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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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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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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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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164화

DUMMY

보누스 부부의 집을 떠나 북쪽으로 걸어간지 얼마나 되었을까. 따뜻하고 훈훈한 열기와 경쾌한 걸음걸이는 흔적없이 사라졌다.



차가운 북풍을 온 몸으로 비집으며 북쪽으로 계속해서 걸어간다. 날숨을 뱉을 때마다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것도 힘에 겨웠다.



설상가상으로 눈발까지 흩날리기 시작했다.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하면, 지난 밤처럼 운좋게 도로 위에서 마차를 얻어타는것도 힘들었다. 빨리 마을을 찾지 못하면 눈 속에 고립되고 만다. 겨울옷이 아무리 두꺼워봤자 밤새도록 휘몰아치는 눈보라는 못 당해낸다.



다행히, 저쪽 멀리 목책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이든, 아니면 경비 초소든 뭐든 간에, 사람 사는 흔적이었다. 펠릭스와 실비아, 그리고 올리버는 말없이 안도하며 너나 할것없이 걸음을 서둘렀다.







마을로 들어서는 관문에 동백마을이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정작 마을 안으로 들어가도, 그 어디에서도 동백나무는커녕 그 비슷한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차게 얼어버린 몸을 녹이기 위해, 그들은 자그마한 마을 한 가운데 자리잡은 여관으로 들어갔다. 여관에 손님은 별로 없었지만, 군불을 떼고 있어서 몸을 녹이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은 벽난로에 가까운 테이블을 잡고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삶은 달걀을 주문했다.



“얼어죽는줄 알았네.”



대꾸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다들 마음은 똑같았다. 실비아는 벌써 벽난로 가까이 의자를 끌어앉더니 불가에 두 손을 가까이 가져다대고 불을 쬐고 있었다.



“눈보라가 언제 그치려나······.”



추위를 타지 않는 펠릭스는 잠깐 불을 쬐는가 싶더니 창가로 걸어가 눈송이의 춤을 바라보았다.



“오늘 안에 그치긴 글렀어. 포기해 펠릭스.”



“너무 늦기 전에 올라가야 해요.”



펠릭스는 조금 절뚝거리며 창가에서 돌아와 테이블에 털썩 앉았다.



“왜? 겨울눈꽃 때문에?”



“네.”



“겨울 눈꽃이라며. 겨울 중에는 찾을 수 있는거 아냐?”



펠릭스는 심드렁하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쉬운 재료였으면 서두르지도 않죠. 아무튼, 빨리 그쳤으면 좋겠는데.”



“당분간은 무릴거요.”



어느새 주문한 음식을 가져오며 여관주인이 중얼거렸다. 세 사람은 동시에 눈을 돌렸다.



“그래?”



“한번 퍼붓기 시작하면 한참 퍼붓거든. 내일 새벽까진 몰아칠거고, 그 뒤로는 도로가 꽁꽁 얼테지.”



“도로가 어는건 상관없어요.”



여관 주인은 데운 우유를 내려놓으며 펠릭스를 슬쩍 보았다.



“도로가 얼면 마차도 못 다니는데.”



“난 연금술사라. 언 도로 녹이는것쯤은 일도 아니죠. 그럴싸한 솥 하나랑 재료만 좀 있으면요.”



“연금술사? 아직도 연금술사가 다 있나?”



펠릭스가 노려보자, 여관 주인은 그의 시선을 슬쩍 외면했다.



“언제부터인가 안 보이더니. 난 그대로 영영 없어진 줄 알았는데.”



“잘 봐 둬요. 마침 보이는김에. 나중에는 보고싶어도 못 볼테니까. 빛나는 깃털을 가진 야광조처럼 말이죠.”



여관주인은 뜻모를 표정을 지으며 물러섰다.



“야광조가 뭐예요? 그런 새도 있어요?”



그리고 벽난로에서 돌아온 실비아가 데운 우유 잔을 두 손으로 꼭 쥐며 물어보았다.



“있었어요. 나 어릴때는. 뭐, 지금은 없겠지만. 내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새죠. 왜 야광인지 아무도 몰라요. 먹이 때문이라는둥, 깃털 위에 조류가 자라서 그렇다는둥 말은 많았지만. 이젠 찾아볼 수도 없으니, 결국 왜 야광이었는지는 영영 모르겠죠.”



