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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유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의 연금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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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유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6:53
최근연재일 :
2022.01.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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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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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147화

DUMMY

“펠릭스! 나 당장 돌아갈래요!”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울상이 된 실비아가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나 돌아갈래요. 여기 조금도 더 못 있겠어요!”



펠릭스는 흔들의자에 앉아 의자를 앞뒤로 흔들흔들하며 대꾸했다.



“왜요? 그레고리가 제대로 시중을 못 들어주던가요?”



막 방 안으로 들어오던 그레고리는 펠릭스의 말을 듣고 실비아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아뇨! 그레고리는 최선을 다했어요. 하지만, 그러니까, 당신 어머니랑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펠릭스는 의자를 흔들거리는걸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했는데?”



실비아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다시 울상이 되었다.



“여기 못 있겠어요! 대체 당신 집에는 왜 그렇게 이상한 사람밖에 없어요? 당신 형이라는 사람은 절 보더니 다짜고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내고, 당신 엄마라는 사람하고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가 않아요!”



펠릭스는 재미있다는듯 씩 웃었다.



“그래서, 돌아가고싶다?”



“네. 차라리 저도 올리버랑 같이 숲에 있을걸 그랬어요. 거기 연금술사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 뿐이었는데.”



“무능했지만요.”



“어쨌든요! 무능하고 착한 사람이 당신네 가족처럼 성격 비비 꼬인 사람들보다 훨씬 낫거든요!”



펠릭스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 의자를 앞뒤로 까딱까딱 흔들었다.



“지금같은 시기에는 그렇겠죠. 뭐, 딱히 역병이 도는것도 아니고.”



“저 돌아갈래요.”



“지금 돌아가면 제이콥에 대해서는 더 못 들어요. 괜찮아요?”



제이콥의 이름이 거론되자 막 짐을 싸던 실비아의 두 손이 허공에서 어색하게 멈췄다.



“제이콥이요? 당신 스승님이요?”



“그래요. 그 사람 찾으려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벌써 잊었어요?”



“아, 맞다.”



실비아는 웨일 저택의 이상하고 이질적인 분위기에 그만 본래 목적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돌아가겠다?”



“제이콥의 일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신 가족하고 더이상 얽히기 싫어요. 하나같이 이상한 사람들 뿐이고······.”



“이상하기로 따지자면 당신 아버지도 한가닥 하거든요.”



“우리 아빠 이야기가 왜 나와요?”



“에밀리아 콘월도 그랬고. 난 그 사람이 유령 신부라도 되고싶어 하는줄 알았죠.”



“언니 흉 보지 말아요!”



펠릭스는 다시 실비아에게 고개를 살짝 돌려 히죽 웃었다.



“이상하다 말다의 기준은 불분명해요. 내가 보기엔 당신 가족들도 하나같이······으악! 으아악! 그레고리!”



실비아는 펠릭스의 얼굴을 노려보다가 대뜸 그가 앉아있는 흔들의자를 두 손으로 붙잡고 마구 앞뒤로 흔들었다.



“그레고리! 도와줘!”



“아, 음. 저기, 실비아······.”



그레고리는 상상도 못한 일에 크게 당황하여, 그 답지 않게 조금 허둥대며 실비아에게 다가왔다. 그제서야 실비아는 의자를 놓아주고 씩씩거리며 펠릭스에게 등을 돌렸다.



“어휴. 온 세상이 빙빙 도네.”



펠릭스는 의자에서 일어나려다가 도로 풀썩 주저앉았다.



“앞으로는 말조심좀 해요. 하여튼.”



“내 참. 웨일 가문의 차남을 상대로 이딴 일을 벌이다니. 실비아. 당신은 무섭지도 않아요?”



실비아는 뒤늦게 흠칫하며 애써 괜찮은척했다.



“뭐 어때요?”



“뭐가 어떻기는. 수도에서 에보니가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뻔히 봐놓고서는. 공작가가 안 무서워요?”



실비아는 살며시 고개를 돌려 펠릭스의 눈치를 살폈다.



“저한테 나쁜 짓이라도 하려고요?”



“됐어요. 내가 왜 그러겠어요. 하여튼. 아, 그레고리. 언제부터 우리 집에 그레고리가 세 명이었지?”



펠릭스는 여전히 정신못차린 얼굴로 그레고리를 쳐다봤고, 그레고리는 어색한 웃음으로 그의 주인에게 화답했다.



“전 한명 뿐입니다.”



“그래? 그런데 내 눈에는 세 명으로 보이는데.”



