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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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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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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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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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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34화

DUMMY

공중그네 묘기꾼 폴라는 실비아에게 서커스 극단의 일들에 대해 설명해주는가 싶더니, 어느순간부터는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소녀들의 잡담을 나누었다. 어느 마을에 갔더니 무슨 볼거리가 있더라. 어느 도시에 갔더니, 명물로 파는 과일 잼을 바른 빵이 맛있다더라. 또는, 어느 마을에 갔더니 빼어난 외모의 청년이 있어 가슴이 두근거리더라. 공중그네를 타다가, 그네에서 손을 놓고 공중제비를 도는 동안에, 관객석에서 누군가와 눈이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게 하필이면 그 잘생긴 총각이여서 깜빡 그네를 놓칠뻔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실비아도 어느새 평범한 마을 소녀처럼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깜짝 놀랐겠어요!”


“그래도, 그 때는 파트너가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좋은 사람이었는데, 어느 마을에서 결혼하겠다고 극단에서 나가버렸지 뭐에요.”


“그렇군요. 좋은 사람들은 항상 빨리 곁을 떠나곤 하죠.”


“그래요.” 쓸쓸하게 웃으며 말하는 실비아의 옆에 앉아, 동의한다는 뜻으로 폴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방면에서 가장 불쌍한건, 아무래도 안나 씨일거예요.”


“안나요?”


“네. 불의 서커스를 하시는 분이요. 혹시, 만나보셨나요?”


“아, 네! 그런데, 그 분. 그러니까······”


“맞아요. 눈이 거의 안 보이셔요.” 폴라가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불의 열기에, 눈이 타버린 거겠죠.”


“그리고, 얼굴도······”


“맞아요. 그 화상 흉터는, 하루이틀사이에 생긴 것이 아니겠죠. 아마, 기구한 사연을 가진 것으로 따지자면, 우리 서커스 안에서는 일등이 아닐까 해요.”


“어떤 분이신데요?”


“저도, 잘은 몰라요. 가끔 소문을 들은게 전부거든요. 하지만, 단원들도 단장님도 안나 씨의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그렇게 말해요. 저 위험천만하고 아름다운 불의 서커스를 위해서,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않고 제 몸을 불사를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어떤 이유요?”


“불의 서커스는 아주 위험해요, 실비아. 그런데, 안나 씨는 그 위험한 걸 해 오면서 자기 몸을 전혀 아끼지를 않거든요. 오히려, 스스로 위험을 자처하고, 특히 위험한 묘기만 골라 부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을 정도에요. 그래서, 다들 막연히 그렇게 생각해요. 저 사람은, 정말 죽을 마음으로 무대 위에 오르는구나-하고.”


그 쓸쓸한 말을 듣고, 실비아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렇지만, 그 이상은 저도 몰라요. 그렇겠거니 하는거죠. 그리고, 알더라도 더이상 이야기 하는 것은 별로 고상하지 못한 일이겠죠.”


“그렇겠네요. 아, 저기. 저는 그럼 이제 슬슬······”


“아, 네. 약을 만들러 가셔야죠?”


“저는 아니고요.” 실비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어서 가 봐요. 제가 너무 시간을 뺏은게 아니었으면 하네요.”


“아니에요. 오랜만에 이야기 할 수 있어 좋았어요, 폴라. 진심으로 즐거웠어요.”


“고마워요.”


폴라의 배웅을 받으며, 실비아는 공중그네 타는 소녀의 천막을 빠져나와, 이번에는 펠릭스를 찾기 위해 수소문을 시작했다.




펠릭스를 찾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유랑 서커스 극단원들은, 낯선 손님이 극단 사이에 끼어들면 기분나쁠 정도로 그것을 잘 파악하곤 했다. 한두 마디 물어봤을 뿐인데도, 실비아는 펠릭스가 자리를 잡은 천막으로 곧장 찾아올 수 있었다.


“펠릭스. 시킨대로 해 왔어요.”


벌써 장작을 쌓고, 그 위에 솥을 걸어둔 펠릭스가 느긋하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잘 했어요.”


“네 종류의 약이 필요할 것 같아요. 우선, 맹수 조련사 로라는 재채기 감기가 있댔어요. 그리고 괴력의 사나이는, 기운이 완전히 빠져버려서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혼잣말만 중얼거리던데요.”


