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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조회수 :
6,052
추천수 :
188
글자수 :
1,774,925

작성
21.10.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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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46화

DUMMY

아침 식사시간이 되었는데도, 올리버는 영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기다리다못한 펠릭스는, 결국 그의 방으로 쳐들어가 침대에 파묻힌 올리버를 흔들어 깨웠다.


“올리버. 일어나요, 이 잠꾸러기 같으니.”


“으.” 올리버의 숨에는, 와인 냄새가 아직까지 베어 있었다.


“얼마나 마셨어요?”


“몰라. 머리가 깨질 것 같아. 펠릭스. 술 깨는 약좀 만들어 줘.”


“숙취해소제는, 품이 많이 들어요! 잔말말고, 자. 물이나 마셔요. 술 깨는데는 그게 최고니까.”


“으으, 그 딜런이라는 애송이. 얼마나 술이 센거야?” 겨우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세우고, 있는대로 얼굴을 구기며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당신 나이도 생각해야죠. 딜런은 한창 젊은 나이인데, 당신은 이제 나뭇가지에 간당간당 겨우 붙어있는 낙엽 꼴이라고요.”


“정말, 그래야겠어. 어휴. 끔찍하군.”




그래서 펠릭스가 겨우 정신을 차린 올리버를 데리고 아침식사 테이블로 갔을 때는, 이미 에밀리아 콘월은 먼저 식사를 마치고 돌아간듯 보였다.


“차라리, 잘 됐군요.”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며 펠릭스가 중얼거렸다.


“왜?”


“에밀리아가 봤으면, 술냄새가 난다고 뭐라 그러지 않았겠어요? 그러면, 어제 우리가 딜런한테 이것저것 캐물은 것까지 알아챌지 모르잖아요.”


“그건 그렇군. 다행이야.” 크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며, 뻑적지근한 몸을 풀고나서 올리버가 말했다. “그래서, 뭐 쓸만한 건 좀 있었어?”


“꽤 모았어요. 이제, 에밀리아 콘월에 대해서는 대강 파악이 돼요.”


“그래?” 올리버는 눈을 끔뻑이고 입맛을 다셨다. “난, 여전히 모르겠는데.”


“그렇겠죠. 하여튼, 이제 실비아만 남았군요. 올리버. 당신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몰라.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글쎄요.”


하인들은 곧 접시에 빵과 버터, 잼, 치즈, 크림을 담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사라졌다.


“실비아를 설득한다든가, 뭐 그런거 생각해 둔 건 없어?”


“제가 끼어들 일은 아닌것 같아서요.”


빵에 버터를 바르며 펠릭스가 말했다.


“실비아가 다시 돌아올까?”


“있어보면 알겠죠.”


“난,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맨 빵을 씹으며 올리버가 말했다. “사실, 너랑 실비아가 티격태격하는걸 옆에서 보고 있으면, 꽤 재밌거든.”


“어련하겠어요. 그 말괄량이 아가씨 같으니. 툭하면 시비에, 뭐만 하면 손부터 올라가니. 귀족 가문의 딸이라는데, 기품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죠. 하는 일만 보자면, 아직도 순 천진난만한 어린애에요.”


그 때, 식당의 문이 열리며, 아직 잠이 덜 깬 표정의 실비아가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녀는 길다란 식당 테이블의 한 절반 정도 온 다음에야, 먼저 와서 식사를 하고있던 펠릭스와 올리버를 발견했다.


“좋은아침.”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려 작게 하품을 한 다음 실비아가 말했다.


“여기도 늦잠꾸러기가 한 명 있군요.”


“뭐 어때요. 미녀는 잠꾸러기라고요.”


“동화적인 표현이군요.” 남은 빵조각을 모조리 입 안에 털어넣으며 펠릭스가 말했다.


“그래서, 약은 잘 돼 가요?” 펠릭스의 맞은편에 가 앉으며 실비아가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하인이 접시 위에 음식을 담아왔다. 그러나, 실비아의 아침식사 접시는 두 개 였는데, 다른 하나에는 예쁜 모양으로 잘라낸 과일들이 담겨있었다.


“차별 대우로군.” 펠릭스가 과일 접시를 보며 중얼거렸다.


