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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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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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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157화

DUMMY

불 꺼진 솥은 차갑게 식어가기만 했다. 그러나 펠릭스는 새 장작을 채워넣지 않았다.



“뭐, 실비아. 나름대로 흥미로운 지적이었어요. 물론, 난 동의 못 하지만. 아무리 제이콥이 맛이 갔다 해도, 까짓 제자의 마음을 돌려보겠다고 그렇게 끔찍한 병을 만들어요?”



“모를 일이죠.”



“그래요. 모를 일이죠. 그리고 뭐가 됐든 간에, 지금 상황에서는 별로 도움도 안 돼요. 제이콥이 무슨 생각으로 약을 만들었는지 따위는.”



실비아는 테이블 위에 쓰러진 약병을 손 끝으로 데구르르 굴려보았다.



“그래서, 이제 어떡해요?”



“난 그 병을 재현하는데도 실패했고, 쓸만한 단서도 결국 못 찾았죠.”



“속수무책이네요.”



“뭐······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봐야죠. 그렇지만, 아예 방법이 없지는 않아요.”



펠릭스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의자를 뒤로 젖혀 위태롭게 까딱거렸다.



“무슨 방법이 있는데요?”



“하나는 어거지로 약을 만드는 것. 당신이 우리 집에서 했던 것처럼. 빅터와 첼시의 정신머리를 뜯어고쳤듯이.”



“못 하죠?”



실비아는 펠릭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 할 수 있었으면 진작에 했을 거잖아요.”



“맞아요. 못해요. 어려워요. 이미 예전에 해 봤지만, 별 효과는 못 봤어요. 이번에는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은 낮죠.”



“다른 방법도 있어요?”



“네.”



펠릭스는 더욱 위태롭게, 금방이라도 뒤로 쓰러질듯 아슬아슬하게 의자를 까딱까딱했다.



“아까 내가 말 했죠. 연금술은 결국 마녀의 요술에서 출발했다고.”



“그랬죠.”



“그러니까, 반대로 마녀의 요술에 기대볼 수도 있죠. 그건 더이상 연금술이라고 부르기도 뭣하겠지만.”



“방법이 있어요?”



“없진 않아요. 그건 예전에도 효과를 봤어요.”



“효과를 봤다고요? 그러면, 그 때도······.”



“산제물을 바쳐 역병을 막는 건, 연금술사가 할 만한 일이 아니에요.”



펠릭스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메를린이 자기 피를 뽑아서 약을 달였어요. 신체의 일부는 전체를 대표하죠. 마녀의 피가 섞인 약은 그 자체로 마녀와 같아요. 그리고 마녀는 요술을 부릴 수 있고요. 비록 그 피가 희석됐다고 해도, 요술 부리는 법을 제대로 전수받지 못했다 해도, 메를린은 분명히 마녀에요.”



실비아는 동화같은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서요?”



“메를린의 약은 효과가 있었어요. 하지만, 금방 계산해보니 턱없이 모자랐어요.”



“뭐가요?”



“시간. 그리고 피.”



펠릭스는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분명 병에는 차도가 있었죠. 하지만, 병을 완전히 낫게 하려면 한 사람당 적어도 열 병 남짓 약을 먹어야 했어요. 그런데, 그 때 환자가 수십명은 됐거든요. 그 사람들 전부 약 만들어주다가는, 메를린은 피를 쪽 빨려서 바싹 말라 죽을걸요. 그래서 내가 엎어버렸어요. 이 약은 못 쓴다고.”



실비아는 씁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전 몰랐어요.”



“이제 다 지나간 일일 뿐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것도 못 쓰겠죠. 마녀가 없으니까. 아니면, 실비아. 혹시 당신 마녀의 피가 섞였나요?”



“그럴리가요.”



실비아는 한숨을 폭 쉬었다.



“그렇겠죠. 그럼, 뭐. 방법은 하나밖에 안 남았나.”



“그래도 방법이 있긴 해요?”



“네.”



