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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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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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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160화

DUMMY

부스럭부스럭 하는 소리가 들리자 제이콥의 멍한 눈동자에 조금씩 빛이 돌아왔다.



“누구냐.”



제이콥은 힘겹게 입을 열고 메마른 목에 힘을 주었다.



방문이 달칵 열리고 펠릭스가 안으로 들어오자, 방 안에 가득 고여있던 붉은 가루가 요동쳤다.



“펠릭스.”



“스승님. 꼴사납게 뭐하고 있어요?”



제이콥은 힘겹게 입을 움직였다.



“내가 서두르는게 좋을거라 했지······.”



제이콥의 눈동자가 다시 멍해졌다.



“너무 늦었다.”



“늦기는. 아주 적당한 때인것 같은데요.”



펠릭스는 마스크도 쓰지 않고 붉은 가루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창문을 활짝 열었다.



“병에 걸리려고 작정했구나.”



“버섯의 병이라. 거짓말이에요? 아니면, 진짜 몰라서 그랬어요?”



“무슨 뜻이냐?”



펠릭스는 조그만 물병을 꺼내 제이콥의 입에 물려주었다.



“무슨 뜻이기는. 우릴 속였잖아요. 그럴싸한 껍데기로 포장해서 병의 본질을 숨겼잖아요. 안 그래요?”



펠릭스는 히죽 웃으며 제이콥의 입에서 물병을 뗐다.



“난 그런적 없다.”



“당신이 만들었잖아요? 제이콥. 그러지 마요. 당신은 재능이 없어서 그렇지, 머리는 좋잖아요. 이제와서 모르겠다고 발뺌한들 내가 믿어줄까봐요?”



“정말 그런적 없다.”



촉촉한 물방울을 머금어 제이콥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난 그저 귓가에서 들리는대로 만들었을 뿐이야.”



“당신의 귓가에 대고 속삭여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령이 내게 말해주었지. 아니, 악마였을지도 몰라. 어쨌든······.”



“환청이군요.”



펠릭스는 제이콥의 말을 일축했다.



“나는 정말로 들었다. 그건, 정신병자의 불완전한 환청따위가 아니었어. 아주 선명하고 생생하게 들려왔지. 발음이 뭉개지지도 않았고······.”



“중증의 환청이군요. 당신도 참 어지간해요. 안 그래요, 제이콥? 내가 그렇게 밉던가요? 아니면, 달리 무슨 이유라도 있었습니까?”



“그래, 네가 밉다 펠릭스!”



제이콥은 발작을 일으키듯 괴성을 울부짖었다. 그는 한동안 몸을 덜덜 떨다가 곧 힘이 쭉 빠져버렸다.



“날 비웃으러 왔느냐.”



“좀 더 고상하게 말하자면, 옛날 일을 매듭지으러 왔죠.”



“그럼, 마저 매듭짓지 않고 뭘 기다리고 있는거냐?”



펠릭스는 느릿느릿 약병을 꺼내들었다. 약병 안에서는 새파랗고 맑은, 그리고 가벼운 액체가 조그마한 떨림에도 찰랑찰랑 흔들렸다.



“약이요.”



“닮은것 끼리는 닮은 효과를 낸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것이 다른 효과를 내지는 않는다. 네가 새파란 약을 아무리 만들어 본 들······.”



“호수에서 건져올린 암염. 새빨갛더군요.”



제이콥은 홀린듯 입을 다물었다.



“호수에 사는 독특한 물이끼의 영향이었겠죠. 붉은 가루 병이라. 정작 버섯의 포자는 흰색이었어요. 당신, 머리가 맛이 갈대로 가버려서 기억이 섞여버렸죠?”



제이콥은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 둬라 펠릭스. 약을 만든거냐, 못 만든거냐.”



“먹어보십시오, 스승님.”



펠릭스는 제이콥에게 약병을 내밀었다.



“실패한 약이다. 넌 약을 만들지 못해.”



