


“어느 여관?”


에밀리아는 조금 집요하게 물었다.


“그러니까, 있긴 한데······”


“실비아. 갈 곳이 없다면, 우리 집으로 가지 않을래?”


“그건 싫어!” 실비아가 에밀리아의 손을 탁 뿌리치며 외쳤다. 그러나, 그녀 자신도 방금 한 행동에 스스로 놀란 것인지, 깜짝 놀란 언니의 얼굴을 보고 실비아는 허둥지둥 사과를 하며 언니에게 매달렸다.


“언니, 미안해. 그러니까, 저기······”


“아니야. 난 괜찮아 실비아.”


에밀리아는 실비아를 달래면서, 어색하게 대기실 안에 서 있는 트로이를 향해 미안하다는 눈짓을 보냈다.


“저기, 실비아. 우선 나갈까?”


“그래, 언니. 우선 나가자. 나가서 이야기해. 자, 가자.”




그리고 실비아는 기세좋게 에밀리아를 끌고 대기실 밖으로 나와, 멀뚱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펠릭스와 마주쳤다.


“아.”


실비아가 얼빠진 목소리로 작게 말하는 것을, 에밀리아는 놓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펠릭스도 딱히 그녀를 못본척 할 생각은 없었는듯, 오히려 그는 대기실 밖으로 두 사람이 나오자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콘월 후작부인.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펠릭스는 초짜 연극 배우처럼 과장되게 허리를 숙이며 에밀리아에게 인사를 했다.


“반가워요. 당신은?”


“펠릭스.” 그가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연금술사 입니다.”


“연금술사요?” 에밀리아는 조금 의외라는듯 말했다. “연금술사···”


“자, 언니! 그러니까. 이만 가자. 일단 나가서······”


“실비아.” 펠릭스의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나오자, 실비아와 에밀리아의 얼굴이 조용하게, 느릿하게, 그러나 극적으로 변화했다. 실비아는 감추고 싶었던 비밀을 들킨 어린아이같이 경악했고, 에밀리아는 의도치않게 동생의 사생활을 들추어 낸 부모처럼 당황했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요?”


“아, 언니. 그러니까, 이 사람은······”


“실비아.” 에밀리아의 목소리가 아까보다는 훨씬 차분해졌다.


“응?”


“서커스에, 이번에는 남자까지.”


에밀리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렇다고 화가 난 것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펠릭스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귀족들 특유의 감정을 숨긴 목소리인지 어떤지 구분하기 위해 보이지 않게 애썼다.


“응······”


“정말······” 에밀리아는 잠시 말없이 실비아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그녀가 손을 들어올려······


“잘됐네.”


실비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넌 항상 낭만 소설을 읽었잖아.”


“언니!” 뒤늦게 에밀리아의 손 아래에서 빠져나오며 실비아가 변명했다. “그런거 아냐! 서커스는, 오늘 하루만 체험해 본 거고, 저 사람은, 그러니까. 가게 주인인데, 내가 저사람한테 물건을 샀어.”


“그렇습니다.” 드디어 끼어들 만한 틈이 생겨, 펠릭스가 한 발짝 다가오며 말했다.

“실비아가 제게서 약을 샀는데, 제가 아직 아직 약값을 못 받았거든요.”


“선불로 냈잖아요?”


“그거 말고요. 방금 당신이 먹은 약이요. 그, 알잖아요?”


실비아가 잠시 당황하여 눈치를 보고 있자, 에밀리아가 실비아를 가볍게 품으로 끌어안으며 펠릭스를 향해 말했다.


“어떤 약이었죠? 제가 대신 값을 치를게요.”


“언니······”


“괜찮아.”


펠릭스는 에밀리아와 실비아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대답했다.


“비쌀 텐데요.”


“자랑할 거리는 아니지만, 전 돈이 많답니다.” 에밀리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대신 값을 치러줄 이유는 없죠.”


“얘는, 내 동생이에요. 하나뿐인 친동생.”


에밀리아는 다시 실비아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실비아는 강아지처럼 에밀리아에게 파고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펠릭스는, 뜬금없이 코튼과 손장난을 쳐 주던 올리버의 모습이 떠올라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가요? 그렇지만, 저는 제 손님과 직접 교섭을 하고 싶습니다만.”


“아직 어린아이에요. 어른인 제가 대신 약값을 치르는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그런가요?”


