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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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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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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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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53화

DUMMY

이상한 방향과 각도로 뒤들린채 길고 메마른 가지를 뻗은 나무는, 광기어린 춤사위를 벌이는 산발의 여인처럼 음산하고, 또 무시무시해 보였다.



그 나무에 머무는 새는 작고 통통하게 털이오른 참새 따위가 아니었다. 눈가에 흉터 한둘쯤 새겨져 있을 법 한 까마귀, 졸린 눈으로 밤이 오길 기다리는 올빼미 따위였다.



땅에 한 뼘 정도 쌓인 낙엽 아래에는 뜯어먹을 잔디 한 포기 자라지 않는듯, 다른 숲 속이었다면 이따금 수풀을 들썩이며 토끼나 커다란 들쥐라도 오갔을텐데, 이곳 숲 속에서는 살아 움직이는 동물이 보이질 않았다.



“여기가 주인 없는 숲······.”



실비아는 나무 위에 주렁주렁 매달려 서늘한 눈으로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 무리의 까마귀에서 시선을 피했다.



“네.”



실비아가 시선을 피하자 대신 펠릭스가 까마귀들을 상대로 무의미한 눈싸움을 벌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로 까마귀가 까악 하고 우짖으며 일제히 나무에서 퍼덕거리며 날아가버렸다.



“이런 곳에 당신 스승님이 있다고요? 정말로요?”



“그렇다는데요.”



“착각한 건 아니겠죠?”



“설마. 우리 웨일이 어떤 가문인데.”



펠릭스는 그 구겨진 종이조각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찾았대요? 이런 곳에 숨어버리면 무슨 수를 써도 못 찾을 텐데.”



“그게 우리 엄마 비결이죠. 나도 몰라요.”



“대단하네요. 자기 가족이 어디서 뭘하는지도 모르고······꺅!”



실비아의 발치로 커다란 들쥐 한 마리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 들쥐는 재빨리 반대쪽 풀숲으로 뛰어가려다가, 어디선가 순식간에 달려든 검은 고양이에게 목덜미를 물려 힘없이 찍찍 울었다. 그 고양이는 턱으로 쥐를 물고 이쪽을 힐끗 노려보았는데, 소리없이 어둠 속에서 날아든 올빼미가 고양이를 덥썩 붙잡고 푸드득 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올빼미는 쥐를 문 고양이를 억센 발톱으로 단단히 움켜쥐고, 음산한 소리를 내며 날개를 퍼덕여 어두운 숲 속으로 허깨비처럼 사라져버렸다.



“뭐, 주인 없는 숲에 온 걸 환영해요.”



펠릭스는 얼빠진 눈으로 멍하니 서있는 실비아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두드려주었다.







한동안 묵묵히 길을 개척하며 나아가던 올리버는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잠깐 쉬어가지.”



올리버는 바닥의 낙엽을 이리저리 들추더니, 낙엽을 발로 슥슥 밀어 맨땅을 드러나게 만들었다.



“여긴 그 위험천만한 버섯이 없군.”



“땅벌 둥지나, 뭐 그 비슷한 것도요.”



펠릭스가 한 마디 덧붙이자 올리버는 바닥을 지팡이로 쿡 들쑤시며 피식 웃었다.



“이 계절에는 땅벌도 다 얼어죽어. 그러니까 안심하고 앉아.”



“저, 저기 올리버. 이런 곳에서 쉬어가요?”



실비아는 다시 불안한 눈으로 공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전히 검고 음산한 나무 곳곳에는 까마귀가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잘 쉬어야 돼. 실비아. 긴장 때문에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잔뜩 용을쓰며 걸어다니다가는 몇 시간도 안 돼서 탈진해버려.”



“그래요, 실비아. 쉬어요 쉬어.”



실비아는 머뭇머뭇 자리에 앉아 여전히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별로 쉴 만한 곳은 아닌것 같은데······.”



“뭐 어때요! 여기보다 더한 곳에서도 잘만 쉬었으면서. 천장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동굴 안이라든가. 그렇잖아요?”



펠릭스는 넉살좋게 맨땅에 털썩 주저앉아 가죽 부대를 꺼내 물을 꼴깍꼴깍 마셨다. 그 모습에서 공작의 품위라고는 요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꿈 같아요.”