펠릭스는 삶은 달걀을 한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사라진다는게 그런거죠 뭐.”



계란을 꿀꺽 삼키더니 펠릭스는 한 마디 덧붙이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털레털레 걸어갔다.







눈보라는 밤이 되어서도 좀체 그치질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펠릭스의 일행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긴 여행으로 녹초가 되어버린 몸을 쉬어줄수도 있는데다가, 특히 펠릭스에게는 의족을 고칠 여유가 생겼다.



“잘 좀 해 봐요!”



펠릭스는 실비아의 뒤에 앉아서는 계속 훈수를 뒀다.



“잘 하고 있거든요! 당신은 뭣도 모르면서······.”



“대강 알아요. 난 경지에 오른 연금술사라고요. 연금술이나 그 비슷한걸로 만드는건 뭐든 알아요.”



여관에서 빌린 솥을, 여관에서 빌린 주걱으로 젓던 실비아는, 고개를 살짝 돌려 펠릭스를 찌릿 노려보았다.



“그렇게 잘 알면 직접 하든가!”



“메를린이 당신한테 가르쳐줬잖아요.”



“언제는 잘 안다면서요? 괜히 어깃장이야.”



실비아는 툴툴거리며 끈적한 액체를 저어대었다.







연분홍색의 돌멩이 비슷한 조각을 올리버가 조각칼과 조그만 망치를 들고 섬세하게 깎아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만드는거 아니지 않아?”



계속 펠릭스의 다리를 힐끗거리면서 올리버는 그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깎아내었다.



“성형 틀이 없어요.”



“하긴. 뭐,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이래서야 안 고치느니 못할까봐 걱정인데.”



“물 먹어서 고장난 다리보단 낫겠죠. 이걸로는 북쪽의 하얀 장벽위로 못 올라가요.”



"주인 없는 숲에서 퍼부은 비랑 우박? 그거 다 환각 아니었어?"



펠릭스는 짜증어린 얼굴로 자기 오른 다리를 마구 움직였다. 그러자, 그의 다리는 발작적으로 떨리다가, 펄떡거리며 제멋대로 접혔다가 펴졌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뭐. 네가 그렇다면야.”



올리버는 조각칼에 대고 망치를 살살 두드렸다. 아주 느릿하게, 천천히, 그러나 정교하게. 올리버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펠릭스의 다리 모양으로 조각을 깎았다.







올리버의 솜씨는 아주 뛰어나서, 오후 네 시 즈음부터 시작된 조각은 밤 열한 시가 되어 끝났다.



“네 다리 모양으로 깎아냈어. 그런데, 이거 발목 관절은 붙어있는거야?”



“지금 해 줘요.”



자정이 되자, 마침내 펠릭스의 새 의족이 만들어졌다. 사실, 의족이라 부르기도 조금 민망했다. 발목이 구부러지는 것만 빼면 싸구려 나무 의족과 별 다를것도 없었다.



“이게 맞아?”



하품을 하며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진짜 싸구려 나무 다리보단 낫죠. 그래도 무릎이 남아있어서 다행이지.”



펠릭스는 발목 관절에 이상한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한참 뭔가 중얼거리며 약을 바르더니, 펠릭스는 자기 머리털을 몇 가닥 뽑아 관절 안에 쑤셔넣었다. 그러자 발목 관절이 진짜 펠릭스의 발목처럼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금술로 그런것도 가능해?”



“이건 마녀의 요술에 가깝죠. 그러니까, 몇 세대만 더 지나면 이런 요술도 못 부릴 거예요.”



펠릭스는 영 뻑뻑한 발목을 이리저리 몇 번 더 움직여 보더니, 도로 바짓단을 내렸다.



“마녀도 점차 사라지고 있으니까.”



“늘어나는건 없고, 줄어드는것 뿐이군. 채집꾼도 점차 사라지겠지. 요즘 대세는, 애송이들을 떼거리로 모아 숲 속을 휩쓸고 다니는 거라더라. 그게 아니면 농장에서 재료를 직접 기르던가.”



“연금술사 입장에선 그편이 편하니까. 흔한 재료를 훨씬 싼값에 구할 수 있잖아요. 갑자기 재료가 동날 일도 없고.”



올리버는 씁쓰레한 얼굴로 바닥을 내려보았다.



“연금술사도 점점 줄어들고있지.”