“약을 가져올까요?”



“됐어. 내가 연금술산데 무슨. 좀 지나면 나을거야. 하여튼, 성질하고는!”







가벼운 소란이 잠잠해지자 실비아는 다시 짐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싸는 척만 계속 할 거예요?”



실비아는 뜨끔하여 재빨리 손을 놀렸다.



“진짜로 짐 싸고 있었거든요.”



“거짓말은. 왜요, 그렇게 여기가 마음에 안 들어요? 광대라도 불러줘요? 그레고리를 보내면 아마 두 시간 안에 수도에서 가장 뛰어난 광대가 도착할텐데.”



“광대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실비아는 바락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는 금새 울상이 되었다.



“당신 어머니, 이상하다고요. 우리 아빠 사업을 멋대로 밟아놓고 제가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뭐라 그랬는지 알아요?”



“모르죠.”



“그냥 갖고 싶어서 그랬대요. 애도 아니고, 그게 뭐예요? 네? 그것 때문에 우리 아빤 마음의 상처를 입고, 언니는 어린 나이에 약혼하고, 그리고, 그리고 저는······.”



펠릭스는 귀찮다는듯이 파리쫓듯 손을 붕붕 저었다.



“엄마한테 가서 하소연해요. 난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 통해야 하소연을 하든 말든 하죠.”



“그렇다면, 저하고는 말이 통한다는 뜻인가요?”



실비아는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피해버렸다.



“어휴! 하여튼. 알았어요 알았어. 가고싶으면 가든가.”



펠릭스는 이제서야 흔들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나 진짜 가요?”



“가든가요. 숲에서 올리버랑 짝짜꿍을 하든말든. 아무튼 난 당분간 여길 못 벗어나니까.”



“진짜로, 진짜로 가요?”



실비아는 배낭을 둘러매고 펠릭스에게 협박하듯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펠릭스는 눈 하나 꿈쩍 않았다.



“안 말려요?”



“제자가 스승에게서 독립하겠다는데 왜 말려요.”



“진짜 가요? 후회 안하죠?”



“후회는 당신이 하겠죠. 여기 지하감옥에 첼시가 갇혀있는데, 그 첼시가 화이트플레인 마을에 불 질렀으니까.”



실비아는 머뭇거리며 눈을 깜빡였다.



“속사정이 안 궁금해요? 아, 하긴. 당신 입장에서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려나. 화이트플레인에서는 꽤나 재밌었죠. 난 방화 누명을 쓰질 않나. 기껏 구한 불나무 껍질도 써버렸고. 덕분에 재미난 약을 만들기는 했지만.”



실비아는 눈을 깜빡거리며 일어선것도 아니고 앉은것도 아닌 자세로 머뭇거렸다.







펠릭스와 실비아는 그레고리를 물린 다음 침침한 양초에 불을 밝히고 웨일 저택의 지하 감옥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실비아는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갈 때마다 으스스한 기분을 느끼며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좁고 차가운 감옥의 벽과 천장이 그녀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는 것은 아닌가 싶어, 가끔 실비아는 걸음을 멈추고 손가락을 한 뼘씩 뻗어가며 벽과 벽 사이의 간격을 쟀다.



“뭐해요?”



그러면 실비아는 화들짝 놀라며 모른척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지하감옥 아래로 내려오자 생전 단 한번도 맡아본적 없는 퀴퀴하고 기분나쁜 공기가 실비아에게 훅 다가왔다. 그래서 실비아는 재빨리 손수건을 꺼내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오, 대스승님이 준 손수건. 좋죠?”



펠릭스는 막 뒤를 돌아보다가 실비아의 손에 들린 손수건을 보고 반갑다는듯 웃었다.



“좋긴하네요. 감촉도 좋고.”



“비싼 거에요. 잘 간수 해요.”



“얼마나요?”



“금화 열닢쯤 할까.”



실비아는 깜짝 놀라며 손수건을 도로 뗐다가, 다시 그 냄새에 못이겨 도로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바다나방이 그렇게 귀해요?”



“귀하죠. 귀하고말고요. 귀하기도 귀한데다가, 유충이고 성충이고 치명적인 맹독이 있어서 무사히 누에고치로 만들어 실을 뽑기가 힘들어요.”



“연금술 세상에는 위험한것 투성이네요.”



“하하! 당연하죠! 사람 목숨을 주물럭거리는데, 우리 목숨도 마땅히 내 놓고 일하는게 공평하지 않아요? 무서우면 지금에라도 도망쳐요 실비아. 뭐, 난 당신이 도망칠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요!”



