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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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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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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166화

DUMMY

방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에 펠릭스는 고개를 쭉 뻗고 문에 대고 말했다.



“나가요, 나가. 좀 쉬게 내버려둬요.”



“내 딸, 내놔라!”



“뭐하려고요.”



“집으로 데려갈 것이다. 당장 내 놔라. 허튼 수작을 부리면······.”



“밖에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창문 바깥에는 눈송이들의 향연이 한창이었다. 해가 저물어서일까. 눈보라는 아까보다 더욱 거세졌다.



“데려가려고요? 저 눈보라를 뚫고?”



문 너머에서 실바누스 준남작의 불편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요.”



“허튼 짓 하기만 해 봐라.”



준남작은 경고를 던진 다음 펠릭스의 방에서 멀어졌다.







“당신 아버지는 성격이 왜저래요?”



준남작의 발소리가 충분히 멀어지자, 펠릭스는 침대 위에 걸터앉으며 여전히 멍한 실비아에게 말을 붙였다.



“저한테 묻지 말아요.”



잠시 방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따라오고 싶으면 따라와요.”



실비아는 고개를 들어올리고 펠릭스를 보았다. 그는 창문 바깥을 향해 시선을 던진 채, 눈보라 속을 꿰뚫어 보는듯했다.



“당신이 직접 찾지만 않으면 괜찮을 테니까. 뭐, 만지지 말고. 그런거 있잖아요.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만 하면 괜찮겠죠.”



“그래도 돼요? 그냥, 뒤에서 구경하기만 하면······.”



“그렇죠. 구경만 해서는 별 생각도 안 들겠죠. 하지만, 여긴 화이트클리프에요. 구경하는것도 벅찰걸요.”



펠릭스는 여전히 창밖을 내다본채 중얼거렸다. 이미 밤의 어둠에 가려 새하얀 깎아지른 산맥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두 눈은 어둠 속에 여전히 우뚝 서있을 산맥을 찬찬히 훑어보는듯 했다.



그리고 노크소리가 들려오자, 실비아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실바누스의 노크 소리는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가볍고 조심스러운 소리.



“들어와요.”



문이 달칵 열렸다. 문 틈으로 메를린의 얼굴이 얼핏 보이더니, 실비아와 눈이 마주치자 메를린은 환하게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 실비아. 반가워요. 펠릭스. 소란스럽던데, 무슨 일 있었어?”



“당사자랑 직접 말 해.”



펠릭스는 실비아쪽으로 눈길을 슬쩍 던지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 가게?”



“배고파.”



“피곤해 보이는데. 혹시, 내가 쉬지도 못하게 방해했나?”



펠릭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방을 나가버렸다.







펠릭스가 방을 비워주자 실비아와 메를린은 어색하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메를린은 평범하게 안부를 물으려다가, 실비아가 뭔가 고민이 있어 보여 입을 다물고 천천히 그녀를 기다려주었다.



“저기, 메를린. 마침 잘 왔어요.”



메를린은 그게 무슨 뜻이냐는듯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다.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갑자기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괜찮아요 실비아. 무슨 일 있었어요?”



“그러니까. 아빠랑 만났는데, 아빠가 그러는데······.”



실비아는 한동안 입을 우물거렸다.



“저 마녀래요.”



실비아의 고백을 듣고도 메를린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그대로였다.



“마녀요?”



“네. 그렇대요. 엄마가 마녀였는데, 제가 물려받았대요. 전, 저는, 정말 몰랐어요. 지금까지 하나도 몰랐어요.”



실비아는 혼잣말을 몇 마디 중얼거리다가, 대뜸 메를린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저 이제 어떡해요?”



메를린은 실비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를 살짝 끌어안아주었다.







메를린이 실비아를 껴안고 가볍게 토닥여주자, 실비아는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근거없는 불안감도 가라앉고, 낯선 기분도 줄어들었다.



“어떡하고 싶어요?”



메를린이 조용히 물어보았다.



“잘 모르겠어요. 전 마녀가 뭔지도 잘 몰라요. 메를린. 마녀가 뭐예요?”



메를린은 여전히 실비아를 품에 안은채 잠시 생각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조금 어려운 질문이네요. 체질이 남달리 독특한 사람이라고 할까요? 숲에서 나는 소리가 귀에 잘 들리고, 숲에서 나는 냄새를 잘 맡아요. 숲 속에 있는것은 뭐든 눈에 잘 보이죠. 예를 들자면, 전 나뭇잎 사이에 숨은 새를 그냥 볼 수 있어요. 펠릭스는 눈살을 찌푸리고 한참이나 찾아봐야 하지만.”



