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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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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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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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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161화

DUMMY

제이콥은 꿈 속을 거닌다. 계속해서 길을 잃고 꿈 속에서 방황한다. 오래 전에 잊어왔던 그 꿈 속을. 꿈 속에서 발견한 희뿌연 안개의 장막을 두 손으로 걷어내자, 그 너머에 끔찍한 기억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흘입니다.”



밤이 내려앉은 숲 속에서, 펠릭스와 제이콥은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었다.



“사흘은 턱없이 부족하다.”



“나흘 뒤면 왕이 직접 올 겁니다. 뒷마무리를 생각하면, 사흘 안에 끝내야죠.”



펠릭스는 무덤덤하게 중얼거렸다.



“오늘 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실상 이틀이나 다름없어.”



“집에서 보내준 첩보에요. 나흘 뒤에 왕이 오는건 기정사실 입니다. 왕의 행차는 공작이 아니라 공작 할아버지가 와도 못 막아요. 그리고 행차하신 왕이 실망하면, 그걸로 우리 연금술사들도 끝이죠.”



제이콥은 답답한듯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틀. 이틀이라. 운이 좋다면 아슬아슬하게 재료를 찾을 수야 있겠다만······.”



“뭐가 필요한데요?”



제이콥은 잠시 침묵했다.



“늑대의 눈물. 호수의 불. 가을의 겨우살이.”



“마녀의 약.”



펠릭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연금술이 아니잖습니까. 마녀의 요술을 부려서 뭐하려고요?”



“달리 방법이 없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펠릭스의 두 눈동자가 반짝였다.



“꽤 확신하네요. 스승님.”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냐.”



“별 뜻 없어요. 그냥, 뭐. 짐작가는 데라도 있나 해서 말이죠.”



“내 스승님조차 약을 만들지 못했다.”



제이콥은 펠릭스의 빛나는 눈동자를 외면했다.



“달리 기댈 곳이 없어.”



“뭐, 알아서 하세요. 난 이미 마음을 굳혔으니까. 당신이 마녀의 요술에 기대든, 우리 연금술사들의 연금술에 기대든, 두 손 놓고 퍼질러 앉아 구경이나 하든 별 상관없어요. 기한은 사흘. 아니,”



펠릭스는 머리위에 떠오른 보름달을 향해 고개를 슬쩍 들어올렸다.



“이틀.”



보름달이 그들의 머리 위를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펠릭스.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없어요.”



펠릭스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고의 연금술사인 대스승님이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자긴 모른다고. 그러니 달리 방법따윈 없어요. 내가 하려는 일은 아주 원시적인 방법이고, 나도 가능하면 연금술로 해결하고 싶었지만, 뭐. 이럴 때도 있는거죠.”



이미 펠릭스는 마음을 굳힌듯했다. 제이콥은 결심이 선 제자의 얼굴을 보고있자니 마음이 답답했다. 가슴에 무거운 맷돌이 얹힌 기분이다. 목구멍 아래에서 불쾌한 무언가가 스물스물 요동쳤다.



“펠릭스. 살인자가 될 셈이냐.”



펠릭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대답했다.



“네. 필요하다면. 적어도, 전염병을 못 막아서 온 왕국 방방곡곡으로 퍼뜨리는 것보다야, 내 손으로 사람 십수명쯤 죽이고 그들의 시체와 마을을 불태우는게 훨씬 낫죠.”



“네겐 사람의 마음이 없어.”



제이콥이 고통스러운 어조로 힘겹게 말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건지. 제이콥. 오히려 제가 묻고싶은데, 그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그렇게 대단해요? 나와 달리 사람의 마음이라는걸 갖고 있는 연금술사가 이 숲 속에 지금 몇 명이나 있습니까? 그놈들이 나보다 나은게 대체 뭐죠?”



제이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남은 시간은 이틀. 이틀 안에 끝내요. 뭐, 나도 일단은 당신 제자인만큼 도와줄테니까.”







날이 밝기도 전에 제이콥은 숲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가을의 겨우살이. 겨울에 보이니 겨우살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을이다. 곧 겨울이 다가오지만, 겨울에 캐낸 겨우살이는 약에 못 쓴다. 마녀의 요술을 부리기에 그건 너무 평범하니까.