펠릭스는 가죽 부대에서 입을 뗐다.



“뭐가요?”



“당신 집에서 벌어진 일. 이런 사람이 공작이라니.”



“그럼 꿈이라고 믿든가요. 나야 별로 아쉬울 거 없으니까.”



실비아는 이번에는 올리버를 향해 고개를 슬금 돌렸다. 올리버는 육포를 물어뜯고 있었는데,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바싹 말라 검게 변한 육포가 아니었다. 훨씬 육즙이 풍부하고 고소한 냄새가 솔솔 피어나는, 그런 육포였다.



“올리버. 왠 거예요?”



“아. 숲에서 사냥한 고기로 만들었어. 너도 하나 먹을래?”



“그래도 돼요?”



올리버는 주머니를 뒤져 육포를 한 조각 꺼내 실비아에게 내밀었다.



“먹어.”



“고마워요.”



실비아는 두 손으로 육포를 집어 귀퉁이를 살짝 깨물었다.



“맛있네요. 무슨 고기로 만들었어요?”



“사람 고기.”



실비아의 두 손이 차게 굳었다.



“네?”



“농담이야, 농담. 그런 걸로 육포를 만들리가 없잖아. 멧돼지 고기로 만들었어. 어때? 맛있지?”



“올리버!”



실비아는 빽 소리를 지르며 올리버에게 육포를 던졌다. 그러자 올리버는 능숙하게 육포를 손으로 휙 낚아챘다.



“당신까지 왜 그래요 정말!”



“아니, 분위기가 그럴 분위기라······.”



“그럴 분위기가 뭔데요! 진짜, 실망이에요.”



“육포 안 먹어?”



“됐어요! 정말이지. 둘 다 정말, 섬세함이라곤 전혀 없다니까. 내가 어쩌다가 이런 사람들이랑······.”



투덜거리며 실비아는 배낭을 뒤적여 건과일 조각을 꺼내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맛있는데.”



올리버는 육포를 이빨로 깨물고 북 뜯어 우물거렸다.



“당신이나 실컷 먹어요!”



그러나 실비아는 더이상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뒤에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것 없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겨들었다.



다시 주인없는 숲 속을 향한 여행이 이어졌다. 여전히 나무는 음산했고, 불어오는 바람도 음산했으며 심지어 발치를 스쳐지나가는 커다란 들쥐의 울음소리조차 음산했다.



“유령이라도 나오겠어요.”



멀어져가는 찍찍 소리를 눈으로 쫓던 실비아는 뒤에서 따라오던 펠릭스의 맹한 눈과 마주쳤다.



“그 나이를 먹고도 아직 유령이 무서워요?”



“말이 그렇다는거죠!”



실비아는 짜증스레 고개를 휙 앞으로 돌렸다.



“진짜 무서운 사람을 한번 만나보면, 유령보다 살아있는 사람이 훨씬 더 무서울걸요.”



“당신은 만나봤어요? 그런 사람.”



실비아는 앞으로 척척 걸어가며 대꾸했다.



“올리버라면 알지도. 어떻게 생각해요, 올리버?”



“몰라. 난 둘 다 싫어.”



올리버의 심드렁한 목소리는 숲 속 깊은 곳에서 불어오는 음산한 바람조차 지루하게 만들어버렸다.



“대단하네요 올리버. 나이가 사십도 넘었으면서.”



“네가 내 나이 돼 봐. 넌 아직 어려서 몰라, 펠릭스.”



“사람이야 그렇다 쳐도, 유령은 또 왜요?”



“내 나이 돼 봐. 보기 싫어도 여기저기 유령이 눈에 아른거릴걸.”



펠릭스는 혀를 내둘렀다.



“허 참. 올리버. 자양강장제라도 만들어 줘요? 기운 없어서 눈에 헛것이 아른거려요?”



“나이먹어봐 너도. 나도 젊을 때는 너처럼 아무것도 무서운게 없었어.”



“어련하겠어요.”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오가는 말들을 주워듣던 실비아가 소리죽여 풋 웃었다. 그러자 두 사람도 쓰잘데없는 대화는 그쯤에서 멈추고, 다시 숲 속을 헤쳐나가는데 집중했다.