“그래요? 그게 정말이에요?”



메를린은 손을 옮겨 실비아의 머리를 찬찬히 쓰다듬었다.



“네. 약초를 찾을 때도 훨씬 편해요. 제 눈에는 보이거든요. 숲 속에 있는 거라면 뭐든지요. 덤불 속에 숨은 토끼가 귀를 쫑긋거리는거나, 샘물 속에서 헤엄치는 송사리떼. 민물 가재. 하늘을 날던 오리가 호수위에 사뿐히 내려앉으면, 그것도 바로 알 수 있어요. 마녀는 숲과 연결되어 있거든요.”



“연결요?”



“제 몸처럼 느껴져요. 숲에서 벌어지는 일은 뭐든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풍뎅이가 나무 껍질을 뜯고 수액을 핥기 시작하는것도 느낄 수 있죠. 낯선 사냥꾼들이 활과 그물, 덫을 들고 들어오는것도 알아요. 그러면, 저는 숲 속 동물들에게 알려주죠.”



“신기하네요.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메를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몰라요.”



“모른다구요?”



“네. 저희 어머니는 가르쳐 주지 않으셨으니까. 왜 그런지.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우리 마녀가 뭔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탄생했는지······.”



메를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잘 몰라요. 그저, 마녀로 태어나 마녀로 자랐으니까 마녀로 계속 사는 거예요. 절 가르치고 이끌어 줄 마녀도 이제 세상에 몇 없어요. 우린 점점 사라지고 있죠. 그래서, 마녀도 아닌 연금술사 대스승님께 비약과 요술을 배워야 할 정도로.”



메를린의 말은 늦가을에 홀로 떨어지는 낙엽처럼 쓸쓸한 구석이 있었다.



“아빠가 그만 돌아가라고 그랬어요. 넘지 못할 강을 건너지 말라면서.”



실비아가 투정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녀라는건, 어느 정도는 가지고 태어나는 거예요. 똑똑한 머리나 예쁜 얼굴, 보드랍고 매끄러운 머리카락이나 눈동자의 색깔처럼. 하지만, 마녀로 태어났다고 전부 마녀가 되는 것도 아니에요. 제대로 된 마녀가 되려면 숲이 있어야 해요. 숲에 뿌리를 내리면, 그 때부터 진짜 마녀라고 부를 수 있겠죠.”



“하지만, 여긴 숲이 없잖아요? 그렇죠?”



조금 기운차린 목소리로 말하더니, 실비아는 고개를 살짝 돌려 메를린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렇죠. 숲에 들어가서 의식을 치르지 않으면, 완전한 마녀가 될 수 없어요.”



“그럼, 저 겨울눈꽃 찾으러 가도 괜찮겠네요? 그리고 연금술도 계속 해도 괜찮을테고······.”



“그 부분이 조금 애매해요.”



메를린은 쓸쓸하게 웃으며 다시 실비아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숲에 뿌리를 내리는 의식은 두 가지가 전해져요. 하나는 숲 속에 솥을 걸고 약을 만들어 숲과 함께 만찬을 벌이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숲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껍질에 계약서를 새기는 것.”



“둘 다 지금 저랑은 상관없잖아요.”



“그것 말고도 많다는게 문제에요.”



“네?”



실비아가 눈을 휘둥그레 뜨자, 메를린은 미안하다는듯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전에는 훨씬 더 많았다고 해요. 언젠가 물어봤는데, 대스승님은 마녀가 되는 방법을 적어도 열 가지는 넘게 안다고 하셨어요. 거기에 조금 불확실한 이야기. 그러니까 구전 동화, 전설, 소문까지 포함하면 못해도 서른 가지는 된다던걸요.”



“그렇게, 마녀가 흔해요?”



“흔하다기 보다는, 딱히 정해진 의식의 수순이라는게 없다고 봐야겠죠. 숲이 받아들여 준다면야 복잡하고 힘든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실비아. 이런 거예요.



어떤 연금술 약을 만드는 과정이 숲과 계약을 맺는 과정의 일부일지도 몰라요. 또는 전체거나. 특별한 재료를 구하려고 숲 속을 헤매고 다니는게 계약의 과정일수도 있죠. 당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 한 마디가 계약의 선언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저로서도 확답은 못 해 주겠어요. 겨울눈꽃을 찾으러 가도 괜찮다든가, 연금술을 계속 해도 괜찮다든가.”