제이콥은 펠릭스의 손에 들린 약병을 쥐더니, 고개를 수그리고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진심으로 날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 펠릭스. 네 말대로, 난 호수에 소금 결정을 보았다. 새빨간 소금의 꽃을. 그리고 붉은 버섯과 하얀 가루도 보았다. 기억이 섞였겠지. 허나.”



제이콥은 끔찍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들어올려 펠릭스를 보았다.



“넌 모른다. 내가 뭘 만들었는지 아직까지도 모를거다.”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하지만, 전 당신이 만든 약을 재현했습니다.”



“시험해 봤느냐? 또 결백한 사람을 끌어들였느냐?”



펠릭스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지에 오른 이상, 시험해 볼 필요따윈 없습니다.”



“그 오만함. 그게 네 패착이다. 펠릭스. 분명하게 말 해 주마. 넌 또 실패했다. 너는 그 병의 약을 만드는데 실패했고,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실패할거다. 그리고 내가 죽어버리면, 넌 영영 마음 한 구석에 실패를 안고 살아갈거다!”



제이콥은 악담을 늘어놓고 약을 쭉 들이켰다.



“언제나처럼 잘 만든 약이다 펠릭스. 부러울 정도로, 질투가 날 정도로. 내게 열흘 하고도 반나절의 시간이 있었더라도, 무한히 재료가 샘솟는 창고가 있었더라도, 나는 이런 약을 만들 수 없었겠지. 하지만.”



제이콥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음산하게 웃기 시작했다.



“병을 만들 수는 있다. 약을 만드는 것보다 병을 만드는게 훨씬 쉬운 일이니까. 어떠냐 펠릭스. 내 평생의 원한을 모조리 끌어담아 만든 붉은 가루 병이 어떻더냐?”



“당신 치고는 제법이었다고 해 두죠.”



제이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 넌 틀렸다. 넌 그 병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너는 약을 만들지 못 해. 재현에 실패한것도 모르다니. 결국, 펠릭스. 너도 그정도일 뿐이다.”



“혓바닥이 길군요 제이콥. 언제부터 그렇게 말이 많았습니까? 혼자 오래 살더니 외로움이라도 탔나보죠?”



제이콥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산발이 된 그의 앞머리 사이로, 그의 눈이 무시무시하게 번쩍였다.



“내 피를 섞었다. 많이. 아주 많이.”



펠릭스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깨달았다.



“당신. 마녀도 아니면서, 자기 피를?”



“내 피는 나와 같아. 내 피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액체 속에서 나의 증오와 원한을 끝도없이 뿜어냈다. 그리고 가루가 되어 흩날렸지. 새로운 희생양을 찾아서······.”



“아니. 그건 거짓말이죠. 가루로 옮는 병이 아니었습니다. 당신, 마을 우물에 약 풀었죠? 애초에, 옮는 병이 아니었어요.”



펠릭스는 조금 당황하여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사실대로 말 안 했죠? 옮는 병이 아니었다고 내 귀에 속삭여줬으면, 그 때 어린 나는 꽤나 큰 충격을 받았을텐데. 그쯤에 가서야 겨우 죄책감이 들었습니까? 아니면 늦게나마 스승 행세라도 하고 싶었나요? 그딴 역병을 만든 주제에 연금술사 흉내를 내고 싶었습니까?”



제이콥은 입을 다물었다.



“왜 도망쳤죠? 날 엿먹이려고 만든 약 아닙니까. 기왕 갈거면 좀 더 놀려주고 가지, 뭐가 그리 급했어요? 언제 또 그런 기회가 온다고.”



“펠릭스.”



방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네 실패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는 너도 알거다. 왜 그 많은 연금술사들이 모였는데, 아무도 붉은 가루 병의 약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내 병은 마녀의 요술인데, 그들은 연금술 약을 만들고 있었으니까. 왼팔을 다쳤는데 오른 팔을 치료한 것과 같다.”



제이콥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펠릭스. 네게 물으마. 마녀의 요술을 부려본 적 있느냐? 경지에 올랐다고 했지? 그래서, 마녀의 요술을 부려본 적 있느냐? 넌 연금술사다. 평생 연금술사겠지. 네겐 뛰어난 재능이 있으니까 길을 벗어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나는 달라.”