한동안 조용히 숲을 거닐던 그들은 올리버가 걸음을 멈추자 자연히 뒤따라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실비아와 펠릭스는 올리버의 등 너머로,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내밀어 앞에 뭐가 있나 살폈다.



“오두막이 있는데.”



긴장한 목소리로 올리버는 다 쓰러져가는 나무 오두막을 가리켰다. 나무로 만든 덧창은 닫힌채로 뒤틀렸고, 문짝은 진작 떨어져나가 바닥에 덩그러니 쓰러져 있었다.



“저기에······.”



“아니, 저긴 없겠죠. 아무리 제이콥이 은둔했다 해도, 저렇게 문도 안 닫히고 창문도 안 닫히는 오두막에 살려고.”



실비아는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꾹 다물며 볼을 살짝 부풀렸다.



“그래서, 가 볼거야 펠릭스?”



“가 보죠 뭐. 의외로 보물을 찾을지도 모르니까.”



“그래. 허허. 거 참. 펠릭스. 미신을 믿으면서, 다 쓰러져가는 폐가가 무섭지도 않아?”



“전혀요. 난 좋은 미신만 믿기로 해서. 그러니까 올리버. 괜히 시간끌지말고 빨리 가 봐요. 안에 뭐가있나 한번 보자고요.”



펠릭스가 등을 떠밀자 올리버는 어깨를 으쓱하며 긴장한 걸음걸이로 앞장섰다.







“실례합니다.”



올리버는 문이 떨어져나간 어둠 앞에 서서 잠시 심호흡을 하고 한 마디 했다.



“계세요?”



그는 한 손으로 어둠의 장막을 걷으며 오두막 안으로 얼굴을 살짝 들이밀었다.



“설마 누가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겠어요?”



“누가 있을지도 모르지. 뭐, 도둑이라든가······.”



올리버의 변명은 실비아가 듣기에도 궁색하기 짝이없었다.



“내 참. 겁 많기는. 자, 비켜봐요.”



펠릭스는 실비아와 올리버를 젖히고 앞으로 나서더니 주머니에서 통통한 약병을 하나 꺼냈다.



“뭐하게?”



“딴데 보고 있는게 좋을 걸요.”



“왜?”



펠릭스는 약병을 위아래로 세차게 몇 번 흔들더니 씩 웃었다.



“눈부시거든요!”



그리고 펠릭스는 약병을 오두막 안으로 휙 집어던지고 재빨리 두 눈을 감으며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자 실비아와 올리버도 허둥지둥 펠릭스를 따라했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섬광이 오두막 안에서 폭발했다.



“아니, 그렇다고 섬광탄을 던져?”



올리버가 어이가 없다는듯 중얼거리며 귀에서 손을 뗐다.



“좋잖아요?”



“좋기는. 하여튼.”







오두막 안으로 들어온 올리버는 우선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성냥에 불을 밝혔다. 그러나 조그만 성냥 하나만으로는 찬 바람이 술술 새어들어오는 오두막의 어둠을 걷어내기 역부족이었다.



“횃불이라도 켜야겠는데.”



“그러다 오두막을 불태울지도 몰라요. 비켜봐요.”



펠릭스는 주섬주섬 짐을 뒤져 둥근 유리공 비슷한걸 꺼내들었다. 공 안에는 이런저런 색깔의 가루들이 잔뜩 들어있었는데, 펠릭스가 공을 세차게 뒤흔들자 가루들이 서로 부딪히며 환한 불빛을 만들었다. 그 불빛은 반딧불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것과 비슷했는데, 조금 침침하긴 해도 오두막 안의 어둠을 꿰뚫어 보는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자요. 좀 낫죠?”



“훨씬 낫군. 그래, 어디 보자······.”



올리버는 빛나는 공을 들고 오두막 안을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마룻바닥을 뚫고 올라온 나무의 뿌리와, 그 뿌리 위에서 새로 자라나고 있는 나무 줄기. 축축한 구석에는 죽은 버섯 위에 곰팡이가 하얗게 슬었고, 나무 벽 곳곳에 뻥 뚫린 조그만 구멍은 꼭 벌레 파먹은 자리 같았다.



“꽤 오래 전부터 비어있었나봐.”