제이콥은 온 숲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건 땅에 떨어진 밤송이와, 아직 떨어지지 못하고 나무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채 말라가는 밤송이 뿐이었다. 제이콥은 지나치게 여물어 너무 일찍 떨어진 밤송이와 아직까지도 영글지 못해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밤송이를 보고 마음이 착잡했다. 그 밤송이 속에서 자신과 펠릭스의 모습이 아른아른 보이는듯 착각이 들었다.



겨우살이는 밤나무에 흔히 붙는다. 여긴 밤나무 숲이니 분명 어딘가엔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 잎이 덜떨어진 밤나무가 많아 구분하기 힘들 뿐이다. 제이콥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치켜든채 하염없이 숲 속을 방황했다. 발에 뿌리가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영근 열매를 까먹는 다람쥐와 기싸움을 벌인 적도 있다. 수풀 속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는데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두 번은 운 좋게 사슴과 눈이 마주쳤지만, 한 번은 멧돼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맵고 따가운 기체가 담긴 약병을 하나 던져 멧돼지를 쫓아낸 뒤, 제이콥은 뒤늦게 숨을 몰아쉬었다. 죽음. 제이콥은 죽음이 목전까지 다가오는줄도 몰랐다. 뒤늦게 죽음을 발견하고 실감하자, 그는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죽음을, 그의 제자는 자신의 두 손으로 빚어내겠다 선언했다. 더 무서운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지껄이는 말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죽음이 무섭지만 멈출 수는 없다. 붉은 가루 병은 자기가 만들어낸 병. 이렇게까지 만들 생각도 없었으며, 제자가 스승의 뒷처리를 하게 놔 둘 수도 없다. 그러려고 연금술사가 된 게 아니다. 그러려고 아이작의 곁에 끝끝내 남은 것이 아니다.







하루종일 숲속을 뒤지는데 몸이 피곤하지 않았다. 아니, 이미 피곤을 느끼기에 너무 지쳤는지도 모른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으며 머리가 졸립지도 않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얼어터진 두 귀에서는 자그마한 돌맹이가 자르르 흐르는 소리가 강물 부딪히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그러다가, 마침내 찾아냈다. 저 밤나무 높은 곳에 매달린 겨우살이. 제이콥은 배낭을 내려놓고 낫을 꺼내들었다. 날을 감싼 천을 걷어내자 벼가 아니라 사람 목이라도 싹둑 자를 만큼 서슬퍼런 날이 번뜩였다.



낫을 허리춤에 걸고 제이콥은 나무를 올랐다. 도중에 다람쥐가 옹이에서 뛰쳐나오기도 했다. 둥지를 지키는 어미새가 시끄럽게 울며 제이콥의 근처를 날아다녔다. 발디딘 나뭇가지가 뚜둑 부러지기도 했고, 딛을 옹이가 없어 한참 가만히 매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겨우살이가 그의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걸 찾으려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온 숲 속을 뒤져왔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생각따윈 없었다.



제이콥은 나무에 매달려 낫을 휘둘렀다. 이 나무의 가지는 생생한것이 한여름이나 같았다. 가지에 낫을 휘두르자 녹색 진이 튀며 코를 찌를듯한 풀냄새가 났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제이콥은 계속 낫을 휘두른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째 낫을 휘두르자 가지가 뚝 부러져 스스스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지나치게 안도한 탓이다. 제이콥의 팔다리에서 힘이 쭉 빠져 나무에서 떨어진다. 있는 힘껏 낫을 숲 속을 향해 집어던져버리고, 제이콥은 힘없이 추락했다.



뼈가 한두군데 부러진게 틀림없었다. 제이콥은 피섞인 기침을 토하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팔과 손이 움직이는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뼈를 녹인듯 걸쭉한 흰 약을 꿀꺽 삼키고, 태운 보리를 우려낸마냥 황갈색 빛이 도는 약은 반만 들이마셨다.







시체처럼 누워있기를 오 분 뒤에, 제이콥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닿는곳 바로 옆에 막 잘라낸 싱싱한 가을 겨우살이가 떨어져 있었다. 겨울에 보이니 겨우살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가을이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가을에 캐낸 겨우살이니, 세상에 있을리가 없는 물건이다. 이것이 바로 마녀의 요술이다. 제이콥은 겨우살이를 배낭에 넣고 비틀거리며 공터로 돌아갔다.







