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연재수 :
172 회
조회수 :
5,983
추천수 :
188
글자수 :
1,774,925

작성
22.01.01 18:00
조회
36
추천
1
글자
23쪽

159화

DUMMY

역병이 휩쓸고간 거리는 더럽고 축축했다. 그리고 그 냄새. 코를 찌르는 찡한 악취가 거리에 가득했다.



악취가 진득하게 눌러붙은 거리에는 쓰러진 환자들이 입 밖으로 신음을 흘려대고 있었다.



“연금술사님.”



아버지가 풍채 좋은 중년의 남자를 불렀다.



“상황이 나쁩니다. 이미, 손 쓸 도리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조용히 떠나시겠다면, 당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여기 오셨던 건 없던 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풍채 좋은 연금술사는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솥과 재료, 그리고 날 도와줄 조수만 한 명 있다면, 이 정도의 역병은 순식간에 씻어주겠네.”



“가능합니까?”



아버지는 믿기지 않는다는듯 물었다.



“물론. 난, 최고의 연금술사니까. 기억해 두게. 내 이름은 아이작. 당신이 만나볼 수 있는 모든 연금술사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네.”



아버지의 얼굴에 천천히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당장 사람을 부르겠습니다. 조수는······.”



“제가 하겠습니다!”



아버지와 아이작이 동시에 내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곧바로 아버지는 난색을 표하며 연금술사를 쳐다봤지만, 오히려 아이작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소년이라면, 내 조수가 되기 아주 적당해 보이는데.”



“제 아들은 아직 어립니다.”



“전 다 컸습니다! 그리고 전 귀족으로서 사람들을 도울 의무가 있다고요!”



아이작은 다시 아버지에게 눈짓했다.



“그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잘 도와드리거라, 제이콥.”



“네. 아버지.”



아버지는 말을 마치더니 곧바로 재료와 솥을 구하러 가버리셨다.







한 나절 반의 시간이 흐를 동안, 나는 아이작의 곁을 지키며 그가 솥 안에다가 별 보잘것 없는 풀 쪼가리, 돌 부스러기, 벌레 찌꺼기 따위를 집어넣고 신비로운 마술을 부리는 걸 휘둥그레 지켜보았다.



“하하! 한눈 팔지 말거라! 내가 부탁한 재료는 가져왔느냐?”



“네! 바로 여기 있습니다.”



나는 마법같은 일이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벌어지는 작업실에서 행여나 쫓겨날까봐, 있는 힘껏 아이작을 도와주었다.



“음. 좋아. 잘 됐군. 자, 이걸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라. 한 사람당 한 병씩. 바로 마시면 된다. 오늘 밤까지는 계속 앓겠지만,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모두 씻은듯이 병이 나을 거다.”



연금술사는 반투명한 액체가 찰랑거리는 약병을 가리켰다.



“저,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



“하하! 영광은 무슨. 어린 나이에, 너무 어른인 척 할 필요 없다. 녀석. 구경하고 싶으면 구경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 하지. 그러다가 눈 돌아가는 줄 알았다. 넙치라고 들어는 봤느냐? 눈이 머리 옆에 붙은 납작한 생선이다. 네가 그 넙치 처럼 되는 줄 알고 어찌나 걱정했는지!”



나는 연금술사의 농담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한 척 하고 싶었다. 그와 마음이 맞는다고. 그와 함께 하고 싶다고 내 뜻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어설프게 따라 웃었다.



“자, 이제 그만 가 보거라. 가서 사람들을 도와줘야지. 안 그러냐?”



“아, 네. 그런데, 저기. 이대로 떠나실 겁니까?”



“아니. 내일 아침에 환자들의 상태를 보고 생각해보마. 왜, 내가 바로 떠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느냐?”



나는 머뭇거리며 내 진심을 말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했다. 그러자 아이작은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덥썩 쥐고는 슬슬 쓰다듬었다.



“천천히 생각해 봐라.”



연금술사는 내 마음을 읽은듯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꿈의 안개가 소용돌이 치며 뒤섞이더니 내 몸을 잡아끌고 나를 또다른 기억의 저편으로 인도했다. 나는 숲 속에 있었다. 그곳은 밤나무 숲이었다. 아직 가을이 되지 않아 나무에는 잎만 무성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이 밤나무 숲인걸 곧바로 알아챘다.



