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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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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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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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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41화

DUMMY

마차는 마을 바깥으로 빠지는 도로를 타고 계속해서 달려갔다. 서쪽을 향해, 태양이 뜨는 반대 방향을 향해. 그래서 도로 위를 달리는 마차는 동쪽에서부터 떠오르는 태양의 기이한 후광을 드리운채, 지평선을 향해 달려가는 꼴이 되었다. 만약, 길 반대편에서 이 마차와 마주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태양을 이끈다는 그 머나먼 전설의 마차를 두 눈으로 본 것은 아닌가 하고 잠시나마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밖에서 보기에 마차가 어떻든 간에,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은 정작 딴데 쏠려 있었다. 펠릭스든, 올리버든, 지금 그들의 관심이 쏠려있는 것은, 조금은 신비롭고 또 약간의 비밀이 숨겨진 그 콘월 후작의 저택이었다.


“펠릭스.”


“왜요, 올리버.” 펠릭스는 조금 헐렁한 누더기 로브를 걸친 올리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가슴께의 천이 유난히 평평하게 펴지는 것이라든가, 그 로브의 때묻은 곰팡내로도 숨길수 없는 무두질한 가죽의 냄새로 볼 때, 올리버는 정말 말 그대로 가죽 갑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온 듯 했다.


“그 귀족 저택. 괜찮겠지?”


“어이! 이봐요! 펠릭스는 마차의 차창을 열고, 말을 몰고 있던 마부를 불렀다. “콘월 저택 말이에요. 괜찮은 곳이죠?”


“네? 넵. 괜찮은 곳입쥬.”


마부는 잠시 무슨 소린가 하여 당황하는듯 싶다가, 금새 대답했다.


“저택에서 일하는 마부가 그럼 수상쩍다고 사실대로 일러바치겠어?”


“글쎄요. 어이! 당신, 콘월 저택에 고용되어 일하는 전속 마부인가요?”


“아니유. 저는, 전속은 아닙니다유.”


“고마워요! 그렇다는군요, 올리버.”


“그래? 그래도 영······.”


“정 뭣하면, 직접 물어보던가요 올리버.”


“그런 방법이 있긴 하군. 어이, 이봐! 당신, 잡담 좀 해도 되겠나?”


“얼마든지유!” 오히려 마부는 반갑다는듯 흔쾌히 대답했다.


“그래. 그러면 말야. 혹시, 콘월 후작 저택에 대해 뭐 아는거 없나? 소문이라도 괜찮은데.”


“글쎄유. 뭘 알려드려야 할까유? 하인이 몇명인지나, 저택의 면적이나······”


“아니, 그런 지루해빠진 시시콜콜한 이야기말고. 좀 더, 뭔가 재미난 이야기 없나?”


“흥밋거리를 찾으시는 거유? 그러면, 보자. 콘월 부부가 사이가 나쁘다는 소문이 돌던데유.”


“정말 흥밋거리군요.” 펠릭스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누구한테 들었나?”


“누구든지유. 그냥, 마을 술집에 가면 간간히 들리는 이야깁니다유. 하인이라든가, 뭐 그런 사람이 처음에 함부로 입을 나불댄거 아니겠어유?”


“두 부부가 사이가 나쁜지 아닌지 어떻게 아나?”


“그거야 저도 모릅니다유. 그런데, 결혼한지 이제 이 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슬하에 자식 하나 없으니 다들 그러려니 하는것 아니겠습니까유?”


“그래? 그럼 자네가 보기에는, 부부 사이가 나빠보이던가?”


“글쎄유. 제가 보기에는, 두 분 모두 사랑이 넘치는 눈으로 서로를 보시던데유. 그리고, 잘은 몰라도, 심심하면 서로 고맙다고들 그래유. 심지어는 마차 안에서도 말입니다유.”


“그럼 사이가 좋은거 아냐?”


“그렇지만, 두 사람은 손도 안 잡던데유? 그러니, 말로만 서로 좋다고 그러는 것인지, 정말 좋아서 그러는 것인지 당췌 알 길이 없습니다유.”


“거 참 대단한 정보를 얻었군요, 올리버.”


“그러게 말야.” 올리버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이, 그래. 재밌는 이야기 잘 들었어. 달리 무슨 이야기는 없나? 콘월 저택에 대해서.”