펠릭스는 실비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조금 치사한 방법이었지만, 그는 이제 실비아를 어떻게 자극하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전 다 컸어요!”


예상한 반응이 나와, 펠릭스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군요.”


“소년소녀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에요. 자기가 다 컸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럴 때일수록, 우리 어른들이 세심하게 돌봐줘야하죠.”


“언니, 아냐! 나 이제 다 컸어!”


“실비아.” 에밀리아가 다시 실비아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얼마죠?”


“금화 백닢.”


“백닢! 미쳤어요!” 아주 고상하지 못한 말이, 귀족 실비아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언니! 이사람, 미쳤어! 제정신이 아냐!”


“지금의 저는 아주 지극히 건전한 정신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걸 증명할 방법을 찾기가 조금 애매하군요.”


“그런가요? 하지만, 연금술사 펠릭스.” 조금 단호한 눈을 뜨고, 에밀리아가 펠릭스 앞으로 한 발짝 다가오면서 말했다. “당신을 위해 하나 충고하자면, 방금 한 말이 농담이었다면 그만 여기서 사과하고 물러나세요. 나는 귀족의 특권을 마음대로 휘두를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농담에 어울려줄 만큼 만만한 사람도 아니니까.”


“어이쿠. 연금술의 위상이 추락하긴 했군.” 물론, 그렇다고 하여 딱히 긴장할 펠릭스도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금화 백 닢의 가치를 합니다. 골든포트를 비롯한 이곳저곳의 경매장의 기록을 살펴보시던지요.”


“무슨 약이지요?” 에밀리아가 공격적으로 눈을 빛내며 물었다.


“밧줄의 약. 들어는 보셨나요?”


“밧줄의 약이라. 글쎄요······.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군요. 자기 성도 밝히지 않는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이유는 없죠.” 그리고 에밀리아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실비아를 돌아보았다. “가자, 실비아. 우리집으로.”


“언니. 언니 집에는 가기 싫어!”


“하지만, 저 사람. 보나마나 음흉한 사람인게 분명해.” 에밀리아는 펠릭스를 곁눈질하며 작게 소근거렸다.


“아니야!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 않다니, 네가 어떻게 알아?”


“그러니까, 좀, 복잡한데······”


“실비아. 안되겠어. 우리집으로 같이 가자. 마차를 불러 잡아 놨으니까, 그걸 타고 가면 금방이야.”


“싫어!” 다시 실비아가 에밀리아에게서 달아나듯 그녀의 품을 쏙 빠져나왔다. “거긴, 가기 싫단 말야!”


“왜 그렇게 싫어하는거야?”


“그러니까, 거기는······”


“무슨 소란이지?”


에밀리아에겐 낯선,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체구,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강인한 골격. 큼직한 손아귀의 올리버의 모습은, 그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약간의 두려움과 경외를 품도록 만들었다.


“아, 올리버. 실비아의 언니라는군요.”


펠릭스는 갑자기 나타난 올리버를 돌아보지도 않고, 대수롭잖다는듯 에밀리아를 눈짓하며 말했다.


“그래? 아이쿠, 반갑습니다.”


그러자 올리버는 가볍게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펠릭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왜?”


“콘월 후작부인이에요.”


“후작부인!” 올리버는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에밀리아를 다시 돌아보곤 허겁지겁 허리를 푹 수그렸다.


“몰라 봤습니다, 후작부인. 그런데···” 슬쩍 고개를 들고 눈을 찌푸린채, 조금 무례하게 에밀리아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던 올리버는, 긴가민가 하다는 말투로 덧붙였다. “혹시, 어디서 만난적이···?”


“얼마 전에 마을 술집에서 봤던 것 같네요.”


“그렇죠?” 여전히 조금 긴가민가 하다는듯 올리버가 말했다. “아마, 그때 싸웠던것 같은데······”


“맞아요. 거나하게 취한 술꾼들과 시비가 붙었거든요. 당신이 절 좀 도와줬죠.”


“그랬었던가요?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그 거나하게 취한 술꾼의 무리가 아니라서 말이오.” 이제 완전히 허리를 펴고, 여유롭게 웃으며 올리버가 말했다. “그래서, 이곳에는 무슨 일로?”


“서커스를 보러 왔는데.” 실비아를 다시 슬쩍 당기며 에밀리아가 웃었다. “여동생을 찾아서요.”