올리버는 바닥에 쓰러진 의자와, 뒤틀려서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모를 일이죠.”



펠릭스는 그런것 치고는 꽤 멀쩡해 보이는 선반을 눈으로 힐끗했다. 그러자 올리버는 조심조심 선반으로 손을 뻗어, 선반을 휙 열며 뒤로 몸을 내뺐다. 하지만 선반 안에 들어 있던 것은 눅눅한 먼지 덩어리와 오래된 침묵 뿐이었다.



“이사갔나봐.”



텅 빈 선반을 허탈한 눈으로 지켜보며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펠릭스는 부엌에서 고개를 돌려,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은 벽난로를 힐끗 보았다. 아마 이곳의 주인은 겨울이 오기 한참 전에 집을 버리고 떠난듯, 벽난로에는 오래되어 눌러붙은 시커먼 검댕 자국 뿐 타다 만 장작이나 검은 재가 안에 들어있진 않았다.



“누가 살던 집일까요?”



실비아는 벽에 걸린 대못을 힐끗 보며 조용히 말했다. 못은 실비아의 눈높이보다 살짝 더 위에 박혀 있었는데, 아마 달력이든 액자든 뭐든 거기 걸려있었을 듯했다.



“마녀나 그 비슷한 사람이겠죠. 나무꾼이라든가.”



“메를린네 집이랑은 완전히 다른데요?”



실비아는 대못에서 눈을 떼고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마녀 나름이죠. 누가 알겠어요.”



올리버가 잠긴 문을 철컥거리는 소리에 두 사람의 대화가 단절되었다.



“뭐지? 잠긴 문이 있는데.”



올리버는 몇 번 더 손잡이를 철컥거리며 돌리려다가 문에서 손을 뗐다.



“부술까?”



“잘못 부수면 오두막 전체가 무너질걸요.”



“펠릭스! 불길하게,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실비아가 살짝 어깨를 떨자 올리버는 문에서 몇 발자국 멀어졌다.



“그럼 어떡할까.”



“문틀이 뒤틀린 거예요? 아니면 자물통이 녹슬었나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비켜봐요.”



펠릭스는 기다란 막대를 꺼내 수상쩍은 약을 바르더니, 문 틈으로 막대를 비집어넣고 슬슬 움직였다. 그러자 문 너머에서 물방울이 화로에 닿을 때 나는 치직 소리가 들리더니, 곧 힘없이 문이 안으로 밀렸다.



“짜잔.”



펠릭스가 자리를 비키자 올리버는 방 안으로 고개를 살짝 들이밀었다가 재빨리 문을 닫으며 반대손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나가, 나가! 빨리!”



“왜, 왜요?!”



“나가기나 해!”



펠릭스는 머뭇거리는 실비아의 손목을 잡아끌고 순식간에 오두막 밖으로 도망쳤다.







빛 아래로 돌아온 세 사람은 잠시 숨을 고른 뒤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왜요? 안에 뭐가 있길래 그래요?”



먼저 펠릭스가 올리버를 향해 물어보았다.



“실비아.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러자 올리버는 실비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왜요? 안에 뭐가 있는데요?”



“모르는게 나아.”



“왜요?”



“안에 죽은 사람이 있어.”



실비아의 안색이 조금 나빠졌다.



“그렇군요. 무덤도 없이, 저렇게 허름한 집 안에서. 어쩌다가······.”



“아니. 감상에 잠길 때가 아니야, 실비아.”



“기도라도 해 주고 싶어요.”



올리버는 손으로 자기 눈을 쓸어내렸다.



“아니, 그럴 때가 아니라니까.”



“왜요? 기도도 못 해 줘요?”



“그러니까, 그 병으로 죽은 시체야.”



“그 병? 무슨······.”



“붉은 가루 병.”



잠자코 듣고있던 펠릭스는 먹이를 찾은 사냥꾼처럼 음흉하게 웃었다.



“제이콥. 분명 여기 어디 있는게 틀림없군요. 그래서, 올리버. 어때 보이던가요?”



“어때 보이기는. 완전히 끝장났지.”



“여전히 포자를 날리고 있던가요?”



“아니. 죽었어. 끔찍하게. 더이상 병을 퍼트리지도 못 할 거야.”