“글쎄유. 저는 잘 모릅니다유. 그런데, 듣자 하니 청소를 한다는 모양인뎁슈?”


“청소?”


“넵. 청소유 청소. 싹 쓸어버리고 깨끗하게 만든다는데, 흉흉한 소문입쥬. 그렇게 고상하고 우아하신 후작 부인이 청소라니.”


“비유인가?”


“넵? 아, 넵. 그렇습니다요. 그러니까, 먼지를 싹싹 쓴다는게 아니라, 거 뭐시기냐. 오래된 찌꺼기를 박박 문질러 닦아내고, 뭐 그런걸 한다는것 같습니다유.”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청소잖아.” 올리버가 지적했다.


“그런가유? 말솜씨가 없어 죄송합니다유.”


“아니, 그래도 덕분에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군. 그래, 또 뭐 콘월 저택에 대해 아는건 없나?”


“에이, 너무 많이 말해버렸습니다유. 자꾸 떠들어 대면, 후작부인이 더이상 절 찾지 않을지도 모릅니다유. 저도 이렇게 좋은 돈벌이를 놓치기는 싫거든유.”


“아무렴요. 귀족이 돈줄이긴 하죠.”


펠릭스가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유? 그런데, 콘월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들은 영 하나같이 기운이 없어유. 돈도 많이 받을텐데. 나같으면 아주 매일매일 신이나서 방방 뛰어다닐텐데 말입쥬.”


“하인 다루는게 거친가?”


“그럴리가 없어유!” 올리버의 질문을, 하인은 일축했다. “얼마나 신사적인 분들인데유. 두 분 모두. 그렇지만, 왜인지 그 저택에는 무슨 침침하고 쿰쿰한 공기가 있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거기 사는 사람들은 다들 안색이 어딘가 안 좋아유.”


“오묘한 일이군.”


“그렇지유?”


“그러게요. 정말 뭐하는 곳인지······”


“아, 다 와 가유! 저기, 팻말 보이지유?”


마부는 저만치 멀리 갈림길에 세워진 나무 표지판을 가리켰다.


“저기서 꺾으면, 거기서부터 콘월 영지에유!”


“꽤 넓군.”


“그렇지유. 후작인데 그래도 땅덩이를 좀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유?”


“그러게말야.” 올리버는 실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출신을 알 수 없는, 사투리를 섞어 쓰는 이상한 마부는 갈림길에서 꺾은 뒤로도 한참을 더 떠들어대며 마차를 몰았다. 물론, 그것들은 이제 콘월 저택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단순한 어느 마부의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올리버는 그런 이야기라도 감지덕지라 생각하며 가끔 맞장구를 쳤다.


마부와 실없는 잡담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올리버의 얼굴에서는 긴장감이 좀처럼 사라지질 않았다. 야생에서는 날아다니다시피하는 올리버였지만, 이렇게 차갑고 딱딱한 저택에서는 그도 여느 사냥감 못지 않게, 한없이 약하고 평범한 인간이었다.




마침내, 마부가 이랴 하는 소리를 내며 고삐를 잡아당기자 마차는 부드럽게 속도를 줄여가나가며 어느 순간 완전히 멈춰섰다. 펠릭스와 올리버는 마부가 문을 열어주기 전에, 먼저 문을 열고 마차에서 가볍게 내렸다. 오래간만에 지면을 밟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그는 고개를 돌려 짙은 안개에 반쯤 잡아먹힌, 검고 음울한 콘월 후작의 저택을 돌아보았다.


“좋은 곳이쥬?”


눈치까지 없는 마부가 씩 웃으며 물었다. 살짝 축축한 바람이 불자, 안개가 살그머니 옆으로 움직이며 그 아래에 감추고 있던 검은 고목을 놀리듯 보여주었다.


“아주 좋은 곳이군요.”


“그렇쥬. 저도 나중에 이런 곳에서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겠구만유!”


“그 꿈. 꼭 이루길 바랍니다. 그럼, 이제 짐을 좀 내렸으면 하는데요. 올리버?”


펠릭스의 옆에 서서, 팔짱을 낀 채 두 눈을 찡그리며 콘월 후작의 저택을 노려보던 올리버는, 펠릭스의 말을 듣고 마차의 짐칸을 열어 상자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짐을 모두 내린것을 확인한 다음, 마부가 마차를 돌려 길 저편으로 사라진 뒤에 조심스럽게 콘월 저택의 현관문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곧, 어딘가 초췌한 인상의 하인이 나와 펠릭스의 얼굴을 살피고 도로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 무리의 하인들이 줄줄이 걸어나와 펠릭스가 가져온 짐들을 저택 안으로 조용히 나르기 시작했다.