“먹고싶으면 먹든가요. 하여튼, 언니도. 자두는 이제 제철도 지났는데. 그리고, 나도 어릴때 이후로는 먹지도 않고.”


“왜 안 먹어요?” 벌써 자두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펠릭스가 물었다.


“그냥요. 어릴 때는 좋아했는데, 언젠가부터 안 먹게 되더라고요. 뭔가, 이유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실비아는 빵 위에 달콤한 잼을 바른 다름, 한입 작게 베어물었다.


“뭐, 그래서. 실비아.” 손을 냅킨에 슥슥 닦고나서 펠릭스가 말했다. “저는, 아마 내일 아침이면 모든 약을 완성할 겁니다.”


“다행이네요.”


“그리고, 그 길로 콘월 저택을 떠날겁니다.”


“그래야겠죠. 볼일도 없이, 귀족 저택에 계속 머물수는 없으니까요.”


“당신은, 언제 돌아올 거죠?”


실비아의 움직임이 일순간에 멈췄다.


“실비아. 뭔가 이유가 있어서 언니를 따라 언니네 집으로 온 거죠?”


실비아는 잠시 멈칫하며 대답했다.


“언니가 저를 끌고 온 거에요.”


“당신은 거부할 수 있었어요.”


실비아는 대답하지 않고, 들었던 빵 조각을 조용히 접시에 내려놓았다.


“아무튼, 무슨 이유든 간에, 오늘 안으로 해결해 줬으면 해요.”


“왜요?”


“언제까지고 연금술 가게를 비워둘 생각은 없으니까요. 이제 슬슬 가게로 돌아가서, 가게 문을 열고 싶거든요.” 펠릭스가 대답했다.


“저랑, 계약 했잖아요. 제 약을 완성할 때까지는, 가게를 비워준다면서요.”


“같이, 같은 장소에서, 재료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게 계약내용 이었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같이 있지도 않고, 엄밀히 따지면 같은 장소에 있지도 않으며, 당신 약에 쓸 재료를 찾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도 않아요. 그러면, 계약은 파기해야죠.”


“너무 멋대로 아니에요?”


“사실이 그렇잖아요? 실비아. 당신, 약을 만드는 모험. 계속 할 생각이 남아있나요?”


실비아는 완전히 입맛이 달아난듯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든 간에, 이 콘월 후작······”


“언니네 집이에요!”


펠릭스는 웃으며 다시 말했다.


“언니분과, 뭐가 됐든, 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돌아오든가 말든가 다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죠. 그리고 저는,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아요. 내일 아침이에요. 기억해요. 그럼, 이만 가죠 올리버.”


“아, 그래.”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 밖으로 가다말고, 슬쩍 실비아를 뒤돌아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아까와 같은 자세로 굳어있었다.


“안 따라와요?”


“먼저 가.”


올리버는 거기서 걸음을 돌려, 실비아의 곁으로 다가왔다.


“저기, 실비아. 나는, 사실 말솜씨가 좋지는 않거든. 그렇지만, 내 없는 말솜씨로나마 한 마디만 주제넘게 말하자면.” 올리버는 쑥스러운듯 헛기침을 했다. “나는, 네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네가 없는 연금술 가게는, 이제 너무 허전하더라고.”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실비아의 곁에 잠시 서 있던 올리버는, 결국 걸음을 돌려 식당을 빠져나왔다.




한참동안 굳어있던 실비아는, 어느 순간 다시 태엽이 감긴 인형처럼 기계적으로 식사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식당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 실비아는 먹던 빵을 내려놓고 문쪽을 돌아보았다. 에밀리아가 웃으며 인사를 해 오자, 실비아도 웃으며 인사를 하고 도로 빵조각을 집어들었다.


“실비아. 좋은 아침이야.”


우아하게, 소리없이 식당을 가로질러 에밀리아는 실비아의 맞은편에 가 앉았다.


“좋은아침.”


“여전히 빵에 잼을 바르는구나?”


“난 이게 좋은걸.”


실비아는 막 잼을 바른 빵조각을 숨기려는듯 한 입에 다 집어넣고 우물거렸다. 그녀의 입에 비해 빵조각이 조금 컸던 탓에, 그녀의 얼굴은 볼이 빵빵해진 다람쥐같은 꼴이 되고 말았다.