“그러면 실비아가 들어와도 별 상관 없겠는데요. 어때요, 실비아? 와서 기도문이라도 읊어줄래요?”



“그러고는 싶은데······.”



올리버는 한숨을 쉬며 오두막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난 경고했어. 못 볼 꼴이라고.”







오두막 안의 잠겼던 문은 펠릭스의 요술 덕분에 살짝 열려 바람에 흔들흔들 움직이고 있었다. 그 문이 살짝 움직일 때마다 방 안에 고여있던 어둠이 조금씩 바깥으로 흘러나와 빛에 희석되었다.



“연다.”



올리버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채 코맹맹이소리로 중얼거렸다.



“열어요.”



마찬가지로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은채 펠릭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올리버는 문을 살짝 안으로 밀어 열었다.



펠릭스가 빛나는 유리공을 방 안으로 들이밀자 실비아는 본능적인 두려움과 역겨움 때문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으며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려버렸다.



너무 놀라서 입 밖으로 비명이 나오지도 않았다. 대신 다리가 후들거리며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누가 살짝만 건드려도, 그대로 질척한 반죽처럼 실비아는 힘없이 바닥에 퍼져버릴 것 같았다.



“진정해요. 괜찮아요 괜찮아. 당신한테 아무런 해도 못 끼쳐요.”



안으로 들어가려던 펠릭스는 실비아의 어깨를 덥썩 붙잡고 그녀에게 몇 마디 건넸다.



“세상에······세상에나······.”



“내가 말 했잖아.”



올리버도 가볍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못 볼 꼴이라니까. 실비아. 네 마음이 착한 건 알겠지만, 역병으로 죽은 시체따위 모르고 사는 편이 훨씬 나았을텐데.”



“저는······저럴 줄은······.”



“자. 여기, 진정제 두고 갈 테니까. 괜찮아지면 와요.”



펠릭스는 바들바들 떠는 실비아의 앞에 약병을 놓아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그는 빛나는 유리 공을 들고 오두막의 암실에 감춰진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 보였다.







남자, 또는 여자의 시체는 암실 안에 이상한 각도로 뒤틀린채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그것보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그 피부 위의 불길한 붉은 반점이었다. 숲 속에서 가끔 보인다는 둥근 버섯 고리. 요정의 고리라고 부르는 그 고리가 시체의 피부 곳곳에, 아니, 피부 전체를 덮을 정도로 여기저기 새빨갛게 박혀 있었다. 고리 한 가운데는 검붉은 딱지 자국이 있었다. 딱지 자국의 숭숭 뚫린 검은 구멍에서는 뼛가루처럼 입자가 곱고 불그스레한 가루가 뿜어져 나오는데, 이 시체는 죽은지 너무 오래 되어 더이상 아무런 가루도 흩날리지 못했다.



“역겨워.”



올리버가 불쾌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토 할것 같아.”



“가서 시원하게 쏟아내고 오든가요.”



펠릭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역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더이상 시신에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



“넌 괜찮아?”



“괜찮겠어요?”



“하긴. 너한테는 각별한 병이니까. 그래서, 어때보여?”



펠릭스는 아주 불쾌한 눈으로 시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예전과 똑같아요. 조금도 변한게 없어요.”



“약. 만들 수 있겠어?”



펠릭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시체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곧, 그는 그대로 몸을 휙 돌리더니 암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실비아. 기도문이라도 읊어줄래?”



“아, 저, 저기······.”



“알았어 알았어. 내가 대신 읊어줄게. 뒤에서 불러줘. 따라 말 할 테니까.”



“고마워요. 그럼, 사랑하는······.”



실비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불안불안하게 기도문을 외자, 올리버는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망자에게 기도를 읊어주고 문을 닫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사람은 도망치듯 불길한 오두막을 빠져나왔다. 오두막을 빠져 나온 뒤로도 한동안 그들은 얼굴을 가린 손수건을 떼지 못했다. 충분히 오두막에서 멀리 떨어지고, 해가 저물어 몰아치는 차가운 폭풍이 이쯤이면 역겨운 가루를 씻겨내줬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야, 그들은 주섬주섬 손수건을 얼굴에서 뗐다.



“어때?”



올리버는 손수건을 그대로 숲 바닥에 휙 던져버렸다.