펠릭스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그건 정말 최후의 방법이에요. 나로서도 별로 쓰고 싶지 않고. 그러니, 일단 미뤄둘 겁니다. 다른 방법을 먼저 시험할 거예요.”



“그 최후의 방법은, 무슨 방법인데요?”



“제이콥이 썼다가 실패한 방법.”



펠릭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난 제이콥과 같은 길을 걷기 싫거든요. 그건 정말 최후의 수단이에요. 뭐, 쓰고 싶다고 함부로 쓸 수 있는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우선 몇 가지 약을 시험해 보자고요. 아직 우리에겐 방법이 남았으니까.”



펠릭스는 부지깽이를 집어들고 솥 아래의 잿더미를 끌어낸 뒤, 밖으로 나가 새로 장작을 한아름 들고 돌아왔다.







멍한 눈으로 솥을 노려보며 펠릭스는 주걱으로 유백색의 액체를 휘휘 젓고 있었다. 그건 물에 녹말을 탄 것과 비슷해 보였지만, 정작 펠릭스는 가루 모양의 재료는 단 하나도 솥에 넣은 적이 없었다.



“어이, 이봐. 어린 연금술사들.”



노크 소리가 들리자 실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새 작업실 문이 달칵 열리더니 올리버가 고개를 안으로 불쑥 밀어넣었다.



“배 안 고파?”



“아, 올리버. 지금은 못 나가요.”



올리버는 솥을 휘적휘적 젓고있는 펠릭스를 힐끗 보더니 실비아에게 눈을 돌렸다.



“실비아. 너는?”



“저도 딱히······.”



“제 때 식사 하는게 좋을걸. 끼니를 거르면 지금 당장에는 어떨지 몰라도, 나중에 갑자기 엄청 배고파져. 그러면 평소보다 빨리, 많이 먹게 되고, 그러면 체하기도 하고······.”



“알았어요. 고마워요 올리버.”



“뭐, 실비아 너는 달리 하는 것도 없어보이는데. 같이 식사 준비라도 할래?”



실비아는 펠릭스 쪽으로 눈을 돌렸다.



“가고싶으면 가요. 어차피 지금은 당신이 도와줄것도 없으니까.”



“그럼, 잠깐 다녀올게요.”



실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쓰러진 약병들을 도로 줄세운 뒤, 작업실을 벗어났다.







실비아는 올리버와 나란히 서서 잡아온 산비둘기의 깃털을 뽑아냈다.



“안 징그러워?”



“처음 봤을 때는 기겁을 했었죠.”



실비아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별 생각도 안 드네요.”



“허, 그래? 그래도 내장 손질까지 맡기기는 무리겠지.”



“내장은, 아직 좀······.”



실비아가 멋쩍게 웃자, 올리버는 그녀의 손에서 털 뽑힌 비둘기를 넘겨받았다.



“됐어. 무리하지 마. 넌 바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귀족이었잖아.”



“지금도 귀족이거든요.”



“아니, 물론 그렇지. 그러니까, 내 말은. 거친 일을 모르고 살던 귀족이었다는 뜻이지.”



올리버는 주머니칼을 꺼내 비둘기의 뱃가죽을 슥 잘랐다. 그러자 역겨운 냄새가 실비아의 코끝을 찔러댔다.



“으, 욱······.”



“못참겠으면 잠깐 딴데 가 있어.”



“그럼, 조금만 떨어져 있을게요.”



실비아는 손을 씻고 올리버에게서 슬금슬금 멀어졌다. 그러자 올리버는 아주 능숙하게 칼을 휙휙 놀려 비둘기의 내장을 땄다.



“올리버. 당신은 혼자서 안 심심했어요?”



“난 혼자 시간 보내는데 일가견이 있거든.”



“펠릭스랑 똑같은 말을 하네요.”



“뭐, 걘 나랑 제법 오래 있었으니까.”



올리버는 순식간에 비둘기 한 마리를 손질했다.



“올리버. 당신은, 저기. 안 무서워요?”



“무섭다니, 뭘?”