제이콥이 다시 음산하게 웃기 시작했다.



“난 연금술에 재능이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경지에 오르지 못해. 기껏해야 흉내내는게 전부지. 하지만, 마녀의 고댓적 요술은 흉내로도 충분하다.”



제이콥이 쿡쿡 웃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효과가 났어. 너도, 그 누구도 전혀 갈피를 못잡더구나. 아이작 조차도. 그 많은 연금술사들이 모였는데도, 연금술과 요술을 구분하지도 못했어.”



“늑대의 눈물 이야기를 한 데 이유가 있었군요.”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방법이 없어 싸구려 미신에 기댄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어. 요술은 요술로 꺾어야지. 존재하지 않는 재료를 모아 만든다는 전설적인 비약이라면······.”



제이콥은 고개를 들어 펠릭스를 보았다. 펠릭스의 얼굴에는 아주 익숙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제이콥이 수도 없이 지어온 그 표정. 패배와 좌절이 깃든 얼굴.



“네가 졌다, 펠릭스. 네 약은 내 병을 치유하지 못 해. 그리고 난 아마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거다. 그러면, 넌 평생 내게 패배한채 살아가겠지.”



펠릭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요술을 부려본 적 있느냐, 펠릭스? 메를린과 그렇게 가깝게 지냈으면서, 그녀에게 요술을 배운 적은 한 번도 없었겠지.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래, 네가 전부 알고있다 생각했지? 네가 아는 것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했겠지? 네가 틀렸다는걸 뒤늦게 알아차린 기분이 어떻느냐, 펠릭스?”



제이콥은 쿡쿡 웃다가, 더이상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듯 허리를 뒤로 젖혀가며 있는 힘껏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졌다!”



펠릭스는 일그러진 얼굴로 제이콥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 패배다. 재능이 없는 내가, 가장 재능이 뛰어난 너를, 내 집념과 원망으로 꺾었다.”



펠릭스는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래, 펠릭스. 네 패배다. 영원히 바뀌지 않을 네 패배다!”



“제이콥. 참 기운이 넘치는군요. 다죽어가던 환자처럼 보이진 않네요.”



“널 이겼으니까! 내 평생의 숙원을 이뤘으니까.”



“글쎄요. 그런것 치고는, 아까부터 공기도 좀 깨끗하다는 느낌 아니에요?”



“무슨 소리냐, 펠릭스? 이제와서 딴소리를 늘어놔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넌 졌다. 네 약은 실패했어. 내 병을 낫게 하지 못 해. 공기가 맑아졌다고? 네가 창문을 열어둬서 그렇잖느냐.”



“목소리에 생기가 넘치는데.”



“일시적인 현상이다. 마지막 숨을 뱉어 내기 직전에 의식이 총명해지는 것과 같아.”



“혈색이 좋은데.”



“붉은 가루 병에 걸린 환자에게 혈색 따위 말을 하느냐?”



“아니, 진짜로요. 스승님. 아까부터 너무 건강한거 아닙니까?”



“건강? 드디어 너도 눈에 헛것이 보이기 시작한거냐? 봐라. 대체, 내 어디가 건강하냔 말이냐!”



제이콥은 침대에서 뛰어내려 펠릭스의 앞에 성큼 섰다.



“아주 날아다니시네요, 스승님.”



펠릭스는 히죽 웃었다.



“죽기 직전의 발작일 뿐이야. 넌 내 병을 낫게 할 수가 없다. 말하지 않았느냐. 요술로 만든 병이라고. 네 연금술로는 마녀의 요술을 이기지 못 해. 정말 마녀의 도움이라도 받았다면 몰라도 말이다. 메를린의 피나 머리카락이라도 훔쳐왔느냐?”



펠릭스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네 패배다. 넌 끝까지 약을 만들지 못했다. 단 한 명의 환자조차 네 손으로 살려내지 못했다. 그 때, 죽음의 약을 마음껏 만들어 속이 시원하더냐?”