“제이콥이 쐐기를 박았죠. 안 그래도 약사하고 기싸움을 벌이던 와중에, 왕의 눈밖에 날 짓을 해버려서.”



“사람들은 요술이든, 마술이든, 연금술이든 뭐든 바라지 않아. 사람들이 원하는건 감기약, 해열제, 진통제, 배탈약. 그정도라고. 거기에 제초제, 살충제, 고엽제, 비료 정도가 다지. 좀 더 욕심을 내면 자양강장제, 정력제, 피로회복제 쯤이나 찾으려나. 숙취 해소약은 누구나 찾겠지만, 넌 잘 안 만들어 주잖아?”



펠릭스도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치를 못 알아보는 사람한테 백날 설명해서 뭐해요? 그리고, 아주 드물지만, 분명 있다고요. 특별한 약을 찾는 사람들. 실비아, 에밀리아, 아치볼트 자작, 아치볼트 자작의 사과농장에서 일하던 애송이 알렉스, 서커스 단장이 된 트로이나, 앰버타운의 이름없는 호박 농부······.”



“그게 다잖아.”



펠릭스는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두 달 조금 안 되는 여행중에 만난 사람이 몇이야? 다녀간 장소가 한두 군데도 아니고. 그렇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뿐이라고.”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있다면 상관없어요.”



“그래?”



펠릭스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돈도 많고, 지식도 많고, 재료 구하는 방법도 잘 아니까. 장사하다가 손해 봐도 별로 상관없거든요. 난 진짜 약을 찾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장사 안 접어요.”



올리버도 피식 웃었다.



“대단한 포부로군.”



“그러니까, 올리버. 짤릴 걱정은 하지 말라고요. 당신이 일하겠다고 하는 한, 보수는 확실히 준비할 테니까.”



“참 모범적인 고용주로군.”



“그렇죠? 난 이래뵈도 꽤나 정직한 사람이거든요.”



“실비아가 들으면 길길이 날뛸 걸.”



“실비아는 아직 애잖아요.”



올리버는 펠릭스의 곱슬진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도 애야.”



“왜이래요, 올리버? 난 결혼을 할 수 있을 만큼 나이 먹었어요.”



“나이로 따지면, 실비아도 어른이지.”



“에이, 그런게 어딨어요?”



올리버는 애처럼 구는 펠릭스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자, 아무튼. 내가 해 줄 수 있는건 거기까지야.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 벌써 자정이라고. 난 그만 자러 간다. 너도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지 마.”



올리버는 천천히 일어나 문을 달칵 열고 펠릭스의 방에서 나섰다. 다시 달칵 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나더니, 복도를 걷는 올리버의 발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여관 주인이 말 한 대로, 눈보라는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그쳤다. 물론, 눈보라가 그쳤다고 해서 바닥에 쌓인 눈이 사라지진 않았다. 눈은 거의 한뼘 높이 정도까지 쌓여있어서 눈을 밟으면 발이 푹푹 꺼졌다.



“세상에. 정말 많이 쌓였어요!”



실비아는 어린아이처럼 신난 얼굴로 눈을 사박사박 밟고 있었다.



“자자, 비켜요 비켜.”



그리고 저쪽에서 말이 모는 수레 뒤에다가 커다란 솥을 싣고 펠릭스가 오고있었다.



“왠 솥이에요?”



“말 했잖아요. 눈 쌓이고 언 도로를 녹이는건, 나한테 일도 아니라고.”



“그러니까, 왠 솥이냐니까요?”



“눈 녹이는 약 넣어둔 거예요.”



실비아는 눈을 깜빡거렸다.



“눈 녹이는데 약까지 쓸 정도에요? 뜨거운 물 부어도 녹잖아요.”



“어허! 뭘 모르네. 이 추운데서 뜨거운 물 부으면, 눈이 잠깐은 녹죠. 그런데, 그 다음은? 녹아서 물이 된 눈이 도로 꽁꽁 얼면 빙판이 된다고요. 굉장히 위험하죠. 이건, 녹은 눈이 도로 얼지 않도록 내가 특별히 배합한 약이에요.”



“별것도 아니면서 잘난척은.”



“별거죠! 도로가 얼면 얼마나 위험한데. 아무튼, 적당히 노닥거리고 올라타요. 이제 출발할거니까.”