“골치아픈 손님이네요. 그래서, 뭘 원한다고 하던가요?”


“그냥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고 와버렸어요.”


“거 참!” 펠릭스가 히죽 웃었다. “실비아. 그럼 못써요. 그런 손님들은, 꼭 약을 만들어 줘도 나중에 툴툴거리고 짜증을 내면서, ‘언제 내가 이런 걸 만들어 달라고 했어?’ 따위 말이나 하면서 행패를 부리거든요.”


“그래요?”


깜짝 놀란 실비아를 보고, 펠릭스는 놀리듯 웃어준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요. 하지만, 오늘은 제가 처리할테니까, 다음부터는 신경 써요.”


“아, 네. 그리고, 불의 서커스를 하는 안나는······”


실비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죽음의 약 이야기를 해야할지 어떨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나는?”


“기침 감기가 난대요. 몸이 바싹 말라서 콧물도 눈물도 안난다고 하더군요.”


“그럴싸한 농담이군요. 그리고?”


“그리고, 공중그네 묘기꾼인 폴라는 발목이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네요.”


“삔 발목은 금방 안 나아요.”


“그러니 연금술사한테 부탁하는게 아니겠어요?”


“그것도 그렇지만. 그럼! 어디······”


펠릭스는 기지개를 쭉 켜고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좌우로 돌리며 풀기 시작했다.


“이제 약 만드려고요?”


“아니, 약 만드는 건 당신이에요, 실비아.”


“뭐라고요?”


“당신이 만들라고요.” 펠릭스는 태연하게 그녀에게 나무 국자를 내밀었다.


“제가 왜요?!”


“시간아깝잖아요.”


“뭐가요?”


“실비아.” 펠릭스가 다시 하품을 하며 말했다. “우리들은, 어쨌든 당신의 죽음의 약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찾던 중이었죠.”


“그래요.”


“그런데, 이곳 보름달 서커스는 재료 찾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에요.”


“그렇기는 하죠.”


“그러면, 멍하니 시간을 죽이기 보다는, 뭐라도 쓸만한 일을 하는게 좋지 않겠어요?”


“제가 약을 만드는게, 제 죽음의 약 재료랑 무슨 상관인데요?”


“마음가짐!”


펠릭스가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마음가짐이요. 약에 대한 마음가짐. 진지한 마음가짐.”


“마음가짐이라니······”


“처음 계약할 때, 제가 말했죠? 약에 대한 당신의 그 마음이, 어떤 재료 하나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그러니까. 그 마음이라는게 갑자기 툭 하고 생기지는 않을 것 아니에요? 자요. 한번 만들어 봐요.”


실비아는 머뭇거리다가 국자를 받아들고 솥 앞에 섰다.


“저기, 그런데 펠릭스. 그럼 이렇게 약을 만들고 하면, 그 마음이라는게 생기는 건가요?”


“그렇다고 봐야죠.”


“귀찮다고 대충 둘러대는거 아니죠?”


펠릭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펠릭스?”


“아마도요.”


“아마도라니요!” 국자를 솥 안에 픽 던지며 실비아가 말했다. “제대로 알려줘요!”


“생길거에요. 아마도.”


“두루뭉술하잖아요?”


“그야, 저는 그런거 생겨본 적이 없으니까요.” 펠릭스가 태연히 말했다.


“뭐라고요?” 배신감을 느끼며, 실비아가 두 눈을 흉흉하게 떴다. “펠릭스! 당신 지금······”


“그래요. 저는 그런 마음 가져본 적 없어요. 하지만, 제 동료들, 제가 만나본 사람들, 스승님이나 대스승님은 모두 약을 만들면서 자기 마음을 천천히 다스리던데요.”


“주변 사람을 파는거예요?”


“사실이 그렇다는 뜻이죠. 정 궁금하면 트로이한테 가서 물어보든가. 약을 만들때, 진지한 마음이 들더냐고 물어보면 될 일이죠.”


실비아는 어이가 없어, 얼빠진 얼굴로 펠릭스를 잠깐 보다가, 다시 말없이 국자를 집어들었다.


“오, 이해해준 건가요?”


“택도 없어요. 바랄걸 바라요, 펠릭스.”


“그런데도, 약을 만들어 주는건가요?”


