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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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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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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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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150화

DUMMY

두 개의 발소리가 어두운 계단을 내려와 철창 앞에서 멈췄다. 일렁이는 불빛이 철창에 가까이 다가오자, 안에 갇혀있던 첼시는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또 뭐야?”



“첼시! 살아있어요? 무사해요?”



첼시는 크게 하품을 하고 일어났다.



“뭐야. 너희들이었네.”



첼시는 조금 흐리멍텅한 눈으로 철창 밖을 힐끗 보았다.



“잠 좀 자게 내버려 둬. 새벽부터 시끄러워서 원.”



“한 명 처형당했던데.”



펠릭스는 촛불을 거두어 첼시의 반대편 감옥 안을 슬슬 비추어보았다. 거기에는 사람 있었던 흔적따위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뭐, 나 혼자 여기 갇혀있는건 아니었으니까. 뭐랬더라, 뭐. 뭐하는 사람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



“어쨌든, 살아있어서 다행이에요.”



실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거야······.”



“사실, 내가 죽든말든 너랑은 별 상관 없지 않아?”



“상관있어요!”



첼시는 깜짝 놀라 눈을 끔뻑였다.



“뭐, 왜?”



“당신한테 약 만들어 주려고 했단 말이에요. 벌써 죽어버리면······.”



첼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뭐. 그래서, 나한테 약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첼시는 감옥 바닥에 퍼질러 앉아 실비아의 말을 간단히 요약했다.



“네.”



“별로 필요없는데. 그런거.”



“먹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아니, 아냐. 정말로. 별로 필요 없어. 보나마나 뭐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그런 약 아니야? 실연한 청년처녀들이 자주 찾는 그런 약. 난 그런거 필요 없거든.”



“달라요!”



첼시는 귀를 후비적했다.



“어쨌든, 마음은 고맙지만 나한테는 별로 필요없어. 그 시간에 좀 더 쓸모있는 일을 하라고.”



“당신은 죽는것도 안 무서워요?”



실비아는 두 손으로 철창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죽을뻔 했잖아요. 왜 그렇게 태연해요? 제가 도와주겠다는데, 제 도움도 거절하고······.”



첼시는 실비아에게서 눈을 돌려 펠릭스와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러자 곧 펠릭스는 실비아를 데리고 감옥 밖으로 나가주었다.



두 사람이 빠져나가자 첼시는 다시 차갑고 눅눅한 맨땅에 드러누워 두 눈을 깜빡이며 시커먼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아침 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더니 실비아는 펠릭스를 졸라 작업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박차고 들어왔다.



“기운이 넘치네요.”



펠릭스가 놀림조로 말하는걸 실비아는 귓등으로도 못 들은척하며 선반을 휙휙 열어 재료들을 끄집어냈다.



“어제랑 똑같은 약을 만들려고요?”



“상관없잖아요. 제가 뭘 만들든.”



“효과가 있으려나.”



“있겠죠! 당연히. 제가 누구 제자인데요?”



실비아는 재료들을 작업대 위에 늘어놓고 양동이를 집어들어 물을 뜨러 나갔다.



“소용없을텐데.”



펠릭스는 늘어선 재료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꽃, 줄기, 뿌리, 나뭇잎, 버섯, 가루.



“식물성 재료를 좋아하는군.”



“뭐라고요?”



양동이를 들고 급하게 움직이느라, 양동이의 물은 거의 한 반쯤은 찰랑거리며 바닥에 줄줄 흘러내렸다.



“별 말 안 했어요. 그나저나, 실비아. 무슨 약을 만들려고요?”



“첼시가 생각을 고쳐먹을 만한 약을 만들 거예요! 분명, 첼시도 너무 오래 갇혀있어서 마음의 문을 닫은게 틀림없어요. 제가 도와줄거에요. 도와줄거라고요. 그렇게 죽도록 못 놔둬요.”



“첼시가 약을 먹는다고 달라질게 없다니까.”



실비아는 양동이를 들고 멈칫했다.



“살리고 싶으면, 약을 쑤고있을게 아니라 우리 엄마를 설득해야죠. 첼시든 빅터든 간에. 왜요, 우리 엄마랑은 못 싸우겠어요? 무서워서?”