실비아는 못내 아쉬운 얼굴로 눈 위를 몇 번 더 사박사박 밟다가, 수레 위로 조심조심 올라탔다. 펠릭스가 출발하자고 말하자, 올리버가 말을 도로 위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마차가 끄는 수레는 꽤나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래도 걷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고 다리도 편했다.



펠릭스는 기다란 국자로 솥에서 약을 퍼담아 수레 뒤쪽으로 휙휙 뿌려대었다.



“난 또 무슨 대단한 방법이라도 있나 했더니.”



“이것도 요령이 있거든요?”



펠릭스는 또 한 국자 약을 떠서 도로 위를 향해 착 뿌렸다.



“무슨 요령이요?”



“골고루 뿌리는거. 당신은 하지도 못하면서.”



“할 수 있어요! 볼래요?”



“됐어요, 됐어! 농담할 때 아니거든요. 도로 녹여주겠다고 겨우 설득해서 빌린 마차인데. 당신이 실수하면 내가 거짓말쟁이 되잖아요. 약 제대로 안 뿌리면 도로가 군데군데 언다고요.”



펠릭스는 또 약을 한 국자 퍼담아 도로 위에 착 뿌렸다.



“좀 더 대단한 약은 못써요? 당신, 솥으로 먹구름도 만들었잖아요.”



“좋은 약은 재료가 많이 들어요.”



“돈 많잖아요. 공작이면서.”



펠릭스는 심드렁해서 대꾸했다.



“없는걸 만들어 쓰지는 못해요. 내가 공작이 아니라 왕족이라도 그건 어쩔 수 없거든요.”



펠릭스는 자기 오른다리를 움직여 보더니, 또 한 국자 약을 퍼담아 뿌렸다.



“안 그래요?”



“치사하게. 그렇게 나오기에요?”



“치사는 무슨.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구만. 하여튼. 애처럼 지기 싫어해서는.”



실비아는 펠릭스의 의족에서 눈을 떼고 저 앞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새하얗게 물든 세상. 도로의 끝에 뭐가 모습을 드러낼지 기대하면서.







다음 마을까지 천천히 마차를 타고 오다보니, 관문을 넘어섰을 때는 어느새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뒤였다.



마차 대여소에 마차를 넘기고 서류를 몇 장 써준 다음, 그들은 여관 식당에 모여앉아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북쪽으로?”



여관 주인이 음식을 가져다 놓으며 호기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네.”



“가면 얼어 죽을 텐데.”



“다 방법이 있죠. 난 연금술사라, 나랑 같이 있으면 얼어 죽을 일은 거의 없어요.”



“연금술사?”



“왜요? 신기하죠? 요즘같은 세상에 몇 없으니까.”



“아니. 얼마 전에도 다녀갔거든. 연금술사.”



펠릭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진짜로? 누군데요? 이름이 뭐죠?”



“이름까진 몰라. 숙박부를 뒤져봐야 알겠는데······.”



“어떻게 생겼는데요?”



여관 주인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아주 특이한 사람이었어. 머리카락 색깔이 이상했거든. 위쪽은 물빠진 갈색인데, 아래쪽은 울긋불긋하니 단풍 색이었지.”



“메를린?”



“아, 그래. 뭐 그 비슷한 이름이었을걸. 아차차, 이크!”



부엌에서 치지직 소리가 나자, 여관 주인은 음식을 빨리 내려주고 부엌으로 후다닥 돌아갔다.



“메를린이요?”



“메를린이겠죠. 단풍색 머리카락 가진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요?”



“메를린이 여길 왜 와요?”



“내가 알겠어요? 거 참. 자기 숲도 내버려두고, 여기까지 왜 왔대? 아, 내 도마뱀! 네이비!”



펠릭스는 뜬금없이 도마뱀의 이름을 불러댔다.



“아니, 맡겨둔댔더니. 내 도마뱀도 내버려두고. 메를린, 대체 무슨 생각이지?”



“메를린도 겨울 눈꽃을 찾으러 왔을지도 모르죠 뭐. 귀한 재료면, 찾는 사람이 어딘가 한둘쯤 더 있어도 이상할건 없잖아요.”



“그러면 큰 문제라고요.”



펠릭스는 못마땅한 얼굴이 되어서는 희멀건 파스타를 돌돌 말았다.



“왜요?”



“겨울 눈꽃은 아주, 아주 아주 희귀해요. 괜히 경쟁자가 늘어서 좋을것도 없는데. 대체 무슨 생각이람.”