“그래요. 당신같은 사람이 약을 만들게 놔 둘수가 없네요.”


“그건 무슨 뜻이죠?” 펠릭스가 눈을 슬쩍 가늘게 뜨며 말했지만, 실비아는 그의 눈을 보지 못한채 대답했다.


“그렇잖아요! 사람 마음같은 데는 조금도 관심없는 사람이, 약을 만들게 놔 둘 수가 없네요.”


“지금까지는 잘만 놔뒀으면서. 왜요, 극단 안에서 예상치 못하게 첫사랑이라도 찾았어요?”


“펠릭스!” 실비아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할 말 못할 말은 가려요!”


“아, 미안해요! 아, 국자 휘두르지 마요! 앗뜨거!” 화난 실비아의 공격에, 펠릭스는 도망치듯 천막 입구까지 달아났다. 여전히 씩씩거리며 펠릭스를 잠깐 노려보다가, 다시 솥에 국자를 풍덩 넣고 솥을 젓기 시작한 실비아를 저만치 떨어져서 쳐다보며, 펠릭스는 조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랬지만, 그는 실비아의 눈치를 살피며 몇 발짝 다가오다가, 결국 어느정도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저만치 떨어진채 그녀가 약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실비아의 첫번째 약이 완성되었다. 이번에도, 연보랏빛의 투명한 액체였다.


“뭘 만든거죠?”


“발목 삔데 좋은 약이요.”


솥에 남은 약을 거름종이에 아주 신중하게 거르며 실비아가 말했다.


“그런 것도 만들 줄 알았어요?”


“틈틈이 책을 봐 뒀거든요.”


“대단하네요. 그런데, 실비아.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뭔데요?”


막 다 걸러진 약을 마저 병에 담고 나서야, 실비아는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요.”


“무슨 시간이요?”


“당신. 솜씨는 제법 쓸만하지만, 속도가 너무 느려요.” 펠릭스가 실쭉 웃으며 말했다.


“아니, 약 만드는데 그정도 시간은 걸리는거 아니에요? 책에서도 기본 두세 시간은 다 쓰던데······”


“그런 속도로 만들면, 오늘 밤 공연 전까지 시간 못 맞춰요.”


“그럼 어떡해요?”


“제가 나서야죠.” 펠릭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은 못 따라할 비기가 있거든요.”


“뭔데요? 가르쳐줘요.”


“영업비밀이라. 아무튼, 그만 비켜줘요 실비아. 생각보다 너무 느려서 못 쓰겠어요.”


“뭐요?” 실비아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지자, 펠릭스는 뒤늦게 웃음으로 얼버무리려했다. “느려서, 못쓰겠어요?”


“아, 죄송. 말실수에요. 저기······”


“펠릭스! 당신, 진짜···”


“으악!” 실비아가 달려들자, 펠릭스는 다시 줄행랑을 쳤다. 막 천막 안으로 들어오려던 트로이는 쥐와 고양이처럼 천막 안을 빙빙 돌던 두 사람을 발견하고, 잠시 당황하여 서 있다가, 뒤늦게 복화술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희극인가!”


그 목소리에, 펠릭스와 실비아는 뒤늦게 움직임을 멈추고 트로이를 돌아보았다.


“트로이! 살려줘!”


“살아있잖아, 펠릭스.”


“아, 뭐. 그렇긴 하네.”


“무슨 일이야?” 펠릭스와 실비아를 번갈아 보며 트로이가 물었다.


“사소한 사고라고 할까, 별 일 아냐.”


“진심으로 그러길 바라지. 아무튼, 약은?”


“여기요. 폴라한테 줄 약이에요.” 실비아가 약을 내밀자, 트로이는 눈살을 찌푸리고 찬찬히 약병을 살폈다.


“이건······”


“어때, 괜찮지?” 갑자기 트로이의 어깨를 툭 치며 펠릭스가 끼어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을 짧은 순간, 펠릭스는 트로이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트로이는 헛기침을 하며 중얼거렸다.


“꽤 괜찮네. 색깔이···”


“사랑초를, 넣었거든요···”


실비아가 주저하며 말하자, 트로이는 알겠다는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약초를 좋아하시는군요.”