“천천히 먹어. 그리고, 다음에는 버터를 발라 먹어봐.”


“왜?”


“빵에 버터를 바르면, 본연의 맛이 더 잘 살아나거든. 조금 더 어른스러운 맛이라고 해야하나?”


“그럼 잼은, 애들 맛이고?”


에밀리아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너도 어른이 되어야지.”


“충분히 어른인걸!” 먹던 빵 덩어리를 꿀꺽 삼키고 실비아가 말했다. “그리고, 빵에 버터를 바른다고 어른이 되는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래. 하지만, 단 것 너무 많이 먹으면 안 좋아.”


“훈계는. 내가 알아서 해 언니.”


“그래. 그래야지. 어머, 자두를 먹었네?”


에밀리아는 고개를 돌리다가, 펠릭스가 집어먹어 뻥 뚫린 접시의 빈 공간을 보며 말했다.


“내가 먹은거 아냐.”


“아니야?”


“그래. 그 연금술사가 집어먹었어. 과일 접시를 보더니, 대뜸 차별 대우라길래. 내가 그런 거 아니라는 뜻에서 마음대로 먹으라고 했지. 잘했지? 꽤 어른스럽지 않아?”


에밀리아는 그저 웃기만 했다.


“실비아. 어릴 때는, 자두 좋아했잖아. 그런데, 왜 이제는 안 먹는거야?”


“나도 몰라. 아까, 연금술사도 같은걸 묻더라.”


“그래? 그 사람 이름이, 펠릭스라고 했던가?”


“맞아.” 다시 새로운 빵조각을 집어들고 잼을 바르려다가, 실비아는 멈칫했다. 그러자 에밀리아가 웃으며 말했다.


“잼 발라도 돼. 우리끼리 있는데 뭘. 그래도, 나중에는 버터 발라야 돼? 조금 더 어른스러운 식사 자리라든가···...”


그러자 실비아는 반항하듯 버터를 빵에 치덕치덕 바른 다음, 거칠게 물어 뜯었다.


“그래. 버터 발랐구나. 맛있지?”


“몰라.”


빵을 몇번 씹지도 않고, 실비아는 꿀꺽 삼킨 다음 물잔을 집어들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서.” 화제를 돌리며, 에밀리아가 말했다. “그 펠릭스라는 연금술사 말이야. 실비아. 너랑 어떤 사이야?”


실비아는 그게 대체 무슨 질문이냐는듯, 눈을 둥그렇게 뜨고 깜빡이며 언니를 보았다.


“왜 그런걸 물어?”


“어제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 사람이 이렇게 말 하던데.”


“뭐라그랬는데?” 조금 걱정스런 목소리로, 실비아가 물었다.


“너랑 머지않은 장래에 결혼할거라고.”


“펠릭스!!!” 실비아가 대번에 소리쳤다. “어떻게, 그딴 말을! 언니. 그런거 아냐. 그건, 그 사람이 제멋대로 장난친거야. 아니, 무슨 그런 말을 어떻게······”


“나도 알아 실비아. 얼굴에 뻔히 거짓말이라고 써 있던데 뭘.” 실비아를 달래며 에밀리아가 말했다.


“언니. 이해해줘서 다행이야. 그 사람, 제멋대로거든. 나한테 무례하게 굴고, 귀족 앞이라고 굽히는 법도 없어. 세상에, 그리고 겁도 없어서 무슨 위험천만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인다니까?”


“괜찮은 사람 맞아?”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에밀리아가 물었다. 그러자, 실비아는 앗차 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야. 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봤는데, 그 사람은 아무리 이상한 의뢰를 받아도 항상 최선을 다하거든. 자기 죽은 애완견을 살려달라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끝까지 그 이상한 장난에 어울려줬어. 나같았으면, 장난치지 말라고 당장 쫓아냈을텐데도.