“오셨네요.”


발소리도 없이, 어느순간 허깨비처럼 나타난 에밀리아가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마차를 일찍도 보내셨더군요.”


“어머, 조금 실례였을까요?”


펠릭스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저는,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게 제 삶의 자그마한 기쁨이거든요.”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부인. 올리버,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죠?”


“아, 그래. 그렇습니다, 후작부인.” 딴데 정신이 팔려, 무슨 이야기를 하는줄도 모르면서, 올리버는 펠릭스에게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 하인들을 시켜 방을 정리하도록 할게요.”


“제 작업실은?”


“이미, 준비해 뒀답니다.” 어딘가 미묘하게 켕기는 구석이 있는듯, 얼버무리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에밀리아가 말했다.


“다행이군요.”


“그럼, 저는 이제부터 제 방에서 서류 정리를 할 거랍니다. 사업 이야기는 점심식사 이후에 하도록 하죠.”


“편하신대로.”


“그럼.” 에밀리아는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편히 지내다 가시길.”


“성의에 감사드립니다, 후작부인.”


그러나 고개를 숙였던 펠릭스가 도로 고개를 들어올렸을 때는, 이미 에밀리아는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유령같군요.”


“그러게. 이 저택. 환기가 잘 안 되나? 뭔가, 공기가 무거워.”


“다른 원인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코를 킁킁거리며 펠릭스가 말했다.


“어떤? 무슨 신비로운 마법적인 힘을 가진 약초가, 지하실에서 자라기라도 하나?”


“굴뚝 안이나, 아니면 저택에 쓸 물을 길어오는 우물이나, 뭐 어디든지 가능성은 있죠. 제가 보기에는 그냥 기분탓 같지만.”


“나도 그러길 진심으로 바라지. 그런데, 바로 지금도 난 그 유령이 보이는 것 같거든.”


복도 저쪽 끄트머리에서, 두 눈만 간신히 보일 정도로 고개를 내민채, 이쪽을 보고있는 사람의 머리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올리버가 말했다.


“저도 보이는데. 헛것이 아닌가본데요?”


“제발, 헛것이라고 해줘, 펠릭스. 나 무섭단 말야.”


“내 참. 올리버. 나이 사십줄이나 먹은, 전쟁통에서도 살아남은 건장한 남자가 할 말은 아니군요.” 펠릭스는 그 머리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그러자, 머리는 모퉁이 너머로 쑥 사라져버렸다. 펠릭스는 재빨리 뛰어 모퉁이 너머를 돌아보았지만, 어느 방에서 문 닫히는 소리만 날 뿐 그 머리의 주인이 어디로 사라졌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펠릭스!”


“가요! 가. 잠시 어딘가 음산한 복도를 돌아보며 펠릭스는 혀를 차고는, 올리버가 있는 현관으로 돌아갔다.




“펠릭스. 헛것이었지?”


“모르죠. 불빛도 영 부족하고.” 펠릭스는 괜히 신경질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벽에 걸린 촛대를 힐끔 보며 말했다. “이 넓은 집을 밝히는데 양초를 쓰는 주제에, 그 양초 개수도 너무 모자라는군요.”


“채광이 좋은 집인가보지.”


“커튼으로 창문이란 창문은 다 가려놓고, 무슨 소용인데요?” 펠릭스가 마침 침침한 색깔의 커튼으로 가려진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햇볕에 약한 사람이 살지도.”


“흡혈귀 전설도 아니고. 하여튼, 콘월 후작이든, 아니면 후작 부인이든, 어쩌면 둘 다든 누군가는 조금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군요.”


“쉿. 귀족의 저택에는 벽에도 귀가있어.”


“들을 테면 들으라죠. 뭐, 들어 봤자 달리 어쩌겠어요? 혓바닥이라도 뽑아 보든가.”


“왜 또 심술이야, 펠릭스?”


“몰라요. 젠장. 여기 공기가 무겁긴 하군요. 아, 어쩌면 안개 때문일지도.”


주먹을 쥐고, 오른 무릎을 두드리며 펠릭스가 말했다.


“아, 하긴. 습기에 약하지?”