“아, 네···”


“자요, 이 약은, 직접 전해드리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펠릭스와 잠시 사업 이야기를 해야해서.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아, 네.” 실비아는 약병을 받아들고 쪼르르 천막 밖으로 빠져나갔다.


“제법이지?”


“제법이긴 한데.” 실비아가 빠져나간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며 트로이가 중얼거렸다. “저 약은, 먹어봤자 오늘 밤 공연에 쓸 만큼 발목이 낫지는 않을텐데.”


“그러니까. 그래도, 마음이 기특하지 않아?”


“뭐, 글쎄. 그래서, 펠릭스. 약은 어때?”


펠릭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없어?”


“방금 그게 다야.”


“이런.” 뒤통수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트로이가 말했다. “시간이, 조금 부족해 펠릭스.”


“나도 알아. 그래서 이제부턴 내가 직접 움직여야지.”


“그래?”


“그래. 나한테는 비장의 무기가 있잖아?” 펠릭스가 히죽 웃으며 말하자, 트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지. 그거······”


“그래. 나밖에 못하는 재주. 하지만, 보조는 좀 필요하겠어. 트로이. 혹시, 너만 괜찮으면······”


“아, 뭐 그정도야. 약 만드는 준비를 해 달라, 이거지?”


펠릭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트로이는 잠시 천막 밖으로 나가더니 조그만 솥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요리용 솥이야.” 묻지도 않은 것을, 트로이가 먼저 쑥스럽게 웃으며 실토했다. “하지만, 관리를 잘 했으니까, 약 만드는 보조하는데는 제법 쓸만할거야.”


“그래? 그렇다면야 뭐. 그럼, 트로이. 슬슬 시작해 볼까?”


트로이는 펠릭스의 솥 옆에 얕은 구덩이를 파고, 장작을 쌓아 솥을 건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작하자고 펠릭스.”


그리고 두 장작더미에 동시에 불이 붙었고, 두 연금술사의 눈에도 불이 붙었다.




약병을 들고 나온 실비아는 폴라의 천막으로 돌아갔다. 천막 입구에 서서, 잠시 심호흡을 한 다음, 실비아는 웃는 얼굴로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폴라!”


“아, 실비아.” 폴라는 읽고있던 조그만 책을 덮으며 실비아를 향해 웃었다.


“약 가져왔어요.”


“그래요? 고마워요.”


“여기요.” 실비아는 의기양양하게 방금 막 만든 약병을 폴라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폴라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약을 찬찬히 살폈다.


“연보랏빛이네요?”


“아, 제가 좋아하는 약초를 넣었거든요. 한번 마셔봐요.”


“네. 그럼.” 폴라는 약병의 뚜껑을 열었다. 퐁, 하는 경쾌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약의 냄새는 맡아본 볼라는, 다시 실비아를 향해 웃었다.


“향이 좋네요.”


“다행이에요. 그럼, 어서 마셔봐요.”


그리고 폴라는 살며시 약병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약을 마시기 시작했다.


“어때요?”


“달콤하네요?” 의외라는듯, 놀란 목소리로 폴라가 말했다. “이렇게 달콤한 약, 처음이에요.”


“다행이에요. 이상한 맛이 안 나서.” 그제서야 실비아도 안심했다는듯 한숨을 쉬었다. “이제, 괜찮을 거예요. 당신 발목.”


“고마워요 실비아.”


“아니에요.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인데요, 뭐.”


“그래도, 고마워요. 단장님 말고는, 이렇게 저한테 신경 써 주시는 분이 별로 없거든요. 당신이 같은 극단원이었다면, 제법 사이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아······”


쓸쓸한 목소리로 말하는 폴라를 보고, 실비아의 마음이 차게 가라앉았다.


“저기, 폴라. 저, 당신한테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뭔데요?”


폴라는 웃으며 물었다.


“저요. 공중그네 타 보는게 꿈이었어요.”


“그래요?”


“네. 저기, 만약 당신만 괜찮다면.” 고개를 들어 폴라와 두 눈을 마주친채, 실비아가 말했다. “저한테, 공중그네 타는 법을 알려주지 않겠어요?”


“저야 영광이죠. 하지만, 단장님 허락이 필요해요. 발목도 나아야 하고, 오늘 밤 공연도······”


“그렇지만, 해 주기는 할 거죠?”


