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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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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3
추천수 :
188
글자수 :
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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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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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49화

DUMMY

“나 왔어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실비아는 행복의 연금술 가게의 문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그러나, 그녀는 현관 열쇠를 갖고 있지 않았기에, 잠긴 문 앞에서 금새 쩔쩔 매게 되었다.


“열쇠라도 미리 받아가든가 하지 그랬어요.”


“열려있을줄 알았죠.”


멋쩍게 펠릭스에게서 열쇠를 넘겨받은 실비아는, 허둥지둥 문을 열고 안으로 뛰쳐들어가며 외쳤다.


“나 왔어요!”


“내 참. 안에 아무도 없는데. 대체, 누구 들으라고 하는소린지.”


“그러게. 그보다, 펠릭스. 너도 문 앞에서 좀 비켜줬으면 하는데. 여기에는, 우리대신 짐을 날라줄 하인이 없다고.”


“아, 죄송.”


펠릭스는 양손에 짐을 든 올리버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비켜주었다.




올리버와 펠릭스가 짐마차에 실었던 짐을 풀고나서 시계를 보니, 대충 점심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오늘 점심은 뭐죠?”


그리고 자기가 가져온 짐을 다 풀고,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앞뒤로 흔들흔들 하며 실비아가 말했다.


“뭘 기대해요?” 펠릭스가 대답했다. “여긴 귀족의 집이 아니에요. 요리를 해 줄 요리사도 없고, 그렇다고 제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죠.”


“그래서, 뭐냐니까요?”


“흑빵 밖에 더 있어요!” 조금 짜증스레 펠릭스가 대꾸했다.


“전에 제가 사놓은 치즈는 어쨌는데요? 아직 있나요?”


“아무도 못 찾았어요. 곰팡이가 피지 않았길 바래요.”


실비아는 찬장을 잠시 뒤적이더니, 금새 조그만 치즈 덩어리를 꺼내들었다. 위에 먼지가 살짝 앉은것 말고는, 다행히 치즈는 멀쩡해 보였다.


“아니, 어디 숨겨둔 거죠?”


“숨기긴요. 당신이 똑바로 안 찾아서 그렇겠죠. 내 참. 자기집 부엌 어디에 치즈가 있는지도 모르고. 참 대단한 연금술사 선생님이군요.”


실비아가 이죽이며 말했지만, 펠릭스는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 말에 딱히 틀린 부분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금술 가게의 부엌에서는 곧 조용히 음식 씹는 소리, 물 마시는 소리, 음식 삼키는 소리만 들려왔다.


“이제 뭐 해요?”


“음.” 펠릭스가 물로 목을 축이고 나서 말했다. “실비아. 우선, 계약 내용을 조금 수정했으면 해요.”


“내 참. 계약서 쓴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내용을 바꿔요?”


“기간이요.” 펠릭스가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간이 모자라요. 트로이의 서커스 놀음에 어울려 주는 것까지는 계산 안이었지만, 에밀리아 콘월의 저택에서 벌인 일들까지는 계산 밖이에요.”


“미리, 무슨 사고가 터질걸 예상해서 여유롭게 기간을 정한 거라면서요?”


“그 여유분을 다 써버렸으니 그러죠. 아마, 여기서 또 사고가 터지면 기간 안에 절대로 약 못 만들어요. 그러니까, 아직 수정의 여지가 있을 때 계약 내용을 조금 바꾸자는거죠.”


실비아는 눈을 조금 가늘게 뜨고 펠릭스를 보며 말했다.


“흐응.”


“왜요? 싫어요?”


“이렇게,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계약 기간을 연장하지는 않을 테죠?”


“퍽이나!” 펠릭스가 말했다. “실비아. 내가 당신 장단에 맞춰주고 있어서 잊었나본데, 나는 본래 연금술 가게를 운영하는 연금술사라고요. 내가 뭐가 좋아서 당신 뒤꽁무니만 계속 따라다니겠어요? 나도 적당히 하고 그만 가게로 돌아가고 싶어요. 나로서도 빨리 약을 만드는게 최선이거든요?”


“좀, 기왕에 말 하는거, 좋게 말 해주면 어디 덧나요?” 실비아도 그 말에 삐쳤는지, 조금 입술이 부루퉁해져서 말했다.


“아무튼! 당신이 걱정하는 그럴 일은 없을겁니다. 아마도.”


“마지막에 덧붙인 말 때문에, 신뢰감이 떨어지는걸요.”


