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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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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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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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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29화

DUMMY

조그만 어선을 타고 그들은 거대한 바다 위에서 파도를 따라 이리저리 넘실거리며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올리버는 바다가 무섭지도 않은 것인지, 새파랗다못해 시커먼 바다 멀리를 향해 돛을 조정하고 노를 저어갔다.


“떨려요?”


펠릭스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 어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실비아에게 슬며시 다가가 말했다.


“어지러워요.”


“뱃멀미인가요?”


“그럴지도요. 그냥, 바다 위에 떠있다는것 자체가 너무 이상해요.”


“뭐가 이상한데요.”


“잘못하면, 물에 빠져서 죽잖아요!”


실비아가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그만 너무 흥분을 해서인지, 그녀는 멀미가 올라와 헛구역질을 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런, 진정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멀미약이라도 만들어 둘 걸 그랬네.”


“하여튼, 도움이 안 되는군요 펠릭스. 대단한 연금술사라면...욱···”


“자, 자. 진정해요.”


펠릭스는 실비아의 등을 몇 번 정도 토닥여 준 다음, 슬슬 일어나 바다 위를 죽 둘러보았다.


“올리버. 좀 어때요?


“어떻긴. 물 밑이 어떤지는 나도 몰라. 나는 산과 숲, 들을 오가는 채집꾼이니까.”


“그럼 역시 직접 내려가볼 수밖에 없으려나···”


“그렇겠지.”


올리버는 태연하게 노를 저으며 대답했다.


“물 밖에서 물 속을 들여다 볼 만한 방법이라도 있는게 아니라면 말이야.”


펠릭스는 검게 출렁이는 바다의 두터운 장막을 슬쩍 내려보았다.


“그러고보니, 쓸만한 방법이 하나 있군요.”


“그래?”


“네. 뭐,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겠지만서도.”


그리고 펠릭스는 가방을 뒤져 망원경을 하나 꺼내들었다. 접힌 망원경을 쭉 펼치자 거의 길이가 1미터쯤 될 정도로 길어진 망원경을, 그는 태연하게 물 속으로 집어넣고 눈을 구멍에 갖다대었다.


“좀 보여?”


“보이긴 하네요. 아, 올리버. 북서쪽으로 노를 저어봐요. 그 아래에 있는것 같으니까.”


“내 참.” 노를 잠시 내려놓고 돛대의 방향을 조절하며 올리버가 말했다. “그렇게 준비성이 철저한데, 실비아가 먹을 멀미약이라도 하나 만들어 두지 그랬어.”


“아, 그건 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숨 참는 약을 만드는게 생각 이상으로 너무 재밌어서, 깜빡 잊었네요.”


“뭐 그렇다면야···”


올리버는 실비아를 곁눈질하는 펠릭스를 잠깐 쳐다보다가, 돛 조정이 끝나자 다시 그의 자리로 돌아가 조용히 노를 젓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그 비싼 망원경을 소금기가 가득한 바닷물 속으로 집어넣고도 아까운 기색이라고는 그의 얼굴표정 위에서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네. 올리버. 좋아요. 닻을 내리죠.”


“쬐끄만 닻이기는 하지만 말야.”


올리버는 배에 실려있던 추를 물 속으로 풍덩 빠뜨렸다. 그 바람에 작은 어선이 잠깐 기우뚱했지만, 금세 균형을 잡았다.


“꺅!”


그러나 멀미에 시달려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들었던 실비아는, 갑자기 배가 가라앉기라도 하는줄 알고 겁먹은 얼굴로 이쪽을 향해 어기적거리며 다가왔다.


“배, 배!”


“진정해요 실비아. 진정! 배는 괜찮아요. 닻을 내렸을 뿐이라고요. 내 참. 이럴 줄 알았으면 큰 배를 빌리는건데···”


“뭐예요, 우리, 가라앉는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멀쩡하잖아요?”


놀란 눈으로 잠시 주변을 둘러본 뒤에야, 실비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멀미는 괜찮나요?”