“스승님. 붉은 가루 병. 아주 독특한 증상이 있었죠.”



펠릭스는 정작 딴소리를 시작했다.



“그래, 있다. 왜, 패배를 인정하기 그렇게 싫으냐? 끝까지 딴 소리를 할 만큼?”



“그 증상. 뭐였죠?”



제이콥은 노골적으로 펠릭스를 비웃었다.



“피부 위에 생기는 독특한 모양의 반점. 그리고 딱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가루.”



“그렇죠. 그랬죠. 그래서 말인데, 제이콥. 아니, 스승님.”



이번에는 펠릭스가 큭큭 웃으며 말했다.



“당신. 그 반점. 어딨죠?”



“어딨냐니, 봐라!”



제이콥은 입고 있던 로브를 한 손으로 덥썩 붙잡아 휙 던져버렸다. 그의 깡마른 육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에?”



“내 온 몸에!”



“그러니까, 온 몸 어디에요.”



“어디기는! 시력까지 잃어버린게냐? 봐라. 바로 여기에······.”



제이콥의 피부는 메마르고 힘빠져 쳐졌을 뿐, 독특한 반점 따위는 없었다.



“여기에······여기······분명······.”



“내 약이 실패했다고요?”



“연금술 약은 요술을 이기지 못 해. 마녀의 요술을 흉내내서 만든······병인데.”



제이콥은 손으로 자기 몸을 더듬거렸다.



“그런데. 마녀가 아닌 이상 약을 만들 수는 없었을 터인데······.”



“왜죠?”



“내 평생의 지독한 원망이 담겼으니까! 나의 분신과 같은 피가 환자의 몸을 돌며 죽음의 원망을 뿜어내니까! 마녀의 요술을 따르자면, 내 병과 맞서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사람들을 살리겠다는 마음을 약에 담아야 한다. 하지만, 그곳에 모인 연금술사들중 그런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어!”



소리를 지르는 제이콥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나와 달리 말이다! 그놈들과 달리 난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사람들을 위했어! 그 위선자들이 아니라, 내가, 내가 최고의 연금술사가 되었어야 하는데. 그런데······.”



제이콥은 자기가 한 말에 당황했다.



“그런데······네가, 네가? 펠릭스 네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네가, 진심으로 사람을 살리겠다는 마음을 품었다고? 그 마음을 품고 약을 만들었다고? 네가? 아니, 아니야. 뭔가 잘못된게 틀림없다. 펠릭스, 말 해! 어디서 약을 훔친 게냐!”



“내가 직-접 만들었죠, 스승님.”



“불가능해. 불가능하다. 네겐 사람의 마음이 없어. 넌 사람을 벌레나 짐승, 아니, 물건 보듯 하는 연금술사야. 넌 죽음을 두려워 하지도 않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아.”



“그렇지만, 제가 준 약. 효과가 너무 좋지 않습니까?”



“불가능해. 불가능하다. 이건 잘못됐어. 뭔가가 분명 단단히 잘못됐어. 그래, 아이작이 보냈느냐? 날 살리라고? 약을 만들어 네 손에 들려준게지? 그렇지?”



제이콥은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대스승님은 당신이 어디 숨었는지도 몰라요. 당신이 병에 걸렸는지 어쩐지 알 턱이 없는데, 뭔 줄 알고 내 손에 약을 쥐여줘요?”



“그럼, 그럼? 메를린이냐? 아니면, 그래. 내 동문 연금술사들이 있었지. 그들이······.”



“메를린은 당신한테 관심없어요. 당신 동문들도 마찬가지고.”



“왕국에서 보냈냐? 국왕이······.”



“상식적으로 생각해요. 미쳤어요 제이콥? 당신이 뭐라고 왕이 약을 보내요?”



“그럼, 대체 누가······.”



제이콥은 쉴새없이 입을 움직이다가 서서히 펠릭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졌습니다.”



펠릭스가 선언했다.