펠릭스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는 좁고 답답한 감옥 사방팔방에 부딪히고 반사되며 온 감옥안에 울려퍼졌다.







두 사람은 지하감옥 가장 구석진 철창 앞에 멈춰섰다. 촛불을 살짝 들이밀자, 짚단 위에 누워 거적을 덮고 쿨쿨 자고있던 첼시의 때묻은 얼굴이 얼핏 보였다.



“왁!”



“악!”



펠릭스가 깜짝 놀래자 첼시는 혼비백산하며 거적으로 자기 몸을 가렸다.



“뭐, 뭐야? 아. 펠릭스. 너였잖아. 깜짝놀랐네.”



“뭐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었어?”



펠릭스는 촛대를 걸만한 곳을 찾아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좋은 꿈은. 내 좋은 시절은 다 갔어. 그나저나 옆엔 누구야? 아, 그때 그 사람? 네 손님?”



첼시는 인상을 찌푸리고 어둠 속에서 실비아의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네. 안녕하세요 첼시. 그리고 지금은 펠릭스의 제자에요.”



“뭐! 펠릭스의 제자라고!”



첼시는 믿을수 없다는듯 철창에 바싹 달라붙어 눈을 끔뻑였다.



“너도······.”



“전 펠릭스만큼 기억력이 좋지는 않고, 펠릭스처럼 감각이 예민하지도 않아요.”



“뭐야. 뭐, 어떻게 알았어?”



실비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교류회에 다녀왔거든요. 거기서 다들 저한테 이것저것 물어봤어요.”



“교류회까지 다녀왔다고? 야, 펠릭스. 얘도 연금술사였어?”



“얼마전부터.”



“얼마전부터?”



첼시는 여전히 믿을수 없다는듯 실비아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약은 못 만들었지?”



“만들었어요.”



첼시의 입이 떡 벌어졌다.



“뭐, 무슨? 보나마나 감기약처럼 평범한거 만들었겠지 뭐.”



“평범은. 사람의 마음을 담은 약을 만들었어.”



“뭐? 사람의 마음?”



첼시는 아리송한 얼굴로 잠시 눈을 깜빡였다.



“그런것도 배웠던가?”



“안 배웠지. 얘가 직접 만든거야.”



펠릭스는 자랑스럽다는듯 실비아의 어깨를 툭 붙잡았다. 그러자 실비아는 귀찮다는듯 팔꿈치로 펠릭스의 팔을 도로 툭 쳐냈다.



“뭐······대단한 재능이네. 난 내 첫 약을 만들 때까지 일 년은 걸렸는데.”



“그건 네가 딴데 정신이 팔려있어서 그랬던거고.”



“아니거든!”



“어련하겠어.”



펠릭스는 촛대를 벽에 걸고 잠시 자리를 비켰다.



“야! 펠릭스! 어디가?”



“의자 가지러.”



“의자? 왜?”



“너하고 할 말 있어.”



“뭔데?”



“실비아가 알아.”



“실비아?”



첼시는 다시 실비아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리고 실비아는 자기가 여기 내려온 이유를 다시한번 떠올렸다.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네.”



실비아는 입술을 조금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화이트플레인 마을. 기억하세요?”



“밀밭이 넓은 마을이잖아. 골든포트 근처에 있지. 왜?”



“거기 불 지른게 당신이라면서요?”



첼시의 얼굴이 차게 굳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펠릭스가 질질 끄는 소리를 내며 조잡한 나무의자를 끌고 올 때까지.







두 사람이 첼시의 철창 맞은편에 의자를 내려놓고 앉은 뒤에도 한동안 그 누구도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왜 또 꺼내?”



첼시가 투정부리듯 먼저 말을 꺼냈다.



“설명해줬잖아.”



첼시는 조금 억울하다는듯 펠릭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한테는 해 줬지. 그럼 실비아한테도 해 줘.”



“부끄럽단 말야.”



“부끄러워요?”



실비아의 목소리에 노기가 어렸다. 그녀는 손을 가볍게 떨며 몸을 움찔거렸다.



“부끄럽다고요? 그 때, 마을에서 불이 나서 큰일이 났는데, 당신은 그냥 부끄럽다고요?”



“야, 진정해 진정! 나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 따지고 보면 내가 직접 불 지른것도 아니란말야.”



첼시는 실비아를 진정시키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야, 펠릭스. 내가 또 설명해주면, 나 꺼내줄거야?”