메를린은 실비아의 머리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



“미안해요 실비아.”



메를린은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실비아에게 사과했다.



“당신은 잘못한 거 없잖아요.”



“그래도요. 전 마녀인걸요. 미안해요, 실비아.”



실비아는 고개를 살짝 돌려 메를린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러자 메를린도 더이상 실비아의 머리를 쓰다듬지 않았다.







한동안 메를린의 가슴에 안겨있던 실비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훨씬 진정된 모습으로 메를린에게 물어보았다.



“메를린. 마녀로 살아가기 힘든가요?”



메를린은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마녀가 된다 해도, 별로 특별히 달라지는건 없어요. 숲 속에서 혼자 산다는것 말고는.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하고,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워요. 딱딱한 침대는 여전히 불편하죠. 그래도, 감기에 걸리는 일은 거의 없어요.”



“감기에 안 걸려요?”



“전 걸린적 없어요. 어릴때 이후로는.”



메를린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외롭겠죠. 숲 속에서 혼자 살아야 하니까. 숲속 동물들과 식물들이 친구가 되어주지만, 하지만 사람 친구는 사귀기 힘들 거예요. 편지를 써도 배달해 줄 우체부가 없고, 우체통도 없죠. 굳이 마녀가 뿌리내린 숲으로 걸어올 사람도 몇 없을테고.”



실비아는 쓸쓸하고 고독한 마녀의 삶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숲이 다치는것도 문제에요. 요즘은 숲을 벌목하고 도시를 넓히거나, 밭을 늘리거나 하는 일이 많으니까. 뿌리내린 숲이 사라져버리면, 마녀도 같이 사라지거든요.”



“사라진다는게 무슨 뜻이에요?”



메를린은 쓸쓸하게 웃었다.



“뿌리가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숲을 벗어날 수도 있잖아요. 지금, 당신이 여기 있는 것처럼요.”



“잠깐은 괜찮아요. 하지만, 오래 있을 수는 없어요. 물고기도 잠깐정도는 물 밖에서 죽지 않죠. 그렇지만, 물 밖에서 계속 살아갈 수는 없어요.”



실비아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더니 메를린의 가슴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마녀는 왜 그래요?”



메를린은 실비아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그러게요. 미안해요, 실비아.”







한동안 실비아를 달래준 뒤에 메를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생각해 봐요 실비아. 마녀로 살아가는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마녀가 된다면 숲 속에 숨어있던 수많은 요정들이 당신의 귓가에 신비를 속삭여 주겠죠. 그 대신, 잃는 것도 많아요.”



“생각해 보라고 해도······.”



“아무래도 충격이 컸죠? 진정제라도 만들어 줄까요?”



실비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알았어요. 그럼, 찬찬히 생각해 봐요 실비아.”



“겨울눈꽃. 제가 만지면 안 되나요?”



방을 나서려던 메를린이 걸음을 멈추었다.



“아빠가 그랬어요. 존재하지 않는 재료라고. 마녀가 만들어낸 거라고.”



“어느정도는 사실이에요. 한 겨울에 눈 위에서 꽃 피우는 식물은 없어요. 그렇다면, 마녀가 요술을 부려 만들어 낸 건지도 모르죠. 하지만.”



메를린은 고개를 뒤로 돌려 살짝 웃어보였다.



“우연히 꽃이 떨어졌을지도 모르죠. 어딘가에 한 겨울에 피는 꽃이 있을 지도 몰라요. 절벽 위에서 눈보라를 맞아가며 피어난 꽃이 바람에 날려 눈밭 위로 떨어졌을지도. 아니면, 정말로 눈 속에서 싹을 틔우고 하룻밤사이에 줄기를 키워올려 꽃을 피웠을지도 몰라요.”



“메를린······.”



“실비아. 잘 생각해 봐요. 마녀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여행을 계속 할 지, 아니면 그만 여기서 멈출지. 어떤 선택을 내리든 후회는 남겠지만, 그래도 덜 후회하는 길을 찾아봐요.”



“메를린. 잘못 선택하면 어떡해요? 실수로 잘못 선택하면, 그러면 저 어떡하죠?”



메를린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로잡아요. 너무 늦기 전에. 저는 너무 늦어버렸지만, 실비아. 당신은 똑똑하고, 똑부러지는 사람이니까 괜찮을 거예요.”



“마녀를 포기할 수도 있어요?”