“덕분에요!” 갑자기 실비아는 화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좀, 알려주고 뭐라도 하면 어디 덧나요? 나는 진짜 갑자기 배가 암초에라도 부딪힌 줄 알았잖아요!”


“하하. 암초라니. 실비아. 왕국 남쪽 바다에는 암초가 별로 없어요.”


“아무튼, 있다는 뜻이잖아요! 멀미가 싹 달아날 정도로 깜짝놀랐네.”


실비아는 잠시 툴툴거리더니 뱃전에 풀썩 주저앉아, 화난 얼굴로 괜히 애먼 바다만 노려보았다.


“그래서, 펠릭스. 이제 어쩔거야?”


“그야, 밑으로 내려가서 다시-”


“인어의 머리칼!”


“인어의 머리칼을 캐 와야죠.”


“그러니까, 누가 내려갈건데?”


펠릭스는 당연한걸 묻는다는듯 눈을 깜빡이며 태연스레 올리버를 쳐다보았다.


“나?”


“당신, 채집꾼이잖아요.”


“그래. 그렇지. 하지만, 채집꾼은 바다에 뛰어들지는 않는데.”


“헤엄칠줄 안다면서요.”


“그야 그렇지. 하지만, 펠릭스. 나는 기껏해야 호수나 강에서 헤엄을 쳐 본게 다야. 그런데, 이건 커다란 바다로군.”


“올리버. 겁나나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래.”


그 말에, 펠릭스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안들리는척 하던 실비아까지도 동시에 풋, 하고 웃었다.


“그래요?”


“그래.”


올리버는 전혀 부끄러운 기색 없이 다시 대답했다.


“무섭다고.”


심지어는 덧붙여 강조하기까지 했다.


“괜찮을거예요. 그런 당신을 위해, 약을 만들어 왔으니까.”


펠릭스는 실비아와 함께 만들었던 그 연둣빛 약이 담긴 병을 꺼내들며 말했다.


“숨 참는 약이랬나? 정확한 효과가 뭐지?”


“말 그대로. 약을 먹으면 한동안 숨 쉴 필요가 없게 되어요. 폐에 공기를 불어넣어주는 신기한 약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어디까지나 가만히 있을 때를 기준으로. 그러니까, 수영같이 격렬한 운동을 하면, 효과는 한 오분? 그래요. 오 분 이상 지속되기는 힘들것 같군요.”


“잠깐잠깐.” 올리버가 펠릭스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펠릭스. 네 말을 요약해 보자고. 날더러, 이 효과도 잘 모르는 약을 마시고, 출렁이는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서, 그 다시마를···”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입을 가렸지만, 이쯤 되자 실비아도 그만 포기한듯했다. 그녀는 다만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먼 바다를 응시하며, 가끔 그 위로 지나가는 갈매기의 날갯짓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래, 아무튼 그걸 캐 오라고?”


“정확해요.”


올리버는 뒤통수를 거칠게 벅벅 긁었다.


“약 몇 병 있는데?”


“다섯 병이요. 하지만, 부작용을 고려해서 당신에게는 세 병 밖에 못 먹이겠는걸요.”


“세 병 씩이나. 그러니까, 최소한 세 번은 물 속으로 뛰어들라 이거지?”


“네.”


펠릭스는 태연하게 대답했고, 올리버는 잠시 뒷목을 쓰다듬었다.


“그래, 좋아.”


올리버는 돛을 접고 노를 갑판 위에 옮긴 다음,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뭐해요 올리버!”


그바람에 무슨 기척인가 싶어 아무생각없이 고개를 돌렸던 실비아는 깜짝 놀라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니, 그럼 옷 다 입고 물 속으로 들어가? 어쩔수 없어. 한창 나이에, 못 볼 꼴을 보여준 건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아니, 떠들 시간에 빨리 옷이나 입든가, 아니면 물 속으로 들어가든가 해요!”