“밤나무 숲입니다.”



“그래. 밤나무 숲이지. 왜, 싫으냐?”



나는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녀석. 나중에라도 싫어지거든 돌아가라. 안 붙잡을테니.”



“절대로 그럴 일은 없습니다, 스승님!”



나는 가슴속이 뜨끔하여 아이작에게 큰 소리로 외쳐버렸다.



“귀청떨어지는 줄 알았다. 뭘 그리 호들갑이냐.”



“스승님. 저는, 최고의 연금술사가 되기 전까지는 여길 떠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아이작과 마주서서 당당히 내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아이작은 어딘가 측은한 눈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 속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건 흐느낌에 더 가까웠다. 분노와 슬픔이 섞인 원망어린 울음 소리는 나를 또다른 기억의 저편으로 끌고갔다.



나는 이제 제법 컸다. 키도, 몸도, 마음도, 그리고 연금술사로서의 실력도. 그동안 아이작의 곁에서 그의 조수를 자청하던 나는, 이제 당당한 그의 제자가 되었다.



“자. 이제, 더는 너희들에게 가르쳐 줄 게 없다.”



나는 또래 연금술사들과 숲 속 공터에 둘러앉아있었다. 아이작은 우리들의 얼굴을 한 사람 한 사람 살피며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이제 독립해라. 너희들은 배울 만큼 배웠다. 실력도 출중하다. 이 조그만 숲에 묶어두기에는 말이다. 자, 어디로든 떠나거라!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저 드넓은 하늘 위를 마음껏 만끽하거라!”



아이작의 짧은 연설이 끝나자 우리들은 너나 할것없이 감격하여 천천히 일어섰다. 스승님과 가벼운 포옹을 한 뒤에, 우리 연금술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넌 왜 아직 여기 있느냐?”



나를 제외하곤 그랬다. 나는 밤나무 숲으로 나가는 오솔길 근처에서 어정이다가, 아이작과 재회했다.



“스승님. 전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책은 다 떼지 않았느냐. 뭘 더 배우려고?”



“스승님은 여전히 저보다 훨씬 뛰어나지 않습니까? 저는 당신에게 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알려 줄 만큼 알려줬다. 그만 가 보거라, 제이콥.”



“전 더 배우고 싶습니다!”



아이작은 눈을 슬쩍 가늘게 떴다.



“애처럼 굴지 말거라 제이콥. 어린 아이었을 때는 어른 행세를 하더니, 어른이 된 지금은 왜 어린아이 행세냐.”



“스승님! 이유없이 생떼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걸 안다는 그 사실이 절 괴롭게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숲을 벗어난들, 저는 세상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겁니다.”



아이작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 때, 허투루 한 말이 아니었느냐? 정말로 최고가 되어야만 하겠느냐? 너는 이미 뛰어나다. 네 동기 연금술사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 네 약 솜씨에는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너처럼 철저히 책의 내용을 꿰뚫는 사람도 없었다. 네가 개량한 레시피가 몇 개냐? 빈자들과 우민들에게 스스럼없이 그 지식을 나눠준게 누구더냐?”



“저는, 최고의 연금술사가 되고싶습니다. 언제 누가 저를 찾더라도 도와 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이작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 그렇다면, 여기 머물러라 제이콥.”



“네? 정말입니까?”



“그래. 그리고······아니, 아니다. 잊어버려라. 좋다, 제이콥. 네가 정 원한다면 여기 머물러도 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넌 내 수제자니까. 그리고 다음 번 연금술사들은, 한번 네가 가르쳐 보거라.”



“정말입니까? 정말로, 제게······.”



“그래.”



아이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이 아니다, 제이콥. 네겐 아직 배워야 할 게 남아있다. 네가 한번 스승이 되어 제자를 가르쳐 본다면, 그게 뭔지 금새 알거다. 넌 꽤 똑똑하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나는 아이작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만약 그 때 허리를 숙이지 않았더라면, 난 아이작의 어떤 얼굴을 보았을까? 어쩌면, 스승님은 그 측은한 눈으로 날 봤을지도 모른다.