“그런거 아니에요. 전, 그냥······.”



실비아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양동이의 물을 마저 부어넣었다.



“뭐, 잘 해 봐요.”



펠릭스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열쇠를 작업대 위에 올려두고 조용히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저택으로 돌아온 펠릭스는 금과 보석으로 휘황찬란한 방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가 천장에 매달린 줄을 잡아당기자 일 분도 걸리지 않아 그레고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온 그레고리는 짧은 순간동안 함박웃음을 지으며 펠릭스에게 인사했다.



“물려받기로 하신겁니까, 도련님?”



“그냥 와 봤어.”



그레고리는 살짝 아쉽다는듯 미소를 머금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오늘 엄마 일정이 어떻게 돼?”



“마님께서는 새벽에 수도로 출장가셨습니다. 아마 오늘 밤 늦게 돌아오실것 같습니다.”



“수도? 왜?”



“에보니 가문이 거래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레고리는 잘됐다는듯 살짝 웃었다.



“에보니? 고상한척 할 때는 언제고. 왜 갑자기?”



“지난번 피아노 콩쿠르에서 너무 이목을 끈 탓이겠죠. 적이 많은 사람은 행동거지 하나하나 조심해야 하는 법 아닙니까.”



“아. 하긴. 노리스가 좀 막나가긴 했지. 그래서 옳다구나 하고 여기저기서 물어뜯고 있나봐?”



“왕족도 그걸 봤으니까요. 아무리 에보니라 해도, 혼자 힘으로 수습하기 무리였나 봅니다.”



“뭐, 우리한텐 잘 된 일이지. 그래서, 그레고리. 부탁할게 좀 있는데.”



그레고리는 펠릭스에게 살짝 허리를 숙였다.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도련님.”



“작업실에서 실비아가 약을 만들고 있거든.”



“예.”



“아마 두 병을 만들 거야. 하나는 감옥에 갇혀있는 첼시한테 갖다주고, 다른 하나는 빅터가 먹을 약인데.”



“몰래 음식에 약을 탈까요?”



펠릭스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빅터가 혓바닥은 좀 예민하지. 그리고 실비아가 만드는 약은 맛과 향이 강렬해.”



“그럼 술에 타겠습니다.”



“여전히 빅터는 술을 입에 달고 사나?”



“에.”



그레고리는 허리를 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위스키 한 병이 비더군요.”



“어지간히 마실 것이지. 아무튼, 잘 부탁해 그레고리.”



“예. 분부대로.”



그레고리는 펠릭스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몸을 빙글 돌렸다.



“아, 잠깐만! 그레고리. 하나만 더 부탁하자.”



그레고리는 곧바로 걸음을 멈추고 다시 몸을 빙글 돌렸다.



“말씀하십시오, 도련님.”



“배고파서 그런데, 아침으로 먹을 것좀 보내줘.”



“알겠습니다. 바로 부엌으로 가서······.”



“그, 왜. 그걸로 해 줘. 얼마 전부터 수도에서 유행한다는 그거말이야. 왜, 빵 사이에 고기와 야채를 끼워넣어서······.”



“샌드위치 말씀이시죠. 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럼.”



“빨리 갖다줘. 나 배고프니까.”



그레고리가 방을 조용히 빠져나가자 펠릭스는 온 방 안에 장식된 싸구려 도금 장신구와 가짜 보석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펠릭스는 대충 손에 잡히는 아무 장신구를 눈 가까이 가져다대고 지그시 바라보았다.



“엄마도 참. 뭐가 좋다는건지. 별 재미도 없는데.”



펠릭스가 장신구를 벽을 향해 휙 던지자, 금줄로 엮인 목걸이는 힘없이 툭 끊어져 바닥으로 추락했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 실비아는 약을 반쯤 거르다 말고 문으로 쪼르르 다가갔다. 살짝 문을 열어보자 그레고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문 밖에 서 있었다.



“도련님이 부탁하셨습니다.”



“아, 그레고리. 뭘요?”



실비아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대꾸했다.




“약을 갖다주라 하시더군요. 완성하셨습니까?”



“약이오?”



“네. 빅터와 첼시에게 갖다줄 약.”



