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조회수 :
5,979
추천수 :
188
글자수 :
1,774,925

작성
21.12.25 18:00
조회
38
추천
1
글자
21쪽

152화

DUMMY

공작 저택의 지하감옥으로 등불을 든 사내가 걸어내려갔다. 그는 감옥에 갇힌 죄수에게 짧게 한 마디 했다. 그러자 죄수의 얼굴에 기쁨과 환희가 만연하였다.



석방된 첼시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듯 크게 두어발자국 걸을 때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좋아?”



조금 앞장서서 걸어가던 펠릭스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뒤로 돌리며 물었다.



“좋지. 좋고말고! 그대로 죽는줄 알았더니.”



“언제는 죽겠다면서.”



“뭐, 그랬지.”



첼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진짜 그럴 생각이었어. 진심으로.”



“그럼 죽지 그랬어?”



첼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나보고 아직 오지 말라더라.”



“누가?”



“애들이.”



“핑계하고는.”



펠릭스는 피식 코웃음을 치며 다시 발걸음을 뗐다.



“야, 펠릭스. 살려준건 고마운데, 내친 김에 부탁 하나만 더 해도 되냐?”



첼시는 쪼르르 펠릭스의 뒤에 따라붙었다.



“뭘 또?”



“돈 되는 일 좀 아는거 없어?”



“첼시.”



펠릭스는 다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나오자마자 도로 감옥에 들어가려고?”



“아니! 깨끗한 일로 말이야. 뭐 아는거 없어?”



“깨끗한일이 돈이 되겠어? 손 더럽히지 않고 성실하게 일 해서 버는 돈이야 다 고만고만하지. 너도 알잖아?”



“하긴, 뭐. 난 그렇게 재능도 없고, 머리가 좋지도 않으니까. 그래도, 뭐 좀 없으려나. 손 더럽히지 않고 큰 돈 벌 만한 방법.”



펠릭스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서쪽으로 가서 금광이라도 찾아보든가. 아직 거긴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야생의 땅이 많으니까.”



“오, 좋은데? 야, 펠릭스. 나 금광 사업 시작하려는데, 혹시 투자 좀 해 줄 수 있냐? 너도 아다시피 초기 자금이 한두 푼 드는게 아니잖아.”



“투자는. 사업 파트너는 딴데 가서 알아봐 첼시. 난 돈 없어.”



“공작 씩이나 돼서 쪼잔하기는.”



펠릭스는 대답 대신으로 저택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자 열린 문 너머에서 기다리던 검은색 일인승 마차 한대가 눈에 띄었다.



“타.”



“서비스 좋은데.”



“잔말말고 타기나 해.”



첼시는 마차의 문을 열고 오르려다가 펠릭스를 돌아보고 찡긋 웃었다.



“펠릭스.”



“왜 또.”



“도와줘서 고맙다. 진심으로. 그리고 실비아한테도 전해줘. 약,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살았다고.”



펠릭스는 넌더리를 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타기나 해 첼시. 하여튼. 예전부터 너랑 엮이면 꼭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더라.”



“알았어 알았어. 손님접대 하고는. 간다, 가! 더러워서.”



첼시는 힘껏 몸을 끌어당겨 마차에 올라탔다. 첼시는 마차에 타자마자 창문을 드륵 열고 고개를 쑥 내밀고 웃었다.



“펠릭스. 도와준거 나중에 꼭 갚을테니까, 받으러 와!”



“잡혀가지나 마, 첼시! 욕심부리지좀 말고.”



첼시는 고개를 도로 안으로 집어넣고 대신 손을 불쑥 내밀어 흔들었다. 곧, 마차가 출발했지만 첼시는 그 뒤로도 한동안 손을 계속 흔들었다.







첼시가 타고 간 마차는 언덕 모퉁이 너머로 금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마차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 뒤에서 조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펠릭스. 첼시는요? 어떻게 됐어요?”



“아, 실비아.”



펠릭스는 느긋하게 몸을 돌렸다.



“방금 갔어요.”



“갔어요? 죽었어요? 세상에, 어떡해······”



“아니, 돌아갔다고요. 마차타고.”



두 손을 모아 입 가에 가져다대고 어쩔 줄 몰라하던 실비아는, 머뭇거리며 손을 내려놓았다.



“아, 그냥 갔다고요?”