그리고, 곧잘 약을 만드는데, 그게 굉장히 신기하고 멋있어. 가끔 장난도 심하게 치지만, 할 때는 하는 사람이야. 전에 마을에 큰 불이 난 적이 있었는데, 세상에, 솥 안에서 먹구름을 피워올리더니, 정말 마을 하늘위를 가득 뒤덮고는 비를 퍼붓더라니까!”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실비아는 펠릭스와의 모험담을 말하기 시작했다.


“대단하네.”


“맞아! 어디 끌려가 갇힌 적도 있었어. 골든포트까지 갔었는데, 조금 위험한 일에 휘말린거야. 따지고 보면, 그것도 그 펠릭스 때문이지만.


그런데, 똑똑한 다람쥐 코튼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도 있었어. 제 주인의 손을 꽁꽁 묶은 밧줄을 앞니로 사각사각 갉는데, 어찌가 똘똘하고 귀여워 보이던지. 그리고, 또, 물 속으로 들어가 본 적도 있다? 세상에, 거긴 진짜 직접 눈으로 봐야되는데···...”


에밀리아는 흥에 겨워 모험담을 늘어놓는 실비아를 가만히 보았다. 에밀리아의 얼굴 위에, 처음으로 그녀의 진심이 드러나 보였다. 부러움과 질투, 걱정이 복잡하게 섞인 쓸쓸한 눈으로, 에밀리아는 잔뜩 신이 난 실비아의 모험담을 가만히 들었다.


“실비아. 대단한 연금술사를 만났구나.”


“응.” 조금 뿌듯하게 실비아가 대답했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 끝낼거니?”


“응?”


“언젠가는 끝내야지.” 에밀리아가 여전히 조금 쓸쓸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했다. “실비아. 너도 슬슬 집으로 돌아가야지. 가서 결혼을 하고, 그리고······”


“언니!” 실비아가 에밀리아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왜, 그런 말을 해? 왜 그렇게 말 하는거야?”


“현실이 그렇잖니, 실비아. 언제까지고 그렇게 꿈결처럼 살아갈 수는 없어.”


“하지만, 그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잖아! 그 사람은 모험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걸. 그 세상에는, 낭만이 가득해! 우리가 어릴 때, 머리를 맞대고 같이 읽었던 동화책처럼······.”


“실비아. 그는, 귀족이 아니잖아.”


에밀리아의 그 한 마디에, 실비아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우리는 그들과는 달라. 언제까지고, 낭만과 꿈에 젖어 살 수는 없어. 귀족은 귀족의 의무를 다해야지. 그러니, 실비아. 너도 그만 슬슬······”


“알아서 해!”


실비아는 먹던 빵을 거의 집어던지다시피하고, 성큼성큼 걸어 식당을 빠져나가버렸다.


“언젠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그리고 무슨 소란이 났나 싶어 부엌 문을 살짝 열고 하인이 살펴보러 온 줄도 모르고, 멍한 얼굴로, 눈에 조금 눈물까지 맺힌 채로, 에밀리아는 혼자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아침을 먹기에는 너무 늦은, 그러나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에, 펠릭스와 에밀리아는 응접실에 마주 앉아 있었다.


“약입니다.”


온 저택에 가득 드리운 먹구름과, 그 먹구름보다 조금 더 무거운 공기를 뚫고, 펠릭스는 시답잖은 웃음을 지으며 에밀리아에게 당근같은 주황빛의 약물을 내밀었다.


“무슨 약이죠?”


“가축들에게 먹일 구충제입니다. 한끼 분 사료에 섞어주면 됩니다.”


“고마워요.” 멍한 얼굴로 에밀리아가 약병을 받아들었다.


“별 말씀을.”


에밀리아는 멍한 눈을 돌려, 펠릭스를 보았다.


“당신은, 정말 제가 원하는 약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만들어 주는군요.”


“당연히 해야할 일입니다.”


“다른 연금술사들이나 약사들은, 말이 너무 많아요.” 조금 쓸쓸하게 웃으며 에밀리아가 말했다 “약을 다른 목적으로 쓰면 안된다는둥, 사람에게 위해를 끼칠 만 한 약은 함부로 만들어 줄 수 없다는 둥······”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끝까지 자세한 사정은 묻지도 않는군요. 겨울이 다가오는데 제초제를 주문하는 이유에 대해서도요.”


“물론이죠.”