“그래요. 수세미도 아니고, 내 참······. 그래서, 여기가 대체 어디죠?”


펠릭스와 올리버는 입을 다물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택 어딘가의 어느 복도에 있다는 것 말고는, 그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몰라.”


일렁이는 촛불의 불빛에, 액자에 그려진 누군가의 초상이 섬뜩하게 흔들려 보였다.


“진짜 어디죠?”


“내가 어떻게 알겠어?” 사람의 소리라고는, 단 두명 분량밖에 들리지 않는 휑한 복도에서,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여긴 하인도 없나?”


“그럴리가. 아까 우리 짐 내려준 사람들 있잖아. 그것들은 유령이 아닐거 아냐?”


“그렇겠죠. 그래서, 여기가······.”


달칵,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그 소리는 방금 돌았던 모퉁이 저편에서 들려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발소리를 죽여가며 모퉁이 가까이로 걸어갔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물론 두 사람 모두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모퉁이 너머로 살짝 고개를 내밀자, 새하얗고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우아한 귀족의 옷을 걸치고, 금빛으로 반짝이는 장신구를 단 사람이 복도 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올리버는 처음에 그것을 보고 유령인가 하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펠릭스는 갑자기 성큼성큼 모퉁이 너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인기척을 느끼고, 그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다. 실비아였다.


“실비아!”


그러나, 펠릭스를 발견한 실비아는 깜짝 놀라더니, 복도 저편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니, 어디가요!”


졸지에 자그마한 추격전이 벌어졌고, 끼익 하며 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쾅 하고 도로 닫히는 소리가 났다. 올리버도 한발 늦게 소란이 벌어지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반쯤 열린 방문 너머에서, 실랑이 벌이는 소리가 났다.


“펠릭스. 귀족 영애한테 할 짓이 아냐.”


다행히, 방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 멀뚱히 선채, 말만 주고받고 있었다.


“귀족영애고 뭐고. 길 잃어 헤매이려는 찰나에, 아는 얼굴이 보여서 반갑다고 달려갔는데, 왜 도망쳐요?”


“...몰라요.”


“몰라요?”


펠릭스가 실비아의 말을 따라했다. 그러자 실비아는 조금 떨리는 눈으로 펠릭스를 곁눈질했다.


“그래, 참 퍽이나 대단한 이유군요. 해서, 친언니네 집은 지낼만 하던가요?”


“...그래요.”


“그래요. 그렇다니 저로서도 아주 다행이군요. 그래서, 실비아.” 실비아는 침을 꿀꺽 삼킨듯, 그녀의 목이 살짝 움직였다. “당신, 언니한테 허락을 해 줬다던데요. 저를 고용해도 된다고.”


“맞아요.”


실비아는 이번에도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이 대화가 어딘가 힘겨운지, 계속 불안하게 시선을 떨고 있었다.


“왜 그렇게 떨어요?”


“전, 그런적 없어요!”


“방금도 목소리 떨렸잖아요.”


“신경 꺼요.” 실비아가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이건, 내 문제에요.”


“네. 그렇다면야. 그럼 만난 김에 하나만 더 묻도록 하죠. 실비아.” 실비아가 다시 침을 꿀꺽 삼켰다. “당신, 약을 찾는 모험은 계속 할 건가요?”


실비아는 입을 열었다가, 그대로 잠시 가만히 있다가, 펠릭스의 시선을 피하며 도로 입을 다물었다.


“난 이곳에 일 주일정도 머문다고 들었지만, 당신도 아다시피 저는 솜씨가 아주 뛰어나요.”


실비아는 대꾸하지 않고 펠릭스의 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가급적이면, 이 저택에 머무는 동안에 당신 대답을 들었으면 해요.”


“제가 계속 하든 말든, 당신과는 상관없지 않아요?” 떨리는 목소리로 실비아가 말했다. “그 약값은, 이미 받았잖아요.”


“계약서. 기억하죠?” 실비아의 안색이 다시 조금 나빠졌다.


“네.”


“파기하면, 위약금을 물도록 했죠. 그러니까.” 펠릭스는 그런 와중에도, 평소처럼 느긋하게 씩 웃으며 말했다.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요.”


“저기, 펠릭스. 저는······”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요. 가죠, 올리버.”


“아, 그래.”