“내 참. 펠릭스. 실비아가 이제 날 쫓아내려 드는군. 까짓 옷 좀 벗었다고 해서 말이야.”


“그거야, 당신 몸도 이제 슬슬 늙어서 탱탱하지도 않고 여기저기 쭈글쭈글해졌으니까요.”


“나름 애써 가꾼 몸인데.”


올리버는 바다 위에서 내리쬐는 태양볕에, 자신의 근육들을 이리저리 비춰보며 말했다.


“사실, 몸이 좋아봤자 얼굴이 안 되면 말짱 소용없다니까요.”


“아, 얼굴은 어쩔수 없지.”


“그렇죠. 당신 얼굴은 그야말로 세월을 직격으로···”


“계속 거기서 떠들고 놀 거예요!”


실비아가 다시 버럭 외치자, 올리버는 쓰게 웃으며 옷을 마저 벗어 고이 접어 한데 모아둔 다음, 펠릭스가 내민 약을 꿀꺽 삼켰다.




“추.”


펠릭스는 납을 달아둔 가죽 띠를 올리버에게 건넸다.


“줄.”


올리버가 띠를 허리에 차자, 펠릭스는 밧줄을 꺼내 올리버의 띠에 단단히 매듭을 묶었다.


“기억해요 올리버. 오 분이에요. 나도 시계를 보고 있을 테니까, 시간이 다 되어가면 줄을 당길게요. 세 번, 이 리듬으로.”


“그래. 하여튼, 물 속이라니. 거 어디 술집가서 안주거리 없어 술 못 마실 일은 없겠어.”


올리버는 혼자 툴툴거리며 뱃전에 올라선 다음, 크게 심호흡을 하고, 풍덩 소리를 내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거대한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내려갔어요?”


풍덩 소리가 들리고 나서도 한 십 초는 더 지나서야 실비아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은채 물었다.


“물론이죠.”


회중시계에 시선을 고정한 채 펠릭스가 대답을 하자, 그제서야 실비아는 눈을 가린 손가락의 틈 사이로, 이쪽을 힐끗거리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휴!”


마침내, 그녀는 두 손을 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깜짝 놀랐잖아요.”


“왜요. 사람 맨몸 처음 봐요?”


“아니, 외간남자 맨몸을 그렇게 갑자기 볼 줄은 몰랐죠!”


“봤어요?”


그 질문에, 실비아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아니, 안 봤거든요?”


“아깐 봤다면서요.”


실비아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렸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금새 화를 삭이고는, 갑자기 올리버가 불쌍해 죽겠다는 듯한 목소리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물 속으로 정말 뛰어들다니. 불쌍한 올리버. 별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당연히 별 일 없겠죠. 줄도 묶어뒀는걸.”


펠릭스는 그의 오른손에 감겨있는 밧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도, 물 속이잖아요. 얼마나 무섭겠어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짙은 어둠 속에서...”


“잠수 해 본적도 없다면서요.”


태연하게 웃으며 펠릭스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무시무시하잖아요! 그래요. 동화라든가, 전설이라든가, 어쩌면 범선보다 커다란 오징어가 그 빨판이 번들거리는 다리를 휘두르며······. 펠릭스. 당신, 내 말 안 듣고 있죠?”


“아, 들켰다.”


“펠릭스! 나 혼자 실컷 떠든 꼴이잖아요!”




실비아는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다시 바다 저 멀리를 쳐다보다가, 입이 근질근질한지 펠릭스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이런 것도 꽤 좋은걸요.”


먼저 펠릭스가 입을 열자, 그녀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어떤 부분이요?”


“조용하게 기다리고 있는 거요. 예전에, 올리버랑 둘이서 가게에 있을 때는 자주 이렇게 조용히 기다리곤 했죠. 약재든 사냥감이든 찾아올 올리버나, 아니면 손님이나, 그러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무슨 재미난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하며······”


“느긋한 추억이군요. 그런데, 지금도 꽤 조용하지 않아요?”


“글쎄요. 말괄량이 아가씨와 동행하고 난 뒤로는 썩······”


“전 그렇게 시끄럽지는 않거든요?”