새 비둘기를 덥썩 붙잡고 털을 뽑으며 올리버가 되물었다.



“그러니까, 붉은 가루 병이라든가. 펠릭스가 약을 만들수 있을까 하는 거라든가.”



“병이야 무섭지. 하지만, 펠릭스가 막아뒀잖아.”



올리버는 주머니칼의 칼끝으로 복도를 가로막은 커튼을 가리켰다.



“펠릭스가 약을 만들 수 있을까요?”



“아마도.”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알기는. 연례 연금술사 교류회에서 아이작이 공언했잖아.”



올리버는 잠시 손을 멈추고 웃으며 실비아를 돌아보았다.



“최고의 연금술사라며. 제이콥보다 펠릭스가 뛰어나니까 그런 칭호를 붙여준 것 아니겠어?”



“제가 보기에는, 그저 농담 같던데······.”



올리버는 피식 웃으며 다시 손질을 시작했다.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라 그래. 뭐, 펠릭스도 그런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하지만, 둘 다 진지한 사람이라고. 아이작이 펠릭스를 가리켜 최고라고 했다면, 그건 정말로 펠릭스가 최고라는 뜻이야. 적어도, 아이작이 아는 사람들 중에서는 그렇겠지. 그나저나, 그 아이작을 상대로 최고라는 칭호를 따 내다니. 펠릭스도 참. 대단하긴 해.”



“전 별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솔직히, 그 때는 좀 엉망진창이니까. 제대로 약을 만들어 승부를 본 게 아니라, 혓바닥으로······.”



실비아는 뭔가 떠오를듯말듯했다.



“아, 올리버! 저 잠깐 갔다올게요.”



“그래, 뭐 다녀와. 안 돌아와도 괜찮지만······.”



올리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작업실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올리버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주머니칼로 계속 비둘기를 손질했다.







“펠릭스! 그 때, 그 방법을 쓰면 안 돼요?”



작업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실비아가 호들갑을 떨자, 펠릭스는 선명하게 빛나는 녹색 액체가 그득한 솥에서 주걱을 떠올렸다. 그러자 끈적한 녹색 액체가 주걱을 따라 길게 꼬리를 만들며 딸려올라왔다.



“무슨 방법이요?”



“그, 왜. 있잖아요. 당신이 엘릭서를 가지고 억지 부렸을 때처럼요. 당신이 약을 만든 다음, 이게 엘릭서의 치료약이라고 공언하면 안 돼요?”



펠릭스는 도로 주걱을 솥에 풍덩 빠뜨렸다. 그러자 끈적한 액체가 솥 밖으로 조금 튀었다.



“안 돼요.”



“안 돼요? 그걸로 대스승님은 이겼잖아요.”



“대스승님이 져 준 거예요. 그리고, 그 때는 다른 연금술사들도 같이 있었잖아요. 하지만 여긴 나랑 당신 뿐이에요.”



“······안 돼요?”



펠릭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연금술 약에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게 작용하죠. 비단 약을 만드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 뿐만 아니라,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 지켜보는 사람. 멀찌감찌 떨어져서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 그 모든 사람들의 마음가짐도 약에 영향을 미쳐요.”



“그정도라고요? 약이랑 별 상관도 없는 사람들까지······.”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아이작도 붉은 가루 병이 돌았을 때 속수무책인거죠. 엘릭서고 뭐고. 사람들이 믿어 주지도 않는데, 무슨 소용이었겠어요. 아무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죠. 자, 잘 들어요.”



펠릭스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여기서 내가 무슨 약을 만들어서, 그걸 붉은 가루 병의 치료약이라고 공언한들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 때 그 병을 겪은 수많은 연금술사들은 여전히 그 병을 불치의 병이라고 믿고 있다고요. 그리고 당장 복도 저쪽에는 그 병을 만든 장본인인 제이콥이 있죠. 어지간한 약으로는 그 모든 마음들, 불신과 아집에 찬 마음들을 못 꺾어요.”