“아니,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지도 모르는데, 대뜸 무조건 된다고 말하기는 그렇잖아요? 당신도 그래요. 서커스 천막에서 덕지덕지 화장을 쳐바르고, 화려한 요정 옷을 입고 공중그네 타다가, 결혼한 언니랑 마주칠 줄 알았어요?”


“······몰랐죠.”


“그러니까요. 앞으로 무슨 사고가 터질 줄 알고 함부로 말하겠어요. 아무튼, 가급적이면, 최대한 기간 연장은 더 안할 테니까, 좀 수정해 줘요.”


“생각해보고요.”


“올리버. 이 아가씨 고집좀 꺾어봐요. 아까, 마차에 타기 전에 뭐랬죠? 자기 고집을 꺾는게 어른이 되는 첫걸음이랬나 뭐랬나 하지 않았어요?”


조용히 식사를 하던 올리버는 가볍게 손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털며 말했다.


“실비아는 아직 어른이 아닌가보지.”


“아니, 내참. 말 바꾸기를 동전 뒤집듯 하네. 실비아, 봐요. 신용이 없다는건, 이런 사람을 가리켜 하는 말이라고요.”


“거, 상처받게.” 물론, 올리버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빵을 한 조각 집어들었다.


“어휴. 이 연금술 가게 안에 내편이라고는 도무지 없구만. 알았어요. 마음대로 하라구요.”


펠릭스가 툴툴거리며 접시에 내버려두었던 빵조각을 도로 집어들자, 실비아는 괜히 승리감을 느끼며 당당한 미소를 지었다.




펠릭스와 실비아는 상을 치우고 부엌 테이블에 마주앉아 조금 수다스럽게 떠들면서 계약서의 내용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방문을 열고 걸어나오는 올리버의 기척에, 펠릭스가 그를 돌아보았다.


“올리버. 어디 가요?”


올리버는 사냥복을 입고, 모자까지 새로 쓰고, 등에는 활과 화살통을 매고 있었다.


“사냥.”


“그래보여요.”


“요 며칠동안, 계속 답답하게 갇혀 지냈으니까.”


“너무 신나게 잡아대지는 말고요. 숲속 동물들 씨가 마르면 그것도 그것나름 곤란하니까.”


“내가 무슨 재주로 그러겠어?”


“하긴, 그건 그렇네요.”


올리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준 다음, 부엌 뒷문을 열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해서.” 다시 계약서로 고개를 돌리며 펠릭스가 말했다. “기간은 한 달만 연장하면 될까요?”


“한 달이라.” 여전히 실비아는 조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왜요? 한 달일 뿐인데.”


“그러면 한해의 4분의 1이잖아요. 총 계약 기간이요. 그리고 처음 계약 기간에서 절반이나 더 늘어난 꼴이잖아요?”


“그래봤자 한 달일 뿐인걸요.”


“그래요, 뭐, 안 될건 없지만, 솔직히 좀 그렇네요.”


“내 참. 까다롭기는. 그래서, 얼마나 더 기다려 줄건데요?”


실비아는 고개를 살짝 들어올리고 눈을 깜빡이며 가만히 생각했다.


“보름이요.”


“보름이라, 뭐 그정도면 괜찮겠네요. 끔찍한 사고만 없다면야.”


“자꾸, 불길한 소리 할래요?”


펠릭스는 실비아의 말을 무시하고 계약서를 마저 써내려갔다. 화려하면서도 절도있는 그의 글씨체를 보며, 실비아는 대체 이 말썽꾸러기가 어떻게 저렇게 글씨를 잘 쓰는지 궁금했다.


“자, 다 됐어요. 봐요.”


“당신, 글씨 잘 쓰네요.” 계약서를 받아들며 실비아가 말했다.


“그렇겠죠! 사실, 저는 뭐든 잘 하는 편이에요.”


“재수없기는.”


“재능의 차이죠. 받아들이는게 차라리 맘편할걸요. 물론, 글씨는 열심히 연습한 덕도 있지만.”


실비아는 계약서에서 눈을 잠시 떼고, 펠릭스가 평소에 끄적이는 엉망진창의 메모를 잠시 떠올려 보았다.


“하긴, 연습은 좀 해야겠네요.”


“그래서, 계약서에 만족하나요?”


“그래요.” 계약서를 도로 내밀며 실비아가 말했다. “뭐, 딱히 독소조항을 몰래 넣은것 같지도 않고.”