펠릭스는 실비아의 말을 마저 듣지도 않고, 올리버를 데리고 방을 나가 문을 닫아버렸다. 실비아는 그들의 발소리가 멀어지는것을 들으며 무언가 혼란스러운듯, 안절부절 못했다. 그런데, 그들의 발소리가 갑자기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실비아. 아직 안에 있어요?”


조심스러운 노크소리와 함께, 펠릭스의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네.”


“저기,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실비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말 하세요.”


“길을 잃었거든요. 좀, 안내좀 해 주겠어요?”


그 어처구니없고 하찮은 이유에, 잔뜩 긴장했던 실비아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하인 부르면 되잖아요.”


“보여야 부르죠. 미친놈처럼 문이란 문은 죄다 두드리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하여튼, 펠릭스. 알았어요.” 그리고 실비아는 다시 문을 열었다. 방금 대화를 나누던 때 보다, 훨씬 안정된 태도로. 얼굴에는 조금이나마 미소까지 띈 채.


“고맙군요.”


“부끄러운줄 좀 알아요. 집이 넓다고는 해도, 집에서 길을 잃는 사람이 어딨어요?”


귀족다운 우아한 걸음걸이로 앞장서서 걸으며 실비아가 말했다.


“남의집인데요 뭐.”


그러자, 실비아가 다시 풋 하고 웃었다.


“정말. 펠릭스. 당신은 참 속편하고 좋겠어요.”


“좀 그런 구석이 있긴 하죠.”


“가끔, 아주 정말 가끔이지만요.” 실비아의 목소리에서, 다시 기운이 사라졌다. “정말 가끔씩, 당신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 펠릭스.” 그리고 기운이 빠진 실비아의 목소리는, 가느다란 현악기의 소리처럼 들렸다.


“좀 더 자주 부러워해도 돼요.” 그러나 펠릭스에게, 실비아의 메시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여느 때처럼, 펠릭스는 평소와 같은 모습과 태도를 고수했다. 그도 사람인 이상, 실비아가 명백하게 평소와 달라보이는 것 정도는 알 텐데도.


“자, 다 왔어요. 이제 하인을 불러줄게요.”


다시 작게 웃고나서, 실비아는 몸을 돌려 펠릭스와 올리버를 향해, 귀족답게 우아하게 인사를 해 주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졌던 방향에서 곧 하인 두 명이 나와, 미안하다는 사과로 시작하여 저택 이곳저곳의 위치를 알려준 다음, 펠릭스와 올리버를 각자의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낯선 방에 들어온 펠릭스는, 가장 먼저 방 입구에 서서 크게 심호흡을 해 보았다. 별다른 것이 느껴지지 않아, 그는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그대로 몇 초 정도 숨을 참았다.

다시 숨을 내쉬면서, 펠릭스의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소리없이 수없이 많은 단어들과, 말이 되지 못한 문장의 파편들을 말하다가, 두 눈을 번쩍 떴다.


“아무 문제도 없군.”


그리고 그는 방 한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와, 다시 코를 킁킁거렸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군.”


펠릭스는 수상쩍다는 눈으로 방 이곳저곳을 흘깃거린 뒤에야,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그러고도 그는 뭔가 성에 차지 않은듯, 다시 사냥개처럼 코를 킁킁거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그맣게 소리를 내어 가며 그는 채 말이 되지 못한 단어의 파편들을 중얼거렸다.


“뭐하고있어, 펠릭스?”


“올리버.” 펠릭스는 다시 코를 킁킁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네 장래희망이 혹시 사냥개던가?”


“어린아이다운 발상이군요. 하기야, 요즘 어린 애들은 사냥을 나가본 적도 얼마 없겠지만.”


“애들 나름이지. 아무튼, 냄새는 자꾸 왜 맡는거야?” 올리버도 펠릭스를 따라 코를 킁킁거렸지만, 그도 딱히 별다른 냄새를 잡아낸 것 같지는 않았다.


“가설을 검증해 본 거죠.” 손가락으로 코끝을 가볍게 비비며 펠릭스가 말했다.


“무슨 가설?”


“저택 안에 수상한 어떤 생물이 자라고 있을 가능성. 그 어두컴컴하고 칙칙하며 축축한 공기가, 기분탓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설이요.”


“그래서, 네 결론은?”


“역시.” 펠릭스는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 크게 심호흡을 했다가, 숨을 뱉고 나서 대답했다. “기분탓이에요.”