“아, 네. 그래요.” 폴라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제가 영광이죠.”


“아니에요. 고마워요 폴라.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당신과 같이 공중그네 타는 날이 빨리 돌아오길 기다릴게요.”


“그래요. 저도 빨리 그날이 오면 좋겠네요.”


그렇게 두 사람은, 조금 어색하고 수줍은 미소를 주고받은 다음, 고개를 끄덕이며 그만 헤어졌다.




천막에 몸을 숨기고, 솥 안에다가 약을 만드는 두 사람의 연금술사의 얼굴에는, 형언하기 힘든 섬뜩한 웃음이 걸려있었다.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난다.”


트로이가 말했다. 자세히 보니, 그 웃음이 섬뜩해 보인 것은, 그저 불과 그림자가 만든 헛것에 불과했다. 그는 오히려 아주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게 웃고있었다.


“그래. 그 때는 자주 이렇게 나란히 서서 약을 만들곤 했지.”


“엄밀히 따지자면, 둥글게 서서 말야.”


“트집은.” 펠릭스가 재료를 풍덩 빠뜨리며 말했다.


“아무튼, 그러면 스승님은 이제 이솥 저솥을 기웃거리면서 한 소리씩 하시곤 했지.”


“맞아. 첼시보고는 재료 좀 아끼지 말라고 했고, 트로이 너한테는 기교를 부리지 말라고 했지.”


“메를린도 트집잡으시던 분이니까. 오죽하겠어? 그 연금술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스승님한테 아무 소리도 못 들은건, 펠릭스 너 뿐이었지.”


“맞아. 내 솥 앞에 오면, 그저 눈쌀을 잔뜩 찌푸리고는 한참 솥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영 못마땅한듯 크흠, 하고는 다른 솥으로 가버리셨어.”


국자로 솥 안의 내용물을 떠서 점도를 확인하며 펠릭스가 말했다.


“그래. 네 스승님은, 유난히도 너를 싫어하셨지. 왜그러셨을까?”


“글쎄.” 공허한 눈으로, 펠릭스가 중얼거렸다. “아, 트로이. 슬슬 시작해도 되겠어.”


“그래?”


“그래. 나밖에 못하는 재주. 트로이, 그쪽은 다 됐어?”


“그래. 자.” 트로이는 자기 솥 아래의 불을 끄고는, 두꺼운 장갑을 끼고 솥을 번쩍 들어올려 펠릭스의 커다란 솥 안에다가 내용물을 들이부었다.


“시작한다!”


유리병을 열고 빛나는 가루를 솥 안에 쏟아부은 다음, 장작의 불을 무섭게 키우며 펠릭스가 솥 안을 젓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로이는, 경외가 담긴 표정으로 그 옆에서서 펠릭스의 무시무시한 작업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보름달 서커스가 자리잡은 공터에도, 이제 슬슬 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직 저물지 못한 태양이 마지막 붉은 섬광을 내리쬐는동안에, 펠릭스의 약이 다 만들어 졌다.


“어때?”


“대단하네.” 서로다른 약이 담긴 세 개의 약병을 번갈아보며 트로이가 말했다.


“솥 안을 세 층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약을 동시에 끓이는 기술. 나밖에는 못해.”


“최고의 약효가 나오는건 아니지만 말야. 그런데, 펠릭스. 내가 보기에···”


“아, 맞아. 공중그네 타는 소녀의 약은 안 만들었어.”


“어째서지?”


트로이가 캐묻는듯한 말투로 물었다.


“내가 주문했잖아.”


“만들어 줬잖아.” 그러자 펠릭스가 대답했다.


“그 약을? 하지만, 펠릭스. 그걸 먹는다고 해서 폴라의 발목이 바로 낫지는 않아.”


“두고볼 일이지.”


“뭐?”


“트로이. 엘릭서 사건 기억안나?”


“그건, 그야······”


“그렇잖아. 또 모를 일이지. 두고봐도 괜찮지 않겠어?”


트로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펠릭스. 안 돼.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


“그래?”


“그래. 난 서커스 단장이야. 내가 일개 극단원이나, 연금술사였다면, 네 말마따나 한번 기다려 봤겠지. 하지만, 난 단장이야. 단원 한명 한명의 삶이 내 손 안에 달려있어. 난 그들의 삶에 책임을 져야해. 그런 내가, 오늘 밤처럼 큰 공연을 앞두고서 그런 위험한 모험을 할 수는 없어.”