“하지만, 엘릭서로는 했잖아요. 당신이 만든 엘릭서가 진짜 엘릭서가 됐잖아요. 대스승님이 만든 엘릭서를 가짜로 만들었잖아요. 그 약에 따라오는 역사와 이야기들도 모두······.”



“그러니까. 엘릭서랑 달라요. 그건 진작부터 우리 전부가 반신반의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살짝 혓바닥을 놀리고 등을 떠밀어서 약을 바꿔치기 할 수 있었던 거라고요.”



펠릭스는 연신 솥을 저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못 써요. 엘릭서랑 달라요.”



실비아는 방금전까지 앉아있던 조그만 나무 의자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럼 어떡해요?”



“달리 좋은 수가 없으니, 일단은 옛날 방법이라도 써 봐야죠.”



“무슨 방법이요?”



“좀 더 미신적인, 주술에 가까운, 마녀가 부리는 요술에 가까운 방법.”



펠릭스는 주걱을 솥에서 뽑아 옆에 걸어두고 장작의 불을 키웠다.



“그 병은 ‘붉은’ ‘가루’ 병이죠. 그래서 푸르고 끈적한 약을 만들어 봤어요. 빨간 색과 반대 효과를 내도록 파란 색으로 만들었고, 가루를 날리지 못하도록 아주 끈끈한 약을 만들었죠.”



“허브를 찢어넣은 밀가루 반죽이랑 뭐가 달라요?”



실비아는 모처럼 떠올린 생각이 무시당해서 그런지 입술을 비죽였다.



“비슷하죠. 대신, 이쪽에는 약재를 훨씬 더 많이 넣었다는 정도가 차이일까.”



“그게 효과가 있어요?”



“없지는 않아요.”



장작불이 화륵 타오르자 펠릭스는 다시 그 끈끈한 액체에 주걱을 집어넣고 젓기 시작했다.



“황달 환자에게 노란 뿌리를 먹인다든가. 홍역 환자에게 빨간 나무 열매를 먹인다든가. 죄다 미신에 가까웠지만, 개중에는 분명 효과를 거둔 것도 있어요. 그리고, 내가 말 했죠? 연금술 약에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선명한 녹색의 액체는 얼마나 끈적한지 펠릭스는 구슬땀을 삐질 흘리며 솥을 젓고 있었다.



“내가 앓고 있는 병과 비슷해 보여서, 또는 정 반대로 보여서 효과가 있을거라는 믿음. 미신에 가깝지만 그런거에라도 기댈 수밖에요.”



펠릭스의 두 팔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제가 도와줄까요?”



“됐어요. 당신이 도와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경지에 올랐다면 또 모를까. 그래서야 눈 먼 장님한테 일을 맡기는거랑 다를게 없죠.”



그 뒤로 펠릭스는 몇십분동안 부득부득 혼자서 솥을 휘저었다. 얼마나 걸쭉한지, 장작의 불을 끄고 솥을 기울여도 내용물이 흘러나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제대로 된 것 맞아요?”



실비아는 젤리처럼 탱글거리며 기울어진 솥 바닥에 아슬아슬 붙어있는 녹색 덩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대로 되긴 했어요.”



“어떻게 걸러내요?”



“원래라면 절구에 덜어 담아 짓뭉갠 다음, 거름망 위에 놓고 물을 뿌리겠죠. 하지만 나는 아주 진한, 진하디 진한 원액이 갖고싶어요. 그런데, 여긴 증류관도 없으니.”



펠릭스는 기지개를 쭉 켜고 솥을 힐끗거렸다.



“당분간 저대로 내버려두죠. 한 두어시간 지나면 아마 걸러질 거예요. 그 때 까지 거름망이 버텨준다면.”



펠릭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쩌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거대한 덩어리가 한 순간에 솥에서 떨어져나갔다. 졸지에 녹색 덩어리의 습격을 받은 거름 기구는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어휴.”



펠릭스는 털썩 주저앉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됐어요 됐어. 가서 밥이나 먹고 오자고요.”