“가능할 거예요. 저는 그 방법을 모르지만. 대스승님도 모르겠죠. 그래도, 어딘가에 있지 않겠어요?”



메를린은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은 그 어떤 때보다 쓸쓸해 보였다.



“실비아. 전 이만 가 볼게요. 펠릭스의 방을 너무 오래 빼앗기는 싫으니까.”



메를린이 살며시 문을 닫고 방을 나갔다. 그러자 실비아도 금새 자리에서 일어나 펠릭스의 방을 비우고 나가주었다.







여관 일층 창가 자리에 실바누스 준남작이 앉아있었다. 그러자 펠릭스는 준남작의 뒷쪽 테이블에 털썩 앉았다. 의자에 앉고 몇초 지나지 않아 등 뒤에서 드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실바누스가 눈앞에 나타나 펠릭스의 바로 맞은편에 앉았다.



“쉰다더니.”



준남작이 짜증어린 눈으로 펠릭스를 힐끔거렸다.



“방을 뺏겼어요.”



“누구한테? 강도라도 들었나?”



강도라는 단어에 다른 손님들과 여관 주인이 살짝 동요했다.



“손에 칼 안든 강도가 한 명 있어서요. 제 방을 뺏어 갔어요.”



“왜 왔나.”



펠릭스는 준남작을 힐끔 곁눈질했다.



“실비아가 마녀라면서요? 엄밀히 따지자면, 마녀 딸이라고.”



“엿들은거냐.”



“네.”



준남작이 눈을 부라렸다.



“품위라고는 전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군.”



“집안 방침이라.”



펠릭스는 얄밉게 씩 웃었다.



“그래서. 사실이다. 실비아는 마녀의 피를 물려받았다.”



“그래요? 그럼, 준남작. 당신 아내가 마녀였군요. 알고 결혼했어요?”



준남작은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제대로 모르고 결혼했다. 그녀가 진짜 마녀였다고 확신한건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대단하네요. 어떻게 알았는데요? 당신 아내 가족이나 친구분들이 찾아왔어요?”



“내 아내는 홀몸이었어.”



펠릭스는 입을 쑥 다물었다.



“실비아의 뒤를 쫓다가, 숲 속에서 연금술사 무리를 찾았다. 그 무리의 수장이 내게 알려줬다.”



“하여튼, 아이작. 입 가볍기가 봄날 참새보다 가벼워서야. 그래서, 실비아를 데려가시겠다? 마녀로 만들기는 싫으니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준남작은 다시 시선을 돌려 펠릭스의 눈을 노려보았다.



“내 아내. 마녀였지만 숲을 벗어났지. 첫 한두 달은 괜찮았다. 비를 흠뻑 머금고 피어난 꽃처럼 싱그러웠어. 하지만, 금새 메마르기 시작했다. 실비아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죽어버렸다. 병든 곳도 하나 없고, 다친 데도 하나 없었다. 그런데도 계속 아파했다. 그리고, 결국 죽어버렸다.”



펠릭스는 눈하나 깜짝 않고 조용히 준남작의 말을 들었다.



“마녀가 되면 묶여버린다. 한 곳에 두 발을 묶여버린다. 실비아는 집안이 답답하다며 유서를 남기고 가출한 아이다. 그런 아이를, 도로 숲에 묶어두겠다고? 그렇게 놔 둘 수는 없다.”



실바누스는 다시 창밖으로 도망치듯 시선을 던져버렸다.



“자유를 맛보고는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방방 뛰더니, 갑자기 자기 목에 목줄을 채우고 스스로를 숲 속에 가두려고 한다. 그렇게는 못 놔둔다.”



“따님 사랑이 대단히 지극하시네요.”



“비웃지 마라!”



실바누스가 다시 눈을 부라렸다.



“그래서, 실비아를 데려가시겠다? 숲 속에 영영 처박아두기 싫으니까?”



“부모라면 다들 그렇게 생각할거다. 네 부모라고 다르겠냐?”



“네. 우리엄만 다르죠.”



실바누스는 한숨을 쉬었다.



“네놈과 말을 하고 있으면, 내가 바보 천치가 된 기분이다.”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준남작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뭐, 준남작. 나도 당신 사정은 알겠어요. 마녀라. 보통 일이 아니긴 하죠.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실비아가 마녀가 되는데는 찬성 안 합니다.”



“그래? 의외로 순순하군.”



“아, 물론. 그렇다고 실비아를 데려가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바누스의 얼굴이 구겨졌다.



“실비아가 직접 고를 때까지 기다려줘요.”