연금술사의 공터가 시끄러웠다. 펠릭스의 일갈을 듣고도 뻔뻔스레, 아니면 뒤늦게 부끄러워 떠나지 못한 몇몇 연금술사들도 공터를 기웃거렸다.



비틀거리며 제이콥은 사람들을 헤쳤다. 아이작까지 와 있었다. 메를린은 어쩔줄 모르겠다는듯 당황한채 펠릭스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있었다. 카야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트로이는 훨씬 침착해 보였다. 게일은 등을 돌리고 쭈그려앉아 훌쩍이고 있었다. 린은 조용히 내려다보았고, 듀프는 린의 곁에 서 있었다. 버크는 펠릭스의 한쪽 다리에 달라붙어 흰 천으로 다리를 옥죄고 있었다.



“무슨일이냐.”



스승의 목소리에 제자들이 일제히 물러섰다. 펠릭스의 오른쪽 다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 무릎 아래가 텅 비어있다. 무릎 아래를 감싼 흰 천은 순식간에 피에 젖어들었다.



“아, 스승님. 자요.”



펠릭스는 넉살좋게 품을 뒤지더니 조그만 유리병을 꺼내 제이콥에게 휙 던졌다. 제이콥은 반사적으로 유리병을 집어들었다.



“대체······.”



“늑대의 눈물. 필요하다면서요?”



그의 제자는 아프지도 않다는듯, 억울하지도 않다는듯 그저 싱글거렸다.



“버크! 천 갈아줘. 대스승님. 이거 제대로 된 약 맞아요? 계속 피나는것 같은데?”



“메를린!”



메를린은 재빨리 일어나 어디론가 달려갔다. 아이작은 품 속에서 와인색의 약병을 꺼내 펠릭스의 입 안에 흘려넣었다.



“음. 포도. 포도주. 포도주는 신의 피라고 불리기도 한다지만, 이건 조금 다르군요. 멧돼지 피. 사슴 피. 그리고······원숭이 피까지?”



아이작은 이런 상황에서조차 태연하게 약을 품평하는 펠릭스를 어이없다는듯 바라보았다.



“펠릭스. 뭘 한 거냐.”



제이콥이 물었다. 물론, 그는 머리가 좋았다. 펠릭스가 뭘 한 건지 약병을 받았을 때 이미 알았다.



“늑대의 눈물. 늑대는 눈물을 쉽사리 흘리지를 않죠. 목에 칼을 들이밀어봤자 죽을 뿐이고, 죽으면 눈물이 말라서 못 써요. 하지만, 산채로 눈물을 뽑아내는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죠.”



“뭘 한 거냐.”



“내 다리를 물려주니 얌전하던데요. 그 사이에 눈물을 좀 훔쳤어요.”



제이콥의 등줄기를 타고 전기가 찌릿 흘렀다. 뭔가 아주 크게, 단단히, 분명하게 잘못되었다. 이러려고 연금술사가 된 것이 아니다. 도와달라는건 이런 뜻이 아니었다.



“펠릭스. 너는······너는······.”



펠릭스는 제이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넌, 사람도 아니다.”



그게 제이콥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스승과 제자는 잠시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메를린이 약을 들고 돌아오자, 제이콥은 도망치듯 물러났다.







조그마한 오두막 안으로 들어와 제이콥은 책상 위에 겨우살이를 올려놓았다. 그 옆에는 늑대의 눈물을 담은 병도 내려놓았다.



“호수의 불.”



남은 재료는 하나뿐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재료를 세 개나 써서 만드는 약이다. 효과가 없을리가 없다. 마녀도 아닌 한낱 연금술사 따위의 피를 섞어 만든 병을 치료하는데에 적어도 부족하진 않았다.



“호수의 불······.”



제이콥은 두 손으로 책상을 짚었다. 입에서는 한숨밖에 새어나오지 않았다. 밤이 내려오고 있다. 지금은 숲으로 들어갈 수 없다.



“내게 재능이 있었더라면······.”