“아. 막 한 병 완성했어요. 나머지 한 병은 좀 더 기다려야 해요.”



“그럼,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괜찮습니까?”



실비아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솥으로 돌아가 약을 마저 걸렀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오며 그레고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레고리는 실비아가 큼직한 솥에 이런저런 재료를 넣고 끓이는 모습을 흥미어린 눈으로 멀찌감치서 지켜보았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 네, 네!”



실비아는 그레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잠깐 잊어버려,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 약이에요. 그러니까, 먹은 사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그런 약이랄까······.”



“흠. 그렇군요.”



실비아는 괜한 소리를 했나 싶어 그레고리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의 얼굴 위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방해였습니까?”



“아뇨,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다시 실비아가 솥을 휘적휘적 젓기 시작하고 몇 분 쯤 시간이 흘렀을 때, 그레고리가 입을 열었다.



“왜 그런 약을 만드시는 겁니까?”



“네?”



“도련님께 들었습니다. 첼시와 빅터가 먹을 약이라고 하던데, 그들의 추억을 상기시키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실비아는 주걱을 젓다 말고 천천히 뒤를 돌았다.



“당신도, 제가 바보같은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무것도 평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바보같은 일을 한다는 생각따위 하지 않습니다.”



그레고리는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두 사람 다 가만히 놔 둘 수는 없어요. 둘 다, 말하자면, 죽을 위기에 처했잖아요. 그런데도 두 사람 모두 살고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 보여요. 하지만, 그렇잖아요?”



실비아는 그레고리와 눈을 마주쳤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무서워하는게 맞지 않아요?”



“도련님은 다릅니다. 주인 마님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그레고리의 대답에 실비아는 시무룩해졌다.



“그렇죠. 펠릭스는 다르죠. 전 그렇게 죽음에 대해 무심한 사람은 처음봤어요. 하지만, 첼시나 빅터는 아니잖아요. 그 두 사람은 펠릭스가 아닌걸요. 그런 두 사람이,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바라고 있잖아요. 뭔가 잘못됐어요. 충격을 받아 제 정신이 아닌게 분명하다고요. 사람이라면, 당연히 어떻게든 살고 싶을거 아니에요?”



실비아는 다시 솥을 휙휙 젓기 시작했다.



“충격을 받아서 잠깐 잊어버렸겠죠. 그래서, 도로 떠올리게 해 주려고요. 그러면 생각이 바뀔 거예요. 그러면······.”



“두 사람은, 별로 그걸 바라지 않을 겁니다.”



실비아는 손을 잠시 멈췄다가 여전히 솥에 시선을 고정한채 대꾸했다.



“해 보기 전에는 모르죠. 세상에 죽고싶은 사람이 어딨어요?”



그레고리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가에 우두커니 서서 실비아가 약을 만들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실비아는 완성된 약을 유리병에 담았다. 같은 재료로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는데, 하나는 짙은 보랏빛의 약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붉은 기가 도는 자줏빛 약이었다.



“어떤 약이 누구 겁니까?”



실비아는 보랏빛 약을 집어들었다.



“이건 첼시 거예요.”



“이게 빅터 것입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주시지요. 제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실비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뇨. 저도 같이 가요.”



“도련님께서는 제게······.”



“같이 가게 해 줘요.”



그레고리는 잠시동안 실비아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알겠습니다. 동행하지 말라 하신 적은 없으니까. 그럼, 우선 지하감옥으로 내려갑시다.”







그레고리는 만능열쇠로 지하감옥 문을 따고 불빛도 없이 어둠 속으로 성큼 걸어갔다가, 뒤늦게 도로 올라와 실비아의 몫으로 조그만 촛대에 불을 피웠다.



촛대를 앞세워 첼시가 갇혀있는 철창 앞에 멈춰서자 첼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내 차례야?”



첼시는 그레고리의 얼굴을 보고 체념한듯 물었지만, 그레고리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련님이 주실 것이 있답니다.”



“도련님 누구?”



“펠릭스 도련님입니다.”



“도련님이라. 부럽네.”



그레고리는 실비아에게 눈짓을 보냈고, 그러자 실비아는 품 속에 꼭꼭 감춰온 보랏빛 약병을 불쑥 내밀었다.