“아, 물론이죠. 목소리의 크기를 말 하는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펠릭스. 그만, 멈춰요! 당신, 또 실례되는 말 하려고 그러는거죠?”


펠릭스는 입을 벙긋거리다가 잠시 멈춰서서 무언가 생각하더니, 웃으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펠릭스!”


“왜요. 당신 말대로 멈췄잖아요.”


“아니, 당신은 좀 생각이라는 걸 하고 말을 할 수는 없나요? 툭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무례한 말을 해 대고······”


“뭐, 대부분은 사실에서 기인한 말들인걸요. 제가 직접 관찰한 것이라든가...”


“사람들은 그걸 무례하다고 불러요!”


“내 참. 피곤하게 살기는. 알았어요, 알았어. 하여튼, 귀족 비위 맞추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펠릭스는 입을 비죽이며 다시 회중시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고보니.” 정작 대화가 멈추자 다시 멀미가 올라오기라도 하는듯, 실비아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펠릭스. 당신, 예전에는 귀족들과도 제법 같이 일했다면서요?”


“아, 물론이죠. 사실, 연금술사를 찾는건 평범한 사람들 보다는 귀족이 많죠. 약값도 비싼 편이기도 하고.”


“그럼, 당신도 귀족 비위 맞추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요?”


“아, 물론이죠. 그렇고말고요.”


“그런데, 저한테는 시시때때로 무례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잖아요.”


“아, 그거요. 그건, 실비아 당신이 귀족이라기보다는, 뭐랄까, 또래 친구같다고나 할까···”


“펠릭스! 또요! 또! 아니, 저한테서 전혀 귀족의 품위라든가, 기품이라든가 그런게 느껴지지 않아요?”


실비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씩씩거리며 펠릭스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두 팔을 활짝 펼치며 말했다.


“느껴지지 않아요?”


“뭐, 기품있는 귀족이라면, 아마 이런 행동을 하진 않을테죠.”


태연하게 씩 웃으며 펠릭스가 말하자, 실비아는 반사적으로 뭐라 반박을 하려다가, 얼굴을 붉히며 옷섶을 여미면서 도로 자리로 돌아가 풀썩 주저앉았다.


“너무 신경쓰지 마요.” 펠릭스는 화가난 실비아의 등에대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난 그 귀족들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하나같이 콧대만 높아서. 쓸데없는데 정신팔려있고······”


“저도 귀족이거든요?”


“내 참. 알았어요 알았어. 멀미할때는 그렇게 얌전하더니 지금은 기운이 넘치는군요.”


“뭐에요. 그럼 저보고 얌전하게 멀미나 하고 나자빠져 있으라 그 말인가요?”


“앗, 신호가 왔어요!”


펠릭스는 어색하게 실비아의 시선을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잡고 오른손에 감겨있던 밧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실비아는 그 뻔한 수작이 눈에 보였지만, 더이상 그를 추궁하지는 않았다.




“어때?”


올리버는 방금 막 짜디짠 바닷물에서 건져올린, 기분나쁘게 번들거리면서 미끌거리는 다시마 줄기를 뱃전에 늘어놓으며 말했다.


“미묘하네요. 못 쓸건 없지만서도···”


“성에 안 차?”


“네.”


“펠릭스. 올리버가 애써 구해온건데···”


“아니, 그럼 자리를 옮기지. 펠릭스. 다시한번 봐줘.”


올리버는 전혀 실망한 기색없이 닻을 도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펠릭스는, 다시 태연히 망원경을 길게 펼치더니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바닷물 속으로 집어넣으려 했다.


“펠릭스! 뭐해요!”


“뭐가요.”


“망원경을, 바닷물속에 처박는 멍청이가 어딨어요? 세상에, 그 비싼 물건을···”


“내가 내 물건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에요?”


“아니, 망원경은 밤하늘의 별을 보라고 만든거 아닌가요? 아니면 바다 위에서 저 멀리 떨어진 뭔가를 알아본다든가···”


“빈약한 상상력이군요.”