마녀의 재능이 있었다면 한 밤중에도 숲을 거닐었을 것이다. 허나 마녀의 재능은 메를린의 것이지, 그의 것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펠릭스만큼의 재능이, 아니, 그 반만한 재능 정도만 있었더라도 제이콥은 왕국 안에서 손에 꼽히는 연금술사가 되었을 것이다. 명예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다만, 큰 일을 해내고 싶은 욕심 뿐이었다.



“하다못해, 그 반의 반 만큼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붉은 가루 병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제자를 질투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예 재능이 없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랬다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텐데.”



한숨과 함께 숨겨둔 속마음을 토해낸다. 위태롭게 밝혀둔 촛불은 무거운 마음에 부딪혀 힘없이 바스라진다. 어둠 속에서 제이콥은 소리없이 흐느꼈다.







숲은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으며, 밤은 마녀의 시간이다. 그러나 그 한 밤중에 제이콥은 홀린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두막을 나서 숲 속으로 걸어갔다. 불어와야할 차가운 돌풍이 불어오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으로 공터를 향해 걸어간다. 두 사람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온다. 펠릭스와 메를린의 밤의 어둠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달빛조차 들지 않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제이콥은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건 안 돼.”



그들은 솥 앞에 서 있었다. 바람이 제이콥을 향해 살짝 불어오자, 방금전까지 끓던 훈훈한 기운이 제이콥의 얼굴에 닿았다.



“어째서? 약이잖아. 약이 되잖아.”



“안 돼. 못 써. 이걸 가져가면, 네가 죽어 메를린.”



펠릭스는 단호했다.



“이걸 쓰면, 전부 낫게 할 수 있어.”



“그럼 네가 죽어. 목을 따서 양동이를 놓고 돼지 피를 받듯이, 널 매달아놓고 네 온 몸에서 피를 쭉 빼 갈거야. 저 연금술사들이라면 더 한 짓도 서슴찮을걸.”



“그렇지만······.”



“그럼, 이렇게 하자.”



펠릭스가 발로 솥을 힘껏 밀어버렸다. 솥이 바닥에 나뒹굴며 내용물을 토해냈고, 태울 것이 없어진 장작불이 화륵 타올랐다. 그 불빛 속에서 제이콥은 보았다. 펠릭스의 얼굴. 그리고 메를린의 얼굴까지.



“펠릭스! 이거라면, 적어도 저 사람들을······.”



“네가 죽는다니까. 산제물을 바쳐서 역병을 막아? 마녀를 죽여서 병을 막는다고?”



펠릭스는 메를린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하지만, 그럼 네가······.”



“난 상관안해. 내 손으로 몇을 죽여도 아무렇지 않아.”



펠릭스는 담담하게 메를린에게 말했다.



“그러려고 연금술을 배운거야. 그럴 마음으로 죽음의 약을 만들겠다고 나선거야.”



펠릭스의 말이 제이콥의 뇌리를 스친다.



“재미로 죽음의 약을 만들겠다고 선언한게 아니야. 다들 죽음을 무서워하지. 두려워 해. 그러면서 한편으론 신성시하고, 누군가는 애타게 바라기도 해. 다들 죽음이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거지?”



제이콥의 생각이 틀렸다. 그는 제자를 잘못 알고 있었다.



“메를린. 돌아가. 넌 약을 만든 적이 없어.”



“아냐. 난 분명 만들었어.”



“그래. 그럼, 네가 만든 약은 내가 엎어서 못 쓰게 되었다고 기억해. 오늘 일로 쓸데없이 죄책감 느끼지 마.”



“왜 혼자 다 떠안으려고 하는거야?”



메를린이 따지듯이 소리쳤다.



“난 저울질을 잘 해.”



펠릭스가 여전히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러는게 이득이라서 그래. 달리 이유따윈 없어. 숭고한 희생이나, 뭐 그런 건 아니야.”



“넌 이상해.”



펠릭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만 가 봐 메를린.”



메를린은 몇 분 정도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펠릭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결국 그에게서 등을 돌려버렸다.







봐선 안 될 것을 봐버렸다. 장막 너머에 감춰졌던 끔찍한 비밀을 보아버렸다. 그 비밀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진작부터 의심하고 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바로 그것이다. 펠릭스가 틀리지 않았다. 잘못된 것은, 오직 제이콥 자기 자신 뿐이었다.