“내가 이겼습니다. 붉은 가루 병. 내 손으로 약을 만들어, 이제 이 세상에서 종식시켰습니다.”



“아니······아니야. 아니다 펠릭스! 넌 졌어! 넌 약을 못 만들어 네 손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죠. 그런데, 운이 좋았네요. 마지막 환자는 어떻게 약을 만들어서 병을 낫게 해 줬으니까.”



“우연일 뿐이다!”



“이미 레시피를 써 뒀습니다. 당신이 같은 병을 수십 수백번 더 만들어도, 이제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못 줘요. 운나쁜 한두명을 죽이는데서 그치겠죠.”



제이콥의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넌 약을 만들지 못해······.”



펠릭스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이콥. 내가 약을 만들었어요. 축하해요. 병이 깨끗하게 나았네요. 보기좋은데요. 그럼, 잠깐 비켜줄테니 옷이나 좀 갈아입어요. 아,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펠릭스는 문으로 걸어가 손잡이를 쥐고 말했다.



“내가 이겼습니다 스승님. 당신의 패배입니다.”



펠릭스는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제이콥은 그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펠릭스는 손잡이를 달칵 돌려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 문을 닫아버렸다.







펠릭스는 복도에 만들어둔 격리 구역을 치워버렸다. 기괴한 약이 담겨있던 양동이는 창 밖으로 던져버리고 커튼은 휙 잡아당겨 뜯어버렸다.



“잘 됐어요?”



커튼을 뜯어내자 앉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 실비아와 올리버가 눈에 보였다.



“내가 이겼어요.”



펠릭스는 씩 웃으며 커튼을 창고에 집어던졌다.



“나았어요?”



“그래요. 그런데······.”



펠릭스는 웃다 말고 실비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요?”



“실비아. 당신 혹시 가족이나 친척 중에 마녀 있어요?”



“마녀요?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대답이나 해 줘요. 있어요? 없어요?”



“없을걸요?”



실비아는 살며시 고개를 들고 눈을 깜빡거렸다.



“사실, 우리 가문은 역사가 깊지 않아요. 아빠가 시조라고 봐야겠죠. 그런데, 언니나 저나 둘 다 딸이라.”



“아니, 갑자기 족보 이야기 하지 말고요. 그래서 있다는 거예요, 아니면 없다는 거예요?”



“전 몰라요. 저희 조상님이 누군지도 잘 모르는걸. 하지만, 없지 않겠어요? 마녀가 흔한것도 아니고.”



“흐음.”



“왜요?”



“그냥요.”



펠릭스는 대충 대답하고 작업실로 들어가 문을 탕 닫아버렸다.



“뭐였을까요?”



실비아는 눈을 깜빡이며 올리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게. 아까 안에서 시끄럽던데, 마녀 이야기라도 했는가보지.”



“그럴까요?”



실비아는 닫힌 작업실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이콥은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를 무릎 사이에 파묻었다. 그는 웃음과 울음이 섞인 기괴한 흐느낌을 시작했다. 멍한 머리의 한구석에서 과거의 기억이 희끄무레하게 피어올라 그의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조용!”



연금술사의 공터. 수없이 많은 연금술사들이 둘러앉아있었다. 아이작의 호령에 서로 핏대를 세워가며 손가락질하던 연금술사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대체, 여기서 뭣들 하는 게냐? 왕국 안에서도 손에 꼽히는 연금술사들이 모여서 한다는게 이렇게 쓰잘데없는 말싸움 뿐이더냐?”



아이작이 화를 내는데도 연금술사들은 들은체만체 했다.



“이미 병이 돌기 시작한지 한 달이 다 되었다. 그런데도 변변찮은 약 하나 못 만들다니.”



“재료가 별로야.”



국왕이 보낸 연금술사들이 투덜댔다.



“시설이 낡았어.”



귀족들이 뽑아낸 연금술사들도 거들었다.



“조수가 부족해, 조수가!”



솜씨가 뛰어나다고 추천을 받아온 독립 연금술사들도 한 마디 했다.