“아니거든요!”


“내 참. 별게 다 불만이군.” 펠릭스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봐요. 보고나면 생각이 달라질 테니까.”


“보다니, 뭘요?”


“이거요. 망원경. 이 렌즈 너머에 뭐가 비치는지 한번 보라고요.”


“제가 왜요? 애초에, 뭐가 보이긴 한가요? 이 시커먼 바닷물을 봐요. 물 속이라고 해 봤자, 암흑 천지일게···”


“보라니까요?”


펠릭스가 넉살좋게 씩 웃자, 실비아는 주저하며 펠릭스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 들린 망원경을 넘겨받았다. 짜디짠 소금물 속에서 조용히 부식되어 가고 있는게 틀림없는 망원경을 조금 불쌍하다고 생각하며, 실비아는 의심가득한 눈초리를 망원경의 눈구멍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바닷속의 세상이 아주 조그맣게 펼쳐졌다.




바닷속은 어두웠다. 그러나, 분명 그곳에도 빛은 있었다. 물 속에 잠겨있던 형형색색의 말미잘, 산호, 불가사리와 성게들은 어두침침한 속에서도 자기 색깔을 잃어버리지 않고 그 어느 귀족의 화단 못지않게 아름다운 정원을 소금물 속에서 가꾸고 있었다. 그리고, 물고기 떼가 한 무리 잽싸게 망원경의 렌즈 너머를 헤엄쳐 지나가며 그 매끄러운 은빛 비늘을 반짝였다. 무리짓지 않은 호기심많은 물고기 한 마리는 이것이 무슨 물고긴가 궁금한지 망원경 렌즈 너머에서 알짱거리다가, 렌즈를 주둥이로 콕콕 쪼고는 잽싸게 도망쳤다.




실비아가 망원경을 슬슬 움직이자, 어둠 속으로 뻥 뚫린 심연에 가까운 해구도 보였고, 렌즈를 조금 들어올리자 저 멀리서 유유자적 헤엄치는 큰 거북도 한 마리 보였다. 실비아는 자기 집을 등에 짊어지고 사는 거북에 관한 책을 읽어보았지만, 거북을 직접 보는 날이 올 줄은, 그녀로서는 꿈에도 몰랐던 일이었다.


“어때요?”


실비아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며 황홀경에 빠진 사람처럼 조용히 중얼거렸다.


“엄청나요!”


“이래도 제가 바보처럼 망원경을 쓰고 있는 건가요?”


“아니, 그렇지만. 아니, 그래도 이건······”


“됐어요. 마음대로 생각해요.” 실비아를 옆으로 슬쩍 밀치고 다시 펠릭스는 바다 아래를 살피다가, 고개를 들어 올리버에게 말했다.


“올리버! 동쪽으로 쭉 가요!”


“그래. 빨리 해 치우자고.” 대충 천으로 허리 아래만 가린 올리버가 다시 돛을 펼치며 말했다. “계절이 계절이라, 바닷바람을 오래 쐬니까 추워서 말이야.”


“아, 하긴. 한여름이 아니구나. 그래요. 그럼 조금 서둘러보죠!”


올리버는 웃으며 펠릭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기세좋게 노를 젓기 시작했다.




뱃전에는 어느새 번들거리는 다시마가 세 무더기 정도 쌓여 있었다.


“펠릭스. 오늘치 약은 다 마셨어.”


올리버가 젖은 몸을 천으로 닦으며 중얼거렸다. 물론, 실비아는 실수로라도 그의 몸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가리고 고개를 돌린 채였다.


“어때?”


펠릭스는 심각한 얼굴로 다시마를 천천히 살펴보며, 영 못마땅한듯한 소리를 내었다.


“별로야?”