“네. 석방했어요. 엄마 설득해서.”



“당신 어머니가······설득이 됐어요? 어떻게요?”



“당신이 만든 약을 보여줬죠.”



“제 약을요?”



실비아는 아주 아리송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펠릭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는 당신이 하는 말이 잘 이해가 안 가네요.”



“당신이 빅터한테 주기로 했던 약. 중간에 제가 빼돌려서 엄마한테 보여줬다고요.”



“왜 그랬어요!”



실비아는 저택 현관에서 벌컥 소리쳤다.



“깜짝 놀랐잖아요! 아니, 그보다도, 그걸 당신 엄마가 알아버렸는데 이제 어떡해요? 기껏 빅터한테 방법이 있다고 설득했는데, 당신 엄마가 다 알아버렸으면 끝이잖아요, 끝!”



“진정좀 해요. 진정.”



실비아는 울상이 되어 원망스레 펠릭스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절 보자마자 다 안다고 하시더니, 당신이 어머님께 다 일러바쳤죠?”



“설마. 이 집안에 일하는 하인이 몇인데, 그 사람들이 죄다 엄마 눈이요 귀에요. 내가 말 해주기 전부터 엄만 다 알고 있었다고요.”



실비아는 풀이 죽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럼 빅터는 어떻게 돼요?”



“살려준다고 하지 않던가요?”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럼 된 거죠 뭐. 그리고 엄마는 당신이 꽤 마음에 든 눈치였어요. 엄마는 솔직한 사람이라, 자기 마음에 든 사람한테는 잘 대해줘요.”



“별로 믿음은 안 가요.”



“뭐, 의심하는거야 당신 자유지만. 아무튼, 슬슬 출발할 준비 해요. 마차 불러 뒀으니까.”



“빅터는요?”



“빅터가 왜요?”



실비아는 조금 머뭇거리며 펠릭스의 옷을 슬쩍 잡았다.



“당신 형님이잖아요. 이번 일로 상심이 컸을텐데, 가서 말이라도 몇 마디 하는 편이······.”



“에이. 귀찮게. 됐어요 됐어. 빅터도 별로 바라지도 않을 테고······.”



“그래도요! 가족이잖아요!”



펠릭스는 귀찮다는듯 실비아의 손을 뿌리쳤다.



“남의 가족사에 너무 참견하는거 아니에요?”



“빅터는 당신이랑 다르잖아요. 뭔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극적인 화해라든가, 뭐 그런거······.”



펠릭스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낭만 소설을 너무 많이 봤어요, 실비아.”



“피붙이한테 너무 냉정한거 아니에요?”



펠릭스는 실비아와 잠시 눈싸움을 하다가, 이내 귀찮다는듯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올라갔다.







빅터는 자기 손으로 망가뜨린 화랑의 난장판을 수습하느라 바빠보였다. 그는 부러진 붓과 캔버스의 쓰레기를 빗자루와 발로 슬슬 밀어 한데 모으고, 찢어진 종잇조각도 버리기 좋게 한데 뭉치고 있었다.



그리고 노크도 하지 않고 화랑의 문을 벌컥 열며 펠릭스가 안으로 들어왔다.



“형.”



빅터는 문이 열린 바람에 사방팔방 휘날리는 나무 부스러기와 종잇조각을 짜증스런 눈으로 둘러보았다.



“펠릭스. 왜?”



“나 간다. 수고하라고.”



“언제부터 작별인사를 했다고? 넌 그 연금술사 따라갈때도 인사도 안 하고 그냥 갔잖아.”



“아, 뭐. 실비아가 졸라서. 아무튼, 나 간다.”



펠릭스는 엉망이 된 화랑에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펠릭스.”



“왜.”



빅터는 빗자루를 내려놓고 천천히 펠릭스와 눈을 맞추었다.



“조심해라.”



“왜? 나한테 공작원이라도 보내려고?”



“아니, 몸조심 하라고. 너 감기 걸리면 헛소리 하잖아.”



펠릭스는 짜증스레 바닥의 쓰레기를 툭 찼다.



“달리 할 말 없지?”



“엄마는 날 어떻게 할 생각이래?”



“당분간 내버려둘거래. 나랑 약속했어. 믿어도 돼. 하지만, 다음부터는 잘 생각해서 움직이는게 좋을걸. 아무 여자하고 붙어먹지 좀 마. 그러다가 엄마 진짜 화 내.”