“자요.”



“뭐야. 독약은 아니지?”



“마셔요. 당신을 위해서, 제가 직접 만들었으니까.”



첼시는 피식 헛웃음을 터트렸다.



“왜?”



“당신이 불쌍해 보여서요.”



첼시는 기분나쁘다는 눈으로 실비아를 힐끗 보았다.



“난 그런거 필요없대도.”



“마셔봐요. 생각이 달라질 테니까.”



실비아가 철창의 틈사이로 약병을 밀어넣자 그제서야 첼시는 병을 받아들었다.



“뭐, 기대하진 마. 네가 무슨 약을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별 소용도 없을 테니까. 난 다친 데도 없고 아픈 곳도 없거든.”



“마시기나 해요.”



첼시는 병뚜껑을 퐁 열고 보랏빛 약을 꿀꺽꿀꺽 삼켰다.



“으. 무슨 맛이 이래.”



그녀는 금새 약을 다 마시고 빈 병을 철창 밖으로 내밀다가 멈칫거렸다. 실비아는 첼시의 눈 위에 새로운 총기가 깃드는 것을 보고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첼시는 태엽이 풀린 인형처럼 굳어버리더니, 그대로 한참이나 가만히 서 있다가, 뒤늦게 눈물을 흘리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좋은 약이네.”



첼시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좋은 약이야.”



“어때요? 첼시. 이제 어떡했으면 좋겠어요?”



첼시는 눈물로 얼룩진 눈으로 실비아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고마워. 네 덕분에, 용기가 나.”



“그래요. 잘 됐어요.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어이, 너.”



첼시는 실비아의 말을 자르고 그레고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펠릭스의 부하지.”



“그렇습니다.”



“가서 전해줘. 처형일을 잡아달라고.”



“네? 왜요? 안 돼요! 첼시! 왜요! 왜 죽으려고 해요!”



실비아는 예상못한 반응에 깜짝 놀라 펄펄 뛰었다.



“실비아. 고마워. 네가 준 약. 정말 잘 만들었어. 진짜 옛날생각 나더라. 아니, 생각이 나는 정도가 아니야. 눈 앞에 보이고, 두 귀에 소리도 들리고, 심지어 피부 위로 감촉까지 느껴지더라.”



“그런데 왜 죽어요! 살고싶지 않아요?”



첼시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애들. 보러가야지. 날 기다리고 있었을텐데.”



“네, 네? 첼시. 당신······.”



“계속 생각했어. 어제 너랑 이야기 한 뒤로 계속.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내가 뭘 해야 할지. 계속.”



첼시는 실비아에게 등을 돌리고, 그대로 감옥의 차가운 창살에 등을 기대섰다.



“첼시! 정신차려요! 죽으라고 만든 약이 아니란 말이에요!”



“나 말이야. 사실, 그 애들을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아갈 수 있었거든. 열 다섯살쯤 됐을 때는 나름대로 실력있는 도둑이어서.”



“첼시!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지금?”



첼시는 실비아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나 말이야. 무서웠어. 그래서 애들이 어디로 팔려갔는지 찾아보지도 않았어. 그러다가 우연히 연금술사를 만나서, 그래서 연금술을 배워 돈을 벌자고 생각했어. 그렇게 큰 돈을 벌어서, 돈을 많이 많이 벌어서, 그 다음에 찾아오자고. 그러자고. 그렇게 핑계 대며 살아왔는데······.”



“헛소리 하지 말아요!”



첼시는 등을 돌린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진작 이랬어야 했는데. 아마 다들 죽었겠지.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고, 가죽 공장은 아이들 다루는게 거칠기로 유명하니까. 고맙다 실비아. 네 덕분에 용기가 나.”



“그러라고 만든 약이 아니라니까······.”



첼시는 다시한번 고개를 가로저으며 창살 너머의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처형일을 잡아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레고리! 대답하지 말아요! 첼시! 다시 생각해 봐요! 그 아이들, 살아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몰라요. 당신, 정말로 죽고싶은 거예요? 아니잖아요?”



“실비아. 좋은 약 만들어줘서 고마워.”