“뭐, 여전히 못 쓸 정도는 아니지만···”


“맘대로 해. 하지만, 나는 오늘 더이상은 못 들어가.” 올리버는 바다를 향해 크게 에취! 하고 재채기를 했다. “그리고 몸도 너무 식었다고. 봐. 조금있으면 해도 질거야. 해 지면 진짜 못 내려간다고.”


“음. 그렇죠. 그게 사실이죠. 어쩔수 없나······”


펠릭스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돌리다가, 실비아와 눈이 마주쳤다.


“왜요?”


말없이 자기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펠릭스를 보고, 실비아는 조금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그래, 그래요. 그 방법이 있었지. 실비아. 어때요, 직접 내려가서 다시마를 캐 오는건?”


“절대 싫어요!” 실비아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절대는 부정문과 같이 쓰는게···”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내려가요!”


“아니, 너무 그러지 말아요 실비아. 아까 바다 아래를 구경할 때는 세상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그 조그만 렌즈를 뚫어져라 쳐다봤으면서.”


실비아는 잠시 부끄럽다는듯 시선을 피하다가, 다시 단호하게 펠릭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전 안 내려가요!”


“정말요?”


“그래요!”


“바다 밑의 풍경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에요.”


실비아는 다시 잠시 주저하다가, 도로 완고한 자세를 잡았다.


“이런 약은 흔히 구하지도 못해요.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적고, 재료값도 좀 나가죠.”


“전 돈 많거든요?”


“당신 부모님 돈이겠죠. 그리고, 돈 있어도 못 구하는 약이에요 이건. 이번을 놓치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펠릭스는 슬쩍 실비아의 눈치를 살폈다. 여전히 단호하게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도, 그녀의 두 눈은 살짝살짝 흔들렸다.


“허리에 밧줄을 감으니 안전에도 아무 문제 없어요.”


“안 내려간다니까요?”


“이곳 바다에는 위험한 생물도 없어요. 아, 해파리에 대해 들어봤나요? 아주 신기한 생물이죠. 꼭, 저녁 식사 디저트로 나오는 젤리같다고나 할까···”


실비아의 눈이 다시 살짝 흔들렸다.


“진주를 만드는 조개도 있다는데요.”


“안 간다니까요?”


“신기할정도로 짙은 푸른 색의 바다달팽이라든가···”


실비아의 표정이 어느덧 꽤 풀려 있었다.


“물에 빠질 걱정도 없죠.”


“아까 한 말이에요, 그거.”


“주머니칼로 다시마 줄기를 슥 잘라오기만 하면 되는데.”


“미끌거리잖아요. 기분나쁘게.”


“대신, 바다 구경을 오 분 동안 하염없이 할 수 있어요. 그 조그만 망원경의 렌즈 너머로 말고, 자기 두 눈으로 직접.”


실비아는 이제는 꽤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 싫으면 관두고요. 올리버. 슬슬 닻을 도로 올리죠.”


“네? 저 아직 대답 안 했는데.”


펠릭스는 씩 웃으며 말했다.


“절대 안 내려간다면서요. 이것도 못 쓸 정도는 아니니까 그만 만족하고 돌아가죠 뭐. 골든포트 바닷가에서 하염없이 떠다닐 수도 없고. 우리가 계약한 두 달의 시간을 알뜰하게 쓰려면 때론 타협도 필요하니까요.”


“저, 저기...전 아직···”


“펠릭스. 닻 다 올렸어.”


“좋아요. 그럼, 항구로···”


“갈게요!”


아주 충동적으로 실비아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듣고, 펠릭스는 승리의 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잘 생각 했어요.”


“아니, 방금 한 말은, 그러니까···”


“아니, 잘 생각 했어요. 자, 옷이요.”


“네?”


“옷 벗으라고요.”


찰싹 소리가 골든포트의 평화로운 앞바다 위에서 난데없이 울려퍼졌다.


“실비아. 자, 내가 입으려고 했던 옷이기는 한데, 바닷물에 푹 젖어도 상관없는 옷이야.”


“고개 돌리고 있어요 올리버. 그리고 펠릭스 똑바로 감시하고요.”