“쥐약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 주고요.”


“제 일이니까요.”


“당신은, 정말 저와 같은 사람이 맞나요?”


뜬금없이 날아드는 다소 무례한 에밀리아의 질문에도, 펠릭스는 실없이 웃으며 가볍게 대답했다.


“꽤 철학적인 질문이군요.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존재할까요? 당신 생각은 어떻죠, 올리버?”


“응? 나? 나야, 모르지. 뭐, 잘 찾아보면 어딘가 한명쯤은 있지 않겠어? 세상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그렇다는군요. 당신 생각은?”


에밀리아는 멍하니 있다가, 쓸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부인. 아마 저와 당신은 같은 사람이 아닌가봅니다.”


“그렇군요. 고마워요. 후련하네요.”


“해서, 부인. 이제 약은 두 가지 남았습니다. 하나는 살충제고, 다른 하나는 고엽제입니다. 어떤 것을 먼저 만들어 드릴까요?”


“당신 마음대로 해 주세요.”


에밀리아는 이제 약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듯 했다.


“그렇다면야. 알겠습니다.”


“저기, 펠릭스라고 했죠?”


“네.”


“당신. 아침에 실비아와 식당에서 만났다던데요.”


“그렇습니다. 아, 혹시 문제가 되었을까요?”


“아니오, 아니에요.” 힘없이 웃으며 에밀리아가 말했다. “그냥, 하나 여쭤보고 싶은게 있어서요.”


“네. 말씀하십시오, 부인.”


“자두를 먹은게 당신이라는데요.”


“그렇습니다. 아, 혹시, 제가 감히 건드려선 안 될······”


“아니에요. 자두일 뿐인걸요.”


“그렇다니 다행입니다만. 가끔, 있거든요. 그런 사소하고 쓸데없는 일에 열을 올리는 귀족들이.” 펠릭스가 웃으며 농담하듯 말했다. 그러나 에밀리아는 그의 농담을 제대로 듣지도 않은 것 같았다.


“혹시, 펠릭스 선생님. 실비아가, 왜 자두를 안 먹는지, 그 이유를 말하던가요?”


“아니오.” 펠릭스는 사실대로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에밀리아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런가요?”


“네. 별다른 이유는 말 안하던데요. 그냥, 어느 순간에부턴가 안 먹게 되었다고. 그게 다였습니다. 자기도 정확한 계기를 떠올리지 못하더군요.”


“그렇군요. 정말, 자두를 좋아하는 아이였거든요. 실비아가 일곱 살 때인가, 같이 자두 농장에 놀러가서 손으로 자두를 따 먹곤 했는데. 온 손과 얼굴에 과즙을 묻히고, 까르르 웃으면서······”


“아름다운 추억이군요.”


“그래요. 저도 자두를 좋아했거든요. 결혼식 피로연에, 요리사가 커다란 자두 파이를 만들어 왔어요. 다들 맛있게 나눠먹었지요. 다만······”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에밀리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제가 별 말을 다 하네요. 아무튼, 약은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 저기. 선생님.”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에밀리아가 다시 펠릭스를 불렀다. “실비아에게 들었어요. 그야말로, 별의 별 약을 다 만들었다시더군요? 꿈의 약, 숨 참는 약, 비구름을 만드는 약에······”


“연금술사니까요.”


“그럼, 혹시 이번 일이 끝나거든. 제가 새로운 약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건 그때가서 이야기해 보죠. 하지만, 분명하게 말씀드리자면.” 펠릭스는 아주 당당한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제가 못 만드는 약은, 누구도 못 만드는 약이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고마워요. 그럼, 저는 이만.”


그리고 오늘따라 유난히도 감정이 묻어나는 걸음걸이로, 에밀리아는 어딘가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먼저 응접실에서 나갔다.




“에밀리아 콘월에게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걸까?”


솥을 휘적이는 펠릭스 옆에 앉아, 올리버는 작업대 위에 꿈치를 올려놓고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모르죠. 어쩌면, 제가 실비아한테 한 소리 한 덕분에, 실비아가 자기 언니랑 싸웠을지도. 그래서 답지않게 풀죽었는지도 모르죠.”