실비아는 창살에 매달려 첼시의 이름을 몇 번이고 더 불렀지만, 어둠 속에 숨어버린 첼시는 더이상 어떤 말로도 그녀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감옥을 빠져나오며 실비아는 참담한 심정이 되어 울고싶었다. 그녀의 얼굴은 붉어졌고, 두 눈에는 눈물방울이 그렁그렁했다.



“빅터에게 약을 전해주고 오겠습니다.”



“같이가요.”



실비아는 반항적인 투로 대답하며 눈물을 훔쳤다.



“알겠습니다.”



그레고리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조금 재밌다는듯 실비아를 힐끗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빅터는 지붕 바로 아래의 화랑에 있었다. 그러나 화랑에 있다고 그림을 그리던 건 아니었다. 빅터가 앉아있던 흰 캔버스 위에는 그림은커녕 붓이 닿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펠릭스가 보낸 독약인가.”



빅터는 잿빛이 된 얼굴로 실비아가 만들어낸 자줏빛 약을 멍하니 보았다.



“아니오. 이건, 제가 만든 약이에요. 당신을 위해서.”



“나를 위해? 그러면, 독약이 틀림없군. 난 안 먹어.”



빅터는 손으로 약병을 죽 밀어버렸다.



“독약이 아니에요.”



“그럼?”



“이건, 당신의 추억이 떠오르게 만들고, 당신에게 용기를······ 용기를······ 주는······약인데······.”



실비아가 눈물을 훌쩍이자 빅터는 조금 당황했다.



“뭐야, 왜, 왜그래?”



“아니에요. 그냥, 그냥······저는 그냥······.”



실비아는 한동안 훌쩍인 뒤에야 겨우 진정을 찾았다.



“당신에게 용기를 불어주는 약이에요.”



“무슨 용기?”



“당신 어머니랑 싸울 용기요.”



빅터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일그러졌다.



“독약 맞잖아.”



“아니에요! 먹어나 보고 말해요. 정말, 독약 아니란 말이에요. 난 진짜 좋은 뜻에서 만든 약인데, 그런데, 그렇게 될 줄은······.”



다시 실비아가 울먹이자 빅터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눈으로 그레고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레고리는 빅터에게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다.



“알았어! 먹으면 되잖아, 먹으면! 먹고 죽든말든 달라질것도 없으니까. 어차피 그 여자 눈 밖에 났는데, 앞으로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겠어.”



빅터는 짜증스레 약병 뚜껑을 열어젖히고 약을 단숨에 들이켰다.



약을 마신 빅터는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참을 수 없다는듯 붉게 부푼 얼굴로 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캔버스의 무덤으로 뛰쳐가 애써 그려낸 수많은 그림들을 잡아 찢고, 던지고, 부숴가며 그 안 깊숙한 곳에 감춰진 조그만 액자 하나를 꺼내들었다.



빅터는 말없이 액자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돌연 울음을 터트렸다. 그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액자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그걸 가슴에 품은 채로 빅터가 흐느껴 울기 시작하자, 그레고리는 차마 더이상은 못 봐주겠다는듯 조용히 방에서 나갔다.



“왜, 왜! 왜 나한테 이딴 약을 먹인 거야!”



빅터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얼마나 애 썼는데, 얼마나, 얼마나 잊으려고 애 썼는데! 왜 떠오르게 만들었어! 왜! 왜!”



더이상 울음을 참을 수도 없었는지 이제 빅터는 통곡하기 시작했다.



“이 빌어먹을, 빌어먹을 연금술사가······.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죽기 전에 뭐라고 말했는지 잊으려고 얼마나 내가 애 썼는데. 불처럼 뜨거운 술을 마구잡이로 들이마시고, 마음에도 없는 여자에 또 여자를 찾아 사창가를 방황하고, 수상쩍은 약을 구해 입 안에 털어넣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애 써서 겨우 잊은 건데. 그걸 도로 떠오르게 해?”



빅터는 그 뒤로도 몇 십 분 동안 고통스레 흐느끼며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소란이 가신 뒤에 빅터는 난장판이 되어버린 화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두 손에 쥐고있던 액자를 내려다보았다.



“좋은 약이던데.”



잠긴 목소리로 빅터가 중얼거렸다.