펠릭스는 진득하고 끈적한 녹색 액체를 풀쩍 뛰어넘어 작업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남의 집에서 허락도 받지 않고 부엌을 빌려써서 만든 요리를 먹으며, 실비아는 가슴 한 켠이 영 걸리적거렸다.



“그나저나. 약은 어떻게 잘 돼 가?”



올리버는 그런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으며 비둘기 고기를 기세좋게 한입 물어뜯었다.



“영 별로죠.”



펠릭스도 마찬가지로 꼬챙이에 꿰인 비둘기 고기를 한 입 물어뜯어 우적거렸다.



“그래? 역시, 그 병은 무리였어?”



“아직 방법이 남아있어요.”



“그래? 아직도? 어지간한 방법들은 전부 옛날에 써 본줄 알았더니.”



펠릭스는 짜증스레 올리버를 노려보았다.



“시간과 상황을 고려해서, 못 써먹을 방법들은 진작에 버렸거든요. 그 덕분이라고 할까. 아직 몇 가지 방법이 남아있어요.”



“예를 들면?”



펠릭스는 기세좋게 비둘기를 물어뜯었다.



“오래된 마녀의 요술을 모방하는 방법. 푸르고 끈적한 약을 만들었는데, 뭐. 제 실수로 엎어졌죠.”



“에이. 그건 보나마나 실패했을 걸. 오래된 요술에 기대려면, 좀 더 본질적인 부분이 비슷해야지. 푸르고 끈적하다니, 밀가루 반죽이랑 뭐가 달라.”



“실비아랑 똑같은 소릴 하네.”



펠릭스는 짜증스레 고기를 물어뜯었다.



“다른 방법도 남아있어요. 마녀가 있다면, 그 마녀의 힘을 빌려볼 수도 있었겠죠.”



“네 친구 부르면 되잖아.”



“여기서요? 올리버. 제가 편지쓰면 이 숲 밖으로 전해줄 자신 있어요?”



“뭐, 쉽지 않겠는걸.”



“마녀라도 있었으면 마녀의 신체를 좀 빌릴 수도 있겠죠. 그 때는 피였지만, 이번에는 머리카락이라든가 뭐 그런걸로. 머리카락은 좀 뽑아도 안 죽으니까.”



“대머리가 될지도 몰라.”



대머리 마녀. 그 모습이 떠올라 실비아는 반사적으로 풋 웃었다.



“어쨌든. 여긴 마녀도 없어. 다른 방법은 뭐 없어?”



“글쎄요······.”



펠릭스는 멍한 눈으로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닮은 약을 만들어 볼 거예요. 그걸로도 안 되면, 그 때는 정말 최후의 수단 뿐인가.”



“그 최후의 수단이 뭐예요?”



“마녀의 비술. 마녀가 가진 가장 강력한 비술. 소원이든 뭐든 원하는 건 모조리 다 이뤄준다는 전설적인 약.”



펠릭스는 꼬챙이에 남은 고기를 크게 한입 물어뜯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재료들을 모아 만들어 낸 약. 산 사람을 죽이는건 물론이요, 죽은 사람까지 살릴 수 있다고 하는 바로 그 약. 그거밖에 남는게 없어요.”



“그런······약이 있어요?”



실비아는 깜짝 놀라 눈을 깜빡거렸다.



“거의 전설이나 신화에 가깝죠. 진지하게 그걸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하지만, 어쨌든 기댈 구석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다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재료라면서요. 그걸 어디서 어떻게 구해요?”



“몇 개는 벌써 구했어요. 늑대의 눈물. 이미 예전에 구해 봤죠.”



“다른건요?”



“불나무 속껍질도 아슬아슬하게 여기 들어가요. 뭐, 진작에 써버렸지만.”



“없는건 빼야죠. 다른건 뭐 있어요?”



“고기 먹는 꽃이라든가, 발 달린 버섯이라든가, 개구리 비라든가, 마녀의 수염이라든가, 용의 심장이라든가. 뭐 이것저것 있어요. 우리가 가진 건 하나도 없지만서도.”