“겨울 눈꽃?”



어느새 돌아온 여관 주인이 또 호기심어린 눈으로 슬쩍 다가왔다.



“네. 알아요?”



“신기한 일이네. 그게 요새 유행인가? 바로 어젠가 아랜가에도 그걸 찾는 사람이 있었는데.”



“아니, 그건 또 누군데요? 아까 그 머리카락이 이상한 사람 말고요?”



여관 주인은 턱을 슬슬 쓰다듬으며 두 눈을 위로 치켜떴다.



“딴사람이었어. 그건 남자였으니까. 키 크고, 말쑥한데, 조금 안색이 나쁜 사람이었어. 뭐, 서쪽에서 왔다던가. 이름이 뭐더라. 실, 실바, 실비······.”



“실바누스?”



“아, 맞아! 아니, 둘 다 당신 친군가봐? 그 사람들도 연금술사인가?”



펠릭스는 아주 당황스런 얼굴이 되었다.



“한 명은 친구인데, 다른 한 명은······음······.”



“뭐, 요새 그게 유행인가보지. 겨울 눈꽃인가 뭔가.”



“당신은 겨울 눈꽃에 대해 좀 알아요?”



여관 주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쪽 북쪽 사람들은 대충 이름만 알아. 한 겨울에, 밟힌 적 없고 해 들지 않는 새 눈 위에 피어나는 꽃이라고. 그게 다야.”



“그렇군요······.”



펠릭스는 다시 못마땅한 얼굴이 되어 파스타를 돌돌 말았다.



“대체, 이 북쪽 끄트머리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거람?”







여관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또다시 약하게나마 눈발이 흩날렸다.



“어쩌지.”



펠릭스는 흩날리는 눈발 너머, 하늘 높이 떠있는 먹구름을 노려보았다.



“펠릭스. 왜? 먹구름 없애는 약이라도 만들려고?”



“재료가 비싸요. 차라리, 뚫고가는게 더 싸게 먹힐걸요.”



“못 만든다는 소리는 한 번도 안 하네.”



올리버는 헛웃음을 지으며 혼잣말했다.



“위험을 무릅쓰든가, 아니면 눈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든가······.”



펠릭스는 잠시 소리없이 입을 벙긋거리며 손가락을 허공에 대고 뭔가 끄적였다.



“가죠.”



“눈 내리는데. 좀 있으면······.”



“그러니까 서두르자고요. 여기서 목적지까지 별로 멀지도 않으니까. 마차만 빌려준다면야······.”



“실비아 의견도 들어보지.”



“네? 뭐, 저야······.”



“잘 생각하고 말 해, 실비아. 눈 속에서 잘못 고립되면 죽어.”



실비아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그러나 그녀는 금새 원래의 안색을 되찾았다.



“가고싶어요. 아빠가 있을지도 모른다잖아요.”



“실바누스 준남작은 당신을 못마땅해 할텐데요. 보자마자 또 한 소리 할지도.”



“그래도, 아빠가 있다는데. 궁금하잖아요. 대체 무슨 꿍꿍인지.”



“뭐, 메를린도 있다고 하니······. 자, 그럼. 올리버?”



“왜.”



“마차좀 구해다줘요.”



"펠릭스. 그정도는 네가 직접 해도 되잖아?"



"에이. 그러지말고. 난 말도 못 몰잖아요?"



올리버는 투덜거리며 눈발 속으로 걸어갔다.







마차 앞에 매달린 등불은 불어닥치는 눈보라 속에서 희미하게 번쩍거렸다.



“야, 펠릭스! 그냥 기다렸다 내일 아침에나 가지! 이게 무슨 꼴이야!”



퍼붓는 눈보라 때문에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 눈보라를 온 몸으로 맞아가며, 올리버는 거의 눈사람이 되어서는 말을 몰고 있었다.



“언제까지 내릴 줄 알고요?”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이러다가 말이 먼저 쓰러지겠는데?”



“괜찮아요! 내가 괴력의 약을 먹여서라도 말은 살려둘 테니까.”



“막 먹여도 괜찮아? 부작용같은거 없어?”



“내가 연금술사에요! 내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예요!”



차창 너머로 펠릭스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 참. 마음대로 해. 대체 이게 무슨 꼴인지. 진짜, 펠릭스 너랑 있으면 목숨이 몇 개가 있어도 모자라겠어!”