“내가 알아서 해.”



빅터는 다시 빗자루를 집어들었다.



“죽지나 마. 형도.”



빅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빗자루로 바닥을 마저 쓸기 시작했다. 묵은 먼지가 공기중으로 휘휘 날리자 펠릭스는 도로 문을 열고 빅터의 화랑에서 빠져나갔다.







저택 현관에 나란히 서서 실비아와 펠릭스는 그들을 실어다줄 마차가 다가오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인사하고 왔어요?”



“네.”



“좋았죠?”



펠릭스는 귀를 후비적했다.



“별로.”



실비아는 살짝 짜증스런 얼굴로 펠릭스를 힐끗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가족이랑 좀 친하게 지내요.”



“왜요. 귀찮게.”



“당신 닮은 사람이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당신이랑 비슷한 사람들이 당신 가족인걸요.”



“허 참. 친언니하고 사소한 오해로 사이가 그렇게 어색했던 사람이 날 상대로 훈계에요?”



“어쨌든요!”



실비아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꾸했다.



“당신 가족이잖아요. 가족하고 좀 친하게 지내요.”



“흥. 가족이 뭐라고.”



마차가 부드럽게 마당에 멈춰서자 펠릭스는 마부가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먼저 휙 올라탔다. 그러자 실비아도 반대편으로 쪼르르 가서 손수 문을 열고 마차에 올라탔다.







빅터 웨일은 펠릭스와 실비아가 탄 마차가 저택에서 점점 멀어지는걸 창가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빅터.”



빅토리아의 목소리를 듣고 빅터는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니.”



“난장판이구나.”



빅토리아는 같잖다는 눈으로 엉망이 된 화랑을 둘러보았다.



“네. 죄송합니다.”



“미안할건 없고.”



빅토리아는 화랑 안의 다른 모든 잡동사니들에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으며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빅터.”



“네. 어머니.”



“네 마음대로 해라.”



“네?”



“마음대로 해. 네가 누구랑 뭘 하든 상관없어.”



“진심으로 하는 말씀입니까?”



“그래. 생각해 보니, 네가 날 닮은 사람을 집으로 데려오는것도 재밌을것 같아. 나는 날 닮은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 나랑 닮은 사람하고는 진심으로 싸워 본 적도 없거든.”



빅토리아 웨일은 어딘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수고해라 빅터. 그리고 하나만 말 하자면.”



빅토리아는 화랑에서 나가다말고 문가에 멈춰섰다.



“캔버스에는 못이 많으니까 다음부터는 부술때 조심하는게 좋을걸. 못에 잘못 긁히면 독이 올라 죽거든. 네 아빠처럼.”



가만히 듣고있던 빅터는 흠칫하며 놀란 눈으로 어머니에게 소리쳤다.



“아니, 어머니! 잠시만요! 아버지는, 아버지는 당신이 독약을 먹여 죽인게 아닙니까?”



빅토리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빅터의 눈을 잠시 쳐다보았다.



“그래. 맞아.”



“그럼 방금 한 말은······.”



“방금 내가 한 말은 잊어.”



빅토리아 웨일은 그대로 몸을 휙 돌려 화랑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남겨진 빅터는 멍한 눈으로 바닥의 부서진 나무 쓰레기들 사이에서 흉흉하게 빛나는 녹슨 대못을 바라보았다.







실비아가 마차의 차창을 열자 차가운 북풍이 좁은 마차 안으로 앞다투어 몰려들어와 실비아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



그렇지만 실비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창 밖으로 머리를 불쑥 내밀어 점점 멀어져가는 쓸쓸한 웨일 저택의 전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무서워 보이기만 했던 저택도, 이정도로 멀리 떨어지자 그렇게까지 무섭고 흉흉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뭐 볼게 있다고. 추워요. 문 닫아요. 그러다 감기걸릴라.”



펠릭스의 잔소리를 듣고 실비아는 고개를 마차 안으로 들이밀었다. 그녀가 차창을 닫자 바람결에 휘날리던 실비아의 까만 머리칼도 부스스 제자리를 찾아갔다.



“흉흉한 곳이었어요.”



“전 그닥.”



“그거야, 당신 집이니까 그렇죠.”



실비아는 바람결에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하며 대꾸했다.