“결국, 돌고 돌아 원점이군.”



올리버는 꼬챙이에 마지막 남은 고기를 쑥 뽑아 우물거렸다.



“비슷한 약. 오래된 미신이 요술을 부려주길 기대할 수밖에.”



“짜증나는 일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네요.”



펠릭스도 꼬챙이에 남은 고기를 게걸스레 물어뜯었다.



“그런데요. 펠릭스. 그냥 갑자기 떠오른 건데요. 당신 스승님은 호수에서 그 병을, 말하자면, 떠올린 거잖아요?”



“그렇겠죠.”



“그 호수는 어디있을까요?”



“어딘가에 있겠죠. 뭐, 내가 있던 숲 근처에 없는건 확실해요. 그 근방 지리는 훤히 꿰고 있었으니까.”



“그래. 연금술사들의 숲 근처에는 호수가 없어. 우물만 많지. 개울이랑. 그래서, 그건 왜?”



“그러니까요. 당신 스승님은 그 호수에서 병을 떠올렸으니까, 우리도 거길 찾아가보면 뭐라도 떠오르지 않을까요?”



“터무니없어요. 호수에 요정이 사는것도 아니고. 호수가 뭐라고 생각해요? 찾아오는 사람에게 영감을 툭툭 던져주겠어요? 귀중한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지.”



“달리 뾰족한 수도 없잖아요. 한번 가 봐요. 어쩌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는걸요.”



“시간낭비라니까. 거기에 가 봤자, 난 제이콥이 본 걸 못 봐요. 나는 제이콥이 아니니까.”



“흠. 그렇지만, 펠릭스. 난 한번 가 보는게 좋다고 생각해.”



올리버는 턱을 슬슬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올리버? 당신까지 왜 그래요?”



“비슷한 약으로 병을 물리칠 생각이잖아? 그러면, 그 병과 본질적인 부분에서 비슷한 약을 만들어야지.”



“그렇죠. 그래서 색깔과 특징을 담아냈잖아요.”



“아니. 좀 더 비슷하게 만들 구석이 남아있잖아. 호수에서 탄생한 병이니까, 호수랑 관련된 뭘 좀 섞어보는게 어때?”



펠릭스는 비둘기 기름기가 묻은 꼬챙이를 휙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어요, 알았어. 가요 그럼! 뭐, 이 어딘가에 호수가 있겠지. 어디 한번 돌아다녀 보자고요. 이 위험천만한 주인 없는 숲 속에서, 어딨는지도 모를 호수를 찾아 한번 가 봐요. 내 참. 이럴 줄 알았으면 메를린 데려오는건데!”



“메를린이 있으면 좀 나아요?”



“낫죠! 마녀는 숲의 주인이니까. 뭐, 메를린은 다른 숲의 주인이지만, 적어도 여기서 만났던 그 커다란 거미가 우리 머리 위로 덮쳐오지 못하게 막을 수는 있겠죠. 다들, 머리 조심하라고요!”



펠릭스는 괜히 짜증을 부리며 오두막 현관문을 달칵 열었다.



“가요! 생각난김에. 늑장부렸다간 해 질 때까지 여기 돌아오지도 못 할 테니.”



펠릭스가 먼저 현관 밖으로 나서자, 올리버는 실비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펠릭스가 네 의견이 마음에 들었나봐.”



“짜증만 부리는걸요.”



“펠릭스는 진짜 싫으면 아예 무시하거든. 길을 나서는걸 보면, 펠릭스도 네 생각에 알게모르게 동의하는게 분명해. 그러니까, 재빨리 갔다오자 실비아.”



올리버는 다시한번 실비아의 어깨를 툭툭 쳐 주고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들고 오두막을 나섰다.







그래도 해가 비치는 동안에는 이 주인없는 숲도 훨씬 덜 무서웠다. 그리고 우연인지 아니면 정말 누가 돕기라도 하는지, 커다란 거미가 머리 위에서 덮쳐오는 일도 없었고, 길이 가로막힐 때면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그들에게 나아갈 길을 열어주었다.