“그건 우리 엄마한테 달린 일이라.”



“어떻게 좀 안 돼?”



“넌 우리엄마 전리품이니까.”



“전리품이라니. 물건 취급은 좀 너무하는데.”



“그래서, 제 질문에는 대답 안 하실 거예요? 당신한테 이득이 없으니까?”



다시한번 실비아가 노기서린 눈으로 첼시를 노려보았다.



“······알았어. 까짓거 말 해 줄게. 미리 말하겠는데. 난 그렇게 큰 사고를 일으킬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



첼시는 살짝 실비아의 눈치를 살폈지만 여전히 실비아는 첼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냥. 그것만 알아달라고.”



여전히 실비아의 얼굴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첼시는 다시한번 한숨을 푹 쉬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난 내 사업 파트너랑 같이 골든포트에서 일을 벌리려던 생각이었어. 막 꿈버섯의 첫 수확을 끝내고 물건을 옮길 생각이었지.



하지만, 너도 아다시피 꿈버섯은 밀수품이야. 그것도 아주 위험한 물건. 잘못 걸리면 벌금을 내는데서 끝나지 않아. 최소 투옥에, 잘못하면 사형감이라고. 그래서 어떡하는게 좋을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경비병들을 다른데로 유인하기로 했지. 어찌됐든 안 들키면 그만이잖아?



그게 화이트플레인 마을이야. 마을은 축제 준비로 한창 떠들썩한 데다가, 외부인이 오가는 일도 잦았지. 그 틈바구니에 공작원을 하나 보내서 마을 곡창에 불을 좀 붙여달라 부탁했어. 그러면 골든포트에서도 지원병을 보낼게 분명하니까.”



“곡창 바로 옆은 화약과 폭죽이 들어있는 창고였어요.”



실비아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그건 내 책임이 아니야. 화약을 한데 모아두는 멍청이들이 어딨어?”



“당신 때문에 불이 났잖아요!”



“그 사람들 책임도 있었어! 난! 나는······.”



첼시는 억울하다는듯 벌떡 일어나 하소연을 하려다가 도로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래. 뭐, 내가 시켰으니까 내 책임이지. 하지만, 난 그렇게 큰 불이 날 줄은 전혀 몰랐어. 정말로. 난 그냥 조그만 소란을 피워서 경비병들의 시선을 옮길 생각 뿐이었다고.”



“나중에 찾아오기라도 하지 그랬어요? 골든포트에서도 보일 정도로 불길이 치솟았어요. 미안한 마음도 안 들던가요?”



“그땐 바빴거든. 항구에 상자를 옮기느라.”



실비아의 눈이 분노로 떨렸다.



“나쁜놈! 당신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왜! 왜 나한테만 그래!”



듣다 못한 첼시가 갑자기 폭발하며 일어섰다.



“난 그냥 돈이 벌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란 말이야. 돈, 돈! 너희들은 돈 많지? 그래서 내가 왜 그랬는지 요만큼도 이해가 안 가지? 그렇지? 너희들이 보기에 난 그냥 탐욕스런 돼지새끼일 뿐이지? 안그래?”



첼시가 버럭버럭 화를 내자 오히려 실비아의 기가 짓눌렸다.



“난 돈이 필요해, 돈이 필요하단 말이야! 부모도 없이 좁아터진 고아원 울타리에 갇혀 사는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줄 알아? 한 밤중에 고아원장이 도망쳐서 돈도 부모도 없는 애새끼들을 떠맡는게 어떤 기분인줄 아냐고! 피땀흘려 일했어!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해서 악착같이 긁어모은 돈으로 겨우 애들 입에 풀칠이나 해 주다가, 겨우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애들이 싸그리 사라진 기분을 너희가 알아!”



첼시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하소연했다.



“돈이 필요해. 돈이 필요하단 말이야. 돈만 있었어도, 걔들이 사방팔방 팔려나가는건 어찌 막았을텐데. 걔들은 나보고 엄마라고 그랬어. 알아? 나도 그 때 겨우 열 세살 어린애일 뿐이었어. 그런데, 날 엄마라고 불렀다고. 그 애들이······.”