“거 잘 됐군요. 낯선 타향에서 피붙이를 만나는 것만큼 반가운 일도 없으니. 그래서, 펠릭스. 아까의 그 소란은 대체 뭐였던거야?”


“저를 사기꾼으로 오해하더군요.”


“사기꾼!” 올리버는 그것이 아주 재밌는 농담이라도 된다는듯, 호탕하게 웃었다. “세상에, 누가? 누가 우리 펠릭스가 사기꾼이라고 그래?”


“저 사람이요.”


펠릭스가 에밀리아를 눈짓하자, 올리버는 눈치를 보다가 헛기침을 했다.


“저기, 후작부인. 그러니까, 음. 정확히 펠릭스와 무슨 말을 나눴는지는 모릅니다만, 펠릭스는 사기꾼은 아닙니다.” 에밀리아가 실비아에게 그러듯, 펠릭스를 끌어당겨 그의 머리를 덥썩 붙잡으며 올리버가 말했다. “말주변이 없어 그렇지, 사람 속이는 놈은 아니거든요.”


“그런가요?”


조금 경계까 풀린 눈으로 에밀리아가 묻자, 올리버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펠릭스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어뜨리다시피 하며 쓰다듬었다.


“네. 제가 보증합니다.”


“약값으로 금화 백 닢을 요구하는데요?”


“백 닢!” 올리버도 외쳤다. “펠릭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밧줄의 약이잖아요.”


“그래도, 전에 봤을 때는, 낙찰가가 금화 팔십 닢이었다고.”


“팔십 닢!” 이번에는 실비아가 외쳤다. “올리버. 당신까지 거짓말 하는건 아니죠?”


“아니야. 소식지에서 봤다고. 한 달 하고도 삼일 전, 소식지 경매 칸에 있었어. 밧줄의 약. 낙찰가 금화 팔십 닢이라고. 무슨 원형 경기장의 유명 검투사가 그 약을 마시고, 사자 두마리와 뱀 한 마리, 곰 한마리와 동시에 싸웠다는군.”


“어머, 그래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에밀리아가 신기하다는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후작부인. 저는 연금술사는 아니고, 다만, 그 보조인 채집꾼일 뿐입니다만은, 펠릭스는 솜씨도 뛰어나고 좋은 재료로 약을 만드는 연금술사입니다. 그리고 약에 있어서는 아주 진지하고요. 만약, 그가 약값이 금화 백 닢이라고 말했다면, 분명 그 약에는 금화 백 닢의 가치는 충분히 있을겁니다.”


“금화 백닢이 얼마나 큰 돈인지는, 물론 알고 하시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펠릭스는 돈 말고 다른 것으로도 약값을 받으니까요. 그렇지, 펠릭스?”


펠릭스는 조금 얼굴을 찌푸리며 못마땅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 그런 건 제가 직접, 원하는 시기에 말하고 싶은데요.”


“넌 너무 극적인 상황을 노리잖아. 이런 상황에서는, 쓸데없이 위험을 자초하는 버릇이라고.” 올리버는 허리를 숙여 펠릭스의 귓가에 대고 속닥거린다음, 다시 웃는 얼굴로 에밀리아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이제 오해는 다 풀리셨습니까?”


에밀리아는 아까보다는 훨씬 온화한 표정을 짓고, 웃으며 말했다.


“오해는 풀린것 같지만, 그래도 금화 백 닢을 선뜻 내줄 수는 없어요. 제가 본 적도 없는 약값으로.”


“언니. 그러니까,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실비아. 가만있어.” 에밀리아가 말하자, 실비아는 다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두 분 모두, 건전한 사고와 이성을 갖고 계시다면,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해 주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그래요!”


줄곧 혼자 얼굴을 찌푸린채 무언가 생각을 하던 펠릭스는, 갑자기 무언가 깨달은 사람처럼 외쳤다.


“좋아요. 당신 말이 맞아요, 에밀리아. 그래요. 약값을 내기 싫다면 안 내면 그만인거죠. 아무튼,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후작부인. 그럼, 올리버. 우리도 슬슬 돌아가죠. 여기 계속 있다가는 냄새나는 서커스 극단원들과 같이 꼬박 밤을 지세울지도 모르니까.”


“그래? 뭐, 그렇기는 하지.”