쓰라린 뺨을 쓰다듬고있는 펠릭스를 보고 올리버는 정말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올리버. 제가 그렇게 잘못했나요?”


“귀족 처녀한테 할 말이 아니긴 하지.”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도요?”


“말은 듣는사람 나름이니까. 어쩌면, 이만하길 다행 일지도 몰라.”


“다 갈아입었어요.”


올리버는 무게추를 채운 띠를 실비아의 허리에 둘러주고, 그 띠에다가 밧줄 매듭을 단단히, 두 번이나 묶고 세 번이상 다시 잡아당겨 확인을 했다.


“실비아. 내 말 잘 들어라. 사람은 물에 떠. 그러니까, 물 위로 도로 올라오고 싶으면, 이 추들을 모조리 떼어버려.”


올리버는 친절하게 띠에 매달린 추를 떼는 법을 알려주었다.


“정 못 떼겠으면, 네 주머니칼로 이 추에 묶인 끈을 잘라버리고.”


“네.”


“절대 당황하지 마라. 우리가 위에 있으니까. 올라오고 싶으면 밧줄을 이렇게 당겨. 이 리듬이야.”


올리버는 다시 친절하게 실비아에게 시범을 보여주었다.


“알겠어요.”


“자, 그럼. 이제 크게 심호흡을 하고. 몸의 근육을 풀어준 다음 물 속으로 뛰어들면 돼.”


실비아는 올리버가 시키는 대로 잠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 다음, 뱃전으로 올라가 심호흡을 하고, 올리버와 펠릭스를 돌아본 다음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실비아가 물 속으로 뛰어들자, 펠릭스는 곧바로 회중시계를 꺼내들었다.


“언제 건져올리려고?


“삼 분이요. 실비아는 수영에 있어서는 초짜나 다름없어요. 올리버 당신보다 훨씬 빨리 체력을 소모해버릴걸요. 어쩌면, 삼분조차 길지도 몰라요.”


“다시마를 캐 올수나 있을까?”


“글쎄요. 저는 솔직히 무리라고 봐요. 실비아는 호기심이 제법 많죠. 바닷속의 신기한 광경에 한눈 팔릴게 분명해요. 아니더라도, 다시마는 그녀 말마따나 기분나쁠정도로 미끌거리죠. 그녀의 서툰 칼질로 다시마 줄기를 잘라 올 수 있을지나 걱정이군요. 제 손이나 안 베면 다행이지.”


“잘 아네. 늘상 다투기만 하는 것 같더니.”


“당연하죠! 저는 제 손님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데에는 최선을 다하거든요.”


“왜?”


“그야물론,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죠.”


“그게 전부야?”


“뭐, 다른 욕심도 조금 있기는 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펠릭스는 괜히 바다 멀리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전에 말한 그 이유?”


“그래요. 약. 올리버. 아마, 나는 최고의 죽음의 약을 만들지 못할 거예요.”


“왜? 네 실력으로도 못 만드는 약이 있다고? 그리고, 어쩌다가 그런 약한 소리를 다 하는거야?”


“그런 이유가 있어요. 하지만, 어쩌면. 그래요. 실비아라면, 어쩌면...아, 시간 다 됐네요.”


올리버는 밧줄을 슬쩍슬쩍 당겨 신호를 준 다음, 제대로 밧줄을 당겨 실비아를 도로 물 위로 건져올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비아는 물을 첨벙거리며 줄에 끌려 어선으로 돌아왔다.


“어땠어요?”


“멋졌어요!” 실비아는, 환희에 찬 웃음을 지으면서, 푹 젖어 달라붙은 옷차림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뱃전 위로 기어올라왔다. 그리고 펠릭스의 예상과 달리, 그녀의 오른 손에는 반짝거리는 다시마 한 줄기가 붙들려 있었다.


“다시마! 캐 왔군요!”