“다행이랄지, 뭐랄지. 그렇지만 여기 온 뒤로 이렇게나 기분이 축축 처지는데?”


“기분탓이라니까요. 적어도 제가 느낄수 있는 범위 내에서, 포자나 약품, 또는 어떤 식물이나 동물의 냄새는 안 나요.” 하도 킁킁거렸는지, 코를 훌쩍이며 펠릭스가 말했다. “오히려, 여긴 거의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아요.”


“그러면, 진짜 기분탓인가?”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가능성이 높죠. 그래서, 올리버. 심심해서 놀러온 건가요?”


“뭐, 그런것도 있고.” 올리버는 현관에 비스듬히 기대섰다. “실비아 봤지?”


“네.”


“엄청 달라졌던데.”


“제가 보기에는 똑같던데요?”


올리버는 눈을 끔뻑였다.


“옷 다르게 입었잖아.”


“옷 바꿔입는다고 사람이 달라지나요?”


“걸음걸이에도 신경쓰던데.”


“남의 집이라 그렇겠죠. 하여튼, 남 시선 신경쓰긴. 나처럼 그냥 속편하게 살지.”


“실비아는 귀족이잖아.”


“귀족이라는 단어로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 하는군요, 올리버. 다른 귀족이 들으면 기분상해요.”


“다른 귀족 누구?”


펠릭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래. 뭔가, 달라졌어. 이곳에 온 뒤로. 여긴 정말 이상한 공간이야. 펠릭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냥 좀 넓은 저택일 뿐이에요, 올리버.” 펠릭스는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도 무언가 영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듯, 얼굴을 어딘가 찡그리고 있었다.


“왜?”


“아니, 별건 아니고.”


“뭔데?” 올리버가 물었다.


“사소한 문제에요.”


“그러니까, 그게 뭐냐니까?”


올리버가 다그치듯 말하자, 마침내 못마땅한 투로 펠릭스가 말했다.


“올리버. 왜 아직도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해 주는 하인이 안 오는거죠?”


“내 참.” 허탈한 표정으로, 올리버가 말했다. “정말 사소한 문제였군.”


“미리 말 했잖아요. 그리고, 배고프단 말이에요.”


“아니, 펠릭스 너는 이 저택의 공기라든가, 실비아의 달라진 태도라든가, 하인들의 얼굴 위를 떠도는 희뿌연 그림자라든가. 그 모든게 안 보여?”


“보여서 뭐 어쩔까요?” 결국, 펠릭스가 짜증스레 소리쳤다. “까무러치는 척이라도 할까요? 깜짝 놀라 ‘어이쿠, 귀족 나으리. 쇤내가 몰라뵀습니다’ 따위의 말이라도 할까요? 아니면 눈에 띄는 하인 하나하나마다 붙잡고서 이 저택에 드리운 지루하고 음침한 괴담이라도 캐물을까요?”


딱따구리처럼 펠릭스가 말을 따박따박 뱉자, 올리버도 잽싸게 한 걸음 후퇴했다.


“그래, 펠릭스. 네 말에도 일리는 있어. 내가 괜한 소리를 했군.”


“아니에요. 미안해요 올리버. 제가 조금 흥분했어요.” 올리버가 후퇴하자, 펠릭스도 금새 사과 했다. “젠장. 이 습기. 짜증나는 습기 같으니.” 펠릭스는 그렇게 말하며 방의 창문을 활짝 열었지만, 창문 너머에서 그를 반겨 주는 것은 축축한 안개 뿐이었다. 그래서 펠릭스는 금새 도로 창문을 쾅 닫아버렸다.


“깨지면 어쩌려고?”


“물어내죠 뭐. 아니면, 아예 역으로 고소라도 할까요? 사람을 고용해 놓고서는 밥도 제때 안 준다고······”


막 펠릭스가 그렇게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말을 내뱉었을 때, 문가에 기대선 올리버의 뒷편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


“저,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펠릭스가 하는 말을 들은 것인지, 제복을 입은 어린 소년이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올리버의 등 뒤에서 말했다.


“펠릭스. 밥 다 됐다네.”


“좋네요. 오늘 들은 말 중에서 최고로 좋은 말이군요. 가요!”


그리고 펠릭스는 침대에서 가볍게 튀어올라, 방금 자기가 내뱉은 말 따위는 더이상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태연히 하인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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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8화 21.10.31 29 1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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