올리버는 뒤로 돌아서서 몇 발자국 걸어다가다, 문득 제자리에 멈춰서 의아하다는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볼일이 남아있나요?”


“아니,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올리버는 실비아를 곁눈질했다. 그녀는 에밀리아의 옆에 여전히 붙은 채, 따라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올리버는 어깨를 으쓱한 다음, 에밀리아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펠릭스를 뒤따라 걸어갔다.




“무슨 꿍꿍이야?”


완전히 어둠이 내린 밤나무 숲의 오솔길을 걸으며 올리버가 말했다.


“그 잘난 귀족들은 체면 구기고는 못 배기죠. 약값을 의심하든 말든, 결국 한 번은 저를 찾아오게 될 걸요?”


“누구, 후작 부인이?”


“그래요!” 펠릭스가 갑자기 외치자, 어두컴컴한 덤불에 숨어있던 짐승이 깜짝 놀란 것인지, 덤불이 들썩였다.


“그런다고 금화를······”


“뭐, 사실 전 약값은 벌써 받았어요.” 펠릭스가 말했다.


“뭐? 언제?”


“올리버, 당신이 아까 후작부인한테 말했잖아요. 저는 돈 말고 다른 걸로도 약값을 받는다고.”


“네 마음에 들 만한게 있었나?”


“있었어요. 사실, 꽤 괜찮았다고 볼 수 있죠.”


“또 혼자만 아는 말을 중얼거리는군.”


“그러니까, 실비아가 얼마나 똑똑하고 재능이 넘치며 쓸만한 사람인지 확인했어요. 그래요. 그녀는 금화 백닢의 약값을 하는 사람이라, 이거죠.”


“그래? 뭐, 약을 만드는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만이긴 하지만······” 올리버는 다시 문득 서서, 아무것도 없는 텅빈 오솔길을 뒤돌아보았다. “안 따라오네.”


“자기 언니를 만났는데, 왜 우릴 따라오겠어요?”


“그건 그렇네. 그렇지만, 그냥 좀 어딘가 허전해서.”


“허전할 때긴 하죠. 올리버. 당신도 나이가 벌써 사십 줄인데, 결혼은 커녕 여자와 손도 못 잡아 봤으니.”


“펠릭스. 너무 놀리지는 말아줘.”


“네네. 아무렴요.”


행복의 연금술 가게의 차게 식은 나무문을 벌컥 잡아열며 펠릭스가 말했다. 그와 올리버는 평소와 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가게를 잠깐 정리하고, 잘 준비를 마친 다음 가게의 조명을 모두 껐다.

그러나 한 밤중에, 문득 거실로 나온 올리버는 소파위에 여전히 널부러진 담요를 보고 조금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는 그 담요를 집어들고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담요를 탈탈 털고 가지런히 접어 소파위에 올려둔 다음에야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행복의 연금술 가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3 53화 21.11.03 28 1 25쪽
52 52화 21.11.02 25 1 16쪽
51 51화 21.11.02 23 1 18쪽
50 50화 21.11.01 25 1 19쪽
49 49화 21.11.01 24 1 21쪽
48 48화 21.10.31 29 1 34쪽
47 47화 21.10.31 26 1 25쪽
46 46화 21.10.30 25 1 21쪽
45 45화 21.10.30 27 1 31쪽
44 44화 21.10.29 27 1 23쪽
43 43화 21.10.29 24 1 18쪽
42 42화 21.10.28 28 1 23쪽
41 41화 21.10.28 27 1 23쪽
40 40화 21.10.27 28 1 21쪽
39 39화 21.10.27 25 1 21쪽
38 38화 21.10.26 25 1 19쪽
» 37화 21.10.26 23 1 19쪽
36 36화 21.10.25 31 1 21쪽
35 35화 21.10.25 25 1 23쪽
34 34화 21.10.24 27 1 21쪽
33 33화 21.10.24 25 1 21쪽
32 32화 21.10.23 31 1 23쪽
31 31화 21.10.23 27 1 19쪽
30 30화 21.10.22 31 1 19쪽
29 29화 21.10.22 28 1 27쪽
28 28화 21.10.21 28 1 16쪽
27 27화 21.10.21 29 1 30쪽
26 26화 21.10.20 30 1 19쪽
25 25화 21.10.20 27 1 28쪽
24 24화 21.10.19 31 1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