“귀찮게, 뭐하러 그런 짓을 해요?” 펠릭스가 웃으며 계약서를 돌돌 말아 끈으로 묶었다.


“하긴. 당신은, 쇠붙이를 금으로 바꾸는 약도 만들줄 아는데, 뭐가 아쉬워서 그러겠어요.”


“그러니까! 그건, 장난이었다니까요. 혹시라도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 말아요. 남들 오해할라.”


“오해는. 사실이면서.”


“안 팔았어요! 우리끼리 장난치고 약은 엎어버렸다고요.”


“그래서, 그 낡아빠진 농기구는 어떻게 처분했는데요? 그걸로 농사라도 지었어요?”


펠릭스는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했냐니까요?”


“땅에 묻었어요.”


“땅에? 참, 당신도 대단하군요.”


“뭐, 나중에 어느 운 좋은 사람이 찾아 가겠죠. 그쯤되면 나무로 만든 자루는 진작 썩었을테니, 어쩌면 실력없는 애송이 고고학자의 눈에 들지도. ‘보아라! 이것은, 이 땅 위에 먼 과거 황금으로 농기구를 만들 정도로 부유한 제국이 있었다는 증거다!’ 라고 하면서 금덩이를 불쑥 내밀지도 모르죠. 내 참. 거긴 농사짓는 땅도 아닌데.”


말해놓고보니 나름 재밌다고 느낀 것인지, 펠릭스는 실비아는 웃지도 않는데 혼자 웃으며 위층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디 가요?”


“제출하고 와야죠.”


“아, 그럼 마을로 갈 거예요?”


“그럼, 마을로 가야지, 뭐 어디 숲속 동물 친구들한테라도 제출할까요?”


“같이가요 그럼.” 실비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당신도 볼일있나요?”


“아니, 여기서는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할 일이야 많죠. 책도 많고.”


“거의다 도감에다가, 연금술 책 뿐이잖아요.”


“그것도 읽을거리기는 하죠. 아 참. 당신은, 낭만 소설을 읽죠?”


“무시하듯 말하지 말아줄래요! 술집이나 노름판에 드나드는 것 보다는, 훨씬 고상한 취미거든요!”


“아이구, 네 네 . 아무렴요.”


건성으로 대답하고 펠릭스는 잽싸게 방 문을 닫아버렸다.




펠릭스와 실비아는 나란히 밤나무숲 오솔길을 통해 마을로 털레털레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 호박벌이다.”


물론, 펠릭스는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계속 여기저기 신경이 팔리곤 했다.


“봐요, 실비아. 꽤 귀엽게 생기지 않았나요?”


“전, 벌레는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럼 뭐······. 아, 잠자리다”


“펠릭스. 그렇게 여기저기 한눈팔다가는, 밤이 되기 전에 마을에 못 갈 걸요?”


“설마요. 한눈 팔아봤자 겨우 일 분도 안 쓰는데. 마을까지는 느릿하게 걸어도 한 이십분 안에는 도착해요. 실비아. 내게 훈계를 하려면, 아직 멀었어요.”


오늘따라 씩 웃으며 말하는 펠릭스가 실비아는 유난히 얄밉게 느껴졌다.


“아, 도롱이벌레다.”


그런데도 펠릭스는 태연하게 저런 소리나 하고 있었다.




밤나무 숲에 둘러싸인 밤숲마을의 목가적인 풍경은, 마을에 첫 발을 들이미는 사람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숲에 맞닿아 있는 이 마을에는, 오직 평화와 안녕 뿐이라고.

마을이 크지 않은 탓에, 어느 방향에서든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얼마 걷지도 않아 햇살이 내리쬐는 조그만 광장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따스한 햇살에 홀린듯이 광장 한 가운데로 걸어가면, 이 마을이 세워진 년도와 축복의 말이 새겨진 조그마한 비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도착했네요. 봐요. 아직, 해가 중천에 뜨지도 않았어요.”


“비유였잖아요. 진짜 밤 늦게 도착한다는 뜻이 아니라는건, 동네 꼬마들도 알아들어요.”


“그렇다면, 형편없는 비유였군요. 이렇게나 시간 감각이 모자라서야.”


“전, 시간 감각 좋거든요?”


“아! 하긴, 그렇기는 하죠. 약을 달일때 시간 못 맞춘 적은, 제 감기약 만들 때 뿐이었던가요? 하여튼, 아직도 기억해요. 만드레이크를 그렇게 많이 넣고 달달 달이다니······.”