“그래서, 잘 된 거예요? 두 사람 다 멀쩡해요?”



펠릭스는 좁은 마차 안에서 다리를 꼬았다.



“첼시는 조건없이 석방. 빅터도 당분간 죽이지 않기로 저랑 약속했고. 그럼 잘 된 거 아니에요?”



“좀 미심쩍기는 하지만······.”



“우리 엄만 약속 철저히 지켜요. 그러니까 신경 꺼요.”



실비아는 영 의심스런 눈으로 마차의 덜컹거리는 바닥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못 믿어서 그러는건 아니에요. 다만······.”



“다만?”



“저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



“우리 엄마도 당신한테 이해해달라고 부탁하진 않을 걸요.”



실비아가 그대로 입을 다물어 마차 안에는 당분간 침묵이 감돌았다. 웨일 가문이 부른 마차는 이따금 덜컹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고 부드럽게 도로를 달린 덕분에 침묵의 어색함도 훨씬 컸다.



“펠릭스. 그, 당신 스승님은 찾은 거예요?”



펠릭스는 기다렸다는듯 웃었다.



“빨리도 물어보네요. 난 또 아예 잊어버린줄 알았더니. 용케 잘도 기억하고 있었군요.”



“기억이야 계속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찾았어요?”



펠릭스는 구겨진 종이조각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여기 적혀있어요.”



“어디있대요?”



“근처에.”



“그래요? 의외네요. 아예 못 찾을 곳에 숨기라도 한 줄 알았더니.”



“아예 못 찾을 곳이기는 하죠.”



“네? 근처라면서요?”



펠릭스는 어딘가 음습한 미소를 지으며 종이조각을 도로 주머니에 구겨넣었다.



“주인 없는 숲에 있어요.”



“주인 없는······숲? 숲이요? 거기가 왜 못 찾을 곳이에요?”



“가 보면 알게 될 걸요.”


“무슨 뜻이에요. 자꾸 숨기지 말고 좀 제대로 알려줘요. 네?”


하지만 펠릭스는 더이상 실비아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차창 바깥으로 시선을 던져버렸다.



“그래서, 지금 그 주인 없는 숲으로 가는 거예요?”



“아니오.”



“그럼 어디가는 건데요?”



어느새 마차는 속도를 천천히 늦춰가더니 어느순간 소리없이 부드럽게 멈춰섰다. 그리고 마차의 문이 달칵 열리고, 커다란 몸집을 가진 올리버가 본데없이 쾌활하게 웃으며 마차위로 훌쩍 올라탔다.



“반갑다, 펠릭스! 그리고 실비아!”



올리버의 옷섶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다람쥐 코튼도 까만 눈을 반짝이며 찍찍 울었다.



“올리버!”



실비아는 놓쳐버린 가족이라도 만난듯 반갑게 올리버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차의 문이 도로 닫히자, 다시 마차는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올리버. 그동안 잘 지냈어요?”



올리버가 펠릭스의 맞은편에 앉자, 펠릭스는 좁은 구석으로 몸을 밀어붙였다.



“좋았지. 진짜 오래간만에 휴가다운 휴가였어. 사슴과 멧돼지를 몇 마리나 잡아댔고, 산비둘기나 뇌조도 종종 잡았지. 그래, 꿩도 살던데. 실비아. 꿩을 본 적 있어?”



“꿩이요? 아뇨. 몰라요.”



“정말 맛있던데.”



올리버가 군침이 도는듯 입맛을 다시자 실비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서, 잘 지냈어요? 다른 연금술사들은요?”



“잘 지내고말고. 연금술사들도 뭐, 그럭저럭 알아서 잘 지내던것 같던데. 트로이랑 메를린은 금방 돌아갔고, 카야는 끝까지 남아있었고. 그정도?”



“듀프랑 버크한테 편지 보냈는데. 혹시 알아요?”



“아. 알고말고. 한창 사냥한다고 숲을 뒤지다가 심부름꾼 꼬마를 만났는데, 뜬금없이 나한테 편지를 부탁하더라. 이런곳까지 편지가 오다니. 신기하던데.”



실비아는 다행이라는듯 웃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너희들은? 잘 지냈어?”



“아니오!”



펠릭스가 대답하기도 전에 실비아가 불쑥 외쳤다.