“그래요. 와, 펠릭스. 저 물 아래는, 정말이지...에취!”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실비아는 재채기를 하며 옷섶을 여미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자신의 몸에 달라붙어있는 옷을 잠시 살펴보다가, 비명을 지르며 마침 다가오던 펠릭스를 쫓아냈다.


“아야! 왜요!”


“아니, 펠릭스! 내 옷! 옷 먼저 지적했어야죠! 올리버!”


“아, 미안. 난 그런거 전혀 신경 안쓰다보니까...”


“올리버! 실망이에요! 하여튼, 둘 다 딴데 보고 있어요!”


실비아는 씩씩 성을 내며 재빨리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원래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다 입었어요?”


“네. 하여튼 둘 다. 정말이지, 섬세함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남자들이라니까···”


“다시마!” 실비아에게는 조금도 관심을 주지않고 펠릭스는 그녀가 캐와 뱃전에 던져둔 다시마로 쪼르르 달려가, 눈을 크게 뜨고 태연하게 그 미끄덩거리는 것을 집어들어 살펴보았다.


“봐. 펠릭스는 사람한테는 별 관심 없다니까.”


“세상천지에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그러나 펠릭스는 정말로 다시마 줄기에만 집중하여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실비아가 캐온 다시마가 마음에 든 듯 말했다.


“실비아! 잘했어요! 좋아요. 이정도 다시마라면 꽤 쓸만하겠는걸···”


“인어의 머리칼!”


“네?”


“인어의 머리칼이요!” 실비아가 말했다. “그렇게 좀 불러줄래요?”


“아, 뭐 알았어요. 아무튼, 아주 좋은 인어의 머리칼이네요. 좋아요. 올리버. 뭍으로 돌아가죠. 에취! 이런. 바닷바람이 벌써 차요. 올리버, 서둘러요!”


“펠릭스. 너도 같이 노 젓든가.”


돛대를 조정하고 다시 노를 저으며 올리버가 말하자, 펠릭스는 괜히 팔짱을 끼고 슬금슬금 노에서 멀어졌다.


“펠릭스. 당신도 도와요!”


“네?”


“당신 혼자 물에 안 들어갔잖아요? 우리는 둘 다 물에 빠졌다가 나와서 별로 힘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어서 와서 도와요!”


“아니, 그거랑은 상관없죠. 내가 물에 들어가라고 시킨것도 아니고···”


“부추겼잖아요?”


“아니거든요?”


“아니, 이봐. 둘 다 싸우든말든 난 상관없는데. 하늘을 좀 보라고.”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 사이에 올리버가 끼어들어 말했다. 하늘을 가리킨 그의 손가락 끝에서는 먹구름이 슬금슬금 몰려오고 있었다.


“바다 위에서 비를 만나고 싶지는 않지?”


“내 참. 일이 이렇게 되다니. 알았어요. 뭐, 어떻게 되나 한번 보자고요.”


펠릭스는 툴툴거리며 한쪽 노를 집어들었고, 그러자 실비아도 그 옆에서 반대쪽 노를 집어들었다.


“어이. 둘 다 도와주는건 고마운데.”


한동안 조용히 힘을 주어 노 젓는 소리만 들리던 배 위에서 올리버가 말했다.


“둘 다 좀 맞춰서 저어. 안 하느니만 못하잖아.”


“전 잘 하고 있거든요!”


동시에 들려오는 두 목소리에, 올리버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노를 젓기 시작했다. 언젠가, 그는 손님이 미어터지는 술집에서 술집 주인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보니, 그 손은 아마 빌리지 않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올리버는 마음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조그만 어선은 우왕좌왕하며 시커멓게 물들어가는 바다 위를 잠시 떠다니다가, 다행히 먼 바다에서 우르릉 거리는 무서운 소리를 내는 먹구름에 따라잡히지 않고 무사히 골든 포트의 부두에 정박했다. 어선이 정박하자 세 사람의 실루엣이 해질녘에 긴 그림자를 바다 위로 드리우며, 조금은 활기차고 소란스럽게 골든포트의 빛나는 도시 위를 향해 조급하게 걸어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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