제이콥은 고통속에 신음하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꿈과 환상과 현실이 엉망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귓가에서 아이작의 호통이 펠릭스의 웃음소리와 뒤섞여 들려왔다.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과 연금술사 아이작의 모습, 그리고 풋내기 소년 시절의 제이콥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수없이 많은 약과 재료의 향기가 엉망으로 뒤섞여 그의 코를 찔렀다. 불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가 물의 축축함과 사막의 건조함과 함께 피부를 자극했다.







그래도 아침은 밝아온다. 태양의 빛이 비추자 제이콥은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났다.



“호수의 불······.”



남은 길은 하나뿐이다. 바로잡기 위한 마지막 기회다. 오늘이 지나면 더는 돌이킬 수 없게 되고 만다.



“이러려고 연금술사가 된 게 아냐······.”







오두막을 빠져나오자 제이콥은 펠릭스와 눈이 마주쳤다.



“아, 스승님.”



펠릭스는 텅 빈 오른 무릎 때문에 목발을 짚고 있었다.



“뭐냐, 펠릭스.”



“자요.”



펠릭스는 품을 뒤져 조그만 천주머니를 제이콥에게 휙 던졌다.



“뭐냐.”



“봐요.”



제이콥은 천주머니를 열어보았다. 말라비틀어진 빵 쪼가리 몇 개와, 마찬가지로 말라 비틀어진 과일 몇 조각.



“숲에서 길 잃지 말아요. 지금같은 계절에선 하룻밤도 못 버티니까.”



“이제와서 제자 행세냐?”



펠릭스는 싱긋 웃었다.



“같은 병마와 싸우는 동료 아닙니까?”



제이콥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제자 펠릭스가 낑낑거리며 몸을 돌리고 어설프게 목발을 짚으며 저만치 멀리 사라질 때까지.







제이콥은 숲을 뒤지기 시작했다. 미친 사람처럼 충혈된 눈동자로 입 가에서 거품을 흘리면서.



호수의 불을 찾아야 한다. 호수에는 불이 붙지 않는다. 애초에, 물이니까. 그런데도 호수의 불은 호수의 불이라고 불린다. 그러니, 세상에 있을리 없는 물건이다.



호수의 불이 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독특한 생태를 가지는 수생 식물이다. 이끼와 미역의 중간쯤 되는 실타래 모양의 붉은 식물이다. 그 식물이 호수에 엉망으로 자라난 모습이 꼭 불붙은 모양같다 해서 호수의 불이다. 역시, 호수에는 불이 붙지 않는다.



호수를 찾는 것은 겨우살이를 찾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어디에 호수가 있을지 알 만한 방법이 없다. 지도에 그려진 호수를 모두 찾아간 뒤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당연히, 알려진 호수에는 호수의 불이 없다. 특별히 깨끗한 물에서만 자라니까. 하지만 깨끗한 물에는 고기도 많고 고둥도 많다. 물 속에서 사는 벌레도 많다. 그러니 호수의 불은 크게 자라기 전에 모두 뜯어먹힌다.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재료다. 있을리 없는 물건이니 모순적인 이름이 붙는다. 그리고 마녀의 요술에도 쓸 수 있다. 제이콥은 존재하지 않는 재료를 찾아 숲 속을 헤집었다. 하지만 숲 속을 헤집는다고 찾을 수 있는 재료가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니까. 특별한 존재는 아무에게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제이콥은 지치기 시작했다. 벌써 해가 비스듬히 기울어버린 뒤였다. 펠릭스가 건네준 주머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열어보지도 못했다. 멈출 수가 없다. 호수의 불을 찾아야 한다. 제자가 스승의 뒷처리를 하게 놔 둘 수가 없다. 자기가 만든 역병, 자기 손으로 만든 죽음이다. 그러려고 연금술사가 된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이콥은 거세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생각해 봐. 자기 손으로 죽음을 처리하고 나면, 펠릭스도 생각이 바뀔 거야.’



제이콥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젓더니 무턱대고 달리기 시작했다.



‘펠릭스를 미워했잖아. 펠릭스는 틀렸어. 그는 틀린 인간이야.’



제이콥은 두 귀를 틀어막았다. 곧 두 눈까지 질끈 감았다.



‘호수의 불을 꼭 찾아야 해? 이대로 놔 두면, 펠릭스가 전부 책임 질 거야. 네가 병을 만들었다는걸 사람들 앞에서 알리지 않아도 되잖아.’