“우리중에 마녀가 있나.”



앞서 길을 개척하던 올리버는 알쏭달쏭하다는듯 중얼거렸다.



“난 남자니까 무리에요.”



“나도. 그럼, 실비아가 마녀인가.”



“아닐걸요?”



“그럼, 마녀가 우리 뒤를 따라오고있나?”



세 사람은 동시에 뒤를 돌아봤지만, 거기에는 그들 뿐이었다.



“뭐, 운 좋은 날도 있는거지.”



올리버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고 수풀을 칼로 슥 베었다. 베어넘긴 수풀을 발로 뻥 차자마자, 살짝 올라온 언덕 아래로 수상쩍은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날도 있는거지? 그렇지?”



올리버는 당혹스런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런 날도 있는거죠. 뭐, 금방 찾았네요. 호수. 어디, 한번 보자고요.”







세 사람은 호숫가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주로 땅을, 올리버는 정면을, 실비아는 때때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런데에 호수가 다 있다니.”



“그러게요.”



때마침 바람이 불어와 붉은 낙엽이 호숫물위에 살포시 떨어졌다.



“일기장에 쓰인 호수가 여기 맞나봐요.”



“빨간 버섯도 있네.”



올리버는 칼 끝으로 버섯의 갓을 톡 쳤다. 그러자 새햐안 포자가 뿜어져나와 올리버는 잽싸게 뒤로 물러섰다.



“포자도 뿜는군.”



“색깔은요?”



“새하얀데.”



“하얗다고요? 빨간게 아니라? 하지만, 붉은 가루······.”



펠릭스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실비아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는 두 손을 호숫물에 담갔다가 끄집어 냈는데, 그의 손에는 발그스레한 결정이 남아있었다.



“붉은 가루 병!”



펠릭스는 또다시 기괴한 웃음을 터트리며 옷을 훌훌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실비아는 기겁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풍덩 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첨벙첨벙 소리가 났다. 물 밖으로 나온 펠릭스는 손에 군데군데 붉은 기가 도는 결정 덩어리를 들고 돌아왔다.



“붉은, 가루, 병! 제이콥, 이 망할 작자가! 버섯의 병이라고!”



올리버가 마른 천으로 몸을 닦아주는 동안, 펠릭스는 또 한번 광소를 터트렸다.



“그래, 그렇다니까!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버섯으로 우릴 속였어. 붉은 가루는, 이걸 말하던 거라고!”



실비아는 대체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한 멍한 눈으로 펠릭스의 손에 들린 붉은 돌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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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에필로그 22.01.13 56 1 4쪽
171 마지막화 22.01.13 44 1 22쪽
170 170화 22.01.12 38 1 24쪽
169 169화 22.01.11 33 1 24쪽
168 168화 22.01.10 34 1 23쪽
167 167화 22.01.09 36 1 22쪽
166 166화 22.01.08 34 1 23쪽
165 165화 22.01.07 36 1 26쪽
164 164화 22.01.06 31 1 22쪽
163 163화 22.01.05 36 1 24쪽
162 162화 22.01.04 39 1 22쪽
161 161화 22.01.03 33 1 22쪽
160 160화 22.01.02 36 1 25쪽
159 159화 22.01.01 37 1 23쪽
158 158화 21.12.31 32 1 21쪽
» 157화 21.12.30 35 1 23쪽
156 156화 21.12.29 35 1 24쪽
155 155화 21.12.28 34 1 24쪽
154 154화 21.12.27 40 1 22쪽
153 153화 21.12.26 42 1 24쪽
152 152화 21.12.25 39 1 21쪽
151 151화 21.12.24 39 1 24쪽
150 150화 21.12.23 38 1 22쪽
149 149화 21.12.22 37 1 21쪽
148 148화 21.12.21 40 1 22쪽
147 147화 21.12.20 44 1 22쪽
146 146화 21.12.20 39 1 21쪽
145 145화 21.12.19 40 1 22쪽
144 144화 21.12.18 43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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