“당신이 몸관리 잘 했으면, 그럴 필요도 없었잖아요.”


“그건, 그렇네요.” 재판소의 문 앞에 서서, 펠릭스가 실비아를 돌아보았다. “그럼, 이만 헤어질까요?”


“뭐가요?”


“재판소에 서류를 내는 절차는 영 귀찮고 번거로우니까요. 당신도, 달리 하고싶은 일이 있어서 마을까지 내려온거 아니에요?”


“딱히, 그렇지는 않아요.”


“그래도, 온 김에 놀다 와요.” 펠릭스가 웃으며 말했다. “책방에 새 책이 들어왔을지도 모르죠. 당신이 좋아하는 낭만 소설이라든가······.”


“알았어요. 그러면, 여기서부터는 따로 움직이죠.”


펠릭스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실비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저쪽 책방이 있는 거리를 향해 쪼르르 걸어갔다.




계약서의 사본을 제출한 펠릭스는, 우편국으로 가서 한 삼십분 정도를 머물다가 나왔다. 그 다음에, 그는 마을 회관으로 가서 소식지를 살펴보았고, 꽤 만족스러운 얼굴로 회관을 빠져나와 광장에서 조용히 햇살을 쬐었다.


“가끔은 이런것도 좋은걸.”


펠릭스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태양을 향해 중얼거렸다. 만일 누가 봤다면, 이상한 사람 보듯 했을 것이 분명한 모습이었다.


“아하!”


그러더니, 갑자기 그는 다시 우편국으로 달려갔다. 누군가 보았다면,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만한, 그런 모습이었지만, 정작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우편국에서 편지를 하나 부친 펠릭스는 시장 거리로 들어와, 가판대와 좌판들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는 아무 가게의 주인을 붙잡고 이렇게 물었다.


“호두 없어요?”


“호두가 없을리가.” 가게 주인이 별 이상한 말 다 듣겠다는듯 말했다.


“여긴 없는데요.”


“아, 우리 가게에는 없지. 다 팔았거든.”


“벌써요?”


“어제, 왠 손님이 와서 자루째로 다 사갔어.”


“별 이상한 사람 다 있네요.”


“그러게. 꽤 젊은 여자였는데, 무슨 호두로 잔치라도 벌이나보지.”


젊은 여자라는 말에 펠릭스의 촉각이 곤두섰다.


“머리카락 색을 기억하게요?”


“몰라. 로브 모자로 덮어쓰고 있어서.”


“아,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펠릭스는 그 가게에서 걸어나와 몇 군데를 더 돌아다녀 보았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그 수상한 사람이 호두를 모조리 쓸어갔다는 말 밖에,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하, 참! 이렇게 나오다니. 제법인데.”


시장 거리를 떠돌던 펠릭스가 허공에 대고 말하자, 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이 깜짝 놀라 펠릭스를 쳐다보았다.


“그러면 나도 방법이 있지.”


그러나 펠릭스는 그들의 시선따윈 전혀 신경쓰지 않고, 다시 시장 거리 어디론가 힘찬 발걸음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책방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살펴보던 실비아는,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여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계산대로 책을 가져왔다. 책을 사서 가게를 나오며, 실비아는 두 손으로 책을 꼭 끌어안아 보았다. 괜시리 얼굴에 미소가 지어져, 실비아는 웃으며 가게를 빠져나왔다.




책을 사고 나서 그대로 연금술 가게로 돌아갈까 하던 실비아는, 모처럼 나온 김에 시장 거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평화롭고 목가적인 마을의 시장 거리는 언젠가 골든포트에서 보았던 거리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었고, 사람들의 얼굴 표정도 훨씬 순박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그러다가, 실비아는 시장 저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알아챘다. 특유의 그 얄미운 목소리가, 물건 값을 한창 흥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 보자, 펠릭스가 밤, 잣, 콩 따위를 팔고 있는 상인과 무언가를 한창 흥정하고 있었다.


“펠릭스. 뭐해요?”


“아, 실비아.” 펠릭스는 실비아를 힐끗 돌아보고는 다시 가게 주인과 흥정하기 시작했다.


“뭐하냐니까요?"


“흥정이요. 보면 몰라요?”


“아니, 뭘 사려고요?”


가게 주인은 실비아를 흘끗 보고, 다시 펠릭스를 흘끗 보더니,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주섬주섬 자루 하나를 꺼내 왔다.