“올리버! 제 말좀 들어봐요. 세상에. 펠릭스가 사실 웨일 가문이었는데······.”



“알아. 그리고?”



“알았······다고요? 알고 있었어요?”



실비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큰 눈을 깜빡였다.



“난 얘랑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니까. 알지.”



“난 몰랐는데.”



실비아가 원망어린 눈으로 펠릭스에게 고개를 돌렸지만 펠릭스는 어깨를 으쓱하고 치웠다.



“아무튼, 그래서요! 무슨 일이 있었냐면은······.”



그리고 실비아는 저택에서 벌어진 일들을 하나하나 줄줄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 때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위주로. 어색함과 공포를 지나 두려움, 죄책감, 의무감을 넘어 마지막에는 안도하기까지.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약을 만들었는데, 제 뜻대로 안 됐을때는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줄 알았어요.”



“꽤 난폭하네.”



“네?”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다 말고 실비아는 눈을 번쩍 뜨고 올리버를 쳐다보았다.



“그렇잖아? 네 뜻대로 약효가 나지 않았다고 새로 약을 쑤어서, 어떻게 보면 억지로 그 사람들 마음을 돌린거잖아. 네가 원하는 방향 대로.”



“그렇다고 죽게 놔 둘 수야 없잖아요.”



“살리려면 다른 방법도 많았을텐데. 죽음의 약까지 쓰다니.”



올리버는 의외라는듯 중얼거렸다.



“그, 그거야. 저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 실비아. 하지만, 생각해보니 꽤 재밌는 구석이 있는걸. 은근히 펠릭스랑 죽이 잘 맞는거 아니야, 실비아?”



“아니에요! 절대, 절대로 절대로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이런 사람이랑 죽이 잘 맞겠어요?”



실비아는 무례하게 공작의 후손에게 손가락질까지 해가며 부정했다.



“흠. 난 펠릭스와 동행하며 적잖은 연금술사들을 만나왔어. 하지만, 그중에서 죽음의 약을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고, 어떻게든 그것만큼은 피하려고 애썼지. 그런데, 넌 네 손으로 그 약을 만든거잖아. 그것도, 펠릭스가 가르쳐 주지도 않는데.”



“그래도요! 전, 그래요. 목적이 달랐잖아요. 펠릭스랑 달라요. 전 사람들을 구하려고 그랬을 뿐이거든요.”



올리버는 펠릭스를 힐끗 보더니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뭐, 마음대로 생각해. 그래서, 펠릭스. 우리 어디로 가고있는거지?”



“주인 없는 숲으로요.”



올리버의 눈에 서늘한 한기가 깃들었다.



“주인 없는 숲이라고?”



“네. 거기 제이콥이 숨어있다는데.”



“거 참. 숨어도 하필 그런 곳에.”



실비아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대뜸 끼어들었다.



“왜요? 아까부터 그 주인 없는 숲이 뭐길래 다들 그래요? 저도 좀 알려줘요.”



“백번 설명하기 보다는, 가서 한 번 보는게 나을걸.”



올리버는 주머니칼과 숫돌을 꺼내 칼날을 슥슥 갈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곳이길래요?”



“뭐, 사람 살기 좋은 곳은 아니지. 그런 곳에 숨었다면, 과연. 네 대스승님도 어딨는지 모를 법도 해. 안 그래, 펠릭스?”



긴장어린 눈빛을 주고받는 펠릭스와 올리버를 보고 실비아의 가슴언저리도 조금씩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위험한 곳이에요?”



“위험하다고 해야하나. 별로 지내기에 좋은 곳이 아니야. 뭐, 가서 직접 보면 알거야.”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요?”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기 시작하자 올리버는 날카롭게 갈아낸 주머니칼의 날을 조명에 비추어보았다.



“마침 다 왔나본데. 공작가의 마차는 빠르기도 하지.”



“그러게요. 자, 그럼. 어디 한번 가 보죠.”



마차가 멈춰서자마자 펠릭스와 올리버는 힘차게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실비아는 양 옆으로 활짝 열린 두 개의 문 사이에서 잠시 갈팡질팡하다가 펠릭스가 내린쪽 문을 통해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한기를 품은 검은 바람이 기이하게 휘어진 고목으로 가득한 숲 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불어닥쳐왔다. 그리고 그 바람에 쫓기듯이 그들을 태워준 마차는 바로 방향을 돌려 달려가버렸다.