“아까 말 했잖아요. 예전이랑 똑같다고.”



펠릭스는 손수건을 짜증스레 지켜보다가 대충 구겨 어느 주머니에 쑤셔박았다.



“좋은거야, 나쁜거야?”



“둘 다 아니에요. 그냥 그뿐이죠.”



한편, 실비아는 아이작이 선물로 준 손수건을 어떻게 해야할지 잠시 망설였다.



“괜찮아요 실비아. 바다나방의 고치로 뽑아낸 섬유는 부정한 기운을 씻어준다는 미신이 있어요.”



“미신이잖아요······.”



“실제로 효과 있어요. 어쨌든,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실비아가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으니 펠릭스는 그녀의 손에서 손수건을 대뜸 휙 낚아챘다.



“뭐해요?!”



펠릭스는 저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손수건을 휙휙 세차게 털고, 주머니에서 투명한 약이 든 병을 꺼내 손수건에 푹 적셨다.



“자요. 가루 털어냈고, 소독까지 했으니까.”



실비아는 그제서야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고마워요.”



“됐어요. 우리 사이에 뭘. 아무튼, 제이콥이 여기 어디 있다는 것도 알았고. 여전히 그 붉은 가루 병이 세상에 남아있다는 것도 알았는데······.”



펠릭스는 두 손으로 허리를 짚고 숲을 두리번거렸다.



“대체 어디 있다는건지.”



“네 엄마가 가르쳐 줬다면서.”



“여기 어디에 있다는것 뿐이에요. 벌써 해도 저물고 있는데. 이거, 잘못하면 여기서 노숙하겠는데요.”



“좋지 않은데. 차라리, 일단 숲을 빠져나가고 보는게 나을지도······.”



“연기다.”



불안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실비아는 희끄무레한 연기가 하늘 위로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저기, 연기에요. 누가 어디서 불을 피우나 봐요.”



“연기? 우리 말고도 이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불쌍한 영혼이 더 있나보죠.”



“아니면, 네 스승님의 오두막이 저깄든가.”



“그래서요? 저리로 가 보겠다고요? 올리버. 관둬요. 오늘은 너무 늦었어요.”



“왜, 가기 싫어?”



펠릭스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펠릭스. 난 너한테 고용된 몸이야. 네가 결정해야지. 어떻게 할 거야?”



“그럼, 가 보죠.”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고 지팡이를 펠릭스에게 내밀었다.



“왜요?”



올리버는 배낭에서 횃불을 꺼내 불을 밝히고, 반대손으로 칼을 뽑아들었다.



“아하. 좋아요. 그럼 조금 서둘러 볼까요.”







벌써 불길한 석양도 그 끝자락을 아슬아슬하게 남겨두고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은 뒤였다. 그리고 숲에 어둠이 내리자 주인 잃은 숲 속 곳곳에서 온갖 짐승들이 우짖었다.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괴물들의 음악회에 질려 실비아는 두 귀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녀가 손으로 귀를 막을 때마다 올리버가 실비아를 다그쳤다.



“귀를 막으면 안 돼. 귀를 막아버리면 들을 소리도 못 들어.”



그러면 실비아는 불안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조심 귀에서 손을 뗐다.



“빨리 따라와요! 나혼자 앞서가봤자 뭐해요?”



“가, 간다고.”



다시 세 사람은 걸음을 재촉하여 점점 더 숲 깊숙히 들어갔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괴물들의 연회는 요란스러워졌으며, 말 그대로 생각지도 못한 괴물들이 실비아의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각없이 걸어가던 실비아의 어깨를 붙잡고 올리버가 뒤로 끌어당기자마자 방금전까지 서 있던 자리로 거대한 거미 한마리가 다리에 그물을 쥐고 쉭 내려오질 않나, 마찬가지로 커다란 거미가 숲 통로 한 군데 전체를 거미집으로 틀어막지를 않나. 올리버가 쏜 화살에 거미가 역겨운 녹색 체액을 뿜으며 바닥으로 툭 떨어져 다리를 오그라뜨리자, 펠릭스가 횃불을 넘겨받아 거미줄과 거미를 불에 태워버렸다. 그러나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서인지, 아니면 정말 이 주인없는 숲에는 저주라도 내린 것인지, 그 빨간 불은 오래지 않아 사그라들어 다른 데로 옮겨붙지도 않았다.