“아가씨 얼굴 봐서, 특별히 주는거야.”


“오, 고맙군요. 실비아. 당신도 가끔씩은 도움이 되네요?”


“저는, 제가 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나 이미 펠릭스의 관심은 자루에 쏠려 있었다. 그는 자루 안으로 손을 불쑥 집어넣더니, 조그만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땅과 흙의 색깔을 한, 식물같기도 하고 돌멩이 같기도 한 조그마한 콩 모양의 무언가를 꺼내, 그는 어느 부분에 힘을 주어 똑 하고 쪼갰다.


“뭐에요 그게?”


“땅콩이요.” 펠릭스는 그 이상한 껍데기 안에서 콩알 모양의 알맹이를 두 개 꺼내 살펴보다가, 그중 하나를 조심스레 이로 깨물어 보았다.


“땅콩?”


“음, 좋군요. 좋아요. 한 자루, 전부 사도록 하죠!”


“그렇게는 안 판다니까 그러네!” 가게 주인이 난색을 표했다. “혼자 다 사가면, 다른 사람들은 맛도 못 보잖아?”


“그럼, 팔수 있는 만큼 팔아줘요.”


가게 주인은 바가지를 꺼내 땅콩을 두 바가지 퍼담은 다음, 자루에 담아 펠릭스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펠릭스는 은화와 동화를 섞어 그에게 주었다.


“수고해요! 많이 팔고요.”


그리고 펠릭스는 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게를 떠났다.




“땅콩이라는게 다 있었어요?”


시장 거리를 되돌아오는 길에, 실비아가 펠릭스에게 물었다.


“바다 건너에서 온 식물이에요. 어느 호기심많은 뱃사람이 이쪽 땅으로 가져 온 건데, 제대로 농사를 지은 적은 아직 거의 없을 걸요.”


“그런것 치고는, 꽤 있던데요.”


“어느 호기심 많은 농부가 심었나보죠. 아니면, 어느 사기꾼이 혓바닥을 잘 놀려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심어 보도록 만들었거나.”


“농부가 심은 거라고 생각할게요.”


“상상하는거야, 자유죠.”


“그래서, 땅콩은 왜 산거에요 갑자기?”


“값이에요.”


“값?” 실비아가 물었다. “무슨 값이요? 땅콩으로 값을 받는 가게도 있어요?”


“가게는 아니지만요.” 펠릭스가 말했다.


“자꾸 알쏭달쏭하게 만들지 말고, 그냥 시원하게 말 해주면 어디 덧나나요?”


“네!”


실비아는 펠릭스의 그 대답을 듣고, 그만 할 말이 없어져버렸다.


“알았어요. 내 참. 별걸 다 숨기고. 이해 못할 사람이라니까 정말.”




두 사람은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행복의 연금술 가게가 있는 밤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다만, 실비아의 고집에서인지 무엇때문인지, 실비아는 조그마한 자루에 펠릭스의 그 땅콩을 조금 덜어 한 손으로 들고 가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해 줄 필요는 없는데요.”


“이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해요.”


“왜요?”


“난, 고상한 귀족이거든요.” 실비아가 말했다. “귀족으로서, 위엄을 지켜야 해요.”


“평소에나 잘 지키지.”


“당신이, 자꾸 제가 품위를 못 지키도록 성질을 긁잖아요!”


실비아는 벌처럼 펠릭스를 쏘아대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제 품위를 지켜야 한다고요. 당신 좋으라고 하는 일이 아니에요.”


“거 참. 피곤하게 살기는. 그냥 살면 될 걸, 굳이 품위니뭐니······.”


“펠릭스! 당신이, 귀족에 대해 알아요?”


“그러는 당신은 뭘 아나요?”


실비아는 대번에 뭐라고 대답해 주려다가, 그대로 입을 도로 다물었다.




연금술 가게로 두 사람이 돌아오자, 왜인지 가게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얀 연기에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무언가가 깃들이 있는 듯했다. 왜냐면, 두 사람 모두 가게 부엌 뒷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포근한 미소를 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올리버. 일찍 왔네요?”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그 불 위에 무언가의 고기를 꼬챙이에 꿰어 굽고있던 올리버가, 두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뭐죠?”


“산비둘기. 너희들도 먹어.” 올리버가 꼬챙이를 슬금슬금 돌리며 말했다. 꼬챙이의 고기조각에서 기름 한 방울이 불 속으로 똑 떨어지자, 화륵 하고 불길이 살짝 일었다.