첼시는 흐느끼며 도로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그래. 그 때 다짐했어. 돈을 벌자고. 돈을 아주 아주 많이 벌자고. 돈이 벌고 싶어서 그랬어. 그래서 마을에 불을 질렀어. 그게 그렇게 나빠? 잘못됐어? 내가 잘못한거야? 밀수를 해서 큰 돈을 좀 만져보겠다는게 그렇게 잘못된 일이야? 우리들이 애써 길러낸 꿈버섯. 심지어 내다 팔지도 못했어. 큰 돈좀 만져보겠다고 애먼 마을 창고에 불지르고, 친구의 동료들을 납치했어. 그딴 추잡한 짓까지 저질렀는데 내 꼴좀 봐. 내 꼴좀 보라고. 그런데, 넌 아직도 나한테 화가 안 풀렸어?”



실비아는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그게 다야.”



첼시는 더러운 손등으로 뺨을 흐르던 눈물을 쓱 닦았다.



“돈이 벌고 싶어서 그랬어. 나도 그렇게 불이 크게 번질줄은 몰랐어. 죽은 사람이 있다면, 정말 진심으로 내가 사과할게. 다친 사람들한테도 미안해. 하지만, 난 그냥 돈이 벌고 싶었을 뿐이야. 너희들은 두 손 가득 쥐고 태어난 그 돈.”



실비아는 감옥 안에 갇혀 울고있는 첼시를 더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나 감옥 밖으로 나가는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어떻던가요?”



펠릭스는 늘 그랬듯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듯했다.



“끔찍해요.”



“누가?”



“전부 다요.”



실비아는 착잡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다.



“첼시를 살려줄까요?”



“불쌍한 사람이에요.”



“그럼, 빅터에게 약을 만들어 줄까요?”



“하지만, 그런 무시무시한 약을 만드는것도······.”



막 계단을 올라온 두 사람은 누군가 방 안에 멀뚱히 서 있는 걸 발견했다.



“형.”



“펠릭스.”



펠릭스가 앞장서서 걸어나오자 빅터 웨일이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버지의 방에 무슨 일로 찾아왔지?”



“지하감옥으로 내려가는 입구가 여깄잖아.”



빅터는 일그러진 입술로 투덜거렸다.



“그 여자 짓이지. 이것도 그 여자 짓이야. 끔찍한 악취미야.”



“뭐 어때. 엄마 방에도 여기까지 내려가는 비밀 통로 있는데.”



“역겹군.”



빅터는 더는 말조차 하기 싫다는듯 얼굴을 찡그렸다.



“형은 왜 여깄는데?”



펠릭스는 계단을 올라오려다 말고 머뭇거리던 실비아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위로 끌어올려주었다.



“아버지의 방에 아들이 찾아오는게 뭐 어때서?”



“왜 또. 구질구질한 추억에 젖으려고 왔어?”



“닥쳐!”



빅터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의 앞에서 소란을 필 순 없지.”



“아빤 죽었어. 벌써 오래 전에 말이야.”



“육신이 죽었을 지언정 그 혼은 살아있어.”



“혼? 무슨. 뭐가, 어디에?”



빅터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여기에.”



“형. 미쳤어?”



“펠릭스! 이 개자식이!”



빅터가 달려들었지만 펠릭스는 눈썹 하나 까딱 않았다.



“아빠 앞에서 소란 필 수 없다면서?”



빅터는 바로 걸음을 멈추더니 곧 펠릭스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래서. 뭐 하고 있었어? 여긴 왜 찾아왔고?”



“그림을 보러 왔어.”



“그림?”



“그래. 그림.”



빅터는 방 곳곳에 흰 천으로 덮인 캔버스와 액자의 천을 휙휙 걷어냈다. 숨겨진 그림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실비아는 소리없이 감탄했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한 단면을 거칠고 선명하게, 그리고 경쾌하게 그려낸 그림들. 그런 그림들이 방 안에 십 수 개는 걸려 있었다. 저무는 태양과 떠오르는 일출. 햇볓이 산산히 부서지는 호수의 표면. 낙엽진 가을. 벌레먹은 사과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조그만 애벌레. 조각조각 부서져가는 푸른 하늘의 흰 구름과 기울어진 와인잔에서 흘러내리는 한 줄기 포도주······.



“또 아빠랑 자기를 비교하면서 울적한 기분에 푹 젖으려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 하지마.”



“글쎄. 난 알 만큼 아는것 같은데.”



“넌 몰라!”



빅터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펠릭스를 노려보았다.



“이건 나와 아버지의 약속이야! 그 여자가 무시했던 꿈과 열정의 힘으로 여자의 콧대를 눌러주겠다는 약속! 난 그림을 그려야 해. 그려야만 한다고! 그래서 그 여자한테 아버지가 틀리지 않았다고 말 해 줘야 한단 말이야!”