“여긴······이상해요!”



“나도 알아. 내가 말 했잖아. 별로 지내기 좋은 곳이 아니라고.”



올리버는 어두운 수풀 속에서 빛나는 십수 개의 눈동자를 향해 거칠게 횃불을 들이밀었다.



“제대로 가고 있는건 맞아요?”



“연기를 따라가고 있기는 한데.”



머뭇거리지도 않고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며 펠릭스가 대답했다.



“길 잃은거 아니죠?”



“설마! 내가 당신인줄 알아요? 난 아주 감각이 예민해요. 제대로 된 방향이라고요.”



나침반을 꺼내놓고 할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나침반을 봐서라도 실비아는 그를 따라가기로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까요?”



“누군들 알겠어!”



머리위로 박쥐의 무리가 날아들자 올리버는 횃불을 붕붕 휘둘렀다.



“저기, 오두막이다!”



마침내 펠릭스가 지팡이를 앞으로 치켜들고 저쪽을 가리켰다. 어두컴컴한 숲 속에서 네모낳게 노란 불빛이 아른아른 반짝이고 있었다.



“진짜 오두막이군. 좋아, 조금만 서두르자고. 빨리!”



“잠깐, 잠깐만요! 저게, 저게 대체 뭐예요?!”



실비아는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줄곧 트여있던 길 양 옆에 서 있던 나무가, 뿌리를 들고 슬금슬금 움직이더니 통로를 틀어막기 시작했다.



“어이쿠, 이런. 완전히 맛이 가버렸군 그래. 이것도 제이콥 짓인가?”



“펠릭스! 느긋하게 떠들 때가 아니잖아요! 어떻게 못 해요?”



“내 참. 메를린한테 예전에 받은건데. 아직 괜찮으려나.”



펠릭스는 주머니 깊숙이 손을 쑥 집어넣고 뒤적거리며 조그만 보랏빛 약병을 꺼내들었다. 보라색. 실비아의 눈에 익숙한 보라색의 약은 펠릭스의 손을 떠나 북풍을 뚫고 길 저쪽으로 날아들었다.



약병이 공중에서 폭발하며 연보랏빛 안개를 순식간에 흩뿌리자, 살아 움직이던 나무의 환각도 눈 녹듯 사라져 다시 그들의 눈앞에는 탁 트인 길이 보였다.



“대체 뭐였어요?”



“모르고 사는게 속 편할걸요. 자, 그럼. 돌진, 앞으로! 뭐가 됐든, 일단 빠져나가고 보자고요!”



등 뒤에서 괴성어린 바람소리가 울려퍼지자, 그들 모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약속이나 한 듯 앞으로 있는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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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에필로그 22.01.13 56 1 4쪽
171 마지막화 22.01.13 44 1 22쪽
170 170화 22.01.12 38 1 24쪽
169 169화 22.01.11 33 1 24쪽
168 168화 22.01.10 34 1 23쪽
167 167화 22.01.09 36 1 22쪽
166 166화 22.01.08 34 1 23쪽
165 165화 22.01.07 37 1 26쪽
164 164화 22.01.06 32 1 22쪽
163 163화 22.01.05 37 1 24쪽
162 162화 22.01.04 39 1 22쪽
161 161화 22.01.03 34 1 22쪽
160 160화 22.01.02 36 1 25쪽
159 159화 22.01.01 37 1 23쪽
158 158화 21.12.31 32 1 21쪽
157 157화 21.12.30 35 1 23쪽
156 156화 21.12.29 35 1 24쪽
155 155화 21.12.28 34 1 24쪽
154 154화 21.12.27 40 1 22쪽
» 153화 21.12.26 43 1 24쪽
152 152화 21.12.25 39 1 21쪽
151 151화 21.12.24 39 1 24쪽
150 150화 21.12.23 39 1 22쪽
149 149화 21.12.22 38 1 21쪽
148 148화 21.12.21 40 1 22쪽
147 147화 21.12.20 44 1 22쪽
146 146화 21.12.20 39 1 21쪽
145 145화 21.12.19 40 1 22쪽
144 144화 21.12.18 43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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