“당연하죠.”


“펠릭스. 그럴 때는, 고맙다고 해야죠.”


“내가 고용한 내 채집꾼인데 뭐 어때요?”


“올리버! 기분 상하지 않아요?”


“그닥.”


“두 사람 다, 하여튼. 무신경하기 짝이 없다니까······.”


실비아는 툴툴거리며 들고 있던 땅콩 자루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뭘 그렇게 사왔어?”


“값이요.”


“값? 아, 설마. 그거야?”


“네.” 펠릭스와 올리버는 눈을 마주쳤고, 펠릭스는 웃었으나 올리버는 조금 당황했다.


“뭐에요. 또 둘이서만 아는 이야기에요?”


“실비아. 당신도 아는 사람 이야기에요.”


“제가 아는 사람이요? 설마, 우리 언니는 아니죠?”


펠릭스의 표정이 오묘하게 굳었다.


“아닐걸요?”


“그럼 제가 달리 아는 사람이 있나요? 저도 알고 당신도 아는 사람. 트로이?”


“아니오.”


“···폴라?”


“실비아. 당신, 일부러 그러는거죠?”


“누군데요?”


“누구겠어요? 당신이 당신 스승이라고 자랑스럽게 말 한 그 사람이오.”


“메를린!” 실비아가 가볍게 탄성을 질렀다. “메를린네 집에 가는거에요?”


“네.”


“우와. 꼭 한번 다시 만나보고 싶었거든요. 하고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아요! 그동안, 여행중에 겪은 일이라든가, 제 손으로 직접 만든 약이라든가······.그런데, 왜 갑자기 메를린네 집에 가요?”


“필요 해서요.”


“뭐가요?”


펠릭스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뭐, 알았어요. 어쨌든, 그럼 언제 가요?”


실비아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연금술 가게 부엌 창문의 열린 틈새로 새하얀 산비둘기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들었다. 펠릭스는 놀라지도 않고 비둘기의 발목에 묶여있던 조그마한 쪽지를 풀어, 펼쳐 읽어보았다.


“지금이요.”


“우와! 정말이죠?”


“제가 뭐가 아쉬워서 당신한테 거짓말을 해요?”


“저기, 그 마녀네 집에 가든 말든 나야 별 상관은 없는데.” 올리버가 슬쩍 끼어들며 말했다. “산비둘기 요리. 먹고 가지.”


“아, 물론 그래야죠. 실비아. 점심은 먹고 가죠.”


“아, 네. 그래요. 점심은 먹어야죠.”


올리버는 조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가 손질해 구워낸 산비둘기 고기를 꼬챙이에서 끄집어내, 접시위에 정갈하게 담아 펠릭스와 실비아에게 내밀었다. 두 사람이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며, 올리버는 만족스럽게 웃은 다음 고기를 구웠던 꼬챙이의 기름을 닦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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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3화 21.11.03 28 1 25쪽
52 52화 21.11.02 25 1 16쪽
51 51화 21.11.02 23 1 18쪽
50 50화 21.11.01 26 1 19쪽
» 49화 21.11.01 25 1 21쪽
48 48화 21.10.31 29 1 34쪽
47 47화 21.10.31 26 1 25쪽
46 46화 21.10.30 26 1 21쪽
45 45화 21.10.30 28 1 31쪽
44 44화 21.10.29 27 1 23쪽
43 43화 21.10.29 24 1 18쪽
42 42화 21.10.28 28 1 23쪽
41 41화 21.10.28 27 1 23쪽
40 40화 21.10.27 28 1 21쪽
39 39화 21.10.27 25 1 21쪽
38 38화 21.10.26 26 1 19쪽
37 37화 21.10.26 23 1 19쪽
36 36화 21.10.25 31 1 21쪽
35 35화 21.10.25 25 1 23쪽
34 34화 21.10.24 28 1 21쪽
33 33화 21.10.24 26 1 21쪽
32 32화 21.10.23 31 1 23쪽
31 31화 21.10.23 27 1 19쪽
30 30화 21.10.22 31 1 19쪽
29 29화 21.10.22 28 1 27쪽
28 28화 21.10.21 29 1 16쪽
27 27화 21.10.21 29 1 30쪽
26 26화 21.10.20 30 1 19쪽
25 25화 21.10.20 27 1 28쪽
24 24화 21.10.19 31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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