실바누스의 구겨진 얼굴이 슬쩍 펴지더니, 그가 한쪽 눈을 치켜떴다.



“무슨 뜻이냐.”



“부탁하러 온 겁니다. 아버지라면 그정도는 기다려줘요. 실비아가 돌아가겠다고 직접 말한다면, 저도 안 말리겠습니다. 계약도 그걸로 파기하고, 위약금도 물지 않겠습니다. 계약 조건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은 내 탓이니까.”



“이상할 정도로 고분고분하군.”



“뭐, 저도 사정이 있는지라.”



펠릭스는 한숨을 내쉬더니 준남작과 마찬가지로 창 밖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저도 실비아에게 바라는게 있어요. 다른 그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못해요. 오직 실비아만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어요.



그것도, 억지로 시켜서는 안 돼요. 속임수를 쓸 수도 없어요. 진심에서 우러나와야만 하거든요. 그녀가 스스로 원해서 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뭘 부탁하려고?”



“약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겁니다. 마녀와는 상관없는 약이에요. 그건 안심해도 좋아요.”



펠릭스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실비아가 돌아가겠다고 하면, 저도 붙잡지 않고 돌려 보내 드리죠. 억지로 붙들어 봤자 소용없으니까. 하지만, 실비아가 결정 내리기 전까지는 당신도 기다려줘요. 만약 억지로 데려가면, 계약서에 적힌 대로 위약금 물 겁니다.”



“무슨 꿍꿍이냐.”



펠릭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하곤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저, 약 하나만 부탁할겁니다. 재료도 곧 다 모여요. 만드는데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아요.”



“네놈. 듣자하니 뛰어난 연금술사라면서, 내 딸에게 약을 부탁한다고?”



“별거 아니에요. 그냥, 개인적인 소망이 있습니다. 스스로는 이루지 못하는 소망. 누가 도와줘야만 하는 소망.”



실바누스 준남작은 한동안 펠릭스의 옆얼굴을 경계하는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펠릭스는 그는 안중에도 없다는듯 창문 밖을 보았다. 여전히 눈보라가 몰아치는 극북의 땅. 차갑고 황량한 땅. 한 줌의 사람들이 눈보라를 맞아가며 힘겹게 한해를 겨우겨우 살아가는 그런 땅.



“준남작님. 하나만 묻겠습니다. 실비아가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면, 그땐 어쩔 셈입니까?”



“제 엄마와 같은 길을 걷도록 할 수는 없다.”



“그러면요?”



“내가 찾을거다. 실비아가 찾는 그 물건. 내가, 내 손으로 찾아 넘겨줄 것이다. 나는 마녀를 믿지 않고, 요술을 믿지도 않으며, 연금술또한 믿지 않는다. 기적과 미신을 믿지 않고, 오로지 따르는 것은 나의 이성과 지식 뿐이다. 따라서.”



실바누스 준남작은 단호한 얼굴로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내가 찾아 넘겨줄 것이다. 신기한 이야기가 얽히지 않았으니, 아마 약효따윈 없겠지. 하지만, 그또한 분명 겨울눈꽃이다. 그렇지 않나?”



“거 참. 대단하네요. 뭐, 한번 애써보십시오. 죽지나 않도록 조심하고. 이 계절의 북쪽은,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이니까.”



“너도 조심해라, 연금술사.”



두 사람은 조용히 창문 바깥을 내다보았다. 창문 너머, 저 멀리에 칼날처럼 깎아지른 새하얀 벼랑이 어슴푸레 보였다.







밤이 깊어오며 여관의 불도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여관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올리버처럼 금새 잠든 사람도 있었고, 실비아처럼 한동안 몸을 뒤척이다 겨우 잠든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펠릭스처럼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두 눈에서 빛을 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왔다. 사람들이 잠을 자든 말든, 아침은 밝아왔다.



태양의 서광이 대지에 내리쬐자 간밤에 내린 눈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녹은 눈이 얼음이 되지 않도록, 여관 주인을 비롯한 화이트클리프 마을 사람들은 벌써 빗자루를 들고 겹겹이 쌓인 눈을 힘겹게 털어냈다.