올리버가 헛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채찍을 휘두르자. 말은 콧김을 쉭 내뿜으며 새하얀 어둠 속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몰아치는 눈보라 속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기다란 머리칼은 위쪽은 물이 빠진 옅은 갈색인데, 아래쪽은 붉고 노란 색이 섞인 울긋불긋한 단풍색이었다.



여관 일층에 남아있던 사람 몇몇은 그 신기한 행색의 손님을 보고 호기심을 느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중에 몇몇 사람이 용기를 내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울타리에 가로막힌 것처럼 어느 순간 더이상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키크고 호리호리한 남자 한 명이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조금도 걸음을 늦추지 않고 그 낯선 손님 옆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여관에 모인 사람들은 다들 숨죽여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투명한 울타리를 자연스레 몸으로 뚫고 지나가, 낯선 손님의 옆에 섰다.



“잠시 실례해도 괜찮겠나.”



남자가 조용히 물었다. 그러자 긴 머리칼의 여자는 고개를 살짝 위로 들어올렸다가, 커튼이 쳐진 다른 창문을 힐끗 보았다.



“길이 보이는 창문은, 이쪽밖에 없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



“눈이 생각보다 많이 내려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눈발을 헤치고 오진 않겠죠.”



“올 거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까.”



메를린은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그래요? 어떤 사람인데요?”



“내 딸.”



실바누스 로즈베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아주 비범한 녀석이 붙어있으니까. 이 눈보라를 뚫고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면, 내 딸일거다.”



메를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다시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따님을 믿으시나봐요.”



“너는 뭘 기다리고 있나? 그저 눈내리는 모습을 구경하러 나온것 같지는 않은데.”



“저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거든요.”



메를린은 나지막히 대답하면서 창문을 향해 손바닥을 살며시 뻗었다.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특별한 사람이죠. 이 눈발을 헤치고 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제가 기다리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는걸요.”



메를린의 손이 창문에 닿자, 그녀의 손바닥으로부터 성에가 거미줄 모양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너······너는?”



“아.”



메를린은 뒤늦게 창문에서 손을 뗐다. 그러자 성에도 천천히 도로 사그라들었다.



“방금건 못 본걸로 해 주시겠어요, 신사님?”



“넌 마녀인가?”



실바누스가 목소리를 죽여 조용히 물어보았다.



“비밀로 해 주세요.”



“여긴 숲도 없는데. 마녀가 왜 여기에······.”



“여기서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있거든요. 그걸 찾으러 왔어요.”



“그래? 우연이군. 나도 여기서만 구할 수 있는 물건을 찾으러 왔다.”



실바누스와 메를린은 서로가 한 말의 뜻을 금새 이해했다.



“행운이 깃들길 바라요 신사님.”



“네 앞날이 평탄하길 바라마, 마녀.”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눈보라가 퍼붓는 창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눈보라를 헤치고 기다리는 사람이 분명 올거라고 확신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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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에필로그 22.01.13 56 1 4쪽
171 마지막화 22.01.13 44 1 22쪽
170 170화 22.01.12 38 1 24쪽
169 169화 22.01.11 33 1 24쪽
168 168화 22.01.10 34 1 23쪽
167 167화 22.01.09 36 1 22쪽
166 166화 22.01.08 34 1 23쪽
165 165화 22.01.07 36 1 26쪽
» 164화 22.01.06 32 1 22쪽
163 163화 22.01.05 36 1 24쪽
162 162화 22.01.04 39 1 22쪽
161 161화 22.01.03 33 1 22쪽
160 160화 22.01.02 36 1 25쪽
159 159화 22.01.01 37 1 23쪽
158 158화 21.12.31 32 1 21쪽
157 157화 21.12.30 35 1 23쪽
156 156화 21.12.29 35 1 24쪽
155 155화 21.12.28 34 1 24쪽
154 154화 21.12.27 40 1 22쪽
153 153화 21.12.26 42 1 24쪽
152 152화 21.12.25 39 1 21쪽
151 151화 21.12.24 39 1 24쪽
150 150화 21.12.23 38 1 22쪽
149 149화 21.12.22 37 1 21쪽
148 148화 21.12.21 40 1 22쪽
147 147화 21.12.20 44 1 22쪽
146 146화 21.12.20 39 1 21쪽
145 145화 21.12.19 40 1 22쪽
144 144화 21.12.18 43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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