“아니야!”



제이콥의 괴성이 울러펴저 숲 속에 숨어있던 새떼들이 일제히 하늘 위로 새까맣게 날아올랐다.



‘맞잖아. 들키기 싫잖아. 대스승님이 실망할 걸. 아버지를 볼 면목이 있어?’



“아니야! 그러려고 연금술사가 된 게 아니라고!”



발에 뭔가 걸려 제이콥은 추잡하게 넘어졌다. 흙과 먼지, 낙엽의 부스러기가 그의 온 얼굴을 덮쳐왔다.



‘그럼 더더욱 들키면 안 되겠네.’



제이콥은 두 눈을 떴다.



‘아무것도 하지 마. 펠릭스가 책임질거야.’



제이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펠릭스가 책임지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면 돼.’



제이콥의 눈앞에 호수가 있었다. 그리고 수면에 석양이 비쳤다.



‘펠릭스는 쫓겨날거야. 자기 손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니까. 왕이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있어?’



제이콥은 호수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다른 연금술사들도 모두 펠릭스를 탓할거야. 살릴 수도 있었는데 저 애송이가 전부 죽여버렸다고.’



석양의 붉은 빛이 드리운 호수는 꼭 불에 활활 타듯 새빨겠다.



‘하지 마.’



제이콥은 호수의 물에 두 손을 담갔다. 살짝 따스한 기운이 돌며 그의 손에 뭔가가 휘감겼다.



“호수의 불.”



붉은 수초의 커다란 덩어리. 제이콥은 바로 배낭을 내리고 커다란 유리병을 꺼내들었다. 그는 조심스레 손으로 수초를 헤집어 핵을 꺼내 유리병에 담았다.







이것으로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 이제 돌아가서 모든 것을 고백하면 된다. 재료는 모두 구했다. 약을 만드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건 연금술이 아니니까. 마녀의 요술이나 다름없으니까.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제이콥은 공터로 걸어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타는 냄새. 숲 너머에서 피어오르는 잿빛 연기. 뒤통수가 따끔거린다.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르며 따끔거린다.



제이콥은 숲 속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밤나무숲 한 가운데 있어 밤숲마을이라 불리던 조그마한 마을로 달려간다. 그 마을은, 시뻘건 화염에 잡아먹혀 타들어가고 있었다.



마을 한 가운데 펠릭스가 고고히 서있었다. 그는 담담한 얼굴로 장작을 하나 집어들어 불타는 건물을 향해 휙 집어던졌다. 여전히 그의 오른다리는 텅 빈 그대로였다.



마을이 불 속에 잡아먹혀 간다. 시체의 산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타들어간다.



‘잘 됐네. 이제 돌아가. 펠릭스가 전부 대신 책임져 줄거야. 틀린건 펠릭스야. 네 잘못이 아니야.’



제이콥은, 모든 것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도망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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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170화 22.01.12 38 1 24쪽
169 169화 22.01.11 33 1 24쪽
168 168화 22.01.10 34 1 23쪽
167 167화 22.01.09 36 1 22쪽
166 166화 22.01.08 34 1 23쪽
165 165화 22.01.07 36 1 26쪽
164 164화 22.01.06 32 1 22쪽
163 163화 22.01.05 36 1 24쪽
162 162화 22.01.04 39 1 22쪽
» 161화 22.01.03 34 1 22쪽
160 160화 22.01.02 36 1 25쪽
159 159화 22.01.01 37 1 23쪽
158 158화 21.12.31 32 1 21쪽
157 157화 21.12.30 35 1 23쪽
156 156화 21.12.29 35 1 24쪽
155 155화 21.12.28 34 1 24쪽
154 154화 21.12.27 40 1 22쪽
153 153화 21.12.26 42 1 24쪽
152 152화 21.12.25 39 1 21쪽
151 151화 21.12.24 39 1 24쪽
150 150화 21.12.23 39 1 22쪽
149 149화 21.12.22 37 1 21쪽
148 148화 21.12.21 40 1 22쪽
147 147화 21.12.20 44 1 22쪽
146 146화 21.12.20 39 1 21쪽
145 145화 21.12.19 40 1 22쪽
144 144화 21.12.18 43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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