허리를 펴자 아이작의 못마땅한 얼굴이 보였다. 나는 겁을 집어먹고 나의 스승님께 한 발짝 다가갔다. 아이작은 갑자기 내 손목을 덥썩 붙잡더니 허공을 가르고 검은 심연을 열어 그리로 나를 밀어 넣었다.



나는 기억의 저편으로 추락했다. 살을 에는 추위에 내 피부가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수많은 기억의 장면들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제자들과의 첫 만남. 그들과 함께 공부하던 것. 그리고 그들에게 연금술사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준 것.



“제이콥.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되었다.”



추락하는 나의 귓가에서 아이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째서입니까! 어째서! 스승님. 연금술사들은 특권을 가졌습니다. 마땅히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할 일 아닙니까!”



“제이콥. 연금술의 원천이 무엇인지 아느냐?”



“수많은 약물과 재료의 효과와 효능이 담긴 레시피 그 자체 아닙니까?”



“틀렸다. 제이콥. 상상력이다. 그런데, 넌 제자들의 상상력을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제이콥.”



“스승님! 하지만, 하지만!”



내 눈앞에 섬광이 번쩍 터져나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눈앞에 한 명의 소년이 웃고 있었다.



“제이콥. 내가 데려온 아이다. 연금술사가 되고 싶다며 내 뒤를 따라왔다.”



소년은 히죽히죽 웃으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펠릭스. 제이콥이다. 오늘 부로 네 스승이 될 사람이다.”



소년은 내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나의 얼굴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 때, 나는 소년이 웃고 있지 않다는걸 알아챘다. 그의 눈썹은 웃고 있었다. 그의 입도 웃고 있었다. 그의 안색도, 온 몸 전체가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소년은 내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도 역시 나와 같은 귀족의 우아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나와는 달랐다.



“잘 부탁한다, 펠릭스. 나는 제이콥. 네 스승이 될 사람이다. 스승으로서, 네게 한 가지만 물어보마. 펠릭스. 너는 어떤 연금술사가 되고 싶으냐?”



펠릭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죽음의 약을 만드는 연금술사가 되고 싶습니다.”



펠릭스의 텅 빈 눈동자에 나의 얼굴이 반사되었다. 그의 눈에 비친 나의 얼굴은 온갖 감정이 범벅이 되어 엉망진창이었다.







기억 속에서 거센 폭풍우가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등 뒤에서 서서히 일어난 폭풍우는 금새 모든 것을 집어삼킬듯 맹렬하게, 그러나 아주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폭풍우를 피해 있는 힘껏 도망쳤다. 기억의 조각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며 폭풍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펠릭스. 허락 없이 약을 만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냐!”



한 밤중에 솥 앞에서 펠릭스는 그저 히죽 웃기만 했다. 나는 곧바로 펠릭스가 약을 끓이던 솥을 엎으려다가, 멈칫했다.



“어때요, 잘 만들었죠?”



나는 그에게 대답 할 수 없었다.



곧, 또다른 기억이 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펠릭스. 분명 필사를 할 시간인데,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냐?”



펠릭스는 재료 창고에서 느릿하게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다 외워서요.”



“그래? 정말이냐? 어디, 한번 말 해 봐라. 연금술 개론, 연금술 총론, 마녀가 알려주는 연금술, 전부 다 읊어봐라!”



펠릭스는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연금술 개론 책을 외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책에 그려진 삽화를 묘사하거나, 저자의 말버릇을 흉내내기까지 했다. 그 때, 나는 오싹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펠릭스가 나와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다를 줄은 몰랐다.



“됐죠? 더 읽을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나는 뒤늦게 화들짝 놀라며 제정신을 차렸다.



“······나가라. 가서 마저 필사 해라.”



“머리로 다 워운걸 손으로 옮겨쓴들 무슨 소용입니까? 절 속기사로 만들려고요?”



나는 펠릭스에게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뭐, 알겠습니다. 까짓거, 해 드리죠.”