“그렇다면야. 금방 하나 만들어줄게.”


“부탁해, 펠릭스.” 트로이는 잠시 천막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혀를 차며 돌아왔다. “펠릭스. 설마, 여기까지 예상했어?”


“우연이지. 난 시간 맞추는 재주는 없거든.”


“하긴. 그래도, 우연치곤 제법인데그래. 약 만들어지는 시간과 공연 순서를 생각해보면, 아마 폴라는 공연 직전에 약을 받아 먹겠군.”


솥에 물을 채우며 펠릭스가 웃었다.


“그렇겠지. 약효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그리고, 그녀의 긴장과 기대도 최고조에 이르렀을때.”


“그래. 뭐, 아무튼, 잘 부탁해 펠릭스.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물어봐. 뭐든지.”


“그 아가씨가 만든 약 때문에, 일부러 약을 새로 안 만들려고 한 거지? 그 아가씨한테 자신감을 좀 붙여주려고.”


“실비아야. 아가씨라고 불리는걸 싫어해.”


“그래, 아무튼 그 사람. 그렇게까지 신경써주는 이유가 있어? 평소같았으면, 그런 평범한 약은 있는대로 비웃어 준 다음, 네 솜씨로 멋들어지게 새 약을 만들어 냈을거 아냐?”


“그래. 근데, 그러면 실비아의 솜씨도 안 늘고, 마음가짐도 영영 지금처럼 같을 테니까.”


“그 사람을 키우는 이유가 있어?”


“있어.” 어둠 속에서 고개를 돌리고 펠릭스가 말했다. “어쩌면, 그 사람은 내 최고의 약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거든.”


“최고의 약? 최고의 솜씨를 가진 네가, 못 만드는 약이 있어?”


“있더라고.” 일렁이는 불길에 펠릭스의 얼굴이 이질적으로 빛났다.


“그렇다면야 뭐······”


“그래, 트로이. 그런거야. 아무튼, 보통 손님이 아니라서 특별 대우를 해 주고 있어.”


“그래도, 조금 다행이다 펠릭스.”


펠릭스에게 조금 가까이 다가오며 트로이가 말했다.


“뭐가?”


“난 네가, 정말 사람의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없는줄 알았거든.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것 같아서.”


“글쎄. 두고 볼 일이지.”


“어쨌든 말야. 그럼, 수고해줘 펠릭스. 난 이만, 처리해야할 서류가 남아있어서.”


“수고많았어, 트로이. 그리고, 네가 만든 약. 여전히 잘 만들었더라.”


트로이는 막 천막을 나가려다가, 우뚝 멈춰서서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솥 안에 집중하고 있어, 트로이는 그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것으로 만족한다는듯 미소를 머금은 채, 펠릭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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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1화 21.11.02 23 1 18쪽
50 50화 21.11.01 26 1 19쪽
49 49화 21.11.01 24 1 21쪽
48 48화 21.10.31 29 1 34쪽
47 47화 21.10.31 26 1 25쪽
46 46화 21.10.30 26 1 21쪽
45 45화 21.10.30 27 1 31쪽
44 44화 21.10.29 27 1 23쪽
43 43화 21.10.29 24 1 18쪽
42 42화 21.10.28 28 1 23쪽
41 41화 21.10.28 27 1 23쪽
40 40화 21.10.27 28 1 21쪽
39 39화 21.10.27 25 1 21쪽
38 38화 21.10.26 25 1 19쪽
37 37화 21.10.26 23 1 19쪽
36 36화 21.10.25 31 1 21쪽
35 35화 21.10.25 25 1 23쪽
» 34화 21.10.24 28 1 21쪽
33 33화 21.10.24 25 1 21쪽
32 32화 21.10.23 31 1 23쪽
31 31화 21.10.23 27 1 19쪽
30 30화 21.10.22 31 1 19쪽
29 29화 21.10.22 28 1 27쪽
28 28화 21.10.21 28 1 16쪽
27 27화 21.10.21 29 1 30쪽
26 26화 21.10.20 30 1 19쪽
25 25화 21.10.20 27 1 28쪽
24 24화 21.10.19 31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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