“후배들이 선배를 무시하잖아.”



선배 연금술사들이 마지막으로 펠릭스의 동문들을 흘겨보며 중얼거렸다.



“불평불만 뿐이구나! 이렇게 실망스러운 꼴이라니.”



아이작이 한탄하자 연금술사들은 일제히 딴청을 피웠다.



“벌써 한 달이다. 이 많은 연금술사들이 한 달동안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다니. 국왕이 알면 우리 모두에게 크게 실망할게 분명하지 않느냐. 부끄러운 마음도 없는 게냐?”



연금술사들은 또 딴청을 피웠다. 그러자 아이작은 한숨을 쉬며 그 역시 자포자기한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좋은 생각이 있는 연금술사는 앞으로 나오거라. 없다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겠다.”



제이콥은 불안한 눈으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을 해야 할 까. 사실대로 말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가 그 병을 만들었습니다.’ 이 많은 연금술사들 앞에서 말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말해야만 한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이건 제이콥이 생각한 일이 아니었다. 그가 되고싶은 연금술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제이콥은 움찔거리며 발을 앞으로 딛으려다가 포기하길 몇 번이고 반복했다.



“아무도 없느냐.”



제이콥이 다시 움찔했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용기를 냈다. 하지만······.



연금술사들 사이에서 펠릭스가 일어났다. 그는 다른 연금술사들을 헤치고 공터 한 가운데로 걸어나왔다.



“펠릭스. 말 해 보거라.”



“다들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이는데. 맞나요?”



아무도 펠릭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없다고 믿겠습니다. 혹여나 무슨 생각이 있다면 지금 빨리 말씀하시길. 안 그러면, 너무 늦어버릴 테니까.”



“말이나 해. 애송이가.”



어디서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펠릭스는 씩 웃기만 했다.



“좋습니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라 확신합니다. 붉은 가루 병을 단번에 종식시키고, 이렇게 서로 파벌싸움이나 하는 연금술사들을 극적으로 화해시킬 만한 놀라운 방법입니다.”



“말이나 해! 그렇게 대단한 방법이 있다는데, 어디 들어나 보자!”



비웃음 섞인 목소리를 시작으로 일제히 웃음이 터져나왔다.



“싸그리 죽입시다.”



웃음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환자들을 싹 다 죽여요. 그리고 시체와 마을을 불태우는거죠. 아무리 역병이 강해본들, 걸린 사람이 모조리 죽고 옮길 사람이 없어지면 그걸로 끝입니다. 안 그래요?”



“미쳤어!”



일제히 비난과 야유가 쏟아졌다. 그러나 펠릭스는 그 한 가운데서 당당하게 우뚝 서있었다.



“아니면,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펠릭스가 소리치자 다른 연금술사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거기! 에보니 가문의 전속 연금술사. 이름이 뭐랬죠? 뭐 좋은 수라도 있나요?”



검은 장의의 남자는 펠릭스가 자기를 가리키자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거기! 벌써 수십 개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무상으로 치료해준 성녀님. 달리 좋은 생각 있어요?”



그 자칭 성녀라는 사람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피해버렸다.



“아니면 거기! 국왕이 직접 보낸 연금술사분들! 와서 시끄럽게 술마시고 떠드는것 말고 달리 뾰족한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왕을 대리한다! 우릴 모욕한다면······.”



“여기서 일은 안하고 놀고 먹은 일을 들키면 모가질걸요? 왕의 이름을 걸고 와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꼴 보니 당신들도 아무 생각 없어보이네요. 그럼, 옆의 당신들은? 우리들의 선배 연금술사분들. 어때요? 뭐 없어요?”



제이콥의 동문 연금술사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이건 버섯의 병이야.”



중간에 누가 용기를 내서 말했지만 펠릭스는 피식 웃었다.



“그걸 누가 몰라요? 자, 그래서. 또 뭐 좋은 생각 있는사람? 어디 없어요? 뭐 좋은 생각 있는 사람. 달리 아무도 없죠?”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건······.”