제자가 스승을 동정했다. 펠릭스가 떠나간 뒤, 나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한동안 재료 창고에서 소리없이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반 년 걸려 익힌 것을 그는 한 달도 되지 않아 모두 제 것으로 만든 뒤였다.







“제이콥. 대체, 왜 그러느냐?”



또 다른 기억의 조각이 내 얼굴에 달라붙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왜 펠릭스와 싸우려는 거냐? 그는 네 제자다. 제자를 보듬어 주지는 못 할 망정, 제자와 진심으로 싸우려 드는 스승이 세상 천지 어디에 있단 말이냐?”



“그가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절 모욕했습니다. 절 비웃었단 말입니다!”



“제이콥!”



아이작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제이콥. 네게 아직 배워야 할 게 남아있다고 내가 한 말, 기억하느냐?”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잊겠습니까?”



“좋다. 그렇다면, 말 해 봐라. 숲 속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그동안 무엇을 배웠느냐?”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대답해라, 제이콥.”



“저는 아직 부족합니다.”



“틀렸다.”



“저는 아직 더 배워야 합니다.”



“그것도 틀렸다.



“스승님! 저는, 저는 아직까지도 당신의 발끝조차 미치지 못합니다!”



아이작은 표정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렸다, 제이콥. 그게 아니다. 네가 배워야 할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럼, 대체 뭐란 말입니까?”



아이작은 소리없이 한숨을 뿜으며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직접 깨닫기 전까지는 내가 아무리 설명한들 소용 없다.”



“가르쳐 주십시오, 스승님! 제게 전부 가르쳐 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이콥.”



아이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제자들을 상대로는 괜찮지 않았느냐. 그 마녀의 후손인 메를린도 가르치지 않았느냐. 재능의 크기로 따지자면 메를린도 있지 않느냐. 왜 유독 펠릭스만 못마땅해 하는 게냐?”



“죽음의 약을 만들겠다잖아요!”



나는 어린 아이처럼 소리쳤다.



“대스승님! 연금술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요! 죽음의 약이라니, 다른 좋은 약들이 많지 않습니까? 펠릭스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부족한 제가 보기에도, 그의 재능은 단연코 뛰어납니다! 그런데, 그런 연금술사가 죽음의 약을 만들겠다지 않습니까. 그래서는 안 될 일 아닙니까?”



“내버려둬라.”



“너무하신 말씀입니다!”



“제이콥. 살충제나 구충제, 쥐약, 제초제, 멧돼지나 산짐승을 잡을 때 쓰는 독. 수면약. 그것들은 죽음의 약이 아니더냐?”



“죽음의 약이 맞습니다.”



“썩은 살점을 녹여내고, 감염된 조직을 잘라내고, 병에 걸린 사람을 한 곳에 격리하는 것. 그것들도 죽음의 처방이 아니냐?”



“······맞습니다. 하지만, 펠릭스는······.”



“펠릭스가 산 사람을 죽이겠다고 하더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아이작의 시선을 피했다.



“대답해 봐라. 그러더냐?”



“살아있는 사람에게 죽음을 팔겠다고 했습니다.”



“죽이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했구나.”



“어떻게 그렇게 받아들입니까? 그놈은 살인자입니다! 장래에 끔찍한 독살자가 될 게······.”



“노리스와 헷갈린 것은 아니고?”



나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설마, 펠릭스를 질투하는 건 아니지?”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제이콥. 넌 뛰어나다. 그리고 내가 만나본 그 누구보다 연금술에 진심이다. 게다가, 넌 네게 재능이 부족하다는것도 알고 있다.”



아이작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천천히 내게 다가와 말없이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제이콥. 펠릭스를 질투하는 게냐? 넌 그를 질투할 이유가 없다. 너는 너, 펠릭스는 펠릭스. 네가 펠릭스를 능가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의 네 실력만으로도 수없이 많은 역병을 이겨낼 수 있다.”



“펠릭스라면. 그의 재능이 있었더라면. 스승님. 만약 그랬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죽음과 고통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들어 아이작의 얼굴을 힘겹게 마주보았다. 아이작은 나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제이콥.”