“여기가······.”



뒤틀린 고목에는 잎사귀는 전혀 붙어있지 않았으며, 나무는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말라붙은 검은 껍데기 위에는 흔히 보일법한 녹색 이끼 한 조각 자라있지 않은데다가, 낙엽은 왜그리 많은 것인지 아래가 보이지 않은 검게 고인 웅덩이처럼 낙엽의 층이 숲의 바닥 전체에 깔려있었다.



“주인 없는 숲이라고요? 여긴, 모든게 이상해요.”



실비아는 춤추듯 기이하게 뒤틀린 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지켜보다가 올리버의 손에 붙잡혀 뒤로 휙 잡아당겨졌다.



“꺅!”



그리고 올리버는 기다란 지팡이를 꺼내 실비아가 밟으려던 땅의 작엽을 슬슬 해쳤다. 거기에는 처음 보는 모양의 붉고 이상한 뿔 모양 버섯이 숨겨져 있었다.



“닿기만 해도 위험해. 먹으면 즉사야.”



올리버는 지팡이로 버섯을 짓뭉개더니, 근처의 흙으로 지팡이 끄트머리를 슥슥 문질러 닦았다.



“저, 고마워요 올리버. 이게, 그 주인없는 숲이에요?”



“맞아요.”



펠릭스는 줄곧 숲 속 깊숙한 곳에 도사린 흉흉한 어둠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여기 살던 마녀가 후계를 남기지 않고 죽어버린 숲이죠. 그래서 제멋대로 위험천만하게 자라난게 바로 주인 없는 숲이에요. 조심해요 실비아. 이런 숲은 사람들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으니까. 메를린네 숲이나, 대스승님의 숲과 전혀 달라요.”



“그냥, 같은 숲이 아니······꺅!”



나무 높은 곳에 어느순간부터 앉아있던 까마귀는 경고라도 하듯 큰 소리로 까악 하고 우짖더니,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침침한 태양을 가리며 숲 속으로 날아가버렸다.



“우릴 별로 환영하지 않는군요.”



펠릭스의 목소리는 웨일 저택에서 들었던 공작 펠릭스 웨일의 목소리보다 한층 더 음울했다.



“하지만, 가야죠. 자, 올리버. 그럼 부탁해요. 안내해줘요.”



“얼마든지.”



올리버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앞장섰다. 그리고 코튼도, 옷섶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뒤를 머뭇거리며 실비아가 따라갔고, 마지막으로 펠릭스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는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숲 속의 모호한 어둠과, 낙엽과 나무 또는 바윗돌의 틈새에 숨어있는 괴물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펠릭스는 사람 얼굴을 닮은 나무의 옹이무늬와 눈이 마주치자 짜증스레 바닥에 침을 탁 뱉어버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행복의 연금술 가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후기 22.01.13 65 0 -
172 에필로그 22.01.13 55 1 4쪽
171 마지막화 22.01.13 44 1 22쪽
170 170화 22.01.12 37 1 24쪽
169 169화 22.01.11 33 1 24쪽
168 168화 22.01.10 33 1 23쪽
167 167화 22.01.09 36 1 22쪽
166 166화 22.01.08 34 1 23쪽
165 165화 22.01.07 36 1 26쪽
164 164화 22.01.06 31 1 22쪽
163 163화 22.01.05 36 1 24쪽
162 162화 22.01.04 39 1 22쪽
161 161화 22.01.03 33 1 22쪽
160 160화 22.01.02 36 1 25쪽
159 159화 22.01.01 36 1 23쪽
158 158화 21.12.31 32 1 21쪽
157 157화 21.12.30 34 1 23쪽
156 156화 21.12.29 35 1 24쪽
155 155화 21.12.28 34 1 24쪽
154 154화 21.12.27 39 1 22쪽
153 153화 21.12.26 42 1 24쪽
» 152화 21.12.25 39 1 21쪽
151 151화 21.12.24 38 1 24쪽
150 150화 21.12.23 38 1 22쪽
149 149화 21.12.22 37 1 21쪽
148 148화 21.12.21 40 1 22쪽
147 147화 21.12.20 43 1 22쪽
146 146화 21.12.20 38 1 21쪽
145 145화 21.12.19 40 1 22쪽
144 144화 21.12.18 43 1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