“정말 용기가 나더군.”



“그러면, 이제 당신 어머니와······.”



“그레고리!”



문 밖에서 기다리던 그레고리가 곧장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예.”



“펠릭스 불러줘.”



“그 방에 계십니다.”



“직접 찾아가라 이거지?”



빅터는 눈물진 얼굴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내가 찾아가야지. 그레고리. 그럼 펠릭스한테 내가 찾아간다고 알려줘.”



“알겠습니다.”



그레고리는 도로 방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연금술사. 고맙다. 네 덕분에, 나도 드디어 결심이 섰으니까.”



“어떤······.”



빅터가 슬픈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내젓자, 실비아는 그가 무슨 결심을 세웠는지 바로 눈치챘다.



“아, 안 돼요! 아니에요! 그러라고 만든 약이 아니라고요!”



“아니. 난 이제 지쳤어.”



“빅터! 정신차려요! 당신 어머니와 싸울 방법이 있다고요! 당신의 그 정열을 남길 방법이······.”



“없어.”



빅터는 되는대로 아무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네 덕분이야. 이제야 용기가 나. 그래, 그런거야. 진작 이랬어야 하는데······.”



“빅터!”



실비아는 빅터 웨일의 멱살을 잡고 그의 얼굴을 들어올려 눈을 마주쳤다.



“안 돼요! 그러지 말아요! 아직 당신한테 방법이 있어요. 그러니까, 당신 어머니를······.”



“아니야.”



빅터는 울먹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여자는 아무도 못 이겨. 아무것도 속일 수 없어. 이미, 전부 다 알고 있어. 어쩌면, 네가 내게 약을 만들어 주는 것까지 알고 있었을지 몰라.”



“생각이 지나쳐요! 그도 한 명의 사람일 뿐이라고요! 때로 실수도 하고, 가끔 착각도 하는······.”



“아니야. 넌 그 여자를 몰라.”



빅터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만 날 놔 줘.”



실비아는 두 손에서 힘을 풀고 빅터를 놓아주었다.



“고마워. 네 덕분이야.”



빅터는 인형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고, 그럴 때 마다 실비아의 두 눈은 점점 공포로 검게 물들어갔다.



“펠릭스를 찾아가서 뭐라고 할 셈이에요?”



“약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려고.”



빅터는 천천히 체념어린 얼굴을 들어올렸다.



“내 정열을 잘라내는 약. 그걸 모두 잘라내고 나면, 나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지겠지.”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그건, 꼭두각시 인형이지, 더이상 사람도 아니잖아요······.”



“이제 상관없어.”



빅터가 다시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기 시작하자 실비아는 울먹이며 도망치듯 화랑을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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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연금술 가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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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후기 22.01.13 65 0 -
172 에필로그 22.01.13 56 1 4쪽
171 마지막화 22.01.13 44 1 22쪽
170 170화 22.01.12 38 1 24쪽
169 169화 22.01.11 33 1 24쪽
168 168화 22.01.10 34 1 23쪽
167 167화 22.01.09 36 1 22쪽
166 166화 22.01.08 34 1 23쪽
165 165화 22.01.07 36 1 26쪽
164 164화 22.01.06 32 1 22쪽
163 163화 22.01.05 36 1 24쪽
162 162화 22.01.04 39 1 22쪽
161 161화 22.01.03 33 1 22쪽
160 160화 22.01.02 36 1 25쪽
159 159화 22.01.01 37 1 23쪽
158 158화 21.12.31 32 1 21쪽
157 157화 21.12.30 35 1 23쪽
156 156화 21.12.29 35 1 24쪽
155 155화 21.12.28 34 1 24쪽
154 154화 21.12.27 40 1 22쪽
153 153화 21.12.26 42 1 24쪽
152 152화 21.12.25 39 1 21쪽
151 151화 21.12.24 39 1 24쪽
» 150화 21.12.23 39 1 22쪽
149 149화 21.12.22 37 1 21쪽
148 148화 21.12.21 40 1 22쪽
147 147화 21.12.20 44 1 22쪽
146 146화 21.12.20 39 1 21쪽
145 145화 21.12.19 40 1 22쪽
144 144화 21.12.18 43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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