아이작은 쓸쓸한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기억. 기억. 기억. 수면 아래 잠겨있던 그물을 끌어올리듯이 기억의 한 가닥이 물 위로 떠오르면, 그와 매듭묶인 또다른 가닥이 뒤이어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렇게 기억의 그물은 내 의사와 무관하게 계속해서 다른 기억을 수면 위로 떠올렸다.



“펠릭스. 네가 한 짓이냐?”



숲 속 공터 근처에 자리잡은 사냥꾼들은, 하나같이 입가에 거품 자국을 남긴채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노리스 짓이죠. 난 이유없이 독약을 쓰지 않으니까.”



“그럼, 이 시간에 네가 왜 여기있는지 말 해 봐라. 네 손에 들린 약이 뭔지도.”



펠릭스는 스스럼없이 약병을 내밀었다.



“설사약입니다. 아주 지독한 녀석으로.”



“무슨 꿍꿍이냐?”



“저들은 우리 공터에서 멀리 떨어진 샘에서 물을 긷습니다. 그 샘에 이걸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이놈들은 하루종일 고생고생 하겠죠. 애걸복걸해서 우리에게 약을 구걸할 테고, 약을 먹고 나면 조용히 물러나겠죠. 염치라는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들은 죽었다.”



“노리스가 했다니까요.”



나도 알 수 있었다. 펠릭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네 동료를 밀고할 셈이냐?”



하지만, 무언가 어깃장을 놓고 싶었다. 어디선가 불길한 삐걱 소리가, 기우뚱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경고음을 무시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네가 독살했을 가능성도 있다.”



“억지죠. 제겐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펠릭스. 사람이 죽었다. 아직 잘 모르나본데······.”



“사람이 죽었을 뿐입니다. 달리 뭐가 더 있습니까? 절 미워하는건 알겠지만, 전 이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스승님. 당신은 재능은 없어도 머리는 좋잖아요? 내가 사실을 말하는걸 뻔히 알면서도 내게 누명을 씌울 만큼 당신은 멍청하지 않죠. 그러니, 이쯤 하죠?”



내가 말하지 않는데도, 펠릭스는 조용히 인사를 하더니 그대로 자리를 떠버렸다.







그는 다르다. 아니, 그는 틀렸다.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내 목소리. 다른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목소리가. 펠릭스는 틀렸다. 그는 틀린 사람이다. 그에게는 사람의 마음이 없다.



“펠릭스! 무슨 약을 만든거냐!”



사지가 마비된 채, 공포로 검게 물든 눈을 뜨고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 그들은 시체나 다름없었다.



“죽음의 약입니다.”



“죽음의 약이라고? 결국 죽이고 만 것이냐?”



“죽이는 약이 아니라, 죽음의 약입니다. 안 죽었습니다. 봐요.”



펠릭스는 발 끝으로 쓰러진 사람을 툭툭 건드리다가, 짜증스레 힘을 주어 휙 밀었다. 그러자 그는 악몽에서 깨어나듯 벌떡 일어섰다.



“허······억. 헉! 내가······내가 살아있어······?”



“봐요. 살아있죠? 자, 그래서. 약 먹어 본 소감은?”



“휴. 진짜, 진짜로 죽은 줄 알았네.”



펠릭스는 나를 향해 히죽 웃었다.



“살아있죠?”



“네 이놈!”



참을 수 없는 분노와 공포로, 나는 더이상 참지못하고 폭발해버렸다.



“펠릭스! 사람의 목숨이 뭐라고 생각하는거냐! 네가 그 조잡한 손으로 멋대로 주물럭거려도 되는 건줄 아느냐? 대체, 너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맞기나 한 거냐!”



“왜 그렇게 호들갑이에요, 스승님? 멀쩡히 잘만 살아있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닙니까?”



“넌 사람도 아니다. 사람 가죽을 덮어쓴 악마같으니!”



“무슨 소란이냐.”



아이작이 다가왔다. 그는 내가 아니라, 펠릭스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둘 다 물러가라. 그리고, 펠릭스. 피험자를 모집하는 건 좋지만, 다음부터는 내게 미리 말 해 둬라. 아무나 숲에 들여서는 안 된다.”