빅터는 씩씩거리며 방 한 구석에 세워진 커다란 캔버스의 천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 캔버스에는 반쯤 그리다 만 그림이 있었다. 빅토리아 웨일과 소년 빅터 웨일, 그보다 조금 더 어린 펠릭스 웨일. 그러나 그 그림에 펠릭스의 아버지의 얼굴은 그려져있지 않았다. 실비아는 그림 아래에 조그맣게 새겨진 서명을 발견했다. <초상화>. 쓸쓸한 제목의 그림이었다.



“난 아버지의 뜻을 이을거야. 그 여자가 멋대로 설치도록 놔 두지 않아.”



“뭐, 수고해봐 형. 그럼 이만 비켜줄게. 울적하고 씁쓸한 추억에 푹 젖어봐. 가요, 실비아.”



펠릭스는 실비아를 데리고 그 음울한 화랑에서 빠져나갔다.







“어떻던가요?”


경쾌한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으며 펠릭스는 실비아에게 물어보았다.



“전, 저는 전혀 모르겠어요. 당신 가족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아니. 그것 말고요. 빅터 웨일에게 약을 만들어 줄까요, 말까요?”



“그 열정을 죽이는 약이요?”



“네. 빅터에게 약을 만들어 준다면 첼시는 석방되겠죠. 만들어 줄까요?”



실비아는 복도 한 가운데서 걸음을 멈추었다.



“왜요?”



“둘 다, 저는 모를 사연이 있는것 같아요. 어떻게 제가 결정해요?”



“연금술사잖아요? 당신이 결정해야죠.”



“당신이 해요!”



“난 상관없어요.”



“나도 상관없어요!”



“진심으로요?”



펠릭스가 무표정한 얼굴을 앞세워 실비아에게 한 발짝 다가왔다.



“당신한테 특별히 선택권을 준 거예요. 이대로 선택권을 포기할 생각인가요?”



“저는, 하지만, 제가 어떻게 결정해요······.”



“거 참. 상상력을 좀 발휘해봐요. 연금술사들의 숲에서 뭘 배운 거예요?”



“네?”



펠릭스는 히죽 웃었다.



“둘 다 살리고 싶으면 그럴만한 약을 만들어봐요.”



실비아는 한 줄기 서광이 비치는듯 했다.



“그게 가능해요?”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게 연금술사가 할 일이죠. 안 그래요?”



펠릭스는 히죽 웃으며 실비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둘 다 살리고 싶으면 열심히 머리싸매고 굴려봐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정말, 정말로 그게 가능할까요? 당신 어머니를 설득 할 수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해 봐요 한번! 시도하기도 전에 실패할 생각만 가득하니. 교류회에서는 아주 대담한 약을 만들어 냈잖아요? 자, 자! 실비아. 한번 생각해봐요.”



펠릭스는 실비아를 격려해주고 복도를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비아는 뒤늦게 저만치 멀어진 펠릭스의 등을 재빨리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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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연금술 가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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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후기 22.01.13 65 0 -
172 에필로그 22.01.13 56 1 4쪽
171 마지막화 22.01.13 44 1 22쪽
170 170화 22.01.12 38 1 24쪽
169 169화 22.01.11 33 1 24쪽
168 168화 22.01.10 34 1 23쪽
167 167화 22.01.09 36 1 22쪽
166 166화 22.01.08 34 1 23쪽
165 165화 22.01.07 36 1 26쪽
164 164화 22.01.06 31 1 22쪽
163 163화 22.01.05 36 1 24쪽
162 162화 22.01.04 39 1 22쪽
161 161화 22.01.03 33 1 22쪽
160 160화 22.01.02 36 1 25쪽
159 159화 22.01.01 37 1 23쪽
158 158화 21.12.31 32 1 21쪽
157 157화 21.12.30 34 1 23쪽
156 156화 21.12.29 35 1 24쪽
155 155화 21.12.28 34 1 24쪽
154 154화 21.12.27 39 1 22쪽
153 153화 21.12.26 42 1 24쪽
152 152화 21.12.25 39 1 21쪽
151 151화 21.12.24 38 1 24쪽
150 150화 21.12.23 38 1 22쪽
149 149화 21.12.22 37 1 21쪽
148 148화 21.12.21 40 1 22쪽
» 147화 21.12.20 44 1 22쪽
146 146화 21.12.20 38 1 21쪽
145 145화 21.12.19 40 1 22쪽
144 144화 21.12.18 43 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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