가벼운 아침식사를 마치는 동안, 여관 안은 쥐죽은듯 조용했다. 마침내, 화이트클리프 산맥으로 향하는 길 앞에서, 펠릭스의 일행과 실바누스 준남작, 그리고 메를린이 재회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곁눈질로 서로의 모습을 살폈다. 모피옷을 입은 준남작. 가을 옷이나 별 다를바 없이 얇은 옷을 입은 메를린. 옷을 겹겹이 껴입고 이런저런 등산 장비들로 중무장을 하고 온 올리버. 보슬보슬한 털옷을 입은 실비아. 펠릭스는 메를린과 마찬가지로, 여느때처럼 조끼 하나 걸친게 고작이었다.



“뭐, 다들. 여기까지 온 이유야 똑같겠죠.”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생각은 다들 똑같아 보였다.



“겨울눈꽃. 이제는 존재조차 모르고, 찾는 사람도 없는 물건. 존재하지 않는 재료들 중에서도, 가장 유난스러운 재료. 어디, 누가 먼저 찾나 한번 해 봅시다.”



“너무 여유부리지 않는게 좋을걸, 펠릭스.”



메를린이 먼저 길 위로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새하얀 산맥 너머에서 한 무리의 새떼가 날아올랐다.



“난 마녀니까. 여긴 숲은 아니지만, 날 도와줄 동물들은 많아. 그럼 난 먼저 갈게.”



메를린은 머리위를 둥글게 빙빙 도는 새떼들의 호위를 받으며 먼저 기나긴 길을 출발했다.



이번에는 등 뒤에서 달그닥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노새가 끄는 짐수레와 인부들이 길 위로 척척 모여들었다.



“나도 가지. 너무 여유부리지 않는게 좋을거다, 연금술사.”



“아니. 준남작. 이건 반칙이죠. 밟히지 않은 새 눈에 피는 꽃인데, 사람들을 이렇게 데려오면······.”



“아직까지도 투정부릴 여유가 남아있나?”



준남작은 노새의 등에 올타다더니, 인부들을 몰고 역시 화이트클리프의 새하얀 산맥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펠릭스. 며칠이나 걸릴까?”



“모르죠.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못 찾으면 올해는 끝이에요.”



“어째서요?”



펠릭스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눈보라가 조금 줄어들고 백야가 찾아와요. 그러면 해 닿지 않은 새 눈이 줄어들겠죠. 백야는 한 달이나 계속 되니까, 올해 12월이 끝나기 전까지는 겨울 눈꽃은 무리겠죠.”



“저 산 속에서 일주일이라. 버틸 수나 있을까?”



“죽겠죠. 당연히. 내가 볼 땐 사흘도 무리에요. 하룻밤을 버티기만 해도 기적일걸요?”



올리버나 실비아의 안색이 굳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가 보자고요. 재료 찾으러. 아 참.”



길을 향해 막 걸음을 옮기려던 펠릭스는, 갑자기 싱긋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화이트클리프 별명이 뭔줄 알아요?”



실비아는 눈을 깜빡거렸다.



“뭔데요?”



“단두대.”



펠릭스는 손을 들어 새하얗고 깎아지른 절벽을 가리켰다.



“그럴싸하지 않아요?”



펠릭스는 혼자 키득키득 웃더니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새하얀 산맥 위에 자리잡은 칼날처럼 깎아지른 절벽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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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에필로그 22.01.13 57 1 4쪽
171 마지막화 22.01.13 44 1 22쪽
170 170화 22.01.12 38 1 24쪽
169 169화 22.01.11 34 1 24쪽
168 168화 22.01.10 36 1 23쪽
167 167화 22.01.09 38 1 22쪽
» 166화 22.01.08 35 1 23쪽
165 165화 22.01.07 38 1 26쪽
164 164화 22.01.06 33 1 22쪽
163 163화 22.01.05 38 1 24쪽
162 162화 22.01.04 39 1 22쪽
161 161화 22.01.03 35 1 22쪽
160 160화 22.01.02 37 1 25쪽
159 159화 22.01.01 38 1 23쪽
158 158화 21.12.31 33 1 21쪽
157 157화 21.12.30 38 1 23쪽
156 156화 21.12.29 35 1 24쪽
155 155화 21.12.28 36 1 24쪽
154 154화 21.12.27 42 1 22쪽
153 153화 21.12.26 45 1 24쪽
152 152화 21.12.25 41 1 21쪽
151 151화 21.12.24 40 1 24쪽
150 150화 21.12.23 40 1 22쪽
149 149화 21.12.22 40 1 21쪽
148 148화 21.12.21 41 1 22쪽
147 147화 21.12.20 45 1 22쪽
146 146화 21.12.20 41 1 21쪽
145 145화 21.12.19 44 1 22쪽
144 144화 21.12.18 47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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