“그러게. 그러고보니, 실비아가 찾아오지도 않네. 뭐, 감시를 하네 마네 조잘거리더니.” 조금 아쉽다는 투로,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허전하긴 하군요.”


“그렇지?”


“그러게요. 정말, 수다스럽고 소란스러운 아가씨였어요. 갑자기 사라지니, 온 세상이 조용하군요.”


“그러게말야.” 올리버는 여전히 턱을 괴고 멍하니 작업실의 창문 밖을 내다보다가,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펠릭스. 에밀리아 콘월은 어떤 사람인것 같아?”


“위험천만한 사람이요.”


“어떤 점에서?”


“독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에서요.” 펠릭스가 대답했다.


“역시, 그래?” 올리버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초제, 살충제, 쥐약, 구충제, 고엽제의 공통점이 뭐겠어요?”


“잘못 먹으면 죽는다는것.”


“봐요. 당신도 알아차릴 정도잖아요?” 펠릭스는 씩 웃으며 말했지만, 올리버의 눈은 그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왜 그런걸 부탁하는걸까?”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렇겠죠. 아니고서야, 한겨울에 살충제, 제초제, 고엽제를 찾을 리가 있나요?”


“부엌에는 쥐도 없고, 가축들은 건강한데 말야.”


“마당의 풀도 잔디였죠. 잡초가 아니에요. 종이 조금 다른, 그리고 햇볕이 부족해 조금 웃자란 잔디일 뿐이에요.”


“그래. 맞아. 그렇지만, 정말로 독살을 계획했을까?”


“네. 저는 이제 확신합니다.” 펠릭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어째서?”


“이 작업실. 안에 소각로가 있다고 했잖아요? 소각로 안에 관이 어디까지 연결되어있나 봤는데, 마당으로 이어져 있더군요.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서 짐승 뼈를 찾았어요.”


“무슨 뼈?”


“토끼랑 쥐. 올리버 당신이 본다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겠죠. 아마 약을 실험하는데 쓰고, 그 사체를 남몰래 불태워 흔적을 없앤거겠죠.”


“그렇게까지 해서, 누군가를 독살하고 싶었던걸까? 나쁜 사람 처럼 보이지는 않던데.”


“올리버! 당신이 말했잖아요?” 펠릭스가 올리버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기 딴에는 잘 한다고 한 일이,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있다면서요. 마찬가지겠죠. 딱히 나쁜 사람이라서, 누군가를 독살할 마음을 품는게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만······”


“그래요. 남의 속사정까지 알 수는 없죠. 딜런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긴 했지만, 결국 자세한 사정은 그도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제 약으로는 아무도 독살하지 못할 겁니다. 처음부터 의심이 가서, 일부러 사람 죽이기에는 부적합하게 만드느라 하나하나 유별나게 애쓴 것들이니까요.”


“이럴 때는, 네가 조금 이상하긴 해도, 실력이 뛰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펠릭스.”


“그래요. 조금 더 솔직하게 칭찬해도 돼요, 올리버.”


잡담을 끝마친 펠릭스는 다시 솥 안을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휘적휘적 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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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화 21.10.30 27 1 31쪽
44 44화 21.10.29 27 1 23쪽
43 43화 21.10.29 24 1 18쪽
42 42화 21.10.28 28 1 23쪽
41 41화 21.10.28 27 1 23쪽
40 40화 21.10.27 28 1 21쪽
39 39화 21.10.27 25 1 21쪽
38 38화 21.10.26 25 1 19쪽
37 37화 21.10.26 23 1 19쪽
36 36화 21.10.25 31 1 21쪽
35 35화 21.10.25 25 1 23쪽
34 34화 21.10.24 27 1 21쪽
33 33화 21.10.24 25 1 21쪽
32 32화 21.10.23 31 1 23쪽
31 31화 21.10.23 27 1 19쪽
30 30화 21.10.22 31 1 19쪽
29 29화 21.10.22 28 1 27쪽
28 28화 21.10.21 28 1 16쪽
27 27화 21.10.21 29 1 30쪽
26 26화 21.10.20 30 1 19쪽
25 25화 21.10.20 27 1 28쪽
24 24화 21.10.19 31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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