“네. 알겠습니다, 대스승님.”



펠릭스는 아이작에게 인사를 꾸벅 하고 곧바로 물러났다.



“제이콥.”



아이작은 온화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펠릭스는 네가 감당하기 벅차다. 그만 내게 넘기는게 어떠냐?”



“아니, 아직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펠릭스 만큼은 안 됩니다. 저는 그에게 가르쳐 줘야만 합니다.”



“무엇을?”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귀중한지 말입니다! 그는······그는······.”



아이작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더니 그 측은한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이콥. 내 제자야. 정 그렇다면, 해 보거라. 하지만, 너 혼자서 벅차다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거라. 난 네 스승이니까.”



아이작은 내 어깨를 두드려 주고 그의 오두막으로 돌아갔건만, 나는 한동안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죽음의 약이라고? 죽음이라고. 그게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게,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줄 모르는 주제에, 펠릭스. 죽음을 함부로 입에 담다니. 그래서는 안 돼.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될 일이야······.”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으로, 머릿속이 아닌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펠릭스에게 단단히 가르쳐 줘야 해.’



요정의 목소리. 경지에 오른 사람에게만 들린다는 요정의 속삭임이 귓가에서 들려왔다.



‘펠릭스에게 알려 줘.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지.’



나는 환청을 들은 것이 아닌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가르쳐 줘. 알려 줘. 그는 몰라. 스승인 네가 가르쳐 줘야해.’



“맞아. 내가 가르쳐 줘야 해.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지. 펠릭스. 이건, 스승으로서의 내 의무야. 제자를 질투해서가 아냐. 네가 나보다 뛰어나서 그런게 아냐. 이건······스승으로서의 숭고한 의무야.”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내게 가벼이 손짓했다. 바람을 따라가자 커다란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홀린듯이 호숫가를 걷다 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붉은 색깔. 버섯. 그리고 가루. 호수 아래에는 소금 결정이 햇볕을 받아 반짝였다.



“붉은. 가루. 버섯.”



‘만들어. 병을 만들어. 역병을 만들어. 누구든지 겁에 질려 벌벌 떨만큼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역병을 만들어.’



“맞아. 가르쳐 줘야 해. 스승으로서의 의무야. 내가, 펠릭스의 스승으로서, 그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해. 오직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그는 나보다 뛰어난 재능이 있어. 어떻게······.”



‘우리가 도와줄게. 우리가 널 도와줄게.’



나는 귓가에서 들려오는 정령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아니, 어쩌면 악마의 속삭임이나 환청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의 의심은 호숫물에 반사된 잔영처럼, 바람이 불자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져버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행복의 연금술 가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후기 22.01.13 65 0 -
172 에필로그 22.01.13 56 1 4쪽
171 마지막화 22.01.13 44 1 22쪽
170 170화 22.01.12 38 1 24쪽
169 169화 22.01.11 33 1 24쪽
168 168화 22.01.10 34 1 23쪽
167 167화 22.01.09 36 1 22쪽
166 166화 22.01.08 34 1 23쪽
165 165화 22.01.07 36 1 26쪽
164 164화 22.01.06 31 1 22쪽
163 163화 22.01.05 36 1 24쪽
162 162화 22.01.04 39 1 22쪽
161 161화 22.01.03 33 1 22쪽
160 160화 22.01.02 36 1 25쪽
» 159화 22.01.01 37 1 23쪽
158 158화 21.12.31 32 1 21쪽
157 157화 21.12.30 34 1 23쪽
156 156화 21.12.29 35 1 24쪽
155 155화 21.12.28 34 1 24쪽
154 154화 21.12.27 39 1 22쪽
153 153화 21.12.26 42 1 24쪽
152 152화 21.12.25 39 1 21쪽
151 151화 21.12.24 38 1 24쪽
150 150화 21.12.23 38 1 22쪽
149 149화 21.12.22 37 1 21쪽
148 148화 21.12.21 40 1 22쪽
147 147화 21.12.20 43 1 22쪽
146 146화 21.12.20 38 1 21쪽
145 145화 21.12.19 40 1 22쪽
144 144화 21.12.18 43 1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