조심스레 말을 꺼낸 것은 제이콥의 제자 메를린이었다.



“아. 뭐, 껄끄럽지? 그러면 내가 혼자 다 할게.”



펠릭스는 메를린에게서 고개를 돌려 다시 연금술사들을 둘러보았다.



“내게 모조리 맡겨줘요. 내가 싸그리 죽인 다음, 그 시체로 산을 쌓고 마을을 불태우죠. 달리 누구의 도움도 필요없어요. 장작더미와 성냥 하나, 솥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미치광이야! 아이작! 저런 사람을 제자로······.”



“자칭 성녀님! 아니면, 당신이 좋은 수를 떠올려 볼래요? 맡겨드릴까요? 저 환자들은 운좋게 이번 한 달은 버텼지만, 다음 한달까지 버틸 수나 있을까요?”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결국 하나의 목소리로 모이지는 못하였다.



“자, 됐네요. 대스승님. 말씀해 주시죠.”



아이작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제이콥이 다시 움찔했다. 늦기 전에 말해야만 한다. 이건 제이콥이 만든 병이다. 그의 제자가 책임을 대신 떠안아서는 안 된다······.



“펠릭스의 의견을 따르겠다.”



아이작이 말해버렸다. 모든 연금술사들은 쥐죽은듯 조용했다.



“펠릭스. 내일 아침이 밝는대로 필요한 걸 알려다오. 네게 필요한 걸 마련해주마.”



“감사합니다, 대스승님.”



펠릭스는 웃으며 아이작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잘나신 연금술사분들. 저는 당신들의 도움따위 전혀 필요없으니 오늘 부로 다들 짐 싸서 돌아가요. 뭐, 구경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펠릭스는 연금술사들을 빙 둘러보더니 히죽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끝이다.”



아이작이 선언했다.







회의가 끝나자 연금술사들은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이콥은 공터가 텅 빈 뒤에도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제이콥.”



아이작의 목소리. 스승의 목소리를 듣고 제이콥은 벌떡 일어나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



“제이콥. 내 제자야. 여기서 뭘 하느냐?”



제이콥은 대답하지 않았다.



“제이콥. 네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괜찮겠느냐?”



“말씀하십시오.”



아이작은 한숨을 쉬었다.



“제이콥. 내 제자야. 사랑하는 내 제자야.”



아이작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네 제자를 살인자로 만들 셈이냐?”



제이콥의 뒤통수가 번쩍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작은 슬픈 눈으로 제이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이콥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제자를 바라보던 아이작은 어느 순간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조용히 숲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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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연금술 가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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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에필로그 22.01.13 57 1 4쪽
171 마지막화 22.01.13 44 1 22쪽
170 170화 22.01.12 38 1 24쪽
169 169화 22.01.11 34 1 24쪽
168 168화 22.01.10 36 1 23쪽
167 167화 22.01.09 38 1 22쪽
166 166화 22.01.08 34 1 23쪽
165 165화 22.01.07 38 1 26쪽
164 164화 22.01.06 33 1 22쪽
163 163화 22.01.05 38 1 24쪽
162 162화 22.01.04 39 1 22쪽
161 161화 22.01.03 35 1 22쪽
» 160화 22.01.02 36 1 25쪽
159 159화 22.01.01 38 1 23쪽
158 158화 21.12.31 33 1 21쪽
157 157화 21.12.30 38 1 23쪽
156 156화 21.12.29 35 1 24쪽
155 155화 21.12.28 36 1 24쪽
154 154화 21.12.27 42 1 22쪽
153 153화 21.12.26 45 1 24쪽
152 152화 21.12.25 41 1 21쪽
151 151화 21.12.24 40 1 24쪽
150 150화 21.12.23 40 1 22쪽
149 149화 21.12.22 40 1 21쪽
148 148화 21.12.21 41 1 22쪽
147 147화 21.12.20 45 1 22쪽
146 146화 21.12.20 41 1 21쪽
145 145화 21.12.19 44 1 22쪽
144 144화 21.12.18 47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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